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화
비밀 하나를 토로한다고, 게임 한 번 같이 한다고 오랫동안 벌어졌던 거리감이 단번에 좁혀지진 않는다.
그렇지만 그 또한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것이다.
서은우는 선반에 놓인 인형 두 개를 보며 그 사실을 직감했다. 나란히 서 있는 두 인형은 환불 따위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정겨우니.
고양이가 꼭 쥐고 있는 물고기 인형이 간지러웠다.
▣ 162. 어김없이 그것이 나타났다
─ㅋㅎ
─ㅎㅇ
─안녕하세요!
─? 대기실 왜 이럼
─??
인사말들로 출석을 알리던 사람들이 일순 당황을 표했다. 그도 그럴 게, 평소 그들을 반기던 대기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좋은 저녁입니다.”
사람들이 당황하건 말건 은우는 태연히 그들을 반겼다. 그의 머리에는 평상시와 다른 형태의 헬멧이 씌워진 상태다. 무려 해골을 형상화한 헬멧이었다.
별조차 떠오르지 않아 새까맣기만 한 하늘에서 줄줄이 내려온 호박 등이 음산하게 웃었다.
─할로윈은 아직 멀었는데요
─설마사카
─곰보겜의 향기
─드뎌 이분이 겁에 질리는 모습을!
그 외형과 배경에서 사람들은 오늘할 게임의 장르를 대략 추측해 내었다. 정답이었다.
“예, 오늘 할 게임은 공포 게임입니다.”
심박수를 재어 위급한 상황이 되면 강종시켜 버린다는 그 장르, 오늘 한번 도전해 보기로 했다.
─형님은 오늘 안 나오심?
─형님 합방 개꿀잼이었는데ㅠ
─진짜 저번방송 ㄹㅇ 레전드였다
“형은 일 갔습니다.”
그러고 보니 친구들이 알아챘다며, 괜찮겠냐고 낮에 문자가 왔었던가. 비밀 엄수만 지켜 주면 된다 했으니 지금쯤 실컷 자랑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은우는 한동안 꾹꾹 누르며 말랑함을 즐겼던 고양이 인형을 생각하고, 그를 자랑할 형을 떠올렸다. 불쾌한 것보다 창피함이랄지 그런 감정이 더 크다.
“그럼 많이들 모이셨으니 슬슬 시작해 볼까요.”
─ㄹㅇ 곰보겜?
─오겜무
─ㅇㄱㅁ?
─공포겜 ㄴ뉴ㅠㅠㅠ
“참고로 게임 제목은 ‘유령 저택’입니다.”
정식 출시 전, 무료로 풀렸을 때에도 여러 스트리머를 울렸다는 공포 게임이다.
러브 크래프트가 창조한 ‘크툴루 신화’의 냄새가 살짝 가미된 걸로도 유명하다. 미지의 공포란 점에서 말이다. 냄새만 가미됐다는 말 그대로 신화 요소 자체가 등장하진 않는단다.
“유행은 지났지만, 유행이 지나갔다고 해서 게임의 가치가 변하진 않죠.”
─명반은 영원하다
─공포겜도 영원하다.....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은우는 망설임 없이 게임을 다운받고 시작했다. 심신미약자, 임산부 등은 시청에 주의를 요한다는 경고문구가 잠시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곧 떠오른 건 난이도 선택 창이었다.
“난이도가 따로 있는 것 같습니다. 최고 난이도는 잠겨 있고 초보자랑 도전자, 두 개뿐이네요.”
그는 설명문을 슬쩍 보았다. 사실 보지 않아도 할 건 정해져 있었지만, 사람들에게 보여 줄 필요는 있었다.
“끝까지 하려면 도전자 난이도로 해야 한다니 도전자로 가겠습니다.”
─가즈아ㅏㅏ
─이 형은 후원 안 해도 최고난이도 골라서 좋아...
─하,,,,오늘 잠 다잤다
─이 남자...공포게임에선 어떨까?
─무조건 도전자 아입니까
사람들은 그것을 반겼다. 지금껏 무서울 만한 장면이 연출돼도 별달리 겁내는 모습을 보인 적 없는 은우지만, 호러 게임에서도 그럴지 궁금한 모양이다.
시야가 검게 물들었다가 그의 바로 앞 그리고 조금 위쪽부터 주홍빛으로 서서히 밝아지기 시작했다.
