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화
유령 저택의 룰은 간단하다. 미지의 존재들을 피해 가며 챕터마다 요구하는 오브젝트를 찾고 그것으로 길을 열어 탈출하는 것이다.
주의할 점이 있다면 첫 번째로 세이브 기능이 없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는, 죽으면 해당 챕터 처음 부분부터 다시 시작이었다.
심지어 그렇게 게임을 다시 시작할 때마다 맵 지형, 아이템 위치, 오브젝트 위치는 랜덤으로 변경된다. 외워서 빨리 끝낸다는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이다.
맵은 어둡지, 넓은 와중에 판마다 바뀌지, 세이브도 불가능하지, 적으로 등장하는 미지의 존재들은 기괴하게 생겼는데 죽이진 못하지.
말 그대로 공포를 위한, 공포에 의한, 공포의 게임이었다.
▣ 163. 태초 마을로
켄이 그가 할 게임으로 공포 게임을 선정한 날, 박기철은 본방 사수를 하게 되었다.
별 이유는 없었다. 약혼자가 보자고 해서였다.
“꼭, 꼭 봐야겠어요?”
박기철은 공포 영화도 혼자 못 보는 쫄보였으므로, 사랑하는 님의 선택임에도 약간의 망설임을 보였다. 이왕이면 재고를 해 줬으면 하는 망설임이었다.
“네!”
약혼자, 남현아와 종종 켄의 방송을 같이 봤던 게 잘못이었을까. 그렇지만 그녀는 원래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가 알려 주지 않았어도 알아서 켄의 방송을 찾아냈을 것이다.
박기철은 절망하며 그녀 옆에 엉덩이를 붙였다.
“이러니까 예전에 공포의 집 갔을 때가 생각나네요.”
“…그러게요.”
만난 지 얼마 안 됐을 때 같이 공포의 집에 갔다가 그 혼자서만 혼비백산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박기철은 그의 흑역사를 떠올렸다가 잠시 눈을 가렸다. 그때 이후로 사이가 진전된 건 맞는데, 좋은 기억은 아니다.
[촛불이 흔들리네요.]
그사이 켄이 촛불의 일렁임을 확인했다. 미지의 존재가 근처에 있다는 신호였다.
“헉.”
1인칭이되 TV 화면으로 방송을 틀어 놓은 박기철은 베개를 꼭 끌어안았다. 하는 사람은 태평한데 보는 사람만 애가 타는 기묘한 상황이었으나, 공포 게임이란 게 원래 그런 법이었다.
“하여튼 겁 참 많아요.”
남현아가 옆에서 작게 웃었다.
[방에 숨읍시다.]
장롱에 숨는 게 제일 안전하지만, 어두운 방에 쪼그려 앉아 있어도 괜찮다. 미지의 존재들은 대체로 방 하나하나를 전부 뒤지고 다니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대체로 그럴 뿐이지 재수 없으면 방 안으로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
[덜컹]
지금이 그랬다.
“뭐뭐뭔데……!”
“걸리나?”
태연한 남현아와 달리 박기철은 그의 집 방문이 열린 것처럼 들썩거렸다.
화면 속 어둠은 윤곽 분간이 어려우나, 문 열리는 소리만큼은 선명하게 들려왔다. 심지어 유령 저택은 BGM도 없는 게임이었다. 저런 소리 하나하나가 끔찍하리 만치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사이 문이 끼이익 하고 열리며 복도의 불빛을 희미하게 흘려보냈다. 다만 그것의 일부를 가로막은 검은 형체는 인간이 허리를 구부정하게 서 있는 것과 비슷한 형태였다. 가운인지 옷인지, 몸을 온전히 가리며 내려온 천 자락이 스륵스륵 쓸렸다.
[따르르랑, 따르르랑]
높지만 종치고는 낮은 음역대의 소리는 계속해서 짤랑거렸다. 정면에 광원이 있는 것도 아니건만, 그것이 들고 있는 종은 소름 끼치게도 반짝거린다. 절반의 윤곽이 붉은색을 옅게 반사했다.
[여길 들어오네.]
화면 속 켄은 침대 옆에 쪼그려 앉아 있었으니. 그는 덤덤히 자신의 불운을 평했다. 방에 입장한 미지의 존재는 종소리에 맞춰 한 발, 한 발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화면 한쪽에 표기된 이성 수치가 느리게 깎이기 시작했다.
