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화
형은 여전히 연락을 하지 않았다. 혹시 몰라 문자도 보내 봤지만, 여상스러운 답장만 돌아올 뿐이었다.
『형> 괜찮아. 네 친구, 엄청 친절하던걸.』
저게 진담이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은우는 희수를 잘 알았다.
그가 당부까지 한 마당에 막 나가듯 굴지는 않았을 터. 그렇지만 그게 일반적인 기준의 친절에 해당하지도 않았을 거다.
은우는 목덜미를 쓸었다.
『나> 나한테 물어볼 거 있지 않아?』
『나> 괜찮으니까 물어봐도 되는데.』
그 문자에 대한 답장은 상당히 늦게 돌아왔다.
『형> 다음에 만나면 이야기하자.』
『형> 인형도 그때 가져갈게.』
은우는 그걸 보며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형이 대체 무엇을 묻고 싶어 할까. 일단 유도부 일은 반드시 껴 있을 것 같고… 기억이 갑자기 사라진 이유?
그는 뒷목을 쓸던 손을 앞으로 옮겼다.
어쩌면 이번 기회에 털어놓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평생 말할 일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치면 형과 이런 사이가 될 줄도 몰랐으니까.
다만 그러려면 무의식 아래로 묻어 둔 과거의 기억을 건져야 할 테다.
방송을 앞둔 은우의 손이 뺨과 눈가를 쓸었다.
말하는 건 힘들지 않아. 기억을 떠올리는 것도 조금 귀찮을 뿐, 어렵진 않아.
다만 그가 가장 두려운 것은, 그가 무서운 것은.
「어떤 이유가 있어도 사람은 죽이면 안 돼.」
한 다정함이 영락하고 혐오와 경멸이 떠오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다.
▣ 146. 하늘과 달이 떠오른 세계
은우는 방송에 앞서 잡담 때 송출되는 화면을 건드렸다. PC 게임이나 콘솔을 할 때만 쓰기에 오늘 사용할 일은 없지만, 그래도 미리 바꿔 두고 싶었다.
무려 토끼 인형 하나를 주고 얻은 그림이었다.
그는 희윤이가 꼼지락거리면서 그려 준 그림을 외주로 받은 그림 대신 갈아 끼웠다. 볼 때마다 푸슬푸슬 웃음이 나왔다. 그가 지금 가진 고민조차 잊어버린 채 미소만 짓게 되는 거다.
그건 저 그림이 그만큼 강렬한 시각 효과를 가져서인지, 아니면 저걸 그릴 때 활짝 웃던 아기의 미소가 사람 가슴을 온후하게 만들어서인지.
은우는 화면을 한참 응시하다가 이만 껐다. 슬슬 방송을 켤 시간이다.
오늘 할 게임을 떠올리자 가슴이 금세 차분히 식었다.
“다들 안녕하십니까. 좋은 저녁입니다.”
─ㅎㅇㅎㅇ
─안녕하세요
─켄하
“구울들, 어서 오세요.”
─착석!
─아싸 생방
─유어튭 보고 왔어요~
─아 유어튜브 ㄲㅈ
─비위치의 영역을 넘보다니!
평상시와 다를 것 없는 시작이지만, 그럼에도 색다르다. 은우는 그들을 가만히 보다가 툭 하고 내던지듯 오늘의 게임을 담았다.
“오늘 할 게임은 ‘그곳에 내가 있었다(There I was)’입니다.”
생존, 어드벤처 장르의 ‘그곳에 내가 있었다’. 3차 대전이 터져 고립된 도시에서 민간인 생존자─플레이어─가 살아남는 내용의 게임이다.
이곳에서 플레이어는 시작 지점을 중심으로 주변 장소들을 수색, 보급품을 획득할 수 있다. 획득한 보급품들로는 생존을 방해하는 온갖 장애물을 이겨 내야 하며, 완료 지점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다.
다만 종전 시점은 매 판마다 달라진다. 진행 도중 벌어지는 이벤트 또한 달라지므로, 로그라이크 요소가 살짝 섞여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듣기론 3인 플레이, 2인 플레이, 1인 플레이 등 다양한 방식으로 플레이할 수 있다고 합니다만…….”
은우는 말끝을 흐렸다.
“1회 차에서는 반드시 3명으로 시작된다네요. 이 부분은 제가 어떻게 할 수 없으니 그대로 하겠습니다.”
반드시 엔딩을 봐야만 콘텐츠가 풀리는 구조이기에 미리 해 두지 않는 이상 1인 플레이는 꿈도 꿀 수 없다.
