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화
세 번째 날, 그는 간밤의 일로 쑥덕거리는 사람들 사이를 틈타 기방으로 움직였다. 이 상황에도 심부름꾼과의 약속이 이어질지는 모르겠으나, 그렇다고 안 갈 수도 없었다.
기방 앞으로 가니 심부름꾼이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심부름꾼: 일찍 오셨군요! 자, 이쪽으로 오세요.』
심부름꾼이 그들을 데려간 곳은 기방의 정문에서 동떨어진 후문 쪽이었다.
“기생으로 보이는 여자가 있네요.”
『심부름꾼: 자, 제가 말했던 사람이에요.』
『유랑화가: 이리 아리따운 아가씨인 줄 알았다면 빈손으로 오진 않았을 텐데요. 저는 보잘것없는 환쟁이입니다.』
『소하: 말을 참 매끄럽게 하실 줄 아시네요. 저는 소하예요.』
색색의 옷과 화려한 장신구부터 알아보았지만, 소하는 역시 기생이었다. 대체로 귀여운 인상의 캐릭터였는데 어김없이 시청자들이 열광을 보냈다.
『소하: 화공이라 하셨죠? 초상화 하나를 의뢰하고 싶어요. 대신 궁금한 건 대답해 드리죠. 참고로 내밀한 비밀은 안 되고, 너무 오랫동안 시간 내드릴 수도 없어요. 곧 나가야 해서.』
『유랑화가: 명심하지요. 그보다 초상화라. 당신을 그리면 됩니까?』
『소하: 아니요, 저는 필요 없어요. 대신 저기 아래쪽에 사는 김씨 댁 할머니를 그려 주세요. 제가 보냈다고 하면 알아보실 거예요.』
『유랑화가: 그러지요. 며칠 안에 그려 오겠습니다.』
『소하: 좋아요. 그러면 어서 물어보세요.』
은우는 거기서 눈을 느리게 껌뻑였다.
“게임이니까 어쩔 수 없긴 한데… 이 소하란 캐릭터, 상당히 순진하네요. 답만 듣고 안 그려 주면 어쩌려고.”
─ㅋㅋㅋㅋㅋㅋ
─그림? 어림도 없지! 듣고 튀어버리기!
─더 커여워ㅋㅋㅋㅋ
“뭐, 주인공이 떼먹진 않겠죠.”
떼어먹어도 소하의 문제지 그 알 바 아니다. 은우는 대화를 시작했다.
▣ 116. 어떤 게임
『소하: 왜 죽은 화연 언니에 대해 관심 갖는진 모르겠지만… 언니는 우리 기방에서 제일 잘나가는 기생이에요. 언니만 지목하는 도련님들이 어찌나 많은지, 웃돈을 얹어서라도 지명하려는 분이 많아요.』
『소하: 죽어서 슬프지 않냐고요? 절대요! 질투 때문이 아니에요. 초요 언니가 죽은 거였다면 전 그래도 울었을 거예요. 그렇지만 화연 언니는 죽어도 싸다고 생각해요. 저뿐만 아니라 우리 기방 내 모든 기생이 그렇게 말할 걸요?』
『소하: 이상한 점이라……. 아참, 그러고 보니 화연 언니가 그만둔다는 소문이 돈 적 있어요. 죽기 하루 전엔 기어코 큰소리도 났고…….』
『소하: 이유는 몰라요. 물어보면 야단부터 쳐서는. 그렇지만 그만둔다는 게 거짓 같진 않았어요. 저기 촌부들이나 입을 법한 옷을 사오질 않나, 돈이란 돈은 싹싹 모아 들고 다니기 좋은 패물로 바꾸지 않나. 저는 그래서 가난한 남자한테 푹 빠진 줄 알았죠.』
『소하: 사실 전 그 남자가 백정인 줄 알았는데, 막 학교를 졸업하고 온 신입이 그에 대해 물었다가 종아리가 터져 버린 거 있죠? 백정은 아니었나 봐요. 하긴 화연 언니 콧대가 콧대였는데 그딴 놈에게 빠지진 않겠죠.』
『소하: 변한 계기라……. 아, 있는 것 같아요. 까만 옷의 남자가 찾아온 직후 이상해진 거거든요. 근데 지금 생각하면 사랑 같진 않아요. 얼굴이 완전 백지장이 돼서는 빨리 가야 한댔나? 그 순간엔 반쯤 미친 여자 같았어요.』
“기생이 그만둘 수 있는 직업이었나 하는 질문은 뒤로하고, 단서가 나왔네요. 검은 옷의 남자 그리고 조급함.”
