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자도 방송할 수 있습니다-153화 (153/233)

153화

새삼스럽게 외로워서, 가족을 가지고 싶어서, 무언가를 바라서 올라온 북은 아니었다.

어차피 ─의 인생은 회색으로 변한 지 오래였다. 어떤 것에서도 의미를 찾지 못했다.

다만, 그래. 무의미한 삶을 끝내고자 전장을 뛰어들 적이면 희열이라 부를 만한 것이 들었다. 모두가 죽어 가기에 자신의 삶이 더 불타오르는 느낌이었다.

비록 그 끝엔 망연한 상실만이 남으나, 어차피 그것은 그를 평생 따라다닐 터였다. 찰나나마 탈력감도, 허무함도 잊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전장에 설 이유는 충분했다.

“이번에도 거하게 저지르셨군. 덕분에 바닥에 피 냄새가 배였어. 알아?”

온몸을 피에 절인 채 주점에 입장하니 핀잔을 들었다.

“새삼스럽게.”

핏물 때문에 별 효과는 없을 것임에도 ─는 그린 듯한 미소를 머금었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으나, 해서 나쁠 것 없던 탓이다.

아무렴 이름은 슬슬 날리고 있으나, 아직 연줄이라 부를 만한 게 전무했다. 평판이 나빠지면 귀찮아진단 소리다.

“주인장, 도시락.”

“바로 의뢰냐? 좀 기다려.”

“예압.”

“맞다. 누가 널 찾던데?”

“왜?”

“개인 의뢴가 보지.”

“개인 의뢰는 취급 안 한다고 전해 주세요오.”

죽음을 갈구하는 건 아니나, 꾸역꾸역 살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러니 보수 아무리 두둑해도 개인 의뢰는 안 받았다.

그것은 목숨을 걸고 한계를 뛰어넘는 아슬아슬함도, 무의미한 삶을 끝낼 기회도 주지 않았다. 정말 재물이 급한 게 아닌 이상 할 이유가 없었다.

“정말 아예 안 받는 거야?”

너스레를 떨며 거절하니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북부의 전통복을 입고 우아하게 서 있는 사람이었다.

고아한 자태 속에 감춰진, 구더기가 들끓는 듯한 눈동자는 역겹기 그지없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는 저런 자들을 잘 알았다. 겉을 번지르르하게 꾸며 썩어 버린 속을 감추는 자들이었다. 대체로 엮여서 좋을 것 없다.

성벽을 나가기 위해 군 정도는 엮일 수밖에 없지만.

“이쪽은 질 나쁜 사냥개에 불과한지라 나리의 심부름꾼은 못 되겠습니다.”

“곤란한데. 그러지 말고 자기야, 잠깐이라도 이야기에 어울려 줄 순 없어? 절대 손해 안 볼 거야.”

“변변찮은 언변인지라 흥미가 없으실 겁니다.”

그는 되는대로 지껄였다. 어차피 이 땅에서 귀족들 취급은 바닥을 기어 다니는 굼벵이만 못했다.

가장 필요한 순간에 도망친 것도 모자라 남은 이들끼리 악써 가며 북부를 지켜낸 후에야 슬금슬금 되돌아온 놈들이니 당연하다.

최소한의 예우로 죽이지 않고 존대를 써 줄 뿐이지 이렇게 막 대해도 문제없었다.

“나 정말 급해. 너처럼 이 일에 딱 맞는 사람도 없단 말이야.”

그 말에 ─의 고개가 돌아갔다.

“어쩌라고요.”

개인 의뢰 안 받아. 꺼져.

그의 미소는 그 뜻을 여실히 전달했다.

“아아, 그러지 말구!”

그 귀족이 곧바로 달라붙었다. ─는 고개를 살짝 젓곤 막 나온 도시락이나 받아 들었다. 손가락에 맞아 빙글 튕겨 나가는 것은 구리화다.

“왜 이거야?”

“대금은 뒤에 올 경비 새끼에게 받아 내십쇼.”

