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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자도 방송할 수 있습니다-128화 (128/233)

128화

히어로 본부장은 그에게 임무 여럿을 맡겼다.

부패한─일단 그녀의 말에 따르면─정부 요인을 암살하거나, 그들이 부리는 ‘히어라인’이란 용병 단체와 부딪치거나, 히어로 본부가 예산을 타 낼 수 있도록 협회에 수작을 부리거나 하는 일이었다.

혹은 사람들이 히어로 본부를 지지하도록 빌런 체포에 협조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은 언제 놔줄 거냐는 물음을 던졌지만, 히어로 본부장은 유용한 개를 풀어 줄 의사가 그다지 없어 보였다.

어쨌거나 그런 미션들을 거쳐 은우는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았다. 그가 과거 훔쳐 온 정보를 토대로 찾아낸 불법 연구소를 터는 임무였다.

시작은 초소 경비를 암살하는 것부터, 나중에 가선 대놓고 몸을 드러낸 채 복도를 뛰어가는 연구원들을 총으로 쏴 죽였다. 그럼에도 경찰들은 몰려오지 않았다. 신고할 사람이 없어서였다.

신고를 하기도 전에 다 죽였다는 의미가 아니라, 신고하면 더 망한다는 걸 알아서 신고한 사람들이 없다는 쪽이 옳다.

“이곳은…….”

은우는 잊을 만하면 마주치는 독수리 문양을 보며 모호한 눈을 했다.

이 문양을 처음 본 순간 시야가 점멸하며 어떤 영상을 보여 줬었기 때문이다. 일종의 컷신이었다.

연구 가운을 입은 사람들, 유리실 안에 갇힌 아이들. 약을 주입받고, 능력을 사용하고, 실험실로 이송되는 그.

지금껏 주인공에 대한 정보를 알려 주지 않았던 게임이 처음으로 제공한 단서기도 했다.

“주인공이 실험당한 곳이 여길까요?”

─글쎄용

─분석글에서도 찾은 사람 없음

─ㅠㅠ인체실험 너무 끔찍

─과거랑 신분이 없는 이유 너무 슬프다고

어지간히 눈치가 없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그 회상에 대한 과거는 추측하기 쉽다.

주인공은 높은 확률로 이 연구실을 운영하던 단체에게 실험을 당한 과거가 있다.

“이 연구소가 대체 어디에 쓰이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걸 추리해 놓고 해당 연구소에 대해 감을 못 잡는 건 아직 실험체들을 목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약이 가득한 병이나 표본들이 있는 곳을 보긴 했지만, 과학과 연이 없어 뭐에 쓰이는지 알아볼 수 없었다. 단지 연구 결과겠거니 할 뿐.

물론 방호벽으로 인해 문이 닫혀 버려 많은 실험실을 지나쳐 보내야 했던 까닭도 있다. 어쩌면 그중 하나에 실험실이 있는지도 모르지.

그러나 방호벽을 부술 수 있는 폭탄은 한정되어 있었다.

“문이 닫힌 덕에 탐색할 곳이 한정된 건 괜찮네요.”

개수가 정해져 있고 본부장이 미리 루트를 지정해 두었기에 그쪽에만 사용이 가능하다. 조사할 수 있는 곳이 지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물론 루트에서 벗어난 곳을 터트려도 되나, 그럴 경우 미션을 다시 해야 했다. 스토리를 파내는 유어튜버나 스트리머라면 모를까, 게임 플레이를 목적으로 하는 그가 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그런 연유에서 은우는 아까운 폭탄을 낭비하는 대신, 정해진 루트대로 움직였다. 방호벽을 뚫을 때마다 나오는 경비들이 일제히 포격을 가했으나 그들을 처리하는 건 일도 아니다.

커다란 공동에서 나온 이능력자도 마찬가지였다.

“이 엿 먹을 년이……!”

그리고 중앙 연구소의 끝에서 은우는 마지막 생존자를 발견했다.

