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화
『의무를 다하셨습니다. 다음에 또 방문해 주신다면 기쁘겠군요.』
군인이 비열하게 웃었다. 은우는 그런 그를 가만히 보다가 그만 나왔다. 총도 들고 오지 않았거니와 싸워서 얻을 것보다 잃을 게 더 많았다.
─콱 한 대 쥐어박고 싶다
─누가 표정 디자인했냐 개역겹누;;
─비리 군인...
“뭐, 군인이란 게 그렇지 않습니까. 정확힌 전장에서 민간인과 몰래 거래하는 군인이란 게.”
면역이 없는 시청자들과 달리 은우는 이 게임에서 나오는 모든 불합리함과 부당함이 익숙했다. 그가 그런 처지였다 아니다를 넘어서 목격한 적도, 당한 적도 있으니 당연하다. 일부는 해 본 적도 있었고.
그래서 사람들이 저런 반응을 보일 때마다 그는 형에게 말할까 하는 마음을 한 번, 두 번 접었다. 저들의 반응을 가지고 그의 고민을 반추할 때마다 용기가 야금야금 사라진다.
“이번 거래를 마지막으로 한동안은 자급자족으로 버티는 게 좋겠습니다.”
그는 게임에 집중하기로 했다.
“40일대에 끝난다 하셨으니까 이 정도면 어떻게 되지 않을까요.”
─글쎄요?
─괜찮을듯?
─그럴수도 잇고 아닐수도 잇습니다
─가능할 것 같다.
은우는 사흘 동안 벌써 귀에 익어 버린 반응들을 쉽게 씹어 삼켰다. 그러곤 스스로 판단을 내렸다.
일단 식량도 충분하고 물은 좀 적지만, 못 버틸 수준은 아니다. 라디오에서 계속 무장 강도 얘기가 나오는 걸 보면 밤 경계가 중요할 성싶었고.
역시 존(경받을 정도로)버(티기) 메타가 답이다.
“밥해 두고, 물 만들고…….”
은우는 해야 할 기본적인 것들만 지시한 후 날을 넘기기로 했다.
물론 방문 상인이 올 수도 있는 노릇이기에 어느 정도까진 기다리는 게 좋았다. 방문 상인이 아닌 또 다른 캐릭터가 찾아올 수도 있는 노릇이고.
“오늘은 아무 일도 없나 봅니다.”
NPC들은 오전에 방문하는 경향이 컸기에 이때가 되도록 아무도 안 오면 앞으로도 안 올 확률이 높다.
“나머지 한 명만 재우고 날 넘기죠.”
침대가 2개뿐이라 경계 3명 중에서 한 명은 앞서 자는 2명이 깰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은우는 그 둘이 일어날 12시 20분, 30분대를 기다리며 캐릭터를 그 앞에 대기시켜 두었다. 그동안은 그저 시간만 보내는 게 다다.
“전쟁이 언제 끝날지 모르겠습니다.”
─첫판인데 진짜 오래가긴 한다
─1트에 여기까지 오는게 더 신기함;;
─ㅇㅈ
─난 3트에 간신히 엔딩봣는데....
일평생 바란 적 없던 종전을 게임에서야 바라게 되다니. 제국과 치고받을 때조차 종전의 ‘ㅈ’도 생각조차 안 했다. 가망이 없으리란 걸 알았기 때문이다.
이쪽 세상엔 ‘순망치한’이란 단어가 있는 모양이지만, 되돌아보면 제국 그 머저리들은 그런 생각도 안 했다.
밑바닥 헌터들이 모여 틀어막은 괴수들이니 그렇게 문제되지 않을 거라 생각한 걸까? 혹은 괴수들의 시달림보다 자원 가득한 땅덩어리가 더 가치 있다 생각한 걸까.
그들이 하나 생각하지 못한 것은 그나 그를 배신했던 배반자들이 왜 그 무력을 가지고도 왕국 수도에 머무르지 않았을까란 사실이다.