은우는 목덜미를 쓸다가 질문의 주제를 바꾸어 보았다. 초요에 대핸 질문을 화가가 시작했다.
『소하: 초요 언니는 두 번째로 유명한 기생이에요. 화연 언니가 죽었으니 이젠 첫 번째네요.』
『소하: 성격은 그다지 좋지 못해요. 그렇지만 적어도 화연 언니처럼 아랫것들한테 손찌검을 하진 않아요. 실수하면 엄하게 야단치긴 하지만.』
『소하: 신경질은 가끔 내는데, 그것도 화연 언니만 없으면 안 내요. 화연 언니가 초요 언니를 박박 긁어서 화풀이로 짜증 내는 거거든요. 화연 언니가 죽은 뒤론 특유의 까칠한 정도로 그치고 있어요.』
『소하: 특별히 달라진 것……. 없는 것 같은데요? 아, 미운 정이라도 들었는지 아니면 단순히 충격받은 건지 화연 언니가 죽은 뒤로 조금 가라앉긴 했어요. 장신구도 같은 것만 계속 쓰고 있고. 그런데 그건 다른 애들도 비슷해서.』
『소하: 아, 어쩌면 화연 언니가 죽은 것 때문에 충격받은 게 아니라 자기가 죽을 뻔했다는 충격일지도 몰라요. 초요 언니도 나돈 건 사실이니까.』
『소하: 근데 그것치곤 그 뒤로도 꾸준히 밤에 나갔단 말이죠. 어제도 그렇고. 아, 초요 언니도 종종 밖으로 나가요. 화연 언니가 바깥을 나돌 때 즈음부터였나?』
『소하: 남자요? 글쎄요……. 초요 언니는 화연 언니 이상으로 남자에 관심 없는 기생이라……. 아, 요즘 관원 하나가 치근덕대긴 했어요. 언니가 밤에 나간 거랑 비슷한 시기였던가? 쓸데없는 관심 말라는 말을 들어서 더는 물어보지 못했지만요. 그것만 보면 남자에게 관심 있는 것 같기도? 싫어하던 어두운색 천 옷도 그때부터 사 입었으니까.』
초요에 대한 정보가 줄줄이 쏟아져 나왔다. 수상한 듯하면서도 나름 아귀가 맞아 수상하지 않은 말들이었다.
“근데 정말 연인이었을까요?”
─글세요?
─킹직히 초요가 아깝지
─언니, 그 남자 버려요ㅠ
─그래서 푹찍당한 거 아님?
─이거 그럴 듯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초요와 그 관리가 연인 사이였을 것 같진 않다. 그리고 그 둘이 연인 관계가 아니라면 상황은 많이 바뀐다.
은우는 학자에 대해서도 물어보았다.
『소하: 아, 그 남자. 유명하죠. 목석인 척하는 개새끼로.』
『소하: 왜 있잖아요, 감이라는 거. 특히 기생은 남자들의 탐욕 앞에 놓이는 편이니까 사내들의 속내를 쉽게 알아보는 편이에요. 다들 대체로 쓰레기들이긴 하지만.』
『소하: 학자 그 양반은 점잖은 척하는 개새끼에요. 말이나 행동으로만 안 할 뿐이지 눈으로 얼마나 끈적대는지 알아요? 사내놈들이야 다 그런 놈들뿐이지만, 아, 화공 씨를 욕하는 건 아니에요. 화공 씨는 눈빛이 좀 괜찮네. 그렇다고 흑심 품진 말고요.』
『소하: 어쨌든 그 놈은 유독 심해요. 남자들한테 엄청 시달려 온 화연 언니나 초요 언니도 학을 뗄 정도면 알겠어요?』
『소하: 그런 놈은 독사에 가까워요. 한번 물리면 죽기 전까지 시달릴 걸요? 화연 언니도 그걸 알고 단칼에 쳐 냈고. 아쉬웠는지 밤마실을 핑계로 기방 앞까지 걸어오는 꼴이 웃기더라고요.』
학자에 대한 평가는 더욱 신랄했다. 사람이란 건 역시 앞만 보곤 모른다더니, 이런 심성을 숨기고 있었던 모양이다. 물론 기생의 일방적인 평가이므로 완전히 믿을 순 없을 테지만 말이다.