“…벽이 또 터졌나?”

주점 안 분위기가 단번에 밑바닥으로 처박혔다.

그 속에서 ─는 눈매를 곱게 접었다.

“벽 말고 성이 터졌답니다.”

▣ 153. 왜 이제 와서 설명이

【엎드려!】

화살이 날아오기 전에는 저 외침이 항상 들려왔다. 시스템 설명에 따르면 화살에 아군이 당하지 않도록 신호를 주는 것이라 한다.

아군이 없을 때는 외치지 않지만, 아군이 있을 때는 반드시 외친다. 덕분에 난전 속에서 화살 피하기는 제법 쉬워졌다. 귀만 잘 기울이면 됐다.

은우는 몸을 살짝 틀어 화살을 피한 후, 역으로 살을 쏘아 보냈다. 바람 가르는 소리와 함께 여진족 한 명이 나가떨어졌다.

스릉-

말의 달리기 속도가 빨라 거리가 금세 가까워졌다. 은우는 환도를 뽑아 들었다.

철갑 기병이 자랑이라던 것과 달리, 말이 없던 여진군이 양옆으로 물러났다. 그러나 그걸 놓칠 은우의 검이 아니었다.

적 한 명의 머리가 달아나고, 추가로 하나 더 날아갔다. 고삐를 잡은 손이 말의 방향을 부드럽게 바꾸었다. 하면 마지막 여진군까지 머리를 잃었다.

“창이 있으면 조금 더 편했을 텐데, 그 점은 조금 아쉽습니다.”

리치가 좀 더 긴 창이 말 위에서 적들을 도살하기 편하다. 은우는 그 점을 꼬집으면서도 너무 안타까워하진 않았다. 편의성의 차이일 뿐, 있나 없나 거기서 거기였다.

“석성이 보입니다.”

여진군 무리 하나를 해치우자 퀘스트 목적지가 코앞까지 다가왔다. 혼자 쳐들어가는 게 아니라 이관진 장군과 함께 가야 했으므로, 목적지 표기는 석성 근처 지대를 가리키고 있다.

“왔군.”

당연하게도 이관진 장군은 이운을 탐탁지 않아 했다. 다만 대원수의 명령이 있어 믿는다는 눈치였다.

“대원수께서 하신 말이 맞다면, 그대에게 선봉을 맡겨도 되겠지.”

이관진 장군은 이운이 적의 추장을 처치하고 혼란을 일으키는 데 성공하면 돌격하겠노라 말했다.

게임이라 그런지 시키는 일에 비해 내주는 물자는 거의 없었다. 기껏해야 시스템상 지급됐어야 할 장비와 화살 보급이 다였다.

─와 이거 밖에 안주냐;;

─개쪼잖

─전쟁을 시키면서 보급은 이게 다네

─이게 나라냐

─부정부패on!

“뭐, 줬어도 착용 안 했을 텐데요.”

대부분의 게임이 이런데 이 게임한테만 화낼 이유가 없다. 별개로 은우는 저런 태도의 상관에게도 익숙했다. 사람 성격 나름이지만, 용병 취급은 대체로 저렇다. 어지간히 유명세가 있지 않은 이상.

은우는 아군 무리가 있는 데서 내려와 석성으로 접근했다. 썩 어려울 것 같은 일이나, 생각보다는 쉬웠다.

『은폐│수풀에 숨거나 마루 밑으로 이동하는 등 적의 시야에서 벗어나 움직이면 들키지 않고 지나갈 수 있다. 적에게 들킬 것 같을 때는 적 머리 위에 경계 마커가 표시된다.』

현실과 다른 궤도로 흐르는 시간 덕에 마침 시계도 밤이었다. 은우는 수풀 사이에 몸을 숨겨 성벽에 몸을 붙였다.

만약 현실이었다면 이런 일이 없도록 이 근처 풀들을 싹 다 베어 두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척준경, 그분은 대체 어떻게 혼자 성벽을 오른 걸까요. 그때 이런 못이 있었을 것 같진 않은데.”

