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자도 방송할 수 있습니다-130화 (130/233)

130화

『히어로 본부장> 아무래도 발각된 모양이군. 한동안 잠적해 있도록.』

새로운 은신처를 내준 본부장은 그 말을 끝으로 연락을 끊었다. 은우는 그것을 가만히 보다가 툭 내뱉었다.

“왠지 스토리의 끝이 보이는 기분입니다.”

이능력 협회의 위신은 떨어질 대로 떨어진 상태다. 스토리를 진행하며 벌인 온갖 일 때문이다.

반대로 히어로 본부의 명성은 높아질 대로 높아졌다. 그를 부려 먹은 대가로 악명 높은 빌런 여럿을 체포해 냈으니 당연하다.

뉴스는 히어로 본부장을 지지하는 자들의 목소리로 가득하고, 히어로 협회와 정부를 욕하는 사람들은 발에 챌 만큼 늘었다.

다르게 말하면 그가 더는 필요 없단 소리다. 유용함만은 여전하지만, 이렇게까지 크게 문제를 터트리면 안고 갔을 때의 위험이 더 커진다.

“일단 마저 진행하겠습니다.”

그렇지만 플레이어가 그것을 두고 뭘 할 수 있겠는가? 알면서도 진행하는 수밖에.

▣ 130. 인성질 무엇

“오! 정말로 와 줬군!”

본래 서브 임무 격이었던 것들이 스토리 임무로 승격되었다. 몇 개 없었기에 은우는 차례차례 해치웠는데, 3개쯤 끝내니 테일러에게서 연락이 왔다.

언제나처럼 대화의 막을 여는 건 이런저런 만담이었다. 물론 컷신이 아니었으므로 대화가 오가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녀의 일방적인 수다였다.

다만 만일 평판이 낮았더라면 테일러는 이렇게까지 편하게 굴지 않았을 것이다. 음지에서 일하는 것과 별개로 악 성향의 사람을 꺼려 하는 그녀의 성향 탓이다.

물론 평판이 낮다면 수다 대신 경멸을 받게 될 것이다. 사람들 말로는 그랬다.

“넌 정말 과묵하다니까! 벙어리가 따로 없어!”

만날 때마다 듣는 말을 또 한 번 지껄인 테일러는 담배를 한 대 물었다. 한참 뒤에 꺼낸 것은 그녀가 은우를 호출한 진정한 용건이다.

“내 아들놈이 내 자동차를 팔아 버렸어. 대체 어떤 새끼가 그런 고물을 사 간 건지.”

생각만 해도 골치 아픈지 그녀는 담배를 피우면서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자동차야 뭐, 다리가 이 꼴 되고 나선 못 써먹게 됐으니 상관없는데, 문제는 거기에… 엄마가 준 펜던트가 있거든.”

─아이고야,,,

─이건 진짜 개처맞아도 할 말 없다

─자식농사 실패!

─차를 팔아치운 건 둘째치고 유품을;;

─이제 신나게 매타작해야하는교?

─아동폭행으로 신고하겟읍니다

─차 팔아먹을 정도면 아동도 아닐듯

─아 그러네ㅋ

테일러는 이마의 양 가를 꾹꾹 누르며 손을 휘저었다. 그녀가 손을 움직이는 것에 맞춰 담배 연기가 춤을 췄다.

“펜던트도 펜던트지만, 그 안에 든 사진이 더 문제야. 엄마랑 찍은 유일한 사진이거든.”

“…유일한 사진이라면 포기 못 할 만하네요.”

더구나 테일러는 오래전 어머니를 여의었단 설정도 있다. 다시 찍을 수도 없으니 더욱 절박할 것이다.

은우의 눈꺼풀이 느리게 껌뻑였다.

“그래서 말인데, 그걸 좀 되찾아 줬음 해. 훔쳐 간 녀석들을 죽이든 흠씬 패 버리든, 그건 상관없어. 차가 박살 나도 마찬가지고. 그냥 그 펜던트만 찾아 주면 돼.”

뒤처리는 자기가 다 하겠다며 테일러가 간절하게 부탁해 왔다.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스토리이기도 하고.

“빠르게 찾아 주도록 하겠습니다.”

