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화
본부장이 알려 준 목표를 제거하니 연계되는 일거리가 떨어졌다. 히어로 본부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그러나 조금 다른 기관인 이능력 협회에 잠입해 정보를 빼 오는 일이었다.
히어로 본부장은 그에 대한 지원으로 가짜 신분증과 옷, 해커 테일러를 붙여 주었다.
이능력 협회에서 이능력자 전용 장비 시연회를 연다는 점을 이용해 자연스럽게 잠입시킬 심산 같았다. 시연회 당일, 많은 사람이 오갈 테니까.
물론 시연회에 직접 참가할 수 있는 이들은 저명한 인물들밖에 없다. 그러나 어차피 그들의 목적은 시연회 물품이 아니었다.
[너는 어쩌다 저 썅년한테 콱 물린 거야?]
진입하기 전, 인 이어로 테일러가 떠들었다. 이어지는 건 정보를 사고파는 것으로 생계를 꾸려 나가던 도중 본부장에게 걸려 피 빨리고 있다는 한탄이다.
[그럼 여기까지 하고, 힘내라고.]
그렇게 수다를 들어 준 끝에 협회 건물 앞에 다다랐다. 은우는 알림 창이 지시하는 대로 인 이어를 부숴 쓰레기통에 버린 후 건물에 진입했다.
그의 옷은 현재 청소부 특유의 파란색을 띠고 있다.
─청소부가 아니라 경비업체 같은디;;
─ㄴㄴ 청소부 맞음 사람 청소부
─ㅋㅋㅋ사람 청소 미쳣냐ㅋㅋ
─어케 청소부 제복까지 멋잇을 수 잇지
─저런 핏에 얼굴까지 잘낫다고,,,? 이건 기만이다
“…플레이어의 덩치까지 고려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꽤 많음에도 부딪힐 일이 생기지 않는 건 그가 청소 도구가 담긴 카트를 밀고 가서일 것이다. 주머니에 무언가를 슬쩍 찔러 넣어도 들키지 않을 정도의 거리감은 때때로 나왔지만 말이다.
그렇게 캡이 긴 모자를 꾹 눌러쓴 채 묵묵히 나아가면 첫 위기가 다가온다.
“명단에는 없는 얼굴인데.”
히어로 협회 자체의 경비가 다가와 전자 노트를 팔락거렸다. 은우는 그에 당황하기보단 침착하게 위조 신분증과 직원증을 건넸다.
거기에 QTE 형식으로 떠오른 대사를 소리 내어 읽으면 그 상황을 자연스럽게 모면할 수 있다.
“추가 명단에 제 이름이 있을 텐데… 정말 없습니까?”
“아, 여기 있군요. 확인했습니다. 들어가셔도 좋습니다.”
─검사가 공항수준이야 무슨;;
─윗놈 틀니 압수
─아 으애오
─비수쉑들 공항 안 가본 티 내지 마라
─비수가 공항 가본 게 더 이상한 거 아님?
─ㅇㄱㄹㅇ ㅂㅂㅂㄱ
─쟤 끌어내! 스파이다!
경비원이 자리를 피해 주었다. 은우는 그에게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이곤 경비원 바로 뒤에 있는 검사기를 통과했다. 그가 무기를 가지고 있는지 확인하는 검사기다.
청소 도구는 다른 쪽에서 통과하고 있다.
물론 그는 현재 가져온 무기가 없기에 무기 검사기는 쉽게 통과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이능력 검사기. 재생이라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이상 100% 걸린다. 다른 이들이야 정부 등록 이능력자인지 인증만 하면 들어갈 수 있겠으나, 그는 위조 신분에 비능력자라 표기되는 상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은우는 검사기를 앞에 두고 운동화 끈이 풀린 사람처럼 잠깐 주저앉았다.
“빨리 오세요.”
“잠시만.”
이 순간을 위해서 본부장은 그에게 해커를 붙여 주었다. 비록 해킹 대상이 가까워야만 한다는 단점이 있으나, 이마저도 없다면 계획은 성립되지 않았을 것이다.
은우는 경비원의 머리에 떠 있는 경계심 마커를 확인하며 운동화 끈을 묶었다. 고리 형태의 마커는 천천히, 그러나 그가 지체할수록 점점 빠르게 차고 있다.