〚친애하는 가렌, 오랜만에 보내는 편지가 부고임에 깊은 유감을 표합니다.〛
주홍빛으로 밝혀진 주변은 마차 안이었다. 덜컹거리는 감각이 들고, 창문 밖으로는 어둑어둑한 평원이 흘러갔다.
다그닥거리는 말발굽 소리가 어쩐지 안정감을 주었다.
〚…백부께서는 당신의 막내아들이 사고사로 사망하자 그 충격으로 완전히 미쳐 버리셨습니다. 직후 밧줄에 목을 매어…….〛
내레이션은 아무래도 편지를 읽어 주는 것 같았다. 담담한 목소리는 한 일가의 처참한 몰락 과정을 섬세히 읊고 있다.
〚선순위 상속인이 전부 작고하여 유일하게 남은…….〛
마차는 어둠을 틈타 거대한 저택 앞까지 도달했다. 덜컹하는 소리가 들리면 마부가 마차의 문을 열어 주고 있다.
오래된 건지 단순히 밤이라서 그런 건지, 전체적으로 퇴색된 빛깔의 저택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부터 크리필드 저택은 당신의 것입니다.〛
“도착했습니다.”
〚애도를 표하며, 크리스티나 카인이.〛
마부는 주홍색 빛을 발하는 등을 들고 길을 밝혀 주었다. 은우는 그것을 따라 내렸다. 설정값을 그대로 가져온 얼굴은 배경에 맞춰 신사 복장을 하고 있다.
아직 인트로 부분이라 그런지 은우에겐 행동의 자유가 없었다. 대신 마부를 상대하는 귀찮은 일은 게임 속 캐릭터가 전부 도맡아 처리해 주었다.
“고용인들도 다 도망갔다더니…….”
주인공은 혀를 끌끌 차며 마부를 기다리지 않고 저택 안으로 훌쩍 들어가 버렸다. 손에 들고 있는 전등이 어두운 저택을 유일하게 밝혔다.
다만 촛불 전등이라서 그런지 밝혀지는 범위는 그다지 넓지 않다. 이것도 제작사의 노림수일 것이다.
“그래도 생각보단 깨끗한데. 저택 정리를 위해 가구를 전부 치워 놨다더니 그때 청소도 했나 보군.”
─???: 생각보다 깨끗한데
─‘그 대사’
─공포게임의 시작을 알리는 그 대사
─화면 되게 칙칙하다
주인공이 했나 보군─이라고 말하는 시점에서 은우는 자유를 얻었다. 화면에 그가 사용 가능한 아이템과 100이라고 적힌 뇌 모양 마크, 파장 정도를 알려 주는 아이콘이 떠올랐다.
“게임 특성인가, 세상이 살짝 잿빛으로 보이네요.”
─너무 어두운데
─그래픽 조금 떨어지네
─밝기 좀 올려주세요
“저는 괜찮은데 여러분은 잘 보이십니까?”
─잘 안 보여요
─밝기 최대로 해도 ㄱㅊ음
─밝기 좀 올려주세용
은우는 혹시 몰라 옵션을 불러냈다. 밝기를 최대로 해 보았지만, 광원이 눈 시리도록 선명해지기만 하고 세상 자체는 그다지 밝아지지 않았다. 광원이 밝히는 너비 역시 늘어나지 않았다.
“게임 특성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는 밝기를 기본으로 돌려놨다. 평상시에는 건드린 적 없는 옵션이라 약간 색다른 느낌이 든다. 손짓에 따라 들고 있는 램프의 불빛이 살랑살랑 흔들렸다.
참고로 램프 끄기는 달려 있는 핀 같은 걸 돌리면 가능했다. 실제 이 시대 때 이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기술력을 완전히 따라갔다면 게임하긴 또 불편했을 것이다.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럼 시작할까요.”
은우는 또각또각 걸음을 내디뎠다.
“이 파장은 아무래도 소리를 알려 주는 것 같습니다.”
천천히 걸으면 파장이 줄고 빠르게 걸으면 파장이 거세졌다. 거기에 일정 속도 이상으로 달리면 스태미나 칸이 생겨나며 달리기를 제한했다. 느리게 걸으면 걸을수록 스태미나는 빨리 찼다.
