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건우는 동생이 꺼내 든 게임을 보며 기시감을 느꼈다. 곧 떠오른 건 한때 친구에게 게임을 빌렸던 순간이다. 그때 그 게임이다.
“그, 별로면 안 해도 돼.”
여기서 또 볼 줄 몰랐던 탓에 조금 당황했던 걸 싫다고 오해한 모양이다. 건우는 눈치 보는 동생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아냐, 하자.”
그때의 그나 지금의 그나. 동생과 게임 한번 하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다. 단지 은우가 방송에서도 게임을 하니까 그랑도 하면 질리지 않을까 싶었던 거지.
“근데 괜찮겠어?”
“뭐가.”
“방송에서도 게임할 텐데… 질리잖아, 그러면.”
“별로. 난 괜찮아.”
그래도 좀 힘들 텐데.
건우는 잠시 고민하다가 금방 꾀를 내었다.
“그럼 이건 어때?”
“……?”
“나, 방송 출현 해도 상관없는데.”
▣ 161. 웃어? 지금 웃었어?
은우는 가죽끈 형태의 콘솔, 폼리콘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때에 따라서 직선의 막대도 되고 고리도 된다는 그것은 피트니스 어드벤처에서 가장 중요한 장비였다.
피트니스 어드벤처 5가 2043년에 나온 이후, 다음 넘버링이 지금껏 나오지 않는 이유기도 하다. 넘버링 바뀌는 기준이 장비가 바뀔 때인데, 5에 이르러선 더 이상 추가할 기능이 없어진 거다.
덕분에 확장팩만 나오고 더 이상의 시리즈는 없다 한다.
“오, 뭐야. 신기해.”
“이런 것도 있네.”
물론 두 사람은 그 사실에 대해 몰랐다. 한쪽은 VR만, 한쪽은 소설파인 형제에겐 이런 게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그 게임’
─어드벤처ㅋㅋㅋㅋ
─웃음벨 예약
─벌써부터 웃기냐ㅋㅋ
─ㅋㅋㅋㅋㅋㅋ
─누구임?
「‘형제가쌍으로’ 님이 ‘1,000원’ 투척!
헬멧 쓰고 잇누;;;」
─ㅋㅋㅋㅋㅋㅋㅋ
─헬멧아웃!
─개웃겨 헬멧 형제ㅋㅋㅋ
─물하고 수건 챙기세요~
한쪽에 띄워 둔 홀로그램이 사람들의 채팅을 주르륵 올렸다. 형이 이왕 같이 게임하는 거, 방송으로 내보내는 건 어떻느냐 제의한 것을 시작으로, 과감히 방 공개를 결정한 은우 덕에 생겨난 것이다.
참고로 채팅이 말해 주듯 은우랑 건우 둘 다 헬멧을 썼다. 건우는 헬멧 쓰는 것마저 즐거워했다.
“너도 처음 봐?”
“…난 대부분 VR만 하니까.”
헬스장에도 비슷한 장치가 있긴 한데, 이런 장비를 쓰진 않았다. 그건 운동을 하면 경험치를 획득했다는 둥 레벨 업을 했다는 둥, 사람 기분 좋게 해 주는 정도에 그쳤다.
그들은 게임을 시작하기에 앞서 폼리콘을 조몰락거렸다. 폼리콘의 기본 형태는 고리 형태로, 조이거나 당길 수 있었다.
“은근 단단한데, 이거?”
“그래?”
건우는 힘을 제법 주어야만 안쪽으로 구부러지는 폼리콘을 묘한 눈으로 응시했다. 동생이 너무 쉽게 조여서 모르고 만만하게 본 모양이다.
─망함의 예감
─형님 도망쳐ㅋㅋㅋ!
─형 맞아? 왜이렇게 작음?
─형님 지옥문 여시네ㅋㅋㅋ
「‘쇼킹킹’ 님이 ‘1,000원’ 투척!
