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자도 방송할 수 있습니다-122화 (122/233)

122화

결산 결과, 그들은 여지없는 3등이었다. 간발의 차로 ‘유산슬’ 팀이 스토리를 먼저 끝내고, 두 번째로 ‘두 노인’ 팀이 끝내 버린 것이다.

차라리 한쪽만 끝냈으면 라운드로 쟀을지도 모르는 걸 두 팀 다 깨 버려서 어떻게 방도가 없었다. 두 팀 다 막바지에 오래 막혀 있던 차라 슬슬 끝내려던 참이었단 중계 측 말까지 합하면 더욱 안타까운 일이었다.

다만, 그래. 1등이 ‘두 노인’ 팀이 아닌 건 의외였다. 레리나 슬리퍼, 산호를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그냥 그런 느낌이었다. 우유에탄산과 빌리라는 한국 최정상 스트리머가 붙어 있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은우의 시선이 조금 굳은 안색의 빌리에게 닿았다가 금방 떨어졌다.

“어… 켄 님, 화나셨어요?”

“화 안 났습니다.”

“말이 없으신 게 화나신 것 같아서…….”

“원래 이랬습니다만…….”

“그건 그런데…….”

오히려 그가 직면한 문제는 이쪽이다.

은우는 목덜미를 쓸었다. 정말 화 안 났는데 검은양이고 레드바고 둘 다 그의 눈치를 봤다. 그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사람들이 그러니 은우가 외려 더 멋쩍어졌다.

“정말 괜찮습니다.”

진심이었다. 레드바의 팀이 되기로 한 건 그의 선택이고, 레드바가 이런 것에 약한 사람인 줄 모른 것도 그다. 더 나아가 이 게임이 이런 게임인지 몰랐던 것도, 레드바의 능력 부족을 커버할 능력이 없는 것도 그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질 이유 그리고 그것을 빌미로 화낼 이유가 전혀 없었다.

“시청자분들도 즐거워하시고.”

─이럴 때 아님 켄 지는 걸 언제 봄ㅋㅋㅋ

─레드바가 해냈다!!

─ㅋㅋㅋㅋㅋ벌칙 받아라~!!

─ㅠㅠ켄님 팀운만 좋았어도ㅠㅠ

이럴 때 아니면 언제 그가 지는 걸 보겠냐며 깔깔대는 게 아주 일품이다. 그걸 보면 패배 자체에 조금 분해지다가도 그걸로 됐다 싶다.

“허어어엉. 형님, 제가 다음엔 더 잘할게요.”

레드바가 찡찡거렸다. 참고로 다시 말하는 거지만, 레드바는 은우보다 3살 많은 형이었다.

“크, 대인배.”

반면 검은양은 그의 관대함에 찬사를 보내며 본인은 레드바의 목에 헤드록을 걸었다.

“근데 난 용서 못 한다.”

키가 엇비슷한 덕에 레드바는 아주 쉽게 끌려갔다.

“자, 그러면 꼴찌 팀은 약속대로 벌칙을 받아야죠?”

그리고 대망의 벌칙 발표 시간이 다가왔다.

“우승 팀이 정해 주세요!”

레리라는 불구대천의 원수(혈육)를 두고 있는 레드바가 비명을 질렀다.

▣ 122. 헬멧이 살짝 들리며

“흐.”

남매라는 걸 증명하듯 레리는 레드바처럼 웃었다. 어쩌면 레드바가 지금껏 레리처럼 웃어 온 걸지도 모르겠지만.

“아, 누나, 누나. 제발 간단한 거.”

“어머, 누구세요. 켄 님이 팀 됐다고 승리를 장담하신 분 아니셨던가?”

“아, 누나!”

레드바는 이대론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슬리퍼에게 달라붙었다. 슬리퍼가 크학학학 웃으며 레드바를 비웃었다.

“후… 아시죠? 저, 다른 채널 소속인 거?”

“알죠, 알죠.”

레리는 그렇게 말하며 씨익 웃었다. 백발인 VR 캐릭터와 달리 밝은 갈색 머리카락이 찰랑거렸다.

“근데 적 스파이신 걸 너무 당당하게 밝히시네?”

“아악!”

참고로 레리와 검은양은 레드바로 인해 친해진 사이였다. 레리의 채팅 창에서 ‘이단이다~!’라는 문장이 우다다 올라왔다.