“길 유도를 굉장히 잘해 놨네요. 초반에 헤맬 일은 없겠습니다.”
가야 할 곳이 많아 보이지만, 은근히 적었다. 문을 잠가 둔다든가 짐을 쌓아 두는 식으로 길을 막아 버린 탓이다.
현실이었다면 치워 버린다는 수도 있겠으나, 이건 게임이었다. 들어 보려고 해도 꼼짝을 안 했다. 밟고 건너간다거나 좁은 공간을 통과한다거나 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투명한 막이 그를 가로막았다.
은우는 하는 수 없이 2층으로 올라가 카펫이 깔려 있는 복도를 걸었다. 장식이라곤 벽에 걸린 촛대가 다라, 제법 을씨년스럽다.
─엄청 음산하다
─와 벌써부터 무서움...
─시작도 안 했는데 쫄린다 진짜...
─켄님 바깥!
“네, 저도 봤습니다. 바깥에 불 하나가 켜져 있네요.”
은우는 검푸른 어둠뿐인 바깥 광경에서 노란빛 하나가 보이는 걸 확인했다. 이 저택에 접근해 있는 사람은 그와 마부뿐일 것이므로, 저 불빛은 아마 마부의 것일 터였다.
“마부겠죠.”
그는 정체를 예상하면서도 일단 창가에 다가가 그 불의 주인을 확인했다.
“끄아아아악!”
그리고 보았다. 미지의 무언가가 마부의 몸을 옭아매고 있는 것을.
“오.”
그것은 꼭 대략 둥그런 몸체에 새까만 섬유 같은 팔다리들을 수십 개 가지고 있었다. 둥근 몸체에도 섬유가 얼기설기 붙어 있어 매끄럽지 않고 울퉁불퉁했다.
색은 아마 검은색일 것이나, 잔등의 빛으로 인해 부분 부분이 금빛으로 번들거렸다.
마부가 떨어트린 램프는 광경의 단면만을 밝혔지만, 그래서 더 공포스럽다. 눈인지 입인지 모를 것들이 몸통 곳곳에서 송곳니 같은 것을 벌름거렸다.
─ㅁ머머ㅓ머임
─머먼데
─개징그럽네
─디자인 ㅈㄴ 잘했다
시청자들이 비명을 지르고, 은우는 저 장면을 만들어 낸 제작진의 상상력에 감탄을 토해 냈다. 무섭지만 잔인하진 않고, 다만 끔찍한 괴물의 식사를 표현하는 데 성공했으니 말이다.
“아악.”
마부를 옮아매어 둥근 몸체에 스며들도록 하던 그것의 눈 중 하나가 그를 보았다. 마부를 삼키느라 꾸준히 움직이고 있던 섬유 다리들이 일제히 멈추었다.
─ㅇㄴ
─이거 아무리 봐도...
─섬-뜩
숨막히는 정적 속에서 은우는 직감했다.
「‘로그랑’ 님이 ‘1,000원’ 투척!
형, 뛸 각이지?」
뛰어야 한다.
끄아아아아아!
괴물이 마부의 비명 소리와 닮은 소리를 내며 달려오기 시작했다. 섬유질 다리들이 움직이는 꼴은 꼭 지네를 보는 것 같다.
─뛰어어다
─달려어어어어
─빤스 벗고 뛰어!
─빤스런!!
“뛰고 있습니다.”
그가 있는 곳은 2층이지만, 저것이 그걸 못 뛰어넘을 것 같진 않았다. 은우는 빨리빨리 달렸다. 문제는 스태미나의 소모 속도였다.
은우는 어쩔 수 없이 주춤주춤 속도를 낮췄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문은 없었다. 있었다면 일일이 열어 보며 잠겼는지 안 잠겼는지 확인했어야 했을 것이므로 다행이고, 문이 없어 숨을 수가 없다는 점이 불행이다.
끄아아아아아아!
사사사사삭-
바퀴벌레 기는 모습을 소리로 바꾼다면 대충 이런 느낌일 것이다. 미지의 무언가의 달리기 소리가 계속해서 귀를 때렸다. 비명 소리는 덤이었다.
달리느라 달랑달랑 흔들리는 전등불은 밝히는 범위를 계속해서 뒤바꾼다.
