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화
괴수신을 잡으라는 명령이 내려온 날, ──는 한참을 침묵했다.
“죽을 거야.”
“글쎄.”
“분명 죽을 거라고.”
“저주하냐?”
─는 신경질적으로 화냈고, ──는 그런 그를 휙 쳐다보았다.
“내가 졌어, 내가 졌다고.”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신이 되는 법에 대해 알아?”
“너보고 똑똑하다 말하는 새끼들은 대가리가 어떻게 된 게 분명해.”
그는 골 때리는 머리를 꾹꾹 누르며 고개를 저었다.
“몰라.”
“신이 되기 위한 조건은 딱 세 가지야. 추앙받음으로써 신성을 가지고, 종을 초월한 능력을 가짐으로써 종의 한계를 탈피하고, 타인에게 믿음에 대한 대가를 줄 수 있어야 한다.”
“하찮네.”
그의 답에 그 사람은 그저 웃었다.
“이런 말 들으면 다들 신이 되고 싶다 말하더라. 조건이 너무 쉽다고. 너는 어때?”
그때 ──의 웃음은 정말로 오묘해서 우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별로 신경 쓸 이유는 없었다.
“관심 없어.”
“…그럴 것 같았어.”
무슨 대답을 기대했던 걸까. 신이 되고 싶다? 그렇지만 ─는 신이 되기 싫었다. 그는 그럴 자격도, 필요성도 없었다.
“신이 되는 건 쉬워.”
“관심 없다니까.”
“그래도 들어.”
그는 그때 처음으로 그 사람의 절박한 목소리를 들었다.
“먼저 신성 생성의 조건은 다른 누구도 아닌 스스로의 추앙이 제일 중요해. 알았어? 모두가 숭상한다 해도 스스로가 자기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건 성립되지 않아. 신이란 건 뭐니 뭐니 해도 자신을 옹립하는 것부터 시작하니까.”
조금은 당황스러워서 밀어내지도 못하고 그저 눈만 껌뻑거렸던 것 같다.
“종의 한계를 탈피하는 건 설명할 필요 없으니 넘기고, 마지막으로 믿음은… 믿음에 대한 대가를 준다는 건 그렇게 어려운 개념이 아니야. 물질이나 힘 따위가 아니어도 되거든.”
─는 구백구십만의 구더기를 담은 눈을 처음으로 정확히 직시했다. 이 세계에 태어나지 않은, 무언가를 매개체 삼아 매여 있는 구더기들이었다. 이세계를 좀먹지 않고선 살아갈 수 없는 것들.
“…본래 이 땅에서 나고 자란 태생신들은 이계신과 달리 신도에게 믿음과 희망을 교환했다는 거 알아?”
구더기가 들끓는 무덤 안에는 무엇이 있을까.
“이 땅에서 태어나 자라서, 세상을 좀먹는 이계와 맞서 싸우던 그들은 신도들의 믿음을 대가로 그들에게 희망을 주었어. 그것으로 대가는 충분했지. 지금의 사람들은 희망 따위 대가로 쳐주지 않지만.”
본래 그 눈동자가 가졌던 색은 무엇일까.
“무슨 의민지 모르겠는데.”
“…그렇다면 이거 하나만 기억해.”
구백구십만 마리의 구더기에게 둘러싸인 채로 ──는 말했다.
“너는 영웅이야. 모두에게 추앙받고 있는, 모두에게 믿음에 대한 대가를 돌려줄 수 있는 너는, 영웅이야.”
눈물을 뚝뚝 흘리며 속삭였다.
“네가 영웅이란 단어를 싫어하는 걸 알지만, 그래도 너는 너를 위해서 영웅이 되어야 해.”
그에 대해 ─는 뭐라 말했었는지.
“난 한낱 인간이야.”
모른다 말했지만, 실상 전부를 이해했기에 그는 끝까지 영웅이길 거부했다.
설사 그것을 바라는 자가 있다 해도.