─스겜 스겜

─ㅋㅋㅋ근데 켄은 스겜하면 안 되잖아ㅋㅋㅋ

─켄은 슬로겜 해도 자동 스겜될듯,,,

─컨텐츠 분쇄기 켄

은우는 테일러의 개인적인 부탁을 수락했다. 그러자 테일러는 곧바로 차를 사 간 놈들에 대한 정보를 내놓았다.

사고로 인해 다리를 절게 된지라 직접 펜던트를 찾으러 갈 순 없어도 미리 조사는 해 둔 모양이다. 지도에 목표의 위치가 표기되었다.

“꼭 찾아와 달라고.”

그녀는 절뚝이면서도 현관까지 나와 배웅해 주었다. 이 일로 어지간히 애간장을 태운 모양이다. 평소 같았으면 방에서 손 한 번 휘젓고 끝냈을 사람이 이렇게까지 하는 걸 보면.

은우는 그런 테일러를 뒤로하고 서둘러 길을 떠났다. 습격으로 인해 부서진 차 대신 큰마음 먹고 구매한 바이크가 이번 이동 수단이다.

부아앙 하는 엔진 소리가 아스팔트 위로 녹아들었다.

『테일러> 아참, 만약 펜던트를 찾아 주면 대가는 톡톡히 치르겠어. 기대해도 좋아.』

그는 그 문자를 보곤 어깨를 으쓱였다.

“꼭, 이 족쇄를 풀어 주기라도 할 것 같은 말툽니다.”

─오 ㄹㅇ?

─뭐야 어케 알앗어요

─뻔하잖어ㅋㅋㅋ

─족쇄 저거 풀 방법 없는 거 아니엇음?

─본인이 만들면 있는 거지ㅋ

막 떠오른 생각을 말했을 뿐인데 얼떨결에 정답을 맞혔다. 은우는 목덜미를 쓸었다.

그의 바이크가 차들 사이를 가로지르며 다리를 건넜다. 내비게이션에 표기된 목적지가 점차 가까워졌다.

“아무 생각 없이 말해 본 게 진짜일 줄은 몰랐습니다만……. 목줄이 풀린다니 정말 끝이 다가온 게 잘 느껴지네요.”

범죄가 주가 된다는 점에서 코드가 맞지 않았지만, 별개로 게임 자체는 즐거웠다. 이능력자 배틀이라든가, 다양한 미션이라든가, 시카고의 정경이라든가 하는 것들이.

반대로 그래서 조금 아쉬운 것 같기도 하다. 할 건 분명 많았던 것 같은데 어쩌다 보니 얘도 3일짜리 게임으로 축약이 되어 버렸는지.

은우는 아쉬움을 감추지 않으며 목적지로 표기된 매장을 확인했다. 매장 안에는 직원복을 입은 덩치들이 있다. 일반 손님을 겁박하고 타이르며 차를 강매하는 게,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다.

“다들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해결 방법은 크게 3가지다. 정면으로 쳐들어가서 다들 죽이거나 제압한 후 차를 끌고 나오거나, 훔치거나, 구매자가 되거나.

물론 은우는 돈도 없고 돈을 줄 생각도 없었으므로 3번째 선택지는 과감히 제외했다. 하면 깽판과 도둑질, 두 개만이 남는다.

─깽판 갑시다!!

─깽판!!

─역시 이런 건 새벼야

─훔치는 걸로 가죠?

─무족온 깽판

시청자들이 각자 원하는 것을 외쳐 댔다. 은우는 그것을 보며 쉽게 가기로 했다. 차를 가져와야 했다면 추적 과정에 망가질 것을 고려해 적들을 다 죽였겠으나, 이번 목표는 고작 펜던트였다.

“훔치다가 걸리면 다 죽이는 걸로 하겠습니다.”

─학살좌ㅋㅋㅋㅋㅋㅋㅋ

─걸렸음 좋겠는데 안 걸릴 듯

「‘TK사랑’ 님이 ‘1,000원’ 투척!

다들 눈 돌려! 봤단 거 걸리면 죽는다!」

그는 매장 뒤쪽의 주차장으로 스리슬쩍 들어갔다. 테일러가 보내 준 차의 외형을 외우는 것도 잊지 않았다. 빨간색 경차였다.

다만 사소한 문제가 있다면 매장의 주자창엔 빨간색 차가 정말, 더럽게 많다는 사실이리라. 은우는 혀를 차며 그중 경차만 골라냈다.