다른게임 다 납두고 ‘그 게임’할 때 형 초대하는 켄 인성;;」
─아ㅋㅋㅋ켄만 했으면 노잼일 텐데 게스트가 있어서 꿀잼일 듯ㅋㅋㅋㅋ
─형님 도망가십쇼
“어, 채팅 창 반응이 안 좋은데? 다들 도망가라는데? 괜찮은 거야, 이거?”
“…글쎄?”
안타깝게도 그들은 이 게임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건우는 예전에 친구에게 추천받은 적이 있지만, 은우랑 할 타이밍을 못 잡은 까닭에 그대로 돌려줬고, 은우는 처음부터 몰랐다.
다만 채팅 창이 평소보다 더 빨리 올라가는 걸 보아 왠지 오늘 게임,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일단? 해 보겠습니다?”
건우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일단 게임을 켰다. 부러 밝게 유지하는 말투는 억지로 한 것치곤 그 자신에게 가장 도움이 된다. 무언갈 잊는 것에도, 다짐을 되새기는 것에도.
“내가 먼저? 네가 먼저?”
2인용도 가능하나 그들은 그냥 1인용으로 돌아가면서 하기로 했다.
“형부터 해.”
시간도 늘릴 겸, 형제답게 상대가 못하면 옆에서 놀려 주기 위함이다.
“캐릭터 성별은… 남성. 나이는…….”
“프라이버시 해 줄까?”
“굳이?”
건우는 27이란 숫자를 입력했다. 채팅 창이 나이 논란으로 도배되었다. 대체로 ‘형님이 27살이면 켄은 그 이하일 테니 진짜 20살인 거 아니야?’ 하는 논란이다.
“평소 운동량은… 별로 안 하는데.”
그걸 모르는 서건우는 시작하기에 앞서 기본 설정부터 체크했다. 폼리콘과 마찬가지로 해당 게임 전용 스티커를 몸에 부착하란 메시지가 떠올랐다. 화면에서 알려 주는 대로 몇몇 부위에 스티커를 부착하자 로딩이 잠깐 진행됐다.
『키: 180.93
몸무게: 74
세부 사항 펼치기
다음 ☜』
“형, 밥 좀 먹어.”
“난 충분히 많이 먹고 있는데…….”
─180??
─180도 켄이 옆에 있으면 쪼꼬미네....
─아니 180에 74가 말이 됨?
─진짜 마르셨다....
─켄도 궁금한데
“사람들도 말랐대.”
“아니, 마른 건 맞는데…….”
건우는 무의식적으로 배를 매만졌다. 가는 팔다리에 비해 배는 볼록하다. 마른 비만이었다. 그의 양심이 콕콕 찔렸다.
“넌 몇인데.”
“백십.”
건우의 고개가 바로 돌아갔다.
“백십?”
─??
─와,,,,
─그렇게까지 안 나갈 것 같은데?
─근돼
─197의 위엄이다..
─저 키면 근데 100키로 쌉가능이지
시청자들과 건우는 똑같이 놀랐다. 다른 거라면 그는 동생의 몸을 코앞에서 살필 수 있다는 점이다.
동생이라서 인식하지 못했을 뿐, 같은 남자가 봐도 위압적인 덩치가 눈에 들어왔다. 떡 벌어진 어깨라든가 티셔츠 아래로도 보이는 근육이라든가.
“그럴 만하네…….”
현실에서 농구 선수와 마주치면 보통 저렇게 보이지 않을까? 그는 괜히 초라해졌다. 분명 그의 키가 작은 편은 아닌데, 동생 앞에 서면 형으로서의 체면이 바닥을 파고 들어갔다.
“너, 왜 내 체격까지 다 가져갔냐.”
“…그러게.”
장난 삼아 한 말에 은우가 더 울적해했다.
딱히 건강 얘기한 건 아니었는데? 건우는 생각지도 못한 반응에 당황했다. 동생이 제 덩치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는 줄 모르는 형의 실수였다.
하여튼 그는 신체 스캔 이후, 게임이 시키는 대로 스트레칭을 했다. 스캔으로 확인할 수 없는 유연성 등을 확인하는 작업이다.
“왜… 기본 스트레칭만 했는데도 힘들지……?”
