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화
은우는 먼저 잠든 형을 침대에 눕혔다. 침대에서 자라고 했는데도 고집부리며 소파에서 잠들어 버려, 그냥 잘 때까지 기다렸다가 냅다 옮겨 버린 게 지금이다.
몸도 약한 사람이 쿠션감도 별로 없는 소파에서 자면 어쩌자는 건지 모르겠다.
그는 커튼을 치고 등까지 전부 끈 후, 거실로 나왔다. 거실 한쪽의 통유리창 너머로는 해 뜨는 게 보인다. 세상이 금빛으로 물들었다. 선호하지 않는 순간이다.
은우는 미간을 살짝 좁히며 소파에 앉았다. 그러자 발 뒤꿈치에 뭐가 닿았다.
그는 슬쩍 고개를 내렸다. 형이 들고 온 조그만 가방이 보였다.
어쩌다 열린 가방 사이로 튀어나온 건 햇빛을 받아 연녹색으로 빛나는 무언가와 담뱃갑이다.
연녹색은 뭔지 모르겠지만, 재질상 천으로 만든 뭔가 같고, 담뱃갑은… 다소 충격적이다.
형이 담배를 피웠던가? 한 번도 담배 피우는 걸 본 적이 없어서 몰랐다. 담배 냄새야 탈취제 한 번이면 사라지는 세상이니 못 맡을 법하다만.
은우는 그것을 끔뻑거리며 내려보다가 호기심에 갑을 주워 들었다. 그러곤 갑을 슬쩍 열어 보았다. 많았다. 하나 사라진다고 해서 티가 날 것 같진 않다. 걸린다고 해도 혼나진 않을 거다.
담배를 피우면 상념에 잠기기 편해진다던가. 누가 생각이 잘 안 될 땐 담배 한 개비 피우면 어떻게 막힌 게 풀린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는 주워들은 말을 토대로 담배 한 개비를 슬쩍 훔쳤다. 법적 성인이지만 술은 못하고, 담배는 또 해 본 적 없는 이의 아주 소소한 절도였다.
그는 그것과 집에 있는 라이터─라이터가 없어서 요리용 토치를 챙겼다─를 챙겨 테라스로 나갔다. 마당과 연결된 나무 테라스는 티 테이블에 앉으면 해돋이 구경하기 딱 좋다.
물론 은우는 해돋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으므로, 갖고 나온 담배나 그의 잠을 방해한 고민에 집중했다.
당연하지만 고민의 대상은 형이다.
일단 그가 생각한 최악의 상황은 피해 갔다.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형은 그를 어떻게든 이해해 보려는 모양이다. 태도로 보아 이해하는 건 실패한 모양이지만.
하기야 미친 것 같을 거다. 환생이라든가, 전생 전 삶이라든가. 거기에 그가 용납할 수 없는 행적들까지.
그렇지만 이왕 듣게 된 거 형이 믿어 줬으면 좋겠다. 이해하지 못해도 납득해 줬으면 좋겠다. 망상으로 여기고 그를 다독이며 병원으로 이끈다는 등의 결말은 배척당한 것만큼이나 기분 좋을 것 같진 않으니까.
근데 이미 병원 다니고 있는데 더 다닐 수가 있나……?
은우는 그 부분에서 잠깐 샛길로 샜다가 다시 본고민으로 돌아왔다. 우울함까지는 아닌데, 묘하게 울적하다.
그건 희수에게 털어놓았던 때처럼 시원한 느낌이 들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말한 후에도 불안함이 잔존해서인지.
은우는 믿는다고 말하던 형의 얼굴을 떠올렸다.
형, 나는. 나는 믿어 주지 않을 걸 걱정한 게 아니야. 감당하지 못하고 멀어질 걸 걱정하는 거지.
차마 하지 못한 말이 공기에 이울었다. 속이 텅 빈 듯하다가도 꽉 막힌 듯 답답했다.
은우는 참다못해 토치로 담배에 불을 붙이려 했다. 당연하지만, 안 붙었다. 담배를 피우며 답답함도 흘려보내려던 계획이 망가졌다.
“이렇게… 하는 게 아닌가.”
성적이 안 좋았을 뿐, 일탈 한 번 해 본 적 없는 이는 담배 피우는 방법을 몰라 잠시 쩔쩔맸다. 필터라도 제대로 맞춘 게 다행일 지경이다.
그러다 그는 VAV에서 담배를 피우던 테일러를 간신히 떠올렸다. 여러모로 VAV에서 도움을 받는다.