─어, 그러게?

─설마사카 맨손...?

─그러겠음?

─고리 같은 게 있었을지도

은우는 기본 장비로 지급된 대못을 꺼내 들었다. 성벽이나 암벽을 타고 올라갈 수 있게 해 주는 못이다.

게임이라지만 참 애매한 장비다. 전생에서도 최소한 곡괭이처럼 생긴 장비를 받았었는데, 대못이라니. 성의가 없는 건지 기술력을 생각한 디자인인지 모르겠다.

“뭐, 맨손보단 낫겠죠. 맨손은 손끝이 아려서 원.”

─? 마치 올라본 듯한 말투 뭐죠?

─?? 손끝이,,,,아려,,,,?

─오우쉣;; ㄹㅇ실화 에반데

─진짜였던 거냐...?!

그는 변명 대신 못을 성벽에 박았다. 콱, 콰직 소리와 함께 은우의 몸이 성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 소리를 듣고 위 보초병들이 경계 마커를 띄웠다. 그렇지만 성가퀴의 담은 그들의 가슴팍까지 오니.

고개를 내밀어도 각도 상 성벽에 달라붙은 존재를 보는 건 불가능하다. 치雉(성벽 일부를 돌출시킨 시설물)가 있었다면 또 모를까.

은우는 망설임 없이 속도를 올렸다.

─해명하세요

─당장 해명하라

─진실을 들려달라

“무슨 해명을 합니까.”

장비가 없던 시절, 아직 혼자서 다닐 때 성채 하나를 토벌하겠답시고 절벽과 성벽을 기어 올라갔을 뿐이다.

꼬박 6시간을 오른 끝에 산 중턱에 지어져 있던 그 성채에 들어갈 수 있었던가. 그 6시간의 고행은 적장의 목을 깃대에 꽂을 수 있게 해 주었다. 상당량의 금은보화와 함께.

“해명할 것 없습니다.”

은우의 손이 여장女墻 사이의 총안銃眼(여장에 뚫려 있는 구멍)을 잡았다. 총안을 짚은 손에 힘을 주어 몸을 끌어 올리면 기어코 흉벽의 꼭대기를 잡을 수 있다.

손이 그의 몸을 더욱 위로 올렸다. 담장 위로 그의 얼굴이, 상체가 넘어갔다.

【어?】

소리를 듣고 담 앞에 서 있던 병사와 막 올라온 은우의 눈이 마주쳤다.

─곰보겜;;

─귀신은 켄입니다

─ㅗㅜㅑ....내가 병사였으면 식겁했다

─눈 질끔 나올듯...

은우의 몸이 성가퀴를 뛰어넘으며 칼을 뽑아 들었다. 달빛이 시퍼렇게 물결치면 핏줄기와 함께 병사의 목숨이 떨궈진다.

【치, 침입─!】

은우는 주변에 몰려 있던 두 명의 병사도 놓치지 않았다.

소리 지르려던 병사의 멱살을 쥐고 칼을 목에 찔러 넣은 다음, 빠르게 뽑아내고 뒤로 돌아 마지막 한 사람에게 환도를 던졌다. 병사가 엉겁결에 들고 있던 창으로 막아 내 봤자였다.

틈을 타 빠르게 달려나간 은우가 튕겨 나간 검을 회수했다. 검을 회수하느라 몸을 낮춰야 했다는 것도 그 상태로 발을 휘둘러 병사를 넘어트리는 데 써먹으면 연계 동작이 된다.

검이 병사의 미간을 찔렀다. 종이 뭉치 찌르는 느낌과 함께 핏줄기가 튀었다.

“추장이, 어디 있을까요.”

검을 뽑아내며 은우는 중얼거렸다. 달빛을 받아 서슬 퍼렇게 빛나는 검이 핏물을 뚝뚝 떨어트렸다.