▣ 157. 혼자 죽고 싶지 않았어
완안발타를 해치우는 건 정말, 너무, 쉬웠다. 잡졸들만 부르는 보스니 당연하다.
은우는 완안발타를 해치우고 나서 진행되는 시네마틱을 느긋하게 지켜보았다.
“날 죽인다고 해서, 끝이라고 생각하, 나?”
완안발타는 칼에 찔린 채로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내가 죽어도, 추장께서는, 분명, 새 하늘을…….”
“본인이 그 하늘을 보지 못하면 무슨 소용인가 싶은데.”
이운의 검이 완안발타의 미간을 꿰뚫었다.
“뭐, 내가 신경 쓸 바는 아니군.”
뽑아낼 때에는 피가 앞으로 푸슉 튀며 거대한 육신이 그대로 무너진다. 이운은 그 목을 잘라 들어 올렸다.
“완안발타가 죽었다!”
고려군과 엎치락뒤치락하던 여진군이 하나둘 움직임을 멈추기 시작했다. 쨍그랑 소리를 남기며 떨어지는 무기들은 투항의 의미다.
“진정 해냈군.”
전장이 어느 정도 갈무리 되고, 윤관은 이운의 손을 꼭 붙잡았다. 일부 장수들은 거의 절을 할 기세였다.
“자네 덕분에… 드디어 우리가 승리를 거뒀어.”
이운은 그 손을 역으로 다독였다. 그러곤 담담히 고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아니야. 자네 덕에 모든 자가 살아남았네. 고려뿐 아니라 이 9성의 땅에 살던 자들까지.”
윤관은 이럴 때가 아니라며 고개를 휘휘 저었다.
“자네의 공을 폐하께 낱낱이 고하겠네. 그대의 활약을 들으시면 폐하께서도 기뻐하시며 필히 높은 직위와 금은보화를 하사하실 것이야.”
그는 부귀영화를 누리게 될 것이라며 활약에 대한 찬사를 보내었다. 과하다 싶으면서도 이운이 해낸 일들을 떠올리면 전혀 과하지 않았다.
다만, 그래. 확실히 찬미받을 만한 일은 맞으나, 약속된 명예에 대해서는 이운이 받을까? 은우는 이운이 받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가 과거에 그러했듯.
“황공하오나,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어찌 대가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이운이, 그가 전장에 뛰어든 것은 부귀영화나 명예를 좇고자 함이 아니다. 왕이 따를 만한 사람이어서도 아니고 존경할 장수가 있어서도 아니다.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이것이라도 하는 게, 그게 나았을 뿐이다.
“저는 바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니 이것으로 족합니다.”
“그건 안 될 말일세! 그대가 세운 준공이 몇인데 그것을 포기한단 말인가!”
─ㅇㅈ 왜 포기해;;
「‘오마이차’ 님이 ‘1,000원’ 투척!
이것은 마치,,,,조별과제를 혼자 다해놓고 논 팀원 이름 올려주는 것도 모자라 본인 이름을 빼는 것,,,,」
─생불이다
─저건 생불이 아니라 호구지;;
─이운 같은 조장 필요...
─이운버스
시청자들의 말에 힙입기라도 한 듯 윤관은 필사적으로 해낸 일의 대가를 돌려주고자 했다. 그러나 이운은 이운대로 완강했다.
그는 꼭 관조하는 사람처럼 웃으며 말했다.
“제겐 전부 가치 없는 것들이라.”
은우만이 이해하는 한 마디였다. 어떤 사람이 이운이란 캐릭터를 짰는지는 몰라도, 사람 참 꼬였을 게 분명하다.
─왜 저걸 다 버리고 가냐
─아까비
─후속작 떡밥인듯?
시청자들은 조금 답답해했지만, 게임에서 주인공을 이길 수 있는 건 시스템 외에는 없었다.
결국 이운은 보상을 받는 걸 거부하고 제 갈 길을 갔다. 엔딩 크레딧이 1.5배속으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걸로 ‘무신: 고려 제일검의 탄생’이 끝났습니다. 어김없이 3일 만에 작살났네요.”
