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자도 방송할 수 있습니다-141화 (141/233)

141화

스토리의 끝, 여덟 번째 도시에 도착했다.

그곳은 이미 은하성교단에 의해 점거된 수준이었다.

곳곳에서 신도나 귀신들이 돌아다니고, 시민들은 집 안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가끔 위험을 무릅쓰고 나온 시민들은 귀신이나 신도들에게 포위되어 어쩔 줄 몰라 했다. 무시해도 되지만, 은우는 구태여 그들을 하나하나 구해 주었다.

약해 빠진 것들이 으스대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근본적으론 권장 레벨보다 낮은 여실형들 때문이었다.

“협회는 그래도 제대로 기능하네요.”

─그러게요

─협회 일을 하긴 하는구나...

─왜 다들 공권력에 신뢰가 없음ㅋㅋㅋ

─헬민국에 살면서 신뢰가 잇겟음?

─ㅋㅋㅋㅋㅋㅇㅈㅋㅋㅋㅋㅋ

열 번 가까운 전투 끝에 도착한 협회는 거의 전쟁 준비를 한 것 같았다. 입구에 바리케이드가 설치되어 있는 건 물론, 출입 검사도 빡빡했다.

안쪽엔 대피해 온 사람들도 있었다.

“협회가 왜 이 꼴이냐고? 말하자면 상당히 긴데……. 최대한 간단히 말하자면, 며칠 전부터 은하성교단이 대놓고 날뛰기 시작해서 그래.”

“외부 지원이 벌써 올 줄은 몰랐어. 아, 지원이 아니라고? 그래도 괜찮아. 모내기에는 고양이 손도 빌린다잖아?”

“안 그래도 지원 요청을 하려던 참인데, 그사이에 일을 벌일 줄은 몰랐어.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협회 안 NPC들이 떠든 말이었다. 부상자들도 꽤 많은지 병동 쪽은 더 북적북적했다. 치료 담당 기술자가 퀭한 얼굴로 복도에서 그를 맞이했다.

“못 보던 얼굴인데……. 쉴 곳? 아… 바깥에서 누가 왔다더니 그게 너구나. 안타깝지만 병동은 더 이상 사람을 받을 여력이 없어. 대신이라긴 뭐하지만, 내 사무실에서 쉬어도 돼. 체력 정도는 회복할 수 있겠지. 그래도 괜찮다면 안내해 줄게.”

“휴식은 본인이 제일 필요한 것 같은데…….”

─다크서클 ㅗㅜㅑ;;

─공무원이면 칼퇴가 진리 아니냐고

─저래서 공무원이 욕먹는 거 아니냐ㅋ

─칼퇴가 왜 욕 먹음ㅋㅋㅋ

─칼퇴는 욕먹으면 안 됨....책임감 없는 애들이 욕 먹어야지...

별개로 질문할 건 있다.

“풀피 못 채웁니까?”

─아녀

─채워져요

그냥 상황의 심각성을 보여 주기 위한 건가 보다. 이런 사태라면 전부 회복하지 못한다 해도 이해할 수 있는데.

바닥에 눕는 것조차 사치였던 시기를 떠올리며 안내를 수락했다. 눈앞이 잠깐 검게 물들었다가 도로 돌아왔다. 달라진 게 없지만 일단 휴식했다는 설정인 모양이다.

“푹 쉬었다면 좋겠네. 쉬고 싶으면 언제든 말해. 그때 가선 환자가 점령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괜찮네요, 이런 식도.”

부대 정보를 확인하면 전원 체력이 회복되어 있다. 여휘의 영력도 가득이었다.

“그럼 바로 가 볼까요. 가챠는 스토리 끝난 후 몰아서 하겠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이번에 가챠햇었음 노트 뽀갯다

─켄님 운빨 개사기....