해킹의 정도를 알려 주는 게이지는 이제 막 절반을 넘기고 있다.
그는 경비원의 경계 마커가 1/3이 차기 전에 일어섰다. 그가 다시 걸어서 검사기로 다가가니 경비원의 경계가 점차 떨어졌다.
그리고 해킹이 아직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검사기를 통과하려던 순간, 좀 떨어진 곳에서 삐이이익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순간 검사를 위해 있던 경비원들이 무기를 죄다 꺼내 들었다. 은우의 검사를 지켜보려던 경비도 마찬가지였다.
“아닙니다! 이건 제 물건이 아니에요!”
“일단 조사서로 가시죠.”
“진짜 아니라니까요!”
“계속 저항하시면 불가피하게 무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금속 물품, 그것도 ‘실수’라고 여겨지지 않을 만한 물건을 들고 온 사람이 있는 모양이었다.
은우는 모자를 들었다가 다시 내렸다. 현실과 달리 긴 머리카락이 폭, 소리를 내며 모자에 꾹 눌렸다.
“그럼 계속 갑시다.”
해킹은 완료된 상태다. 은우는 여상스러운 태도로 검사기를 지나갔다. 검사기는 울리지 않았다.
─인성ㅋㅋㅋㅋㅋ
─??: 제 물건 아니애오!!
─켄님 진짜 의외로운데서 가차없으셔ㅋㅋㅋ
─와 근데 저걸 저렇게 넘어가네
─저게 됏누,,,,;;
─난 용병고용햇었는데,,,ㅋㅋㅋㅋ
그 광경에 시청자들이 깔깔대며 웃었다. 은우가 이 상황을 대비하고 무작위 사람들에게 폭탄─점화 회로가 망가진─을 넣어 둔 걸 그들은 전부 보았기 때문이다.
방금 걸린 사람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넣어 놓았던지라 뒤쪽에서 삐이익 소리가 연달아 울려 퍼졌다.
은우는 애꿎은 모자만 내렸다.
▣ 126. 이 건물은 곡선이 아니라서
“이제 옥상으로 가겠습니다.”
그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본래 청소를 맡은 층으로 올라갔다. 투명 엘리베이터라서 그런지 올라가는 동안 보이는 시내 정경은 꽤 화려하다.
검은 밤이 세상 모든 사물의 윤곽을 희미하게 만드니, 켜진 불들이 꼭 지상의 은하수 같았다.
─밤이라서 그런가 쩔게 이쁘다
─완전 사진각;;
─이거 미국에도 실제로 잇는 건물 아님?
─ㅇㅇ 사용처는 다르지만 잇긴 잇
채팅 하나가 눈에 들어왔지만, 그는 굳이 답하지 않았다. 다만 ‘형이라면 제법 좋아했을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을 잠깐 했다.
띵!
“드디어 7층이네요. 여기까지 온 시점에서 잠입은 절반쯤 성공했다 봐도 될 것 같습니다.”
시연회가 열리고 있어서 그런지 복도는 한적했다. 같이 탔던 이들은 그보다 아래층에 내렸던지라 7층에 내린 사람 또한 없었다.
움직임을 그렇게까지 조심할 필요는 없단 소리와 같다.
“계획에 있던 화장실이…….”
은우는 전자 노트에 떠오른 지도를 보며 이동했다. 중간중간 용인된 이능력자 외의 존재가 지나가면 경보가 울리는 기계가 나왔지만, 그건 해커가 처리해 주었다.
그가 할 것은 기계를 사전에 발견해 해킹할 시간을 벌어 주는 것과 화장실을 찾는 일이었다.
“여기인 것 같습니다.”
은우는 남자 화장실에 들어가 가장 마지막 칸막이부터 열어젖혔다. 청소 도구를 집어넣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장비를 꺼내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그는 청소 도구를 넣기 전, 그 자리에 놓여 있는 수리 도구를 들었다. 누가 넣어 놨느냐면, 글쎄. 아마 본부장이 심어 둔 사람이 미리 반입해 둔 게 아닐까 싶다.
옷은 수리 도구함 안에 다소곳이 접혀 있다.
─ㄲㅂ
─아 보여줘잉
─좋은 건 같이 보는 거야 형
「‘착석하십쇼’ 님이 ‘1,000원’ 투척!
