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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자도 방송할 수 있습니다-131화 (131/233)

131화

“그간 수고했다.”

히어로 본부장은 그 말과 함께 그를 특수 감옥 안에 넣었다.

죄명은 모른다. 본부장의 말을 따르느라 워낙 많은 죄를 지은 것도 있고, 그것으로 부족하면 새로 지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히어로 본부장의 권력은 그래도 되었다.

다만 이런 장면은 보통 컷신으로 넘어가는 편인데, VAV는 그런 것 모른다는 듯 플레이어에게 자유를 주었다. 시스템적으로 구속을 안 했을 뿐, 입고 있는 구속구는 그를 속박했지만 말이다.

시야를 가린 안대, 입 근육이 당길 정도로 꽉 물린 재갈, 팔을 등에 붙이도록 하는 결박 천, 다리뿐 아니라 상체까지 꽁꽁 묶은 가죽끈까지.

삼인칭으로 본다면 도롱이 벌레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은우는 이 게임이 침까지는 구현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경험상 재갈 물리면 침 고이는 게 제일 고역이다.

그리고 대략 20초 정도 되는 시간이 흘렀다 싶을 때, 멀리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는 소리, 쓰러지는 소리, 무언가가 열리거나 해킹이 되거나 하는 소리가 이어졌다.

그야 냉정하게 감상할 수 있는 배짱이 있다지만, 겁이 좀 많다면 공포물처럼 여겨질 수는 있을 것 같다.

─아 미친 머야 가아ㅏ아!1

─이건 도저히 1인칭으로 못보겟다..

─켄님 지금 상태가....ㅗㅜㅑ;;

─삼인칭 떡상

─소리만 들리니까 개무서워ㅠㅠ

─곰보겜on!

역시나 비명 지르는 시청자들이 어김없이 나타났다. 그사이 소리들은 계속 이어지고 또 이어지며 그의 바로 앞부분까지 다다른 상태다.

겁에 질린 사람들에게 뭐라 말을 해 주고 싶지만, 재갈 때문에 말을 못 한다. 은우는 목을 이리저리 비틀었다.

철창 열리는 소리와 발걸음 소리가 코앞에서 들려왔다.

“이봐, 나야. 괜찮아.”

발걸음부터 대충 알아채긴 했지만, 목소리를 들으니 완벽하게 확신이 선다. 테일러와 마찬가지로 스토리를 이어 나가던 도중 닿은 인연이다.

테일러가 그처럼 본부장에게 약점 잡혀 부려 먹히는 입장이라면, 저쪽은 고용된 용병이었단 점이 좀 다르겠다. 본부장에게 고용됐을 이가 왜 이러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정말 더럽게 꽁꽁 숨겨 놨군.”

가장 먼저 안대가 풀렸다. 그러자 40대 어림쯤 되어 보이는 여성이 보였다. 검정색 머리카락은 흰색의 영역이 유난히 넓다. 복도에는 또 다른 이들이 서 있었다.

“어서 가지.”

그녀는 그다음으로 재갈을 풀어 주었다. 입이 조금 얼얼한 기분이다.

“아아, VAV하면서 색다른 기분을 많이 느끼는 것 같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속박플을 몇 번이나 당하는 건지...

─켄을 묶은 겜은 이게 처음이야...

─처음인가...?

─처음이라고 해

“그보다 이 사람들이 왜 저를 구하러 왔는지 모르겠네요.”

─평판 때문에 그래요

─평판 낮으면 사형당하게 내비둠

─켄님은평판 높아서 진엔딩쪽 나온 거

평판이 가른다는 결말이 이 부분이었나. 그러나 그것으로만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테일러가 개입했다는 걸 알면 본부장이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 말입니다.”

아무리 그들 사이에 인연이 있다곤 하지만, 테일러 또한 본부장에게 묶인 몸. 후폭풍을 각오하게 만든 계기는 이 인연만으로 납득될 수 없다.

은우는 아직은 알 수 없는 부분에 짐짓 눈썹을 좁혔다.

그사이 용병은 준비해 온 특수 기계로 구속구를 자르고 그를 온전한 자유로 만들어 준다.

은우는 손목을 풀며 몸을 일으켰다. 여성이 손을 뻗어 주었기에 갑자기 풀려난 상태에도 충분히 일어설 수 있었다.

“어이, 이거 받아.”

남자 용병이 그에게 인 이어를 던져 주었다. 은우는 그것을 받아 귀에 착용했다. 그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대가는 톡톡히 치른다 했지?]

