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화
히어로 본부장이 제공한 집에 도착하니 부족한 시스템 설명이 더 진행되었다. 대체로 집에서 실행할 수 있는 기능들이었다.
무기 보관이 가능하다든가, 별다른 아지트 구매가 가능하다든가, 의복을 살 수 있다든가, 차나 바이크 같은 탈것을 구매할 수 있다 등등.
다만 현실감 넘치는 것은 탈것의 경우, 부숴 먹으면 다시 사야 한단 점이었다.
보험 가입 하면 재구매할 때 비교적 싼값만 치를 수 있으나, 정기적으로 보험료를 내야 한다는 점에서 리스크도 있었다. 차량별로 들어야 했기에 더욱.
“주차 제한도 있으니 차량은 아껴 써야 할 성싶습니다.”
─수리비도 잇어서ㅋㅋㅋ
─돈이 여기저기 들어가다보니 은행털기 한 번쯤은 해두는 게 좋음
─무기들도 다 돈으로 사야해서,,,
─은행털기는 진짜 필수임
─돈 버는 방법 빼고 진짜 현실처럼 지출비 고민해야함,,,
정말 여러모로 디테일한 게임이다. 은우는 고개를 주억이며 막 도착한 메시지를 확인했다.
『히어로 본부장> 집에 잘 도착한 듯하군. 그럼 일 하나 부탁한다. 처음이니 만큼 몸풀기용 가벼운 임무를 내주지. 네가 쓸 만한 무기는 캐비닛 아래 서랍에 넣어 두었다.』
아무래도 그의 위치를 계속해서 확인한 모양이다. 아무렴 풀어 준 직후이니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바로 일이네요.”
─범죄자 인권 어디감
─범죄자는 인권 없어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마 이것도 튜토리얼의 연장선일 것이다. 이능력이 판치는 액션 게임 주제에 아직 전투의 ‘ㅈ’조차도 안 나왔으니까.
“그래도 좋은 집 줬잖습니까? 저는 좀 더 허름하고 작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건 ㅇㅈ....
─(금지된 채팅입니다)
─엄청 넓은 건 아닌데 뭔가 로망잇는 집임
─ㅋㅋㅋㅇㅈ 저런 집 살고 싶음
─난 폐인 집 보는 것 같은디
미국을 배경으로 해서 그런가, 아니면 본부장이 좀 더 신경을 써 준 건가. 원룸인데도 꽤 널찍했다.
─안타깝게도 꾸미는 건 못함;;
─철제 가구 시른데,,,
─왜 그 기능 안 넣어주는데
─(금지된 채팅입니다)
─철제가구라도 좋으니까 집 잇엇음 좋겟다;;
“꾸미기 기능이 없다니 여러분께서는 상당히 실망스러우시겠습니다.”
애초에 인테리어 따위 신경 쓰지 않는 은우로선 있든 말든 별 관심 없었다.
은우는 굴러다니는 리모컨을 집어 들어 한쪽에 있는 TV를 켜 보았다. 대선에 관한 이야기, 히어로 본부장─아까 그 여자─에게 재기되는 의문, 새롭게 데뷔한 히어로 아르가, 랏 터그가 잡혔다는 이야기 등이 스쳐 지나갔다.
“제 이야긴 빠트린 것 같습니다.”
뉴스를 자세히 살피면 은우, 그러니까 주인공이 그를 살해했다거나 하는 말들은 나오지 않는다. 단지 그가 살해된 채 발견되었으며, 그에 대해 안도하고 있는 사람들의 반응을 보여 줄 뿐이다.
그를 변호해 줄 생각은 없다고 했으나, 얼굴 팔리는 것까진 어떻게 막아 준 모양이다.
은우는 TV를 켜 둔 채 캐비닛을 열었다. 본부장이 내준 무기가 아래쪽 서랍에 있었다.
“무기는… 권총 하나네요.”
서랍에서 나온 무기는 홀로그램 창─전자 노트─의 표기에 따르면 ‘베타 92’였다. 총에 대해 무지한 은우조차도 어디서 많이 봤다 이야기 할 수 있는 디자인이기도 했다. 기실 권총이란 게 다들 거기서 거기긴 하지만 말이다.
“나쁘지 않네요.”
이능력자가 나오고 본인도 이능력자임에도 무기가 제공되는 아이러니를 뒤로하고, 은우는 총을 허리에 찼다. 이제 슬슬 집을 나설 차례다.