─ㅋㅋㅋㅋㅋ
─누가 켄 액셀 좀 늦춰봐
─VR 오픈월드 겜을 3일만에 끝내는 클라스,,,
─이쯤되면 게임박살자라는 게 정설
3일이 뭐냐. 그가 조금만 길게 했어도 이틀치였다. 은우는 한붓그리기로 이어지는 크레딧을 보며 목덜미를 쓸었다. 그나마 사흘치 방송분을 얼추 맞춰서 다행이다.
“보스전에는 사소한 아쉬움이 남지만, 그 외에는 정말 흥미진진하게 잘 만든 게임 같습니다. 방송에 나온 것 외에도 플레이 요소가 여럿 있으니 직접 즐겨 주시길 바랍니다.”
은우는 습관적으로 박수를 가볍게 치며 마무리 멘트를 뱉었다. 사람들이 그를 붙잡았지만, 당연히 잡혀 주진 않았다.
“내일이 월요일이던가요. 다들 새로운 한 주 즐겁게 맞이하시고, 화요일에 뵙겠습니다.”
─오빠 푹 쉬세염
─ㅠㅠ잘가용
─켄바
─ㅂㅇㅂㅇ
─푹 주무세요
종료 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그를 주시하던 수천, 수만 쌍의 시선이 사라졌다.
동시에 부서져 가는 대기실은 바닥부터 금이 가며 아래로, 아래로 추락한다. 새까만 공허였다.
그리고 시야가 완전히 검정으로 물들었을 때, 그는 어느 순간부터 감고 있던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캡슐 내부와 외부의 기압이 맞춰지면 곧 캡슐문이 열렸다. 옅게 켜 둔 무드 등이 이제 그의 시야를 밝힌다.
은우는 상체를 일으키고 캡슐 밖으로 발을 내밀었다. 그 상태로 한동안 적적한 방을 응시했다. 더는 시선이 없는 세계를, 그의 현재를 잠시 누렸다.
한참 만에 발에 힘을 주어 몸을 일으켰다. 혹시 몰라 노트를 건드리면 기다리고 있던 메시지 하나가 와 있다.
『형> 내일이나 모레 저녁에 혹시 시간 되니.』
되고 말고다. 방송이야 낮에 해도 되니까.
은우는 그에게 긍정의 답을 보내며, 스스로는 무언가 많이 늘어난 책상 앞에 앉았다.
그리고 너절한 공책을 펼쳐 마지막이 될 사건을 적기 시작했다. 천천히 적어도 문제없다지만, 형이 모레 저녁에 온다니 왠지 조급해졌다. 이것을 주겠다는 각오가 들지 않은 것과는 별개의 조급함이었다.
포장이 풀어지지 않은 다람쥐와 고양이 앞에서, 새까만 잉크가 하얀 종이 위를 다시금 뛰놀기 시작했다.
* * *
혼자 죽는 게 싫어서 그들을 곁에 두었다.
그들만큼은 그보다 늦게 죽었을 것 같았으니까. 그가 죽는 순간에도 그들은 살아 있었을 것 같았으니까.
“어떻게 이런 힘을!”
발버둥을 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응당 버틸 것 같았다. 버텨야 했다.
“진짜 이럴 줄 알았어!”
그가 죽기 전까지 그들은 살아 있어야 했다.
“버티기만 하면 돼! 버티기만 하면……!”
세상을 불사르는 불꽃 속에서, ─는 검을 휘둘렀다. 내장이 열에 바싹 익어 간다는 건 고려하지 않아도 됐다. 독이 퍼진 시점에서는 그의 목숨은 시간문제였다.
“이 세계는 이계신들의 놀이터에 불과해! 자네의 발악은 무의미하단 얘기네!”
“이계신은 태생신을 용납하지 않지. 그건 너도 들어서 알 텐데. 만일 우리를 죽인들 네가 살 가능성은 없어. 그러니 귀찮게 굴지 말고 순순히 죽어.”