감시자라고 불러야 할지, 자동차들을 관리하는 이들이 있어서 허리를 펴고 골라내는 건 어려워도 줄에 맞춰 주차된 차 앞부분을 쑥 훑는 것쯤은 가능하다. 그 정도면 은우의 눈썰미가 일하기 충분했다.

“저거네요.”

은우는 커다란 덩치를 숙인 채 슬금슬금 걸었다. 중간중간 차를 닦는 이들이 움직임을 가로막았지만, 그것쯤이야 조금씩만 돌아가면 그만이었다.

목표 차량이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정말 세금 떼 주시는 거죠?”

이것도 스토리인지 아니면 운이 없는 건지.

“물론이죠. 다들 살기 힘든 세상 아닙니까.”

매장 주인과 시민으로 보이는 NPC가 다가와 해당 차량을 보기 시작했다. 그들이 지나가면 차에 다가갈 생각이었던 은우의 걸음이 멈췄다.

─설마 사는 건 아니겠지?

─ㅁㅇㅁㅇ,,,

─스토리임?

─(금지된 채팅입니다)

“음. 살 것 같습니다.”

은우는 차에 몸이 가려지도록 무릎까지 꿇은 채 목덜미를 쓸었다. 그의 눈은 몸매의 굴곡이 다 가려지도록 펑퍼짐한 정장 바지와 셔츠, 사틴 스톨을 걸친 여성에게 닿아 있다.

경차를 사는 사람치곤 너무 화려하지 않나 싶은 건 둘째 치더라도, 어딘가가 낯익다.

“일인칭분들은 아실 것 같지만… 지금 저, 다리가 바닥에 붙었습니다.”

─진짜네

─(금지된 채팅입니다)

─스토리구나

─진짜 붙엇네

버그가 아니라면 스토리 진행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은우는 결국 시민이 그 자리에서 시원하게 결제하는 것과 차를 몰고 떠나는 것까지 지켜봐야 했다.

졸지에 닭 쫓던 개 신세가 되어 버린 셈이었다.

“갑자기 궁금해진 건데, 제가 만약 다 처리하고 들어오는 쪽을 택하면 어떻게 됩니까?”

─그 사이에 쟤가 휙 타고 가버림

─어느쪽으로 하든 다 코앞에서 놓쳐요ㅋㅋㅋ

─걍 타고 가버릴 걸요?

─결국 무조건 놓친단 거잖아ㅋㅋㅋ사탄이냐ㅋㅋ

─저 고물차를 왜 굳이....?

은우는 시청자들의 정보에 혀를 찼다. 결국 코앞에서 놓쳐야 한다는 건 똑같단 이야기였다.

“쫓아가면 일이 터질 것 같은 예감입니다만…….”

아니, 예감이 아니라 확신이다. 그는 초커를 매만졌다.

갑자기 팔린 차와 도청이 가능한 본부장, 이렇게나 완벽할 수 없는 타이밍에 나타난 구입자. 우연이라고 하기엔 이상하지 않은가?

“스토리니 진행을 안 할 수도 없네요.”

그러나 수상함을 근거로 거부할 수도 없었다. 이건 게임이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레일 위를 달리는 기차처럼 그저 정해진 길을 따라 움직이는 것밖에 없다.

토사구팽을 직감하면서도 눈을 감고 전진하는 건 그렇게 기분 좋지 않다. 물론 배신감이 들어서 그런 건 아니다. 상대에 대한 믿음은 처음부터 없었기에 들 배신감 또한 없다.

그럼에도 기분이 좋지 않은 건, 예감을 하고 있음에도 대비할 수 없다는 무력감 때문이다.

그는 옅은 숨을 내뱉으며 허리를 폈다. NPC들이 그를 볼 거란 건 이제 포기했다.

“잠깐. 너, 누구─”

그는 허리를 곧추세운 채로 달렸다. 그러곤 주차장을 둘러싼 펜스를 잡고 뛰어넘었다. 뒤에서 뭐라 뭐라 고함을 질렀지만, 곧바로 쫓지는 못했다.

그사이 은우는 바이크를 타고 차량 구입한 이를 쫓아갔다. 미션 자체가 이런 구조라서 그런지 차량 구입한 이가 마커로 표기되어 있다.

체급이 큰 차보다는 바이크가 좀 더 자유롭기도 하고, 속도를 지키는 일반 시민들과 달리 난폭 운전이 가능한 은우인지라 따라잡는 건 일도 아니다.