“다행히 거리가 가깝습니다. 빨리 갈까요.”
그는 시작부터 주어지는 초기 자금으로 구매한 헬멧을 고쳐 썼다. 목적지는 빌런이 이따금 출현한다는 명품 상가 거리다.
▣ 125. 이건 운전이 아니라고요
“갑자기 나타나서 물건들을 부수고 훔쳐 간다니까!”
“세금은 세금대로 받아 가는 주제에 그 녀석 하나 못 잡는다는 게 말이 돼?”
“녀석 때문에 날린 돈만 벌써 억이 넘어!”
목적지 자체는 안내해 줘도 목표물이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는 알려 주지 않는 게 이 게임의 특징이다. 하다못해 찾아낼 정보조차도 직접 알아내야 했다.
때문에 나타날 빌런을 기다리며 은우는 정보를 탐색했다. 대부분 히어로라고 오인한 듯 순순히 협조해 주었다.
─근데 왜 히어로들은 안 나섬?
─히어로는 왜 일 안하고 우리 부려먹냐
─우리가 아니라 켄이겟지
─쉿 원래 비수랑 스트리머는 한몸인 거야
─켄: 뭐래,,내 몸에서 나가;;
“제가 생각하기엔 명품이 너무 많다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그는 그러게 말하며 한 물건 앞에 섰다. 전자 노트가 홀로그램을 내뱉으며 상품에 대한 정보를 알려 주었다. 하단 우측에 적혀 있는 것은 0이 일고여덟 개 정도 붙어 있는 가격이다.
─제압하다 실수하면 배상비 씨게 들듯,,,
─빌런이 잡으면 안 갚아도 되니까 그런 거냐고ㅋㅋㅋ
─ㅈㄴ 인력아끼고 배상비 안들고ㅋㅋㅋ
─효율적인 판단이다.
“뭐… 그렇지 않겠습니까?”
은우는 그리 말하며 정보를 더 수집했다. 대충 검은 복면을 쓰고 다니며, 상가들을 부수고 히어로가 오기 전에 사라진다는 모양이다.
그것 때문에 히어로의 상주를 요구한 사람도 있었는데… 상식적으로 그게 가능할 리 없다. 세계관 설정상 경찰보다도 적은 게 히어로였으니까. 이능력자 자체가 희귀하니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
“거리가 굉장히 예쁘네요.”
─실제로 데이트 코스로 유명한 곳이잖어;;
─데이트 갔다가 지갑만 털리고 오는 거 아님?
─애초에 지갑 털어줄 애인은 잇고?
─ㅍㅌ 자제요;;
─가족이랑 가도 꽤 갠찮음
─특) 가족데이트는 애인없는 패자들이나 하는 것이다
─개새끼야
그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었다. 한 단어가 그의 가슴을 쿡쿡 찔렀다.
“발견했습니다.”
그러던 중 은우는 한쪽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래도 나름 튜토리얼 격 임무라서 그런가, 빌런이 대놓고 보였다.
지나다니는 사람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옷차림도 그렇고, 은근슬쩍 복면을 꺼내 들어 쓰는 것도 그랬다.
“현실 모드라서 그런지 여전히 별다른 마커는 안 떠오르네요.”
별로 상관없다. 은우는 곧바로 녀석에게 다가갔다. 복면을 다 쓴 녀석이 능력을 발휘하기도 전에 그들 사이의 거리는 세 발자국 내로 줄어들었다.
“나중에 시민과 비슷한 옷차림을 하고 다니면 여러분들이 좀 고생하시겠습니다.”
“넌 또 뭐─”
빌런의 멱살을 잡은 손이 그를 그대로 바닥에 메쳤다. 주변에서 비명 소리가 나며 사람들이 원형으로 물러났다.
“컥!”
“대화 좀 합시다.”
「‘참고로’ 님이 ‘10,000원’ 투척!
대화는 내 주먹 이름이다 알았지?」
─구울왕식 대화법ㅋㅋㅋㅋ
─상남자on
─아ㅋㅋㅋㅋㅋ
“이, 좆 같은 새끼가!”
바닥에 메쳐진 빌런이 고통에 겨워하며 옆으로 굴렀다. 동시에 세계가 멈추다시피 하며 알림 창이 떠올랐다.
체력과 재생 능력에 대해 설명하는 안내 창이었다.
