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화
서은우의 방송이 12시간 넘어가는 시점에서 박기철은 그의 건강을 염려했다.
풀 다이브 캡슐이 있다지만, 스트리머의 건강이 제일 중요한데 역시 그는 괜히 허락한 게 아닐까. 그런 염려였다.
물론 허락이라고 해서 큰 의미가 있는 건 아니었다. 스트리머가 하고자 하는 방송을 막을 권리는 다이아박스에게 없었으므로.
계약서에 금지할 수 있노라 명시된 것은 다이아박스에게 피해가 가는 주제지 켠왕이 아니었다.
그리고 24시간이 넘어갔을 때, 여전히 멀쩡해 보이는 서은우의 모습을 보고 염려와 의심을 동시에 느꼈다. 여전히 건강 걱정이 드는데, 저거 정말 인간인가 하는.
또 다른 생각도 했다. 인터넷 방송 시간 규제로 또 떠들썩해지겠거니 따위의.
그렇지만 큰 걱정은 안 했다. 24시간 방송을 무리하게 유지하다가 사망한 사람이 나왔어도 인플루언서들의 반발에 통과 안 된 법안이니 이번에도 흐지부지될 거다. 기실 통과된다 해도 나쁠 것도 없고.
대망으로 2회 차 요소가 필요하단 얘기가 나왔을 때, 그는 중단을 외치려 했다.
실패가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여론은 그들에게 온 상태가 아닌가. 이것만으로 충분히 많은 걸 얻었다. 여기서 그만둬도 손해 없이 이익만 있었다. 더 시도해 봤자 얻을 게 없는 만큼, 건강을 생각해서라도 그만두는 게 맞았다.
그러나 문제가 딱 하나 존재했으니.
연락이 안 됐다.
“아니, 메시지를 꺼 두면 어쩌자는 거야!”
집 주소야 알지만, 문을 땄다간 나중에 그의 목도 따질 것 같았다. 박기철은 발만 동동 굴리며 해결책을 찾느라 시간을 보냈다.
그사이 방송 화면 속 서은우가 늑대 앞에 섰다.
▣ 110. 채팅 쳐
은우는 숨을 길고 느리게 뱉었다. 니플헤임의 살얼음 낀 대지가 바스락거리며 부서졌다.
입술과 연결된 헬멧에선 숨결이 희게 눌어붙고, 태양이 존재하지 않되 공기 자체가 검푸른 빛을 머금은 세계는 그의 옷자락을 파르라니 물들였다. 심해에서 끌어 올린 빙산의 색이다.
반면 그의 앞에 선 늑대는 하얗고 붉었다. 본래 더없이 깨끗했을 흰털과, 한 번 찢어졌다 꿰맨 상처에서 스며 나오는 피가 그것을 그리 만들었다.
“여기서부턴, 네 몫이야.”
크아아아아아!
발리가 울 것 같은 얼굴로 물러나고, 펜리르가 입을 벌리며 우짖었다. 핏방울이 사방으로 튀었다. 새빨갛게 물든 주둥아리에는 성인 팔뚝만 한 이빨들이 울룩불룩 솟아 있다.
그 순간 펜리르가 앞발에 힘을 주었다. 은우는 그 관절이 접히는 걸 본 순간, 슬링탄을 던짐과 동시에 옆으로 굴렀다.
콰앙!
불의 거인을 상대할 때보다 더 빠른 속도로 펜리르는 그를 지나쳤다. 그 속도를 못 이겨 필드를 한정시키는 얼음벽에 부딪치기도 했다.
그럼에도 머리 한 번 터는 것으로 끝마치는 터프함은 녀석의 맷집이 엄청날 것이란 사실을 알려 줬다. 알 바 아니었다.
피가 달았다. 그거면 충분했다.
“빠른데.”
은우는 슬링을 활시위에 걸고 속삭였다.
“그래도 느리네요.”
방송을 처음 시작할 당시 잡았던 보스보다 느리다. 사람들이 왜 안 된다고 말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자존심이 더욱 부서졌다. 사람들의 기준이야 워낙 낮아서 그리고 보는 눈들이 없어서 그럴 수 있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래도 과소평가당한 것만큼 그를 열받게 만드는 일은 없었다.
싸움에서, 전투에서, 사냥에서. 적어도 그 분야에서 그는 절대 무시받아선 안 된다. 그건 그의 또 다른 삶을 모욕하는 것이었으므로.