그는 아쉬움을 표하는 사람들에게 조곤조곤 일렀다.
“그렇다고 제가 미리 해 볼 순 없잖습니까.”
─고건 맞지
─켄이 예습을 한다...? 그건 이지플을 하겟다는 것
─이지플ㅋㅋㅋㅋㅋ
“참고로 게임 특성상 훈수가 많을 것 같은데, 가능하면 초심자를 보는 심정으로 참아 주시길 바랍니다. 제가 알려 달라고 부탁드리는 것만 알려 주시면 됩니다.”
─롸저 댓!
─훈수 OFF
─ㄹㅇㅋㅋ만 치라구!
─ㄹㅇㅋㅋ
─훈수하면 밴?
─ㄹㅇ ㄷㄷㄷ
“그럼 바로 가겠습니다.”
은우는 ‘생존 시작’을 눌렀다. 그러자 세계가 까맣게 물들고, 1일 차라는 글자가 떠올랐다가 지워졌다. 곧 생겨나는 건 안이 투명하게 비치는 건물이었다.
집과 연결된 땅은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듯하다가 유야무야 희미하게 끊겼다. 즉, 집 주변 광경은 볼 수 없었다. 딱 집 한 채만 보이는 셈이다.
심지어 그 한 채마저 포격이라도 당한 것처럼 곳곳이 무너져 있고 박살 나 있다. 전쟁으로 고립됐다는 설정에 참 잘 어울린다.
『“아무래도 여행은 한동안 못 가겠어.”
처음 전쟁이 터졌을 때, 콜린은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그렇지만 전쟁의 불씨가 그의 고향과 일상까지 집어삼켰을 때, 그는 깨달았습니다. 그가 무심코 넘겼던 일들은 사실 그래선 안 되는 것이었다는 사실을요.
“인생은 언제나 투쟁이라고 생각했어.”
에이버리는 경력 있는 경호원입니다. 그녀는 많은 요인들을 보호했고 다양한 위험 요소를 배제해 왔습니다. 때문에 전쟁이 터졌을 때, 그녀는 침착히 생존을 위한 투쟁을 시작했습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투쟁을요.
“아이들은 잘 살아 있을까?”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제이콥은 갑작스런 포격에 일터를 잃었습니다. 목숨은 간신히 부지했지만, 상황을 파악했을 땐 집마저 무너져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에 절망하는 대신 계속해서 움직였습니다. 오직 살아남기 위해서요.』
집 안에 있던 세 사람을 두고 설명이 떠올랐다. 은우의 시선이 줄글을 차례로 담고, 입술로 따라 읽어 내렸다.
가벼운 배경 설정과 캐릭터 설정이었다.
“이건 또 색다르네요.”
그는 그 건물을 대각선으로 내려다보는 시점이었는데, 보통 게임과 달리 그의 몸이 잘도 보였다. 또 조작판도 있었다.
“이런 게임은 완전히 처음이라서 감이 잘 안 잡힙니다.”
─그렇게 말하곤 또 고일 거면서
─이건 운영게임이니까 켄이라도 어렵지 않을까?
─피지컬 요소가 거의 없어서,,,,
─아직 모른다....
은우는 먼저 조작판을 한번 들어 보았다. 버튼은 여러 개 있었다.
『층을 돌아가며 볼 수 있습니다.』
가장 왼쪽의 삼각형 버튼에서 말풍선으로 메시지가 솟아올랐다. 슬쩍 메시지를 따라 보면 아래에 보이는 건물이 아까와 달리 보인다. 투명하게 비치는 층이 달라진 것이다.
2개 겹친 삼각형, 삼각형, 역삼각형, 2개 겹친 역삼각형. 그리고 그 아래 원.
원을 한 번 눌러 보면 비치는 층이 1층으로 원상 복귀 되었다. 가장 아래 있는 층이 아니라 지상 기준 1층이었다.
“지하 포함 5층이라……. 집이 어마어마하게 큽니다.”
은우는 다음 버튼으로 손을 옮겼다. 재생 및 정지 마크였는데, 말풍선이 이번에도 메시지를 띄웠다.
『세계의 시간을 흐르거나 멈출 수 있습니다.』
“이건 말 그대로 정지랑 재생이네요.”
─오오
─신기
─게임 이름 뭐라고?
─재밌어 보인다.
─그곳에 내가 있었다
마침 재생 및 정지 마크 위에는 시간이 띄워져 있었다. 06:00 am. 옆에는 생존 날짜와 기온 따위가 있다.
