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방송이 끝나고 그들은 다이아박스 사옥에 있는 방 하나를 빌렸다. 비어 있는 방을 잠깐 쓰는 것뿐이었으므로 별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스태프들은 전부 물렸다. 이 방에는 이제 방송을 켜지 않은 스트리머들밖에 없다.
은우는 그 가운데서 헬멧을 붙잡았다. 다들 그에게 주목했다. 헬멧을 잡은 손이 잠깐 멈추었다.
“저라도 그렇게들 보시면 부끄럽습니다만.”
“전혀 안 그런 목소리신데요.”
딴지를 걸면서도 다들 시선을 피해 줬다. 은우는 어깨를 으쓱였다.
커다란 손이 헬멧을 시원하게 벗겨 냈다. 음영이 뚜렷한 얼굴이 드디어 공기와 맞닿았다.
“헐…….”
“와.”
방송 때 쓰는 방이라 조명이 밝은 편인데도 눈썹 아래 눈꺼풀은 그림자가 깊게 졌다.
그러자 날카로운 눈매가 더욱 부각됐다. 밝은 조명으로 인해 그늘에서 간신히 비껴간 눈매가 희게 빛을 발한 탓이다.
사람을 위축시키는 눈동자와 날카로운 눈매의 아귀가 맞물리면 언제나처럼 포악하고 모진 분위기가 한 겹 덧씌워진다. 사람을 죽여 본 자와 죽여 보지 않은 자의 눈빛의 깊이가 다르듯, 수많은 생명을 앗았던 영혼은 그가 바라지 않아도 가시를 비죽비죽 세우는 것이다.
은우가 알지 못하는, 안다 해도 어찌할 방도가 없는 고압적인 기세의 근원지였다.
다만, 그래. 그의 얼굴을 본 사람들이 겁을 집어먹는다는 건 경험상 잘 안다.
은우는 왠지 멋쩍어져서 머리카락만 슬슬 쓸었다. 짧은 머리카락이 손가락 사이사이를 훑었다.
“…다시 쓸까요.”
다들 탄성 살짝 지른 거 외엔 반응이 없다. 그게 역시 겁을 먹어서인 것 같아 은우는 오른손으로 들고 있던 헬멧을 고쳐 쥐었다. 사람들 눈에 빛이 돌아왔다.
“절대! 아뇨!”
가장 먼저 외친 건 끼어들어 온 검은양이었다. 공포 전문 스트리머라 그런지 회복도 가장 빠르다.
“그걸 왜 가려요!”
“아따… 진짜 잘생겼는데.”
“거봐, 잘생겼다니까.”
나이 지긋한─그래 봤자 40대다─개불도 금방 말문을 텄다. 탄산이 깔깔대며 손을 휘저었다.
“켄 님, 이건 배신이다…….”
슬리퍼는 오른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왼손으로는 소파의 등받이 윗부분을 잡았다.
“실력에 목소리에 얼굴까지 다 가지는 게 어딨냐!”
“이건 기만이다!”
레드바가 거들었다. 이건 또 생각 못 한 반응이었다. 은우의 눈매가 떨떠름을 매단 채 목덜미를 쓸었다.
다들 사회생활에 익숙할 테니 대놓고 기피하진 못할 걸 안다. 그러나 최소한, 조금이라도 꺼리는 기색은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무섭게 잘생기셨네요.”
“제가 말했죠, 가릴 필요 없는 얼굴이라고.”
“아까 탄산 님이 그 벌칙 나왔을 때 엄청 웃으신 이유를 알겠어.”
“아, 벌써부터 아깝다.”
꺼려 하는 기색은 없었다. 겁을 안 먹었다기보단 겁을 먹었되 호감이나 호기심 따위가 더 우선되는 것에 가까웠다.
차마 바라지 않은 기대가 현실이 된 셈이다. 은우의 눈동자가 옆으로 굴렀다가 아래로 내리깔렸다.
“‘잘’ 자가 잘못 끼어들어 간 것 같습니다만.”
“제 동생보단 잘생겼으니까 괜찮아요.”