“정말 끝까지 네놈은 내 발목만 붙잡는군!”
“제발! 우릴 위한다면 그만하라고!”
시간문제임을 알면서도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그는 그냥, 그들과 싸우고 싶었다. 배신할 걸 알면서도 믿어 주었던 것에 대해 약간의 화풀이를 하고 싶었다.
“어쩌라고?”
혼자 죽기 싫은 것만큼이나 배신자들을 위해 순순히 죽어 준다는 선택을 용납할 수 없다. 절대 부당하다고 할 수 없는 분노였다.
“그냥 너희가 버티면 되는 문제잖아.”
화검사의 복부를 꿰뚫은 검은 그대로 옆구리를 뚫고 나왔다. 성주의 방패가 옆에서 치솟아 오며 ─의 몸을 타격하려 들었다.
“괴물 자식!”
괴물이라. 정말 괴물인가? ─는 백 스텝으로 물러남과 동시에 성주의 몸을 갈랐다. 단단한 몸에 상처가 나고 핏줄기가 솟아올랐다.
“끔찍할 정도로 강력하군. 태생신으로서의 각성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을진대…….”
“미친 거 아니야? 저게 각성이 안 된 거라고?”
“…신성이 아직 없잖나.”
─는 시체교주가 부리는 해골을 짓밟고, 솟아오르는 그림자들을 끊었다. 사방을 휘감은 불꽃이 마치 북녘의 눈송이처럼 흩날렸다. 차이점은 희지 않고 붉다는 것이다.
그리고 성채가 솟아났다. 그를 가두어 생명을 소진시키려는 성채가, 아니 안을 불꽃으로만 채운 감옥이.
“이런 미친!”
검 두 자루에 꿰뚫려 무너졌다. 붕괴하는 흙벽을 뒤로 하고 다가오는 자의 얼굴은 먹구름이 낀 하늘에 의해 그늘져 있다. 흙벽 뒤편에서 넘실거리던 불꽃이 그의 걸음걸음을 붉게 물들였다.
“빌어 처먹을!”
뒤로 물러나 상처를 지지고 있던 화검사의 목청이 커졌다. 성주가 무너진 이상 그들의 승률이 처참히 떨어졌다는 걸 직감한 것인지도 모른다.
정확한 예감이었다.
성주가 죽기까지 5분. 성주가 죽고나서 화검사의 목이 잘리기까지 2분. 그림자술사가 죽기까지 1분.
“…완벽한 패배로군. 살아 돌아가는 건 우리라고 생각했는데.”
─는 시체교주가 발악하듯 불러낸 백골들의 파도를 뚫고 나아갔다. 시체교주는 도망갈 의지조차 잃은 듯 그 자리에 서서 말만 이어 나갈 뿐이다. 이 파도조차 그 말의 시간을 벌려는 것처럼.
“하나 묻지. 왜 끝까지 각성을 하지 않은 거지? 각성을 했다면, 그딴 꼴을 하고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게 분명한데.”
─는 또 하나의 파도를 무너트렸다. 시체교주와의 거리가 10걸음 이내가 되었다.
“자네는 이미 모든 조건을 충족했네. 타인의 추앙, 한계에 이른 힘, 믿음에 대한 대가.”
파도가 한 번 더 무너졌다. 거리가 5걸음 이내가 된다.
“…충족하지 않은 건 단 하나.”
그리고 이내 3걸음.
“왜 스스로를─”
1걸음.
서걱!
듣는다고, 답한다고 해서 바뀌는 건 하나도 없다.
교주의 목이 날아갔다.
* * *
은우는 적다 말고 잠시 펜을 뗐다. 이렇게 보니 모순적으로 보이진 않을까 싶어서였다.
혼자 죽는 게 싫었던 주제에 그를 죽이려 든 네 명을 도륙하고 말다니. 문장 자체만 보면 모순은 맞다.
어떤 순간에도 살인을 용납하지 않는 사람에겐 모순이고 자시고 그냥 살인일지도 모르겠다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잖나.