켄의 프라이버시 남용에 대한 토의가 시급합니다」
─이대론 안 되지 암암
─얼굴도 안 보여주는 스트리머가 말이야,,,어?
“남이 옷 갈아입는 거 봐서 뭐 합니까.”
갈아입는 것은 셀프이나, 그 부분은 프라이버시 설정 덕에 방송을 타지 않았다. 은신처에서 장비 갈아입을 때랑 비슷했다.
그는 그가 나온 칸막이 문을 닫으며 갈아입은 수리 기사 조끼 아래로 티셔츠를 뺐다. 좁은 곳에서 옷을 갈아입느라 옷매무새가 흐트러져 있다.
─ㅗㅜㅑ;;;
─장골 미쳣냐ㅠ
─배근육 오졋
─ㅁㅇㅁㅇ
─떼이잉, 남자가 조신하지 못하게,,,어? 더 벗으란 말이야
─아 근데 저건 진자 부럽다ㅋㅋ
─켄은 코어근육 없어서 고생할 일 없을 듯...
티셔츠를 뺄 때 살짝 보인 배 보고 난리다. 은우는 빨간 맛 채팅들을 가만 보다가 오랜만에 웃음 머금은 목소리로 장난기를 꺼내 들었다.
“형, 누나들이 동생 몸을 노리는 파렴치한인지는 몰랐는데…….”
그는 수리 기사의 모자를 벗고 제대로 썼다.
“실망해도 되나?”
가벼운 미소와 그르릉거리는 듯한 저음이 어울리면 시청자들 놀리는 것은 일도 아니다.
─더 실망시키면 앵콜?
─파렴치한 인정할 테니 앵콜 가자
─ㅁㅇㅁㅇ 갑자기 훅 들어와서 설렛잔어
─진짜 목소리 뺏어야함...
“인정하라고 한 말이 아닙니다만, 다들 양심이 없으시군요.”
은우는 가방을 단단히 챙겨 든 후 새로운 위조 출입 카드를 엘리베이터에 대었다. 최종 목표가 있다는 27층을 지나쳐 옥상으로, 옥상으로 승강기가 이동했다.
그사이 마찬가지로 가방에 들어 있던 인 이어를 귀에 꽂았다. 그러자 유쾌한 목소리가 바로 들려왔다.
[휴! 잘 진입했나 보지? 역시 나야. 해킹 하나만큼은 따라올 사람이 없지.]
대답하지 않아도─대답할 수도 없지만─알아서 떠드는 것이 테일러라, 은우는 인 이어의 목소리를 무시하며 시청자와 대화를 나누었다
“바로 32층으로 갈 수 없다는 건 좀 귀찮은 것 같습니다.”
─이 미션 진짜 귀찮아,,,
─귀찮은 게 아니라 어려운 거겠지
─야....우리끼린 봐줘야지....
─ㅋㅋㅋㅋㅋ팩트로 얻어맞았누
해당 층에 볼일이 있음을 증명할 수 없다면 경보가 울리는 시스템도, 31층과 32층은 특히 경계 단계가 높다는 것도 불편하다.
어찌나 경계가 높은지 그 두 층은 엘리베이터 버튼에 있지도 않았다. 이동할 방법이 경비로 꽉 찬 계단을 통하는 것밖에 없는 셈이다.
띵!
그사이 문이 열렸다. 은우는 옥상으로 이어지는 복도로 나왔다. 어김없이 경비가 있었다.
“뭐야, 수리 기사? 보고받은 바 없는데.”
“본부에 연락해 봐.”
[무조건 처리해. 쟤네는 설득하는 게 손해니까!]
테일러의 말이 없더라도 죽여야 한다는 건 알겠다. 그를 보자마자 경계 마커를 띄우는 것도 모자라 빠른 속도로 채우고 있으니 당연하다.
대화로 인한 상호작용을 지원하지 않는 게임에서 설득은 무리다.
은우는 그들이 무전기를 꺼내 들려는 걸 보며 빠르게 가방에 손을 넣었다. 소음기 달린 권총이 나오며 무전기 들어 올린 경비의 머리를 정확히 꿰뚫었다.
“이런 미친!”
[옥상 CCTV는 미리 다 처리해 놨다고! 폭탄을 터트려서 무너트리지 않는 한 들키지 않을걸? 방음 하난 더-럽게 잘된 건물이니까!]