레리는 상큼하게 제 동생을 까 내렸다. 레드바가 억울한 얼굴로 은우를 봤다가 패배감만 얻어 간 건 여담이었다.
이미 본 빌리는 둘째 치더라도 산호도 반응이 온건했다. 그녀는 담담하게 시청자들에게 후기 들려 줘도 되냐고 허락을 구해 왔다. 알아서 하라는 대답밖에 줄 게 없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잃을 걸 각오했는데 무언가를 얻어 버렸다는 게.
은우의 손이 입가를 살짝 매만졌다. 입술이 살짝 달싹거리다가 끝내 다물렸다.
“맞다, 희윤이는?”
“희윤이도 켄 님 얼굴 궁금해했는데.”
그리고 대망의 희윤이는.
“안영!”
정말 겁이 없었다.
은우는 엉겁결에 희윤이를 품에 안았다. 그를 보고 겁먹지 않은 아기는 처음이라서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스트리머들이 그를 좋게 봐 준 것보다 더한 미묘함이었다.
“하, 진짜. 열받는다.”
검은양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왜요, 누님?”
“저 얼굴, 더는 못 보잖아!”
“아, 맞다. 채널 달랐지.”
“켄 님! 우리, 얼공하죠!”
그녀는 손을 덥석 잡아 오며 간절히 외쳤다. 말귀를 알아들은 건지 아닌지, 희윤이가 ‘조아!’라고 옆에서 코러스를 넣었다.
“켄 님이 얼굴 공개 하시면 저 같은 건 완전 밀려 버리겠는걸요.”
나름 준수한 외모와 훤칠한 실력으로 방송을 밀고 가는 빌리의 말이었다. 농이라고 하기엔 어딘가 어물쩍한 구석이 있다.
은우의 시선이 슬쩍 빌리를 쓸었다.
“에이, 빌리 님이 왜 밀려요. 지금도 톱 스트리머신데.”
“빌리 님이 밀리시면 우리는 말라 죽을 듯.”
스트리머들이 재잘재잘 떠들었다. 빌리 덕분에 화제가 돌아갔지만, 은우는 그것에 감사를 느끼진 않았다.
한동안 그의 눈길은 빌리에게 머물렀다.
▣ 123. 사진이 하나도 없다
“이렇게 헤어지기도 아쉬운데 저희, 고기나 땡길까요?”
“난 콜.”
“아직 10시 안 됐으니까 괜찮네.”
그사이 회식 소리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합방을 한두 번 해 본 게 아닌 만큼 퍽 자연스러운 논의였다.
“난 희윤이 때문에 일찍 들어가 봐야 해서.”
“개불 님은 어쩔 수 없죠.”
“우, 희윤이 귀여워.”
“볼 찔러 보고 싶다.”
개불은 은우 품에 안겨 있다가 코 잠든 희윤이를 받아 들었다. 따끈한 온기가 갑자기 사라진 것에 은우는 손을 까닥거렸다.
“나도 됐어요. 늙은이가 젊은이들 사이에 껴서 뭐 해.”
“아직 한창 때이신데요.”
“됐어요, 됐어요.”
개불이 빠지니 탄산도 거절했다. 40대가 늙은 나이는 아니나, 나머지 인원이 죄다 20대이다 보니 그녀가 점잔 빼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럼 저도…….”
“에, 빌리 님도?”
“팀원 두 분이 다 빠지신 데다가 이것저것 할 게 있어서요. 죄송해요.”
빌리도 팀원을 근거로 빠졌다. 사람들은 그를 존중해서 정확히 두 번 권한 후 제안을 물렀다. 편한 자리라 참석 여부에 굳이 고집하지 않았다.
“빌리 님, 요즘 되게 말수가 주셨네.”
“세계 대회가 밀려서 그런가.”
레리랑 산호가 나누는 말이 유난히 귀에 박혔다.
“행님은?”
불쑥 레드바가 치고 들어왔다. 은우는 눈동자를 내렸다.
“켄 행님도 가실래용?”
“전…….”
별로 생각해 보지 않았다. 애당초 오늘 얼굴을 보이게 될 것도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더구나 희수를 제외한 타인이 먼저 밥 먹자고 한 건 처음이었다. 그러니까, 공적인 일 제외하고.