─시바르다드륻어왓어ㅓ
─ㅇㄴ
─개쫄려ㅠㅠㅠ
─죽나? 죽나??
─ㄷㄷㄷㄷㄷㄷ
─와 내 심자유ㅠㅠㅠ
“으아아아아아.”
시청자들은 난리도 아니었다. 박기철의 심장도 난리가 아니었다. 남현아가 옆에서 소리 없이 박장대소했다.
[직접 보는 건 또 처음이네요.]
이 와중에 켄은 미지의 존재를 슬쩍슬쩍 살폈다. 커다란 키로 인해 머리가 침대 위까지 나온 덕이다. 덕분에 그의 시야를 빌리고 있는 화면도 미지의 존재를 같이 비추었다.
종과 마찬가지로 빛을 안 받았음에도 붉은빛을 발하는 얼굴이 보였다. 웃는 얼굴 가면처럼 초승달 3개가 선명한 붉은 색으로 반짝거렸다.
[따르르랑, 따르르랑]
묵직한 종소리가 울리고, 미지의 존재는 넓디넓은 방 중간까지 왔다. 그러곤 몸을 돌렸다.
“허어어어.”
“이걸 못 보네.”
발각 상태가 아니고, 램프를 켜두지 않은 데다가 오브젝트(침대)에 걸려 플레이어를 발견 못 한 모양이다. 운이 좋았다.
[중간에 고개 돌렸는데도 이성 수치 엄청 깎였네요.]
켄은 여전히 태연했다.
“진짜, 너무 무서워요…….”
“자기가 하는 것도 아닌데요, 뭐.”
“그래도 무서워요…….”
그저 박기철만 죽어 나갈 뿐이었다. 남현아가 좋아하니 차마 끌 수는 없었지만.
형 선물 고른다기에 도움도 줬는데! 지갑도 사 줬는데! 이걸 이렇게 돌려주다니! 박기철은 울며 겨자 먹기로 후원이나 날렸다.
* * *
은우는 갑자기 훅 꺼지는 촛불을 보고 다시 켰다.
가끔 이렇게 얼마 없는 촛불이 꺼질 때가 있는데, 그땐 당황하지 않고 다시 켜 주면 된다. 어려울 것도 없다. 다가가면 촛불 켜기 메시지가 떠오르므로, YES만 누르면 됐다.
꺼지는 이유? 없었다. 있다면 공포게임이라는 이유 하나뿐이었다. 그때마다 이성 수치가 깎이는 것도 공포 게임이니까 감수해야 했다.
─아니 님 왜이렇게 태연하냐고;;
─진짜 개무서웠다..
─허어......
─진짜 죽는줄
“무서울 것도 없지 않습니까?”
은우는 가만가만 걷다가 걸음을 멈추었다.
어디야…? 어디 있어…?
이 미지의 존재는 촛불의 일렁임으로 확인할 수 없다. 다른 존재보다 좀 더 넓게 퍼지는 소리를 토대로 알아채는 방법밖에 없는 것이다.
어디야…….
소년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은우는 그것이 들리는 방향을 피해 조용히 움직였다. 보통 걸음걸이의 반 배 정도 속도로 움직이면 그가 원하는 파장 정도가 나온다.
“개인적으로는 이 친구가 제일 귀찮습니다.”
다른 미지의 존재에 비해서 속도가 제일 빠르고 청음 범위도 넓었다. 저 소리가 들릴 때 달리면 100% 걸린다고 보면 됐다.
일반적인 걸음조차도 상당히 위험하다. 저 소리가 사라질 때까진 답답하게 느림보 걸음을 걷는 게 제일 안전했다.
아까 죽어 봐서 안다.
“…얼마나 죽을지.”
─최소 미지의 존재 하나당 한 번은 죽을 듯
─모르면 죽어야지
─근데 이분은 죽어도 태평하게 죽어서;;
은우는 얕은 숨을 내뱉으며 아까 죽었던 순간을 상기했다.
게임 특성상 도망치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는데, 스태미나란 게 있다 보니 따돌리기 전에 죽기 십상이다. 누나를 찾는 꼬맹이한테 찢겨 죽은 건 그다지 유쾌한 경험이 아니었다.