─이미 엔간한 여휘들 농락할 부대완성이잖어;;

어차피 지금 부대도 전력 과다다. 레벨링도 적당히 되었고, 죄다 고성능 여실형이니. 심지어 시청자 말로는 실전에 써먹을 수 있을 정도로 개체치가 좋다 했다. 뽑기 운 하나는 독하게 타고난 느낌이었다.

─근데 켄님 원거리가 너무 없는듯?

─그러네 원거리가 둘 밖에 안 되네;;

─그마저도 하나는 서포터라서

“문제 있습니까?”

─원거리 있음 쉽게 잡을 수 있는 보스들이라

─켄님이 치트킨데 갠찮을 듯??

─아 뭘 말함 켄이면 끝임 ㅇㅈ?

─켄 혼자 보내도 쌉가능;;

─믿습니다 켄-멘

“그러면 됐습니다. 바로 출발하죠.”

은우는 스토리 끝난 후를 기약하며 여실형 제작실을 지나쳤다. 목표는 메인 퀘스트가 진행될 만한 장소다.

▣ 141. 함부로 남의 물건 받으면 안 된다

“지나가게 내버려 둘 것 같으냐!”

“이 게임을 하면서 계속 생각한 건데 말입니다.”

은우는 레더페이스의 전기톱으로 상대 여실형을 박살 내며 말했다.

“왜 여휘 본인은 타격할 수 없을까요?”

─아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ㅇ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실형을 설명할 때 분명 말했다. 여휘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고. 그렇다면 여실형 전부를 상대하며 시간 끄는 것보다 여휘만을 노리는 게 효율적이지 않나?

─님 이거 15세이용가예요ㅋㅋㅋㅋ

─답답한 건 알겟는데 진정하세요ㅋㅋㅋ

─육성겜에서 여휘부터 조질 생각하는ㅋㅋㅋ

─이름값 너무 열일하시는 거 아니냐고

“압니다. 그냥 궁금했을 뿐입니다.”

솔직히 그쪽이 더 있을 법한 일인 건 맞지 않나.

은우의 발차기가 상대의 옆구리를 쓸고 지나갔다. 몸이 워낙 둔하다 보니 움직이지 않고 상대를 끌어들인 후, 발재간으로만 교묘히 피하고 때리는 게 기본 술책이다.

커터 칼이 빛 가루로 화했다.

“크윽, 내가 지다니!”

은하성교단의 조무래기가 주저앉고, 은우는 그 옆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여미지 않은 정장 자켓이 살짝 팔락거렸다.

그렇게 그는 은하성교단의 본거지를 본격적으로 정복하기 시작했다.

1층에서 7층, 8층에서 6층 등 멋대로 옮겨 버리는 포탈이나 미로 따위가 그를 가로막았지만, 의도대로 당해 주진 않았다. 그러기엔 퍼즐이 너무 쉬웠다. 층이 꽤 광범위하다 해도 마찬가지였다.

“드디어 새로운 곳으로 왔네요.”

─와 나 저거 일일이 기록하면서 햇는데

─난 안 했다가 1시간 반동안 뺑뺑이 돔;;

─능지on

─이분 진짜 뭐하는 사람이야

진입 40분도 안 돼서 포탈로만 들어올 수 있는 방에 도착했다. 은우는 그 안에 있던 은하성교단을 가뿐히 해치우고 두 개 있는 포탈을 가만 내려다보았다.

“왼쪽, 오른쪽?”

그가 타고 들어온 포탈 외에 2개다. 그는 시청자들에게 선택을 맡겼다.

─왼왼

─오른쪽ㄱㄱ

─왼!

─오른쪽 가시면 후회하실 텐데ㅋ

─오른쪽 갑시다!!

─스포 ㄴㄴ

“오른쪽이 좀 더 우세하네요. 오른쪽으로 하겠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선택을 따라 오른쪽 포탈을 밟았다. 검붉은색 균열을 통과하면 물에 뛰어드는 차가운 기분과 함께 세상이 곧바로 밝아진다.

타닥.

구두 굽이 바닥에 닿았다.

