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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자도 방송할 수 있습니다-149화 (149/233)

149화

은우는 소음의 파장이 벽의 절반을 가로지를 때 즈음 벽 쪽에 미리 다가갔다. 문 바로 옆 벽에 서진 못했으나, 이 정도면 늦은 대처는 아니었다.

그는 그 상태에서 소음의 주체가 방 문 앞에 선 것을 확인했다. 들어올지, 들어오지 않을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은우는 문을 향해서 벽에 몸을 붙인 채 걸었다. 발바닥이 땅에 닿고 떨어지는 순간 자체가 1초를 넘기도록 걷는 걸음은 소음 파장을 일으키지 않는다.

투시되어 보이는 빨간색 파장이 가까워졌다.

─아니 왜 다가가유

─나는 심장 쫄리는데 왜 켄은 태연하냐

─구울왕이라서

─먹잇감 1입장이니까

“…들어오면 바로 제압해야 하니까요.”

은우는 숨이 다량 섞인 목소리로 속삭였다. 성대를 제대로 울린 게 아닌, 바람에 언어를 담은 수준이었지만, 그래서 더욱 긴장되었다.

그리고 문 앞에서 파장만 고요히 뿜던 존재가 움직였다. 문 쪽으로 좀 더 다가섰다가 그래도 뒤로 걸어간 것이다.

그는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러다 파장이 꽤 멀어지고 나면 그제야 벽에서 등을 떼었다.

“운이 좋았네요.”

─ㅁㅈ 상대가 운이 좋았음...

─모가지 안 따이고 돌아갔어

─크으....

─왜 다들 적 걱정을 하는 건데ㅋㅋ

운의 주제가 달라진 느낌이지만, 뜻이 통했으면 됐다.

은우는 마저 잔해 더미를 헤쳤다.

▣ 149. 겨우 맞닿은 약속에 걸기엔

그는 성공적으로 호텔을 털고 돌아왔다. 자재 자체는 가방 칸을 엄청 잡아먹어서 많이 못 가져왔지만, 대신 약과 식량, 총알을 다량 털어 온 것이다.

세 품목은 그냥 그가 써도 좋고 가치가 높아서 교환에 써도 효율적이다. 약 하나면 자재 수십 개를 가져올 수 있으니 교환할 곳만 있다면 문제없는 것이다.

『그들의 물건을 가져오는 건 옳았을까? 그렇지만 훔쳐 오지 않았다면 우리가 더 힘들었을 거야. 이건 필요한 일이었어. 난 후회하지 않아.』

『전쟁에 휘말려 죽고 싶진 않아. 그렇지만 생존이라는 이름의 정당성을 휘두르는 것에 대해 우리는 항상 경계해야 해.』

『만약 우리가 그들의 물건을 훔쳐 와서 그들 중 죽는 사람이 생긴다면 어쩌지? 그건 우리 탓인 게 아닐까?』

차례로 에이버리, 콜린, 제이콥의 캐릭터 창에 떠오른 감상이었다.

“…혹시 도둑질도 슬픔이나 뭐, 그런 정신적 문제랑 관련됩니까?”

캐릭터들 전부 특별한 상태 이상은 띄우지 않았다. 그러나 이게 정해진 수치가 있고, 떨어진 양이 일부에 도달할 때마다 뜨는 거라면 방심할 수 없다. 미리 알아 두는 게 좋다.

─글쎄요?

─킹쎄요?

─사람마다 다르겠죠?

─모르면 죽어야죠

“다들 너무 단합을 잘해 주셔서 기쁩니다. 네, 모르면 죽어야죠.”

은우는 얕게 숨을 내뱉었다. 이게 어떻게 작용하는지 모르니 어쩔 수 있나. 미리미리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일단 방문 상인이 안 오면 오늘은 성당으로 가겠습니다.”

─성당!!

─형님 다 털어버리죠

─성당 딱 대

성당으로 가서 자재만 싹 털어 오는 게 18일 차 목표다. 은우는 고생한 캐릭터들을 차례로 재우고 낮 탐색으로 성당을 방문했다.