“재생 속도보다 피 깎이는 속도가 빠르면 사망 판정이군요.”
사실 당연한 이야기였다. 회복량보다 피해량이 크면 누구나 죽는다.
은우는 차분히 다음 내용도 읽어 내렸다. 다 같은 액션 게임에서 시스템이 달라 봐야 얼마나 다르겠냐마는, 확실히 해 두는 게 좋다.
『이능│이능력에는 각각의 특징이 존재합니다. 해당 특징을 찾아 공략하십시오. 싸움을 훨씬 수월하게 이끌어 나갈 수 있습니다.』
『전투│당신은 재생 능력 외 특별한 공격 기술이 없습니다. 다양한 도구를 이용해 적을 처치하세요.』
이래서 무기를 제공한 모양이다. 설명 지우기를 누르자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죽여 주지!”
빌런의 한쪽 팔이 부풀어 오르며 옷이 북, 찢어졌다. 갈라진 옷 사이로 보이는 살은 꼭 가뭄에 갈라진 대지를 보는 것 같다. 갈라짐이 심하고 버석거렸다. 흙 바위 재질이었다.
“오.”
은우는 그 거대해진 팔을 피해 발을 옮겼다. 그의 가슴팍 앞부분 공기를 때린 팔은 마치 웨이터가 손님 앞에 내려 둔 음식과 같다. 먹음직스럽게 대령됐다.
“단단함은 어떨지 궁금합니다.”
그는 전력으로 돌덩이 같은 팔을 내려쳤다. 둔한 촉감 내지 감각이 묵직하게 닿아 왔다. 체력은 안 깎였으나 공격이 들어갔다는 느낌도 없다.
─엄청 딱딱한데?
─역으로 켄 피만 깎엿누;;
「‘켄핥짝’ 님이 ‘1,000원’ 투척!
딱,,,딱,,,?」
─팔 빼고 때려야할듯
─아ㅋㅋㅋ변태쉑 쳐내!
─절.대.쳐.내
상대의 팔에 자국이 약간 남긴 했지만, 저걸로 고통에 몸져누울 걸 바라서 안 된다. 애초에 그러면 빌런 자격 실격이다.
은우는 침착하게 방금 얻은 정보를 머릿속에 담았다. 맨손으로는 파괴 불가. 그렇다면 무기는?
그가 침으로써 팔 방향이 틀어진 빌런이 발을 앞으로 한 발 내디뎌 균형을 되찾았다. 그러곤 조금 둔하게나마 팔을 휘둘렀다.
그는 그것의 길이를 감안해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빌런의 손가락 끝이 바람을 가르며 지나갔다.
그사이 은우는 총을 꺼내 들었다. 향하는 곳은 경화된 팔이 아니라 머리다.
아무렴 시험도 좋지만, 죽일 기회를 그냥 내버려 두는 것도 멍청한 짓이다.
“머리도 경화할 수 있나 볼까요.”
머리를 경화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시험할 수 있고, 경화하지 않는다면 죽이면 그만이다.
은우가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세계가 또 한 번 멈췄다.
『사살과 제압│당신은 빌런을 두고 사살 또는 제압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사살의 경우 상대의 죄질에 따라 평판이 적게 상승하거나 감소할 수 있습니다.
제압의 경우 상대의 죄질에 따라 평판이 적게 상승하거나 더 많이 상승합니다.』
『평판│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목격된 범죄 활동에 따라 평판이 달라집니다.
평판은 게임의 진행과 엔딩에 영향을 끼칩니다.』
“아, 이게 히어로 전개와 빌런 전개를 가르는 그거군요.”
─ㅇㅇ넹
─참고로 빨리 제압햇는가 주변에 피해 덜입혓는가 등도 평판에 영향 끼쳐요
─경범죄는 사살하면 평판 깎이고 중범죄 이상은 제압이나 사살이나 비슷함다
─히어로 전개는 죽이면 안 됩니다wwww
“감사합니다. 죄질 쪽은 평가 기준이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일단 안 죽이는 쪽으로 가겠습니다.”
「‘빌런속마음’ 님이 ‘1,000원’ 투척!
하느님부처님 맙소사 저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빌런 메다닥 안도했누;
─ㅋㅋㅋ아 ㄲㅂㅋㅋㅋ죽여야하는데ㅋㅋ
은우는 총을 들지 않은 손으로 안내 창을 치웠다. 그러곤 빌런의 머리에 겨눴던 총구를 팔 쪽으로 돌렸다.