“아주 톡톡히 치렀지!”

“우리 팀 목숨까지 걸었으니까.”

용병들이 깔깔대며 웃고 테일러 또한 낄낄 웃었다. 정말 그 이유 때문에 왔을 거라 생각할 수 없는 은우는 그들의 진짜 이유가 뭔지나 추측해 보았다.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건 본인도 토사구팽 신세가 될 걸 알아서 미리 배신한다는 것 정도일까. 물론 아닐 수도 있다.

여성은 그 와중에도 새로운 기계를 꺼내 들어 그의 목에 여전히 걸려 있는 목줄에 대었다. 그 어떤 칼날을 비벼도 끊기지 않던 목줄이 삑 소리를 내며 뚝 하고 분리되었다.

“드디어 풀렸습니다.”

─앗 안돼...!

─초커 왜 뺏냐;;

─이건 켄룩협에서 인정할 수 없는 사안입니다

─켄룩협이 뭔데....아냐 안 물을래

─윗놈 현-명

게임 내내 차고 있던 장비가 떨어지니 기분이 묘하다. 은우는 빈 목을 두어 번 매만지다가 용병들을 보았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용병들은 그를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자, 어서 나가자고!”

대장으로 보이는 여성은 서둘러 가자는 듯 감옥과 복도 사이에 몸을 걸쳤다. 인 이어에 이어 던져지는 것은 가장 흔한 돌격 소총 한 정이다.

은우는 목덜미를 쓱 쓸다가 어깨를 으쓱였다.

“갑시다.”

▣ 131. 개처럼 부려지다 죽기엔 너무 아까운

두두두두!

용병들의 총이 불을 뿜으면 침입자들을 처리하기 위해 달려오던 이들이 쓰러졌다. 이능력자 간수들은 이능력을 다룰 수 있는 자들이 담당했다.

“빨리! 이쪽으로!”

그들은 능숙하게 복도와 계단을 따라 내달렸다. 대체 어떻게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수용소는 벌써 화마에 휩쓸린 상태였다.

범죄자들이 도망치고 간수들은 그들을 잡다 못해 사살하고 있다.

“저쪽!”

용병들은 착착 합을 맞추며 길을 뚫었다. 다만 그들이 총을 쏘지 않아도 바닥엔 이미 시체가 한가득이었다.

피가 흐른 형태나 퍼진 정도를 보면 죽은 지 꽤 된 것 같다.

“바깥이 엄청나게 시끄러운 게, 이쪽만 몰려온 건 아닌가 봅니다.”

은우는 그 많은 용병이 쏘기도 전에 먼저 코너에서 나타난 적을 죽였다. 다만 잘 보면 그들은 탈옥하는 무리를 막으러 온 것보다는 무언가에게 쫓겨온 것에 가깝다.

“목표가 탈출한다!”

“잡아!”

“어떻게든 막아!”

코너를 돌면 간수복 차림이 아닌 이들이 간수들을 쫓다 말고 그들에게로 총구를 돌리고 있다.

[참고로 히어로와 히어라인, 협회 소속 직원들이 싸울 때 어서 탈출해야 해.]

테일러가 인 이어로 친히 설명을 해 주었다. 수용소는 현재 세 집단의 각축장이 되었으며 그들의 목표는 전부 은우, 그러니까 주인공이란 사실이었다.

[우리 과묵한 친구가 졸지에 사탕이 돼 버린 이유는 간단해! 지금껏 네 위상이 이글스의 탈출한 실험체 A였다면 이제부턴 이글스의 탈출한 성공작 A거든!]

“성공작이라는 건…….”

[네 재생력, 선천적인 능력이 아니라며? 크으, 어째서 이 기막힌 사실을 비밀로 한 거야? 숨긴 능력은 대체 뭐고? 오, 물론 네 입이 조개처럼 다물려 열리지 않을 거란 건 나도 잘 알아. 그냥 물어보는 거야.]

“제 능력이 이능력 아닙니까?”

─어,,,,모르겟어요

─재생은 이능력 아닙니다

─바크리트 어서 나와봐

─안되 그 단어만은...!

─‘그 발언’

─그들이 온다! 도망쳐!

갑자기 들이닥친 정보에 사고가 살짝 꼬였다.

재생이 그가, 주인공이 타고난 이능이 아니라 실험의 산물이라고 하자. 그렇다면 이제껏 이능력이라 치부되었던 건 뭐고, 이제 와서 아니라고 하는 건 뭘까?