인력이 3명밖에 안 되다 보니 아슬아슬하게 굴러가는 형국이었지만, 그런 대로 나쁘진 않았다. 여기서 한 명 더 생기면 여유가 생기겠지만, 반대로 입도 하나 는다. 식량 여유분이 있긴 해도 넉넉하지 않은 상황에서 입 하나 느는 건 타격이 컸다.

『안녕하세요. 저는 리한입니다. 철물점을 운영하던 사람인데… 폭격으로 인해 살림살이가 쫄딱 날아가 버려서요. 혹시 저를 받아 주실 수 있을까요? 다른 건 몰라도 쇠로 만든 물건이라면 전부 고쳐 내거나 만들 수 있어요. 가구, 스토브, 난로… 뭐든 말이에요.

거절│고민할 시간이 필요해│수락』

타격이 큰데 입이 하나 더 생기게 생겼다.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했습니다.”

은우는 성당에서 거래하다 말고 피난처 쪽 화면을 살폈다. 새로운 이가 집 앞에 서서 합류를 애타게 요청하고 있다.

“이 게임은 적절한 때에 이렇게 시련을 주는군요.”

이제 좀 애들 피로를 풀어 주겠다 싶으면 도움 요청 이벤트가 오고, 교환에 써먹을 약이 생기면 누가 아프거나 아픈 사람을 마주치고, 숨통 좀 트인다 싶으면 군입이 찾아온다.

참 잘 만든 게임이다.

“집에 들여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설마 배신하진 않겠죠.”

─ㄹㅇㅋㅋ

─헐 쟤가 오네;;

─가만 보면 켄님 운 개좋은듯

─ㅇㅈㅇㅈ...

─ㄹㅇ ㅋㅋ

─배신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은우는 정보를 주지 않으려는 시청자들의 웃음 속에서 간간이 올라오는 말들을 체크했다. 운이 좋다라. 좋은 캐릭터인 걸까?

“…혹시 제작 때 드는 자재량을 줄여 줍니까?”

그는 시청자들의 답을 별로 바라지 않고 질문했다. 그런 동시에 건물에 받아 달라는 인물의 정보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철물점을 운영했고, 쇠로 만든 물건이라면 전부 고쳐 내거나 만들 수 있다.

아무리 보아도 재료 손실을 줄여 주는 캐릭터 같았다. 아무렴 제이콥도 이런 설명을 가지고 식량 소모량을 줄여 주지 않았던가.

─ㄹㅇㅋㅋ

─ㄹㅇ ㅋㅋ

─글쎄요?

─모르죠?

“받겠습니다.”

사람들이 좋은 캐릭터 아닌 척, 받지 않도록 유도하려 해도 소용없다. 은우의 직감이 말했다. 이건 잡아야 한다고.

아무렴, 식량이 넉넉하다곤 입이 찢어져도 말 못 하지만, 부족한 것도 아니다. 그에 반해 자재 소모량을 줄여 주는 건 남은 생존에 커다란 이점이 돼 주고.

포기하긴 너무 아깝다.

“아픔 상태 이상이 붙어 있으니 오늘은 일단 재우고, 이 친구의 진가는 내일 확인해 보도록 합시다.”

이것보다 중요한 건 집 온도를 올릴 때 필요한 땔감이다.

은우는 거래로 인해 가득 찬 가방을 다시 확인했다. 자재란 자재는 다 털어 왔다.

뭉치 하나에 4개씩 들어가고 그의 가방 칸은 12개이니. 손해 보지 않으려 하다 보니 교환용으로 가져갔던 물품이 한 칸씩 차지하고 상대가 파는 양이 적어 48개를 꽉 채우진 못했다. 그러나 손해 보지 않는 선에서 가방을 꽉 채웠으므로 이번 수색은 완벽한 이득이었다.

물론, 뭐만 하면 쑥쑥 사라질 것이란 점에서 그렇게 안도할 포인트는 아니다.

“세상이 어느 시댄데 땔감을…….”