“2등 팀은 안 받는 거지?”

한편 2등 팀의 개불은 다이아박스 스태프를 다그쳐 답을 들었다.

“2등 팀은 안 받겠지, 설마.”

우유에탄산이 능글맞게 웃으며 주변에 지그시 압박을 주었다.

“으하하, 다행이다! 하마터면 우리 딸 보는 앞에서 벌칙 받을 뻔했네. 그치, 희윤아?”

“흐헤헤.”

안 받는 쪽으로 확정되자 개불은 딸부터 둥개둥개 했다. 귀여운 존재의 등장에 채팅 창이 희윤이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빌리는 어정쩡하게 뒤로 물러나서 다행이네요, 따위의 말만 지껄였다.

은우는 그런 그들을 보며 마지막 남은 산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문득 시선이 마주쳤다.

“저도 빌어야 합니까?”

“…글쎄요?”

담담한 인간 둘은 저 소란에서 한 발짝 물러난 반응을 보였다.

─아니 왜이렇게 담담한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님 벌칙 주는 사람이라고ㅋㅋㅋㅋ

─벌칙 정하는 사람 앞에서 당당한 꼴찌가 있다?!

─루삥뽕빵삥

─아 성하 벌칙으로 헬멧벗기기 가죠

─헉 벌칙 애교부리기 어떰??

시청자들이 그 점을 꼬집으며 웃었다. 그러곤 연이어 그들이 보고 싶은 벌칙들을 하나하나 말하기 시작했다. 전체 통합 채팅 상태였기에 사람들은 그것들을 전부 지켜볼 수 있었다.

“크하하하하하!”

“아니! 벌칙 수위 왜 저래!”

슬리퍼가 배꼽 잡으며 웃고, 레드바가 비명을 질렀다. 그들뿐 아니라 관전자로 2등 팀이 더해지고, 레리와 검은양까지 티키타카하니 개판도 이런 개판이 없었다.

“하하, 켄 님. 여기 켄 님 벌칙 얘기도 나왔는데요?”

“그렇습니까?”

은우는 우유에탄산의 말을 따라 채팅 창을 들여다보았다.

헬멧 벗기, 얼굴 공개, 애교 부리기, 여장, 벌칙 24시간 방송, 얼음물 샤워, 패딩 입고 방송하기, 공포 게임, 이상한 거 먹기. 별의별 의견이 다 있었다.

“와, 다들 켄 님 쪽 가니까 의견이 엄청난데요?”

“켄 님이 벌칙 받을 일이 솔직히 앞으로 얼마나 있겠냐.”

“그렇네. 지금 아니면 기회가 없겠다.”

“그 말 듣고 더 빨라졌잖아요.”

은우의 입이 꾹 다물렸다. 헬멧 벗기(얼굴 공개)는 많을 거라고 처음부터 예상했다. 애교 부리기나 여장은 대체 왜 시키는지 모르겠고, 벌칙 24시간 방송은 나쁘지 않다. 얼음물 샤워도 어렵지 않고, 패딩도 뭐…….

그러던 중 은우의 시선에 한 아이디어에 닿았다. 마침 우유에탄산도 그 채팅을 읽은 모양이었다.

“이분은 되게 구체적이네요. 고양이 귀와 리본 달린 핑크색 헬멧 쓰고 혀 반토막 난 발음으로 ‘누나, 형들, 이쁘게 봐 주세요.’ 말하기. 세상에… 켄 님, 하실 수 있으시겠어요?”

“고양이 귀요? 대박.”

그 말에 모두가 박장대소했다. 은우의 진짜 얼굴을 아는 우유에탄산은 거의 숨 넘어갈 지경이었다.

은우는 그것을 보며 목덜미를 쓸었다.

웃긴가? 물론 이걸 했다간 희수 그 자식이 꽥꽥 웃어 대면서 한 달 정도 놀려 댈 것 같긴 하다. 그렇지만 패배에 따른 대가라면야.

“그거 하실래요?”

레리가 함박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은근슬쩍 둘러보면 다들 기대하는 눈치다. 심지어 다이아박스 스태프들마저.

평소에 벌어질 만한 일은 아니긴 하지만, 그게 기대할 정도의 일인가. 그들의 기대를 이해 못 한 채로 은우는 입을 열었다.

“그것을 바라신다면.”