“켄 님도 참가하시려나?”
“너무 부담스러워하지 않으셔도 돼요. 편하게 생각하세요.”
“참고로 저희가 갈 곳은 룸도 있어서 얼공이 마음에 걸리시면 룸으로 가면 돼요.”
“돈은 더치페이.”
“음주도 자유.”
다들 편하게 마음먹으라고 하면서도 기대 어린 눈들이다. 은우는 눈을 껌벅이다가 목덜미를 쓱 쓸었다. 참가할까 말까. 해도 되나.
고민은 길었지만 결정은 짧았다. 은우는 충동적으로 대답을 토해 냈다.
“…여러분이 괜찮으시다면.”
“얏호!”
“괜찮고 말고요!”
“뭐야, 켄 님도 가?”
“하이고 아쉬워라.”
짐을 챙기던 개불과 탄산이 안타까움을 표했다. 물론 말은 그렇게 해도 둘 다 낄 생각은 없어 보였다.
“아, 켄 님이랑 회식. 아.”
그사이 검은양이 고뇌에 찬 얼굴로 머리를 붙잡았다. 레리랑 레드바가 옆에서 깔깔거렸다.
“오고 싶죠? 오고 싶죠?”
특히 레드바의 깐족거림은 모르는 이가 봐도 얄미운 수준이었다. 검은양이 레드바의 멱살을 잡고 짤짤짤 털었다.
“나도 회시익!”
“다른 채널인데 그래도 되는 거임?”
“으아아악!”
아무래도 소속 채널과 욕망이 그녀 안에서 줄다리기를 하는 모양이다. 검은양이 한참을 고뇌하다가 그의 손을 다시 덥석 잡았다.
“켄 님, 켄 님. 다음에 꼭 다시 만나요.”
“누가 보면 그 뭐냐, 견우와 직녀인 줄 알겠다.”
“애벌레는 싸물어.”
이렇게 스스럼없이 다가오는 사람은 또 처음이라 밉지가 않다. 은우는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검은양이 감격한 표정으로 그리고 미련이 절절한 손짓으로 짐을 챙겼다.
“덕은 계를 못 탄다지…….”
그걸 보며 레리가 남긴 한 마디였다.
* * *
갈 인원이 결정되자 그들은 우르르 고깃집으로 몰려갔다.
룸으로 가면 돈을 더 지불해야 했으나, 은우가 불편할 수 있다는 이유로 그들은 흔쾌히 룸을 잡았다.
“추가 비용은 제가 더 내겠습니다.”
“네? 괜찮아요. 저희 어차피 거의 룸 써서.”
“더치페이라니까요, 더치페이.”
“아, 아니지, 아니지. 예전에 켄 님한테 밥 한턱 쏘기로 했었죠?”
“아, 아~ 그러네! 켄 님 빼고 더치페이입니다.”
아직도 그것을 기억하고 있을 줄 몰랐다. 은우는 눈을 데굴거리는 레드바를 두고 세 사람을 보았다.
“아무리 그래도…….”
“저희도 돈 꽤 벌어요. 한 끼 정돈 20만 원 거덜 내도 거뜬합니다.”
“괜찮아요, 드세요.”
저렇게까지 권하는데 매끄럽게 거절할 말재간은 그에게 없었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았다. 다섯이라서 굳이 자리 나눌 것도 없었다.
“그보다 켄 님 알아보는 사람 진짜 많네요.”
룸에 들어오자마자 들은 말이었다. 아무렴 택시에서 내려 고깃집 룸까지 들어오는 데 세 번이나 붙잡혔으니 당연한 얘깃거리였다.
“우리도 알아봐 주신 게 어디냐.”
“슬리퍼 형님은 모르더라.”
“애벌레, 입 다물어.”
슬리퍼는 엉엉 우는 소리를 냈다.
“근데 슬리퍼 너는… 현실에서 팬입니다, 외치긴 좀 그렇지.”
“젠장, 부정할 수가 없네.”
악질로 가득한 채팅 방을 떠올리며 슬리퍼는 인정했다.
