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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자도 방송할 수 있습니다-165화 (165/233)

165화

쪽지가 시키는 대로 저택을 이상하게 만든 원인을 다 처리하자 저택은 원상태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미지의 존재는 마지막으로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 이렇게 당해 주진 않겠다는 듯, 너까지는 어떻게든 데려가고 말겠다는 듯.

“여기까지 해내시다니, 정말 잘하셨어요.”

─아 시바 깜짝아

─개놀랏네;;

─허ㅅㅂ 다와서 죽는 줄

“음, 마부 외 처음으로 듣는 정상적인 목소리네요.”

폭주하는 미지의 존재들을 두고 막간 컷신이 찾아왔다. 엄밀히 따진다면 컷신보단 설정 풀이 시간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딱히 몸의 자유를 빼앗기진 않았으니까.

“괴물에 씌여 버린 아버지도… 이제 더는 죄를 저지르지 못하겠죠. 괴물에게 잡혀 있던 이들도… 본래 가야 할 곳으로 갈 수 있을 거고요.”

은우는 그에게 조곤조곤 말하는 이를 살폈다.

백금발을 곱게 땋고 녹색 눈망울을 가진 곱상한 소녀. 쪽지를 써서 그를 돕던 조력자가 분명하다. 더 나아간다면 일기장의 주인일 확률이 높고.

“당신 덕분에 저도, 다른 이들도 자유를 얻었어요. 이 감사를 어찌 전해야 할지.”

“이 아가씨가 쪽지를 주지 않았다면 주인공도 죽었을 테니까 딱히 감사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만, 착하네요. 아버지의 광기만 아니었으면 잘 살았을지도 모르는데.”

─ㅠㅠㅠㅠㅠㅠ

─아버지의 광기에 휘말린....ㅠㅠ

─불쌍....

─착해착해...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시간이 없네요. 괴물이 당신을 죽여 화풀이를 하려 하겠지만, 저택 밖으로 나가면 안전해요. 제가 길을 알려 드릴 테니 어서 나가세요.”

소녀의 말에 그는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그의 손이 허공을 두드리면 통통 소리가 난다. 그를 일정 반경 이상 못 움직이게 만드는 시스템의 제한이다.

─못나가

─응 안돼

─못지나가ㅋㅋㅋ

─넌 못지나간다

─ㅋㅋ절대 안 돼

“참, 저택 안쪽도 곧 안전해질 거예요. 괴물을 이 땅에 고정할 쐐기가 사라진 이상, 괴물은 금세 제 땅으로 돌아갈 거거든요.”

그리고 시스템이 풀렸다. 하얀색 빛이 그가 나가야 할 길을 표기하기 시작했다.

“부디 안전히 돌아가시길.”

이제 남은 건 저택을 뛰쳐 나가는 일뿐이다.

끄아아아아아!

뒤에서 암세포 특유의 괴음이 들려오고, 은우는 그것을 피해 달렸다. 쫓길 때면 이성 수치와 스태미나가 둘 다 떨어지지만, 이성 수치의 경우 중간중간 주어지는 회복 아이템을 사용하면 됐다.

“약간 마라톤 경주 하는 기분입니다.”

─물ㅋㅋㅋㅋ

─ㅋㅋㅋㅋ아 마라톤은 못참지

─탈수 안 오게 물 마시란 말이야~

─탈수는 못참지

─3만 3천원에 즐기는 저택마라톤

─가성비 ㅆㅌㅊ;;

─마라톤을 왜 저택에서 하냐고ㅋㅋㅋ

은우는 떨어지는 이성 수치에 맞춰 약을 섭취했다. 동양풍 배경이었다면 아마 청심환이 나오지 않았을까 싶지만, 서양풍이라서 알약이었다.

물이 없어도 삼킬 수 있는 건 생존 본능이라고 넘기면 그만이다. 미각도 구현했으면 아마 쓴맛이 혀를 가득 채웠겠지만.

끄아아아아아아아아!

약의 효과로 이성 수치가 회복되었다. 이제 그가 해야 할 일은 캐릭터보다 달리기 속도가 더 빠른 암세포를 지연시키는 것이다.

