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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자도 방송할 수 있습니다-120화 (120/233)

120화

검은양의 말에 따르면 스토리 진행을 위해 밟아야 하는 단계는 다음과 같다.

칠대죄의 탑, 각 제단 방에 있는 상징물을 부수고 기사를 소환, 퇴치. 칠대선의 상징물을 모아 지하실─7개의 탑과 연결된─에 모인다. 그래야만 축복(무기 강화)을 개방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후 미션 진행을 위한 특정 아이템도 미리 조합해 놔야 했다.

그다음으로는 지하실과 연결된 통로를 마구 쏘다니며 십자가 3개와 그 십자가에 매치할 조각상을 찾아야 했다. 예수와 선한 도둑 디스마스, 악한 도둑 게스타스였다.

그것들을 결합한 후 경기장의 한가운데로 가서 꽂으면 역할 선택이 나온다. 각자 예수, 디스마스, 게스타스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이때 게스타스를 고른 사람은 사망상태로 변하며 연옥이라는 공간에 따로 떨어진다. 다른 웨이브에서 죽으면 관전 모드(Observer mode)로 돌입, 유령 상태로 둥둥 떠다니며 나머지 인원을 구경하는 것과는 썩 다른 양상이었다.

어찌 됐건 게스타스 역할의 플레이어는 연옥에서 회개란 이름의 퍼즐을 풀어야 했다. 그것도 나머지 인원이 웨이브를 끝내기 전에.

만약 실패할 경우 조각상을 찾는 것부터 다시 해야 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십자가는 남지만 말이다.

▣ 120. 약한 놈들을 피해서 도망치는 게

“이럴 줄 알았어!”

검은양은 레드바의 등짝을 찰싹찰싹 때리며 덤벼드는 스켈레톤의 대가리를 깨부쉈다.

“그거 하나 못 외워서 다시 하게 만들고. 잘한다, 진짜!”

“죄송합니다!”

“어쩐지 술술 풀린다 했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부분이므로 레드바는 사과를 남발했다. 와중에 얻어맞긴 싫어서 검은양으로부터 폴짝폴짝 도망갔다.

동생이 없는 은우지만, 레리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철없는 동생이란 게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그는 형에게 있어 저런 동생인지 잠시 자중하는 시간을 가졌다.

“하, 진짜 돌겠다. 왜 문양 외우는 걸 못해서.”

“게스타스 퍼즐이 문양 외우기입니까?”

“아, 네. 문양이 총 12개가 있는데 그중 여덟 개가 랜덤으로 나와요. 그거에 맞는 몬스터를 처치하면 되고.”

“쉬울 것 같은데.”

“그쵸. 근데 쟤가 그걸 못했네요.”

얼떨결에 은우와 등을 맞댄 그녀는 마른세수를 했다. 그런 와중에도 멀리 등장한 스펙터를 저격하는 솜씨가 일품이다.

─님들이 사기캐인 거임;;

─문양 되게 헷갈리게 생겼잖어,,,

─문양 외우기보단 그 몬스터가 넘 많이 나와서 골라 처치하기가 힘들드라

─인정ㅇㅇ 진짜 죽이기 힘듦

“흠.”

은우는 잠시 고민했다. 게스타스를 고른 자에게 퍼즐이 주어지듯 예수랑 디스마스에게도 퍼즐이 주어진다.

각 퍼즐의 난이도를 따지면 예수, 게스타스, 디스마스 순으로 어려운데, 가장 쉬운 거랑 가장 어려운 게 붙은 이유는 아마 시간 남으면 도와주란 의미가 아닌가 싶다.

참고로 전 라운드에서 검은양과 은우는 그들의 문제를 맞히고 라운드 버티기에 돌입한 상태였다. 무턱대고 끝내 버리면 게스타스가 문제 풀 시간이 없어지기에 최대한 시간을 끌고 있었던 것이다.

비록 레드바가 문제를 풀지 못하고 라운드가 끝나 버렸지만 말이다.

“켄 님이 문양을 아시면 게스타스 하셔도 될 텐데. 아악!”

은우는 다가온 스켈레톤의 머리를 낚아채 벽에 처박았다. 그러곤 나머지 손으로 너머에 있는 좀비를 사살했다.

“조각상 저기 있네요.”

[조각상 2개 찾았어요!]

퍼즐은 못 풀어도 찾는 건 레드바가 참 잘했다. 은우는 벌써 다 모인 조각상을 생각하다가 툭, 내뱉었다.