그는 웃음기를 싹 뺀 얼굴로 늑대를 관찰했다. 펜리르는 팔로 화살을 쳐 냈다. 얼굴이, 특히 찢겨나간 입 부분이 약점인 것 같은데, 아무래도 쉽게 맞아 줄 것 같지 않다.
은우는 활을 바꿔 들었다. 시위를 당기는 데 많은 힘이 드는 저격 활이다. 어차피 여러 발을 쏴 봐야 저렇게 튕겨 내는 일이 다반사일 테니, 하나라도 제대로 쏘는 게 낫다.
그 잠깐 새에 펜리르는 두 번이나 그에게 포탄처럼 쏘아졌다. 은우가 할 수 있는 일은 구르고, 슬링탄을 버리듯 내던지는 일뿐이다.
그는 오랜만에 영역을 쟀다. 영역을 잴 만한 보스가 드물어 굳이 그런 적 없는데, 펜리르는 아무래도 계산해야 할 성싶다.
워우우우우!
흰 갈기의 늑대가 반응하기 어려운 속도로 다가와 머리를 움직였다. 은우는 숨을 내뱉으며 달리고, 창을 바닥에 박은 채 몸을 끌어 올렸다. 굴렀다간 역으로 먹힐 속도여서 어쩔 수 없었다.
슬링의 기본 탄약인 돌멩이가 늑대의 입가를 때렸다. 대미지가 미미하게 들어갔다.
창으로 장대뛰기를 한 끝에 그는 바닥에 착지했다. 시선은 역동적이되 은밀한 늑대에게서 결코 떼지 않았다.
한 발, 한 발 느리게 옆으로 기어가던 늑대가 어느 순간 발톱을 바짝 세웠다.
펜리르는 그대로 그에게 덤벼들었다. 머리가 그보다 커다란 늑대의 돌진은 위협적이나, 그 공격이 단순한 돌진이 아니란 점에서 더욱 위험하다. 하물며 그 속도가 육안으로 인식하기 힘든 수준이라면 더욱 그렇다.
왼쪽인가 오른쪽인가. 은우의 눈이 본 것을 뇌가 인식하기 전에 육체가 받아들였다.
오른발이 더 높아. 뇌가 속삭일 때엔 이미 발이 먼저 나아가고 있다. 3발. 인식은 느릴지언정 이성은 철저하게 효율을 좇는다.
그는 왼쪽으로 세 발자국 달렸다. 늑대의 발이 그의 우측을 지나치고 바람이 뺨을 때렸다. 은우의 활이 시위를 당겼다. 타이머와 함께 세상이 느려졌다.
왼쪽으로 세 발자국 달리던 몸을 강제로 틀어 다시 오른쪽으로 달린다. 관성 따위는 무시해야 했다. 근육이 비틀어지고 망가지는 수가 있어도 틀어야만 한다.
느려진 세상에서 펜리르의 왼발이 그가 있는 자리를 내려찍으려 들었다.
아슬아슬하게 털 달린 발이 지나치고, 활을 든 은우의 손은 머리께까지 올라왔다. 은우의 눈과 늑대의 눈이 마주쳤다. 녀석의 눈동자는 시리도록 눈부신 금빛이었다.
핑! 하는 발사음과 함께 시간이 도로 돌아왔다. 그건 처음 겪을 때 제법 어지럼을 느끼는 시스템이나 이제 와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늑대의 입에 화살이 박히는 것도 보지 않은 채 은우는 빠르게 달렸다. 펜리르가 뒤로 훌쩍 점프했다. 은우의 보폭이 줄어들며 다음 패턴을 살폈다.
─방금 뭐가 일어났누?
─ㅇㄴ 입에 뭐 모인다
─와,,,,방금 봄? 활로 시간 늦춰서 공격 피하는 거,,,
─뭘 봤는데, 뭘 봤는지 모르겠음
─머머머임 왜 안 죽음
펜리르의 입에 서리가 끼듯 흰빛이 모여들었다. 만약 저기서 멈췄다면 좋았겠지만, 역시나 이어지는 건 빔이었다.
모으는 시간도 짧은 주제에 공격 속도도 비범한 광선이 은우를 향해 쏘아졌다. 이 또한 쏘는 타이밍에 정확히 피하지 않으면 속절없이 휘말릴 만큼 빠르고 공격 폭이 꽤 넓다.
광선이 지나친 자리에는 성에가 꼈다.