그는 권총을 들었다. 마지막 챕터라 그런지 총알에 맞아도 20초 스턴에 불과하지만, 총알 자체가 넉넉하니 괜찮다. 알약처럼 길목 중간중간 놓여 있던 덕이다.

타앙!

지근거리에 있던 암세포가 총알에 맞아 멈췄다. 은우는 그 틈을 타 빠르게 달렸다

끄아아아아아아!

“옵션에서 소리도 낮출 수 있던가요?”

─소음겜ㅋㅋ

─살다살다 무서워서가 아니라 시끄러워서 소리 낮추게 될 줄은

─진짜 계속 들으니까 무서움 0됨...

사람들이 낄낄 웃고, 은우는 달리는 동안에도 소리를 조절했다. 다른 미지의 존재가 있다면 모를까, 암세포랑만 달리는 거면 굳이 소리를 크게 해 둘 이유가 없다.

쿵!

그러다 뒤에서 무게 있는 무언가가 엎어졌다. 은우는 그게 무슨 소리인지 몰라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암세포가 엎어져 있고, 그곳을 기점으로 바닥이 검어지고 있다. 얼기설기 엉켜 암세포를 만들어 낸 검은 핏줄이 5챕터의 배경에서 그랬듯 바닥을 뒤덮는 거다.

─지금 멈춰있어야함

─스태미너 채우세요

─체력 채워야함다

‘그곳에 내가 있었다’ 할 때는 ‘ㄹㅇㅋㅋ’만 친 양반들이 공포 게임이라고 우다다 정보를 준다. 은우는 그들의 조언을 받아 스태미나를 채웠다.

그가 가만히 있음으로써 스태미나는 거침없이 쭉쭉 차오른다.

끄아악!

스태미나가 다 회복됐을 즈음, 암세포가 그런 소리를 냈다. 사람들이 말하지 않아도 공격 신호란 걸 알 수 있다.

은우는 빠르게 달리기를 시작했다. 그가 발을 떼고 0.5초가 지나면 혈관에서 촉수, 아니 섬유 가닥 따위가 솟아오른다.

“저를 죽이려는 것치고 참 친절한 것 같습니다.”

스태미나 채울 시간을 제공하질 않나, 공격의 참 신호를 알려 주질 않나.

은우는 제작진의 참된 배려에 고개를 살짝 저으며 다시 속도를 늦췄다. 그놈의 스태미나 때문이다. 그렇지만 벌린 거리가 거리였고, 주어진 템이 템이었다.

그는 순발력 있게 대처해 가며 하얀 표시를 따라 달렸다.

그리고 그 끝에 다다른 곳은 조금 넓은 홀이다. 초록색 대리석이 바닥에 깔려 있고 양쪽에는 계단이 있다. 은우가 막 나온 쪽에서 올라가는 게 아니라, 반대쪽 기준으로 놓여 있어서 2층으로 가려면 돌아가야 한다.

“처음 저택 들어올 때 그 홀 같은데…….”

─그런듯?

─헐 끝?

─끝?

─마지막?

은우는 눈을 가늘게 접으며 발을 재촉했다. 중간에 뒤돌아보며 암세포의 몸통에 총알을 박아 넣는 것 역시 잊지 않았다.

그렇게 절반쯤 홀을 가로지르니 연결된 저택의 현관문이 저절로 열렸다. 흰색 빛이 환하게 들어왔다가 서서히 옅어지며 바깥의 광경을 보여 준다.

한낮의 분수대가 관리되지 않았음에도 나름의 빛을 발하고 있다.

“끝?”

─ㅎㅊㅇㄴ?

─ㄲ?

─ㄲ??

─ㄱㄴ?

은우는 긴가민가하며 대문 바깥으로 발을 내밀었다. 그러자 신체의 통제권이 상실되며 컷신이 시작되었다.

“헉, 헉, 헉.”