“여긴…….”

은우는 느슨해진 넥타이를 고쳐 매며 주변 풍경을 둘러보았다.

“7층이네요.”

이미 왔다 간 층이다. 회복시켜 주는 이가 숨어 있긴 하지만, 필수 경유 층은 아니었다.

이럴 땐 보통 다시 포탈을 타고 되돌아가지만… 뒤돌아보면 그를 여기로 보낸 포탈이 보이지 않는다. 일방향 포탈이었다.

“3층으로 다시 내려가야겠습니다.”

─앗

─낚였누ㅋㅋㅋㅋㅋㅋㅋㅋ

─다시 처음부터!

─회복하라고 보내버리네ㅋㅋㅋㅋ

─아ㅋㅋㅋ다시 풀라 이거야

─강해져서 돌아와라!

사람들이 웃는 사이 그는 빠르게 기억을 되짚어 길을 찾아냈다. 3층부터 시작해 5층, 6층의 포탈을 거쳐야만 아까 그 방으로 갈 수 있다.

─와 기억력 갑이신듯;;

─이걸 단번에 찾네

─와! 천재!

“좋아하는 것만 기억하는 타입인지라 그렇게 부러워하실 것 없으십니다. 시험은 저도 못 봅니다.”

─게임이라도 잘하는 게 어디냐고ㅋㅋㅋㅋ

─시험까지 잘 보면 사기지

─공부 못한다고 고백할 때마다 귀엽누;;

─사람은 원래 좋아하는 것만 기억하는데요ㅋㅋ

─유일한 인간미가 성적이라니...

─이래놓고 막 한국대인 거 아님?

─아니지 형? 이것마저 배신 아니지?

“그 부분은 걱정 놓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6층에 3층으로 바로 가는 포탈이 있는지라, 은우는 계단을 타고 한 번만 내려왔다. 엘리베이터가 있긴 하지만, 그건 쓸 때마다 은하성교단 조무래기 한 명과 대전을 해야 했다. 좀 귀찮다.

“이걸 타면 바로 보스일 것 같진 않고, 아마 간부가 나오겠죠.”

확정된 길을 다시 걷는 건 다 식은 피자를 자르는 것만큼 쉽다. 과연 리하스가 나올지 려화가 나올지, 아니면 스왈로센이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은우는 아까와 달리 왼쪽 포탈을 밟았다. 차가운 감각과 함께 이 건물에 진입하고 나서 처음 보는 광경이 펼쳐졌다.

“역시나, 여기까지 왔구나.”

정중앙에 있는 건 리하스였다. 양옆에는 려화와 스왈로센이 있다.

셋을 다 상대하는 건가? 은우가 살짝 눈썹을 들어 올릴 때, 스왈로센이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하, 거사가 코앞이건만……. 려화, 당신이 처리하십시오.”

“잠깐, 저 녀석은 내가 처리한다고 했잖아!”

“리하스, 당신은 이미 두 번이나 패배했습니다.”

스왈로센은 지금까지 보였던 모습과 달리 퍽 강압적으로 나왔다. 옷차림도 평소 하얗던 교주복이 아니라 새까만 사제복이다.

“그렇게 치면 려화, 저 녀석도……!”

“말은 똑바로 하지. 나는 실패한 게 아니라 상황에 맞춰 후퇴한 거다.”

“려화, 당신이 맡으십시오. 리하스, 당신은 문을 지키고.”

그분 운운할 때부터 알아채긴 했지만, 저들 대화를 보아하니 역시 스왈로센은 교주가 아닌 게 분명하다. 같은 간부여도 저 둘보다 직급이 높은 듯하지만.

뭐, 그래 봤자 다 때려잡아야 하는 목표에 불과하다.

“이번엔 반피 같은 제한은 없겠죠.”

─예압

─이번엔 없습니다

최종 상대는 아무래도 려화일 모양이다. 은우는 부들부들 떨면서도 순순히 문 앞으로 물러나는 리하스를 보았다. 재미는 려화 쪽이 더 있었으므로 별 불만 없다.