─브금 개쫄려
─온다 온다 온다ㅏㅏㅏ
─뛰어~~~!!!
─다가오는 소리 봐 개 무섭네
“저거, 계속 비명 지르며 쫓아옵니까? 나중에 가면 귀 좀 아프겠는데.”
사람들은 난리였으나, 은우는 태연히 달리기만 했다. 다행히 코너를 돌았을 때 문 하나가 나왔다. 저택의 구조가 좀 이상하다 싶었지만, 일단 그 문밖에 길이 없었다.
“숨을 곳이 있겠죠.”
그는 문을 빠르게 열고, 들어가자마자 닫아 버렸다. 그러곤 방을 재빨리 훑었다. 정리를 위해 가구를 치워 버렸다는 건 참말인지 방은 텅 비어 있다.
유일하게 있는 가구는 장롱이었다.
“너무 뻔한데.”
너무 뻔하지만 아무리 봐도 거기밖에 숨을 데가 없다. 은우는 전등을 꺼 버리고 빠르게 장롱 안으로 들어갔다.
─오ㅐ이렇게 어두워ㅠ
─와 괴물 갈 때까지 여기서 대기타야함?
─여기가 더무서운듯;;
시청자들의 말마따나 장롱 속은 거의 완전한 어둠이었다. 램프가 그랬듯 게임적 허용으로 적당히 밝게 할 법한데도 그랬다.
그렇다고 들고 있는 램프를 켜자니 그건 또 바깥으로 불빛이 새어 나가 들킬 것 같다.
“…목소리 내는 건 가능합니까.”
─ㅖ
─아니면 플레이 하는 사람들 다 들켰음ㅋㅋ
─맨날 소리 지르잖아ㅋㅋㅋㅋ
─이거 하다가 운 사람도 있음ㅋㅋ
확실히 목소리를 크게 내도 파장에는 미동이 없었다. 다른 말로는, 위급한 순간에도 얼마든지 떠들 수 있다는 의미가 되겠다.
그나마 어둠 속에서 심심할 일은 없겠다. 은우는 ‘끄아아아!’ 하며 들려오는 비명 소리를 가만히 감상했다.
“지금도 안 무서운데… 나중에 가면 저 소리가 얼마나 귀찮을지…….”
─ㅋㅋㅋㅋㅋㅋㅋㅋ
─벌써 나중을 걱정하시는 분
─켄 심장은 안 뛴다는게 학계의 정설
─근데 이분 진짜 겁 없다
─왕은 위엄을 잃지 않는다 이거야~
“심장이 안 뛰면 죽습니다만.”
다행스럽게도 ‘끄아아아’ 소리는 금방 사라졌다. 장롱 뒤져 볼 생각은 아예 안 하는 모양이다.
“나름 튜토리얼이니까 쉽게 끝나는 것 같습니다.”
은우는 깎인 정신력을 힐끔 보았다. 녀석을 목격했을 때 깎이고, 쫒기면서 느릿하게 깎였다가 지금 다시 회복되고 있다. 속도는 스태미나가 차오르는 것보다 3배는 느리다.
“뭐라고 불러야 할지……. 이 뇌 수치, 잘 챙겨야겠습니다. 자칫하면 안 잡혀도 죽겠네요.”
─이성수치
─ㅋㅋ저것도 ㄹㅇ 귀찮지...
─이성수치다.
“아, 이성 수치라고 합니까.”
이성 수치, 이성 수치. 나름 입에 잘 붙는다. 은우는 어깨를 으쓱이며 장롱 문을 슬쩍 열었다. 기척으로 이미 알아챈 바지만, 역시나 바깥엔 아무도 없었다.
“이럴 땐 보통… 저택을 나가려 들 텐데.”
한데 과연 나갈 수는 있을지.
은우는 방을 둘러보고 출구가 들어왔던 길 하나뿐이라는 걸 확인했다. 다만 하나 달라진 게 있다면, 방에 장롱밖에 없던 아까와 달리 지금은 가구들이 생겼다. 의자나 침대, 아니면 위에 무언가를 올려 둘 수 있는 3칸짜리 서랍이다.
“오르골이 있네요.”
은우는 서랍 위 오르골을 들었다. 오르골 아래엔 쪽지가 있었다.
