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화
애인 없는 이에게 애인 있는 친구란 가끔 열받는 존재가 되곤 한다. 주로 연인과의 다정한 사진을 보내며 부럽지 않냐고 물어볼 때 정도.
『희수> 부럽지??? 부럽지????』
은우는 희수의 도발을 보며 가볍게 답장을 보냈다.
『나> 사진 치맛자락에 벌레 붙어 있다.』
『희수> ?』
『희수> ㅅㅂ 진짜네?』
『희수> 아놔ㅋㅋㅋㅋㅋㅋㅋ』
이제 열심히 보정하러 갈 거다. 은우는 희수와의 채팅방을 끄고 그의 SNS 계정이나 확인했다. 사람들이 주변인과 찍은 사진이 그곳에 넘쳐 났다.
친구와 찍은 유쾌한 사진, 다정한 연인 사진 그리고 화목한 가족사진.
은우는 그걸 가만히 보다가 그냥 목덜미만 쓸었다. 그 사진들이 조금 부러운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아니, 사실 알았다.
아는데 차마 용기 낼 자신은 없었다.
▣ 129. 머리가 그다지 좋진 않네
─켄하
─ㅎㅇ
─안녕하세요!
─퇴근과 함께 켄방이라니 너무 좋아,,,
─맥주 딱 대
─켄ㅎㅇ
“좋은 저녁입니다.”
은우는 인사를 받아 주며 눈앞에 떠오른 창을 응시했다. 방송을 끊은 동안 생긴 간극이 기억을 되짚음으로써 좁아졌다.
“습격당하면 되는 거였죠, 이제.”
─네ㅋㅋㅋ
─누가 습격을 알고 당하냐고ㅋㅋㅋ
─시스템 스포 밴이요
─에엣? 습격이라고? 절대 실패할 게 당연하잖아!
“히어로 쪽일 것 같습니까, 아니면 이글스 쪽일 것 같습니까.”
─닥후
─히어로,,,,일듯?
─2222
─111111
어차피 무기를 바꿔 들기 위해 온 은신처였다. 무기를 바꿔 든 이상 더는 볼일 없다.
“전 이글스 쪽에 걸겠습니다.”
은우는 곧바로 스토리 이벤트를 시작했다. 컷신이 거의 없는 VAV답게 곧바로 창문 한쪽이 터져 나갔다. 그 사이를 뚫고 등장한 건 독특한 복장의 적이다. 어깨엔 독수리 무늬가 있다.
“이글스네요.”
『히어로 본부장> 당장 은신처에서 떠나. 발각됐다.』
메시지를 힐끗 확인한 은우는 침입자를 살폈다. 창가에 침대를 붙여 두었던 터라 침입자는 침대를 밟고 서 있다.
덕분에 키가 본래보다 더 커 보였다. 보통 상황이라면 퍽 위압감이 들 터였다.
─어케,,,,,,침대를 밟고 섰는데 눈높이 차이가 이거밖에 안나냐;;
─ㅋㅋㅋㅋㅋ진짜 켄 키 어쩔,,,,
─이쯤되면 상대방이 더 당황할 듯
─나엿음 쫄앗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위압감을 느꼈을 거다.
“공격을 안 하니 이쪽에서 먼저 하는 걸로.”
은우는 바로 총을 발포했다. 근거리에서 어마어마한 위력을 자랑하는 펌프 액션 산탄총이었다.
타앙!
사방으로 흩어지는 총알이 사납게 적을 향해 달려들었다.
딱!
침입자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손가락 튕기는 소리와 함게 희뿌연 방어막이 둥글게 침입자를 가려 주며 산탄들을 막아 냈다. 동시에 던져진 건 수류탄 여러 알이었다.
“합격 괜찮은데.”
은우는 수류탄을 피해 복도로 박차고 나갔다. 직후 마주한 것은 복도 저편에 서서 손을 휘두르는 남자였다.
그는 역으로 뛰어들며 왼쪽 벽을 차고 뛰었다. 간발의 차로 양쪽 벽에 무언가 긁어내린 자국이 났다. 대략 골반쯤 높이로 검격 같은 게 쏘아져 나가며 벽을 긁은 형상이었다.
─이걸 피해?
─이걸 사네
─와,,,,,
─난 쑹덩 잘렷는데
─ㄴㄷ? ㄴㄷㄴㄷ
은우는 바닥에 다시 내려서며 탄피를 제거한 산탄총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적이 손을 마구 휘두르며 아까와 같은 검격을 쏘아 냈으나, 게임이라서 그런지 죄다 피하기 쉬운 각도였다.