“차는 박살 내도 된다 했으니… 과감히 부수는 걸로 하겠습니다.”

─아니 그게 그런 의미가 아닐 텐데

─ㅋㅋ솔직히 말해봐요ㅋㅋㅋ빌런전개 하고 싶었던 거 아니야?

─권한을 알뜰하게 서먹으시는 켄넴...

「‘테일러’ 님이 ‘1,000원’ 투척!

허락했다고 그걸 하네」

─테일러 어리둥절행

그는 총으로 차에 구멍을 냈다. 연료통이 있는 부분이었는데, 그로 인해 기름이 줄줄 새기 시작했다.

운전하다 말고 대뜸 목숨의 위협을 받게 된 NPC가 비명을 질렀다. 주변 차량들도 황급히 자리를 피하는 게, 완벽히 빌런 보는 태도였다. 원래 빌런이었으니 알 바 아니었다.

그리고 차가 결국 길가에 처박히듯 멈춰 섰다. 은우는 그 상태에서 권총을 들어 운전석의 NPC를 쐈다.

시민이란 점은 고려하지 않았다. 그가 민간인 건드리는 걸 선호하지 않는 것과 이번 일은 별개였다.

상대는 어쩌면 히어로 본부장이 보낸 사람일 수 있고, 그의 윤리 의식은 그의 안위보다 아래에 있었다. 게임이라도 마찬가지다.

─민간인 안 죽인다면서요ㅋㅋㅋ

─이분 사실 빌런전개 바란 거 맞다니까?

─와중에 정확히 헤드샷;;

─자비심 없는 것 봐

“토사구팽 당할 게 보이는데 어떡합니까.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는 법입니다. 그리고…….”

“…아, 진짜 가차 없네.”

은우는 머리에 총알을 맞고도 멀쩡히 일어나 차 문을 열고 나오는 사람을 보았다. 역시나. 탄식에 가까운 숨이 흘러나왔다.

“저게 민간인처럼 보이십니까?”

─ㅁㅊ 좀비야??

─갑분좀

─왐마야,,,

「‘아니저거’ 님이 ‘1,000원’ 투척!

아무리 봐도 걔잖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누군데?

─나만 모름?

─이제 척추 접히나?

시청자들이 정체를 추측하는 사이 그는 차분히 방아쇠를 더 당겼다. 여성의 앞머리가 몇 번이고 흔들렸지만, 총알은 그 머리를 관통하지 못했다. 오히려 찌그러진 채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아아, 그러니까…….”

나른한 표정의 여성은 머리카락을 뒤로 넘겼다. 그 순간 새까만 머리카락이 벗겨지고 벚꽃잎 머리카락이 드러났다.

태양을 훔쳐 온 듯한 금안은 이 순간 창공에서 막 꽂혀 내려오는 날짐승의 것과 같다.

“아르가입니다, 빌런 자식아.”

인사와 함께 순식간에 접근한 아르가는 다리를 위로 들어 올렸다. 그녀의 다리가 그가 있던 자리에 내려 꽂히면 도로에 금이 쩍 간다.

“피하지 말아 줄래요? 나름 죽지 않게 잡는다고 힘 조절 하고 있거든요?”

─누나아ㅏ아ㅏㅏㅏ 나죽어ㅓㅓㅓ

─특) 맞으면 진짜 죽는다

─ㅅㅂ 저걸 어케 안 피하누;;

─생존본능이 우선되게 만드는 괴력

─사탄: 아, 이건 좀;;

은우는 금이 가다 못해 크레이터 생긴 것처럼 움푹 패기까지 한 자리에 착지했다. 아르가로부터 두 발짝 정도 떨어진 거리였다.

설정상 아르가의 이능력, 금강불괴를 깰 수 있는 능력 및 무기는 현존하지 않다고 한다. 시청자들의 정보에 따르면 해당 무기는 스토리가 끝난 이후에 개발된다고 하는데… 즉, 현재로썬 어떻게 제거할 방법이 없단 소리다.

─저거 도망은 못침?

─도망 자체야 시도는 가능함...근데 목에 쥐피에스 달려서

─계속 쫓아올 걸요

─킹치만 켄이라면 어떨까?

