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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자도 방송할 수 있습니다-119화 (119/233)

119화

합방은 캡슐에 접속하기 전, 현실에서 대화하는 것부터 시작이었다. 세 팀 앞에 각각 책상 하나씩 내려 주고 떠드는 것이다.

은우는 떨떠름해졌다. 뭐라고 해야 할까. 이렇게 예식을 제대로 갖추는 합방은 처음이다. 장소만 그럴 뿐 내용은 완전 흥미 위주 불공평 내기 게임이지만.

“켄 님, 오랜만이에요.”

“대회 때 정말 고마웠어요. 문자로만 말하면 뭐하니까 만나면 꼭 다시 말하고 싶었는데, 이제야 하네. 아, 여긴 우리 딸, 희윤이. 인사해야지?”

“아녕하세요!”

방송이 켜지기 전, 그는 연장자 조와 인사를 나눴다. 40대 사이에 껴 있는 20대, 빌리가 상당히 뻘쭘해 보였다. 아빠 따라 사옥까지 나온 희윤이는 엄청 귀여웠고.

은우는 진짜 조그만 아이의 등장에 살짝 긴장했다. 너무 작아서 실수하면 못 보고 칠 것 같았다.

“으하하하. 켄 님 굳었는데?”

주변 사람들이 그 점에 즐거워했다. 겁도 없는지 희윤이는 은우의 다리에 달라붙어 ‘안영안영’거렸다. 얼마 전 형과 간 드라이브에서 도망친 남자애랑 대비된다.

“안아 달란 건데, 해 볼래요?”

“…그래도 됩니까?”

“아휴, 되죠.”

개불은 희윤이를 번쩍 들어서 은우에게 안겨 주었다. 정말 작고 가볍고, 따끈했다.

까만 머리카락에 동그란 눈동자, 통통한 뺨은 아기 특유의 우유 냄새와 함께 말랑말랑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중이다. 정말 아기들만이 가질 수 있는 사랑스러움이었다.

은우는 생경한 감각을 느끼며 희윤이를 제대로 받쳤다. 워낙 큼직큼직한 몸이라 조그만 아이를 안는 것쯤은 어렵지 않다. 조금만 힘 줘도 잘못될 것 같아서 긴장될 뿐.

거인이 소인을 안았다며 주변 사람들이 좋아 자지러졌다.

“애가… 용감하네요.”

“애가 낯을 너무 안 가리죠.”

그러다 낯선 사람도 따라갈 것 같아 걱정된다며 개불은 딴소리를 했다. 말뜻을 잘못 이해한 대답이었지만, 은우는 굳이 반박하지 않았다. 대신 희윤이의 볼을 콕 찍어 봤다. 찹쌀떡 같았다.

“머리에 이거 모야아?”

그동안 희윤이는 은우의 헬멧을 건드리기 위해 팔을 휘적였다. 졸지에 아이에게 뺨 맞는 모습이 되자 주변 사람들이 또 한 번 자지러졌다.

“어쩌다 빌리 님이 끼시게 된 거예요?”

그사이 친화력 정점의 레드바는 빌리에게 소곤소곤 말을 걸었다. 쩔쩔매며 희윤이를 개불에게 돌려주던 은우의 눈에 그게 닿았다.

빌리는 멋쩍게 웃었다.

“우유에탄산 님이 납치하셨습니다.”

상당히 사연이 많아 보였지만, 별로 궁금하진 않았다.

“켄 님이 참가하실 줄 알았다면 연락해 볼 걸 그랬어요.”

“그보다 희윤이랑 같이 계시니까 진짜 언밸런스 하네요.”

“너무 귀엽다.”

다음은 레리가 속한 팀이었다. 그녀는 데이브맄 방송을 의식해 시도하지 않았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피로할 사람에게 합동 방송을 제의한 동생을 향해 싸늘한 눈빛을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레드바… 마지막까지 팀원을 못 구해서 울더니 켄 님을…….”

“흐.”

레드바가 옆에서 히죽거리며 승리의 브이를 그렸다. 그렇지만 은우의 귀를 건드린 대목은 ‘마지막까지 팀원을 못 구해서’였다.