“교서관에서 들었을 때부터 생각한 거지만, 밤마실은 역시 핑계였네요.”
─완전 개새끼네
─역시 사람은 외형만 보고 판단할 수 없음
─??: 스토커는 철창 안에 버려주셔야합니다
─빨리 분리수거 해야하는데 ㄲㅂ
얼마 전 스토커 사건이 터져서 그런가, 사람들은 특히 분노했다. 마치 제 일처럼 화내는 이도 있었는데, 은우는 그걸 보며 툭 말을 내던졌다.
“학사가 개새끼인 건 맞는데 구울 여러분들, 꼭 당해 보신 것처럼 화내십니다.”
그는 화면에 그가 비추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다른 방송에서 배운 말을 할 차례다.
“설마… 애인 있었습니까?”
─커퀴들 이실직고해라ㅡㅡ
─^^7
─비수들 중에 배신자가 있다고??
─내 동년배들,,,,애인이랑 같이 켄 방송 본다,,,,,
─^^7
사실 타인이 사귀든 결혼을 했든 그 알 바 아니고 신경도 안 쓰이지만, 시청자들은 유독 연인의 유무에 매달리는 경향이 있다. 다른 방송에서 그걸 배워 온 은우는 그걸로 시청자들을 놀려 보았다.
과연, 솔로의 설움은 한국이고 외국이고 동일한지라 사람들의 아우성이 채팅 창을 가득 채웠다.
─님은요
─켄님도 없잖아
─형도 없지?
“없습니다.”
당연하지만 화살은 그에게도 돌아왔다. 그러나 은우는 저 화살에 상처 입지 않는 사람이었다.
“대신 여러분들이 있잖습니까.”
태연한 응수에 사람들이 잠깐 할 말을 잃었다.
“마지막으로 교서관주에 대해 물어보죠.”
─말 돌리는 것보소
─구웨에에에엑
─하,,,,어린놈이,,,플러팅을,,,어?
─구독 해제하겠읍니다
─ㅇㅋ 결혼서류 준비한다 딱대
교서관주에 대해 물으니 긴 대답 대신 구겨진 얼굴 표정이 돌아왔다. 짧고 굵은 대답이었다.
『소하: 그 인간에 대해 말하려면 사흘 밤낮을 지새워도 부족한데 그래도 들을래요?』
“여기까지만 듣고 갈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교서관주 쳐내!
─얼마나 쌓인게 많으면;;
“정 필요하면 다시 오겠습니다. 아마 안 필요할 것 같지만.”
은우는 일단 얻을 수 있는 단서가 여기까지임을 확인했다. 대화 종료를 누르자 언제나처럼 짤막한 대화가 마지막으로 이뤄졌다.
『유랑화가: 질문거리가 생기면 다시 찾아와도 되겠습니까?』
『소하: 좋아요. 어차피 그림도 받아야 하니까. 이쪽 문지기에게 일러 둘 테니 찾아와요. 대신 밤은 안 돼요. 오늘도 안 되고.』
『유랑화가: 물론이지요.』
“이렇게 되면 용의자는 교세관주, 학자, 초요 이렇게 3명이 되겠네요. 검은 옷의 남자는 범인 같지 않습니다.”
증거는 없으나 동기는 있는 3명.
은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여기서 하나만 더 단서가 나오면 확실해질 것 같은데…….
“일단 나갑시다.”
여기서 더 할 수 있는 건 없다. 은우는 일지를 통해 정문으로 움직였다. 갑자기 BGM과 함께 일러스트 배경이 깔렸다.
막 나갈 채비를 갖춘 일당들을 비추는 일러스트다. 그 가운데는 어제밤에 본 초요도 있었다.
─초요 개미쳤다;;
─쟤가 2인자면 화연은 얼마나 예뻤던 거임;;
─진짜 레전드다
─초요 언니 날 가져요ㅠㅠㅠ
─저정도면 전재산 갖다받치는 거 ㅇㅈ합니다,,,
초요는 화려한 비단옷에 전모를 쓰고 있었다. 사내들이 쓰는 삿갓과 비슷한 그것은 겉에 예쁜 무늬를 그려 넣어 화려함의 극치를 자랑했다.
옷자락은 고운 자줏빛이었는데 장옷이라 하긴 뭐한 외투를 저고리 위에 덧입고 있다. 팔자락은 어찌나 긴지 춤을 춘다면 꼭 꽃이 피어나는 것처럼 보일 테다.