현실이어서 얌전한 거지 그도 방송을 켜면 스트리머계의 톱 순위 미친놈이었다. 일반인 코스프레를 해야 한다면 절대 팬임을 밝히지 말아야할 스트리머란 소리도 된다.
“그보다 켄 님, 헬멧 안 답답하세요?”
“괜찮습니다.”
기술이 워낙 좋아졌다 보니 땀도 안 차고 시야도 밝다. 은우는 남아도는 의자에 헬멧을 내려놓았다. 그래도 안 쓴 게 좀 더 편하긴 하다.
“우리 술 먹는 거 벌써 소문났다.”
“킹직히 켄 님이 있는데 안 나는 게 어렵지.”
“기자 안 붙은 것만으로 다행인 거야.”
“아, 혹시 모르니까 켄 님, 여기 앉으세요. 각도상 밖에서 얼굴 안 찍힐 거예요.”
“감사합니다.”
은우는 생소한 느낌에 애꿎은 목덜미만 쓸었다. 배려를 한 번도 받아 본 적 없다든가 하는 팍팍한 삶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것과 별개로 익숙하진 않다.
그사이 종업원이 상을 차리고 주문까지 받은 후 나갔다. 고기와 술이 나오는 건 금방이었다.
불판이 2개였으므로 하나는 은우가, 하나는 산호가 잡았다.
“헐. 행님, 고기 짱 잘 구우시네요.”
“요리 진짜 잘하시나 보다.”
“…별거 아닙니다.”
그는 캬라멜색으로 노릇하게 익은 고기를 빠르게 뒤집었다. 양념이라서 조금만 방심해도 타기 일쑤다. 속도가 생명이었다.
“켄 님은 술 안 드신댔죠?”
“네. 술 못 마십니다.”
“이런 말하긴 뭐하지만, 엄청 잘 드시게 생겼는데 의외네요.”
“자주 듣습니다.”
“아예 못 드시는 거예요?”
은우는 눈동자를 데굴 굴렸다. 반 병은 된다고 생각했다가 한 잔에 골로 갔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네.”
먹고 사고 치느니 안 먹고 만다. 은우는 단호히 그 자신을 알코올 쓰레기로 단정 지었다. 술 먹고 사고 치는 건 둘째 치고, 그걸 감당할 주변인들이 걱정돼서 못 먹겠다.
“흐. 행님, 그럼 저랑 콜라나 드시죠.”
“네.”
그는 레드바에게 콜라를 받았다. 레드바도 술을 못 마셨다.
“이렇게 보면 참… 켄 님이 레드바보다 형 같은데…….”
“맞다. 켄 님, 어리셨지.”
옆에서 술을 한 잔씩 돌리던 세 사람이 순간 굉장히 거리감 느끼는 얼굴을 했다. 해맑은 레드바는 예외였다. 그는 은우가 더 어리단 말을 듣고서도 형님이라 부르겠다 말한 사람이었다.
“진짜 스무 살이세요?”
은우는 집게로 고기를 주워 먹다 말고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지갑과 함께 주민등록증이 나왔다.
“헐, 리얼이네.”
“33…….”
“나랑 4살 차이…….”
그는 충격에 빠진 세 사람을 보며 목덜미를 쓸었다.
“제가 그렇게 늙어 보입니까?”
“엥, 아녕?”
대답은 레드바가 했다.
“행님이 늙어 보이는 얼굴은 아니에요.”
“그, 늙어 보인다기보다는 분위기가 워낙? 뭐라고 하지. 되게 윗사람 같아서요.”
“뭐지? 약간 대기업 상무님 보는 느낌?”
은우는 슬리퍼의 비유에 눈을 끔뻑였다. 기계적으로 고기를 뒤집는 손이 레드바의 앞 접시에 다 구워진 고기를 잔뜩 쌓았다.
“상무면 높은 겁니까?”
“…높지 않나?”
“난 몰라.”
“회사를 다녀 봤어야 뭘 알 텐데…….”
안타깝게도 이곳에 있는 다섯 명 전원은 직장을 다녀 본 적 없는 사회인들이었다. 머쓱함에 대화가 잠깐 끊겼다.