“못 구하신 이유는 역시…….”

“질 게 뻔하니까 그렇죠, 뭐.”

검은양이 음울하게 대신 답했다. 그녀는 그의 피지컬에서 희망을 구하다가도 곧바로 비관적인 태도를 갖췄다. 설명을 제대로 듣기도 전에 여기에 불려 온지라 그녀가 그러는 이유를 알 수 없다.

“…일단 최대한 오래 살아남아 보겠습니다.”

“저도 최대한 서포트 하겠습니다.”

그래도 희망을 완전히 버리진 않은 모양이다. 검은양이 순간 비통함을 버리고 결연한 눈을 했다.

참고로 그들의 팀 명은 ‘한자리 빔’이었다.

▣ 119. 살아나온 건 그 한 명뿐

“이건 진짜 역차별이라고요!”

자기소개 시간 때부터 유구하게 외친 레드바의 말이 또 한 번 메아리쳤다. 참고로 그들이 있는 장소는 좀비 모드 로딩 창이었다.

“다들 경험자인데 켄 님한텐 연습 기회도 뺏어 가고, 어! 이건 민주사회의 붕괴야! 학습의 기회는 공평해야 한다! 이래 놓고 벌칙까지 받으라고 하면 이건 좀 아니지!”

─그나마 신맵이잖아ㅋㅋㅋㅋ

─이거 이주 전에 나와서 아직 공략법 다 안 밝혀졌음ㅋㅋ

─여기서 민주사회가 왜 나와ㅋㅋㅋㅋ

─신맵이라서 괜찮지 않음?

“신맵이면 뭐 해! 이 게임 해 본 사람이랑 안 해 본 사람이랑 느낌이 다르잖아! 그리고 일단 나온 공략이 있잖아! 저 사람들 능지에 그걸 못 외워 왔을 리 없어!”

─그건 맞는 말이구연

─그거 글리치로 깬 거 아님?

─조건이 다 안밝혀진 거지 글리치는 아닐걸

─솔까 켄 피지컬이면 솔직히 패널티 인정이죠

─좀 불공평하긴 하다

─정식 대회도 아닌데 뭐 어떰ㅋㅋㅋ

찡찡거리는 레드바를 채팅 창은 익숙하게 받아 주었다. 개중 동의하는 자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보다 더 많은 사람이 이 불공정함을 즐거워했다.

그들의 저울은 켄의 무력과 정보의 부재를 거의 수평으로 받아들였다.

─피지컬과 뇌지컬을 가진 남자,,,정보가 아예 없을 때도 과연?

─짐덩이도 추가

─스포) 켄 상상도 못한 매운 맛에 화들짝!

─근데 켄이면 또 모른다...

“아, 님들 왜 그래. 내 편 들어 줘야지!”

─우리가 왜?

─빨간 애벌레는 놀려야 제맛이지

─우리가 언제 님 편인 적 있었음?

─어림도 없지!

─그래도 양심상 검은양 끼워줬잔아

─검은양 참가자 중에 신맵 유일하게 클리어해본 사람 아니냐?

─ㅇㅇ맞음 어떻게 우연히 깸

─문제는 본인도 어떻게 깼는지 모름

“레드바야.”

“엥? 왜요, 누님.”

“지금이라도 너 나가고 AI 데려오면 안 되냐?”

“그럴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레드바 왜 거기서 긍정하는데ㅋㅋㅋ

─검양 빠른판단 현-명

한편 그들이 그리 떠들건 말건, 은우는 조용히 튜토리얼에서 들었던 사실들을 곱씹었다.

시작할 때는 보조 무기인 단검과 권총만 가지고 시작한다. 특수 무기, 스킬의 경우 사용한 이후 재사용 대기 시간이 존재한다.

몬스터를 잡으면 영령석을 획득하고, 헤드 샷이나 근접 무기로 사살하면 추가 영령석을 획득한다.

영령석의 사용처는 상위 무기 또는 탄약을 구매하거나 길을 열거나, 무작위 상자를 돌리거나, 무기를 강화하거나, 특전을 구매하거나, 함정 혹은 바리케이드를 생성하는 것 등이 있다.