극사실적인 3D나 캐릭터 풍의 3D에선 맛볼 수 없는 일러스트 특유의 아름다움에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은우가 보기엔 여기서 한 오분의 일쯤은 게임을 깔아 볼 것 같다. 그중 몇 퍼센트는 다음 에피까지 사지 않을까 싶고.
“소하도 저기 있네요.”
─언제 거기 갔누;;
─소하도 진짜 이쁘다
─일러레님 영혼을 갈으신듯,,,
─꽃들이,,,걸어다니네,,,ㅎ
방금 전까지 그들과 수다를 떨었던 소하 역시 그곳에 끼어들어 가 있다. 어딜 나가야 한다더니 그게 저거였나 보다.
꽃이 말한다는 말이 멀지 않다. 정말 살아 움직이는 꽃들이었다.
『유랑화가: 기생들이 저리 많이 나서다니. 다들 어디를 간답니까?』
『심부름꾼: 아, 화공 나리.』
상황을 설명해 줄 사람은 다행히 존재했다. 심부름꾼이 옆에 와서 쑥덕였다.
『심부름꾼: 수도에서 조사관이 내려왔다 합니다. 그래서 그분들을 모시려고 기생들이 나서는 거라네요.』
『유랑화가: 흐음.』
“조사관이 조사를 안 하고 접대를…….”
─부정부패 on
─뇌물인가ㅋㅋㅋㅋ
─지금이나 옛날이나 어케 똑같냐
─유구한 비리의 역사
벌써부터 부정적인 인상이 퍼졌다. 실제 기생은 창부가 아니라 귀빈의 환대에 쓰이는 예인이지만, 아직까지도 인식이란 게 그랬다. 이 게임에서도 후자보단 전자에 가까운 이미지인 듯했고.
“그보다 관아에 기생들이 잔뜩이면 정신이 없을 텐데…….”
이때 침입하면 좋을 것을. 게임이니 그런 건 못하겠지? 은우는 아쉬움에 혀를 찼다. 그 아쉬움은 곧 나온 대사에 물밀듯이 사라져 버렸다.
『유랑화가: 그러면 관아는 정신이 없겠군요?』
『심부름꾼: 그렇겠지요……?』
은우는 직감적으로 다음 벌어질 일을 깨달았다.
『유랑화가: 관아로 나들이 가기 좋겠습니다.』
『심부름꾼: 예?』
“주인공 마음에 드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도둑이냐고ㅋㅋㅋㅋㅋ
─존웃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떤 게임은 간지러운 사람 속을 싹싹 긁어 주는 법이었다.
* * *
출입은 미니 게임을 통해 이뤄졌다. 원에 맞춰 터치하는 건가 했더니 이번엔 블록을 움직여 주인공을 도착지까지 이동시키는 게임이었다. 물론 은우는 5초 생각한 뒤 바로 풀어냈다.
「‘마라맛양파’ 님이 ‘1,000원’ 투척!
님은 못하는 게 뭐임?」
미니 게임은 하나로 끝나지 않았다. 두 번째 게임을 풀어 나가며 은우는 시청자의 질문에 잠시 고민했다.
“…공부? 암기까진 괜찮은데 응용이 어려워서요.”
참고로 그의 성적은 대체로 5등급에서 6등급 선이었다.
─암기는 자신 있으시구나....그렇구나....
─급 현실ㅋㅋㅋㅋ
─그래도 운동은 잘하잖아....난 둘다 못해....
─ㅋㅋ큐ㅠㅠㅠㅠ
암기도 사실 일부분에서만 발휘되는 편이었다. 아무렴 그는 대동법을 누가 시행했냐 물으면 항상 아리송해하는 사람이었다. 시험 하루 전마저도.
─게임에 대해서만 천재인 그.....
─근데 사실 다 그러지 않음?? 템 이름이랑 나오는 장소는 달달 외워도 암기과목은 못 외움ㅋㅋㅋㅋ
─ㅇㅈㅋㅋㅋㅋㅋㅋ
─요즘 다시 문이과 통합했다든데;;
“그거 금년부터입니다.”
그래서 재수가 결정됐을 때 특히 암담했다. 은우는 오소소 돋은 소름을 문질러 없앴다. 언제나 말하지만, 괴수신과 한판 더 뜨는 게 재수하는 것보다 승률이 높다.