그것 외에도 캐릭터 정보, 날짜 건너뛰기, 보급품 현황, 캐릭터 1인칭에 대한 마크도 있었다.
“이제 기본적인 시스템은 다 파악한 것 같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게임에 들어가 보겠습니다.”
다음으로 건물 안을 살폈다. 세계를 정지해 둔 상태라 3명의 캐릭터가 흩어진 채 동작을 멈추고 있다.
은우는 세계를 다시 흘러가게 했다. 캐릭터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략 3초당 10분이 흘러가는군요.”
정확힌 3.3초에 가깝다. 10초에 30분이 지나간다고 하면 된다.
은우는 시간을 멈췄다.
“일단 캐릭터들이 특별히 혼자서 하는 건 없는 것 같습니다.”
─ㅇㅇ
─직접 지시해야함
─이거 좀 귀찮더라ㅋㅋ
─아 켄 엔딩보고 1인 엔딩도 봐줬음 조켓다~
“지시는…….”
어떻게 하느냐 물으려다가 본능적으로 방법을 찾아냈다.
캐릭터를 선택하고 할 일을 지정해 주면 됐다. 시간을 멈춰 둔 탓에 아직 움직이진 않았지만, 정지를 풀면 이행할 것이다.
“일마다 시간이 몇 시간씩 걸리고… 끝날 때에 맞춰 일들을 딱딱 지시해 주지 않으면 시간 손실이 나겠습니다.”
─일손실 못참지
─아 손실은 못참는다 이거야ㅋㅋ
─근데 저게 맞긴 함
─초반에 손실나면,,,,
─스노우볼 굴러가유~!
“근데 튜토리얼이 딱히 없나 봅니다.”
버튼의 쓰임새 자체는 알려 주지만, 이런 식의 세세한 튜토리얼은 하나도 없다. 은우는 그 점을 색다르게 여기며 캐릭터들에게 할 일을 배정했다.
“집 안이 굉장히 더러운데, 정리부터 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은우는 포격으로 인해 무너진 잔해들을 눌렀다. 상호작용이 가능한 것들에는 표시가 떠올라 있었기에 구별은 쉬웠다.
“구멍도 수리가 가능한 걸 보니 나중에 저 구멍으로 적이 쳐들어올 것 같네요.”
─?
─님 안 해보셧담서요
─아 예습 에반데
─어케 알았누;;
“안 해 봤습니다. 단지 뻔한 문제잖습니까?”
그는 목덜미를 쓸었다. 시스템을 파악하고 게임을 파악하느라 뒷전으로 미뤄 뒀던 감정들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전쟁이 남기고 간 상흔은 날카롭고.”
감히 묻건대.
“남겨진 인간들은 생존 앞에서 양심을 잃습니다.”
당신이 말했던, ‘더는 동생을 혼자 두지 않겠다’는 약속의 유효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또한 싸움은 이기기 위해 시작하는 것이므로, 이기기 위해선 자연스레 약점을 노릴 수밖에 없습니다.”
달이 떠오를 호수를 피로 만들어 낸 이조차도 당신은 동생이라 취급해 줄 텐가.
“쉽게 말하자면… 이런 거죠.”
은우는 헬멧을 쓴 채로 희미하게 웃었다. 기쁜 마음에 빙긋 웃는 것도, 빈정거리듯 웃는 것도, 어처구니가 없어 짓는 것도 아닌.
“살려면 뭔들 못하겠습니까.”
마지못해 짓는 웃음이었다.
“…생존이라는 대의 아래 움직였다면 그나마 이해받을 가능성이라도 있는데.”
주먹이 쥐어진 채 풀어지질 않았다.
* * *
은우는 처음 제공되는 피난처를 깨끗이 정리했다. 그 과정에서 얻은 자원으로 작업대인지 뭔지 하는 것도 제작했다.
왜 하필 작업대인가 하면, 그것이 유리할 것 같아서였다.
그는 실제 전쟁이란 걸 겪어 본 바 있으니. 처음이라고 해도 뭐가 우선이 될지 정돈 판단할 수 있다. 장기간의 생존에는 설비가 반드시 밑받침되어 주어야 했다.
물론 너무 현실을 기반으로 하는 나머지 게임 속 우선순위에 비껴 나갈 때가 있다. 그러나 그땐 시청자라는 치트키가 있었다. 정확힌, 훈수를 안 받는다고 했는데 기어코 훈수를 두는 청개구리들이 있다.