일일이 전부 죽이면서 온 것은 아니기에 엄밀히 따지자면 마지막 생존자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산 자들은 다 도망쳤고, 은우의 시야 안에서 살아 있는 건 이 연구원이 유일했다.

“이, 이봐. 지금 네가 하는 게 올바른 일인 것 같아 보이겠지만, 절대 아니야. 이건 미래를 위한 연구라고! 이 연구로 달라질 세상을 생각해 봐!”

─네 다음 개소리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을 포장해서 말하려 한 것 같은데,,,

─실험체 당사자쥬? 절대 납득못하쥬?

─어림도 없지! 즉결처형!

연구소에서 자행한 모든 일을 지우려다 실패한 연구소장이 뒤로 넘어졌다.

임무의 궁극적인 목표는 저들이 연구 자료를 삭제하기 전 백업해 두는 것이기에, 삭제를 막아 낸 것으로 임무는 거의 달성된 상태다.

“대를 위해 소의 희생은 언제나 존재했어. 이건 그 일의 연장선일 뿐이라고!”

은우는 연구소장의 말을 들으며 총에서 탄피를 빼냈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은 그도 납득하고 이해한 섭리이나, 그렇다고 찬동해 줄 이유는 없다.

그걸 본 연구소장─아마도─은 살기 위해 발악을 했다. 바르작거리며 엉덩이를 뒤로 질질 끄는 게 전형적인 악당이었다.

찰칵 하는 소리에 맞춰 연구소장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느, 능력을 가지고 싶지 않아? 더 대단한 능력! 기타 이능력자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이능력 말이야! 내, 내가 그걸 줄 수 있어!”

─켄: 필요 없어

─이능력 없어도 재미없다 하는 사람이 받을리가 잇나

─ㅋㅋㅋ아 켄을 모르네

─켄은,,,그 자체로 이능력이지

─ㅇㄱㄹㅇ ㅂㅂㅂㄱ

시청자들이 그의 심정을 대변해 주었다.

은우는 연구소장에게 총구를 들이밀었다. 음이 두 톤 올라간 목소리가 기어코 절규로 그리고 비난으로 바뀌었다.

“그년이 정말 정의를 위해서 움직이는 것 같아? 이 연구에 참여한 건 본부장도 똑같다고!”

죽음을 목전에 둔 자가 토해 내는 말은 대게 사실인 경우가 많다. 은우의 총구가 멈칫거렸다.

“여기 지도를 제공할 때부터 뭔가 싶었습니다만, 역시나네요.”

그가 주저하는 눈치를 보이자 연구소장은 프로그래밍된 반응을 보였다. 자신이 살 가능성을 발견한 사람처럼, 상대의 행위를 멈추게 한 주제에 대해 말을 잇는 것이다.

“권력욕에 찌든 암퇘지 말에 넘어가지 마. 그자도 이 연구에 참여한 건 똑같아! 단지 연구에 진척이 없으니까 우리를 배신한 거라고!”

은우는 연구소장실의 컴퓨터를 슬쩍 보았다. 백업을 해야 하는 만큼 상호작용이 가능하다.

“그, 그러니까 나, 난 죽이면 안 돼. 응? 내가 분명 도움이…….”

“민간인 죽이는 건 좀 꺼리는 편입니다만.”

은우는 총의 방아쇠에 올려진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연구원은 민간인이 아니니까요.”

─그치,,,인체 실험하는 놈들인데 민간인은 아니지

─인간도 아니지ㅋㅋ

─쏴버려용

─아~ 민간인 아니면 죽여도 된다고~

타앙!

머리통이 산산조각 났다. 그 꼴이 퍽 끔찍할 법도 했으나, 지금껏 몇 번이고 봐 온 장면이었다. 새삼스레 구역질이 치솟을 이유는 없다.

은우는 대신 컴퓨터로 다가가 상호작용을 시도했다.

USB를 꽂기만 했을 뿐인데 알아서 해킹되고 알아서 복사됐다.

이런 것엔 문외한이라서 그런지 조금 신기하다.

“복사되는 동안 주변을 살펴보겠습니다.”