주인공, 가렌은 굴러떨어질 것처럼 다급히 계단을 내려갔다. 그는 분수대와 가까워질 즈음에 다리가 꼬였는데, 안쓰러울 정도로 거하게 넘어지는 대신 분수대를 어떻게 짚어 냈다.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몸에 힘이 빠졌는지, 그 상태로 주저앉은 건 여담이었다.

“헉, 헉, 허억…….”

가렌은 석조 분수대에 몸을 기대며 저택을 돌아보았다. 저택의 문 안에는 괴물이 비명을 지르며 그를 보고 있다.

저택을 못 나오기에 그늘 속에만 있으나, 그 덕에 윤곽이 잘 구분 가지 않았다. 가렌의 눈이 흔들리며 침을 삼켰다.

곧, 미지의 존재가 꾸물거리며 물러나기 시작했다. 끼이이이익 하고 닫히는 것은 저택의 현관문이다.

덜컹!

문이 완전히 닫혔다. 가렌은 그제야 빌빌 기며 일어섰다. 그의 다리가 헐레벌떡 향하는 곳은 당연하게도 바깥이다.

일인칭에서 삼인칭으로 변경된 시야가 허겁지겁 달려가는 가렌을 비추었다. 거리를 두고 비춰지는 저택은 햇살을 살랑살랑 받고 있다.

한데 그 저택의 한쪽 창문에서 누군가가 커튼을 살짝 젖힌 채 도망치는 가렌을 보았다. 딱히 클로즈업해 주진 않았기에 눈 좋은 이들이나 겨우 보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커튼 젖히던 손이 사라졌다.

쿵!

그 순간, 장면이 검정으로 확 바뀌며 게임 로고를 띄웠다.

유령 저택이 끝났다.

▣ 165. 저런 상황에서 저런 질문을 받았을 때

<이게 공포 겜 하는 사람이냐>

[손 네 개인 괴물에게 태연히 먹히는 켄 사진]

너무 태연해서 보는데 먹는 쪽인줄

─ㅋㅋㅋㅋㅋㅋㅋㅋㅋ먹는쪽 ㅇㅈㄹㅋㅋㅋㅋㅋㅋ

└ㅅㅂ 먹히는 사람 얼굴이 너무 평온하잖아;;

<형 너무 빨라요...>

[클립영상]

─ㅅㅂ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닌 걸 아는데 진짜 아니어서 웃김

─ㅋㅋㅋㅋㅋㅋ

<켄 간지나는 건 알겠는데>

그놈의 헬멧 좀 벗으면 안됨?;;

헬멧만 쓰면 끝이라서 따라하는 새끼들 너무 많음

─ㅇㅈ 헬멧단들 조낸 많어;;

─실력이 켄 반의반만이라도 되면 말을 안해 ㅅㅂ 그새끼들 때문에 강등당했음

└ㄴㄷ? ㄴㄷㄴㄷ

─켄빼고 헬멧쉑들 싹다 조져야함

─이쯤되면 켄만 헬멧 쓰도록 법 제정해야한다

└ㅅㅂ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외국에서 요즘 켄 챌린지 유행이던데>

켄이 세운 기록 깨기 챌린지 ㅈㄴ 유행이던데....

[짤방]

얌전히 방송이나 보십쇼 휴먼

─아ㅋㅋ본인 켄기록 깨버리는 상상함

└그치만 어림도 없지!

└뭐어? 인간이 구울왕의 기록을 깬다고오?! 가능할 리가 없잖아!

─근데 켄 기록 깨기 그렇게 어려운가? 진짜 궁금해서 물어봄

└아무래도 그런 편이죠...

└단순추리겜이나 병맛겜 아니면 기록 못 깬다고 봐야함

└검기사 같은 겜은 절대 불가능;;

<요즘 왜 빌리 방송 안하냐?>

휴방 너무 잦아진 거 아님?;;

─그걸 왜 켄 게시판 와서 물어봄?

─퇴물 ㄲㅈ

방송 예명 빌리, 허찬수는 혹시 배울 거라도 있나 싶어 커뮤니티 반응을 살펴보다가 뜬금없이 나온 제 이름에 글을 눌러 보았다. 그러곤 그 내용을 읽자마자 전자 노트를 던져 버렸다.