탕!
“끄아아악!”
총알은 경화된 손등을 관통해 냈다. 그 과정에서 돌가루 같은 것이 떨어지고 금이 쫙 갔다. 본래대로 손을 돌렸을 때 어떤 형상일지 좀 궁금해진다.
그렇지만 제압이 우선이었다. 은우는 총을 든 손으로 녀석의 뒷목을 내려쳤다. 현실 모드라서 그런지 바로 기절 판정이 떴다.
“너무 쉽네요.”
─너한테만...
─튜토리얼이니까 모....
─구울왕한테 너? 말 올려라
─변태에 이어 과몰입충신도 나오는가....
빌런의 몸이 바닥에 철퍼덕 널브러졌다. 멀리 대피했던 사람들이 슬그머니 박수나 고맙다는 말들을 던졌다.
─이 사람도 빌런입니다!
─ㅋㅋㅋㅋ이 사람도 빌런이에요!
「‘근데자영업자입장에선’ 님이 ‘1,000원’ 투척!
상품 손상없이 범인 제압해줬음 빌런도 영웅이지ㅋ」
─아ㅋㅋㅋ이거 맞따
─가판대 부수는 히어로 vs 손상없이 제압하는 빌런
─닥후ㅋㅋㅋㅋㅋ
─무조건 22222222
빌런이 칭찬받는 기현상에 사람들이 깔깔대며 웃는 사이, 미션 완료라는 홀로그램과 그에 대한 보상이 떠올랐다. 경험치와 소량의 돈, 평판이 지급되었다.
동시에 전자 노트는 고리 마크도 띄웠다. 고리를 이루는 선은 5개로 분할되어 있었는데, 그중 두 개가 반짝거렸다.
『지명수배│표시되는 원형 게이지는 지명수배 단계를 나타냅니다. 게이지가 많이 찰수록 경찰과 히어로의 추적이 집요해집니다.
경찰의 시야에서 벗어나면 지명수배 게이지가 점차 줄어들며, 수색망이 점차 좁아집니다. 지명수배를 벗으려면 경찰이 수색을 중지할 때까지 경찰 또는 히어로의 눈에 띄지 마십시오.』
현실과 게임의 한계를 최대한 타협한 듯한 룰이 보였다.
은우는 바로 납득했다. 요컨대 그냥 안 걸리고 도망치면 됐다.
“도망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환호를 뒤로하고 걸음을 옮겼다. 전자 노트를 통해 맵을 띄우면 경찰의 수색망이 표시된다.
빨리 제압한 덕일까. 그와 경찰 사이의 거리는 아직 멀다.
그는 빠르게 상가 거리를 나와 주차해 둔 차에 탑승했다. 그의 손이 핸들을 단단히 잡았다.
“경찰 따돌리려면 좀 달려야겠습니다.”
참고로 현실에선 범죄지만, VAV에선 범죄로 취급되지 않는 행동 하나가 있으니.
VAV의 인기를 끌어올리는 한몫한 그것은 바로 사실감 넘치되 법과 규제를 무시하고 난폭하게 굴어도 되는 운전이다.
“속도감 주의해 주십시오.”
─아ㅋㅋㅋ준비해라
─착-석
─형 아깐 너무 얌전햇어 이젠 진심으로 가자 ㅇㅋ?
─켄님 운전 잘함?
─잘하심ㅇㅇ
─위얼휴먼은 운전이 아니지 않나....
은우는 대답 대신 액셀을 밟았다. ‘끼이이익!’ 하는 마찰 소리와 함께 차량의 타이어가 맹렬히 회전했다.
─크으으 엔진소리 쥑인다
─VAV가 운전하난 진짜 기똥차게 잘만들엇지;;
─캬아아 VAV 마렵누
─엔간한 레이싱 겜 저리가라잖어
VAV는 지금껏 해 본 레이싱 게임─혹은 게임 속 운전 요소─중에서 가장 사실적인 감각을 요구했다. 운전 방법을 처음부터 알고 있지 않으면 엄두도 못 낼 수준이었다.
다만 그렇기에 더욱 재미가 더해진다.
차가 도로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광고 찍을 때 운전해 본 차라 다행입니다.”
건너편에서 경찰차가 다가왔다. 은우는 운전대를 확 꺾으며 브레이크를 밟았다. 빙글 회전한 차가 아슬아슬하게 전복되는 걸 면했다.