맵을 돌아다니다 부품을 얻으면 영령석을 지불해 추가 장비를 제작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몬스터가 드물게 떨어트리는 재료를 이용해 포션을 제작할 수도 있다.

좀비 웨이브를 막아 내며 라운드를 쭉 진행하면 엔딩에 도달하는 형식이 아니라, 숨겨진 이스터 에그를 전부 찾아 스토리를 진행시켜야 한다.

여기서 문제는 그가 다수를 상대하는 것에 약하단 것과 해당 게임의 이스터 에그란 게 어떤 형식인지 하나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검은양 님, 힌트는 주어집니까?”

“아주 좋은 지적입니다, 켄 님.”

레드바와 티키타카하던 검은양이 재빨리 대답을 주었다.

“없어요.”

산뜻하리 만치 단호한 답이었다.

“네?”

“농담 아니고 진짜 없어요. 그냥 노가다로 찾는 거예요. 힌트 그런 거 일절 없습니다.”

이건 정말로 생각 못 한 부분이다. 은우의 미간이 살짝 좁아졌다.

“그렇다는 건?”

“모르면 죽어야죠.”

이번엔 레드바가 엄지를 치켜들었다. 마찬가지로 쓸데없이 상큼하다.

─켄 헬멧 쓰고 있는데 왜 표정이 보이누ㅋㅋㅋ

─검은양 표정 봐ㅋㅋㅋㅋ

─피지컬 갑으로 유명한 스트리머 둘을 해탈시키는 레드바,,,당신은 대체,,,,,

─진짜 한 자리 빈 팀 아니냐고ㅋㅋㅋㅋ

“그래서 정보가 중요한 게임인데…….”

해탈한 검은양이 잠깐 하늘을 봤다가 다시 땅으로 고개를 숙였다.

“켄 님 얻은 대가로 잃은 게 너무 많네요. 그나마 신맵이라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진짜 가망 없었을 뻔.”

─누낰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아! 켄이라는 핵을 얻은 대가가 너무 크구나...!

─킹치만 아직 모른다..! 얻은 건 켄이다!

─어이어이~! 절대 해낼거라고?

“아니, 근데 죽은 이후에 대화하는 것까지 막는 게 어디 있어? 미친 거 아냐? 이거 아무리 봐도 우리 팀 지라고 만든 조건인데? 그런데?”

─다박 밸런스 패치 실화냐ㅋㅋㅋ

─이래놓고 황밸일 수도 있음

─켄 완죤 사기템이잔어ㅋㅋ

─켄(천상계의 천상계) + 검은양(천상계+공포겜 탑스) + 레드바(애벌레) = ??

─님 계산식 잘못됨 레드바는 마이너스임ㅋ

─ㅋㅋㅋㅋㅋㅋㅋ이거닼ㅋㅋㅋㅋ

“이건 역차별이라니까요!”

“맞아! 이건 솔직히 항의해야 한다!”

“우리를 저격한 규칙이다!”

은우는 발악하는 두 사람을 보며 슬쩍 시간을 확인했다. 곧 시작 시간이다.

“무기는 뭘 골라야 합니까?”

“아, 기본 무기는 정해져 있으니까 신경 안 쓰셔도 되고요, 시작하시면 일단 주선 미션부터 깨세요. 이게 풀어야 할 퍼즐이 7개인데, 그거랑 별개로 주선 미션이란 게 있거든요. 그거 깨면 무기를 주니까 그거 노리시면 돼요.”

스토리 퍼즐 깨려면 어차피 주선 미션도 다 깨야 한다며 검은양은 조목조목 짚어 주었다. 과연 공포 게임 전문 스트리머답게 신맵도 일단 꿰고는 있는 모양이다.

“이게 진짜 복잡한 거라… 시간도 없거니와 매판마다 달라지는 이스터 에그가 있어서 설명으로 때우기가 그러네요. 사실 저도 이 맵은 아직 다 못 밝혀냈고……. 죽어도 통신이 가능하면 그나마 괜찮을 텐데…….”