“…젠장, 알겠어. 대신 너희! 옆방으로 꺼져! 좁아 터진 곳에서 통로 무너트리지 말고!”

“하, 그래. 네놈이 휘말려 뒈질지 모르니 옮길 필요는 있겠군. 열쇠나 내놔.”

리하스는 입술을 비죽거리며 열쇠 뭉치를 던졌다. 열쇠 뭉치엔 키링이라고 하기엔 좀 큰 구 형태의 장식이 붙어 있다.

“이건 또 뭐야.”

려화는 그걸 미심쩍게 보다가 일단 방에 입장부터 했다. 본인이 먼저 들어가되 여실형을 바깥에 남겨 두는 행위는 주인공이 무시하고 지나칠 것을 대비하는 것이다.

게임인 이상 ‘무시하고 간다’ 따위 가능할 리 없으므로 은우는 순순히 옆쪽 방에 입장했다. 리하스의 ‘뒈져 버려.’ 하는 말소리가 크게 들렸다.

“이번에는 봐주지 않는다.”

놀랍게도 려화는 본인이 직접 막야를 잡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판도라도 함께 들었다. 초반 안내 NPC가 말했던, ‘천고의 기재가 아닌 이상 여휘의 역량이 못 버틴다’는 동시 진여화였다.

오른팔로는 항아리를 휘감고, 왼손에는 기이할 정도로 긴 백색 검을 쥔다. 나풀거리는 망토 자락은 꼭 그녀를 유령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겉은 새까만 주제에 망토 안감에선 요사스러운 빨간빛이 흘러나온다.

“살아 돌아갈 거라 생각은 마라.”

『려화가 승부를 걸어왔다!』

보스전을 알리는 알림 창이 떠올랐다.

“첫 번째 재앙.”

려화의 말과 함께 항아리가 열리며 검은 연무가 흘러나왔다. 허공에서 낙하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바닥에 범위가 표시되고, 낙하물이 떨어지며 대지를 흔든 뒤 사라지는 식이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바닥이 파괴되진 않았다.

“진짜 레이드 같네요.”

은우는 그걸 보며 나름 감탄했다. 이쯤 되면 최종 보스가 려화보다 못한 건 아닌지 의심될 정도다.

─간지 폭풍ㅠㅠㅠ

─볼땐 간지인데 상대할 땐 욕나오는,,,,

─누나아아아아 나죽어어어어어

─특) 진짜 죽인다

그는 혹시 몰라 진여화 대상을 쉬레스타로 교체했다. 아직 패턴에 대해 잘 몰랐으므로 다른 여실형은 꺼내지도 않았다.

려화의 무릎이 굽혀졌다.

팡, 하는 소리와 함께 려화가 그를 스쳐 지나갔다. 은우가 다급히 쿠크리의 굽은 날을 이용해 칼을 흘려보내지 않았다면 제대로 공격이 들어갔을 것이다. 그마저도 보고 행한 게 아니라 직감에 얻어걸린 것이었다.

지이이익-

려화의 구둣발이 대지 위를 미끄러졌다.

은우는 그의 팔뚝에 그림자가 지는 걸 확인하고 낙하물의 반경을 벗어나는 중이다.

“너무 빠른데…….”

이건 혼자서 잡으라고 만든 게 아니다. 레벨로 찍어 누른다면 모를까, 동 레벨일 때는 능력치가 너무 밀린다.

“원거리가 필요하단 게 이런 의미였군요.”

전 게임들이 인간의 손에서 빠져나가는 모기의 심정이었다면, 이건 스포츠카를 따라잡는 인간의 심정이다. 방금 전은 요행히 회피할 수 있었지만, 앞으론 못 피할 거다.

사람들이 원거리를 추천한 이유를 알겠다.

─진짜 려화는 딜찍누가 최고야...