그러니 괜찮았다. 은우는 첫 번째 트라이치고 제법 훌륭한 1일 차를 보냈다.
“피난처 구멍 보수에, 침대 제작에, 식량, 약. 할 게 많습니다.”
기실 그는 굳이 침대를 제작할 생각은 없었다. 발이 땅에만 닿아 있으면 어디서든 자는 게 인간 아니던가. 그것만 생각하면 제작해서 얻을 메리트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침대는 필수란 시청자의 조언에 어쩔 수 없이 제작 순번을 위로 올렸다. 훈수는 거절하고 있지만, 이미 들어 버렸으니 어쩔 수 없다.
“이런 점은 좀 불편하네요.”
은우는 캐릭터들을 보며 사람들이 꼰대가 되는 심정을 이해했다. 침대는커녕 다리를 피는 것도 사치였던 이들이 있건만, 게임 설정이라 해도 침대를 요구하다니. 고생을 덜했다.
그는 게임이라서 주어지는 편의성과 게임이라서 사라진 현실성을 비교하며 고개를 살짝 저었다.
“온도가 표기되는 걸 보니 그에 관한 것도 나올 것 같은데……. 역시 겨울 쪽일까요.”
물론 여름 또한 음식이 빨리 썩고 땀이 나서 물이 금방 부족해진다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여름은 그늘에만 있으면 일단 더위로 죽기 힘들다. 집 안에 있어도 동사할 수 있는 겨울과 다르게.
─이분 1트 맞음?
─왕은 예습같은 거 안한다 이마리야
─진짜 의외로 머리가 좋으셔
─의외로 ㅁㅊㅋㅋㅋㅋ
─켄 돌려까기
“안 해 봤다니까요.”
은우는 사람들의 의심을 거부하며 일단 밤에 오는 이벤트를 맞이했다. 08:00 pm이 되면 세 캐릭터가 거실에 모여 하는 작전 회의가 바로 그것이었다.
이때 시간은 흘러가지 않지만, 플레이어가 결정해야 할 건 있다. 세 캐릭터가 밤 동안 할 일이다.
“탐색, 수면, 불침번. 총 3개네요. 근데 침대는 뭔지 모르겠습니다. 좀더 좋은 수면 같은 개념입니까? 많이 다를까요?”
─글세요?
─ㅖ
─ㄹㅇ ㅋㅋ
─네니오
─ㄹㅇㅋㅋ
─ㄹㅇ ㄷㄷ
─해보면 압니다
“…다들 물어보지 않을 땐 훈수를 두시면서, 이럴 때만 말을 참 잘 들으시는군요.”
필요하지 않을 땐 난리면서 정작 필요할 때 입 다무는 솜씨들을 보아라.
은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3명이니 한 명은 수면, 한 명은 불침번, 한 명은 탐색을 해야겠는데…….”
혹시 두 명이 동시에 탐색 가능한가 살펴보면 역시 안 된다. 대신 듣기론 2일 차부터는 낮 탐색도 가능하다고 하니 그걸 잘 이용하면 될 것 같다.
“캐릭터마다 주머니 칸이 다르니 많이 들 수 있는 캐릭터를 수집에 쓰는 게 좋겠습니다.”
은우는 상태 이상이 걸려 있는 제이콥을 재우고, 멀쩡한 두 캐릭터 중 가방이 큰 콜린을 탐색꾼으로 선택했다.
이제 지도를 살피면 갈 수 있노라 불이 밝혀진 곳은 3곳이다.
고요한 집, 파괴된 집, 낡은 연립주택. 손으로 짚으면 설명이 살짝 떠올랐다. 얻을 수 있는 물건이나 위험도 정도였다.
피난처를 정리하며 상당량의 아이템들을 얻었다지만, 식량이나 약 같은 것들은 있어도 있어도 부족하다. 더구나 피난처를 보수하려면 온갖 자재가 필요했다. 챙겨 갈 게 많았다.
─고요한 집ㄱ
─고요한집?
─저긴 국룰이지~
“고요한 집?”
은우는 사람들의 추천에 한번 설명을 보았다.
『고요한 집』
사람들의 발길이 쉬이 닿지 않는 외곽 지역의 주택. 조그만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이 지역은 대부분 평화와 정적을 사랑하는 이들이 살아가고 있다. 그렇지만 여기서 무언가를 얻으려면 무언가를 버려야 할 것이다.
*많은 음식 *많은 약 *많은 자재
그는 그 설명을 가만히 읽어 보았다. 위험도는 없고 음식과 약이 많다면 제법 갈 만하다. 다만…….