“운동 좀 해.”
“네가 뭘 몰라서 그래. 퇴근하면 침대가 최고야.”
─ㅋㅋㅋㅋㅋㅋㅋ
─형님 급 친밀도 상승
─그치... 퇴근하면 침대가 짱이지....
─체력고갈
─켄형님 비수랑 수준 똑같누
─나도 저럴 것 같아서 뭐라 말 못하겠네
기본 스트레칭만 했음에도 건우는 벌써 지친 얼굴이다. 심지어 거기에 동조하는 시청자들이란.
그 모습을 보며 은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콜라 가지고 그에게 뭐라 할 게 아니었다.
“자세.”
그는 현관에서 가져온 구둣주걱으로 삐뚤어진 형의 몸을 꾹꾹 눌렀다. 반대쪽보다 살짝 내려간 팔 아래쪽을 톡톡 위로 치면 반사적으로 팔이 올라갔다.
“고오맙다.”
“별말씀을.”
“…칭찬 아닌 거 알지?”
“알아.”
“…….”
아무리 대화에 약해도 농담과 진담, 칭찬과 아닌 것 정돈 구분할 수 있다. 은우는 어깨를 으쓱였다.
헬멧 때문에 형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으나, 좋지 않을 거란 건 쉽게 알 수 있다. 다만 그게 그의 과거 때문에 나빠진 게 아니라면 그걸로 충분하다. 은우는 형이 그러듯 밤새 나눴던 이야기가 없던 것처럼 굴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렇게 보니까 켄 왜이러케 어려보이냐
─평소의 과묵함 어디갔어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찐형제ㅋㅋㅋ
─개 얄밉다ㅋㅋㅋㅋ
시청자들이 형제의 투닥거림에 웃는 사이 오프닝 무비가 시작되었다.
[아가… 사랑스러운 내 아가…….]
화면에 화려한 르네상스풍 침대가 비쳐졌다. 침대에는 아름답지만 병색이 완연한 여성이 누워 있다. 그 곁에는 예닐곱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가 침대에 앉아 있었는데, 여인의 손이 그 아이의 뺨을 쓰다듬었다.
“오… 만화 같다.”
“그러게.”
카툰 렌더링 기법을 사용한 덕에 그건 꼭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 같다. 은우는 앉아서, 건우는 폼리콘을 들고 서서 화면을 지켜보았다.
[앞으로 많은 고난과 시련이 널 기다리겠지만… 엄마는 더 이상 널 지켜 주지 못할 거란다…….]
“아, 뭐야. 시작부터 어머니 돌아가셔?”
[강해져야 한다……. 엄마가 없어도 이 땅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아이를 쓰다듬던 여인의 손이 아래로 내려갔다. 이번에 스치는 것은 아이의 목에 걸린 펜던트다.
“저거 폼리콘 아냐? 혁대처럼 말아 놨네.”
“그러게.”
[폼리콘이 널 도울 게야……. 그러니 꼭… 꼭… 살아남으렴…….]
여인의 손이 끝내 떨어지고, 아이가 깜짝 놀라 여인을 끌어안았다. 아이의 입이 벙긋거리자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이들이 빠르게 달려왔다. 카메라 워크가 점차 멀어지더니 가장자리부터 검게 물들었다.
화면이 다시 밝아졌을 땐 아이가 정원에 혼자 있는 상태였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해요? 엄마…….]
아이의 얼굴이 울 것처럼 일그러졌을 때, 목에 걸린 펜던트가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그러곤 스르륵 풀려났다.
허공에 둥둥 뜬 가죽띠─폼리콘이 한붓그리기로 얼굴을 형상화했다.
[소란스러워서 잠을 잘 수가 없군. 누가 내 잠을 깨우는 게냐?]
폼리콘의 음성이 울리자마자 건우는 푸흡 웃었다. 중후한 중년 남성의 음성이었던 탓이다.
─ㅋㅋㅋㅋㅋㅋ
─목소리 대반전
─ㄴㅇㄱ
“…저게 웃겨?”