─힐러 하나랑 힐탱 하나 세워두고 원거리로 채우면 편함

─뒤 보스들은 근딜 잇음 편한데,,,걍 딜찍누 밀고 가도 돼서ㅋㅋㅋ

─려화 밀 수 있음 뒤에도 다 밀림 대신 려화 못 밀면 뒤도 다 막힘

─보스 수듄;;

“그래도 전 레이드다워서 마음에 듭니다.”

은우는 리하스를 잡았던 그때처럼 냉정히 판단을 내렸다. 쉬레스타가 진여화에서 풀려나고 톤파가 그에게 쥐어졌다.

“스코프에 누구를 담으면 됩니까?”

“제가 없으면 뭘 하지도 못하나 봅니다.”

꺼내진 여실형은 SVD와 제이드 바인이었다. 다 소환된 게 아닌지라 형성된 진형은 저게 진형인가 싶은 수준이다. 그마저도 떨어지는 낙하물이 흩트리기까지 한다. 별로 문제없었다.

은우는 가장 먼저 제이드 바인을 통해 버프와 디버프를 떡칠했다.

동시에 진여화한 톤파의 도발 스킬을 발동했다. 이러면 한 대 맞을 때까진 효과가 지속된다.

막야와 합쳐진 려화가 냉큼 달려들었다. 참격이 바닥을 가르고 진각 밟는 소리와 함께 무거운 찌르기가 쏟아졌다.

속도 차이로 인해 피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어차피 입을 피해, 최대한 줄여야 한다.

은우는 스킬을 사용해 방어력을 끌어올렸다. 그의 걸음이 한 발 반 물러나면 아슬아슬하게 낙하물 반경에선 벗어난다.

쾅!

교차한 톤파의 정중앙을 려화의 막야가 찔렀다. 충격파가 일며 그의 체력 바가 쭈욱 달았다.

“저격수를 두고 방심하다니, 어리석군요.”

진화하며 대미지가 더 올라간 SVD의 공격이 작렬했다. 제이드 바인은 낙하물을 피한다고 노력은 하는데, 어정쩡하게 한 대씩 맞고 있다. 아직 한 게 없는데도 피가 삼분지 일이 날아갔다.

“제이드 바인, 내 뒤로.”

“영 마음에 안 드네요.”

제이드 바인이 총총 그의 뒤로 오고, 은우는 난도질할 것처럼 덤벼드는 려화의 검을 방어했다. 회복 스킬이 발동하자마자 잔흔 게이지를 뚫고 최대 HP 좀 못 미치게 피가 채워졌다.

은우는 그 상태에서 돌진했다.

“SVD, 팬텀 호라이즌.”

난도질의 여파로 생긴 약간의 경직을 이용하면 턱주가리를 후려치고 그 쇄골 사이를 톤파의 끝부분으로 내려찍을 수 있다.

넉 백으로 인해 려화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저거 진짜 아픈데;;

─현실이엇음 최소 함몰

─ㅇㅈ....뼈 무조건 부러졌다

사람들이 그 고통에 공감하는 동안 밀려난 적의 몸에 겨냥 표적 마크가 떠올랐다.

“거깁니까?”

SVD의 총알이 쏟아졌다. 속도를 제한 근접 스탯이 4성 최하를 달리고 피도 종잇장 수준이라는 약점을 대가로 갖춘 화력은 레이드 보스의 피를 1/5나 까 버린다.

─크, 뽕맛;;;

─카아, 저격총들은 이맛으로 쓰지

─죽창이엇음 이것보다 뽕맛 개쩔텐데

─죽창ㅋㅋㅋㅋㅋㅋㅋ

─아 죽창은 킹정이지ㅋㅋㅋ

체력이 워낙 낮은 탓에 한 대만 잘못 맞아도 빈사지만, 이 화력 하나만큼은 파티 최정상이다. 은우의 손이 SVD의 뒷덜미를 잡고 낙하물 반경에서 빼냈다.