그는 그녀를 따라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여 보았다.
스읍. 긴장에 따라 들이켠 숨은 담배 연기까지 입안으로 끌고 왔다. 경험자라면 거기서 숨을 삼키지 않고 내뱉었을 테지만, 처음이었던 은우는 무심코 삼켜 버렸다.
폐까지 연기가 직통으로 연결된 것처럼 그 사이 기도가 매캐함으로 가득 차 버렸다.
“─!”
은우는 쿨럭거리며 기침을 내뱉었다. 폐에 연기가 벌써 꽉 들어찬 느낌이었다.
그는 서둘러 담배를 버리고 발로 비벼 껐다. 그 순간에도 기침은 계속해서 나왔다. 눈가에 눈물이 맺히기 직전이 될 정도로 독하다.
대체 이걸 왜 피우는 거야. 이런 걸 피우면서 생각을 이어 나갈 수 있다고? 초인인가? 현대인들은 사실 그보다 더 막강한 존재였던 건 아닐까?
“컥, 컥.”
은우는 연신 기침하며 명치 부근을 두드렸다. 생각이 잘되긴 무슨, 다 날아가 버렸다. 진지함도, 울적함도 마찬가지다. 속이 다른 의미로 답답해졌다. 그것도 폐 있는 쪽이.
그는 고개를 저으며 술에 이어 담배마저 질색하는 대상에 넣었다. 진짜 저걸 둘 다 하는 인간들을 이해할 수 없다. 미친 것 같다.
담배의 쓴맛을 본 사회 초년생(20세, 남)은 결국 고민에 실패하고 아침 바람만 맞고 돌아왔다. 담배는 피울 게 못 된다는 교훈과 함께.
기침은 잠들기 전까지 계속 나왔다.
▣ 160. 그 게임 칩과 게임기
건우는 낯선 천장을 가만 보다가 이윽고 깨달았다. 고집 센 동생이 기어코 그를 옮긴 모양이다.
그는 혀를 차면서도 상체를 일으키진 않았다. 정리해야 할 생각이 너무 많아서 아직 일어났다는 티를 내고 싶지 않았다.
일단… 어제 들었던 이야기들, 그게 진짜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것의 진위 여부가 어찌 되었든, 편견 없이 보면 아귀는 얼추 맞았다. 갑자기 태도가 돌변한 것도, 그가 보기에 얌전한 동생이 유도부 선배들을 한 번에 이겨 낸 것도…….
아마 맞을 거다.
「혼자 남겨지는 게 너무 싫었어. 마지막까지 혼자라는 게 싫었어. 그래서 그냥, 거짓이라도 좋다는 마음으로 내 목을 잘랐어.」
건우는 동생이 했던 말을 곱씹었다. 그 어떤 사람도 그런 마음으로 스스로의 목을 자르진 않는다. 하면 너는 얼마나 벼랑 끝에 내몰려 있었기에 그런 선택을 했을까.
건우는 차라리 그게 거짓이길 바랐다. 고독을 참지 못해서 자살을 택한 게 동생이 겪은 인생의 끝이 아니길 빌었다. 전부 망상이라고, 편집증이라고.
그렇지만 그것이 사실이건 편집증에서 비롯된 망상이건, 달라질 게 있을까?
은우가 진실이라 믿는다면 그 순간부터 그 말들은 진위 여부에 관계없이 은우에게 한해 진짜가 된다. 더구나 망상이라고 해서 그 처참함이 사라지나? 그것도 아니다.
그 애가 그걸 진짜 겪은 것도 비참하고, 그걸 망상으로 만들어 냈다고 해도 비참하다.
결국 허실을 판가름하려는 것 또한 자기 위안이었다. 그냥 그의 마음이 편해지기 위해서 하는 가정이란 말이다.
결국 이것의 정위를 고민하기보단 다른 걸 생각하는 게 옳다. 가령, 그가 미뤄 뒀던 행적에 대한 고민이라거나.
그는 신음을 흘렸다. 분명 책 속 인물의 행적은 과하다뿐이지 지탄받을 정도로 사악하진 않았다. 선도, 악도 아니지만, 굳이 고른다면 선 쪽에 가까울 수준이라고 할까.
배경이 전쟁터임을 고려하면 그건 분명 대단한 일이다. 아마 대단한 일일 거다. 사람이 매일같이 죽어 나가고, 도덕이 무너진 상황에서도 최소한의 선은 지킨 셈이니까.
그렇지만 그렇다고 살인이 정당화되나?