─킹치만이고 뭐고 시스템상 잡히게 되어있어서;;

은우는 무의식적으로 아르가의 정권을 피해 바닥을 구르고 다시 굴렀다.

이능력 협회에서 상대했던 순간이동 능력자보단 느리나, 그것에 비견될 정도로 빠른 속도로 움직인 아르가가 발을 내려찍었다. 기본 속도가 저렇게 빠르다기보단 순간적으로 도약하듯 낸 속도 같지만 말이다.

「‘30초버틸때마다’ 님이 ‘20,000원’ 투척!

3만원.」

그 순간 미션이 떨어졌다. 은우로선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한번 해 보겠습니다.”

은우는 바이크로 달려갔다. 타려는 게 아니었다.

그는 바이크 쪽으로 뛰어가다 말고 뒤에서 달려오는 기척에 맞춰 옆으로 굴렀다. 그러면서도 권총으로 사격하는 걸 잊지 않았다.

관성에 의해 바이크 근처에서 대지에 발을 콱 박고 멈춰선 아르가가 어디 쏴 보라는 듯 도도하게 섰다. 그러나 총알은 그녀가 아닌 바이크의 연료 탱크를 적중시켰다.

폭발이 일어나며 아르가를 덮쳤다.

은우는 자신의 총알이 연료 탱크를 저격해 낼 것을 의심치 않았기에 빠르게 뒤돌아 뛰었다. 도약에 엄청난 가속을 보이는 아르가였기에 코너를 끼고 도망쳐야 했다.

콰앙!

역시나 폭발에도 전혀 부상을 입지 않은 아르가가 도로에 과한 자국을 남기며 그를 쫓았다. 직선상의 움직임만 가능했기에 총 두 번의 도약이 이뤄져야 했다.

그마저도 제 속도를 제어하지 못해 마구잡이로 벽에 처박히는 느낌이 아니라, 방향을 틀 때 1초 이하의 시간만을 소비하는 형식이었다.

“지금 쥐새끼처럼 도망치시는 거예요?”

은우는 간발의 차로 아르가의 주먹을 피했다. 바람이 그를 밀어내 주어 차이가 더 벌어지긴 했지만, 균형을 잃게 만든 점에서 결코 좋다고 볼 순 없다.

그의 왼발이 뒤를 짚으며 균형을 지탱하면 아르가가 정면으로 뻗었던 팔을 옆으로 휘저으며 그를 잡으려 든다.

은우의 팔뚝이 세로로 서 그녀의 휘두름을 막았다. 멱살이 잡히는 대신 그 공격에 얻어맞아 그의 몸이 옆으로 튕겨 나갔다.

그의 몸이 콘크리트 바닥을 구르고 굴러 미끄러진 후, 도보까지 닿았다. 은우는 깎인 체력을 확인하는 대신 빠르게 굴렀다. 아르가의 짓밟기가 방금 전 자리에 작렬했다.

가히 압도적인 신체 능력 차이였다.

─켄이 쥐새끼 소리를 다 듣네....

─켄이 쥐새끼면 우린 뭐 개미새낀가?

─아니 이걸 어케 피하누;;

─주의! 이건 켄만 가능한 묘기입니다! 따라하다간 아르가한테 척추 접힙니다! 그냥 순순히 잡혀주세요!

─아르가 ㅈㄴ 세다...

“확실히 세긴 세네요.”

그럼에도 피할 수는 있다. 여기서 잡몹들까지 있었다면 무리였겠으나, 아르가 하나뿐이었기에 가능했다.

그는 빠르게 도로 중앙에 연막탄 세 개를 각기 던졌다. 그러곤 그 중앙으로 뛰어들었다.

“그렇게 숨는다고 내가 놓치진 않아요.”

아르가가 가만히 선 채로 발을 들어 올렸다. 나팔바지에 가까운 정장이 살짝 당겨져 워커를 드러냈다.

다만 그 여파는 맹렬한 바람이 일며 연기를 흩어 버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완전히까지는 아니나, 그녀가 일으킨 바람의 형태를 따라 대각선으로 연기가 잘려 나갔다.

은우는 그곳에 없었다.

“…….”

은우가 도망친 곳은 아르가가 서 있는 곳 바로 옆에 있는 자동차였다. 그것도 탑승이 아닌 문에 밀착.

원래라면 대놓고 보이겠지만, 연막탄의 연기가 그를 가려 주고 있다. 은우는 호흡도 멈춘 채로 기척을 셈했다.

