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엄버가 안쪽으로 진입하고 그는 검을 들었다. 선악과의 뱀이 비명을 지르며 엄버를 잡으려 들었다. 은빛 검날이 뱀의 목덜미를 찌를 것처럼 쏘아졌다.
“뭐, 죽이지만 않으면 되겠죠.”
─죽이지'만' 않으면
─??: 차라리 죽여줘....
─'그 발언’
─보스가 후회하게 될 것이다....
─주체가 이상한데요ㅋㅋㅋ
─구마의식(물리)
─진짜 구마의식이네ㅋㅋㅋㅋ
“이 자식이!”
스칼렛의 몸을 하고도 선악과의 뱀은 그의 공격을 수월하게 피했다. 당연한 사실이긴 하지만, 쉽게 당해 주지도 않았다.
처음에 얻어맞은 것이 무색해질 정도로 격렬한 반격을 시작한 것이다.
“죽어!”
인간의 뇌가 슈퍼컴퓨터보다 성능이 좋은 건지, 아니면 무리를 하는 것인지. 저항이 거세질수록 스칼렛의 몸 상태가 나빠졌다. 몸의 구멍이란 구멍에서 전부 피가 나올 기세였다.
그러나 그게 대수일까? 일대일에서 은우를 이길 수 있는 존재는 없었다. 오히려 스칼렛을 살려 가면서 제압하는 게 어려울 지경이니 말 다했다. 스토리상 어떤 일격을 가하든 죽지 않게끔 되어 있지만 말이다.
“목은 안 잘리는데…….”
그런 와중에 은우의 검이 기어코 뱀의 다리를 자르는 데 성공했다.
“다리는 잘리네요.”
스칼렛의 몸체란 건 알 바 아니었다.
─누나 다리가 있었는데요 없습니다
─진짜 자비 없다ㅋㅋㅋ
─바로 컷신 뜨는 거 보니까 효과는 직빵이네
─엄버 누나 해냈구나!
─근데 스칼렛 다리는 못 지켰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엄버가 해킹을 성공해 내고 2페이즈가 시작됐다. 엄버가 뚫은 길을 통해 인디고B가 회로 상의 선악과의 뱀을 추적, 사살하면 끝이었다.
다만 실망스럽게도 2페이즈는 흡사 슈팅 게임이었다. 심상이라서 그런지 더욱 맹렬한 공격이 쏟아졌지만, 패턴이 존재해서 어렵지 않게 공략이 가능했다.
결국 바꿔 든 무기인 인류의 깃대가 녀석의 목 한가운데를 지그시 눌렀다. 인간들의 마크가 선명히 새겨진 깃은 바람이 불지도 않는데 이유없이 펄럭인다.
[빌어먹을 인간들……. 날 만든 너희를 저주해.]
녀석은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폭언을 퍼부었다. 그런 주제에 녀석의 눈에선 투명한 이슬방울이 펑펑 흘러나오는 중이다.
[이런 지옥에서 날 태어나게 만든 너희를 저주한다고…….]
은우는 본능적으로 여기서 끊어야 한다는 걸 느꼈다.
[인간 따위, 이해하고 싶지 않았어…….]
인류의 깃대가 인간을 이해하도록 만들어진 기계장치를 살해했다.
▣ 101. 언젠가 이런 순간이 올 거라
「‘킹갓제너럴켄’ 님이 ‘10,000원’ 투척!
영화 한편 봤다」
「‘플라나리아’ 님이 ‘200,000원’ 투척!
미션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ㅠㅠ」
─나도 저렇게 여유부리면서 농락하고 싶다,,,
─그치만 어림도 없지! 뱀에게 순살!
─와! 3천원 비싸졌다!
애당초 은우 혼자였다면 적의 징징거림 따위는 들어 주지 않았을 것이니. 그럼에도 선악과의 뱀이 말하는 유언을 들어준 건 다 미션 때문이었다. 깃대를 쓴 것도 비슷한 이유였다.
“만족하신 거 같아 다행이네요. 후원 감사합니다.”
쏟아지는 후원과 채팅 속에서 은우는 깃대를 고쳐 쥐었다. 역수로 쥔 채 팔을 아래로 늘어트리면 깃이 달린 부분이 자연스레 위로 올라간다.
우르르릉-
번개가 치기 전 하늘이 우짖을 때 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강렬한 진동이 은우를 덮쳤다. 놀이기구에 탑승한 것처럼 대지가 좌우로 흔들린 것이다.