뒤에서 쫓아온 적이 뭐라 외치며 방어막을 다시 만들어 냈다. 손칼을 소환해 내는 적에게 둥근 막이 씌워졌다.
“흠.”
그것을 확인한 은우는 그 막을 발판 삼아 밟고 뛰었다. 그러면서 뒤를 확인했다. 방어막 능력자는 방어막을 두르지 않고 있다.
대상이 둘일 때 하나만 가능한가? 혹은 힘을 아끼기 위함?
그의 총구가 방어막 능력자에게로 향하고, 그대로 발포됐다. 능력자가 식겁해서 방어막을 친 순간, 손칼에게선 방어막이 사라졌다.
“상대하기 너무 쉽네요.”
은우는 상체를 비틀어 손칼을 피해 낸 후 바로 근접했다. 상대에게 둘러 주는 형식이라면 이런 식의 최소 근접전에선 쓸모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손칼 역시 휘두르지 않으면 발사되지 않는 형식처럼 보였다. 거리를 내주는 게 외려 손해다.
은우는 좁아 터진 통로에서 맨손 격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손을 휘두르려는 듯 큰 자세를 잡으면 그 각도를 피해 허리를 낮추고, 휘두르며 벌어진 팔 틈을 파고들어 팔꿈치로 쇄골을 내려찍는다. 상대의 오른팔이 세로로 손날을 휘젓는다면 몸을 옆으로 비틀어 피하고 무릎을 들어 명치를 올려 쳤다.
이능력자들이 판치는 세상에서 살다 와서 그런지 차라리 총만 들고 덤비는 녀석보다 능력을 달고 덤비는 녀석들이 더 간단하다.
은우는 상대가 그를 향해 손을 휘두르지 못하도록 팔을 계속해서 쳐 내며 의도적으로 붙었다. 과연 방어막 능력자는 이도 저도 못 했다.
총은 가지고 있는 모양이지만, 손칼 능력자가 방패막이가 되도록 난투의 방향을 이끈지라 차마 쏠 수도 없을 터. 장기인 방어막도 쳐 주지 못한다.
일방적인 일대일 싸움이 되는 거다.
그리고 이런 일대일 전투에서 은우는 절대 지지 않았다.
기어코 손칼의 목이 그의 손에 잡혀 우드득 꺾였다. 방어막 능력자가 손칼의 이름─아마도─을 부르짖으며 방아쇠를 당겼지만, 이미 늦었다.
─캬,,,,쟤를 근접으로 잡네
─역시 막고라가 짱이지
─이능력? 달고 있어서 뭐하냐?
“하나 잡았으니 바로 빠지겠습니다.”
방어막을 잡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만, 그보단 바깥에 대기하고 있을 적들이 더 거슬린다. 죄다 총을 들고 있는 것 같은데, 그들이 좁은 복도에 진입해서 총을 갈기면 손해 보는 건 그였다.
계단으로 우당탕탕 구르듯 내려온 몸이 빌라 밖으로 완전히 빠져나와 사람들 사이로 섞여 들었다. 인파가 제법 많은 공간인지라 잘 섞여 들면 적들의 시야에서 벗어나기 좋다.
“잡아!”
“저놈을 제거해라!”
예상대로 바깥에도 적들이 깔린 채였다. 은우는 사람들 사이를 헤치며 달려오는 적들을 확인했다.
그의 손이 이번에 구매한 연막탄 3개를 바닥에 굴렸다.
─연막탄은 왜 쓰심?
─소용없을 텐데
─이제 학살좌 뜨나요?
“사람이 많잖습니까.”
─혹시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엿나요?
─연막탄 때문에 구해진 사람보다 난폭운전으로 죽은 사람이 더 많을듯...
─팩트는 자제해야한다.
─ㅋㅋㅋㅋ니가 더 나빠ㅋㅋㅋ
딱히 민간인 살리자고 쓴 건 아니었지만, 그렇게 오해해도 상관은 없다. 연막탄이 뿜어낸 회색빛 연기가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은우는 연막탄을 틈타 아까 기억한 발소리를 쫓았다. 차를 주차해 둔 쪽에 있던지라 겸사겸사 처리할 생각이었다.
많은 발걸음 속에서도 그들을 딱 잡아챌 수 있는 건 입고 있는 장비로 인해 무게감이 확연한 차이를 보여서이니. 금세 흐릿한 시야 사이로 특수대원복을 입은 사람이 비쳤다.