은우는 그것을 확인할 여유도 없이 재차 굴렀다. 간발의 차로 펜릴의 돌진이 그를 지나쳐 갔다. 쿵. 그 소리는 은우가 파악한 그나마의 공격 타이밍이다.
그는 펜리르가 돌아볼 타이밍에 맞춰 화살을 반 박자 빨리 쏘았다. 날아가는 시간까지 합쳐 정확히 입에 박혀 들어갔다.
은우는 즉시 활을 집어넣고 트랩을 꺼내 들며 대피를 시작했다. 벽에 부딪힌 직후 펜리르가 그를 쫓아 달렸다.
착, 착!
속성 와이어가 매달린 못을 원하는 장소에 두 번 쏘아 만드는 트랩은 빨리 발사하지 못하면 설치에 실패한다. 특히 이렇게 도망칠 때는.
운우는 그것을 앞을 보며 달릴 때 한 번, 달리느라 설치한 자리를 지나칠 때 원하는 쪽으로 한 번 쏘는 걸로 해결했다.
─진자 판단 지린다,,,
─난 상황 파악도 못하고 있는데;; 이분은 그 사이에 딜을 넣으시네;;
「‘정보’ 님이 ‘1,000원’ 투척!
켄은 잡지 말라고 만든 구간에서 최속 보스를 잡은 적 있다」
─도저히 잡으라고 만든게 아닌데 잡히고 있누
─펜릴 보이긴 함?
─역시 켄은 인간이 아니란게 학계의 정설
속성 공격이 있다면 저항도 있기 마련이라. 트랩이 발동하는 소리가 들렸음에도 마비되어 쓰러지는 둔탁함은 들리지 않았다. 녀석의 내성이 높거나, 그의 무기가 쓰레기이거나, 그냥 무효거나. 셋 중 하나다.
은우의 이동 속도보다 배는 바른 펜리르의 주둥아리가 그를 찢어발기기 위해 쩍 벌어졌다. 먹잇감이 빠져나기 힘들도록 가로로 기울어진 녀석의 입이 다가왔다.
그 순간 은우는 활과 창을 교차되게 잡고 창을 바닥에 내려찍었다. 창은 검지와 중지 사이를 통과하게, 활은 검지와 약지, 소지로 잡아 십자로 교차한 것이다.
물론 창이 단창이었고, 늑대가 워낙 컸으므로 높이가 약간 모자랐다. 이대로라면 팔이 물어뜯길 터였다.
그러나 그마저도 이미 상정한 바다.
은우는 몸을 띄우며 나머지 팔로 시위를 당겼다. 그 팔 또한 창을 잡았으나, 검지에 시위를 걸고 활대 쪽과 멀어지게 창을 닦아 내듯 팔을 올리면 알아서 당겨진다.
그리고 세계를 느리게 만드는 건 화살이 걸리지 않아도 시위만 당기면 이뤄졌다. 그것의 쿨타임이 되돌아왔다는 가정하에.
절묘한 타이밍에 당겼는지라 막 다가오던 늑대의 입이 느려졌다. 은우가 허공에 뜬 다리로 이빨 하나를 밟고 맹수의 아가리 사이에서 몸을 빼내기에 충분한 느림이었다.
은우의 몸이 늑대의 턱주가리를 뛰어넘어 바닥에 착지했다. 시간이 되돌아오고 은우의 창이 녀석의 턱 아래를 긁어내듯 때렸다.
펜리르가 뒤로 점프했다.
─안 보고?? 피하셨??
─ㅁㅇㅁㅇ
─너무 빨라ㅠㅠㅠ
─3인칭으로 보는데도 퓨퍄퍄퍗하는 것밖에 안 보임
─어케 피했냐??
─1인칭은 걍 파팟 함;; 어케 판단하는지 몰겠음
─어케 했냐 켄놈아;;
은우는 잠깐 멈춰 두었던 호흡을 되살렸다. 느리게 내뱉고 들이마시는 숨소리는 VR 1인칭으로 듣지 않는 이상 감지할 수 없을 정도로 작다.
아우우우우!
펜리르가 울부짖자 그 거대한 몸체의 양옆에 반투명한 늑대가 소환됐다. 대충 황소만 한 크기의 들개는 좌우에 한 마리씩 해서 똑같이 하울링을 했다. 그러고 나선 은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나 피하고, 둘 피하고, 충돌. 틀렸어.
하나, 둘, 셋. 충돌
하나 그리고 둘. 셋.
수십 가지의 경로가 순식간에 짜이고 순식간에 무너지며, 그와 동시에 몸이 움직였다.