검은양은 그러면서 그에게 당부했다.

“제가 최대한 살아남긴 할 텐데, 라운드가 길어지면 저도 죽을 가능성이 커요. 근데 이 게임이 좋은 게, 죽어도 라운드 하나가 끝나면 부활한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제가 만약 죽으면 조급하게 하실 것 없이 살아남으시면서 라운드를 끝내 주시면 돼요.”

“알겠습니다.”

“저기…….”

“참고로 라운드당 10분이라는 제한 시간이 있는데, 10안에 좀비를 전부 안 죽이면 살아남은 좀비에 더불어 다음 라운드 좀비가 나오거든요? 그 점 조심하세요.”

“그러면 최대한 빨리 잡아야 합니까?”

“누님? 형님?”

“그건 아니고요, 여유가 있으실 땐 한두 마리만 남겨 놨다가 다음 라운드 직전에 잡으시는 게 좋아요. 다 죽이면 남은 제한 시간이 몇이든 바로 다음 라운드라.”

“이해했습니다.”

“누니이이임! 형니이이임!”

─레드바 빼놓고 대화하기ㅋㅋㅋㅋㅋㅋㅋ

─속성 과외ㅋㅋㅋㅋㅋㅋ

─진짜 한 자리 비우고 하냐고ㅋㅋㅋㅋ

─난 튜토로 배워도 모르겠던데 저걸 말로;;

“아, 시끄럽게 왜 그래.”

“저도 껴 줘요오.”

“넌 도움도 안 되잖아! 그냥 저리 꺼져!”

─우리 레드바가 좀 하찮긴 하지만 겜 못하진 않거든요!? 우리 레드바 기죽게 왜 구래욧!

─정보) 레드바는 공략 다 밝혀진 전맵도 클리어한 전적이 별로 없다

─왜요?

─못 외워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슬아슬하게 가장 중요한 설명이 끝났다. 이제 게임이 시작될 시간이었다. 세계가 까맣게 물들었다.

“아, 참고로 켄 님. 말이 좀비 모드지 좀비만 나오는 건 아니에요.”

시작은 열리는 문과 트이는 시야였다. 이 맵에 익숙한 검은양이 가장 먼저 튀어 나갔다.

은우는 그녀를 뒤따랐다. 그러자 원형에 가까운 콜로세움이 나왔다. 7개의 탑과 연결된 길들은 문이 다 닫혀 있다.

“그럼 뭐뭐가 나옵니까.”

“보편적으로 언데드 하면 생각나는 애들? 유령이랑 좀비랑 해골병사, 이렇게 3종 있고 거기서 상위 종이 뜹니다. 가끔 리치나 뱀파이어 같은 특수 종도 나오고요.”

관중석과 경기장을 가르는 난간 앞에는 불길하게 넘실거리는 구덩이가 있었다. 기실 아래가 아예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구덩이보단 포탈 비슷한 종류가 아닐까 싶다.

거기서 몬스터들이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검은양은 그것을 무시한 채 경기장 중앙의 깃발과 몇몇 부분을 쓱 쓸어 보았다. 은우는 그 모습을 잠깐 살피다가 그의 궁금증이나 입에 담았다.

“근데 왜 좀비 모드라고 부릅니까?”

“아, 그건…….”

“솔저 오브 듀티 시리즈가 되게 많은데, 멀티플 가능할 땐 전통적으로 요 모드를 지원했거등요.”

“참고로 그땐 좀비만 나왔어요. 그래서 좀비 모드라 불린 건데, 그게 입에 붙어서 지금도 그냥 그렇게 불러요.”

다양한 종이 나온다는 말과 달리 기어 나오는 건 아직 좀비뿐이었다. 부패한 살결과 흘러나오는 고름, 말라붙은 피딱지 등이 제법 사실감 있었다. 심약한 자들은 제법 무서워할 듯하다.

“미션 뭐 뜨셨어요!”

“누님, 나 단검!”

“전 헤드 샷입니다.”