“반격까진 바라지 않으니, 추적을 지연시키거나 할 순 없습니까?”
발각된 후에는 오르골을 뿌려도 안 통한다. 큰 소리가 싫은지 오히려 격렬하게 쫓아오는 것이다.
근처에 장롱이 있다면 그나마 낫다지만, 없을 때가 더 많다. 그러면 그냥 얌전히 죽어야 하나? 죽을 때마다 처음으로 돌아가는데도?
─권총 주우면 ㄱㄴ
─권총이랑 총알 쓰면 3분 정도 스턴 걸 수 있어요
─시계도 있는데
─회중시계는 3쳅부터임
“아, 템이 없는 건 아니군요.”
─권총 스면 근데 소리 때문에 다른 애들 어그로 끌릴 수 있음
─집안 곳곳의 십자가 깨면 랜덤 이동
─근데 십자가 가끔 버그 잇어요ㅋ
─맵 밖으로 튕겨져나가면 레전드
발각된다고 무조건 죽으란 법은 없나 보다. 생각보다 다양한 대처법에 은우는 고개를 주억였다. 권총이니 십자가니 시계니, 아무것도 없는 지금은 걸리면 죽는다고 봐야겠지만 말이다.
“책부터 일단 찾읍시다.”
그나마 할 일이라도 알고 있는 건 2챕터부터 시작 장소에서 주어지는 쪽지 덕이다.
그 쪽지는 그가 이번 일에 휘말린 것을 굉장히 유감스러워하며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을 서술했다. 일이 왜 이렇게 됐는지는 알려 주지 않았지만, 그건 종종 발견하는 일기장 따위로 추측할 수 있었다.
참고로 이번 챕터의 목표는 책과 제물을 찾아 제사를 지내는 것이었다. 그러면 제멋대로 바뀐 저택이 정상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아까 찾았었는데…….”
─어림도 없지!
─다시 찾아!
─이래서 공포겜인가;;
챕터마다 맵이 달라지는데, 상대적으로 짧고 미지의 존재도 하나밖에 안 나왔던 1챕터와 달리 2챕터부터는 맵이 엄청나게 넓어진다. 미지의 존재 또한 수가 늘어, 은우가 지금까지 마주친 것만 해도 3마리였다.
처음 그 미지의 암세포, 미지의 종소리, ‘어디야, 어디야’거리는 미지의 소년. 이렇게 3마리 말이다.
은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복도를 걸었다. 어디야 소리가 사라졌으므로 보통 걸음걸이 정돈 가능했다.
촛불이 일렁거리는 복도는 특별한 소리가 없어도, 혹은 없기에 긴장감을 더한다.
“어디에 있을까요.”
그는 흥얼거리진 않고 주술 읊듯 중얼거리며 문을 열고 다녔다. 도망치기 편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래 봤자 스태미나 없으면 금방 잡히지만.
─장롱!
─켄님 저기 장롱!
“저도 봤습니다.”
그래도 가끔 장롱은 발견할 수 있다. 은우는 좁은 방 안에 있는 장롱을 보고, 그 옆의 서랍을 보았다. 책이 있을 것 같진 않지만, 아이템은 있을지 모른다.
달칵.
그는 문을 닫고 서랍으로 다가갔다. 적막 속에서 나무와 나무가 마찰하는 소리가 스륵 하고 울려 퍼졌다.
“야광석이네요.”
그것은 빛이 없는 데서 문자 그대로 빛을 발하는 돌이었다. 빛이 있는 데선 그다지 효용이 없으나, 방 안처럼 촛대가 없는 곳에는 제법 쓸 만하다. 램프의 불빛은 미지의 존재가 볼 수 있지만, 야광석의 불빛은 못 보기 때문이다.
장롱의 위치나 아이템이 있음을 표시하기 위해 쓰이기도 한다. 바닥에 설치하는 것도 가능한 까닭이다.
물론 은우는 그가 거닌 길목을 다 기억하므로 시야 밝힘 용도로만 사용했다. 회수가 가능해서 다행이었다.
은우는 서랍에서 야광석을 챙긴 후, 문을 열어 두고 방을 나섰다. 가끔 복도에 놓인 서랍장을 뒤져 가며 조금 더 수색을 하면 드디어 책을 발견할 수 있다.
『알 수 없는 책.