낮은 목소리로 읊조리니 레리가 입을 막았다. 거기서 슬리퍼가 나섰다.

“켄 님, 한 번만 더 말해 보세요.”

“…그것을 바라신다면.”

다시 한번 반복하니 주변 사람들이 웃음기를 싹 지웠다.

“나, 지금 약간 영화 속 보스 된 기분인데?”

“슬리퍼 님도요?”

“와, 이건 좀 사기다.”

“켄 님 목소리가 제일 치트였네.”

“하, 20년만 젊었어도 확.”

“얘가 주책맞게.”

“희윤이도 흥분한 눈친데?”

“조아!”

“뭐? 안 돼, 희윤아아아!”

은우는 그들의 반응을 보며 미간을 살짝 좁혔다.

“제가 뭐 잘못했습니까?”

“켄 님 목소리가 잘못했어요.”

목소리는 그가 어찌할 수 없는 분야다. 그는 목덜미를 한 번 더 매만지다가 입술을 떼었다.

“무엇을 명령하시든 따르겠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일단 좋아들 하니 장단을 맞춰 추기로 했다.

“…켄 님, 그런 말 함부로 하시는 거 아니에요.”

“와, 기분 진짜 째진다.”

“왜 행님만 장르가 다른 기분이지?”

“역시 사람은 목소리부터 잘나고 봐야…….”

“명령권, 나한테 넘겨주면 안 되냐?”

사람들이 쑥덕거리더니 일단 보류하겠다고 뒤로 물렸다. 그사이 채팅 창은 더 난리가 났다.

─ㅅㅂ 지금 내 귀 녹았냐?

─앵콜

─하, 저러면 더 괴롭히고 싶어지는데.....

─벌칙으로 나랑 사귀기 어떰

─켄이 뭔 죄라고 겜 한판 졌다고 너랑 사귀냐ㅡㅡ

─한 번만 봐주자,,,,

─안돼! 넘어가면 안 돼!

─얼굴 공개로 퉁치자

─진짜 목소리가 너무 좋아서 얼굴도 개잘생겼을 것 같음,,,,

─킹치만 현실은 그게 아니지!

─얼굴은 못생겼지?? 그치 형??

“제 얼굴을 너무 궁금해하시는 거 아닙니까.”

은우는 뒤로 물러났다. 마침 마련된 소파가 있어 몸을 기댈 수도 있었다.

3인용 소파지만 다들 카메라 신경 안 쓰고 왔다 갔다 하는지라 자리는 텅텅 비어 있다. 슬쩍 보면 빌리도 다른 쪽 소파에 앉아 있다.

덕분에 은우는 나뭇가지 위에 늘어진 고양이처럼 소파를 차지했다. 와이셔츠 깃이 팽팽해졌다.

검정색 셔츠라 안이 비치진 않았으나, 그 대가로 분위기는 흉흉해졌다. 넉넉한 셔츠를 고른다고 골랐는데도 어깨나 팔뚝 같은 특정 부위가 꽉 차 버린 탓도 있을 것이다.

“켄 님, 그렇게 계시니까 꼭 마피아 보스 같으시네요.”

“나, 저런 사람한테 명령할 수 있는 거야?”

“벌칙권이 왜 명령권이 된 거야.”

“그렇게 치면 빌리 님도.”

은우는 어깨를 으쓱였다. 한 번에 불과하지만, 벌칙으로 뭐든 시킬 수 있다면 그게 명령권과 다를 건 없다고 본다.

“형님, 그러지 말고 다 같이 애교로 가는 건 어떻습니까?'

“네?”

레드바가 슬쩍 다가와서 손을 꼭 끌어모았다.

“제가 기똥차게 애교를 부려 보겠…….”

“난 싫어!”

은우가 뭐라 하기도 전에 검은양이 극렬하게 저항했다.

“차라리 벌칙 방송 24시간 시켜 줘요!”

“알겠어요, 그럼 그건 뺄게요!”

“이 사탄!”

검은양이 머리를 벅벅 헤집었다. 제가 겪는 불행이 아니라고 주변인들이 깔깔 웃어 댔다. 미리 합의되진 않았으나, 무언의 허락 아래서 이어지는 이야기였다.

툭툭.

“……?”

그때 무언가가 은우의 다리를 때렸다. 손을 꼼지락거리는 희윤이었다.

“아우.”