역으로 늑대들을 향해 달려간 몸이 첫 번째 늑대와 부딪치려던 찰나 바닥을 굴렀다. 망령이 그를 비껴 나가고, 첫 번째의 꼬리 부근쯤에 맞춰 달리던 두 번째 늑대가 그를 노렸다.
그러나 괜찮았다. 그는 일반적으로 구르는 대신 옆 구르기에 가깝도록 피했으니까.
바닥에 닿은 발이 최대한의 힘을 주고 대지에서 튕겨 나갔다. 백 텀블링의 끝은 세 번째로 달려오는 펜리르와 마주하는 것이다.
은우는 앞으로 최대한 길게 뛰고 굴렀다. 그의 신발 밑창을 펜리르의 털이 쓸고 지나갔다.
“하.”
뱃속의 뜨거운 열기가 목구멍을 타고 불을 뿜었다. 빠르게 일어선 은우의 손이 활을 팽팽하게 당겼다. 3발의 화살이 막 벽에 처박힌 펜리르를 노렸다.
안면 가리개 아래의 입술은 더없이 위로 올라간 채다.
사흘을 자지 못해 뇌를 노곤노곤 무겁게 만들던 피로가 강제로 내몰렸다. 엔도르핀인지 혹은 다른 호르몬에 의해서.
“재밌네.”
혹은 싸움에 미치고 만 사람 앞에서.
화살이 바람을 휘감고 날아갔다.
* * *
─크레이프 머시기 필요하다고 말했던 새끼 나와라
─ㅅㅂ...저요....
─아무리 봐도 안 필요한데??
─대가리 박아야할 순간
─하나 확실한 건 켄 절대 특혜 아님 특혜도 인간이 따라할 수 있는 걸 줘야지 저딴 게 특혜가 되겠음?
─인정한다.
─진짜 맞말ㅇㅈ
─2페이즈는 진짜 사람이 깨라고 만든게 아닌데ㄷㄷ
어느새 절반이 넘는 피가 깎였다. 펜리르에게 가장 잘 먹힌다는 화염 속성 화살은 제작 자원을 소모해 실시간 공수 중이다.
은우는 높게 뛰어올라 내려찍는 펜리르를 피해 공중으로 뛰었다.
공기에 발판이라도 있다는 듯 회전까지 넣어 가며 하는 뜀박질은 바닥에 착지함과 동시에 다시 한번 떠오르는 걸 반복했다. 펜리르가 벌레 잡으려는 사람처럼 대지를 여러 번 내려친 탓이다.
공중을 도는 몸이 타이밍 나올 때마다 펜리르의 발을 창으로 긁었다. 그렇게 쌓인 대미지가 오분의 일쯤 될 거다.
아우우우!
펜리르가 뒤로 물러나더니 빛살처럼 돌진했다. 2페이즈에 돌입하며 해당 돌진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핀볼처럼 둥근 원형의 필드를 돌아다녔다. 방향이 랜덤이라서 외워 피하는 건 불가능했다.
심지어 녀석이 지나간 자리는 꽝꽝 얼어붙어 한기를 흘렸다. 그 위를 밟으면 상태 이상 냉동 게이지가 차는 건 물론, 미끄러워서 움직임에도 장애가 되었다.
사라지는 속도조차 늦어 녀석이 벽에 대략 4번 정도 부딪치고 나서야 선 하나가 지워졌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은우는 어떻게든 길을 개척해 냈다. 트랩용 못을 재빠르게 박아 발이 걸리도록 한 후 미끄럼을 방지하는가 하면, 오히려 미끄러지는 걸 이용해 빠르게 대피했다.
냉기 상태 이상은 그간 쌓아 둔 물약을 빨아 해결했다. 아무도 그걸 반칙이라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말하는 자가 나오더라도 ‘네가 직접 해 보고 말해.’라는 뭇매를 시청자들에게 맞았다.
그사이 중간에 멈춰선 펜리르가 고개를 위로 치켜들었다. 은우는 녀석이 중심에 서는 걸 보자마자 이미 필드의 가장자리를 향해 달려 나가는 중이다.
아슬아슬하게 슬라이딩으로 미끄러지자 뒤쪽에서 폭발이 일었다. 펜리르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폭발이다.
─진짜 공격범위 선넘네;;
─제작진 양심 있냐?
─이래서 2회차 요소가 꼭 필요한 건 아닌데,,꼭 필요한 거구나,,,,
─아니 근데 그걸 깨는 켄은 무냐고~~!!