은우의 나이프가 헬멧과 방검복 사이를 정확히 노려 목에 박혔다.
다른 손에 들린 권총은 팔과 가슴 사이, 즉 겨드랑이 쪽으로 총열이 살짝 파고들며 총알을 토해 냈다. 관절 부위는 방검복이 사출된 탄환을 쇄골께까지 보내고 말았다.
“재수가 없는 사람이네요.”
─켄이랑 맞짱뜨라 보내진 시점에서 재수가 없음
─모르면 죽어야지_일반몹ver
─왜 연막탄을 터트려줬는데도 피하질 못해!
「‘특수부대원’ 님이 ‘1,000원’ 투척!
가만히 있었는데 왜 죽여요...!!」
─특수부대원에게 X를 눌러 조의를 표하시오
─X
─x..
─x
그는 우왕좌왕하는 사람들 사이를 뛰며 차에 타려 했다. 바람이 순간 몰아치며 연기를 날려 보냈다.
“확인된 이능력자만 셋이라.”
하나는 제거했지만, 그러지 못했다면 제법 하드코어했을지도 모르겠다.
“재밌네요.”
은우는 입술을 삐뚜름하게 올리며 일단 차에 탔다. 액셀을 밟으며 갑자기 출발하면 도망치던 민간인들이 기겁하며 피한다.
“잡아!”
적들이 급하게 그를 잡으려 들었다. 은우는 핸들을 급격하게 꺾으며 차를 회전시켰다. 코너를 돈 차량이 빠르게 돌진했다.
갑자기 튀어나온 차에 기존에 있던 차량들이 급브레이크를 밟거나 핸들을 꺾었지만, 은우는 그 사이를 잘도 피했다. 새로운 코너에서 그는 또다시 거친 커브를 감행했다.
위에선 헬리콥터 소리가 들려오고 뒤로는 적들의 차량이 다급히 따라붙었다.
강맹한 바람이 차량의 운신을 방해하고 타이어를 터트리려 들었지만, 어떻게든 피할 수는 있다.
위쪽의 헬리콥터에서 고드름을 떨어트렸다.
─ㅗㅜㅑ....
─우박;
─민간인들 무슨 죄야
─급 쓰레기 피하기 게임
─??: 똥 떨어진다! 달려!
“완전 작정한 모양인데.”
고드름에 맞을 때마다 차 보닛이 움푹움푹 팼다. 은우는 그것을 보며 최대한 고드름을 피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기척이 생김과 동시에 추락하는 속도가 너무 빨랐다. 단신으로 달렸다면 전부 피해 냈겠으나, 지금 타고 있는 차량은 덩치가 너무 컸다. 심지어 뒤쪽에선 총질도 하고 있었다.
“아, 안 좋은 데 맞은 모양입니다.”
─??: 총알이...영 좋지 않은 곳에 맞았습니다... 가장 중요한 곳을 지나갔다 이 말입니다...
─내가, 내가 고자라니!!!
─저 드립은 어떻게 반세기가 지나도 잊혀지질 않냐
─명반은,,,,영원하다,,,,이거야,,,
─그래도 안 터져서 다행임...
─터,,,져,,,,? 퍄퍄;;;
기어코 기름이 새기 시작했다. 은우는 혀를 차며 핸들을 틀었다. 커브를 꺾기 위해서가 아니라 180도 회전시키기 위해서였다.
스핀이라도 들어간 듯 강제로 돌려진 차가 쫓아오던 차량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부딪치기 직전, 은우는 차 문을 부수고 뛰어내렸다. 바닥을 데굴 구른 몸이 둔탁한 충격을 고스란히 받아 냈다.
한쪽에선 차들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연이어 울려 퍼졌다. 가장 앞에 있던 차가 추돌하며 멈춰 서니, 뒤따르던 차량들이 머리를 이어 박은 것이다.
가장자리로 이동해 부딪침을 면한 차도 있었으나, 목표가 은우이다 보니 그들도 차를 멈췄다.
그게 바로 은우가 뛰어내린 도로 쪽 차였다.
은우는 차 문이 열리는 걸 보며 그대로 내달렸다. 그러곤 막 튀어나온 습격자의 목에 나이프를 박고 그대로 찢었다. 다들 방탄복을 제대로 챙겨 입어서 총보단 칼로 목을 찢는 게 좀 더 빨랐다.
두두두두두!
추돌을 일으킨 차들 사이에서 습격자들이 기어 나오며 총을 발포했다. 민간인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건 아무런 신경도 안 쓰이는 모양이다.