『아가씨, 아가씨가 부탁하신 걸 구해 왔어요. 오르골의 윗부분을 최대한 돌리고 내려놓으면 그 후부터 노랫소리가 크게 울려 퍼질 거예요. 이게 과연 아가씨께 도움이 될진 모르겠지만… 저택 곳곳에 두었으니 필요할 때마다 쓰세요.』
은우는 슬쩍 오르골을 살펴보았다. 과연 돌리는 부분이 있었다. 위쪽에 달린 인형 부분이었다.
“대충 유인할 때 쓰는 건가 봅니다.”
살펴보는 걸 마치니 아이템 창에 오르골이 추가되었다. 이제 은우가 가진 아이템은 램프와 오르골 하나다.
『아이콘을 누르면 해당 아이템을 들 수 있습니다. 한 번 더 누르면 보관됩니다.』
시야의 한구석을 차지한 ‘사용 가능한 아이템 목록’은 그렇게까지 시선을 빼앗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터치하기 딱 좋은 곳에 있어 위급한 순간에도 누르기 좋았다.
“이런 식으로 보관하는군요. 일단 집어넣겠습니다.”
은우는 오르골 아이콘을 클릭했다. 손에 든 오르골이 뿅 하고 사라졌다. 다시 아이콘을 누르면 손에 다시 생겨났다. 꽤 괜찮다.
그는 오르골을 다시 집어넣고 그것 외의 물건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역시나, 서랍 안에 무언가가 더 있었다. 아이템은 아니고, 어디 일기장에서 찢어져 나온 듯한 종이 한 장이었다.
『XXXX년 8월 1일
오늘도 어김없이 그것이 나타났다.
왜 그것이 보이는지는 알 수 없다. 내게만 보이는 이유도 모르겠다.
아버지께 겨우 고해 보아도 엄한 소리 말라는 호통만 돌아올 뿐이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일지를 획득하셨습니다.』
“이건… 스토리 관련인 것 같습니다. 아직은 특별히 추측되는 게 없네요.”
번역 창을 끄자 몸이 멋대로 움직이며 품속 수첩을 꺼냈다. 접힌 페이지는 수첩 한쪽에 끼워졌다. 아마 언제든 펼쳐 볼 수 있을 것이다.
“방에서의 볼일은 다 끝난 것 같습니다. 나가 보죠.”
은우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어 보았다. 슬쩍 내민 고개에는 아까와는 다른 복도가 비쳐진다. 창문이라곤 일절 없는, 이리저리 배배 꼬여 있는 복도다.
그는 천천히 복도를 살펴보았다. 영락한 듯한 색감은 여전해서 전체적으로 을씨년스럽다. 더구나 색감과 별개로 광원 자체도 다른 게임에 비해 확연히 적었다.
그가 든 전등 외의 발광체라 하면 복도 중간중간 걸린 촛대밖에 없는 것이다. 그마저도 수가 적은 탓에 시야 대부분은 검은 얼룩으로 채워져 있다.
“진짜 어둡네요.”
램프를 끈 채로 보면 그냥 암흑이다. 불을 켜도 서너 발짝 앞까지만 밝혀지는 게 다긴 하지만.
은우는 전 삶에서 암흑 안개에 갇혔던 때를 생각했다. 그땐 불을 켜도 사방이 새까맸으므로, 바닥이 밝혀지기라도 하는 지금이 좀 더 나은 것 같다.
“음, 이제부터 뭘 해야 할지 딱히 알려 주진 않네요. 그냥 길 찾아서 나가면 됩니까?”
─ㅖ
─이번 쳅터는 미존 피해서 나가는 길 찾으심 됨;;
─튜토리얼 격이라서 좀 쉬워용
「‘아서팬드래건’ 님이 ‘1,000원’ 투척!
1챕터는 그냥 아까 그 괴물 피해서 나가는 길 찾으시면 됩니다」
“그렇군요. 후원 감사합니다.”
시청자들이 있는 건 이래서 좋다. 그는 또각 소리를 내며 몸을 곧추세웠다. 램프가 살짝 흔들릴 때마다 어둠이 한 발짝 물러나고, 한 발짝 다가온다. 복도의 촛대들은 아직 일렁일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럼 이제, 탈출해 봅시다.”
은우는 램프 하나에 의지한 채 걸음을 내디뎠다.
본격적인 공포 게임의 막이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