알 수 없는 문자들이 적혀 있다.
펼쳐서 문자를 살펴보면 왠지
오싹한 느낌이 든다.』
획득하자마자 이성 수치가 조금 깎여 나갔다. 아이템을 계속 들고 있어도 마찬가지였다.
집어넣고 나서야 다시 이성 수치가 회복되기 시작했다.
“이성 수치 진짜 잘 깎이네요.”
─멘복치임
─잡혀서 죽는 건 ㄱㅊ은데 이성수치 딸려서 죽으면 ㅈㄴ 억울함
─ㅇㅈ...
그때 따르르랑, 하며 긴 종소리가 그의 귀를 간지럽혔다. 암흑 속을 선명히 뚫고 들어오는 청아한 종소리는 그 엄숙함과 달리 사람에게 공포만을 선사한다.
하필이면 이 방은 숨을 수도 없다.
“장롱으로 갑시다.”
마침 장롱도 가깝겠다, 은우는 서둘러 복도로 나가 냅다 달렸다. 파장이 커지자 미지의 존재가 그의 기척을 눈치챘다.
두우웅!
미지의 존재 중 누군가가 그의 존재를 알아차렸다는 신호가 울려 퍼졌다. 둔중한 북소리다.
딸랑딸랑딸랑-
곧 종소리가 굉장히 빨라지며 그를 맹렬히 쫓기 시작했다. 아직 시야에 있진 않지만, 근처일 것이다. 스태미나가 쭉쭉 줄어들기 시작했다.
“안 잡힙니다.”
─온다온다온다
─ㅇㄴㄴㄴㄴㄴ
─ㄷㄷㄷ
─좆된 거 아님??
시청자들의 애간장이 타는 사이, 은우는 스태미나가 달지 않는 속도로 최대한 빠르게 걸었다. 램프를 꺼 버린 탓에 그의 시야는 오직 벽의 촛대에 의지하고 있다.
다만 미지의 존재가 가까웠던 나머지 벽에 걸린 촛대들이 바람 앞 등불처럼 이리저리 흔들렸다. 흡사 껌뻑껌뻑하는 손전등을 보는 느낌이었는데, 그때마다 시야가 검어졌다가 다시 촛불 특유의 주홍빛으로 물들었다가, 다시 검어지길 반복했다.
또각또각또각.
딸랑딸랑딸랑-
발소리와 종소리가 겹쳐졌다. 소리는 거의 가까워진 상태다.
딸랑딸랑딸랑-
두다다다다-
무언가의 발소리마저 들려올 때, 장롱 방이 보였다. 은우는 회복된 스태미나로 냅다 달렸다. 미지의 존재가 거의 접근했는지 시야가 껌뻑, 어둠으로 잠식되었다. 이성 수치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끼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은우는 장롱 방 문을 닫아 버렸다.
그다음 할 일은 미리 열어 둔 장롱문으로 몸을 집어넣는 것이다. 빠른 손길로 장롱 문마저 닫으면 세상은 앞뒤 분간이 가지 않는 암흑만이 남는다.
딸랑딸랑딸랑-
종소리가 장롱과 방문에 한 번씩 가로막혀 웅웅- 퍼지는 형태로 들려왔다.
“안 잡힌다 했잖습니까.”
은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끼이익,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문 열리는 소리였다. 은우의 눈꺼풀이 한 번 깜빡였다.
“맞다, 쟤네도 문 열 수 있었죠.”
─ㅇㄴ 장롱도 열리는 거아님?
─ㅎㄷㄷㄷ
─안 보여서 더 쫄려ㅠ
미지의 존재가 문을 열고 방에 들어왔지만, 은우는 태연했다. 장롱까지 열 수 있으면 처음 그 암세포 친구가 괜히 돌아갔을까.
장롱은 안전했다. 아마도.
“이참에 여쭤보겠습니다. 장롱 안에서 램프 켜면 어떻게 됩니까?”
─죽어요
─쟤네들이 장롱 부숩니다
─장롱 와장창됨
“죽는군요. 감사합니다.”
은우는 딸랑거리는 종소리가 평소의 ‘따르르랑’으로 돌아가는 걸 확인했다. 천 자락 쓸리는 소리나 종소리가 점차 멀어지는 걸 보면 추적이 풀린 모양이다.