물론 저런 것─외형과 내형의 갭─에 너무 익숙한 은우는 건우가 웃는 포인트를 알 수 없었다.
[넌… 어린애군.]
아이에겐 음성이 없던지라, 동작이나 표정으로 반응을 보였다. 지금은 대충 ‘나는 굉장히 놀랐고 넌 누구냐.’ 정도로 보인다.
[하아… 난 폼리콘이다. 그래, 맹약에 따라 순두부 가문의 가주에게 내려지는 기물……. 잠깐, 그렇다는 건 지금 순두부 가문의 당대 가주가 너란 이야긴가? 허어.]
“잠깐, 왜 순두부 가문이야.”
“아까 이름 입력해서 그런 거 아닐까.”
“이래서 성 따로 이름 따로 한 거였어?”
참고로 그들은 이름을 성─형 닉네임, 이름─은우의 예명으로 결정했다. 즉, 한국식으로 부르면 순두부 켄이고 미국식으로 부르면 켄 순두부였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순두부 가문ㅋㅋㅋㅋㅋㅋㅋ
─미쳤나봐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과몰입 방지턱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몰입 따위 절대 용납하지 않게 된 이름에 건우의 얼이 빠졌다. 그 사이 폼리콘은 아이가 혼자 살아남을 수 있도록 도와주기로 타협을 보았다.
[나는 혼자서 특별한 힘을 발휘할 순 없다. 그렇지만 순두부 가문의 핏줄과 함께라면 다르지. 나를 링폼으로 바꾼 후, 평행되게 잡아라.]
이름 작명 순간이 아무리 후회돼도, 이미 엎은 물이었다. 건우는 일단 화면에서 가리키는 자세를 따라 했다.
“이렇게 잡는 거 맞지?”
“어.”
건우가 어색하게 폼리콘을 들었다. 화면 한쪽에서 그가 해야 할 동작을 알려 주었기에 자세 잡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다.
[강해지려면 체력을 길러야 하지. 자, 달려라.]
“맞는 말이긴 한데, 너무 직설적인 거 아냐?”
“운동 두고 돌려 말할 것도 없잖아.”
“그건 그런데.”
─이제부터 못 쉰다 이말이야~
─봉지 주니하셔야하는 거 아님?
─형님 오늘 꿀잠자실듯
건우는 투덜거렸지만, 은우가 보기엔 나쁘지 않았다. 직설적이건 은유적이건, 단순히 목표치를 설정해 주는 정도가 아니라 게임과 운동을 자연스럽게 접목한 형태가 아닌가.
건우가 투덜거리면서도 어떻게 튜토리얼 부분을 진행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다만 게임이 기본적으로 조깅하듯 달리면서 이런저런 자세를 취하는지라, 건우의 호흡이 가빠지는 건 금방이었다.
[자비도 없는 인간들이로군. 어린아이가 무엇을 할 수 있다고 벌써 견제들인지. 그렇지만 걱정하지 마라. 내가 너를 가호하니. 피트니스 스킬에 대해 알려 주마.]
“잠깐만. 이거, 몬스터도 나와?”
“그러네.”
“아니, 왜 운동으로 몬스터를 잡아!”
“…운동하는 게임이니까?”
─형님 벌써 죽어나가신다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이번 방송 레전드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은우는 형에 대한 예우로 나름 대답해 주며 화면을 보았다.
말이 피트니스 스킬이지, 그냥 스쿼트 같은 피트니스 동작을 시키는 것에 불과했다. 자세가 정확할수록, 고강도 운동일수록 대미지가 높게 들어가는 점에서 제작자의 사악함이 느껴졌다.
“와, 이거 뭔데 힘들어?”
“…그게 힘들어?”
“네가 한번 해 봐!”
은우는 어깨를 으쓱였다.
“아직 20분도 안 됐는데, 이제 내가 해?”
건우는 입을 다물었다. 자존심이 있지 한 시간도 못 채우고 나가떨어질 순 없었다. 심지어 모르는 사람들까지 엄청나게 지켜보고 있는 상황에서.