그래도 와닿긴 했으므로 적당히 넘어가기로 했다.
“근데 켄 님, 레드바한테만 고기 너무 주시는 거 아니에요? 켄 님도 좀 드세요.”
“아…….”
은우는 레리의 말에 목덜미를 쓸었다.
“제가 빨리 먹어서 일부러 많이 드린 겁니다. 자칫하면 못 드실 것 같아서.”
“와, 누나. 진짜 켄 님만 챙기는 것 봐…….”
레드바가 섭섭함을 토로했지만, 남매는 가차 없었다.
“쟨 좀 덜 먹어도 돼요.”
“생각해 보니까 켄 님, 완전 천사시네. 레드바가 아니었으면 켄 님네가 우승하셨을 텐데.”
“팀장은 나였는데 왜 켄 행님 팀 취급이지?”
“솔직히 네 잘못이 크잖아.”
“그건 그렇네.”
은우는 그들의 티키타카를 보며 그가 왜 ‘빨리 먹는다’고 말했는지 보여 주었다.
큼직하게 잘라 낸 고깃덩이 두 점이 그의 입속에 빨려 들어갔다. 입이 크다 보니 큰 고기도 그에겐 적당히 자른 고기에 불과했다.
레드바랑 같이 먹는 게 아니었다면 이것보다 좀 더 크게 잘랐을 것이다. 스트리머들은 쉽게 그의 속도를 인정했다.
“켄 님.”
“네.”
“갑자기 궁금해졌는데, 몇 인분까지 드세요?”
“딱히 재 본 적은 없습니다만…….”
산호의 물음에 그는 잠깐 계산해 보았다. 스트리머 일 시작한 뒤에야 마음 놓고 먹기 시작한 터라 반추할 만한 경험이 별로 없었다.
“일단…….”
“일단?”
“친구랑 갔던 뷔페에서 꽉 채워서 8접시 정도 먹은 기억은 있습니다.”
종류별로 다 먹고 디저트까지 한 접시 채워서 다 먹고 나왔었다. 그걸 보며 희수가 살 안 찌는 게 용하다 했던가.
은우는 그 시점에서 더치페이란 사실을 떠올렸다.
“제가 먹은 건 제가 내겠습니다.”
“그건 저희가 사겠다니까요. 그보다 진짜 체격값 하시네요.”
“와. 8접시, 미쳤다. 난 3접시도 많이 먹은 건데.”
“대박. 식비 엄청 나오시겠어요.”
“평상시엔 그렇게까지 안 먹습니다.”
정확힌 못 먹은 쪽에 가깝지만, 어쨌든.
그는 네 사람의 감탄을 들으며 고기를 구웠다. 구워진 고기는 식기 전에 그의 입안으로 들어갔다. 중간에 시킨 냉면이나 계란찜, 공깃밥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평소처럼 조용히, 그렇지만 큼직큼직하게 떠먹었다. 소리가 없어서 먹긴 하나 슬쩍 보면 참 잘 먹고 있는 모양새였다.
“켄 님, 먹방 찍으셔도 잘하실 듯.”
“진짜 복스럽게 드신다.
“겜방에 쿡방에 먹방까지 가능한 남자. 오졌다.”
“진짜 얼공 안 하시는 게 아쉽네요.”
은우는 쏟아지는 관심에 눈동자만 데굴 굴렸다. 쿡방까진 몰라도 먹방은 생각해 본 적 없다. 할 일도 아마 없을 것 같다.
“음.”
그즈음, 슬슬 배가 불러 뒤로 물러나 있던 레드바가 전자 노트를 들었다. 찰칵 하는 소리에 고개를 드니 레드바가 노트 화면을 짜잔 보여 준다.
단추 두어 개를 끄르고 소매를 걷은 채 고기를 집어 든 그가 찍혀 있다.
“혹시나 해 봤는데 행님, 사진발도 죽이시네요. 아, 원하심 삭제해 드릴게용. 보내 드릴 수도 있고.”
어디 노출시키려고 찍은 것도 아니고, 삭제할 권리도 준 터라 별 화는 안 났다. 조금 당황스러울 뿐.