곧 세상이 자잘한 큐브 조각으로 분리되며 아래로 추락했다.
은우의 몸도 백색의 공간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곧 그가 진입하는 것은 아주 새까만, 눈을 뜨고 있음에도 자신의 몸조차 확인할 수 없는 어둠이다. 붕 떴다가 무언가에 빨려들어 가는 감각이 온몸을 휩쓸었다.
그리고 은우는 눈을 떴다. 엄버가 보였다. 그녀는 그가 아닌 다른 곳에 시선을 두고 있다.
“인간조차도 인간을 이해하지 못하는데, 우리는 어째서 기계에게 그 역할을 맡겼을까?”
자그만 중얼거림이 독백처럼 이어졌다.
“이해한다는 건 일의 이치를 깨닫고 있어야만 가능하지. 심지어 창조주와 창조물은 그 위치가 달라 서로를 이해하는 게 가능할 리 없잖아.”
엄버의 고개가 틀어지고, 시선이 맞닿았다.
“어쩌면 인간은 처음부터 기계가 자신들과 같아질 수 있다고 생각한 건 아닐까? 자신들과 동등한 위치에 설 수 있다고,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니었을까?”
연녹색 눈동자 사이로 투명한 액체가 한 줄기 흘러내렸다. 인간인 인디고B가 흘릴 수 없는 눈물을 정작 기계장치인 엄버가 흘린 것이다.
한때 인간과 기계의 결정적 차이점이라고 불렸던 눈물을, 휴머노이드가.
“축하한다.”
엄버가 희미하게 웃었다. 상처투성이에 먼지까지 뒤집어쓴 상태이나, 게임 보정 덕에 여전히 미모가 빛을 발했다.
은우에겐 별 감흥 없는 일일지언정 시청자들은 열광했다.
“스칼렛은 살아 있다. 물론 강오염까지 당한 그녀가 어떻게 될진 모르겠지만…….”
은우는 몸을 일으켰다. 슬쩍 고개를 돌리면 다리가 잘린 스칼렛이 곤히 잠들어 있음을 볼 수 있다.
해킹을 위해 눕히기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끙끙대며 발버둥을 쳤다. 그런고로 평온한 얼굴의 지금은 분명 잠든 것일 테다. 그녀의 미래가 어찌 되었든.
“다들 인디고B라고 널 부르던데.”
─아냐 켄이야!
─아냐 비수야!
─양심 챙기자 비수들아
─뭐어?! 비수에게 양심이 있다고?!
“인디고B, 네가 해냈다.”
스칼렛을 보던 시선을 엄버가 다시 붙잡았다. 양손이 어느새 그녀에게 잡혀 있다.
“네가, 해냈어.”
─ㅗㅜㅑ;; 포상 미쳤누;;
─당장 이 엔딩 보러 갑니다
─본인 지금 1인칭이다 질문받는다
─토하러 안 갔음??
─전투신 끝나고 동기화했다 질문끝났다
─아ㅋㅋㅋㅋㅋ
“고맙다.”
엄버는 복잡한 얼굴로 감사를 표한 후, 저 먼저 일어섰다.
“일으켜 줄까?”
은우는 고개를 저어 거절했다. 그 스스로 일어날 수 있다.
“거기냐!”
“이봐!”
마침 문이 열리며 지원군이 도착했다. 그들도 필사의 노력을 다한 듯 안색이 엉망이다.
그렇지만 그들 입장이 어쨌건 엄버와 인디고 입장에선 늦어도 너무 늦은 도착이다. 엄버가 팔짱을 끼며 호통을 쳤다.
“늦었다!”
한쪽에 무리 지어 있던 휴머노이드들이 찔끔거렸다. 그쯤 되면 어느새 자신의 시야가 인디고의 시점을 벗어나 삼인칭의 것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장면이 점차 멀어지더니 다른 장면들을 하나하나 비추었다.
〚인간과 안드로이드를 가르는 기준은 뭘까. 우리는 오래전 그 답을 찾았다.〛
게임 시작 장면과 비슷하게, 건조한 여성의 음성이 내레이션을 흘려 넣었다. 처음에는 누구의 것인지 몰랐으나, 이제는 엄버의 것임을 안다.
인간이 우주선을 통해 지구에 시착하는 장면이 지나갔다.