“두 번째 재앙.”

항아리에서 또다시 검은 연무가 흘러나왔다. 그것은 그대로 공기에 녹아들었는데, 첫 번째와 달리 바로 눈에 보이는 현상은 일어나지 않았다.

─제일 거지같은 재앙....

─근접도 원거리도 둘다 싫어하잖어

─뭐길래?

─보다보면 보임

그러나 눈에 띄지 않는다 해서 영향이 없는 건 아니다. 사람들이 말해 주기도 전에 은우는 두 번째 재앙이 뭔지 알아챘다.

“이건, 꽤 난이도가 높네요.”

바람이었다. 갑자기 돌풍이 불며 그들의 몸을 밀어냈다. 물론 전조 증상은 충분히 있었다.

은우는 려화의 막야를 막아 내며 제이드 바인을 밀쳤다. SVD는 그나마 잽싸서 낙하물 반경을 거의 벗어나는 편인데, 제이드 바인은 그것도 잘 못 한다.

바람이 은우의 뺨을 간지럽혔다.

왼쪽으로 밀리겠네. 은우는 그것을 감안해 발을 상공에 띄웠다. 대지에 닿지 않은 몸은 순간 분 돌풍에 더 많이 밀려났다. 낙하물 반경에서 알아서 빠져나왔다.

그 와중에 은우는 허우적대는 제이드 바인까지 낚아채 같이 대피했다.

─보모ㅋㅋㅋㅋㅋ

─와 저걸 저렇게 피하네;;

─그래도 이러면 깰듯??

─레벨 100아닌 이상 원딜 가능한 애들 최소 둘은 필요하다는 게 정설이었는데

─켄한텐 정설 절대 안 통하쥬?

은우는 다시 한번 도발 스킬을 발동했다. 제이드 바인을 굳이 집어넣지 않는 건 그의 스킬 중에 적의 스킬을 취소시키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제이드 바인의 스킬 방해나 한 대 맞고 회복하나 쓰이는 영력 양은 거기서 거기긴 하다. 그러나 스킬 방해의 경우 일시적 경직 효과를 줬다.

“거깁니까?”

그 경직 한 번이면 SVD가 적의 피를 ⅕이나 날려 버릴 수 있다.

도발에 맞춰 공격하려던 려화가 일순 움찔하고, 피가 쭈욱 깎였다. 거기에 은우가 그 머리를 내려치면 피는 더 날아갔다.

돌풍이라는 변수는 반사 신경과 임기응변에 능한 은우의 존재로 인해 약간의 까다로움만 더했을 뿐이다.

“세 번째 재앙!”

피가 ⅓로 내려가자 려화가 다급히 외쳤다. 연무가 바닥에 깔리며 새로운 재앙을 불러들였다. 세로로 아직 낙하물이 꽂히는 와중에 가로로 광선이 쏘아지는 패턴이었다.

─와 패턴 미쳤냐ㅋㅋ

─어지간한 RPG 레이드 패턴 저리가란데

─그저 죽음뿐;;

─이거 탱커만 남겨두고 다 집어넣은 다음에 버티심 됨요

─게임 장르가 바뀌었는데요?

─켄님 탱커만 남겨두고 다 집어넣으세요!

은우는 사람들의 충고를 반만 받아들였다. 제이드 바인도, 진여화했던 톤파도 모습을 감추었다. 남은 건 SVD뿐이다.

“무엇이든 명중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SVD는 그의 손에 잡혀 사물로 되돌아갔다.

구두 신은 발이 대지를 박차고, 날아온 돌풍을 이용해 옆으로 몸을 비틀면 날아오는 광선과 교차되게 총구를 겨눌 수 있다.

여실형이 직접 스킬을 발동하면 멈춰 서서 장전하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진여화 상태는 좀 더 융통성 있게 할 수 있다.

은우는 장전된 총을 려화에게 겨눴다. 마침 일직선 찌르기 패턴이라서 방향을 예측할 것도 없었다.