그렇게 건우는 스스로를 지옥에 떨어트렸다.
* * *
“아오!”
“형, 자세.”
“알아!”
은우는 숨을 헐떡이는 형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설정이나 튜토리얼 부분 포함해서 시작한 지 아직 한 시간도 안 됐다. 그런데 벌써 지치면 그건 너무 문제 있지 않은가.
“야,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너 탈출 못 하기만 해 봐!”
─형님 대극노ㅋㅋㅋㅋㅋ
─급발진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형님’ 님이 ‘1,000원’ 투척!
봉지준비할까요?」
참고로 현재 스토리는 아이가 소년─시작 설정을 남자로 했다─이 된 후, 왕성을 탈출할 차례다. 그동안 왕성에서 살아남기 위해 두 개의 에피소드를 거치기도 했다.
어찌나 흥미진진한지, 건우는 욕하면서도 ‘진행하기’ 버튼을 눌렀다.
“나오지 마, 나오지 말라고! 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의 탈출을 막는 왕의 암살자─몬스터가 나올 때마다 피트니스 자세를 취해야 했기에, 건우는 암살자가 보이자마자 비명을 질렀다.
“강… 추천해 준 놈, 돌아가서 보자!”
차마 동생에게 욕할 수 없었던 그는 게임 추천한 친구를 불러 젖혔다.
지금 하는 게 그 친구 추천 때문은 아니지만, 애초에 이런 게임을 추천해 줬던 것부터가 이런 상황을 노리고 한 것 아니겠는가.
물론 시청자들은 추천한 이가 은우일 거라 생각했으므로, 은우의 명복을 빌었다. 역으로 ‘형님이 지지 않을까?’ 하는 사람도 많았고.
“아오! 작작 나와!”
“운동 좀 해, 형.”
“시끄러!”
운동 앞에서 죄책감은 없다. 말을 튼 이래 은우에게 욕설을 내뱉은 적도, 이유 없이 화낸 적도 없는 건우가 왁왁 언성을 높였다.
은우는 그게 당황스러우면서도 기분이 나쁘진 않아서 그냥 지켜만 보았다. 아무렴 이렇게 화낸다는 건 적어도 그가 무섭진 않다는 의미가 아니겠나.
“아, 왜 이거야! 괜히 랜덤했어!”
그사이, 나온 몬스터를 죽이기 위한 피트니스 기술로 스쿼트가 걸렸다. 건우가 비명을 지르면서도 자세를 갖췄다. 온갖 불평불만을 토해 내면서도 꿋꿋이 움직이는 꼴이 보는 입장에선 우습기 짝이 없다.
은우는 구둣주걱으로 형의 무릎을 톡톡 쳤다.
“발끝보다 앞으로 나가면 안 돼.”
“넌 가만히 있어!”
「‘ㅇㅇ’ 님이 ‘1,000원’ 투척!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웃어? 지금 웃었어? 누가 웃었어!”
─쟤가 웃었습니다 형님ㅋㅋㅋㅋ
─형님 화풀이 중
─지옥on
─저거 ㅈㄴ 괴로운 자센데ㅋㅋㅋㅋㅋ
「‘ㅇㅇ’ 님이 ‘1,000원’ 투척!
회원님 대충하시면 더 해야합니다 한 번 할 때 제대로 하죠」
“후원 진짜아!”
후원으로 골리는 시청자에 건우는 악을 질렀다. 그게 너무 우스워서 은우도 설핏 웃고 말았다. 평소처럼 입꼬리만 살짝 올리는 식이 아니라, 온전히 소리 내어 웃는 소리였다.
방송에서 듣기 힘든, 아주 희귀한 웃는 소리에 채팅 창이 가장 먼저 반응했다.
─헐 지금 켄 웃은 거임?
─ㅁㅊㅠㅠㅠㅠ오빠 한 번만 더웃자
─회원님 한 번만 더 갑시다
─켄 웃는 거 처음 아님?
“너, 지금 웃었지.”
“안 웃었는데.”
“뻥치지 마! 시청자들이 웃었다잖아!”