전복의 위험을 대가로 얻은 건 골목길에 입성해 경찰차의 추적을 지연시키는 것이다.
곧 골목길을 빠져나온 그는 운전대를 꺾었다. 빙글 돈 차가 옆 차선을 지나쳐 정차선에 딱 맞게 섰다. 은우의 발이 액셀을 콱 밟았다
한편 도로를 달리던 차들은 갑자기 튀어나온 은우의 차에 브레이크를 밟으며 이리저리 멈춰 서고 사고를 냈다. 덕분에 어떻게든 골목길로 따라온 경찰차가 시민들 차에 막혀서 그대로 골목에 갇혔다.
은우의 차가 유유히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속력을 가리키는 침이 점점 높은 숫자로 올라갔다.
그는 운전대를 부드럽게 돌려 가며 역주행도, 정주행도 번갈아 했다.
정주행을 하면 추월 운전이 당연했고 역주행은 아슬아슬하게 피함으로써 뒤에서 쫓아오는 경찰차를 방해했다. 경찰차는 그처럼 운전하지도 못할뿐더러, 그가 아슬아슬 비껴 나갔던 차들이 브레이크를 밟다가 도로를 막곤 했다.
─범죄 안 좋아한다던 분 어디감;;
─VAV에서 난폭운전은 범죄 아님ㅋ
「‘콩구울’ 님이 ‘1,000원’ 투척!
뭐애오! 약한 사람들 안 괴롭힌다면서오!」
─민간인들 다 죽어요ㅋㅋㅋ
“그렇다고 잡힐 순 없잖습니까.”
민간인을 보호해 줄 도덕은 있지만, 그게 그의 목숨보다 위로 가진 않았다.
─맞는 말이긴 한데ㅋㅋㅋㅋㅋ
─그냥 난폭운전을 좋아하는 게 아닐까요....?
─이쯤되면 난폭이 아니라 곡예;;
─ㅋㅋㅋ곡예운전ㅋㅋㅋ
─이분 현실에서도 이러시는 건 아니겠지?
─ㅋㅋㅋ그랫음 뉴스 탓다 이미
“오해받으니 슬픕니다. 그리고 저, 운전면허 아직 없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면허 따야 하는데. 은우는 핸들을 손가락을 톡톡 두드렸다.
그러던 와중 꽤 먼 거리에서, 그러나 운전하는 입장에선 그다지 멀지 않은 거리에서 신호등을 기다리는 차들이 보였다. 사거리였다.
“흠.”
지금 달리는 도로는 2차선 도로다. 신호를 기다리는 차량은 1차선, 2차선에 각각 한 대. 그 앞은 하필이면 사거리라서가 꽤 많은 차가 오가고 있다.
은우의 감각이 거리와 속도, 폭 따위를 계산했다. 하다못해 신호등까지.
안 그래도 미친 속도감인데 그의 발은 액셀을 더욱 꽉꽉 눌렸다.
─부딪친다!!
─ㅇㄴㅇㄴㅇㄴㅇㄴ
─옵바 나 옵하만 믿고 일인칭 간다ㅏㅏㅏ
─오ㅏㅏㅏ개짜릿
은우는 입술을 삐뚜름하게 늘이며 눈을 빛냈다. 까만 차가 1차선, 2차선을 가르는 선 위에 섰다. 노리는 건 두 대의 차량 사이, 그 묘한 틈이다.
신호등은 아직 빨간색이다.
─형혀옇여형 부딪쳐요!!
─부딪친다!!!
─박살! 파괴!
“사고 안 납니다.”
차 사이의 거리가 20m로 준 순간 신호등이 파란색으로 변했다. 그리고 거리는 15, 10, 5, 4, 3, 2, 1, 기어코 제로 거리까지 도달해 마이너스 점을 추월했다.
퍼억!
사이드미러가 날아가 버렸지만, 차는 틈을 통과해 냈다. 빨간불로 변한 덕에 사거리를 가로로 횡단하던 차들은 잠깐 멈춘 상태다.
은우의 차가 유유히 사거리를 쌔앵 달려 나갔다. 뒤에서 경찰차들이 멈추거나 서로 박는 소리가 참 잘 들려왔다.
“운전, 참 재밌네요.”
─아니 이건 운전이 아니라구요;;
은우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게 보인다면 어쩔 수 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