그야 미친놈이라서 내려가지 않았지만, 나머지 넷은 그런 이유 때문에 남은 게 아니다.
그 넷이 남았던 건…….
“시간이 다 됐네요.”
상념을 이어 나가며 입으론 시청자와 대화를 나누는 것에도 익숙해졌다. 은우는 침대에서 내려오는 캐릭터들을 보며 나머지 캐릭터들을 눕혔다.
그리고 날을 넘겼다. 시야가 까맣게 물들며 하얀색 글자들을 출력했다.
『밤새 세워진 듯한 스피커가 한 마디를 토해 냅니다.
“전쟁이 끝났습니다, 여러분! 이제 여러분들은 살았습니다! 전쟁이 끝났습니다! 전쟁이 끝났다고요!”
당신은, 혹은 당신들은 살아남았습니다.』
조금은 당황스럽다가도, 내용을 읽다 보면 달가운 마음만 든다.
이후 크레딧 대신 올라오는 건 그가 전쟁 통에서 밟아 온 행적들이다.
“에이버리는 종전 선언이 울려 퍼진 후, 그녀의 남편을 찾아 피난민 캠프를 전전했습니다. 그리고 무수한 역경 끝에…….”
은우는 마지막에 출력된 캐릭터들의 엔딩을 보고 그것을 찬찬히 읊었다. 최대한 올바른 선택을 한 결과인지 네 명 다 좋은 끝을 맞이한 것처럼 보였다.
정말이지, 선의와 행운이 만들어 낸 엔딩이었다.
그의 현실에선 만날 수 없던.
▣ 150. 혼자 죽어 가던 그 순간이
은우는 볕이 드는 룸 카페에 앉아 얕게 졸았다. 기실 생각을 멈추고 눈을 감은 채 햇살을 즐긴 게 다라, ‘졸았다.’라는 설명은 틀린지도 모른다.
그는 꼭 광합성을 하듯 햇빛을 누렸다.
“나 왔다.”
그의 친구가 도착할 때까지.
“뭔데 이렇게 많이 시켜 놨냐.”
“당 떨어질까 봐.”
“네 평소 식습관을 생각하면 당이 절대 떨어질 리 없을 텐데.”
당 떨어질 게 누군진 굳이 말하지 않았다. 은우는 그의 몫으로 시켜 둔 케이크를 포크로 푹 찔렀다. 집에 가면 쉬폰 케이크를 만들어 볼까. 사적인 고민도 함께였다.
“그래서, 뭐야.”
어떻게 운을 띄워야 할지 고민하고 있자니 희수가 채근했다. 하기야 3년 내지 4년이다. 오래 기다렸다.
은우는 없는 말주변을 어디서 긁어모아야 할지 고민하다가 결국 직구를 내던졌다.
“환생이나, 전생이나… 그런 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
그 말을 듣고 2초 후, 희수가 의자를 바닥에 긁으며 일어섰다. 그러곤 방을 나가려 했다.
물론 은우는 그녀가 의자를 뒤로 민 시점에서 저렇게 나올 줄 알았다. 그는 따라 일어나 나가려는 희수를 번쩍 들었다. 겨드랑이 쪽을 잡으면 손 크기 때문에 가슴 부위에 닿을 것이므로, 잡은 부분은 허리다.
“아, 새끼야. 놔라. 난 사이비를 친구로 둔 적 없다.”
“신 믿으라고 하는 거 아니니까 듣고 가라.”
“아오.”
희수도 진심으로 나가려 했던 건 아닐 거다. 아마도.
그 증거로 그녀는 일단 앉아 주었다. 은우는 그제야 반대편에 편히 앉았다.
“근데 너, 좀 무겁다. 살쪘냐?”
“개새끼야, 뒈진다.”
은우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냥 물어봤을 뿐인데 화내긴.
“그래서 믿어, 안 믿어.”
“안 믿어.”
“그래… 보통은 다 그렇지. 나도 안 믿었어.”