“예수 문제는 달라집니까?”

“어, 아뇨?”

“그럼 제가 예수 쪽을 맡겠습니다.”

예수 퍼즐은 맵 전역에 퍼져 있는 14개의 문양을 찾아 순서에 맞춰 총으로 사격해야 했다.

다만 이 문양의 위치와 사격 순서는 매 게임마다 달라졌다.

스폰 지점은 같되 색욕의 문양이 나오던 자리에 친절이 나오거나 근면의 문양이 나왔던 자리에 탐욕이 나오거나 하는 것이다. 사격 순서도 콜로세움 경기장의 깃발을 잘 살펴서 확인해야 했다. 깃발의 색이 어떻게 되어 있느냐에 따라 순서가 달라졌다.

그나마 라운드마다 바뀌는 게 아니고 게임을 시작한 이후부터 문양을 확인할 수 있으므로, 예수 역을 염두에 둔 플레이어라면 미리 외워 두면 됐다. 외우는 것 자체가 어렵긴 해도 말이다.

“어, 미션 아세요?”

“아까 설명해 주셨잖습니까.”

“그건 맞는데, 그거 외우는 게 좀 어려우실 텐데.”

은우는 다가오는 좀비의 턱주가리를 쳐올리고 총을 격발했다. 기관단총이 사방으로 빗발치며 떼거리로 몰려들었던 좀비 떼를 처치했다.

그 틈을 타 검은양이 잽싸게 조각상을 회수했다. 이제 탑을 타고 올라가 콜로세움 경기장으로 이동하면 된다.

“탐욕 1층, 교만 지하, 경기장, 시기 2층, 분노 지하 계단, 분노 2층, 색욕 2층, 폭식 1층, 폭식 2층, 경기장, 경기장 지하, 축복 방, 탐욕 2층 계단, 나태 지하.”

탁.

달리는 사이 은우의 기관단총 탄창이 갈아 끼워졌다. 탕탕탕. 뒤에선 검은양의 권총 소리가 단조롭게 이어졌다. 길에 방해될 수도 있었던 몬스터들의 머리가 부서지며 무릎들을 접었다.

“초반 부분을 직접 못 봐서 확실하지 않는데, 맞습니까?”

“…어, 얼추 맞는 것 같은데. 괴물이세요?”

─?? 저걸 외웠어??

─어케 했냐

─뭐라고 하는지도 못들음ㅋㅋ

“제 미션 도우시면서 틈틈이 하시는 걸 봤습니다.”

“저희 대부분 떨어져 있었는데?”

“앞서 미션 진행 하시면서 벽이나 사물을 눈여겨보시던데 그때마다 문양이 있기에 외워 뒀습니다. 순서는 아까 총소리 들린 걸로 대충 맞췄고요. 맞다니 다행입니다.”

[누님, 저 갑자기 저희 페널티 먹은 게 이해되는 듯?]

“너도? 나도.”

─ㄴㄷ? ㄴㄷㄴㄷ

─사실 황밸이었누;;

─저게 되냐고ㅋㅋㅋㅋ

─미쳤나봐;;;

─그냥 예습했다고 말해주면 안 돼...?

─예습했음 켄 성격에 첨부터 치고들갔지

“그, 켄 님. 혹시 모르니까 말씀드리는 건데, 헷갈리실 땐 깃발 참고하세요. 자주, 검정, 남색, 진녹색, 적갈색, 쥐색, 감색 순이에요.

검은양은 침을 한 번 삼키며 그를 서포트했다. 뽑기 운이 지지리도 안 좋았던 그녀의 무기는 저격 소총이다. 웨이브를 막는 데는 쓰레기지만, 스펙터 계열을 처치하는 데는 너무도 편하다.

경기장까지 가는 길이 뚫렸다.

“감색이랑 검정이랑 헷갈리는데 검정은 윤기가 돌아요. 그리고 문장은 경기장에서 보이는 탑 문양이랑 해당 탑의 제단 방 문양이 한 쌍이에요. 탑 문양, 제단 방 문양 순으로 쏘시면 됩니다.”

“네.”

“위치는 아까 말씀하신 그 어림이 맞을 거예요. 제가 제대로 못 듣긴 했는데 대충 절반 정돈 맞는 것 같았으니까.”