「‘켄은신이다’ 님이 ‘1,000원’ 투척!
켄은 신이다 켄은 신이다 켄은 신이다 신이 켄이다 켄은 신이다」
─뇌절이라고 누구도 말 못함
─켄 신 ㅇㅈ
─이게 게임이냐
사람들이 뭐라 하든 은우는 차분히 활시위를 당겨 한 번의 공격을 시도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번이다. 2페이즈는 안 그래도 괴랄한 공격 패턴이 속도와 범위, 숫자를 늘려 조금만 욕심 부리면 죽기 십상이었다.
그간 올려 온 레벨과 쌓인 포션이 아니었다면 은우도 범위를 알아보다가 죽었을 것이다.
“흐.”
펜리르가 뒤로 점프해 은우와는 반대되는 가장자리로 움직였다. 그러곤 옆으로 뛰기 시작했다. 나선 패턴이었다.
그는 다급히 중심부로 달렸다. 펜리르가 달리는 자리마다 서리가 피어나며 필드를 좁히기 시작했다.
펜리르는 나선을 그리며 달리기에, 가운데 있는다 해서 피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중심에만 있으면 서리흔 때문에 제한된 조그만 지대에 갇혀 펜리르의 입에 찢겼다.
은우는 가운데 쪽으로 달리다가 펜리르가 적당히 중간 부분까지 왔을 때, 역으로 나갔다. 너무 일찍 피했다간 펜리르가 다시 바깥으로 나오기에 두 번에 눈치 싸움 끝에 결정한 타이밍이다.
참고로 가운데 몰려 찢길 뻔한 적은 없지만, 너무 일찍 대피해 몰이사냥당한 적은 있었다. 살아남았기에 지금 이러고 있는 것이고.
그는 화염 속성 트랩을 두 개 깔았다. 은우를 쫓는 펜리르가 막 선회를 마치고 그에게 돌진했다.
이빨 사이에서 서리 낀 얼음 안개가 광선으로 뿜어져 나왔다. 은우는 왼쪽으로 한 번 구르고 다시 오른쪽으로 굴렀다. 수학의 비례 기호(∝)를 세로로 돌린 것처럼 광선이 쏟아져서 어쩔 수 없다.
심지어 펜리르는 돌진을 절대 멈추지 않았다.
폭발 트랩이 그의 털을 살짝 간지럽히고, 은우는 가까스로 회피에 성공했다.
물론 은우 입장에선 철저한 계산 끝에 해낸 것이라 가까스로라는 수식어는 알맞지 않았다. 그러나 지켜보는 입장에선 그것만큼 옳은 설명이 없었다.
─진짜 잡는 거 아님??ㅜㅜㅜ
─느낌있다 느낌온다
─히든엔딩 가즈아!!
─가즈아아ㅏㅏㅏㅏ
─매번 전설을 써내려가는 남자 켄,,,,,
─개쫄려ㅠㅠㅠㅠ
─깨자! 깨자ㅏ!!
─한 방 먹이자!!
아직 삼분의 이도 깎이지 않았건만, 사람들은 벌써부터 김칫국을 들이켰다. 펜리르를 잡는 게 기적이라면 은우는 벌써 절반을 이뤄 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그건 기적이 아니다.
인간이 하나부터 열까지 설계하고 행동하여 쌓아 올린 것을 기적이라 부른다면, 그건 그 행위가 가지는 가치를 떨어트리는 게 돼 버리지 않나.
은우의 발이 얼음의 미끄러움을 이용해 매끄러운 턴을 짓고, 그의 옆을 지나치는 늑대의 다리를 창으로 때렸다. 창을 휘두르느라 손이 반대쪽 어깨 근처까지 가면 그땐 활을 쥐어 들었다.
저격용 화살이 바람으로 옷을 지어 입었다.
고개 돌린 늑대가 광선이 아닌, 넓게 분사되는 형태의 얼음 안개를 뿜었다. 그것은 공격이 아니나 어떻게 보면 공격보다 더한 것이었다.
일대가 흰 안개에 둘러싸였다. 한 치 앞도 분간하기 어려운 밀도의 안개로.
─머임?
─아니 시발 미친 제작사개새가기ㅏ
─양심 재기해라
─ㅅㅂ 저걸 깨라고 만든 거냐고
─돌은 거 아님??