웬만한 적들은 다 처리했고, 경찰이나 히어로가 찾아오려면 아직 멀었다. 소장실 탐색할 시간 정도야 차고 넘친단 소리다.

“왜 전자 노트가 아니라 종이 문서로 보관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종이문서가 유출 확률이 적어서 그런 거 아님?

─데이터는 해킹만 해내면 다 털어갈 수 잇는데 종이문서는 부피가 잇으니까..

─ㅇㅈ 그래서 아직도 중요한 건 종이에 담잖아

─켄 실무 안 해봤구나? 이해해 이해해

─너는 해봣음?

─쉿

“그런 겁니까?”

어차피 종이에 정보를 복사하려면 데이터로 저장해야 하지 않나. 그건 다 파기하나.

은우는 주변 서랍들을 전부 열어 보며 뒤적거렸다. 서류 봉투들이 엄청나게 나왔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을 개봉하거나 찢는 건 불가능했다. 심지어 총을 쏴도, 불을 붙여도 그건 멀쩡했다.

“저보다 튼튼하네요.”

「‘종이문서’ 님이 ‘1,000원’ 투척!

괜찮아! 튕겨냈다!」

─이쯤되면 종이에 보관하는게 제일 안전한듯

─ㅇㅈㅋㅋㅋㅋㅋ

─자료 일일이 만들기 싫다고 저렇게 한건가...

─확실히 뒤질 필요 없어서 좋긴 한데ㅋㅋㅋ

“하긴, 자료 일일이 만드는 것도 일이겠습니다.”

단서 하나만 던져 줘도 살점과 뼈를 분리한 후 그 뼈로 육수까지 고아 먹는 게 게이머다. 거기에 숫자도 많아서 유저들이 머리를 맞대면 어지간한 설정은 다 파헤쳐지는 편이고.

그러다 보니 아예 제공하지 않는 걸 택한 모양이다. 아예 볼 수 없는 구조로 만든 걸 보면.

은우는 결국 단서 보기를 포기했다. 얻은 거라곤 실험체 하나가 탈출했다는 서류 한 장과 그사이 복사 완료된 USB뿐이다.

“임무 완료입니다. 이제 이 USB만 전달하면 끝이네요.”

나머진 히어로 본부장이 알아서 할 것이다.

“갑시다.”

은우의 몸이 피와 시체가 넘쳐 나는 연구소를 돌아 나갔다. 이제 남은 연구소는 2개다.

▣ 128. 이건 내일 합시다

설정상 VAV의 주인공은 상대방이 열받을 정도로 과묵하다고 한다. 컷신을 최소로 하고 선택지를 통한 대답이나 물음조차 할 수 없다는 점에서 발휘된 설정이었다.

이 말인즉, 게임 내에서 주인공이 대화하는 장면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것과 같다. 아예가 아니라 거의.

“이글스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지?”

은우는 오랜만에 이벤트 신을 마주했다. 지금까지 딱 3번 나온 이벤트 신이었다. 이번 것까지 포함한다면 4번.

“이글스에 대해 알고 있나?”

본부장이 놀라 역으로 질문했다. 주인공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답하라는 듯 바라볼 뿐이었다. 비록 은우가 헬멧을 씌운 탓에 표정을 알아볼 순 없었지만.

“이건 중요한 문제다. 이글스에 대해 어떻게 안 거지?”

본부장이 캐묻듯 다그쳐 왔지만, 역시 대답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패배한 건 본부장이었다.

그녀는 이글스에 대해 설명을 했다.

이능력 협회가 비밀리에 운영하는 단체로 추정된다는 것, 정부가 관여되어 있을지 모른다는 것, 그들은 이능력에 관한 불법 실험을 하고 있다는 것, 범죄자뿐 아니라 일부 히어로와 민간인들도 실험체로 끌려간 것 같다는 것.

“사람들은 이능력자들로부터 비능력자를 보호하기 위한 단체라고들 생각하지만, 그건 틀린 말이다. 비능력자를 보호하지 않는다곤 할 수 없으나, 히어로 본부의 탄생 배경에는 비능력자가 아닌 이능력자 보호가 있다.”