─공포 그 자체

─학살좌가 납셨다;;

─크으,,,,켄 방송은 이맛으로 보지

「‘인간농장’ 님이 ‘1,000원’ 투척!

제작진에게 다급히 걸려온 전화 한 통....밤마다 성에 사는 인간이 하나씩 사라진다는데...?!」

“저, 아직 아무것도 안 했습니다만.”

─?

─님 발밑에 있는 두 사람은,,,,?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말이 없어서 있는 것 취급도 안 됨ㅠ

시청자들이랑 말로 싸워 봤자 이길 수 없다. 은우는 아이템이 있다는 의미로 반짝반짝 빛나는 시체에게 접근했다. 적이 품고 있던 아이템이 리스트로 떠오르며 인벤토리로 이동되었다. 더 이상 이것들에게 볼일은 없다.

그는 성벽 위를 천천히 이동했다. 보초병들을 모조리 처치하기 위해서다.

“잠입의 경우 퇴로를 위해서라도 보초병은 어느 정도 제거해 두는 게 좋습니다. 물론 막무가내로 제거하는 게 아니라 보초병의 위치, 교대 시간을 고려하고 제거해야 합니다.”

교대 시간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시체가─시체를 치우더라도 빈자리가─발각돼 경보가 울린다.

이 경우에는 뒤에 진격할 인원들이 있으니 상대적으로 덜 신경 써도 되지만, 모름지기 암살이라면 흔적을 남기지 말아야 하는 법이었다.

─왜 경험자처럼 말하는 거냐고ㅋㅋㅋㅋ

─이쯤 되면 특수부대 의혹 즐기고 있는 거 아님?

─그거다!

─그거네!

시청자들이 그의 발언에 웃음을 터트렸다. 그사이 은우는 활의 시위를 당겼다.

각루에 있는 병사들이 그를 발견했다. 그러나 경계 게이지가 차는 속도보다 화살 날아가는 것이 더 빨랐다. 쓰러지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으나 사람 쓰러지는 윤곽은 보였다.

“저게 추장인 것 같네요.”

은우는 성곽에서 내려와 건물들 지붕을 뛰어다녔다. 곧 여진족 추장으로 추측되는 존재가 보였다.

확신할 수는 없으나, 기타 적들에 비해 화려한 장비가 최소 정예 이상이었다.

“화살로 한 번에 죽으려나.”

이 게임도 체력 바 제였다. 지금까지는 머리를 맞출 경우 일격사가 가능했지만, 정예 이상마저 그래 줄지.

유격대처럼 돌아다니던 무리의 지휘관(정예)은 팔다리를 베어 체력을 깎은 상태로 머리를 때렸던지라 확신 대상이 될 수 없다.

─한 방에 안 죽을듯

─정예병이 헤드샷으로 죽는 걸 본 적이 없어...

─안 죽음

“저도 아닐 거라 생각합니다.”

은우는 어깨를 으쓱이며 활을 뽑아 들었다. 시위를 당기면 보정에 의해 화살이 날아가는 경로와 탄착 지점이 하얀색으로 표시된다.

“뭐, 안 죽으면 한 발 더 쏘면 되니까요.”

─더블샷은 안 됨?

─헉 더블샷 좋다

─멀티샷 각?

─켄빈후드 나오나요??

“아무리 저라도 이 정도 거리에서 멀티 샷은 무리입니다.”

쏘는 건 가능하지만, 두 발 다 한곳을 맞추진 못한다. 은우는 그 점을 주지시키며 시위를 놓았다.

팽팽히 당겨진 활에서 화살 하나가 뻗어 나갔다.

은우의 손이 재빨리 다음 화살을 꺼내 시위에 걸었다.

추장이 화살을 머리에 꽂은 채로 절반 깎인 피통을 내보인 것과 두 번째 화살이 출발한 건 동시였다.

【시체다! 시체가 있어!】

【추장님이 살해당했다!】

【어디냐!】

“시체 발각 시스템도 있었군요.”

경계령이 울렸지만, 목적한 바는 이뤘다.