대부분 본인의 생존을 위해서였고, 쾌락을 위해서 저지른 것이 없다고 해도, 작전의 성공을 위해 민간인의 희생마저 감수한 적이 있다면 그건 악인이 아닌가?
물론 상황도, 사람들의 생각도, 법도 다르단 걸 안다. 그러나 마음이란 건 원래 이성을 따르지 않는 법이다.
만약 은우의 말이 진짜라면, 정말로 그런 삶을 살았다면. 그는 은우를… 그 행위를… 그 모든 걸 용납할 수 있을까? 이런 일을 벌인 사람을 그는 옹호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그가 평생 유지해 온 가치관에 따르면 정당화되지 않는 행적들이었다. 차마 받아들이기 힘든, 그런.
그렇지만 고작 그런 이유로 은우의 이야기를 편집증처럼 여길 수도 없었다. 은우가 정신병을 앓고 있다 믿고 싶지 않은 것도 있지만, 무의식적으로 그런 느낌이 들었다. 이건 ‘망상’이나 ‘병’ 따위로 치부될 게 아니라고.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는.
동생을, 그 선택을, 동생이 했다고 말하는 그것들을.
이해해야, 아니, 할 수가, 그럴 수가. 도저히.
아.
정말 모르겠다.
건우는 선택할 수 없는 것으로부터 눈을 돌렸다. 너무 어려웠다. 그 앞에 있는 어리숙한 동생이 누군갈 죽였다고 믿고 싶지 않았다. 필사적으로 유도부 때 일을 변명하는 모습이 겹치니 더욱 그랬다.
그렇지만 믿지 않으면? 아무것도 설명되지 않는다. 은우가 갑자기 그런 이유도, 그 애가 그렇게 괴로웠던 것도.
그는 무언갈 택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얼굴을 찡그린 채 입술만 잘근잘근 씹었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 보면 차라리 생각이라도 돌리고 싶어서 멋대로 고개를 움직이게 된다.
문득 책상에 놓여진 다람쥐와 입이 삐뚤어진 고양이가 보였다. 다람쥐에 비해서 어딘가 엉성한, 추억조차 연상시킬 수 없는 고양이는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다.
「형아, 다람쥐 말고 고양이는 없어?」
그때의 너처럼, 아무것도 없다.
맥이 탁 풀렸다. 건우는 그가 생각했던 모든 것들을 되짚어 보았다. 그리고 그가 했던 모든 고민을 모래알 흘리듯 손가락 사이로 떨어트렸다.
생각해 보면, 은우가 거기서 무엇을 했건, 피를 얼마나 묻혔건 이미 그 삶은 끝났다. 이름도 사라진 채로 거기서 완전히 최종장을 맞이했다.
그리고 여기 있는 건 그의 동생인 서은우다. 사고 한 번 치지 않은 번듯한 동생이란 말이다.
속죄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음에도 용서해 준, 무르디 무른. 많은 것을 빼앗겼음에도 하나 되찾은 것에 행복해서 그 이상 욕심 내지 않는, 답답하고 순진한.
그러니까 그가 해야 할 것도 이미 정해져 있다.
“깼어?”
“어. 근데 은우야, 내 가방 못 봤어?”
“저기.”
“고마워.”
서건우는 은우가 주방에 들어간 틈을 타 가방에서 파란색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다시 들어온 동생의 방은 마침 빈 선반이 있다.
“혼자, 두지 않기로 했으니까…….”
의지할 수 있는 형이 돼 주고 싶었는데, 이런 것에 흔들려서야 가능은 한 걸까.
그는 부스럭거리며 봉지를 뜯고 인형을 들었다. 가장 먼저 선반에 안착한 건 다람쥐다.
“더, 노력하자.”
건우는 흐려지는 시야를 손바닥으로 애써 문지르며 실과 바늘을 움직였다. 정돈되지 않은 머릿속은 문댄 것처럼 흐린 시야랑 비슷해서, 차라리 말로 토해 내야 선명해졌다.
“더 잘하자, 건우야.”
아직 선반에 얹어지지 않은 인형을 들고 손이 몇 번 오가면 준비해 둔 것이 그럴싸하게 붙여진다. 어설프게 만들어진 물고기 인형이다. 바늘에 몇 번이고 찔려 가며 만든, 단 하나뿐인 것.
“약속했잖아.”
기어코 연결된 물고기 인형은 고양이의 팔을 애매하게 구부러트렸다. 물고기를 만들 때 잘못 재단한 탓이다.