그들이 경기장 한가운데에 도착할 즈음 레드바도 모습을 드러냈다.

“우아아악!”

잡지 않고 도망치기만 했는지 레드바의 뒤에는 몬스터가 한가득이다.

“레드바 님, 구르세요.”

“넵!”

은우는 수류탄 세 개를 동시에 던지며 기관단총을 들었다. 레드바가 데굴데굴 구르면 그 자리에 수류탄들이 안착하며 통통 튀고, 기관단총의 총알 세례가 이어졌다.

머리를 맞춰 죽이면 녀석들의 시체가 곧바로 사라지기에 은우는 일부러 다리를 맞췄다. 이러면 사라지지 않아 뒤쪽 열이 달려오는 걸 막는다.

스펙터를 제외한 몬스터들이 넘어지고 깔리며 더미를 만든 순간, 수류탄들이 단번에 터져 나갔다.

은우의 영령석 숫자가 순식간에 치솟았다.

“마침 라운드 넘겼어야 했는데, 딱 됐네요.”

남아 있는 스펙터마저 검은양이 사살하자 라운드가 넘어갔다. 라운드를 생존하며 넘겼다는 알림 창이 떠오르며 라운드 숫자가 갱신됐다.

“레드바가 디스마스, 제가 게스타스, 켄 님이 예수예요.”

─초심자가 예수를 맡고 경험자가 디스마스를 맞는 이 기현상ㅋㅋㅋㅋㅋ

─켄이어서 가능한 거지 뭐

─가슴이 웅장해진다....

“넵.”

“레드바 너, 잘해라.”

“흐.”

레드바가 미덥게 웃으며 조각상을 나눠 주었다. 각자 맡을 역할에 맞춰 조각상을 들고 십자가에 끼워 넣으면 이제 미션 시작이다.

“레드바 님, 조각상 잘못 주신 것 같습니다만.”

“에, 네?”

은우는 아까 받았던 것과 똑같은 조각상을 보며 눈을 끔뻑였다. 똑같을 가능성이 없진 않지만, 그럴 경우 디스마스와 게스타스 역할을 맡고자 하는 플레이어들이 헷갈릴 테다. 그걸 알고도 제작사에서 그렇게 만들었을까?

그는 그런 의구심을 기반으로 지적했다. 레드바가 조각상을 끼워 넣다 말고 손을 멈췄다. 검은양이 힐끗 레드바의 손에 들린 것과 은우의 것을 확인했다.

“이 화상아!”

“으아아아! 죄송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래야 레드바지ㅋㅋ ㅋ

─아ㅋㅋㅋㅋㅋㅋㅋ이건 아무리봐도 고의다ㅋㅋㅋ

─사실 레드바는 스파이인 거임ㅋㅋㄱ

문제는 이미 시스템이 인식해 버렸다는 것이다. 졸지에 그들은 아까의 역할 그대로를 답습해야 했다. 당연히 레드바는 실패했다.

* * *

[켄 님, 저희는 이렇게 된 거 타임 어택은 포기하고 최장 생존 기록이나 찍죠.]

“…그게 더 나을 것 같습니다.”

─해-탈

─ㅋㅋㄱㄱ진짜 개웃곀ㅋㅋㅋ

─레드바vs켄

─피지컬은 켄인데 이기는 건 레드바임ㅋ

─레드바 갓벌레ㅋㅋㅋㅋㅋㅋ

검은양은 체념한 어투로 말했다. 세 조각상 파트를 넘겼지만, 그다음 파트에서도 두 번 막히니 슬슬 해탈한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게, 초반에 영령석 부족으로 잡기 힘든 몬스터들을 피지컬로 커버 치며 번 시간, 덕분에 다 날렸다. 아무리 봐도 가망이 없었다.

[어차피 공략 다 나온 것도 아니고… 저도 글리치로 풀었고…….]

그녀는 레드바를 끼고 퍼즐─기억력이 문제였다─을 푸는 게 가능할 리 없다고 확신하는 듯하다. 해당 원인은 머쓱하다는 듯 어색한 웃음소리를 흘렸다.

참고로 승패를 가르는 기준은 누가 제일 빨리 스토리를 끝냈는지, 세 팀 다 스토리를 끝내지 못했다면 제일 오래 버틴 건 누구인지였다.

[칭찬 아니다.]

[에이, 누님. 그래도 제 피지컬이 나쁘진 않잖습니까.]