『지휘관을 처치했습니다.

새로운 스킬: 귀살을 배웠습니다.』

『◈ 지휘관 처치

◈ 여진군 전원 사살』

이것만큼 정확한 알림 창도 없다. 은우는 활을 집어넣고 환도를 들었다. 와아아아! 하는 소리와 함께 이관진 장군 및 고려군이 돌격을 시작했다.

지휘관이 죽자 여진군은 혼란에 빠진 상태다.

『혼란│적의 장수를 해치웠을 때 적은 혼란 상태에 빠집니다. 혼란에 빠진 적은 도망가거나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대거나, 장수를 해친 당신을 죽이려 들 것입니다. 장수 계급의 적이 주변에 있을 경우 혼란의 회복 속도가 빨라집니다.』

쉽게 말해서, 지휘관의 사망 시 걸리는 대규모 디버프였다. 장수가 살해당하면 군대는 오합지졸이 된다는 현실을 나름 반영한 모양이다.

“이제 다 죽이면 되는 것 같습니다.”

─쿠쿡 이제 시작인가?

─여기가 참수 맛집이라면서요?

─참수가 계절상품이라서요;; 오늘은 못 먹습니다

─학살좌 등-판

─참수 빠져도 학살 맛집임 ㄱㅈㄴㄴ

은우는 학살좌라는 사람들의 수다를 막지 않았다. 매번 고쳐 주기도 귀찮거니와, 이제 할 일은 솔직히 학살이 맞았다.

“그 전에, 이번에 배운 스킬이 뭔지 좀 보겠습니다.”

【너, 이 자식!】

【저 고려인을 죽여!】

성벽 위로 올라온 여진족 병사가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은우의 환도가 선두의 적을 찌르고 갈비뼈를 어긋나게 썰었다.

연이어 짓쳐들어오는 칼을 비껴 쳐 낸 후, 자세가 무너진 적의 목을 쳤다.

“상대방의 방어를 무너트리고 공격에 추가 대미지를 준다는 걸로 보아… 제 공격이 일종의 가불기(가드 불가 기술)가 된다는 의미 같은데, 맞습니까?”

【엎드려!】

은우는 외워 둔 여진족의 신호를 듣고 바로 몸을 틀었다. 화살이 하얀색 빛을 내며 쏘아졌다. 일부 사람들은 그것마저 보지 못할 터이나, 은우에겐 역으로 과한 친절이었다.

─맞음

─안 보고 피하는 거 무냐고;;

─음~ (대충 뉴비 귀엽다는 뜻)

─미리보기 귀살 개멋잇는데

─간지기술 못 참지

─형 한 번만 써줘잉

“한번 써 볼까요.”

은우는 귀살을 발동해 보았다. 그러자 검에 푸른 불꽃이 붙었다. 일반 불꽃보다 더욱 투명하고 타오름의 형태가 일반적이지 않아 신비로운 느낌이 강했다.

─존멋

─캬 갠지 폭풍

“멋있긴 한데, 그다지 쓸모 있을 것 같진 않습니다.”

─가불기 되는데요?

─? 저거 짱 좋은데?

“가불기가 아니어도 제 공격 못 막잖습니까.”

─아ㅋㅋㅋㅋㅋㅋㅋㅋ

─다른 건 몰라도 실력의심만은 절대 못 넘어가는 남자ㅋㅋ

─남 잘난척 하는 방송이 대체 뭐가 재밌다고 보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안 볼 거임?

─오늘부로 세금 상납 갑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켄님 오늘도 뉴비 한 놈 보냇읍니다^^)>

화살을 고갯짓으로 피한 그는 뒤늦게 방패의 존재를 상기했다. 방패를 애용하는 편이 아닌지라 까먹고 있었다.

은우는 귀살을 끄고 방패를 꺼내 들었다. 그러곤 그대로 돌진했다.

방패에 달린 가시가 적 하나를 꿰뚫었다. 방패에 꿰뚫린 적 때문에 이쪽 면에선 더 이상 적이 덤벼들지 못한다.