그는 고개를 뒤로 젖혔다. 룸 카페 소파, 등받이 위쪽 부분에 그의 목이 걸렸다. 본래라면 키가 안 맞지만, 몸 전체를 축 늘여서 가능했다.
“겪기 전까진 안 믿었어.”
“…아, 혹시 그거냐. 16살에 전생에 기억이 떠올랐다? 그런 건 판타지 소설에서나 나오는 거 아니었어?”
그래. 보통은 그렇지. 보통은 그렇다.
은우는 고개를 들어 희수를 가만히 응시했다. 특별히 기분 나쁘지도 않았고, 충분히 그런 반응이 나올 만했다 여겼기에 그저 직시하기만 했다.
“차라리 말하기 싫으면 말…하지…….”
말을 잇던 희수의 입술이 떨어졌다가 붙었다가, 그대로 손을 들었다. 그러곤 그녀 자신의 머리를 헤집었다.
“아, 씨……. 진짜냐?”
“내가 미친 게 아니라면 진짜겠지.”
은우는 다시 고개를 소파에 기댔다. 희수가 오기 전까지 나름 정리했던 것 같은데, 그새 엉망이 됐다. 그는 평생 솜씨 좋은 이야기꾼은 못 될 것 같다.
“그래서, 어떤 기억인데?”
“싸우다가… 배신당해서 칼 맞고 죽은?”
“좆 같네. 배신은 왜 당했는데.”
“내 목에 돈이 걸려서.”
희수가 머리를 또 벅벅 긁었다. 긴 머리카락이 손가락에 의해 엉키고 설키다가, 또 결 하나는 좋은 덕에 알아서 풀어졌다.
“열받게 배신은 왜 당해.”
“그러게.”
“그 새끼들, 떵떵거리고 살 거 같아서 더 빡치네.”
“떵떵거리며 살진 못할걸. 내가 목을 다 잘랐으니까.”
“그건 좀 속 시원한데.”
거기까지 말한 희수는 그녀 앞에 놓인 레모네이드를 울컥 삼켰다. 당 떨어진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벌써 이해가 갔다.
“거긴 어땠냐. 여기랑 비슷했냐?”
“전혀. 거긴 전자 노트 같은 거 없어.”
“미쳤네. 심심해서 어떻게 사냐?”
“대신이랄지 마법사나… 초능력자, 그런 건 있는데.”
“오.”
은우는 머뭇거리며 마법사와 초능력자, 성직자, 기인에 대해 설명했다. 말하기 싫다거나 말해선 안 된다는 이유로 멈칫거린 게 아니라, 문장 짓기 어려워서 중간중간 렉이 걸렸다.
“와, 너 설명 더럽게 못한다. 그래서 넌 뭐였는데.”
그나마 다행인 건 희수가 질문이 많았단 점이다. 그 혼자 많은 걸 설명하긴 어려워도 명확한 질문에 명확한 답을 내놓는 건 쉬웠다.
“didrodwnjdy.”
“그, 오러 같은 거 다루는 사람들?”
“오러가 아니라 didrod이지만…….”
“그래, 그 디… 드… 뭐시기. 발음 더럽게 어렵네.”
은우는 발음 차이 때문에 어려워하는 희수를 보고 그냥 대체어를 찾기로 했다. 마법사나 초능력자와 달리 그가 속한 능력군은 특별히 칭할 단어가 없어서 본토 발음으로 부른 게 실수였다.
“이쪽으로 치면… 기인 정도 되겠다. 기인이라 불러.”
그는 굳이 어렵게 작명하지 않고 쉽게 단어를 정했다. 어차피 그들만 알 존재였다. 굳이 어렵게 부를 필요가 없다.
“왜 기인이야? 설마 기운 기?”
“굳이 어렵게 부를 필요가 없으니까…….”
“진짜 촌스러워.”
안다. 은우는 넘어가잔 의미로 어깨를 으쓱였다.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alsxm… 이걸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 대충 생명력 비슷한 걸 사용해서 싸우는 건데…….”