[그거라도 아니었으면 진즉에 탈주했어.]

그래도 살짝 멍청한 것 때문에 정떨어지기엔 그들 사이가 너무 끈끈했다. 은우야 그럴 사이까진 아니나, 신세 진 걸 갚는다 생각하면 기분 나쁠 것도 없었다. 그 신세가 그렇게 커다란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애당초 능력이 안 되는 팀원을 고른 것도 본인 책임이다. 상황에 기대야 한다는 점이 정말로 안타깝지만, 어쩔 수 있나. 본인 선택에 대한 값을 본인이 치르는 것인데.

“제일 오래 버틴다는 게 시간 기준입니까, 라운드 기준입니까.”

[라운드 기준이죠, 아무래도. 시간 기준으로 하면 10분 버티기로 갈 게 뻔해서. 그럼 방송이 너무 길어지잖아요?]

그렇다 해도 포기할 수는 없다. 은우는 검은양의 말을 들으며 최대한 승리의 방향을 갈구했다.

능력 부족으로 지는 것과 능력 부족을 핑계로 그만두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니까. 전자는 스스로에게 당당하지만, 후자는 그의 인생에 흠집을 남긴다.

“방향을 하나로 딱 정해서 움직이는 게 낫겠습니다.”

[네, 안 그래도 그럴려고요.]

스토리 타임 어택을 원활하게 하려면 10분이라는 제한 시간을 최대한 이용해 라운드 진행을 늦춰야 하고, 최장 생존을 노린다면 최대한 빨리 라운드를 진행해야 한다.

둘 다 고를 순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최장 생존 쪽으로 고를 걸 그랬어요. 설마 레드바가 이렇게까지 심각할 줄은…….]

[죄삼다.]

“레드바 님이 죄송할 게 아닙니다.”

지금까진 진행 속도를 조절하기 위해 설렁설렁 잡았지만, 지금부터는 달라야 한다. 은우는 속도 조절 할 겸 손맛을 느끼기 위해 들고 다니던 단검과 권총을 넣었다.

“미처 고려하지 못한 저도 잘못했으니까요.”

그리곤 기관단총 다음으로 얻었던 무기를 꺼내 들었다.

─형 총들었다 ㄷㄷㄷ

─켄 가만보면 의외로 남에게 관대한듯...?

─그랬나?

─혼자서 다 커버칠 자신 있어서 그런 거 아닐까

─캬 괴물&괴물

그가 든 것은 펌프 액션 산탄총 ZUG 13로, 해당 맵에서 종결 무기라 불리는 것이었다.

비록 랜덤 박스에서 뽑은 것이라 부속은 없으나, 그럼에도 위력은 굉장했다. 그가 이것을 뽑았을 당시, 괴물과 괴물이 만났다며 나머지 두 사람이 놀랐을 정도였다.

심지어 그는 넘쳐 나는 영령석으로 최종 강화까지 완료한 상태였다.

[…랄까. 왠지 형님이 제 편을 들어 주시면서 저를 깐 기분인데.]

[푸흐흐흡.]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처 (레드바의 실력을) 고려하지 못한

─근데 깔만하지ㅋㅋ 켄 입장에선ㅋㅋ

“…기분 나쁘라고 한 말은 아니었습니다만, 그렇게 들리셨다면 죄송합니다.”

[아뇨, 아뇨, 아뇨. 괜찮슴다. 제가 더 죄송하죠.]

[크흐흡. 그, 그래도 저희 지금 18라운드니까 그렇게 느린, 크흡, 편은 아니에요. 어서 진행하죠. 물론 다른 팀이 처음부터 작정하고 라운드 진행을 노렸다면 좀 힘들 것 같긴 한데…….]

[그럴 가능성은 낮지 않을까요?]

타앙!

강렬한 소리와 함께 총알이 발사됐다. 한 번 발사할 때마다 탄피를 빼 줘야 했지만, 위력을 보고 나면 그 찰칵 소리마저 정겹게 느껴지곤 했다.

타앙!

몬스터들의 머리가 수박 터지듯 시원하게 깨져 나갔다. 자동 장전 시간이 긴 게 단점이나, 그마저도 들고 있는 이가 은우란 이유로 커버되었다.

은우는 장전하면서 발로 스켈레톤의 대가리를 짓밟고 슬라이딩을 하며 포위밍을 빠져나갔다.