만약 아르가가 GPS를 확인할 수 있다면 이 행위는 헛된 게 되겠지만, 그건 그거 나름대로 수확이다. 다음부턴 헛짓거리를 안 하게 될 테니까.

“음.”

아르가가 뚜벅뚜벅 걸어 도로로 향했다. 은우는 숨도 쉬지 않은 채 그 기척을 정확히 주시했다. 그가 달라붙어 있는 차의 트렁크로부터 발자국 소리가 하나, 둘, 천천히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가 그 차로부터 다섯 발자국 정도 떨어진 순간, 그 발이 지이익 소리를 내며 옆으로 틀어졌다.

그 소리가 귀에 박히자마자 은우는 다급하게 굴렀다.

날카로운 대각선의 바람이 차량을 덜컹 흔들고, 은우를 숨겨 주던 연기를 흩어지게 만들었다. 은우의 몸이 연무 바깥으로 드러났다.

“이건 안 통하나 봅니다. GPS를 봤네요.”

─ㅇㄴㅇㄴ...

─아니 ㅅㅂ 이러면 어케 하라고ㅠ

─그냥 잡혀야 깨지는 스토리임 그전까진 계속 쫒아올듯

─아 근데 찐 이능력 배틀물 보는 기분이긴 하다

─배틀물이 아니라 일방적인 추척물인 것 같은데

─조용히 해

재생력 덕에 체력은 얼추 회복되고 있다. 그러나 과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지원이 오면 무조건 잡힐 것 같은데… 그 전에 잡힐 가능성이 더 높긴 하겠습니다.”

은우는 차량을 걷어차는 아르가의 박력을 보며 나이프를 던졌다. 아르가는 피할 생각도 보이지 않았다. 눈 바로 아래에 맞은 나이프는 팅,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추락했다.

“소용없어요.”

계속 피해 다녀서인지 아르가의 얼굴이 약간의 짜증을 머금으며 과격한 공격들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진 단순히 밟고 휘두르고 정도였다면 이젠 주변 사물을 파괴하며 공격을 넣는 것이다. 주로 대지를 긁듯 발을 휘둘러 땅이 비죽비죽 가시를 세우도록 한다든가, 부순 파편을 들어 던지는 식이었다.

“히어로가 저보다 더 피해를 일으키는 것 같은데, 기분 탓입니까?”

─아ㅋㅋㅋㅇㅈ

─켄님이 부순 것보다 아르가가 부순게 더 많을 듯

─아르가가 친 사람도 더 많아ㅋㅋ큐ㅠㅠ

─본격 히어로와 빌런이 구분 안가는 게임

─??: 이 세금도둑들!!

은우는 차량을 뛰어넘고 그대로 멈췄다가 다시 차량 보닛을 넘었다. 그가 보닛 위를 미끄러질 때 아르가의 몸은 반대쪽으로 뛰어넘는 중이다.

─인성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인성질 무엇ㅋㅋㅋㅋ

“뭐가 인성질입니까.”

그는 아르가를 피해 빠르게 달렸다. 그러다 말고 그가 한 것은 이제 막 출발하려는 배달 오토바이를 갈취하는 것이다.

“죄송합니다.”

의례적으로 사과한 그는 바로 속도를 올렸다. 정지 상태에서 출발하려는 게 아니라 출발 시작한 상태에서 올린 것이기에 금방 속도가 붙었다.

아르가가 위로 점프하더니 그대로 도로를 내려찍었다. 수면에 돌을 던진 것처럼 지상에 파문이 일며 대지가 출렁였다. 은우가 탄 오토바이도 붕 떠올랐다.

그러나 이미 가속이 붙었다. 은우는 균형을 잡아 잘 착지한 후, 그대로 달렸다.

─ㅁㅇㅁㅇ 되나?

─ㅁㅊ 진짜??

─ㅋㅋㅋㅋㅋ아 역시 켄ㅋㅋㅋ기대를 안 져버리죠

─켄 앞에 스위스 은행은 존재하지 않는다

─제작진: 그는 신이야!

사람들이 희망을 품었다. 아르가를 앞에 두고 이동 수단을 타는 데 성공한 사람은 이제껏 없었기 때문이다.

“아, 저게 진짜.”