은우는 권총을 단단히 쥐고 쐈다. 시야에는 주선 미션과 획득한 영령석, 체력, 포션, 탄환 수 창이 떠올라 있다.

탕. 탕. 탕. 3연속 헤드 샷 미션이 순식간에 해결됐다.

〚구도자여, 당신의 노력에 답가를.〛

의문의 목소리가 들려오며 그의 바로 앞에 아이템이 떨어졌다. 영령석을 잠깐 동안 두 배로 얻게 해 주는 아이템이었다. 팀원 전부에게 적용되는 점에서 그럭저럭 나쁘지 않다. 초반만큼 영력석이 급한 순간이 없어서다.

“쉽네요.”

“문 열 영령석 벌어야 하니까 5라운드까지만 바로 진입하죠. 그다음은 문 열고 악마 7마리 잡아서 축복 열어야 해요.”

“누님, 저는요!”

“넌 알아서 해!”

─ㅋㅋㅋㅋㅋㅋ알아서 해!

─레드바에게도 관심을!

─차별대우 신고합니다ㅋ

은우는 일단 권총으로 좀비의 머리통을 박살 내다가 탄환 수를 확인하고 단검으로 교체했다. 역수로 잡힌 쿠크리가 좀비들의 눈을 베고 목을 찔렀다가, 그대로 살갗을 갈랐다.

“괜찮네요. 진짜 좀비 잡는 것 같습니다.”

─ㅗㅜㅑ;; 촉감 미쵸;;

─다른 거 다 VR로 봐도 좀비물은 절대 못보겠음...

─ㅇㅈ 끔-찍

─가까이서보니까 더 무섭다ㅠ

부패한 살갗이라서 그런지 얼렸다가 녹이길 반복한 사과를 칼로 찌르는 느낌이다. 제법 끔찍한 감촉이지만, 상대가 좀비인 걸 생각하면 나름 잘 살린 셈이었다. 실경험자의 판단이었다.

슬슬 스켈레톤과 스펙터가 기어 나왔다.

“행님, 스켈레톤은 대가리 아님 안 되고, 스펙터는 가까이 다가감 이속 하락 및 깡뎀 받습니다!”

레드바가 처음으로 도움이 되었다.

은우의 다리가 스켈레톤의 머리를 돌려 차고, 그 어깨 너머의 유령을 사격했다. 육탄 공격도 대미지로 취급되는지 스켈레톤이 으직 깨져 버렸다.

“켄 님, 문 좀 뚫어 주세요!”

“네.”

“누님! 저한테도 좀 시켜 주세요!”

“너도 오든가!”

탄환이 아까웠기에 은우는 나이프 파이팅으로 길을 뚫었다. 가끔 뒤에서 레드바가 오인 사격을 했지만, 다행히 아군끼리는 공격 무효였다.

은우는 한층 마음 편하게 좀비 떼를 몰살시켰다. 순식간에 영령석이 5천 가까이 모였다.

─합법핵

─학살좌잖

─총알 아끼려고 칼질하는 분이 있긴 한데 뉴비가 이러네

─캬,,,,,깔끔

“와. 켄 님, 엄청 모으셨네. 아, 그러면 켄 님, 차라리 시기탑 새로 뚫어 주실래요?”

“알겠습니다.”

“다 뚫으면 여기 중앙으로 돌아오지 마시고 제단 방까지 올라가셔서 제단에 있는 상징물 뽀개세요.”

“네.”

“레드바, 너는 나랑 같이 교만 조져!”

“옙!”

검은양의 지휘에 따라 은우는 왔던 길을 도로 빠져나갔다. 검은양이 게임을 꿰고 있는 데다가 지휘가 마냥 허술하진 않아 제법 따를 만했다.

〚구도자여, 당신의 노력에 답가를.〛

“강화 무기 얻었습니다.”

은우는 허공에서 빛으로 박혀 들어오는 권총을 들고 좀비의 대가리를 부쉈다. 강화 무기든 뭐든 육탄 공격이 제일 편했다.

라운드가 지날 때마다 녀석들의 몸이 단단해지는 걸 보니 근접 공격도 곧 못 하게 될 것 같지만 말이다.