조그만 아이의 등장에 은우는 조금 당황했다가 안아 달라고 손을 벌리는 모습에 일단 들어 올렸다.

무릎에 앉혀 주자 벌떡 일어서서 또 헬멧을 때렸다.

“이거 모야.”

“…헬멧인데.”

─갑자기 힐링방송됨

─엄청큰거+엄청작은거= 사랑

─희윤아ㅠㅠㅠㅠㅠ

─갭차이 오진다ㅠㅠㅠ

─애기야ㅏㅏㅏㅏ

─진짜 개찰떡이다,,,,,

“헤메?”

“헬멧.”

“햄매.”

혀가 짧아서 헬멧이란 발음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받침이 붙긴 했는데, 거의 안 붙은 것에 가까운 발음이었다. 평상시 쓰는 단어도 아니다 보니 더 어려운 모양이다.

희윤이가 헬멧을 물끄러미 보더니 그것을 양손으로 덥석 잡았다. 헬멧이 살짝 들리며 은우의 목이 드러났다.

─희윤이 잘한다!!

─아기야!!

─더더 벗겨!

─아싸!!

시청자들이 환호하든 아니든, 은우는 아이가 뒷걸음질 치다 떨어지지 않도록 그 등을 슬쩍 받치면서, 다른 손으로 그의 정수리─헬멧─를 꾹 눌렀다. 헬멧을 벗기려는 아이의 힘은 그의 것을 이기지 못한다. 당연하게도.

“안 돼.”

“안 대?”

“아이고, 희윤아!”

뒤늦게 희윤이가 은우와 있음을 알아챈 개불이 달려왔다.

“함부로 헬멧 벗기면 오빠가 곤란해져. 벗기면 안 돼.”

“안 되는구야?”

“그래, 안 돼. 그러니까 아빠랑 조기 가 있자.”

개불이 희윤이를 들어 올렸다.

“흐에엥.”

은우와 강제로 떨어지자 애기가 팔을 휘적이며 울먹이기 시작했다.

─ㅠㅠㅠ희윤이 너무 귀여워ㅠㅠ

─힐링 당한다,,,,

─도망쳐! 어른의 더러움이 씻겨나간다...!

─켄 덩치 땜시 무서울 텐데 용케 좋아한다

─목소리가 사기라 그럼;;

“아이고, 얘가 왜 이러냐.”

“…그냥 제가 안고 있겠습니다.”

이런 덩치인데도 좋아해 주는 아이는 또 처음이다. 은우는 결국 희윤이를 받아 안았다. 다른 손으론 헬멧을 붙잡은 채.

물론 소파에선 일어섰다. 어른과 대화하는데 앉아 있는 건 예의가 아니라 배웠다.

“애기들이 잘생기고 예쁜 걸 더 밝힌다더니, 진짜 그런가 봐.”

뒤에서 탄산이 깔깔 웃었다. 그 말뜻을 어른들은 단박에 알아챘다.

“헐. 켄 님, 잘생겼어요?”

“그냥 목소리 얘기 아니야?”

“그건 아닐 것 같은데……. 탄산 님은 켄 님 맨얼굴 보신 적 있잖아.”

“아이코.”

은우는 탄산을 슬쩍 흘겨보았다. 일단은 실수 같은데 혹시 아나. 능구렁이 같은 양반이 일부러 흘린 소릴지.

그는 혹시 빌리가 덧붙이는 건 아닐까 빌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용케도 자신을 보고 있다는 걸 알아챈 빌리가 슬쩍 고개를 저으며 입 앞쪽에 검지를 교차했다.

“…안 잘생겼습니다.”

“원래 잘생겼어도 본인보고 잘생겼다 말하면 욕먹어요.”

“그건 그렇지.”

유산슬 세 명이 힐끗힐끗 은우를 보더니 슬쩍 다가와 물었다. 카메라를 신경 쓰지 않는다곤 하지만, 다들 기본적으로 프로 방송인이라 본능적으로 카메라 각도를 고려해 접근한 채다.

“켄 님, 괜찮으시면 벌칙으로 얼공 어때요. 대신 방송 말고 저희한테만.”

이건 좀 솔깃했다. 다만 걸리는 것은…….

─미친 잘생겼다고???

─탄산 언제 켄 맨얼굴 봤냐??

─우리도 보여줘요

─옛말에 좋은 건 같이 봐야한댔습니다

─켄 얼굴까지 잘생겼다니 이건 기만이다!