탕!

찌르기 검이 그의 목덜미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고, 려화의 배에 총알이 박혀 들어갔다.

SVD의 체력에 반비례하는 화력은 려화의 남은 피를 주욱 깎고 말았다.

“내가, 졌다고?”

강제로 진여화가 풀린 려화가 무릎을 꿇었다. 바닥으로 떨어진 막야의 검이 소녀로 변했다가, 소녀가 눈을 감는 동안 빛 가루로 화해 부서졌다.

“아…….”

려화의 눈이 크게 확장되었다. 고통스럽다거나 슬프다기보단 멍한 표정이었다. 그녀의 항아리가 빛줄기와 함께 여실형 상태로 돌아왔다.

“재앙이 희망에게 졌구나.”

판도라의 상자는 어딘가 즐거워 보였다. 손짓이 유독 선명해서 그런가, 표정을 알아볼 이목구비가 없는데도 그게 잘 느껴졌다.

“조용히 해.”

려화는 짙은 숨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얼굴은 어딘가 화난 것 같으면서도 평소처럼 냉정하다.

“네가 이겼다.”

그녀는 승패를 시원하게 인정했다.

“리하스가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지만, 네 실력이라면 별거 아니겠지. 막든지 말든지 맘대로 해.”

지금까지 검을 몇 번이나 맞댔던 것치고 허무하지만 납득되는 결말이었다. 려화는 충성적인 악당보단 얻고 싶은 게 있어 협력하는 관계 쪽에 가까웠으니까.

그리고 그 순간, 려화가 들고 있던 열쇠 뭉치의 키링에서 빛이 흘러나왔다.

“뭔…….”

그 빛은 순식간에 판도라의 상자를 휘감았고, 그 상태에서 파동 형태로 힘이 퍼져 나갔다.

그 순간 은우의 여실형들이 무너졌다. 사물 상태로 ‘돌아갔다’에 더 가까운지도 모른다.

갑자기 드는 현기증에 은우는 가까스로 균형을 잡았다. 려화는 피를 토하고 있다.

“리하스, 망할 놈이…….”

“영리한데…….”

─? 뭐임??

─ㅁㅇ??

─본인 일인칭인데 왜 시야 흔들리냐

─켄이 흔들려서요

─납득햇다

사람들이 상황 파악을 하는 사이, 리하스의 수에 은우는 나름 감탄했다. 졸렬하긴 하지만, 이 또한 싸움의 한 방법이었다. 그것에 그가 휘말렸다는 건 그다지 달가운 일이 아니지만.

그보다 여실형들이 다 이렇게 되어서야. 은우는 걸어 보려 노력했다. 발바닥이 대지랑 딱 붙어 있어서 실패했다. 시스템 제한이다.

“흠, 스토리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문이 벌컥 열렸다. 뛰어 들어온 건 려영이었다.

그는 다급하게 그들에게로 뛰어왔다. 뒤늦게 들어와서 여실형을 사물로 되돌린 힘의 영향을 안 받나 싶기엔 그의 곁에 여실형이 없다. 잘 보면 입구에서 간장이 걱정 어린 얼굴로 발만 동동 구름을 알 수 있다.

“부탁해.”

려영의 손이 성배를 은우의 손에 내려 두듯 쥐어 주고, 그의 몸은 려화에게로 향했다.

성배가 손에 쥐어진 찰나, 살짝 답답하던 속이 확 풀어졌다. 반대로 려영의 입술 사이로는 피가 흘러나왔다. 아무래도 성배가 일종의 보호막 같은 역할인 모양이다.

“함부로 남의 물건 받으면 안 된다고, 누님.”

려영은 바닥에 떨어진 열쇠 뭉치를 벽 쪽으로 걷어찼다. 동시에 그 몸이 허물어지며 려화를 뒤덮듯 했다.

쾅!

걷어차인 열쇠가 폭발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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