본부장은 책상에 손을 쾅 얹으며 또박또박 말했다.

“우리는 비능력자로부터 이능력자들이 박대받지 않기 위해서, 이능력자들이 비능력자들 속에 스며들게 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기관이다. 그러니 이능력자를 실험에 쓴다는 일 따위, 절대 용납할 수 없다.”

그녀는 순수하게 이글스에 대한 분노를 표현했다. 물론 연구소에서 소장의 말을 들었던 은우와 시청자는 별로 믿지 않았다.

애당초 저런 입바른 소리는 이익을 앞둔 사람이라면 누구든 할 수 있다. 더구나 게임 속 도시의 경우 대선을 코앞에 둔 참이지 않나? 이능력자를 향한 인체 실험을 까발린 후, 그것을 자신의 공적 삼아 대권 주자가 되려는 게 뻔했다.

“그럼 대답해라. 넌 어째서 이글스에 알고 있지? 이글스의 관계자냐?”

본부장인 주제에 정말 몰라서 질문하는 건 아닐 테고, 예상했음에도 확인을 위해 질문하는 것일 테다.

은우는 컷신을 지켜보며 목덜미를 쓸었다. 사실상 처음 나온 이벤트 신이라서 그런지 조금 길게 느껴졌다.

“계속 대답하지 않는다면…….”

“나는 이글스에 원한이 있다.”

“왜 원한이 있지?”

“당신도 이글스를 없애고 싶어 하고, 나 또한 이글스에 원한이 있다. 그 사실이면 충분하다고 보는데.”

컷신 속 주인공은 끝까지 원한의 원인에 대해선 침묵으로 일관했다. 다행스럽게도 본부장은 그를 노려볼 뿐, 그 이상의 행위는 시도하지 않았다.

이것으로 연구소 습격 스토리가 마무리되었다.

은우는 그 즉시 그 자리를 떴다.

─근데 말 안하면 주인공 오해받는 거 아님?

─맞어 왜 말 안 함?

─답답하게 왜 말을 안 하냐ㅡㅡ

─윗놈들 머가리 없냐 본부장도 실험 관계자일 수도 잇어서 그런거 아녀

접선 지역을 벗어나자마자 시청자가 의문을 던졌다. 은우는 어깨를 으쓱였다.

“주인공에겐 말하나 안 말하나 달라질 게 없어서 그런 걸 겁니다.”

본부장도 연구의 관계자일 거란 정보가 밝혀진 상태다. 그 상태에서 ‘내가 네 실험체 중 하나였다.’라고 말해 봐야 뭐가 달라질까. 대우가 이제 와 나아질 리도 없고, 어쩌면 입막음을 위해 살해당할 수도 있다.

“더불어 본부장이 연구의 관계자라는 연구소장의 말이 진짜라면, 어차피 본부장도 해당 사실을 알 겁니다.”

과거 기록이 없고, 뜬금없이 튀어나온 미등록 이능력자다. 거기에 실험에서 탈주한 개체라면 무조건 보고가 들어갔을 터.

그걸 알고 그를 포섭한 것이든 포섭한 뒤에 알았든, 현시점에선 이미 안다고 봐야 한다. 계속해서 그를 조사했을 테니까.

“그럼에도 살려 두고 있는 건 당장 써먹을 데가 많아서겠죠. 주인공도 그 점을 생각 못 하진 않을 테니, 굳이 찔러서 부스럼 내지 않으려고 하는 걸 겁니다.”

─ㅇㄴ,,,,

─본부장 진짜 뼈까지 긁어먹네;;

─사골장인

“본부장이 연구 관계자가 아니라면 이번에 복사해 준 자료들을 토대로 알지 않을까 싶네요.”

다만 이 경우, 복사한 자료들을 직접 본 게 아니라서 확신할 수는 없다. 그가 서류로 봤던 정보가 그 안에도 있다면 기민하게 눈치채겠지만, 아니라면 글쎄.