노트는 거실 구석까지 날아갔지만, 단단해서 깨지진 않았다.

그렇지만 그게 지금 깨지지 않았다고 해서 기뻐해야 할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겐 유통기한이 있다. 아무리 단단한 껍질을 가지고 있어도 마찬가지다.

지금 깨지지 않았다 해서 그게 영원히 깨지지 않으란 법은 없고, 지금 드러나지 않았다 해서 그것의 균열이 없는 건 아니다.

사람도, 방송도 마찬가지였다.

한국 최고 피지컬이라는 단단한 껍질을 가지고 있으면 뭐 하나?

실력만으로는 이 바닥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사람들이 받는 충격의 역치는 언젠가 실력을 따라잡을 테고, 그 이전에 자신보다 대단한 실력자가 나타날 확률이 높다.

그리고 그럴 경우, 추락한다. 실력이 아닌 다른 것으로 사람들을 사로잡지 못하는 이상 몰락은 필연이었다.

하여 자신만큼은 최대한 오래 살아남기 위해, 그 유통기한을 늘리기 위해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강구해서라도 최고를 고집했다. 실력 외 사람들을 사로잡을 수단을 아직 찾지 못해서, 적어도 찾아낼 때까진 1위를 유지하려 했단 말이다.

그렇지만 그것마저 갑작스럽게 나타난 한 스트리머로 인해 실패해 버렸다. 뭘 대처할 수조차 없었다. 켄의 피지컬은 목격하는 순간 항거할 의지마저 앗아갈 수준이었다.

높은 확률로 한국 최고가 아니라 세계 최고. 당장 외국 실력파 스트리머들조차 그 사람의 기록을 따라 해 보려다 실패한 판이니, 섣부른 판단도 아닐 거다.

숨어 있는 재야의 고수가 있지 않는 한. 그리고 그가 Uol이나 와, 네뷸라 워처럼 세계적 인기를 끄는 게임을 하기만 한다면, 금세 세계 최고라는 명칭이 붙겠지.

그리고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켜 낼 거다. 그가 보기에 켄은 그런 존재였다.

한데 켄은 그렇게 살아남을 수 있다 치자. 근데 그는 켄이 아니지 않은가?

켄이 한국 최고 수준이었다면 그래도 선의의 라이벌이니 뭐니 하면서 어떻게 비벼 봤을 것을, 하필이면 켄은 압도적으로 강했다. 주위 실력파들을 다 묻어 버릴 정도로.

그렇다면 아직 전향점을 찾지 못한 그는, 실력파로 밀고 갔는데 그 타이틀마저 빼앗긴 그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그의 방송은 어디로 흘러가야 하는가?

켄은 네뷸라 워를 안 하니 세계 대회가 열렸다면 어떻게 숨통을 틔울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마저 기약 없는 상태가 되었다.

허찬수는 이제 그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방송을 해도 모두가 켄과 비교하는 상황에서 어떤 식으로 헤쳐 가야 할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패배감과는 조금 다른, 그러나 더 질척거리는 혐오가 그의 방을 검게 물들였다.

* * *

은우는 오랜만에 한상 거하게 차렸다. 그가 끼니를 잘 안 챙겨 먹는다는 소리가 아니다. 단지 귀찮음과 효율 탓에 한 음식만 하던 평소와 달리, 오늘은 큰맘 먹고 다양하게 차렸을 뿐이다.

요컨대, 제대로 된 한정식이었다.

그는 적당히 사진을 찍어 올린 뒤, 반찬을 하나하나씩 해치우기 시작했다.

입에 넣고 씹으면 결대로 부드럽게 찢어지는 고사리, 짭쪼름한 양념에 조물조물 무치고 참기름을 둘둘 두른 시금치, 식감이 죽지 않도록 살짝 데치기만 해 아삭아삭한 콩나물, 세로로 반 자른 후 속을 파내 소를 넣은 아삭이고추전, 밥 먹기 직전 오이를 나박나박 썰어 고춧가루와 간장, 매실액을 넣어 쓱쓱 비빈 오이.