“일단 탄산 님 팀은 스토리 진행으로 가셨을 확률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인정하는 바구연

─두노인과 한 젊은이 팀ㅋㅋㅋㅋㅋ

─거긴 피지컬보단 능지 팀이니까 머

─시원시원하다

우유에탄산 팀 얘기가 나오자마자 사람들이 두런두런 떠들었다. 팀 이름이 ‘두 노인과 한 젊은이’인 이유는 40대 둘과 20대 하나여서다.

다만 그들에 대해 떠들지언정 현 상황에 대해 떠드는 자는 없었는데, 그건 채팅 제한 때문이었다.

앵무새 시청자들을 막기 위해서 양측 채팅 방에는 제한을 미리 걸어 놨다. 한 번 한쪽 채팅 방에 채팅을 친 사람은 나머지 쪽에서 채팅을 칠 수 없도록. 중계 방은 예외다.

물론 보는 건 두 방송 다 가능했으므로 여전히 앵무새 가능성은 존재했다. 그건 어쩔 수 없었다. 기술이 아무리 향상돼도 사람의 꼼수만큼 빠르게 발전하진 않았다. 그러니 그건 같은 사람의 힘으로 처리하는 수밖에 없다.

“유산슬 팀은 잘 모르겠습니다.”

[거기도 아마 누나 때문에 공략 쪽으로 나갔을걸요? 저랑 같이 공략해 봐서.]

─레드바 꼭 레리랑 같이 공략 성공한 것처럼 말한다?

─정보) 레드바랑 할 당시 레리는 답답해뒤지겠다며 탈주했다

─혈육도 포기하는 능지;;

─레드바가 능지겜에서 좀 맵긴 하지

참고로 저들 팀 이름이 유산슬인 이유는, ‘산’호와 ‘슬’리퍼에서 따온 거였다. 마지막으로 ‘유’는 레리의 본명 성姓이었다. 레리와 레드바가 남매임을 감안하면 레드바의 성이기도 했다.

[어, 어, 잠깐, 저 위험─]

시야 한쪽에 중상 마크가 떠올랐다. 체력 바가 다 닳아 버렸지만 아직 살릴 수 있는, 데들리deadly 상태다.

[누님, 왜 죽었어요?]

[실수해서 포위돼 버렸네요. 승질난다, 진짜.]

[제가 살리러 갈게요!]

“그럼 저는 몹 몰이 하면서 전부 제거하겠습니다.”

─이미 몰이하고 있는 거 아니었음...?

─시체들 쓸려가는 거 봐라

─지금 봄? 왜 뼈다구 두고 뒤도나 했더니 스펙터;;

─이분은 뒤통수에도 눈이 있는듯

동료 마크가 합류하는 걸 지켜보며 은우는 최대치로 강화한 총알을 난사했다. 그가 지나가는 자리는 피 웅덩이가 질퍽이게 고였다.

“약간 그런 건 있는 것 같습니다.”

은우는 산탄으로 좀비를 난도질한 후 탄피를 빼내며 손잡이 부분으로 스켈레톤의 머리를 깨 버렸다. 그런 후 다른 녀석의 뱃가죽에 대고 격발하면 일격이었다.

“시원하게 쓸어 버리는 맛.”

─ㅇㅈㅇㅈ

─솔듀 좀비모드는 그런맛이 좀 있지

─라운드 지나가면 그것도 없음ㅋ

“별로 자신 없는 분야지만, 나쁘진 않네요.”

─ㅋㅋㄱㅋㅋㅋ지금 영령석 팔만 쌓아두고 하는 말임?

─즈기요;; 당신 학살좐데요

─형 또또 약한척 한다

─이분 또 이러시네

그는 그를 향해 몰려드는 몬스터들을 보며 수류탄을 꺼내 들었다. 바닥에 수류탄이 떨어지고, 은우는 냅다 한쪽을 향해 달렸다.

몬스터들이 그를 향해 손을 마구 뻗으면 그는 순간적으로 몸을 낮춰 다리를 휘둘렀다. 몬스터가 그의 다리에 걸려 넘어지고, 은우는 그 위를 재빨리 뛰어 굴렀다.

“2, 1.”

한 번 더 구르니 뒤쪽에서 폭탄이 터졌다. 은우는 산탄총을 꺼내 발사했다. 적 한 무리가 이렇게 정리됐다.

구어어어어!

강화 좀비인 구울이 나타났다. 은우는 그것의 등장에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총구를 겨눴다.