“빠르게 끝내겠습니다.”
은우는 권총 방아쇠를 연달아 당겼다. 그러나 이능력 협회라고 마냥 평범한 자들만 경비로 내세운 건 아니었다.
총알이 적에게 닿기도 전에 적이 사라졌다. 가속은 아니었다. 기척이 아예 끊겼다가 뒤에서 나타났으므로.
기척이 잡히자마자 은우는 본능에 몸을 맡겼다. 허리가 뒤틀리며 팔꿈치가 뒤로 휘둘러졌다.
퍼억!
경비의 총이 그의 팔꿈치에 맞아 방향이 뒤틀렸다. 은우의 대각선 쪽 벽에 흠집이 남과 동시에 우득 소리가 났다. 아마 손가락이라도 꺾인 모양이다.
─이게 말이 됨?
─머,,머가 일어난 거야
─순간이동 미쳣냐;;
─그거 따라잡는 켄은 더 미쳣음
─아휴 말해 뭐해~ 입만 아프지
─비수만 어리둥절행
슉.
시청자들이 뭐라 하든, 은우가 완전히 몸을 틀었을 때 적의 몸은 다시 사라졌다.
은우는 그 순간 총 든 손을 어깨에 걸치듯 했다. 졸지에 총이 뒤집어졌지만, 적어도 총구는 뒤로 향했다. 팔꿈치가 위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총구의 각도는 아래로 내려간다.
기척이 다시 잡혔다. 역시나 뒤였다.
탕!
“커억!”
각도 조절을 좀 하긴 했지만, 일격은 역시 실패였다. 은우는 또다시 슉 하고 사라진 적의 기척을 다시 재었다. 이번엔 제법 먼 곳에서 다시 생겨났다. 등 쪽 통로 끝이었다.
그는 그 순간 옆으로 굴렀다. 곧 탕, 탕 하는 소리가 이어졌다. 설마 이 거리에 맞췄을 것 같진 않지만, 방금 그 자리에 있었다면 맞을 가능성이 있긴 했을 거다.
구른 지금은 전혀 반대지만 말이다.
구르며 몸을 뒤튼 은우는 두 손으로 권총을 잡은 채 호흡을 멈추었다. 그리고 빠른 움직임 속에서도 타이밍을 재고 상대방의 위치를 파악한 후 탄환을 발포했다.
상대의 머리에 핏줄기가 튀며 상체가 뒤로 넘어갔다.
“후.”
은우는 그것을 보며 숨을 느리게 뱉었다. 꿇고 있던 한쪽 무릎이 펴지면 복도에 거구의 남성이 한 명만 서 있게 된다.
“계속 진행하겠습니다.”
─이걸 벌써??
─나는 20초 컷당햇는데 켄은 20초 컷을 하네
─아직도 켄을 비교대상에 넣는 사람이 있다?! 루삥뽕삥빵
─선 넘네 켄은 하늘이라서 언급 제외 대상임
은우는 흐트러진 매무새를 고치며 옥상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러곤 수리 장비 가방에서 장비를 꺼냈다. 레펠이었다.
테일러가 잘 처리했냐며 묻곤 레펠 강하! 따위의 환호성을 질렀다. 본인 일 아니라고 정말 쾌활하게도 말했다.
“이게 안 걸린다는 게 참…….”
밤이라지만 참 불안한 작전이 아닐 수 없다.
그는 한숨을 내쉬곤 몸에 레펠을 매달았다. 밤을 틈타 빌런 한 명이 빌딩 옆면을 타고 내려갔다.
드문드문 불이 켜져 있는 이능력 협회의 빌딩을 타는 건 묘한 기분이었다. 빌딩의 대부분이 글라스 커튼 월 양식으로 구성됐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콘크리트 벽 부분도 있어서 사람들에게 안 들키고 하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레펠이란 걸 정식으로 배운 적은 없으나, 시스템의 시범 영상만 봐도 감이 잡혔다. 애초에 정규 과정을 통해 학습한 적이 없을 뿐, 그에겐 경험이 많았다.
은우는 탁, 탁 하는 소리와 함께 아래로 도약했다.
─유격 배운 거 아님?