바람이 총알들의 방향을 바꾸며 그에게로 쏟아졌다.
은우는 목을 찔러 죽인 습격자를 차에서 끌어내 총알이 날아오는 쪽으로 던졌다. 그러곤 산탄총을 꺼내 차 안쪽으로 들이밀며 격발했다.
뒷좌석에 있던 부대원들이 비명을 질렀다. 아무렴, 방탄복을 입고 있다 해도 제로 거리에 가깝도록 근접한 산탄총은 막을 만한 게 못 됐다.
그는 서둘러 차에 타 다짜고짜 액셀부터 밟았다. 닫지 않은 문이 덜렁거렸다.
“너, 이 자…….”
살아남은 자가 있기에 권총 든 손을 뒤로 빼 깨진 헬멧 사이, 눈 부분을 쏴 주었다.
“제가 말하긴 뭐한데, 민간인 피해가 어마어마하네요.”
─진짜 켄님이 하실 말은 아닌듯
─이 와중에 뒤도 안 보고 뒷좌석 쏴죽이는 것 보소,,,,
─정확히 헬멧 피해서 눈맞추는 건 어케 하는 거냐
─나도 한 번만 저래봣으면....
─어림도 없지! 역으로 헤드샷 당하기!
그는 권총 탄창을 빼고 새것을 꺼내 끼웠다. 그러곤 사이드미러로 확인하며 바깥의 차들을 쏘았다. 보닛이 찌그러진 상태에서도 쫓아오는 차들은 숫제 자동차계의 좀비처럼 보인다.
차를 둘러싼 흰 막은 방어막 능력자의 것이다.
쾅!
그때 맹렬한 충격과 함께 차가 들썩였다. 벨트를 매지 않은 탓에 붕 뜬 몸이 유리창 사이로 본 것은 찌그러진 보닛과 그 위에 착지한 여성이다.
상대적으로 얇은 특수대원복은 지금껏 상대한 이능력자 적과 같은 복장이었다.
얼음이 촤악 퍼지며 유리창을 가리고 차를 붕 뜬 상태로 고정시켰다.
혹시 몰라 문을 안 닫은 게 신의 한 수였다. 은우는 열린 문 사이로 재빠르게 떨어지듯 굴렀다.
그리곤 보닛 쪽을 향해 산탄총을 발포했다.
얼음이 콱 세워지며 탄환들을 막아 냈다. 공기 하나 안 들어가도록 꽉꽉 압축된 얼음인지 새파란 색 위로 하얀 자국들이 났다.
─진짜 이능력전 지대로다;;
─민간인들 도망치는 것 봐ㅠ
─주인공만 능력 없어....
─켄은 켄 자체로 사기라서 능력 없어도 됨 우리가 없는게 문제지
─???: ㅅㅂ 능력 좀 줘요
쩌저저정-
바닥이 얼어붙으며 가시를 삐죽삐죽 토해 냈다. 은우는 왼쪽으로 빠져 그것을 피했다가 가시를 밟고 건너편으로 건너갔다.
바람이 순간 몰아치며 바닥에 착지한 그의 균형을 무너트렸다. 뒤에서 쏟아진 총알이 얼음을 부수고 깨트리며 옆구리와 허벅지에 핏물을 튀겼다.
허겁지겁 이쪽으로 합류하는 일반 적들이다.
“성가시게.”
은우는 균형을 무너트리느니 차라리 바닥에 엎어지듯 몸을 납작 엎드렸다. 그러곤 빠르게 튀어 나갔다. 얼음 창이 보도블록을 부수고 파편을 튀겼다.
위이이이이잉!
그때 경찰차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늦었다 말하기엔 그들 추격전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거니와, 구불구불 다녔기에 타박하기 뭐하다.
─지원임?
─ㄴㄴ 아님
─쟤네가 경찰이었음 민간인 쐇겠냐ㅋㅋ
─야호 싸워라 싸워
─어부지리 각?
─둘다 학살 각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은우는 그에게 쏟아지는 얼음들을 피해 총을 발포했다. 총을 쏘면 그것의 적중 여부와 관계없이 얼음 벽을 치는 것이, 그런 다음 3초 뒤에 깨진다는 것이 은우의 눈에 박혀 들었다.
“저 자식만큼은 죽여!”
“엿이나 먹어라, 히어로의 개새끼.”