“수명 같은 건가?”
“아니. 그거랑은 별개야. 이건 일종의 잉여 생명력이라고 해야 하나…….”
그는 끙끙 앓다가 그냥 설명을 포기했다. 꽤 오랜 시간을 투자한다면 어떻게 그럴싸한 정의를 만들 수 있겠으나, 그게 지금 당장은 아니었다.
“차라리 좀 정리를 해서 오지 그랬냐.”
“후회하고 있어.”
희수가 혀를 쯧 차곤 거기서 뭘 하고 살았는지나 물어보았다. 은우는 입안에 고였던 침이 순식간에 메마르는 걸 느꼈다.
형과 달리 희수는 이 과거를 믿고 감당해 줄 거라는 확신이 있다. 그가 보아 온 그의 친구는 분명 그랬다. 그렇지만 그 확신이 있다 해도 불안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사람 마음은 모르는 것임을 잘 알아서인지도 모르겠다.
“싸움이… 싸움이 많은 세상이었어. 북쪽으론 괴수가 기승이고, 남쪽으론 제국이 쳐들어와서.”
말하는 건 정말 두렵지도 어렵지도 않은데, 그것을 말했을 때 무서워할 너희와 멀어질 사이가 걱정되어서. 그렇게 되면 상당히, 그러니까 무척이나 괴로울 것 같아서.
운을 떼기가 이렇게나 어렵다.
“가족을 빼앗기고, 나를 받아 줬던 단체도 살해당하고……. 그러다 보니까 어느새 전장에 서 있더라. 아니, 처음엔 복수를 위해서 뛰어들었던 거긴 한데… 그게 계속 되다 보니까 그냥…….”
그는 횡설수설했다. 횡설수설했나? 잘 모르겠다. 말하는 사람은 본래 자기가 잘하는지 못하는지 잘 모르는 법이었다.
다만 술에 취했을 때처럼 군다는 건 명백했다. 말할 게 많아서 사고가 사방으로 튄다. 그는 정말 이야기에 솜씨가 없는 모양이다.
“제국의 군대를 죽이고 죽이다가, 어느새 보니까 내가 왜 싸우나 싶어서…….”
“응.”
“북은, 생각보다 그렇게 나쁘진 않았어. 위험하긴 했는데 괴수들은 인간보다 멍청하니까…….”
“그래.”
“싸우다 보면 버릇이랑 습성이 다 보이니까, 그래서 오히려 더 잘 살아남게 되더라. 물론 수가 너무 많아서 종종 죽을 뻔하긴 했는데…….”
“어.”
은우는 어느 순간 그의 눈 위에 무언가가 얹어져 있음을 인지했다. 손수건이었다. 어쩌면 희수가 패션 안경을 닦을 때 쓰던 안경 닦이용 천인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좋았다.
시야가 막히고 어둡지 않은 어둠이 눈을 가리니 정신이 안정됐다. 횡설수설하느라 흐려졌던 목소리가, 천천히 담담함을 되찾았다.
“살고 싶은 생각은 별로 안 했지만, 별개로 좀 살 만했어.”
“그게?”
“사람들이 환호해 줬으니까. 그리고, 내가 사람을 살렸으니까.”
연약하디 연약한 일반인들이라,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사람들이라. 상실이 두려웠던 그는 그들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것과 별개로 뿌듯함은 있었다.
그는 좋게 여기지 않는 삶이나마 누군가는 구원할 수 있다는.
“다른 데 갈 생각은 안 했냐.”
그의 눈가에 뭘 얹느라 이쪽으로 건너왔는지 친구의 목소리가 왼편에서 들려왔다. 약간의 거리가 있긴 했지만, 나쁘지 않았다. 정면은 너무 멀었다.
“가 봤자 죽어. 북에 있을 때도 종종 제국의 암살자가 왔는데, 제국이 손 뻗기 쉬운 다른 지역은 어떻겠어.”