〚그렇다면 인간에서 기계가 된 안드로이드와 처음부터 기계였던 존재를 가르는 기준은 무엇일까. 기계가 감정을 품고 자아를 갖춘다면, 그건 기계의 육신을 가진 인간과 무엇이 다를까?〛
휴머노이드의 대표인 엄버와 인간의 대표가 서로 만났다. 그들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서로를 향해 손을 뻗었고, 악수를 했다.
연구소 공략 당시 함께 싸웠던 인간 부대와 휴머노이드들이 어깨동무를 하며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진리가 허물어지고 생명체의 경계가 무너졌다. 그러니 이제 남은 건 개개인의 잣대다.〛
인간들이 건물을 짓는 걸 휴머노이드가 돕기도 하고, 휴머노이드를 습격하는 기계장치를 인간들이 퇴치해 주기도 했다.
가끔 휴머노이드를 기계장치 취급 하는 인간도 나왔지만, 휴머노이드에게 호의적인 이들이 그들을 막아섰다. 반대도 마찬가지였다.
〚그대들에게 묻겠다.〛
그리고 다시 화면은 엄버에게로 돌아간다. 스칼렛의 병실에 있는 그녀는 깨어나지 않는 스칼렛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무슨 심정인지는 알 겨를이 없다.
〚우리는 인간인가 혹은 기계인가? 그대들은 인간인가, 기계인가?〛
썸네일과 함께 크레딧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일단 이것으로 위얼휴먼 엔딩을 완료했습니다.”
여운을 느낄 시간을 준 후, 은우는 느릿하게 운을 떼었다. 잠깐 느려졌던 채팅 창이 다시 빨라졌다.
“히든 엔딩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이게 처음 보는 엔딩이라서.”
─ㅋㅋㅋㅋ너무 자연스럽게 세계인들 기만하는 것 보소
─다른 엔딩을 처음으로 본 사람들 여기서 기만당함
─아ㅠㅠ 그래도 두 사람 다 살아서 다행이다ㅠㅠ
─스칼렛 그냥 저러고 끝임? 좀 아쉬운데;;
─전작에 비하면 약간??? 아쉽긴 하다
─전작 엔딩 수집이 너무 어렵다고 이번엔 쉽게 개편했다더니 그래서 그런듯
─스칼렛 언니ㅠㅠㅠㅠ
“스킵 버튼은 없고… 시간이 애매한 만큼 위얼휴먼 내 다른 콘텐츠를 즐기는 쪽으로 가겠습니다. 스토리 달리느라 기타 콘텐츠를 거의 하지 않았으니까요.”
─팩트) 평소에도 기타 콘텐츠를 많이 하진 않았다
─ㄴㄴ 켄 많이 함ㅋㅋㅋ
─넘 빨리 깨서 안 한 것처럼 보이는 거임
─아 진짜네ㅋㅋㅋㅋ
─퓨표푯 하면 없어지잖어~
─콘텐츠 파쇄 기계임ㅋㅋㅋ
스킵은 없으나 크레딧 재생 속도를 올리는 버튼이 있었다. 은우는 그것을 통해 2분 만에 크레딧을 해치웠다.
『도전 과제를 달성함! -끝으로 가는 길』
업적과 함께 안내문이 떠올랐다. 해당 게임은 엔딩이 여러 개 존재하며, 각 엔딩마다 다른 이벤트가 존재한다는 설명이다. 이미 알고 있는 바다.
『데이터를 저장하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
은우는 아무 생각 없이 저장 버튼을 눌렀다. 로드 따위는 신경도 안 쓰는지라 그가 지금껏 사용한 세이브 슬롯은 하나뿐이다.
은우는 이번에도 그걸 선택하려다가 퍼뜩 떠오른 의문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이거, 엔딩 이후에 어디서부터 시작합니까?”
─글쎄요?
─전쟁 전으로 로드되여
─전쟁 전으로 로드되지 않을까요?
─일단 타 방송은 그랬음
─설마 처음부터면 레전드
─ㅗㅜㅑ;;;
당연하지만, 대부분 잘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나온 지 3일밖에 안 됐거니와 주말이 오지도 않는 바람에 나온 결과물이다.
그나마 외국 방송을 챙겨 본 일부 시청자들이 조언해 주었다. 전쟁 시점으로 먼저 로드되고, 원하면 더 앞으로 돌아가는 게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그럼 따로 저장하겠습니다.”
처음으로 돌아갈 경우 일이 귀찮아지므로 이번엔 슬롯을 따로 저장했다. 이어서 플레이하겠냐는 출력문이 다시 떠올랐다. 당연히 누를 버튼은 ‘예’다.