“소리가 완전히 멀어지면 나갑시다.”
그는 어두운 장롱 속에 엉거주춤 자세를 취했다. 편하게 있고 싶어도 2m의 키는 장롱 안에서 편히 설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쪼그리자니 그건 또 그래서, 장롱 옆면에 몸을 기댄 채 다리를 대각선으로 뻗어야 했다.
“…장롱 크기 좀 키워 달라고 클레임 넣어도 됩니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키때문에 손해보는 남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게임인데 장롱 좀 커도 괜찮지 않을까? 은우는 불편한 자세로 있다가 이젠 괜찮다 싶을 즈음 문을 열었다. 미지의 존재가 멀어진 덕에 열린 문 너머로 보이는 복도는 주홍빛 불빛에 휘감겨 있다.
은우는 다시 그 복도로 나아갔다. 또각, 또각. 정말이지 이 게임은 안간힘을 다해 조용히 걸어도 발소리가 뚜렷하게 났다. 발만 닿으면 소리가 나도록 제작진이 설정해 둔 모양이다.
덜컥.
“잠겼네요.”
은우는 잠긴 문을 보고 잠시 고민했다. 1회용 만능 키를 주워 두긴 했지만, 안에 뭐가 있을지 몰라서 열기가 망설여진다.
“뭐, 만능 키까지 소모하게 만들어 놓고 아무것도 없진 않을 거라 믿습니다.”
그는 아이콘을 눌러 키를 소환했다. 문고리에 꽂힌 키가 옆으로 돌아가며 찰칵 소리를 내었다.
열쇠는 곧바로 가루가 되며 사라져 버렸지만, 잠긴 문은 열렸다. 은우는 슬그머니 문을 밀었다.
“어, 제단.”
아직 제물도 다 모으지 않았는데 제단이 발견됐다.
“이제 제물만 찾으면 되겠습니다.”
정확힌 제물을 찾아서 여기까지 오는 거지만, 일단 위치를 찾은 이상 어렵진 않을 거다.
은우는 만일을 대비해 야광석까지 바닥에 뿌려 둔 후, 그곳을 나왔다.
두다다다다-
한참 뒤, 그가 복도를 걸을 때 발소리가 갑자기 들려왔다.
─뭐임?
─초딩들 달리는 소리 같다
─Hoxy.....
─비수들 팬미팅해달라고 달려오는 거임ㅋ
─ㅋㅋㅋㅋㅋㅋㅋ
─사손이다
“아까 종소리 친구랑 겹쳤던 그 소린데.”
일단 자리를 피해야겠다. 은우는 빠르게 다가오는 소리를 느끼며 달렸다. 이러면 들키지만, 속도가 너무 빨라서 달리기 아니면 자리를 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아, 달려도 안 들키네요.”
다른 미지의 존재와 달리 이것은 그의 소리를 못 듣는 모양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북소리가 안 났다. 은우는 소리를 피해 코너를 꺾었다. 스태미나가 슬슬 바닥이다. 방이 나와 줬으면 좋겠다.
어디야?
“이런.”
─양각이다
─아ㅋㅋㅋㅋ봉쇄죠?
─사방팔방ㅋㅋㅋㅋ
─못 도망가죠?
─사손이 ㅎㅇ
두다다다 하는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는데, 달리면 걸리는 미지의 존재가 근처에 있다.
방? 있었으면 진즉에 들어갔을 거다.
차라리 오르골을 써 볼까. 저쪽으로 던지고 반대쪽으로 도망치면─
두우웅!
은우가 잠깐 사고를 굴리는 사이, 걸렸다는 의미의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젠 피할 길이 없다.
한숨과 함께 고개를 돌리면, 팔꿈치 관절에서 팔뚝이 두 개로 분화한, 팔은 두 개인데 손은 네 개인 괴물이 뒷다리와 함께 사족 보행인지 육족 보행인지 분간 안 가는 형태로 달려드는 걸 볼 수 있다.
“음.”
세로로 갈라진 입이 그의 상체를 뒤덮을 만한 크기로 벌어졌다. 은우는 피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날카로운 이와 촉수 같은 혀가 망막을 가득 채웠다가 어둠으로 추락했다.
『미지를 두려워하라.
쳅터 다시 시작 ◀
메인 화면으로 돌아가기』
태초 마을로 돌아갈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