─개잘한닼ㅋㅋ
─와 저거 엄청 어렵다던데,,,
─잊을만하면 올라오는 특수부대 떡밥
“따로 배운 적은 없습니다. 그리고 곧 32층입니다.”
표적에 대해 마커를 표시해 주진 않지만, 층 구별이 어려운 플레이어를 위해 층까지는 알려 줄 친절은 있다.
덕분에 은우는 쉬이 해당 층을 찾아냈다. 해당 층은 대부분이 불이 밝혀진 상태다.
그는 불 꺼진 방 하나를 골라 줄을 고정했다. 그리고 미리 가져온 장비를 꺼내 들고 유리창에 가져다 대었다. 일종의 드릴로, 지나갈 수 있는 구멍을 내기 위해 가져온 장비였다.
물론 강화유리는 원래 이렇게 자르는 게 아니다.
[좋-아. 이제 진입할 준비 다 한 거 맞지? 그럼 해당 층 CCTV를 무력화하겠어. 그렇지만 30분까지가 최대야. 그 이상은 들킬 거야.]
요약하자면 30분 안에 끝내란 말이다.
은우는 복면 위에 쓰고 있는 야간 투시경을 달칵거리며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뎠다. 그가 들어온 방은 일반 사무실로 보인다.
그는 사주경계를 하며 8자 하강기에서 카라비너를 뺐다. 그러면 이제 자유의 몸이다.
물론 이따 갈 때도 레펠을 타고 상승해야 하므로 레펠 줄은 사무실 의자에 적당히 묶어 바깥으로 빠져나가지 않게 했다.
이제 들어야 할 건 소음기를 장착한 권총이다.
“위니가 바람 피우는 걸 프랭크가 딱 봤다지 뭐냐.”
“뭐? 프랭크가 내내 죽상이던 게 그것 때문이었어?”
그는 방 안에서 복도 쪽 소리를 들었다. 기밀 층답게 순회하는 인력이 많다.
“기밀 층이니 만큼 경비가 엄청 돌아다닐 것 같습니다.”
─여기 이능력자도 잇음ㅠ
─나 여기 일곱 번 도전햇다가 빡쳐서 때려쳣는데
─진짜 여기 경비 피하는 거 너무 어려워,,,
─경비 왜 피함;; 걍 다 죽이고 가는게 더 쉬움
─ㄹㅇ?
─ㅇㅇ이능력자들은 수류탄으로 처리하면 꽤 할만함 대신 스피드런임;;
목소리 두 개가 그가 있는 방을 지나갔다. 은우는 슬그머니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갔다.
그러곤 떠들며 지나가는 두 경비를 따라 살금살금 이동했다. 중간에 이능력 탐지 기계가 있어 5초 정도 시간이 끌렸지만, 다행히 안 걸렸다.
그는 그렇게 종종 걷다가 두 사람 너머에서 또 다른 경비 둘이 다가오는 걸 발견했다.
은우의 발이 자연스레 뒷걸음질하며 방 문고리 하나를 잡았다. 밖에 있을 때 불이 꺼져 있음을 확인했던 방이다.
문이 살짝 열렸다가 닫혔다.
“이봐, 카센. 너희 뒤에 방금 뭐가 있지 않았어?”
“뭐?”
“문이 열렸는데.”
현실 모드일 경우 이들은 정체가 발각될 때까지 모습을 계속 보이지 않더라도 부분이나마 목격한 순간 의문을 표한다.
“귀신인가?”
“그냥 이능력자 녀석들이 장난친 거겠지.”
“네가 장난친 거 아니야? 너, 염력 쓸 수 있잖아.”
─ㅅㅂ조졋다;;;
─아모른직다
─경하(경비 하이라는 뜻^^7)
─끝난 듯,,,?
─근데 발각되도 켄이잖아...
─어서 도망가! 여기 학살좌가 있다고!
아니, 아직 안 끝났다.
은우는 복도에서 떠드는 소리를 들으며 문이 열릴 경우 문에 가려질 벽 부분에 섰다. 그러곤 섬광탄에 타이머를 잰 후 바닥에 떨어트렸다.
곧 문이 벌컥 열리며 사람이 들어왔다. 벽에 달라붙은 은우의 호흡이 멈추고, 문이 끼익 소리와 함께 다가왔다.
“난 진짜 아니야!”
“그럼 별달리 저지를 사람이 없는데……. 그게 가능한 이능력자 애들은 다 퇴근했다고.”