─그러지 말구 우리끼리의 비밀로 하자

─비수 십오만 명만 공유하는 비밀ㅋ

시청자들이 ‘왜 너희만 보냐’고 아우성치는 사이, 우유에탄산이 고개를 주억였다.

“난 괜찮은 벌칙이라고 봐요. 켄 님, 그렇게 안 빼도 되는 얼굴이라니까.”

“그 말 들은 직후에 도망가신 분도 봤는데…….”

은우는 허탈하게 웃었다.

“엥, 그래요? 어떻게 그러지.”

레드바가 옆에서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저번에 보니 레드바랑 친한 사이 같던데, 제 지인 중에 그런 사람이 있다곤 생각지 못한 얼굴이다.

─아니 왜 얼굴을 보고 도망침?

─얼마나 잘생겼으면,,,,

─잘생겨서 도망가는 경우는 별로 없지 않나?

─못생긴 거야 잘생긴 거야

시청자들이 그의 외모에 대해 갑론을박하는 사이 은우는 헬멧을 만지작거렸다. 그리곤 그를 물끄러미 올려다보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만약 당신들이 무서워한다면, 꺼려한다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걸로 하셔도 됩니다.”

그래도 상관없다.

“생각보다 쿨하시네요.”

“패배자에게 거부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건 그런데… 싫으시면 꼭 공개 안 하셔도 돼요. 웃자고 하는 건데요.”

“괜찮습니다. 방송에 하는 것도 아니고 여러분께만 하는 건데요.”

“헐, 그러면 나도 봐도 될까요?”

“저도, 저도! 형님, 저도!”

“앗… 난, 난 안 되겠지?”

은우는 슬쩍 끼어든 개불을 보았다.

“상관없습니다.”

별로 상관없었다. 만약 외모 때문에 멀어진다면 당신들이 그런 사람일 뿐인 것이고, 그런 인연일 뿐인 데다가…….

당신들이 멀어진다고 해서 그가 혼자가 되진 않을 테니까.

은우는 깨끗하게 씻어 둔 죽통을 떠올렸다. 얼굴을 보여 주는 게 시기상조라고 생각했던 게 얼마 전 같은데, 참 기이한 일이지. 그 통만 떠올리면 이상하게 안도가 됐다. 더 이상 사람들이 돌아서는 게 무섭지 않다.

그는 혼자가 아니다.

─님들만 보기 있음?

─배신하면 구독 취소하겠읍니다

─뭐야! 우리도 보여줘요!

─나도 켄 얼굴퓨ㅠㅠㅠㅠ

─형 우리도 보여줘ㅠㅠㅠ

─동생 얼굴 함만 보자 응? 딱 백 번만 돌려볼 테니까

─우리도 보게 해줘잉

은우는 시청자 채팅을 잠깐 보다가 헬멧을 잡았다. 길고 큰 손은 손쉽게 헬멧의 안면부를 전부 붙잡았다.

“어?”

“벌칙은 이것으로 확정되는 거 맞습니까?”

“어어, 네, 네.”

“헐. 진짜?”

“대박!”

─??

─설마??

─진짜 보여주는 거임??

─미친 미친미친

─시청자수 올라가는 거 보이냐

─와아ㅏㅏㅏㅏㅏㅏ

─드디어 얼공? 얼공??

─얼공!!

헬멧이 살짝 들리며 목과 연결된 턱선이 드러났다. 굵은 붓으로 한 번 그은 것처럼 확연한 선에 스태프진 쪽에서 조용한 경악음이 들려왔다. 채팅 창은 이제 올라가는 속도를 따라잡기 힘들다.

그사이 아직 수염이 나지 않은 턱이, 옅은 색의 입술이 헬멧 아래로 그려졌다.

또 거기서 인중이, 코끝이 살짝 드러났을 때.

헬멧이 다시 추락했다. 헬멧과 단추를 두어 개 풀어 둔 셔츠 사이의 목선 근육이 도드라졌다.

“하마터면 초심을 잃을 뻔했네요. 방송 끝나고 보여 드리겠습니다. 다른 분들 벌칙부터 진행하시죠.”

“으아아아.”

“와와와.”

곧 보게 될 걸 아는 사람들뿐 아니라 이번 아니면 볼 수 없었던 자들이 비명을 질렀다.

채팅 창이 분노로 폭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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