동생이 편하게 웃는 걸 처음 들은 것이나, 과한 운동에 가출한 정신은 그걸 몰랐다.
건우는 분개한 얼굴로 폼리콘을 은우에게 던졌다. 힘을 세게 실어 던진 것은 아니었기에─사실 그럴 힘도 없었다─은우는 쉬이 잡아챘다.
“네가 해!”
“네에.”
기분 나쁘긴커녕 그것도 웃겼다. 은우는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꾹 누르며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건우가 엉금엉금 기어 소파 위로 대신 올라갔다. 그마저도 앉는 게 아니라 나자빠지는 모양새였다.
“흐어, 죽겠다.”
─진짜 개꿀잼이다ㅋㅋㅋㅋ
─아이고 형님 죽는다아아아
─이게...게임이다.....
「‘회원님’ 님이 ‘1,000원’ 투척!
얼마 안 남았습니다 10분만 더 합시다」
“그만, 그만……!”
─형 헬멧 너머로 형의 표정이 보여요...
─회원님 한 세트만 더 갑시다
─더더 빠르게~!
─순두부의 절규
누가 보면 5시간 운동한 줄 알겠다. 은우는 형을 보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가 콜라 중독이면 건우는 운동 부족이다.
은우는 건강을 유념해 가면서 콜라를 마신다는 점에서 건우가 더 안 좋다.
“물 갖다줄까.”
“아니이.”
그는 말꼬리 늘리는 형을 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저건 시간이 답이다.
은우는 형의 계정을 이어받았다. 다만 잠깐 종료했다가 다시 켜면 스티커를 붙이라는 안내문을 띄워 준다.
“형, 스티커.”
“네가 떼.”
아직도 몸을 움직이기 싫은가 보다. 하는 수 없이 그는 형을 이리저리 뒤집어 가며 스티커를 다시 회수했다.
처음엔 가만히 있던 건우가 마지막에 가서 입을 열었다.
“너무 쉽게 뒤집히니까 좀 짜증 난다…….”
─ㅋㅋㅋㅋㅋㅋㅋ솜털
─톡 치면 부러진다는게 헛말이 아니었다
─그 모습 가히 깃털과 같았다
안 그래도 아픈 부분을 시청자들이 들쑤셨다. 건우는 울컥해서 은우와 자신의 팔뚝을 번갈아 보았다. 그게 꼭 그 둘을 비교하는 모양새였기에 시청자들은 또 한 번 자지러졌다.
참고로 두 사람의 팔뚝은 당연하게도 심한 차이를 냈다.
“형이 가벼워서 그래.”
“네가 힘이 센 거야! 내가 가벼운 게 아니라!”
안타깝게도 은우에게 저 말은 너무 익숙한 것이었다. 주로 희수에게 키를 언급할 때 들은 말이다.
그는 입술을 삐뚜름하게 올리며 부정했다.
“형이 가벼운 거야.”
건우가 울컥한 표정을 했다. 물론 헬멧에 가려져서 드러나진 않았다.
“아니라니까!”
울분에 가득 찬 목소리에는 더 이상 서로 간의 불편함이 없다.
결국 은우의 입에서 바람 빠지는 듯한 웃음소리가 재차 흘러나왔다.
─아ㅠㅠㅠ 형이랑 합방하니까 엄청 웃는 거 봐ㅠㅠ
─형님이랑 자주 합방하자
─아....오늘방송 레전드....
─이거 유어튭에 올라오는 거 맞죠?
그 시점에서 건우는 드디어 제정신으로 은우의 웃음을 들었다. 헬멧에 잠긴 입술이 벌어졌다가 꽉 물렸다.
“그럼,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그래, 이거면 됐다.
그 누구도 모를 도덕적 문제 따위에 동생을 상처 입히는 것보단 이게 더 나아.
“너, 왜 이렇게 쉽게 해!”
건우는 그만의 문제를 삼키고 동생의 방송을 도왔다. 아무도 그가 삼킨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래도 좋았다.
서로에게 고비였던 것들이 무너져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