─와 진짜 이건 제작사가 양심 없어싿
─시야 가리기 미쳤냐고;;
처음 나오는 패턴에 시청자들은 당황과 분노를 동시에 토해 냈다. 시야를 막는 게 얼마나 짜증나고 위험한 패턴인지 잘 아는 탓이다.
은우의 눈이 침잠되다가 이내 완전히 감겼다.
─포기하셨나봐ㅠㅠ
─이건 진짜 말이 안 되지
─보고도 피하기 힘든 속도를 못 보고 피하는게 말이 됨?
─졌잘싸다 진짜ㅠㅠㅠ
진동이 대지를 때렸다. 느리게, 아주 섬세하게. 그렇지만 숨기지 못하고.
은우의 팔이 빠르게 활시위를 당겼다. 시야가 가려진 건 그뿐만이 아니다. 제작진이 잘 적용했다면 펜리르는 이 공격에 얻어맞을 거다.
게이지가 순간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미미하지만 분명 줄어든 형태로.
진동이 커졌다.
─? 머임? 맞았음?
─??
─게이지 순간적으로 뜬 것 보니까 맞은듯?
─?이걸??이걸???
은우는 진동과 소리에 온 정신을 집중했다. 시야를 포기한다는 건 큰 문제이다가도, 받아만 들이면 더 이상 골칫거리가 아니게 된다.
그의 몸이 뒤로 구르며 펜리르의 앞발을 피했다. 원형으로 퍼져 나온 파동이 주변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은우의 신발 끝도 얼었다.
쿵, 쿵.
내려찍기는 보통 2번, 간혹 3번, 드물게 6번 이어진다. 그때마다 찍는 양상이 미묘하게 다른데, 이번은 6번이다. 심지어 시야가 가려진 대가인가. 공격 속도도 1페이즈급으로 느려졌다.
은우는 뒤로 탁탁 뛰며 시위를 당겼다. 다리가 내려꽂힐 때에 맞춰 머리가 있는 부분을 겨냥하면 6연타 동안 상당량의 대미지를 입힐 수 있다. 슬링까지 섞어 공격하면 더욱 대미지가 높았다.
늑대의 존재감이 멀어졌다. 백 점프다. 그리고 아마, 돌진.
은우가 구르자마자 안개가 휘몰아치며 펜리르가 쓩 지나갔다. 다만 그 사이에 난 통로는 메워지지 않았다.
안개의 길 끝에서 거대한 신화의 늑대가 길게 울었다.
워우우우우우!
늑대를 소환하는 패턴이 나왔다. 2페이즈 들어 처음이었는데, 2마리만 소환하던 게 이제 양쪽에 3마리씩 해서 6마리가 됐다.
선 넘네. 시청자들의 감상은 간단했다.
피하지 못하면 죽는다. 은우의 사고방식도 간단했다.
두 마리 다 같은 경로로 달려오던 아까와 달리, 늑대는 사방에서 쏟아졌다.
가장 먼저 달려오던 녀석은 슬라이딩으로 피하고 손으로 땅을 짚고 몸을 띄워, 두 번째를 피한다.
은우는 땅에 발이 닿자마자 바로 점프했다. 긴 다리의 이점을 이용해 돌개 차기 하듯 세 번째 늑대를 뛰어넘고 창을 땅에 박아 광대가 그러듯 찰나간 거꾸로 섰다. 하면 네 번째와 다섯 번째 늑대가 교차하며 창 아래쪽을 스쳐 지나갔다.
몸무게를 이기지 못한 창이 한쪽으로 기울어지면 자연스레 땅과 맞닿으니. 마지막 늑대가 다가오는 것은 땅을 짚고 몸을 굴림으로써 회피했다.
절정은 당연히 일곱 번째 늑대.
은우의 몸이 달려드는 펜리르를 향해 쏘아졌다. 활시위는 당길 필요가 없다. 이미 그의 세계는 축을 달리하여 흐르고 있으므로.
가로로 벌어진 입안으로 들어가되 턱에 붙어서. 그리고 사정권 안에 들어왔을 때, 은우는 이와 잇몸 사이에 창을 박고 몸을 끌어 올렸다. 달리며 끌어올린 힘이 그의 도약에 힘을 더했다.
찰나의 순간 은우의 몸이 허공에 떠오르며 늑대의 머리 위를 지나쳤다.
발이 늑대의 목에, 등에, 이윽고 손으로 그 털을 움켜쥐었다.
“숨, 쉬고 있으면 채팅 쳐.”
종말을 몰고 오는 늑대 위에 또 다른 종말이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