얼음 조각들이 바람 능력자의 바람에 힘입어 서리 폭풍이 되었다. 은우는 재생력을 믿고 그 상태에서 얼음 능력자를 향해 전진했다.
권총이 불을 뿜었다.
촤악!
방어막 능력자가 혹시 얼음 능력자를 보호할까 싶어 그쪽에도 총을 쏜 게 유효했다. 어쩌면 도착한 경찰들이 발포한 총알이 그들을 막은 건지도 모른다.
다만 중요한 건 얼음 벽이 세워졌다는 것이다.
은우는 바로 권총을 집어넣고 얼음 벽을 향해 돌진했다.
그리고 얼음벽과 그와의 거리가 부딪치기 직전이 되었을 때, 얼음 벽에 금이 갔다. 쩌정 하는 소리와 함께 벽 전체로 퍼진 금은 금세 무너져 버린다.
벽 너머로 능력자의 얼굴이 보였다. 권총 대신 꺼내진 산탄총이 방어막조차 생길 수 없는 거리 속에서 상대에게 겨눠졌다.
타앙!
산탄총의 위력을 실감하며 은우는 뒤로 넘어가는 얼음 능력자를 확인했다. 탄피가 빠지고 탄환으로 다시 채워지면 쓰러진 이를 향해 한 번 더 방아쇠를 당겼다.
─얼음벽부서지는 시간 계산하신 거 ㅎㄷㄷ하시네,,,
─도망가는 미션에서 다 죽여버리는 켄넴 역시 학살좌
─이거 도망가는 미션이신 건 기억하구 계신가유
─확인사살 편-안
─구울왕은 도망 안 간다 이거야!
“제가 죽이려 한 게 아니라 쟤네가 길을 막은 겁니다.”
─??: 내 주먹이 쟬 친 게 아니라 쟤 뺨이 내 주먹을 친 거라니까?!
─맞는 말이긴 한데 뉘앙스가 이상하잖아ㅋㅋㅋㅋㅋ
「‘하여튼간에’ 님이 ‘1,000원’ 투척!
내가 그래서 도망치라 햇어 안햇어! 학살좌 온다고 도망치랫잖아!」
─아 그치만 우리 쪽수가 더많았다구요;;;
─대가리 수로 밀어붙임 될 줄 알았지!
“안 막았으면 안 죽였습니다.”
그는 당당했다. 그는 순순히 도망쳐 주려 했고, 그걸 막은 게 적들이었을 뿐이다.
“잡아!”
“저기도 있다!”
바람 능력자와 방어막 능력자를 견제해 주던 경찰이 은우까지 넘보기 시작했다.
“도망갈까요.”
은우는 경찰의 포위망이 더 단단해지기 전에 서둘러 대피하기로 했다. 차가 망가졌다거나 하는 건 신경 쓸 필요 없다.
어차피 도로에 남아도는 게 차였다. 그는 절도 따위 가볍게 저지를 수 있는 범죄자였고.
─저 저저저 스포츠카!
「‘마라라라옹’ 님이 ‘1,000원’ 투척!
노란색 페라뤼 탑시다」
─은색 퓨마!
─아 퓨마 꺼져
─여기 할렘가 아니엇냐? 왜 페라뤼 잇음?
─검정색 세던ㅠㅠ
“알겠습니다.”
은우는 시청자들이 고른 노란색 스포츠카에 냉큼 탄 후 시동을 걸었다. 목숨을 챙기기 위해 키를 두고 간 운전자에겐 심심한 애도를 보낼 따름이다.
그는 서둘러 차를 출발시켰다. 스포츠카라서 금방 속도가 붙었다.
“잡아!”
적들과 경찰들이 도주하는 그를 서둘러 쫓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보다 더 유리한 건 은우였다.
그때 메시지가 띠롱 도착했다. 추적자들과 경찰을 따돌린 후 이쪽으로 가면 된다는 본부장의 것이었다.
은우는 그것을 보며 핸들을 틀었다.
“타이밍 하난 잘 맞추는 본부장이네요.”
─관음하나봄;;
─도청장치 진짜 달려있어서 설득력 잇다는게 무섭다
─ㅇㄴ 관음 미쳣냐고
─근데 비수가 하는 짓도 관음 아니냐?
─쉿 그런 건 다 비밀로 해주는거야
─우리는 친구비라도 상납하잖아
─친구비 아니라 세금이겠지ㅋ
쨍강!
은우의 차량이 도심을 벗어나 언덕진 초원인지 숲인지를 달리기 시작했다. 실제 시카고에 이런 지형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추적 뿌리치기엔 용이하다.