숨긴 능력은 또 대체 뭐고?

「‘바크리트왔다’ 님이 ‘1,000원’ 투척!

세이브 로드가 이능임ㅇㅇ」

─재생은 낚시고 세이브로드가 진짜 이능이래요

「‘나불렀냐?’ 님이 ‘1,000원’ 투척!

지금껏 셉롣 때문에 이능 1탐지 된 걸 재생 땜에 탐지된 건줄 오해한 거임」

그는 채팅 창이 준 정보에 대답하기 앞서, 시체 옆에 널브러져 있던 총을 주웠다. 산탄총이었다.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채워진 탄환은 갑자기 파고들어 온 가속 능력자의 머리를 날려 버렸다.

─누가 왔다 간 것 같은데

─뭐가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지금 뭐가 있지 않았음?

─뭐애오 갑자기 머리 날아간 시체가 생겼어오

“즉, ‘세이브’, ‘로드’라는 게임 특유의 기능을 캐릭터의 이능 취급하는 거군요.”

「‘오는줄도모른채’ 님이 ‘1,000원’ 투척!

아아, 그는 갔습니다」

─자연스러운 연결, 10점 드리겟습니다

─ㅋㅋㅋ이분 대체ㅋㅋㅋㅋ

─방금 무슨 일 이있었는지도 모르겟음

─실력도 실력이지만 켄의 태연함을 가장 본받고 싶다...

─쟤 사방팔방 튀어다녀서 정신 ㅈㄴ 사납게 하는 놈인데...

은우는 시청자의 정보를 토대로 뭔가 싶었던 설정을 정리했다. 그사이 테일러는 떠벌떠벌 세 단체에 얽힌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있다.

이능력 협회는 히어로 본부장이 벌인 일을 폭로하기 위해서.

히어라인을 부리는 이는 그가 성공작인 것도 모자라 ‘젊음’에 관련된 재생력이란 것에 눈독 들여서.

히어로 본부는 그들이 빼돌리려 한다는 사실을 눈치채서.

결국 세 권력 집단의 욕망 때문에 수용소가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이었다. 물론 자세한 사정은 더 있겠으나, 짧게 요약한다면 딱 이 수준이었다.

“마지막에 충격적인 사실이 연거푸 터지니 조금 복잡하네요.”

정확히는 타인에게 듣거나 하지 않으면 모를 정보가 껴 있어 일반 플레이어들은 그 부분에 대한 궁금증이 길어질 것이다. 게임에서 그 부분을 알려 주거나 따로 알아내려 들기 전까진.

은우는 목덜미를 쓸며 용병들을 따라 탈출로를 달렸다.

수용소 본관을 빠져나와 거대한 운동장을 달리면 하늘에는 헬기가 떠 있고, 세 단체의 능력자들이 맹렬하게 부딪치고 있다.

“헬기 터트려!”

RPG를 든 용병이 나서서 헬기를 격추시켰다. 은우는 폭발에 꼬리를 잃고 빙글빙들 돌며 추락하는 헬기를 보며 돌격 소총을 빠르게 휘갈겼다.

서로 교전하던 적들이 그들을 향해서도 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가혹한 공격에는 은우가 재생력이라는 형편 좋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많이 반영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그것만 믿고 쏘듯 은우도 그 능력을 믿었다.

은우는 그가 총에 맞는 걸 무시하고 제자리에 섰다. 그러곤 한 발, 한 발 정확히 사격을 시작했다. 어두운 밤이라는 건 총 쏠 때 튀는 흰 불을 보고 위치를 잡아내면 된다.

이능력자 배틀물임에도 총만 쏘는 건 퍽 수수해 보일 일이나, 사방에서 쏟아지는 눈먼 총알과 이능력들의 여파를 생각하면 그다지 수수한 광경은 아니다.

“이거나 먹어라!”

용병이 능력으로 만들어 낸 폭탄들을 던지고, 상대측에선 그림자를 일으켜 폭탄을 역으로 되돌려 주었다. 은우는 그것을 목격하자마자 권총으로 폭탄을 맞추었다.

폭발이 일며 일순 빛이 퍼져 나갔다. 은우는 그 순간 그림자들이 찢어지는 걸 발견했다.

은우는 그에게 다가가 그의 가방을 터치했다. 수류탄이 지급되었다.

“저 녀석 좀 어서 쏴 죽여 봐!”

“기다려!”