“양 님, 상징물이 칼 맞습니까? 뱀이 휘감고 있는.”

[제단 위에 있으면 맞을 거예요!]

멀리 떨어져서 그런지 전화 통화 할 때처럼 목소리가 들려왔다. 은우는 그녀의 긍정에 맞춰 제단으로 접근했다. 뱀에 휘감긴 칼에 다가서자 알림 창이 떠올랐다.

『시기의 기사를 소환하겠습니까? 예 / 아니오』

은우는 망설임 없이 예를 골랐다. 그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감히 어느 누가 시기에게 도전하려는가!〛

그건 주선의 미션을 깨면 들려오던, 왠지 성가를 부를 듯한 목소리가 아니었다. 갈라질 대로 갈라져 비열한 느낌마저 드는 목소리였다.

적이 곧 나올 것 같은 느낌에 은우는 자세를 잡았다. 과연 천장에서 포탈이 열리며 적이 뛰쳐나왔다. 바다뱀이 휘감은 칼을 든 기사였다.

은우는 나이프 파이팅 자세를 잡았다.

─ㅋㅋㅋㅋㅋ총 두고 왜 나이프 쓰냐고ㅋㅋ

─기사를 칼질로 잡는 스트리머가 있다?!

─근데 그게 켄이다?!

─무조건 켄 낙점이지~~

시청자들의 관람 속에서 은우와 시기의 기사가 격돌했다.

그는 기사가 검을 바닥에 내려치는 것에 맞춰 옆으로 점프했다. 그러곤 손가락에 단단히 붙잡혀 있던 나이프를 정수로 돌렸다. 휘둘러진 나이프가 기사의 투구 틈 사이 눈을 찔렀다. 단번에 투구가 벗겨졌다.

“팔다리를 자를 수 있는 건 좋은데, 제한적이라서 아쉽네요.”

좀비의 경우는 팔다리를 공격해서 일정 대미지를 주면 잘려 나갔다. 그렇지만 딱 그뿐이었고, 약점은 목 위만 맞추면 동일하게 크리티컬로만 들어갔다. 눈을 맞춘다고 해서 시각을 잃는다든가 하진 않았다.

─총게임에서 칼질하지 말라니가요

─ㅋㅋㅋㅋ제한 없었음 켄 다 모가지만 따버렸을듯

─지금도 그러잔어ㅋㅋㅋ

─기사를 완전 갖구 노시네

─와, 칼질로 투구 한 번에ㄷㄷ

“칼이 손맛 있어서.”

은우는 제단 방으로 기어 들어오는 몬스터에게 총알을 박아 넣어 주곤 단검으로 기사를 농락했다. 순식간에 기사가 리타이어됐다.

〚시기는 친절을 이길 수 없지요.〛

자신이 한 것도 아니면서 한껏 뻗대는 목소리를 뒤로하고, 은우는 상징물을 주웠다. 번개로 감싸진 방패 상징물이었다.

거무튀튀한 데다가 불길한 오라가 피어났던 아까의 검과 달리 이 방패는 딱 봐도 신성과 관계있어 보였다.

〚교만은 겸손을 이길 수 없지요.〛

그가 상징물을 획득했을 때, 새로운 내레이션이 들려왔다. 목소리에서 약간의 거리감이 느껴지는 걸 보아 검은양과 레드바가 해낸 모양이다.

“상징물을 획득했는데 이제 내려갑니까?”

[넹넹, 형님 내려오시면 됨요. 그보다 진짜 빨리 잡으신다. 클라스가 다르네요. 우리 이러다 이길 듯?]

[뭐래……. 켄 님, 저희가 최대한 길 뚫을 테니까 켄 님은 최대한 악마 빨리 잡아 주세요. 방법은 아시겠죠?]

“네.”

일단 저들의 말에 따르면 이제 더는 제단 방에 볼일은 없는 모양이었다. 은우는 서둘러 나선 계단을 나고 제단 방에서 나왔다. 언데드들이 그를 노렸지만, 역시나 살아 나온 건 그 한 명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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