“은우랑 약속했잖아…….”
차라리 인터넷을 뒤져 봤다면 고양이 인형에 딱 맞는 생선 인형이 나왔을까. 그렇지만 그렇게 찾아낸들 그것엔 의미가 없다.
“약속은, 지켜야지. 그렇지?”
사랑이나, 믿음이나, 우정이나. 그런 것들은 버튼 하나로 클릭해서 구매할 수 없다.
다람쥐 옆에 고양이가 얹어졌다.
* * *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눈 끝에, 그들의 다음 날은 늦은 점심 때가 돼서야 시작되었다.
물론 은우는 형이 잠든 때보다 늦게 잤음에도 더 일찍 일어나 점심상을 준비했다. 계란부침에 햄, 베이컨, 간장에 볶은 양파, 채 썬 양배추, 토마토, 슬라이스 치즈만 넣은, 가벼운─그의 입장에서─샌드위치였다.
형은 대체 뭘 하는지 중간에 나왔다 다시 들어가서 나오질 않는다.
“뭐 해.”
“어, 어. 나갈게.”
샌드위치가 식을까 방 앞에 서서 채근하니 그제야 나왔다. 은우는 방 안을 힐끗 보았다. 별반 달라진 건 없어 보인다.
그는 문에 가려져 그의 책상과 선반을 보지 못한 채로 판단을 마쳤다.
“와… 진짜 맛있겠다.”
눈가가 붉은 형을 보며 은우는 목덜미를 슬슬 긁었다. 일어나서, 형의 생각은 바뀌었을까? 아니면 어제 그대로일까.
유난히 발랄한 태도를 보면 감당할 수 없는 이야기라서 그냥 덮기로 한 걸지도 모르겠다. 부정하거나 망상으로 치부되는 것보단 낫다. 최상이라고 하긴 애매하지만.
“댓글 봐 봐.”
그새 형은 그의 얼굴책 계정을 뒤적거렸다. 하면 먹기 전 올린 사진─그 아래는 가벼운 점심이라고 적어 놨다─에는 벌써 댓글이 달려 있음을 알 수 있다. 대체로 이게 어딜 봐서 가볍냐는 의견이다.
“가볍지 않나.”
“…어, 진짜로 이걸 가볍게 생각하는 건 아니지?”
“…아니야?”
형의 눈동자가 잠깐 흔들렸다. 이게 그렇게 이상한가 싶다.
“은우야, 가볍다는… 빵에 잼 발라 먹는 정도야. 아니면 빵에 계란프라이, 햄 정도까지거나.”
그는 결국 앉은 자리에서 형에게 가볍다의 정의를 배웠다.
빵에 잼 바르고 끝이라니. 계란과 햄을 곁들이는 게 최대라니. 밥을 빵으로 대체하는 것도 약간 불만이던 한국인은 용납할 수 없는 간단함이었다.
다만 은우의 충격과 별개로, 그들의 가벼운 샌드위치는 차곡차곡 줄어들어 빈 그릇만을 남겼다. 당연히 건우가 하나, 은우가 세 개였다.
“배부르다.”
우유까지 한 컵 비우고 나니 오후 3시였다. 은우는 거기서 약간 고민했다. 방송이 7시에 있다 보니 어딜 갔다 오기가 애매하다. 그렇다고 집에 있자니 할 게 없고.
물론 휴일이니 만큼 형도 할 일이 있을 수 있겠지만…….
“…….”
조금 더 놀고 싶었다. 형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직 긍정적일 때 조금이라도 더.
은우는 형을 곁눈질하며 최대한 머리를 굴려 보았다.
“저녁까지, 있을 거야?”
“어… 나야 상관없는데 너, 방송 있잖아. 그거 전에는 가야겠지?”
방송이야 조금 미뤄도… 아니, 아니다. 은우는 그의 책무를 미루려 한 자신을 발견하고 정색했다. 하루 전에 공지했다면 모를까, 이제 와서 하는 건 시청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차라리 일찍 하는 거라면 어떻게 참작이 되지만, 늦는 건 역시, 역시?
은우의 눈에 뭐 하나가 닿았다. 레드바랑 같이 쇼핑할 때 사 왔던 게임이다.
“…형.”
은우는 그 게임 칩과 게임기를 장식장에서 꺼내 들었다.
“이거 해 볼래?”
“……?”
“2인도 가능하다는데.”
형과의 친밀감 상승을 위해 사 뒀던 게임의 이름은 ‘피트니스 어드벤처 5’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