“침입자인가, 설마?”
“그렇겠냐?”
그들은 들고 있는 무기의 전등을 이용해 방을 밝히며 슬금슬금 걸어 들어왔다. 셋이 입장하고 하나가 남는다. 섬광탄이 터진 것도 그때였다.
“……!”
은우는 가장 가까이 있던 이─이능력자라던─의 목에 칼을 박고 바로 뽑으며 복도로 뛰어들었다. 그러곤 아직 상황 파악을 못 하고 있던 이의 무기를 잡아 방으로 끌어들였다.
패대기쳐지듯 던져진 경비가 비명을 질렀으나, 그리 크진 않았다.
“시발, 눈!”
그러곤 아직 시력을 되찾지 못한 경비 둘을 향해 은우는 곧바로 달려들었다. 한 손에 들려 있던 권총이 경비복 사이 틈새를 파고들며 하나를 처리하고, 칼로는 나머지 하나의 목울대를 갈랐다. 비명 소리는 이어지지 못했다.
은우는 바닥에 엎어진 경비의 무기를 걷어차곤 소음기 달린 권총으로 그의 머리를 쐈다. 복도에서 흘러드는 불빛만이 유일한 광원인 방의 바닥에 피가 흘렀다.
─갑분곰보물,,,
─이걸 이렇게 죽이네ㅋㅋㅋ
─와 경보 안 울리고 죽일 수 잇는 거엿음?
─ㄹㅇ 귀신이냐고,,,
─이능력 재생이라곤 믿기지 않습니다
─나랑 같은 겜 한 거 맞냐
“시력에 관한 능력이 없던 게 다행입니다.”
은우는 신발에 묻은 피를 시체의 옷에 쓱쓱 문질러 닦았다. 복도에 핏자국을 남길 순 없기 때문이다.
그러곤 조용히 방을 빠져나왔다.
[워, 장난 아닌데?]
테일러가 낄낄대며 좋아라 했다. 인 이어로 무전하는 게 다인 주제에 어떻게 보는지는 모르겠다.
그렇게 좀 더 나아가니 T자 코너가 나왔다. 은우가 가로 부분 좌측에 있고, 경비가 세로 부분에서 코너 쪽으로 다가오는 중이었다.
경비가 어느 쪽으로 트는지에 따라 상황이 달라진다. 은우는 고민하다가 경비의 대사에 귀를 기울였다.
“카센 이 자식, 오고 있는 거 맞겠지?”
“교댄데 당연히 오고 있겠지.”
“근데 왜 무전을 안 받아?”
카센, 교대. 은우는 그 두 개의 단어를 듣는 순간 도박을 하기로 했다.
은우는 빠르게 코너 건너편으로 굴렀다. 새까만 게 바람처럼 스쳐지나갔으나, 대화하고 있던 두 경비는 그걸 보지 못했다. 일직선 통로라 마음 놓고 서로를 보면서 대화한다는 게 시선이 좀 틀린 모양이다.
─이걸 못 봐?
─어우 저걸 못보냐
─이거 잠입으로 깨니까 개쫄린다
─이게 되는게 더 신기해
─ㄴㄴ 죽기 싫어서 이 악물고 못본 척 하는 거지
─아ㅋㅋㅋ이거 맏따ㅋㅋㅋ
은우는 코너 벽에 몸을 밀착한 채로 두 경비가 그를 지나치길 기다렸다.
가능하면 거리를 두는 게 좋겠으나, 그게 불가능했다. 조금만 더 가도 ㄱ자로 통로가 꺾이기 때문이다. 하필이면 그쪽에서도 경비 소리가 들려왔고.
천장이 높았다면 차라리 천장에 매달렸을 터. 그러나 이 통로는 천장이 낮아서 굳이 고개를 들지 않더라도 천장이 보였다. 흰색 천장에 붙어 있는 회청색은 눈에 띌 것이다.
은우는 결국 양쪽에서 들려오는 사람 소리를 들으며 벽에 달라붙었다. 그러모은 두 손은 소음기가 장착된 권총을 들고 있다.
“진짜 며칠 만에 집에 가는 건지…….”
퇴근을 바라는 말이 좌측에서.
“히어로 본부랑 요즘 부딪침이 는 것 같지 않아?”