─왜이렇게 잘 암;;
─벌써 통합됨? 애들 죽어나가겠네
─교육부 진자 일 좟까치 한다니까
─켄은 왜 아는 거야
─재수생들 지금 죽으려들잔어
“이번 년에 졸업했으니까 알죠.”
잊을 만하면 나오는 주제에 이번엔 사람들이 소름 끼쳐 했다. 믿든 안 믿든 간에 말이다. 은우로선 큰 마음 먹고 제 정보를 노출한 건데, 사람들 참 박하다.
“그보다 세 번째로 끝이네요.”
미니 게임이 끝나고 화가가 관아로 침입했다. 목표 지점은 어제 있던 사건의 시신이 보관되고 있을 부검소다.
실제로도 이런 장소가 있었는진 모르나, 어차피 이 게임은 고증에 철저하지 않다.
은우는 별생각 없이 캐릭터를 조작해 부검소에 침입했다. 심혈을 기울여 침입하고 싶어도 이 게임은 그런 게임이 아니었다. 딸랑딸랑 방울이 우는 것부터 그랬다.
『유랑화가: 이왕이면 감옥소까지 가 보고 싶소만, 거긴 경비가 철저하더이다.』
유랑화가는 시체밖에 없는 부검소에서 혼자 떠들었다. 물론 일러스트 속 화가의 눈동자가 붉어지면 부검소는 원과 한들이 가득한 공포의 집이 된다.
『유랑화가: 차선책으로 그대의 한을 읽으러 왔소. 그러니 자, 들려주시게.』
일러스트 속 화가가 상체를 구부려 시체와 얼굴을 마주했다. 끔찍한 광경이나 화가의 눈가에서 녹색으로 빛나는 문신과 주위에 흩뿌려지는 푸른빛들이 약간의 신성함을 담았다. 너무 비틀려 차라리 성스러워 보이는 착시에 가깝다.
『유랑화가: 죽을 당시 그대가 생각했던 것들을, 미련들을 내게 말해 주시게.』
화가는 종이와 붓을 꺼내 들었다. 이번에 나온 미니 게임은 찢어진 조각의 퍼즐을 맞추는 것이다. 알맞게 짜 맞추니 단서가 완성되었다.
『관원의 한을 획득했습니다.』
한은 글이었다. 아마 관원이 죽기 전에 하고 있었을 생각들.
『왜, 왜 하필 내가! 이미 죽었을 텐데! 죽은 것 따위가 어째서 산 자를 죽이려 드느냐! 안 돼, 안 돼! 이제 겨우 저년을 품을 수 있게 되었는데! 이대로 죽을 수 없어! 꺼져라! 감히 천한 백정 놈 따위가! 네 비천한 목숨을 바쳐 내 부귀영화에 한몫한 게 얼마나 큰 영광인 줄 알고!』
글은 길었지만 요약하자면 이 관원이 백정에게 누명을 씌운 놈이었다.
“저년을 품을 수 있게 되었는데…라. 좋은 연인감은 아니네요.”
혹은 연인이 아니거나.
은우는 목덜미를 쓸며 한에 적힌 단서를 찾아내었다. 별 단서는 없었다.
“일단 여기서 발견할 수 있는 건 이게 다인 것 같습니다. 나가죠.”
그들은 서둘러 부검소를 빠져나갔다. 다음으로 갈 곳은 증거물들을 보관해 두는 창고였다.
『유랑화가: 기이하군. 백정이나 기생의 한이 느껴지는 게 없다니?』
한은 많았으나, 화가가 찾는 것은 없었다.
“이상하네요.”
─뭐가요?
─혼자만 느끼지 말고 빨리 설명ㄱㄱ
─뭐가 이상함?
“백정이나 기생의 한이 서린 물건이 없다는 건 그들에 관한 물건이 이곳에 없다는 소리잖습니까.”
같은 고민을 하는지 화면 속 화가가 턱을 쥐며 고민을 시작했다. 삐거덕. 다른 쪽에서 누군가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린 건 그때였다.
『유랑화가: (이런.)』
화가가 서둘러 그림을 찢었다. 갑자기 나온 터치 미니 게임에 은우는 반사적으로 버튼을 눌렀다.
화가의 몸이 연기에 휩싸이더니 족자봉으로 변해 벽에 걸렸다.
『포졸1: 아이고, 힘들어라.』
『포졸2: 그 기생 년의 물건은 왜 필요한 거야?』
직후, 관아의 병사가 창고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