─손잡아주세요 혀어엉

─우리들을 죽이려는 거야?

─팬미팅 현장이누

─형 손만 잡아주세요!

─손만 잡을게!

아니나 다를까, 구울단들이 난리를 피웠다. 은우는 그것을 보며 총을 자비 없이 발사했다.

“사생팬은 처단합니다.”

그의 손이 한 구울의 손을 붙잡고 끌어당긴 후, 다른 손에 들린 총의 개머리판으로 내려찍었다.

마침 특수 무기 게이지가 모였다. 은우는 빠르게 달려 몬스터들을 꽁무니에 붙인 채 몰이를 시작했다.

[우어어어! 행님, 도와드릴까요?]

[켄 님, 너무 많이 붙이신 것 같은데.]

“괜찮습니다.”

은우는 계단 길에서 길을 막으려 드는 사령기사의 검을 피했다. 그러곤 벽을 박차며 단검을 들었다. 단검이 손바닥 안에서 빙글 돌더니 그대로 사령기사의 투구 틈새로 박혀 들었다. 투구가 벗겨졌다.

다만 중요한 건 녀석이 안 죽고 투구만 벗겨졌다는 게 아니다. 그가 사령기사의 길막에서 벗어났다는 것이지.

은우가 콜로세움 무대로 뛰쳐나왔다. 뒤에는 어마어마한 몬스터가 끌려온 채다.

타앙!

재사용 대기 시간이 찰 때마다 3개씩 충전되는 수류탄을 바닥에 깐 은우는 몬스터가 지나가는 것에 맞춰 수류탄을 사격했다. 보통 4초 뒤에 터지는 그것은 총알에 맞으면 그 전에도 터진다.

순식간에 절반이 쓸려 나갔다.

은우는 그다음 특수 무기를 발동했다. 총이 부착된 검이다. 물론 은우가 쓰면 그냥 검이었다. 라운드가 순식간에 획획 지나갔다.

좀비의 몸통이 양단되고, 스켈레톤의 머리통은 가루가 되고, 스펙터는 접근하기도 전에 공기에 녹아 이울었다.

상위 종인 구울, 반시, 사령기사가 등장해도 마찬가지였다. 은우는 오히려 그들을 더욱 쉽게 도륙했다.

─보통 이렇게 모이면 그냥 죽는데ㄷㄷ

─어림도 없지! 다 죽여버리기!

─무빙 진짜 지렸다

은우는 넘지 말라고 만들어 놓은 벽을 발판으로 사용해 가며 현란하게 콜로세움을 돌아다녔다.

반시가 사방에서 날아들며 냉기를 뿜어내고, 사령기사가 말을 소환해 검을 종횡무진 휘두르고, 구울이 좀비와는 비교할 수 없는 신체 능력으로 따라붙어도 그에겐 소용없었다.

“말 탐나는데.”

은우는 벽을 타고 달리다가 크게 뛰었다. 막 그가 있는 쪽으로 달려들던 사령기사가 그와 가까워졌다. 은우의 발이 거대한 사령마의 안장 한 축과 사령기사의 가슴팍을 밟았다. 단검은 어느새 사령기사의 투구를 벗겼고, 산탄총은 그 머리에 겨눠진 채다.

“가질 수 있으면 좋겠네요.”

사령기사가 순식간에 살해당하고 그 시체가 말 아래로 떨어졌다. 2초 뒤 시체는 삭제됐으나, 말은 아니었다. 개별 몬스터 취급이었다.

─줄건 줘

─내놓으라 이 말이야

「‘사령기사’ 님이 ‘1,000원’ 투척!

뭐야, 내말 돌려줘요」

은우는 말에 탄 채로 총을 난사했다. 주인을 잃은 말은 경기장을 뺑뺑 돌기만 할 뿐이었기에, 공중 이동이 가능한 반시나 스펙터만 조심하면 의외로 편안하게 제거가 가능했다.

[켄 님, 거의 벤츠 타신 듯한 안정감.]

[어, 근데 우리 영령석 어떡하냐.]

“영령석 없으십니까?”

은우는 잠시 고민하다가 영령석 양도는 불가능한지 물었다.

[안 되죠.]

[그건 안 됨다.]

“무기 주는 건?”

[랜덤 뽑기로 막 뽑았을 때는 가능한데…….]

“강화해서 주는 건 불가능한가 봅니다.”