“뭐, 아니더라도 어떻게든 되지 않겠습니까. 참고로 제 추측이 다 맞으란 법은 없습니다.”

─ㅋㅋㅋㅋㅋ고건 맞지

─게임이니까 어케든 되긴 하겟다

─켄 추측이 맞으란 법이 없긴 한데 맞을듯

─켄 능지도 오졋누,,,,

히어로 본부장은 어차피 그를 이용해 먹는 자였다. 신뢰 관계는 성립될 수 없는 조건인 거다.

그렇기에 원한으로 이어질 수 있는 의문이 생긴 지금이라고 별다를 건 없다. 경계하고 대비한다. 그리고 그를 처분하려 든다면 그에 맞는 보복을 선물한다. 그뿐이었다.

뭐, 그건 그의 생각이고 시나리오는 어떨지 모르지만.

“…별개로 토사구팽 당한다면 기분 나쁘긴 하겠습니다.”

은우는 게임 스토리가 부디 괜찮기를 바라며 은신처로 향했다.

게임 시간으로 새벽에 시작한 일은 이제 저녁놀이 지는 때로 변한 상태다. 도시가 넓은 탓도 있지만, 시간의 흐름이 다른 것도 한몫할 것이다.

은신처로 가는 길에 펼쳐진 해변은 금빛 물살을 백사장 위로 흩뿌렸다. 부서지는 포말들은 꼭 보석의 집합 같았다.

─캬,,,,여행 가고 싶다

─다섯 시간이면 갈 수 잇는데 비행기값은 왜 싸지질 않냐?

─ㅇㅈ...이건 항공사의 횡포다

─아, 해변 드라이브는 못참지;; 사러 감

─방구석 여행이면 됏지 뭐

사람들은 그걸 보며 감탄과 여행 욕구를 드러냈다.

아무렴 모니터로 외국 사진만 봐도 가슴 떨린다는 사람이 있는데, VR로 보면 더욱 욕구가 생길 것이다. 여행 가기 싫어하거나 생각 없는 사람은 별 감상 없겠지만 말이다.

“다음에 미국 여행을 가게 된다면 뉴욕 말고 시카고로 가야겠습니다.”

평소였다면 후자에 속했을 은우는 충동적으로 전자에 가까운 발언을 내뱉었다. 무의식이 내뱉은, 본인조차도 놀란 말이었다.

그런 것치고 취소할 생각은 들지 않은 건, 글쎄. 나쁘지 않다고 생각되어서일 것이다.

가족사진이 없다는 걸 깨달은 이래 이상하게도 그 사실 하나가 계속 눈에 밟혔으니까. 하다못해 일상을 함께 보낸 사진 하나마저도 없다는 게, 그냥, 좀.

어딘가가 허전해서.

─미국에서 야방?

─얼공?

─헬멧 아웃!

─허류ㅠㅠ 미국 오심 현실조공 가야지ㅠㅠ

─여행 방해선언 실화냐?

“야방도 나쁘진 않겠지만…….”

가족 여행을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아마 형이랑만 가겠지만, 어쨌든.

은우는 어렴풋이 가능성을 고려했다. 충동적으로 떠올린 생각이었지만 제법 괜찮은 것 같았다.

정 시간 내기 어렵다면 국내라도 좋다.

함께 산에 갔었을 때 정말 괜찮았으니까. 아니, 좋았으니까.

그때는 그가 운전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사진 찍으면 올려는 드리겠습니다. 얼굴은 가리겠지만.”

─우리도 얼굴 보여줘요ㅠ

─잘생긴 얼굴 좀 보자

─헬멧아웃!!

“안 잘생겼다니까요.”

은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교통 법규에 맞춰 느긋이 운전했다. 드라이브가 하고 싶었다. 그날 그랬던 것처럼.

“저기, 결혼식 했나 봅니다.”

그 과정에서 웨딩드레스와 정장을 입은 주민도 발견했다. NPC인 건 알지만, 그래서 더 신기하다. 그가 게임하는 사이 저쪽은 할 거 다 하고 결혼식까지 치른 것일 테니까.