그러니 모순처럼 여겨지면 곤란했다. 다만 문제인 것은…….
그게 어찌 그의 잘못이 될 수 있을까?
어찌 그의 잘못일까.
신뢰를 줄지 말지 정하는 것은 스스로의 몫이고, 배신당한다면 그건 보는 눈이 부족했기 때문이며, 배신이 뼈아픈 것은 배신 당한 상황을 이겨 낼 실력이 없어서이니.
그는 배신당할 걸 알면서도 신뢰를 주기로 결정했고, 제 눈을 외면한 대가로 배신당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상황을 이겨 낼 힘이 있었다.
그러므로 그 후에 배신감에 분노하는 건, 치를 떠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혼자 남겨져 죽는 건 배신당해 죽는 것보다 최악이고, 이길 수 있는 대상에게 순순히 죽어 주며 후회를 쌓는 건 혼자 남겨져 죽는 것보다 더 최악이었으니까.
그러니까.
기껏 그가 그를 죽일 기회를 믿음에 포장하여 주었는데도 해내지 못한 너희를 원망하는 건, 정말로 어쩔 수 없다.
* * *
마지막 배반자가 죽었을 때, ─는 시원함이나 꼴 좋다는 감상 대신 허탈하게 웃었다.
곧 그가 죽을 거라는 확신 때문이 아니었다. 강적과 싸우다 맞이하는 죽음이 아니라, 배신에 의한 초라한 죽음이라는 것 때문도 아니었다. 이기지도 못하는 주제에 배신한 너희가 우스워서는 더더욱 아니었다.
“날 죽였어야지.”
단지 또다시 혼자가 됐다는 게 그를 허무하도록 했다. 꺽꺽거리는 웃음소리 위로 망연자실한 자의 손이 시야를 짓눌렀다.
“날 이겼어야지.”
너희를 이해하고, 용서할 수 없어서 마지막 발버둥을 쳤다. 그렇지만 그렇다 해서 그가 승자가 되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그가 이겨 봤자 달라질 것이 없는데 왜 바라겠는가?
혼자 죽는 것보다 차라리 싸우다 죽는 게 나았다. 혼자 남아 죽음을 기다리게 될 바에야, 너희가 보는 앞에서 싸우다 죽는 게 나았다.
그게 설사 배신자들이라 할지라도, 누군가가 보는 앞에서 죽는 것이 덜 쓸쓸했을 거란 말이다!
왜, 왜 너희는 이다지도 약한가? 왜, 그의 최선을 아름답게 장식해 줄 수 없었나. 도대체 왜.
“끝까지 개같이 구는 새끼들.”
한때 친구라 부를 수도 있었던 것들 앞에서 ─는 절망했다. 그가 잃어버린 것을 되새기며 좌절했다.
“진짜 개자식들…….”
가족을 잃고, 몸담았던 용병단을 잃고, 전장에 뛰어들며 만났던 인연들을 잃고, 순수함에 반해서 키운 제자를 잃고, 마지막으로 끝까지 함께할 수 있지 않을까 믿었던 동료들마저 잃어서.
이제 한평생 빌고 빌었던, 혼자 죽기 싫다는 결말마저 잃어버리고 말았다. 배신감으로 얼룩져서, 참담함으로 버무려져서, 그렇게.
“…싫어.”
또다시 상실 앞에서 패배해 버리고 말아.
“…이런 죽음은 싫다고.”
그는 웃으며 하나 남은 팔로 칼을 쥐었다. 그리고 그 검을 심장에 대었다. 끝없는 공포와 밑이 없는 슬픔이 그 뺨을 타고 내렸다.
“혼자 죽고 싶지 않았어…….”
어렴풋이 그가 살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감이 잡혔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외면했다. 그것을 선택하면 그는 지금과는 비할 수 없는 외로움을 느끼게 될 것이었으므로.
하여 그는…….
“거래하자.”
그를 지켜보던 구백구십만 쌍의 눈동자와 거래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