일거리가 늘었다고 투덜거리는 목소리가 우측에서 점차 가까워졌다. 더 가까운 건 퇴근 쪽이고, 좀 더 먼 건 투덜거림이다. 퇴근 소리가 3m 뒤쪽까지 접근했다.
은우는 숨을 멈추고 벽에 머리를 기댄 채 고개를 살짝 틀었다. 그의 총구가 슬쩍 위로 틀어지며 언제든 쏠 수 있을 채비를 했다. 대체로 사람의 머리통이 있을 각도다.
“이번 주 일요일이 딸내미 생일이라서 말이야. 올래?”
“초대해 주면 나야 영광이지.”
가장 먼저 구두코가 보이고, 뒤이어 떠드느라 고개를 틀고 있어 뒤통수만 보이는 머리가 보였다. 호흡을 멈춘 가슴팍과 복면 속 눈은 그들이 언제든 뒤돌 가능성을 재며 만일을 재고 또 쟀다.
“아.”
─!!!!
─어우아아ㅏ다
─아니 그걸 왜 떨어트려!!
─아망마ㅏ유ㅠㅠㅠ
─들켯나??
코너를 돌던 경비가 품에서 뭘 꺼내다가 그것을 떨어트릴 뻔했다. 반사 신경이 좋은지 공중에서 다시 낚아채긴 했지만, 그 행동 하나로 시청자들의 심장은 철렁했다.
은우의 몸이 그림자처럼 벽을 기어 두 경비가 지나온 통로로 들어섰다. 그의 몸이 이능력 탐지 기계 앞에 서서 무력화 기계를 슬그머니 가져다 대었다.
5, 4, 3. 숫자가 줄어드는 동안 그의 시선은 두 NPC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못 박힌 듯 흔들림 없는 동공이 새까맣다.
“깜짝아.”
“빨리 가자.”
다행히 그동안 두 사람은 단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코너를 꺾어 제 갈 길을 갔을 뿐. 사람들이 안도의 숨을 쉬었다.
은우는 그걸 보며 느긋이, 그러나 조용하고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가로질렀다.
“탐지 계열 이능력자들이 없는 게 다행이네요. 있었다면 귀찮아졌을 텐데.”
─귀ㅋㅋㅋ찮ㅋㅋㅋㅋ
─탐지 계열잇었음 미션 때려쳣음
─이분은,,,,,심장이 없나바,,,,,
─구울왕이라서 그러시답니다
새삼스럽게 저런 것에 일희일비할 리가.
은우는 목덜미를 쓸며 마지막 방 앞쪽으로 이동했다. 다만 통로의 기척을 들어 보면 최소 넷은 있다. 심지어 은우가 죽였던 이들의 실종이 퍼졌는지 다들 경계 태세였다. 아직 시체를 발견한 것 같지는 않지만, 발견도 곧일 거다.
“어떻게 할까…….”
해치울 자신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소란이 일지 않게’가 가능할 것 같진 않았다.
“흐음…….”
은우는 기척으로 그들의 위치를 재다 말고 버튼 하나를 목격했다. 화재경보기였다.
“…질문이 있는데, 화재경보기가 울리면 다들 도망칠 것 같습니까?”
─엌ㅋㅋㅋㅋㅋㅋ
─ㄴㄴㄴㄴㄴㄴㄴ
─ㄴㅇㄱ 상상도 못햇다
─아 근데 저렇게 깬 사람 있긴 있어ㅋㅋㅋ
─있는게 더 웃기다고ㅋㅋㅋㅋ
─시끄럽지 않을까?
─시연회 열리고 잇는데 미쳐ㅋㅋㅋ
은우는 눈을 껌뻑였다. 해 보고 싶으니 해 봐야지.
“한번 해 보겠습니다.”
은우는 기척이 없는 방을 확인한 후, 문을 열어 두었다. 그러곤 빠르게 경보기의 잠금을 해제한 후 그것을 눌렀다.
고막 터트릴 것 같은 소리가 들려오기 전에 은우의 몸이 열어 둔 빈방으로 빨려 들어갔다.
곧 터져 나온 사이렌 소리는 사람들의 비명을 가릴 정도로 크고 웅장했다. 경비 외 남아 있던 직원들이 복도로 튀어나와 대피하는 발소리가 들렸다. 경비들도 다급히 무전을 치며 상황을 파악하고 대피를 시작하는 게, 효과는 참 좋았다.