용병들이 스나이퍼의 힘을 기대하는 동안 그는 수류탄을 두 개의 방식으로 던졌다. 하나는 포물선을 그리며 위쪽으로, 하나는 볼링 굴리듯 아래로 던지는 식이었다.

그리고 은우가 아래쪽에 던져진 수류탄을 권총으로 적중시켰을 때, 수류탄을 잡으려던 그림자들이 찢어졌다. 또한 그 여파로 위쪽 수류탄은 멀쩡히 상대방에게 전달되어 터졌다.

이능력자들을 단번에 죽이진 못했지만, 적어도 부상으로 인해 일시적인 충격은 주었다. 남은 건 총알을 퍼붓는 일뿐이다.

─와,,,,저걸 맞추네

─이젠 그냥 리액션 자판기임

─세금상납도 모자라 리액션까지 상납해야하는 방송이 있다?! 루삥뽕

─캬 용병들 일 잘하네

─켄이 잘게 다져서 떠먹여주는데 못 받아먹으면 욕처먹지ㅋㅋㅋ

“제법인데!”

용병들이 서둘러 뚫고 갈 길을 만들었다. 방금 같은 녀석과는 달리 무지막지하게 화력이 센 이능력자들은 떨어져서 서로끼리 싸우고 있다는 점이 참 다행이다.

“어서 타!”

어찌 됐건 그렇게 계속 나아가니 슬슬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탈출에 쓰일 자동차가 보이는 것이다.

용병이 바닥에 폭탄을 흩뿌리며 차 트렁크에 탑승했다. 은우도 질세라 트렁크에 탔다. 이제 더 이상 그들의 탈출을 막을 만한 건 보이지 않는다.

“아, 저기 아르가도 있네요.”

은우는 차를 타고 멀어지는 수용소를 보며 슬슬 분석을 시작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역시 혼자서 이능력 협회와 히어라인의 이능력자 다섯을 감당한 아르가였다. 별관을 거의 가루로 만들긴 했지만, 어떻게 다섯을 다 제압하는지.

그때 그들의 시선은 이젠 손톱만 하게 보이는 서로를 응시했다. 아르가의 눈은 퍽 흉흉하다.

우여곡절 끝에 탈출이었다.

* * *

“정말로 살아 돌아왔네!”

테일러는 그 말로 그를 반겼다. 담배에 불을 붙이며 의자에 몸을 기대는 꼴이 그녀는 꼭 본부장에게 목줄 안 잡힌 사람 같다.

“이걸로 대가는 치른 거야.”

테일러는 그렇게 말해 놓곤 자기 자신도 웃긴지 낄낄 웃었다. 대원들은 두고 혼자만 따라 들어온 용병대장이 맞장구쳤다.

“이쯤 되면 쟤가 너한테 신세 진 거 아니야?”

“맞지, 맞지.”

방향성은 달라도 두 사람 다 산전수전 겪어 본 베테랑이라 그런지 합이 참 잘 맞았다.

“자, 그럼 신세 진 걸 갚아야지?”

테일러가 절뚝거리며 커피를 타 왔다. 은우는 어깨를 으쓱였다. 게임 전개다 뭐다를 넘어서, 실제로 테일러가 과한 일을 해 준 건 맞기에 그에 대한 신세는 갚아야 했다.

부탁할 일이 뭘지 대략적으로 감 잡히기도 하고.

“이 세 사람, 죽이자.”

그리고 테일러가 사진을 내놓았다. 각각 히어로 본부장, 히어라인 사장, 이능력 협회 회장이었다.

“내가 지금껏 본부장, 그 개년한테 부려 먹히면서 준비해 온 정보들이 있어.”

애당초 그가 이글스의 실험체였던 것도 그리고 유일한 성공작이란 사실도 본부장이 숨겨 온 기밀을 털다가 알게 된 거라며 그녀는 말을 덧붙였다.

정부랑 이능력 협회가 수용소를 급습하게 된 것도 전부 그녀가 해당 정보를 밀고한 덕분이었다.

“이걸 그냥 퍼트리기만 해도 충분히 효과가 있겠지. 하지만 알잖아? 히어로 본부장이고 이능력 협회 회장이고 정부 놈들이고… 쉽게 포기하지 않을 놈이란 걸.”

“…반면 지도자가 죽으면 해당 단체는 혼란에 빠지죠.”

우두머리를 잃은 협회와 본부는 마비가 되고, 정부는 일을 대신해 줄 개가 사라졌으니 한동안 몸을 사릴 터다.