[아무래도 그런 편이죠.]

은우는 그를 뒤따라 다니던 몬스터를 전부 죽인 후에야 그를 태워 줬던 사령마를 죽였다. 단검이 녀석의 목을 도려내고 뼈를 갈랐다.

라운드 숫자가 갱신되었다. 23. 검은양의 말에 따르면 슬슬 난이도가 미쳐 돌아갈 시간이었다. 사실 20라운드부터 그러긴 했다.

“그럼 어떻게 합니까.”

[어차피 지금 파밍이나 무기 강화 같은 건 다 끝나서요. 스토리 진행할 것도 아니고. 없어도 괜찮아요.]

[아, 전 박스 깔 건데요!]

“알겠습니다. 그럼 신경 안 쓰고 잡겠습니다.”

[네.]

은우는 탄약을 미리 채워 넣었다. 랜덤 상자에서 뽑은 만큼 탄약도 랜덤 박스에서만 구할 수 있으나, 이 게임도 불친절함만 있는 건 아니었다. 일시적으로 영령석 두 배 아이템을 떨어트리는 것처럼 탄약을 꽉 채워 주는 아이템도 있었다.

또한 그는 탄약이 다 떨어졌다 한들 최대 탄약 아이템이 떨어질 때까지 칼질로 버틸 자신이 있었다.

은우는 포탈에서 튀어나오는 몬스터들을 확인했다. 상위 몬스터의 비율이 확연히 증가했고, 녀석들의 방어력도 높아져 죽이는 데 약간의 어려움이 있다.

“라운드 몇까지 가야 할까요.”

[글쎄요?]

[30?]

[제가 스토리 깨는 데 걸린 시간이 3-4시간이었거든요? 전부 스토리를 못 깬다는 가정하에 대충 4시간으로 제한 잡으면 아마 35챕터는 넘겨야 안정권일 것 같네요.]

그럼에도 맞지 않고 때리기만 하면 그것들은 잡을 수 있다. 은우는 가장 까다로운 스펙터 계열을 가장 먼저 죽이며 포위되지 않게 움직였다.

사방에서 쏟아지는지라 퍽 어려운 조건이었지만, 탑이나 지하실까지 오가면 그럭저럭 가능하다.

은우는 레드바와 검은양이 엮이지 않도록 경로를 조절해 가며 달렸다. 아군의 위치가 마크로 표시되는지라 둘도 알아서 그를 잘 피해 다녔다.

[앗차차, 죽을 뻔했네. 근데 누님, 35챕터 넘기는 게 가능해요?]

[글쎄다. 본계로는 그럭저럭 잘 갈 수 있는데 이게 1레벨이라서. 유인탄도 없고.]

“차이가 심합니까?”

[네. 특전발이랑 스킬, 무기 차이가 좀 커요. 물론 랜덤 박스 잘 까면 상위 무기가 뜨긴 하는데 그건 부속이 안 붙어 있어서.]

[하긴 행님이 지금 들고 있는 것도 부속 무기 안 붙이면 좀 애매 보스죠.]

“지금도 괜찮은데요.”

[사거리가 좀 좁지 않아요? 탄창 가는 것도 너무 오래 걸리고.]

은우는 아래로 슬라이딩하며 사령기사의 공격을 피했다.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처음부터 이 좁은 사거리로 싸웠으니 이것에 정보가 맞춰져 있을 수밖에. 탄창 교체가 오래 걸리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제 취향은 총이 아니라서.”

이것도 발사할 때의 묵직한 손맛이 있긴 하지만, 그는 역시 절삭력 있는 쪽이 더 좋다.

“이렇게 약한 몬스터들 여럿 잡는 것도 썩 취향은 아니고. 솔직히 곱등이 수천 마리를 상대하는 것보단 늑대 한 마리를 상대하는 게 낫지 않습니까?”

시간상으로도 그게 이득이고, 귀찮음도 없다.

─곱등이ㄷㄷ

─아, 닥 후자지

─곱등이는 킹정임

시청자들이 바로 이해했다. 물론 ‘쟤네들이 곱등이 취급을 받네.’ 따위의 서글픈 의견이 없는 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그러나 은우는 그런 그들의 박탈감을 이해해 주지 않았다.

“저보다 약한 놈들을 피해서 도망치는 게 짜증 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자존심on

─켄이면 저리 말해두 ㅇㅈ

산탄총이 또다시 격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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