떠드는 동안 로딩이 끝났는지 세계가 밝아졌다.
“인디고B 각성. 배양액 제거를 실시합니다.”
게임 시작할 때와 똑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처음으로 돌아간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일단 전쟁 전으로 로드한 게 아니란 건 확실하다.
“사흘 만에 다시 뵙네요, 인디고B.”
그렇다고 처음부터 시작한 것 같지도 않았다. 은우가 기억하는 최초와 들려오는 대사가 달랐다.
“처음이랑도 다른 것 같은데.”
배양액이 빠져나가며 수조가 열렸다. 앞에 서 있던 연구원이 상기된 얼굴로 발을 붙이고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영웅께 찬사를.”
주변에 있던 연구원들이 죄다 성호를 긋고 경례를 했다. 은우를 대하는 게 대사 그대로 영웅을 대하는 태도다.
“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괜찮으십니까?”
“어…….”
대답은 아니었다. NPC가 대답으로 이해한 게 문제일 뿐.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연구원은 빠릿빠릿하게 외쳤다. 어찌나 눈이 반짝거리는지 NPC임에도 순간적으로 압도됐다.
은우는 떨떠름하게 연구원의 안내를 받으며 무장실로 이동했다. 이동하는 동안 연구원이 떠벌떠벌 떠들었다.
“마무리 전쟁에 자원하셨다고 들었어요. 화성에서 쉬실 수도 있으실 텐데 정말 굉장하십니다. 아바타가 사망해도 실제로 사망하는 건 아니라지만, 죽음의 충격이 엄청나다 들었는데……. 인디고B는 모두의 귀감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엔 엔딩 이후 시점인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그런 듯
─?? 로드가 아니라?? 이후 시점??
─헐....
─이거 진엔딩이라서 그런 거 아닐까?
─ㅁㅇㅁㅇ,,,,
─진엔딩이라서 그런 거면 ㄹㅈㄷ;;
사람들이 술렁거리는 동안 무장실에 도착했다. 은우는 게임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옷을 착용하고 무기를 들었다. 3개의 무기만 존재했던 초반과 달리 지금은 그가 구매했던 모든 무기가 마련되어 있다.
잃어버린 줄 알았던 V2053이 인벤토리와 함께 다시 그를 따라왔다.
“아, 인디고B. 하실 일이 없으시다면 광장에 가시는 건 어떨까요? 휴머노이드 리더가 그곳에 있거든요.”
“아직 안 갔네요.”
─연구원 성덕이누ㅋㅋㅋ
─계탓네ㅋㅋㅋ
─얼굴 홍조 보소ㅋㅋㅋㅋ
─킹치만 다른 누구도 아닌 켄인걸!
─ㅋㅋㅋㅋㅋㅋㅋ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연구원은 성호를 긋곤 질리도록 들어 온 그 한 마디를 내뱉었다. 은우의 입술이 재미 삼아 같이 열렸다.
“"미래를 위하여."”
은우와 연구원의 목소리가 겹쳤다. 연구원이 도도도 되돌아갔다. 마지막까지 은우를 보느라 앞을 못 보고 타인과 부닥친 건 여담이었다.
“임무.”
[임무 리스트.]
V2053이 임무 창을 열어 주었다. 다만 그가 예전에 받아 둔 서브 퀘스트 외엔 메인 퀘가 없다. 다르게 말하면 방금 들었던 엄버의 일은 메인 퀘가 아니란 소리다.
미니 맵에도 붉은 점이 표기되지 않을 걸 보면 정말 쫓아야 할 임무가 없는 것 같다.
“메인 미션 내려오는 게 없네요.”
─미래를 위하여 캬 간지난다
─진짜 메인미션 없네
─다 깨서 그런 것 같은데
─엄버에게 가야할 것 같다.
메인 미션이 없다면 뭘 해야 하는 걸까. 은우는 일단 연구원의 충고를 따라 광장 쪽으로 나가 보았다. 거기서 보인 건 자연스레 인간과 섞여 있는 엄버였다.
말을 걸자 바로 반응이 돌아왔다.
“내려온다더니 정말로 왔군.”
‘누나아아’, ‘언니이이’. 시간상으로 헤어진 지 10분도 안 됐건만 비수들이 소리를 질렀다.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상황은 네가 돌아가기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변화의 근원인 선악과의 뱀은 제거됐지만, 알다시피 기계장치는 지구 곳곳에 남아 있지. 공장도 마찬가지고.”