그러나 희망은 바로 물거품이 되었다. 아르가가 돌을 던진 것이다. 지금까지 던졌던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속력을 품고 날아온 돌은 아까 은우가 그랬듯 연료 탱크를 격추시켰다.

폭발과 함께 은우의 몸이 부웅 날아 자동차 앞면 유리창에 떨어졌다. 은우는 잇새로 신음을 토하는 대신 옆으로 몸을 최대한 빼냈다.

쾅!

간발의 차로 그의 머리가 있던 자리에 아르가의 손이 꽂혔다.

차 보닛 위에 누운 이와 그것을 내려다보는 또 한 사람. 차량이 박살 나지 않고 멀쩡하기만 했다면 제법 로맨틱한 구도였을지도 모르겠다.

은우의 발이 아르가의 명치를 차며 옆으로 빠져나왔다. 아르가가 빠르게 따라잡으며 다리를 휘둘렀다. 은우의 반사 신경이 정말 아슬아슬하게 허리를 낮췄다.

이어지는 것은 일방적인 박투였다. 가드를 올린 그의 팔을 아르가가 걷어차자 몸이 부웅 날았다.

은우는 벽에 등이 부딪히며 단 체력을 보며 눈살을 좁혔다. 그의 손이 무언가를 벽에 부착했다.

“흐랴압!”

그의 몸이 아르가를 피해 바닥을 굴렀다. 아르가의 팔이 벽에 박히며 전체에 금을 냈다. 은우가 손에 들고 있던 버튼을 누른 것도 동시였다.

콰앙!

벽에 부착된 폭탄이 폭발했다. 물론 이걸로 아르가에겐 타격이 가지 않을 터. 노린 건 부수 효과였다.

우르르.

벽이 무너지며 그녀 위로 쏟아졌다.

“사 두길 잘한 것 같습니다.”

─캬, 이 각을 또 보시네

─순간순간 판단이 도화지를 찢어버리는 분,,,

─지금까지 몇 분 버팀? 세계 기록 깬 거 아님?

─작정하고 버틴 사람이 있어서 아직 깨지진 않았음 대신 비비기 가능

─대비도 안 했는데 비비기가 되는 것만으로 이미 쩌는 거임

은우는 냅다 튀었다. 이번에 빼앗은 건 차량이었다. 뚜껑 열린 컨버터블 자동차에서 상대방을 휙 끌어내고 앉은 그는 그대로 액셀을 밟았다.

콰앙!

아르가가 잔해를 부수고 튀어나왔다. 그러나 차는 이미 출발했다. 아르가가 잔해를 또 한 번 들었다.

은우는 재빨리 길가에 주차돼 있던 차와 밀착하듯 붙어 달렸다. 주차된 차가 많아 각도가 안 나올 거다. 도약이 조금 걸리긴 하겠지만, 속도가 붙는다면 반드시 차량이 이길 테고.

요컨대 차량에 탑승해 속력이 붙을 때까지 안 잡히는 것이 승패의 핵심이었다.

─이번엔 진짜 되는겨?

─아직 모른다

─아르가한테 뎀지 들어갔음 이미 끝났을 텐데

사람들이 이번에야말로 희망을 머금었다.

간발의 차로 아르가의 도약이 그들의 차를 놓쳤다. 커브를 꺾은 차의 문이 열렸다. 은우가 튀어나간 건 그때였다.

역차선에서 달려오던 차량에 은우가 달라붙었다.

관성이 남아 튀어 나가던 컨버터블 차를 쫓아 한 번 더 도약하던 아르가가 그와 멀어졌다.

그가 천장에 매달린 차는 이미 속도가 붙어 있다. 은우는 멀어지는 아르가를 보며 숨을 길게 내뱉었다. 아직 도망쳤다고 확신할 수 없다. 애초에 그의 목엔 GPS도 달려 있고.

또─

콰앙!

골목에서 튀어나온 차가 그가 올라탔던 차를 쳤다. 은우의 몸이 충격으로 튕겨 나갔다.

재생으로도 전에 있던 타격이 메워지지 않았는데, 거기서 이런 부상까지 입으니 진정 실피가 되었다. 은우는 체력 저하 시 붙는 페널티로 인해 느리게 눈을 떴다.

“정말 이래저래 애먹게 하는군.”

그 앞에 있는 건 히어로 본부장이 겨눈 총의 총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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