─퇴보한 기술력

─전쟁 때문에 기술 퇴보함

─ㅋㅋ과거 회귀

애초에 땔감을 통해 불을 피우면 질식사 위험도 있을 텐데. 이건 상식을 한계치까지 날려 먹은 그도 아는 기본이었다. 전생에서 동굴에 불 피웠다가 죽은 이 여럿 봤으니 당연히 기억할 수밖에 없는 상식.

은우는 자재 다음으로 필요해진 목재를 보며 목덜미를 슬슬 쓸었다.

“첫 번째 트라이라 그런지 정말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네요.”

그렇지만 게임이 요구하는데 플레이어가 어찌 반항할까. 캐릭터들 죽일 거 아니고서야 얌전히 모아야 한다.

은우는 한숨과 함께 복귀했다.

* * *

파밍과 효율적인 물자 사용으로 하루하루를 견디는 게임이라 그런지 날짜는 금방금방 지나갔다. 그러다 보니 겨울도 훅 다가와 버렸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몸을 이리저리 비틀며 온갖 시설물을 설치하니 어설픈 자급자족도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채소도 기르고 기호 품목도 자잘하게 키우거나 만들어 팔고. 난로 하나로는 커다란 집의 온도를 유지할 수가 없어서 난로 하나를 더 만들어 두기도 했다.

라디오를 통해 전해지는 정보로 특정 제품 시세가 상승할 때면 그를 이용해 차익도 냈다.

중간에 강도들이 물건을 한 번 털어 가긴 했지만, 경계를 서던 게 에이버리였던지라 고기 1개와 목재 3개 빼앗긴 게 다였다. 리한이나 제이콥 둘 중 하나를 더 붙여 주니 다음부터는 더 이상 털리지 않았고 말이다.

하여 그럭저럭 사흘 벌어 사흘 먹고사는 느낌으로 안착했다. 희망이 있는 수준은 아니지만, 절망은 더더욱 아니다.

“전쟁은 언제쯤 끝납니까?”

지금이 26일 차였다. 지금 당장 끝나면 방송 분량이 조금 애매해지겠지만, 그래도 2시간은 했다. 전쟁이 막 40일, 50일까지 간다면 30일 근처에서 끊어 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그건 판마다 달라용

─랜덤임

─20일 후반일 수도 잇고 40일도 갈수 잇고 합니다

─모르죠

“그렇습니까.”

은우는 잠시 고민하다가 일단 30일까진 끝마치기로 결정했다. 동시에 그는 그가 만들어야 할 것들을 살펴보았다.

어지간한 건 다 만들었고, 강화문을 달거나 가공대 따위를 업그레이드만 하면 됐다. 필요성이 그다지 느껴지지 않아서 그런가, 솔직히 그걸 업그레이드하는 것보다는 자재나 목재를 아껴서 땔감 따위로 쓰는 게 나을 것 같다.

중반부를 넘어서니 자재랑 목재는 정말 씨가 말랐다.

“위험도 높은 지역도 한번 가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같은 상태를 유지할 때 겨울까지 못 버틸 거라곤 생각하지 않다. 그러나 재수 없게 40일대까지 간다면 이런저런 문제가 많이 벌어질 터였다.

도둑질이나 살인은 캐릭터에게 악영향을 미치는 것 같긴 하지만, 급하다면 터는 수밖에 없다.

은우는 그렇게 생각을 마무리하며 거래를 마무리했다. 손해가 없도록 가치를 일일이 재 가면서 해낸 거래는 상인의 보따리 절반을 털어 버는 것으로 끝났다.

“그럼 오늘은 특별히 할 게 없으니 넘어가겠습니다.”

기호품을 만들려 해도 소모되는 물이나 자원이 꽤 부담이었다. 마침 낮 탐색도 마친 상황이기에 은우는 과감히 날을 넘겼다.

밤이 다가오며 맵을 내보였다.

─고요한 집ㄱ?

─고요한 집 가나요?

“다른 데 갈 겁니다.”

─ㄲㅂ

─ㅋㅋㅋㅋ거길 왜 감

─소매넣기 하러 가는 것도 아니고ㅋㅋ

그는 지뢰를 권하는 시청자들을 피해 새로운 맵을 훑었다. 열린 게 많고, 열린 지도 다들 꽤 돼서 사실상 신맵 자체는 없다.