“이거, 시간이 지나면 자원이 없어집니까?”
─ㅖ
─ㄹㅇㅋㅋ
─사라져요
─킹쎄요?
─학생! 대답하면 안 된댔지!
─아ㅋㅋ ㅈㅅㅋㅋㅋ
─ㅋㅋㅋㅋㅋㅋ
약과 식량은 당연히 중요하다. 그렇지만 은우가 보기에 초반에 제일 중요한 건 약과 식량이 아니라 물건들을 제작할 수 있는 자재 같았다.
식수대나 취사 도구의 경우, 당장 자재는 많이 들어도 장차 소모될 식량과 물의 양을 줄여 줄 테니 말이다. 요컨대 현재를 보느냐 미래를 보느냐다.
“하루 이틀 만에?”
─글쎄요?
─그럴 수도 잇고 아닐 수도 잇겟죠
─ㄹㅇㅋㅋ
─자원 마음이 아닐까요?
─ㄹㅇ ㅋㅋ만 치라고!
“여러분들의 단합력에 찬사를.”
은우는 조금 고민하다가 다른 집들을 확인했다. 그리고 주판을 두드려 보았다.
아직 세 캐릭터에겐 굶주림, 피로함 등의 상태 이상이 붙지 않았다. 또한 식량 및 자원이 넘쳐나도 지킬 수 없다면 무소용이다.
하면 역시 무기가 있다 뜨는 파괴된 집이 나을 테다. 위험도는 똑같이 없되 한쪽은 언제 얻든 똑같은 가치의 자원이고, 한쪽은 미리 확보해 두면 더많은 가능성을 잡을 수 있는 무기니까.
아무렴 약과 식량은 약탈로도 얻어 낼 기회라도 있지만, 무력이 없으면 기회를 잡기는커녕 기회를 만들지도 못한다. 전쟁에 있어 무력이란 이다지도 중요했다.
“…아.”
이다지도 중요한데, 당신은 그래도 아닐 거라고 할 것 같다.
─?
─뭐 떠올리심?
─ㅁㅇㅁㅇ 레전드각?
“…아뇨, 별것 아닙니다.”
은우는 쇄골께를 긁었다. 움푹 파인 자리를 손톱이 가로지를 때마다 간지러운 느낌이 든다. 마치 심장을 긁는 듯한 간질임이었다.
“오늘은 여기부터 털겠습니다.”
그는 결정을 내렸다. 파괴된 집을 선택하고 출발하기를 누르자 한 개의 절차를 더 걸친 끝에 시야가 검게 물들었다.
곧 보인 건 새로운 집이었다. 앞마당에도 조사 포인트가 있고, 건물 안에도 있다. 다만 피난처와 달리 이 건물은 안이 보이지 않았다. 캐릭터가 다가가서 안을 확인해야만 그 시야만큼 보였다.
“여긴 일인칭으로 가겠습니다.”
이 게임의 커다란 특징이라고 한다면, 그건 일인칭을 지원한다는 점이다. 물론 지금도 은우는 자기 자신에게 한해서 일인칭이긴 했다. 그러나 지금 말한 건 캐릭터에 대한 일인칭이었다.
은우가 조작 키를 건드린 순간, 그의 시야가 뒤바뀌었다.
긴장감 주는 BGM 대신 현실과 같은 적막함이 가장 먼저 귀를 꿰뚫고, 눈을 감은 상태의 밝기 또한 더 낮아졌다.
곧 눈을 뜨면 방금 전까지 탐색하고 있던 콜린의 시야가 그의 눈에 한가득 펼쳐진다.
빙의라고 하기엔 육체는 그의 것을 따라갔으니, 대타라고 말하는 게 좀 더 적당할 것이다.
어두운 밤과 맞물려 음산한 형태의 부서진 집이 시선이 닿는 모든 장소를 막았다.
“이건 봐도 봐도 신기합니다.”
일인칭 기능을 쓴다고 해서 큰 편의점이 있진 않다. 시간은 똑같이 10초에 30분씩 지나가고, 수집에 걸리는 시간 또한 동일했다.
단지 편의가 있다면 이동 시 소음을 줄일 수 있다는 점과 삼인칭으로 보는 것보다 더 넓은 시야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은우는 발목을 통통 푼 후 본격적으로 집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삼인칭으로 볼 때와 달리 거리가 생겨나고, 하늘과 달이 떠오른 세계가 조그만 인간을 내려보았다.
새벽이 하나둘, 팔을 뻗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