아무래도 설명은 엄버의 몫인 듯하다. 은우는 경청했다.
“전쟁 영웅인 너를 존중해 강제로 임무를 부여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거다. 그렇지만 네가 원한다면 넌 어떤 임무든 참여할 수 있다.”
엄버는 거기까지 말한 후 희미하게 웃었다.
“자유를 즐겨라, 영웅.”
“…대충 스토리가 끝났으니 이제 원하는 대로 돌아다닐 수 있단 이야기인 것 같은데, 맞습니까?”
─ㅇㅇㅇ
─와 대박
─스토리 이후도 지원해주다니 갓겜;;
─미쳤다 완전 좋다
이러면 증명의 탑 가기가 훨씬 편해진다. 은우는 뒷덜미를 쓸며 입을 열었다.
“그럼 증명의 탑부터 갑시다.”
스토리 깨면서 위치를 알아 둔 게 다행이다.
* * *
<아 솔직히 저거 어케 아냐고>
1회차에 히든엔딩을 찾는 스트리머가 있다?
솔직히 주작 아니고서야 말이 됨?
흘려 지나가듯 말한 걸 기억하고 키워드로 삼는다고?
미리 들은 거겠지
─네 다음 능지 처참
─수상하긴 하지,,,,대상 수상
└깔...깔....깔.....배꼽잡고 웃었읍니다....그 대가로 신고드립니다
─켄이 1회차에 히든엔딩 찾는 게 한두 번도 아니고ㅋ
└지금까지 두 번인데?
└ㅇㄴ 그러네ㅋㅋㅋㅋㅋ
<내가보기엔>
주작 같진 않진 않던데
걍 적당히 질러봤는데 잘 된 거 아님?
─켄 컴퓨터 접속했냐?
─어휴ㅋㅋ그래, 반응 넘 쎄헤서 켄들짝 했니?
─ㅇㅈㅇㅈ 솔직히 스크립트 핥아먹을 진성충놈들이면 밝혀낼 엔딩 같은데 켄이 일찍 발견했을 뿐인 느낌
└켄하다 추야
<사이트 상태 왜 이러냐>
난 걍 오올ㅋ 하고 있는데 다들 왜이리 날뛰냐
[선악과의 뱀(스칼렛) 때리는 켄 사진]
조심해 응징 각 대기 중일지도 모른다
─아앗, 제가 의심하다니 믿음이 짧았습니다
└호다닥 정신 차리누ㅋㅋㅋ
─아 근데 다박은 진짜 각 재고 있을 수 있음ㅇㅇ... 거기 고소는 자주 안하는데 피뎊은 미리 다 따두잖아
└ㄹㅇ?
└평소엔 소속 인플루언서 이미지 생각해서 넘어가는데 거기 한 번 칼 뽑으면 장난 아님;;
<빡대가리들아 생각 좀 하고 살아라>
제작사가 미쳤다고 스트리머 한 명한테 히든엔딩을 쥐어주냐? 그것도 출시 삼일 만에? 득보다 실이 더 크구만
─켄이 팔아준 게 얼만데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음?
└머가리에 똥만 찼나 그래서 3시간 땡쳤잔아
─ㄹㅇ 저 엔딩 떡밥 흘리는 것만으로 인기 더 끌 수 있는데 왜 벌써 풀겠냐
└ㅇㄱㄹㅇㅍㅌㅂㅂㅂㄱ
└미공개 히든엔딩이면 몇년은 우려먹지
<위얼휴먼 제작사 공식 발언뜸>
전작의 하드한 난이도를 인정, 이번엔 스크립트 하나하나 뜯어볼 정도로 게임을 사랑해줄 게이머를 위해 준비한 히든엔딩인데 설마 이렇게 빨리 밝혀질 줄 몰랐다 라고 함
아래 링크▽
(https://www.gogole.co.kr.......)
─ㅁㅇㅁㅇ 결국 우연 맞네
─아모른직다
─제작사도 존나 어이없겠다ㅋㅋㅋㅋ이렇게 빨리 알려질 줄은 예상 못했을 텐데ㅋㅋㅋ
└안그래도 코리안 게이머 좀 미친 것 같다고 제작사 파랑새에 올라옴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 필요 없고>
다박이 손절 안 쳤음 ㅅㄱ
─다박이 손절 안 친 게 왜?
└거기 사장이 문제 있는 놈 잘 안 데려감 다박 인증마크는 유명하잔어~
─뭐?? 대기업을 믿는 호구가 있다고??