그렇지만 그가 가 보지 않은 맵은 많다. 광장도 그중 하나였다.

“거래 가능이니 물건을 좀 챙겨 가겠습니다.”

거래 가능과 위험이 둘 다 뜬 걸 보면 대충 군의 기지나 폭력 집단과 비슷한 느낌이 아닐까 싶다. 거래에 응해 주지만, 도둑질을 하거나 공격을 할 경우 맞대응을 하는.

뭐, 거래라도 가능한 게 어딘가. 은우는 콜린으로 물건을 챙긴 채 출발을 눌렀다. 시야가 잠시 가물어지면 이제 새로운 맵이 있다.

건물의 잔해가 사방에 널브러져 있고, 무너진 분수대가 흉한 꼴을 드러내고 있다. 그 앞에는 거래를 위해 나온 자들이 슬그머니 녹아 있다.

은우는 살살 걸어 광장 안쪽으로 진입했다. 원형 분수대에 맞춰 거래자들이 둥그렇게 있던지라 하나하나 돌아보는 건 쉬웠다.

“이분은 목재를 파시고, 이분은 약, 이분은 식량, 이분은 무기를 파시네요.”

땔감을 사고 싶지만, 가격이 너무 올랐다. 가구를 부수든 훔치든 다른 방식으로 구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으히히히히! 너!”

그때, 돌발 이벤트가 벌어졌다.

“너, 뭐 하는 녀석이야!”

거적때기를 몸에 두르고 손에는 이 빠진 도끼를 든 그 남자는 어딘가 이상해 보였다. 거래 NPC들도 은근슬쩍 일어나 자리를 피하는 게 한두 번 있던 일이 아닌 모양이었다.

“너! 너! 내 귀엽고 사랑스러운 안톤을 노리러 온 거지?! 이히히히!”

“…제가 보기엔 정상적인 사고를 하시는 것 같지 않습니다만, 제 편견입니까?”

─ㄴㄴ미치광이 맞음

─뭐 털리진 않아용

─소리만 좀 지르다 끝남

─난 저 할아버지 불쌍하더라ㅠ 나만 그럼?

─응 너만 그럼

─너어어는 지인짜 나빴다아...

“안톤이 아주 아주 귀엽고 사랑스러운 강아지이긴 해! 그렇지만 네놈에겐 안 넘겨! 썩 꺼져!”

은우는 무언가를 굉장히 달콤하게 묘사하는 목소리를 내다가도 갑자기 돌변하는 남자를 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저런 광인에 대해선 잘 안다.

소중한 것을 잃고 그 충격으로 머리가 맛이 가 버린 사람들. 울다가도 웃고, 웃다가도 화내고, 화내다가도 슬퍼하는. 현실이 싫어서 회피하고 마는 자들.

그렇지만 은우는 그런 그들을 지탄하거나 책망할 생각이 없었다. 그들을 비난하기엔 은우 자신도 어느 정도 속하는 바가 있었다.

그는 상실이 두려워서 죽음의 공포를 외면했다. 그것도 타인의 눈에는 반쯤 미친 판단이었다.

“오, 안톤, 안톤. 내 귀여운 강아지……. 왜 나를 두고 죽은 거니. 왜… 이 할아비를 두고 먼저 가 버렸니…….”

─ㅠㅠㅠㅠ

─저 안쪽 전투구역 가면 무덤 볼 수 잇음

─ㅁㅊ 무덤도 잇엇냐고

─강아지가 아니라 손자임?

─ㅇㅇ손자임

─헐류ㅠㅠㅠㅠ

은우는 그 자리에 주저앉으며 우는 미친 노인을 보다가 그만 자리를 떴다.

역시 형이 저런 광기를 받아들여 줄 것 같지 않다. 경멸받지 않기를 기대할 수 없다.

겨우 맞닿은 약속에 걸기엔, 그가 새긴 업이 너무 무겁다.

잃어버릴 것의 크기가 너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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