환도는 다른 쪽에서 덤벼드는 적의 칼을 쳐 내고 다리와 목을 차례로 그었다.

【크악!】

방패를 뽑아내고 실피가 남아 있는 적을 걷어찼다. 은우의 발이 옆으로 스텝을 밟으며 몸을 틀었다. 창이 방패의 가시 사이를 통과했다.

은우는 그 상태에서 방패를 어긋나게 들었다. 가시와 가시가 대각선으로 위치하며 창을 붙잡았다.

그 상태로 창대를 미끄러진 은우는 창수의 코앞까지 접근했다. 병사가 창을 빼내려 했지만, 그래 봤자다.

방패 덕에 바깥쪽으로 돌려 빼야 하는데, 그럴 경우 역시 방패로 인해 회수하기가 어렵다. 그는 그 전에 녀석의 겨드랑이부터 목까지 한 방에 베어 버리면 됐다.

칼의 대미지가 약했지만, 아직까진 적의 체력 바도 작아, 대부분 금방금방 죽어 나갔다.

『공포│짧은 시간 내 적을 연속 처치 할 경우 인근의 적들은 공포 상태에 빠집니다. 공포에 빠진 적은 도망가거나 움직임이 둔해집니다. 장수 계급의 적이 주변에 있을 경우 공포의 회복 속도가 빨라집니다.』

“이런 것도 있네요.”

전체적으로 고증을 썩 잘한 느낌이다.

“그래도 좀 약합니다. 잘 만들긴 했지만.”

잠입을 제외하면 전투에 대한 대응은 괜찮은데, 그래도 약하다. 은우는 으레 그렇듯 전투에 한해 약간의 투덜거림을 표했다. 매번 하는 불평이었으므로 사람들은 키득거리며 넘어갔다.

“낙댐도 있을지.”

은우는 건물 위에서 뛰어내렸다. 있는지도 몰랐던 체력 바가 생겨나며 소량 줄어들었다.

“있네요.”

어느 높이까지가 낙댐의 영향권인지 알아봐야 할 성싶다.

그때, 띠링- 하고 알림 창이 떠올랐다.

『체력│0이 되면 빈사 상태가 됩니다. 빈사 상태에서 치유하지 않고 10초 이상 경과하면 사망합니다. 체력이 0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투지│적을 처치하거나 공격을 쳐 내거나, 기타 고급 기술을 사용할 경우 획득합니다. 투지를 소비해 치유 및 기타 특수 능력을 사용하세요.』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늦은 설명이었다. 뒤늦게 시야 한쪽에 체력 바와 투지 게이지가 생겨났다.

“…왜 이제 와서 설명이.”

─?

─ㅋㅋㅋㅋㅋ??

─앜ㅋㅋㅋㅋㅋㅋ

아무래도 체력이 한번 달아야만 알려 주는 시스템인 모양이다. 은우는 목덜미를 쓸었다.

“하마터면 끝까지 모를 뻔했습니다.”

─자연스러운 자랑

─ㅋㅋㅋㅋㅋ근데 진짜 낙댐 아니었음 끝까지 몰랐을듯

─자랑하는 거 존나 귀엽누ㅋㅋㅋ

튜토리얼이 딱히 없더라니, 이런 식이었다. 은우는 어깨를 으쓱이며 환도를 고쳐 쥐었다. 방패는 나쁘지 않지만, 좋지도 않았으므로 집어넣었다.

“투지 특수 기술은… 아직 못 쓰는 것 같습니다. 자가 치료밖에 없네요.”

시스템 창을 펼쳐 캐릭터 스킬 정보에 들어가도 나오는 게 없다.

“일단 저것들부터 처리하고 자세히 알아보죠.”

두 손이 환도를 단단히 잡았다.

─쟤네들, 싸우긴 하는 거임?

─왜 쓰러지질 않냐

─아군만 쓰러지는 거 기분 탓?