“암살자까지 보냈냐? 쪼잔한 새끼들이네.”
“나랑 원수 진 것도 있고… 우리만 죽으면 왕국은 무너졌으니까.”
“그 정도로 심각했냐?”
“높은 분들에게 눈만 들면 권력이고 금은보화고 얻을 수 있는 강자들이 북쪽에 박혀 있는 이유가 뭐겠어.”
북쪽 경계선이 무너지면 왕국은 수도까지 일직선으로 괴수들에게 털렸다.
권력이고 재화고, 그것도 다 왕국이 멀쩡해야 누릴 수 있으니. 강자들이 북쪽을 틀어막는 건 필연이었다.
아마 제국에게 시달리며 왕국민 전체가 애국심으로 똘똘 뭉치지 않았다면 북쪽은 진즉에 무너지지 않았을까? 남쪽도 그렇고.
“애국심 하나만으로 그걸 다 버틴 거야?”
“꼭 그렇지만은 않지 않을까. 괴수 때문이든 제국군 때문이든 복수심으로 뛰어든 사람도 있겠지.”
초능력자나 드루이드, 마법사는 선천적을 필요하는 반면, 기인이나 성직자는 누구라도 가능하다보니 가능한 일이었다. 복수심에 불타 신과 계약하고, 자신의 생명력을 깎아 전장에 뛰어드는 이들은 애국심을 가진 이보다 많았다.
“가벼운 마음으로 뛰어들었다가… 나처럼 늦어 버린 사람도 있을 거고.”
“자기가 능력을 각성했다는 걸 숨긴 사람도 많겠네, 그럼.”
“많겠지. 하지만… 숨겨도 오래가지 않을 거야.”
‘그곳에 내가 있었다’에서도 그러지 않았나. 전쟁의 불씨는 사람을 가리지 않고 떨어진다. 하물며 그건 종전이라도 있었지, 이건 끝도 없는 싸움이었다.
결국 잃기 전에 드러내냐, 잃고나서 드러내냐의 차이였다.
“왕국에선 뭐 안 해 줬냐.”
“해 주긴 해 줬는데…….”
왕국 딴에도 나름 끊임없이 치사해 주었다. 그렇지만 모두가 애국심이나 복수심을 가지고 전장에 뛰어든 건 아니니.
겨우 그 정도로 사지에 들어가야 했던 이들의 불만은 사라지지 않았다. 더구나 치사조차도 왕자가 힘을 잡아 갈수록 줄어들었다. 그가 그의 죽음을 직감했던 것도 그즈음이었다.
“왕은 괜찮은 사람이었지만, 왕자는 친제국파였어.”
왕이 백발의 초로가 되도록 물러서지 않았던 만큼 왕자도 나이를 먹었다. 계승에 대한 불만과 초능력자로 태어난 자식에 대한 불안을 안고 그렇게 30대가 되었다.
“왕손이라도 능력자로 태어나면 얄짤 없이 전장에 내보내져야 했으니… 그 사람도 절박했겠지. 내 알 바는 아니지만.”
애초에 자식이 초능력을 각성하기 전부터 그 왕자는 그를 싫어했다. 그는 못 받은 왕의 총애를 받은 게 부러워서인지 뭔지…….
그 당시엔 개가 짖네 하며 넘어갔지만, 돌아보면 참 못난 사람이었다.
“…사실, 배신할 걸 반쯤은 알고 있었어.”
“뭐?”
“아는데, 그래도 믿고 싶어서…….”
은우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아니, 믿고 싶던 것도 아니야. 나는 그냥… 그냥…….”
눈가에 얹은 천 쪼가리를 꾸욱 눌렀다.
햇살이 그의 허벅지와 뱃가죽을 건드렸지만, 보이지 않기에 외면할 수 있다. 태양의 따스함이 좋아도 때론 그 금빛이 너무나 미웠다.
“혼자 죽고 싶지 않았어…….”
혼자 죽어 가던 그 순간이 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