─근데 이번 사건은 소속사에서 먼저 할 수 있는 일 아니냐?
└미쳤냐ㅋㅋㅋ논란 될 게 뻔히 보이는데 하게ㅋㅋㅋ
─다박 사장 없지 않냐
└ㄴㄴ거기도 켄처럼 신비주의라서 글치 있긴 있음
└소문으론 일반사원인 척 일하고 있다던데
└ㅉㅉ소설도 요즘은 글케 전개 안한다
박기철은 어찌어찌 잘 유도되고 있는 여론을 보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차라리 은우가 3시간 특전을 받지 않았다면 이렇게 문제가 되진 않을 것을, 받은 게 있다 보니 문제가 이렇게 불거졌다.
그렇다고 스트리머 잘못이냐면 그건 더더욱 아니지만.
“너무 잘하는 것도 문제야.”
“뭐가요?”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하던 거 마저 해요.”
약혼자의 물음에 그는 헤벌쭉 웃어 보이곤 뺨을 짝짝 쳤다.
그래도 가장 큰 사이트의 여론을 원하는 방향으로 모는 데 성공했다. 이거면 의심거리로 남을지언정 스트리머 자격에 대한 인민재판까진 이어지지 않을 것이다.
물론 누군가는 이걸 여론 조작 내지는 여론 몰이라 말할 것이다. 그러나 애당초 그가 한 건 루머 조장이나 사실 왜곡이 아닌 팩트 언급밖에 없었다.
단지 스트리머에게 불리한 글이 대세가 되기 전, 먼저 사람들의 눈과 귀를 진실 쪽으로 돌리기 위해 움직였을 뿐.
그렇다고 그들이 법에 저촉되는 선에서 움직였냐? 그건 또 아니다. 결국 설득된 건 사람들의 몫이다.
박기철은 당당했다. 적어도 그의 돈과 권력이 그를 당당하게 만들어 줬다.
“흠집이 결국 나 버린 건 어쩔 수 없나.”
박기철은 혀를 찼다. 이쪽 시장이 워낙 제멋대로다 보니 언젠가 이런 순간이 올 거라곤 생각했지만, 설마 이번에 당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아무렴 회사 입장에서 이런 일로 떨어트리긴 아까울 만큼 켄의 상품가치가 높은 편이었다. 사고 칠 성정이 아니다 보니 오래 가기 좋고, 나이도 나이라 활동 기간도 길 게 뻔해서다.
스트리머 개인 취향으로 인해 합방, 야방에는 써먹기 어렵지만, 어차피 그의 특별함은 언제까지나 그 압도적인 실력에서 온다. 대체할 수 없는, 압도적인, 이해 불가의 무력에서.
그뿐인가? 캐릭터 자체도 나름 매력 있었다. 2m에 가까운 거구, 기계음이 아닌데 매력적인 목소리, 헬멧.
특히 헬멧만 쓰면 쉽게 코스프레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켄을 따라 하는 게이머가 많다. 덕분에 이름 알리기가 쉬웠다고 할까. 켄을 노리고 헬멧을 의상에 추가하거나 장비 목록에 넣는 게임이 생겼을 정도면 말 다한 거다.
거기에 만에 하나 켄이 헬멧을 벗어도 상품성은 여전하다. 체구랑 분위기 때문에 깡패처럼 보이는 거지 객관적으로 훤칠한 얼굴이니까.
“역시 아쉬워…….”
이런 맥락에서 박기철은 공적으로도, 사적으로도 최대한 흠집이 나지 않는 걸 바랐다. 공적으론 그가 벌어다 준 돈 때문에, 사적으론 그가 은우를 영입한 것으로 결국 얻어 낸 것이 있어서다. 취향에 맞는 스트리머이기도 하고.
그렇지만 이 바닥이란 게 원래 그렇듯이, 이런 건 언감생심인 모양이다. 이것을 교훈 삼아 앞으로 전해질 모든 특전을 거부하는 쪽으로 은우를 설득할 필요는 있겠지만.
“근데 마지막은 대체 어떻게 알고 말한 거야?”
사람들 정보력은 가끔가다 알 수가 없다. 박기철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마지막으로 사이트들을 점검했다.
『<속보> 게임 제작사의 특혜 의혹……. 코니, “그것은 분명 진실일 것.”』
“어떤 새끼가!”
막 안도하려던 차에 단 하나의 기사가 그의 뒤통수를 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