은우는 떨떠름하게 레드바의 노트 화면을 바라보았다. 졸업 사진 외 사진첩에서 그를 본 건 처음이다.
“아, 그래. 켄 행님, 괜찮으시면 단체샷 어떠십니까. 얼굴은 가려 드릴게요. 아니면 헬멧 쓰셔도 괜찮구요.”
“오, 단체샷.”
“사진 좋지.”
“그…….”
단체샷 이야기가 나오니 다들 들썩였다. 그에 은우는 거절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사진 찍히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으나, 거절할 이유를 찾을 수 없다. 거절하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다. 다들 그걸 반겨서만은 아니었다.
은우의 시선이 화면 속 자신에게 꽂혔다. 놀랍게도 사진은 평범했다. 얼굴이 안 무서워졌다거나 하는 의미가 아니라 그냥 구도가, 표정이, 어딘가 모든 것들이 평범했다.
손가락 끝이 어딘가 찌릿찌릿하다.
“…저도 괜찮습니다.”
“좋아요!”
“슬리퍼, 네가 찍어.”
“오케.”
그는 어정쩡하게 카메라 앞에 섰다. 어쩌다 보니 헬멧은 쓸 생각도 못 했다.
“켄 님, 왜 이렇게 뻣뻣해요. 사진 처음 찍으시는 사람처럼.”
“…처음인데.”
“오노.”
“…슬리퍼 님, 유죄.”
“슬리퍼, 손 들어.”
“슬리퍼 행님, 벌금.”
은우는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환기하는 그들을 보며 귀밑을 긁었다. 농담 같지만, 이렇게 친구들끼리 찍듯 찍는 건 정말 처음이었다.
하나 있는 친구 녀석은 친구 사이에 징그럽게 사진은 왜 찍냐는 부류고. 그렇다 해서 그가 먼저 사진 찍자 말하는 타입은 더더욱 아니다. 당연한 흐름이었다.
“진짜 처음이에요?”
슬리퍼가 마지막 희망을 걸고 물었다. 은우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슬리퍼의 희망이 쪼개졌다.
“헐, 그럼 제가 행님의 첫 단체샷……?”
“헐.”
“영광이네요.”
차례로 레드바, 레리, 산호였다. 슬리퍼는 곧 정신을 차리며 결연한 눈빛을 했다.
“인생샷 하나 건지죠.”
“기대하셔도 돼요. 쟤, 잘 찍어요.”
산호가 담담히 말했다. 애초에 사진에 대한 조예가 없는 은우로선 별로 신경 쓰이지 않는 부분이었다.
그렇지만 역시 잘해서 나쁠 건 없다.
“크, 역시 나다.”
“와, 이거 진짜 잘 나왔다.”
“1우쭐 인정.”
그는 그의 노트로 전송된 사진을 가만히 보았다. 미세하게 굳은 그와 함박웃음들을 머금고 있는 네 사람이 옹기종기 사진 속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썩 사이가 좋아 보였다.
사진이 없어도 이 순간을 잊지 못할 것 같은데, 이젠 매개체마저 생겼다.
은우는 그 순간 사람들이 왜들 사진을 찍어 대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딱히 어딘가에 공개하지 않더라도, 누군가에게 보여 주기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좋다.
이건 흔적이었다. 타인에게 자신의 일상을 들킬 수 있는 흔적이자, 미래의 자신에게 과거를 속삭일 수 있는 흔적.
추억.
은우는 처음으로 의미 없이 SNS에 업로드하던 사진들에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그건, 그다지 나쁜 기분이 아니었다.
띠롱.
레드바의 채팅 창에 아까 혼자 찍혔던 사진이 올라왔다.
『레드바 님> 저는 삭제할게용~.』
정말로 나쁘지 않았다.
“크, 켄 님. 이거, 얼굴 가리고 올려도 되죠?”
“네.”
다들 노트에 코를 박았다. 은우는 그걸 가만히 보다가 문득 생각 하나를 떠올렸다.
생각해 보면, 그에겐 형하고 찍은 이런 사진이 하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