그는 나무 사이사이를 달리며 악착같이 추적을 떨쳐 내려 했다. 경찰과 습격자들이 서로를 견제해 준 덕에 수가 꽤 줄어 있다.
그때, 차가 또다시 연기를 내기 시작했다. 뒤에서 하도 총을 쏴 대니 스포츠카라고 해서 배겨 낼 재간은 없었던 것이다.
은우는 혀를 차며 차 문을 발로 차 부쉈다.
“편하게 다 죽이고 도망치는 걸로 하겠습니다.”
─ㅋㅋ역시 학살좌 어디 안 가죠
─구울왕이 식사하신댄다!!
─암암 뭄이 굳건하면 머리가 고생할 필요 없음
뿌리칠 자신이 없는 건 아닌데, 그것보단 저쪽을 다 죽이는 게 더 빠를 것 같다.
은우는 그의 뒤에서 멈춰 서는 차들을 보며 차를 방패 삼아 총을 쥐었다. 거리가 거리기에 산탄총 대신 기관단총을 들었다.
몰아치는 바람이 총알을 비처럼 싣고 왔지만, 명중률은 형편없기에 몸을 최대한 웅크리면 회복력으로 커버할 수 있다.
은우는 정확한 사격 자세를 잡았다. 노릴 건 방어막도, 바람 능력자도 아닌 그에게 수류탄을 던지려는 이다.
탕!
수류탄을 던지려던 특수부대원 하나가 쓰러졌다. 그러자 ‘피해!’ 따위의 말들이 오가더니 폭음이 멀겋게 들려왔다. 비명 소리가 이어지는 걸 보면 미처 피하지 못한 자들이 존재하는 게 분명하다.
은우는 그 순간 보닛 위로 고개를 내밀며 총을 또 한 번 발포했다. 바람 능력자나 방어막 능력자는 별달리 위협이 안 됐으므로, 우선적으로 노려야 할 건 총알을 담당하는 일반 적들이다.
어차피 방어막 또한 능력자를 우선해서 설치된다. 은우는 일반 적들을 마음껏 저격했다.
곧 이능력자들과 소수의 일반 적만 남았다. 저들이 총을 쏴도 재생력이 더 우위다.
그즈음에서야 은우는 망설임 없이 방어막 설치 능력자에게 달려갔다.
상대가 방어막을 쳤지만, 상관없었다. 은우는 소모 템 중 하나인 화염병 두 개를 꺼냈다. 그러곤 심지를 빼내고 기름만 막에 던졌다. 둥근 막을 타고 기름이 흥건하게 흘러내렸다.
은우는 그 직후 몸을 틀어 바람 다루는 이에게 달려갔다. 총을 쏴 봤자 바람에 막히니 근접전으로 이겨야 했다.
하면 이런 방식으로 동료─손칼─을 잃어버린 적 있는 방어막 이능력자가 자신에게 건 막을 풀고 바람 이능력자에게 둘러 줬다. 은우가 노리고 있던 부분이었다.
바닥에 고인 기름을 향해 총을 발사하니 불이 붙었다. 문제는 막을 풀며 방어막 이능력자도 기름을 덮어썼다는 것이다. 화염병을 두 개나 소모했던 만큼 굉장히, 흠뻑.
불꽃이 연결되며 방어막 이능력자도 화염에 휩싸였다. 사람에겐 작열통이 가장 고통스러운 만큼 방어막 칠 여유 따윈 더 이상 없어 보인다.
“AI 머리가 그다지 좋진 않네요. 위치만 옮겨도 효과가 없어질 작전이었는데.”
AI의 학습 능력은 보통 난이도를 높이는 데 쓰이지만, 은우에겐 빈틈을 만드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웰던으로 바싹 구우셧군
─와 저걸 저렇게;;
─저거 방어막 상대할 때 꿀팁 아니냐?
─ㅇㅈ 방어막 죽이기 까다로웟는데 앞으로 저거 쓰면 될듯
─그리고 역으로 조져지겠지
─몸치들은 공략법 유출되도 못 따라하죠? 끝났죠?
방어막이 패닉에 빠진 사이 은우는 유유히 바람 능력자를 제거했다. 경찰들이야 일반 적이 알아서 견제해 주고 있으니 신경 쓸 필요 없다.
히어로 하나 안 껴 있는 경찰도 마찬가지고.
은우는 유유히 적들의 차를 빼앗아 본부장이 알려 준 새 은신처로 이동했다. 습격의 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