“음. 좋은 방법인데 안 쓰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대신 그만큼 단점도 명백했다.
[와, 제대로 녀석들의 파티를 망치는걸?]
테일러가 그런 말을 지껄일 수 있을 정도로 경보기는 끔찍한 소음을 자랑했다.
귀싸대기를 후려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어지간한 굉음에도 익숙한 그이지만, 이 소리는 그런 그마저 고개를 조금은 젓게 될 수준이었다.
소리 자체가 이상한 건 분명 아닌데… 귀를 자극하다 못해 잔향을 남겨 더블링까지 들려오는 착각을 주는 게 문제였다. 굴곡진 것처럼 커지다가 작아져서 더욱 그런 느낌이었다.
대피 음으로 정말 적합하다. 불 때문이 아니라 이 소리 때문에라도 피할 것이다.
“화재 경보음은 처음이라서 몰랐는데… 다음부턴 안 쓰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은우는 한쪽 귀를 막은 채 일단 사람들이 떠나간 통로로 나갔다. 지금 필요한 건 그 무엇보다도 빠른 스피드다. 정보를 찾아내 이 건물을 탈출할 스피드.
“찾았습니다.”
그는 빠르게 방을 뒤져 서류를 찾았다. 사이렌 소리가 정신 사납게 했으나, 그 이상으로 더 이상 듣기 싫다는 마음이 서류 찾기를 도왔다.
원하는 것을 찾아낸 그는 히어로 본부장에게 받은 폭탄을 설치했다. 그가 무슨 정보를 가져갔는지 알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모든 것을 마무리한 다리가 사람이 빠져나간 복도를 내달렸다. 탐지 기계들은 새삼 무력화시킬 필요 없다. 화재 경보음에 다 묻혔다.
“귀에서 피 날 것 같은 기분이네요.”
실제로 괴수의 울부짖음에 방치되었다가 한동안 귀가 먹먹한 채로 생활한 적도 있긴 했다. 자연 회복이 안 돼서 성직자를 찾아가야 했던가.
그는 사람들이 그런 일을 당하지 않도록 빠르게 진입했던 방으로 입장해 레펠 줄을 낚아챘다. 뚫었던 구멍으로 빠져나오자 그나마 소리가 덜 들렸다.
─경보 해제인가...?!
─아직도 귀 얼얼해,,,
─어케 작게 해놧는데도 귀에 소리가 울리냐
─귀에서 피나는 기분
“죄송합니다. 이렇게 시끄러울 줄 몰랐네요.”
더불어 이렇게까지 오래갈 줄도 몰랐다. 아직도 귀에서 울리는 기분이다.
은우는 등반 장비로 빠르게 교체한 후 줄을 타고 올라갔다. 중간에 버튼을 눌러 폭탄을 터트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약간의 시간을 소요한 끝에 그는 옥상에 다다랐다. 이제 해야 할 일은 최종 탈출이다.
은우의 손이 잠깐 목덜미와 입가를 쓸었다.
“점프 슈트는 처음인데…….”
─ㅋㅋㅋㅋㅋㅋㅋ점프슈트ㅋㅋㅋ
─VAV는 원래 이런맛이지ㅋ
─점프슈트만 믿고 추락하라 이 말이야~
─임무 다 끝내놓고 이걸로 죽으면 개억울해지는데
─아 ㅇㅈㅋㅋㅋㅋㅋ
투명 효과가 있다곤 하지만, 막상 해 보라고 하면 그래도 어이가 가출한다.
은우는 한숨과 함께 레펠 줄을 회수하고, 그 곁에 두었던 가방을 들었다. 점프 슈트가 이 안에 들어 있다.
「‘하늘나는두더지’ 님이 ‘1,000원’ 투척!
형 그래도 맨몸으로 빌딩에서 뛰어내릴 때보단 낫잖아」
“그건 그렇습니다.”
은우는 방송 첫날에 있었던 일을 상기했다.
“이 건물은 곡선이 아니라서 못 하겠네요.”
그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약간의 찌릿함 끝에 밤의 도로가, 별빛들이 반짝이는 차도가 그의 시야를 한가득 메웠다.
그건 그의 범죄 행각과 별개로 썩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