굽다가 옆구리 터진 비엔나 소시지나 아삭이고추전 만들고 남은 소를 넙데데하게 구운 가짜 떡갈비도 있다.

국으로는 된장찌개를 끓였는데, 집에 두부가 다 떨어져서 유부를 넣었다. 유부를 건져다가 입에 넣으면 국물이 쭈욱 나오며 혓바닥과 입천장을 뜨겁게 데우다가도, 특유의 식감과 된장 냄새를 후욱 풍기며 입맛을 살살 돋구었다.

차린 사람이 말하긴 뭐하지만, 맛있는 상이었다.

그는 잡곡밥을 한술 가득 푼 후, 그 위에 나물과 고기를 얹고 마지막으로 김을 놓았다. 그가 직접 만든 건 아니지만, 조미김은 진리였다.

[…탄소 배출량이 불필요하게 증가한다는 의견이…….]

적막한 것도 좋지만, 이 순간을 그냥 날리기도 뭐해서 튼 TV에서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다. 밖을 잘 안 나가는 이상 뉴스는 꼭 봐야 했다.

은우는 그것을 보며 입안에 든 음식을 꼭꼭 씹었다. 날씨 부분으로 넘어갔을 때는 외출이 적은 그도 퍽 동의표를 던질 수 있었는데, 날이 그만큼 좋았다. 이번 여름은 피서객이 정말 많을 것 같다.

피서, 피서라.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은우는 잠시 뒷전으로 미뤄 뒀던 여행 욕구를 다시 느꼈다. 과연 놀러 갈 수 있을진 모르겠다만.

밥을 다 먹기도 전에 뉴스가 끝났다. 그는 채널을 돌렸다. 뒤바뀌는 화면 사이로 무언가가 비춰지나 싶으면 그건 다큐다.

[작품에 대해 박하기로 유명하신 분이시죠, 작가님은. 어째서 싫어하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그것은 한 인물을 조명하고 있었는데, 은우로선 그다지 관심 있는 인물도, 분야도 아니었다. 그는 채널을 돌리려 했다.

[더 좋게, 더 아름다운 이야기를 빚을 수 있었는데 정작 눈에 들어오는 건 부족함뿐이니까요.]

문득 그 인물의 말이 귀를 건드렸다. 은우는 잠시 채널 돌리는 것을 멈추었다.

[지금 수준으론 만족하지 못하신다는 건가요?]

말 내용 자체는 그다지 공감 가지 않았다. 다만 은우를 사로잡은 건 화면에 비치는 이의 눈동자였다.

[네.]

불순물 하나 섞여 들어가지 않은 채 그저 무언가를 갈급하는 열정.

[그것들을 쓰면서 배우는 것들이 있고, 나아지는 것들이 분명 있어요. 그렇지만 돌아봤을 때 부족한 점이 보인다면, 보이는데 고쳐 주기엔 너무 멀리 온 상황이라면 어떻게 그걸 좋아할 수 있겠어요?]

혹은 하나에 모든 걸 바쳐 버린 광기.

[글을 쓴 것을 후회하진 않아요. 그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제가 있는 거니까. 그렇지만 전에 쓴 작품을 좋아하는 건 역시 어렵네요.]

[작가님이 작품 평에 박하신 건 그런 사연이 있어서였군요……. 그렇다면 앞으로도 계속 작가님을 문단에서 뵐 수 있을까요?]

[당연하죠.]

은우는 단답 하는 이를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배가 적당히 부르고, 과거에 대한 무게도 사라지고, 형과 친구에 관한 문제도 다 해결되니 주어진 여유가 그를 사색에 잠기게 만들었다.

[제겐 이것밖에 없는걸요.]

방송을 시작하고 나서 정말 많이 배웠고 정말 즐거웠지만, 많은 것이 나아졌지만.

그렇다고 그는 저런 상황에서 저런 질문을 받았을 때, 저 정도로 단호히 답할 수 있을까? 아니, 방송이 아니더라도 그에게 저런 가치가 있긴 했나?

조금, 의문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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