“대미지를 주긴 합니다.”

은우는 아군이 활을 쏘거나 칼 휘두르는 걸 확인하며 여상히 말했다. 가죽신이 다져진 대지를 밟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적의 무기도 무기 취급일까요.”

그는 가장 근처에 있던 적의 수급을 베고 다가오는 일격을 피해 몸을 낮췄다. 동시에 손을 뻗어 적의 옷깃을 잡았다.

그는 옷깃을 쥔 채 위로 팔을 들었다. 옷에 걸려 팔이 강제로 들리자 적의 무기도 위로 치켜 올라갔다.

챙!

다른 방향에서 다가오던 창이 적의 무기에 맞혀 튕겨 나갔다.

“되네요.”

은우의 칼이 옷깃을 붙잡힌 상대의 겨드랑이에 박혀 들어갔다. 목 옆 어깨에서 불쑥 솟아오른 칼날이 핏물에 가득 젖어 있다.

은우는 그 적의 명치를 발로 차며 반동을 이용해 뒤로 물러났다. 여진족 병사의 철퇴가 땅바닥에 꽂혔다. 창까지 합하면 완벽한 합격이었다.

그의 몸이 뒤로 물러날 때 단순히 뒷걸음질을 하는 것을 넘어서 뒤구르기 하듯 땅을 손으로 짚고 몸을 뒤로 넘겼다. 창이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저걸 저렇게 피하네;;

─크,,,,

─어케 짠 것처럼 다 알고 피하냐...

─봐도봐도 신기함ㅋㅋ

땅을 손으로 짚고 뒤로 넘어갈 때 손목을 비틀어 방향을 바꾼 은우는 발로 뒤쪽에 있던 적의 머리를 찼다. 쓰러지는 몸뚱이가 그의 발에 짓밟혔다.

푸욱-

짓밟은 몸뚱이 위에 칼을 내려 꽂은 은우는 다시 대지를 박찼다. 그가 예리하게 파고드는 빈틈은 창을 막 회수하고 있는 창병의 것이다.

한 손이 창을 잡고 창병을 당긴 후 검을 찔러 넣었다. 바로 뽑아내면 피가 촤악 퍼지며 검은 천 옷을 적셨다.

“후.”

은우는 숨을 내뱉으며 죽은 창병의 멱을 쥐고 뒤로 돌며 던졌다. 철퇴병의 앞에 장애물이 던져지자 철퇴병의 자세가 무너졌다. 그 뒤는 창병을 가운데 끼고 철퇴병의 머리를 꿰뚫는 일뿐이었다.

“이것도 되네요.”

─이분은 대체;;

─살아있는 척준경

─켄님 척 씨인듯

─켄 종족좀 그만 바꾸세요 불편하네요

─ㅇ? 안 바꿨는데?

─켄 구울왕이라구요 어딜 인간을 대세요

─ㅇ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는 칼을 털어 내고 다시 적이 밀집되어 있는 곳으로 발을 내디뎠다. 아군이 많이들 밀고 들어와 상황은 대치 상태가 된 채다.

은우의 검이 아군을 찌르려던 창을 쳐 내고 창병의 머리를 베었다. 신체 절단 모션은 없으나, 벤 자리에 자국이 남으며 핏물을 계속 쏟아 냈다.

“척씨는 아닙니다.”

─이 와중에 성씨 부정ㅋㅋㅋㅋㅋ

─뭐? 척 씨가 아니라고?!

─그럼 백씨?

─김씨

─이씨면 좋겠다ㅠ

뜬금없이 성씨 맞추기 놀이가 시작됐다. 은우는 사람들의 물음에 어깨만 으쓱여 주었다.

그러곤 검을 중지와 약지, 소지로만 잡은 채 활을 꺼냈다. 화살이 발사되며 멀리 있던 정예병에게 적중했다. 두 발 연속 쏴 내면 정예병의 다리는 무너진다.

『◈ 여진군 전원 사살』

퀘스트가 종료되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