은우는 그 앞을 지나갈 때 속도를 살짝 낮춰 신랑 신부를 구경하려 했다.

그러다가 신부 쪽과 눈이 마주쳤다. 지명수배 게이지가 떠올랐다.

“빌런이다!”

“아니.”

히어로나 경찰과 마주쳤을 때 들키는 속도는 랜덤이다. 즉각 들킬 수도 있고, 한 시간이 지나도록 농담 따먹기를 해도 안 들킬 때가 있다.

스토리상이든 우연이든 지금껏 종종 마주쳤던 아르가는 최소 10분은 같이 있어야 들켰지만, 이번 히어로는 아무래도 눈치가 좋은 모양이다.

은우는 급히 액셀을 밟았다. 백미러로 구두를 벗어 손에 든 채 달려오는 신부가 보였다. 심지어 히어로였는지, 그러니까 이능력자였는지 달려오는 속도가 어마어마하게 빨랐다.

졸지에 신부를 놓친 신랑이 입 벌린 채 느릿느릿─일반인 달리기 속도로─쫓아오는 것도 사이드미러로 볼 수 있었다. 쫓기는 입장인데도 뭔가 미안해졌다.

─결혼식 파탄자ㅋㅋㅋㅋㅋㅋㅋㅋ

─어떻게 결혼식을 파탄내실수가

─신랑 얼굴표정 좀 봐ㅋㅋㅋㅋㅋ

─쫒아오는거 개무섭다;;

─캬 역시 커플은 못참지

─더 부숴! 더 망쳐!

“하필 결혼하는 게 히어로일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은우는 히어로를 피해 차를 몰았다. 돈을 바득바득 모아 바꾼 차는 엔진 소리만큼이나 터프해서 썩 모는 데 재미가 있었다. 차 이름을 외울 경지는 아니라서 아직 형태로만 구분하는 편이지만 말이다.

“아직도 쫓아오시네요.”

사랑보다 정의가 우선이라니, 그 신념에 박수갈채를 보내고 싶다. 쫓기는 게 그만 아니었어도 그랬을 거다.

은우는 커브를 돌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해당 블록의 은행에서 와창창 소리와 함께 은행털이범들이 뛰쳐나왔다. 그는 한숨을 내쉬곤 품에서 권총을 꺼냈다.

탕!

“억!”

은행원을 인질로 잡고 있던 자와 그 옆에 있던 은행털이범이 쓰러지고, 은행원이 얼떨떨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은우는 그 사이를 유유히 지나쳤다.

그를 쫓아오던 히어로가 갈팡질팡하다가 결국 은행원에게 먼저 다가갔다.

“십년감수했습니다.”

─와중에 범죄자 잡는거 레전드ㅋㅋㅋㅋ

─???: 그거 받고 가!

─먹고 떨어져라도 아니고 이 무슨ㅋㅋㅋ

─나 말고 걔잡으라 이말이야~

“돈 줍고 싶었는데 아쉽네요.”

차도 바꿨겠다, 바이크가 사고 싶었다. 거기서 주웠다면 히어로랑 다퉈야 했겠지만.

은우는 목덜미를 쓸며 지명수배를 떨치고 어떻게든 은신처로 숨어 들어갔다.

안 그래도 풀이었던 체력이 미세한 빈틈도 남기지 않고 꽉 채워졌다.

『‘의문의 습격’을 진행하시겠습니까? (퀘스트 진행 동안 은신처는 사용 불가능 해집니다.)』

알림 창이 떠오른 것도 그때였다.

“음.”

은우는 그것을 보다가 뒷덜미를 슬쩍 쓸었다.

“아무래도 습격이 올 모양인데…….”

헬멧 안쪽 입술이 삐뚜름해지고 말이 흐려졌다.

그에 무언가를 직감한 시청자들이 각자 채팅을 올리려는 순간, 그의 입이 먼저 열렸다.

“이건 내일 합시다.”

방종을 알리는 효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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