“이글스를 설립한 것도, 그것을 주도한 것도 이 세 놈이야. 관련자야 물론 더 있겠지만, 적어도 이 셋을 죽이면 그네들도 혼란스럽겠지. 그런 상황에서 정보까지 뿌려지면?”

은우는 단박에 테일러의 의도를 간파했다. 단체야 규모가 클수록 썩기 마련이지만, 그 안의 모든 이가 썩은 것도 아니고 부패했다 해도 모두가 같은 비리를 공유하진 않는다.

그러니 주도자가 사망한 상태에서 일이 외부로 퍼진다면 덮는 걸 포기하고 자기는 연관되지 않은 척 강경 대응 할 가능성이 높다.

하물며 세 집단은 여론을 의식해야 하는 곳이었다. 꼬리 자르기 할 가능성이 100%다.

“히어라인은 아예 공중분해될 가능성이 더 커. 그러면 정부도 한동안 잠잠해질 테고. 그 상황에서 내가 가진 다른 정보들로 딜을 하면 새 신분 정돈 얻을 수 있겠지. 어때?”

테일러의 제의에 그는 목덜미를 매만졌다.

“허술한 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게임인 걸 감안하고 보면 나쁘지 않습니다. 괜찮은 결말이네요.”

─주인공만 불쌍ㅠㅠㅠ 실험 탈출했더니 빌런행ㅠㅠ

─아 그러네

─이게 다 본부장 때무임ㅡㅡ

─불쌍하다....

그런가? 하긴, 주인공이야 불쌍하다면 불쌍하다 말할 수 있긴 하겠다. 실험실 쥐에서 탈출해 삶을 선택할 기회조차 받지 못하고 손에 피를 묻혀야 했으니까.

그렇지만 은우는 그게 그렇게까지 불행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를 죽음에서 구해 줄 인연이 있고, 복수할 행운이 있고, 새 출발의 선택권까지 받았지 않나.

과거의 그에겐 그럴 기회마저 없었다.

“…복수나 하러 갑시다.”

은우는 세 개의 사진을 받아 들었다. 그러자 전자 노트에 3명의 위치가 업로드되었다.

“아아, 난 빠지겠어.”

잠자코 테일러의 말을 같이 들어 준 용병이 슬쩍 손을 휘저었다.

“이번 의뢰 때문에 미움을 산 마당에 요인 암살까지 도우면 끝이라고. 알잖아?”

“애초에 의뢰할 돈도 없어!”

“다행이네, 그거.”

그녀는 낄낄 웃곤 인사와 함께 먼저 나갔다. 그 순간 시청자들이 당황했다. 저거 그냥 보내도 되는 거임?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글쎄 말입니다.”

암살을 혼자 하는 거야 별 상관 없는데 정보 유출은 신경 쓰인다. 은우는 반사적으로 테일러를 보았다.

“저 녀석이 밀고할 걱정은 안 해도 돼. 녀석도 한동안 몸을 사려야 하니까.”

테일러는 그런 반응을 예상한 것처럼 여상스레 스크립트를 이었다.

“그렇다 합니다.”

─제작진,,,당신들.....생각이 다 있었구나?

─역으로 미움 산 거 해소할려고 꼬지를 수도 있지 않나?

─오 그럴 수도 있네

“그럴 가능성도 있긴 합니다만… 그랬다간 테일러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 같습니다.”

─죽어도 같이 죽자 일듯...

─비리 고발on

─혼못죽 테일러

은우가 시청자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그녀는 웃음을 지운 얼굴로 그와 시선을 마주쳤다.

“벙어리 친구, 내가 널 도운 건 본부장이 널 버린 시점에서 나 또한 그렇게 될 걸 알아서야.”

그녀는 의자에 몸을 푹 기댔다. 커피 다음으로 그녀가 든 것은 담배였다. 입에 물린 담배가 라이터의 불꽃에 붉은 불씨를 머금었다. 들숨에 그 불은 강해지고, 날숨에 연기를 뱉었다.

“그딴 년에게 개처럼 부려지다 죽기엔 너무 아까운 인물이기도 했고.”

잿빛 연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나는 시발, 머저리 새끼라서 기회가 몇 번이고 왔는데도 버렸었는데… 넌 하는 거 보니까 기회만 오면 잘 잡겠더라.”

그 대사를 들은 순간 그는 깨달았다. 평판이 결말을 달리 만드는 이유는 그것이 한 사람의 마음을 바꾸기 때문이었다.

“가 봐, 네 인생을 구제하러.”

사람의 행적은 때론 새로운 기회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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