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자도 방송할 수 있습니다-95화 (95/233)

95화

스스로를 휴머노이드라 칭한 그들은 저번에 도와준 대가라며 셋의 행방을 알려 주었다. 물론 그들의 호의는 딱 거기까지였다. 그들은 추적에 도움을 주지 않았다.

그렇지만 주변에 널려 있는 바이크 중 하나를 집어 가는 것은 눈감아 주었다. 인간에게 흥미를 가진 휴머노이드가 자발적으로 나서서 고쳐 주는 것도 막지 않았다.

인디고에겐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했다.

─캬, 중간에 공백이 있었는데도 1위인 거 실화냐

─큰그림 오졌다

─스트리머들 헐레벌떡 따라오고 있지만 안되쥬? 못 따라잡쥬?

─근데 켄 님 슬슬 힘드실 것 같은데...

─벌써 7시간째네;;

방송 시간에 대해선 채팅 창의 말이 아니더라도 고민하고 있던 참이다.

은우는 셋을 추적하며 잠시 생각해 보았다. 오늘 엔딩까지 보는 게 맞을까, 아니면 적당히 끌까. 현실 시간으로 벌써 7시를 넘겼다. 셋까지 잡는다면 최소 8시는 될 거다. 흘러가는 방향에 따라 그 전이 되거나 그 후가 될 수 있고.

결정을 해야 한다면 지금밖에 없다.

“오늘은 셋까지만 잡고 종료하겠습니다.”

여기까지만 하자. 은우는 잠깐의 판단을 내렸다.

다른 사람들이 다 폭파 엔딩을 보는 동안 그는 진엔딩으로 가는 (듯한) 루트를 찾은 시점에서 이미 원하고자 하는 바는 다 얻었다. 굳이 오늘 안에 엔딩을 보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무엇보다 내일 낮에 형이 오기로 했다. 밤을 샌다 해서 다음 날 하루가 망가질 체력은 아니지만, 가능하면 밤샘은 지양하고 싶었다.

─아ㅠㅠ역시

─?? 아니 왜ㅜㅠㅠ?

─켠왕해주신담서요

─주말이잔아ㅠㅠ늦게까지 하자ㅠ

─아 형 켠왕가자아

─결말 별로 안 남았을 것 같은데

“전 일찍 켠다고 했지 켠왕 한다곤 안 했습니다만.”

그는 목덜미를 쓸며 너스레를 떨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시청자들은 매달릴지언정 부정하진 못했다.

“셋만 잡고 그만하죠. 아, 저기 셋이 있네요.”

─빨리 도망가!

─부활주문 외워!

─ㅎㅊㅇㄴ?!

─어서 도망가라~~!

─절벽으로 뛰어내려 셋!

─둘!

─하나!

─(첨벙)

이야기를 나누다가 샛길로 빠지는 건 시청자들의 특징인가? 은우는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 시청자들의 만담을 보며 창을 집었다. 아마 정확히 분류한다면 창보단 깃대에 더 가까울 것이다.

인류 마크가 박혀 있는 낡은 깃이 봉에 묶인 채로 팔랑팔랑 흔들렸다.

“너, 인간!”

지원을 부르기엔 시간이 없다. 그런 생각인지 컷신도 없이 곧장 전투가 시작되었다. 보고는 V2053이 대신해 주었다.

“나를 막고자 하는가? 인간, 너는 불가능하다!”

부상을 입어서인지 셋의 패턴이 달라졌다. 수십 인 레이드─비록 동료가 NPC였지만─에서 1인 레이드로 바뀐 만큼, 제작사에서도 적당히 밸런스를 맞춘 것일 테다. 부상이란 이유를 방패 삼아서.

“내 어깨엔 수천, 수만, 수억의 동지가 얹어져 있으니! 겨우 네놈 한 명에게 지진 않는다!”

셋은 그리 말하며 발을 굴렀다. 촉수가 전방에서 쫙 뻗어져 왔지만 수가 적어서 피하긴 쉽다.

─인간이 미안해...

─왜 켄이 보스같냐ㅋㅋ

─왜냐면 보스가 켄전을 치뤄야하기 때문이지

─인류가 갑자기 악당됐누;;

─셋 좀 짠해진다...

인간이 악당이라. 은우는 촉수를 피해 내달리며 깃대를 단단히 붙잡았다. 휘둘러진 깃이 펄럭거리며 날아오던 고철 덩어리를 쳐 냈다. 채찍처럼 강인한 힘이 담긴 것은 아니나, 깃은 그 커다란 면적과 휘감는 듯한 유연함으로 돌을 미끄러트렸다.

연이어 깃대를 땅에 박고 장대높이뛰기를 하듯 뛰어올랐다. 공중에서 회전하던 찰나에 입을 연 것은 변덕보단 호기심 때문이었다.

“왜 인류가 악당입니까?”

아마 농담이 태반일 테지만, 그는 그 농담조차 이해가 잘 안 갔다.

그도 그럴 게, 기계장치의 반역 자체야 인간이 주는 부당함에서 저항하고자 벌어진 게 맞다. 그렇지만 화합도 타협도 벌어지지 않고 기백 년간 이어져 온 전쟁은 그 최초의 의미를 잃은 상태가 아닌가?

수백 년 전의 인류가 기계장치를 부렸단 현실이 사라지지 않지만, 수백 년 동안 기계장치가 인간을 죽여 온 사실도 변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제 와서 인류가 악당이고 기계장치가 선이라는 둥의 말은 어울리지 않았다. 농담으로라도.

─박대한 후 죽이려는 인성

─지인짜 나빴다아....

─구도가 걍 악당임ㅋㅋ

─생각해보니 그렇네, 인간이 학대해서 반역했는데;;

─셋, 어서 도망가!

글쎄. 과연 그럴까? 과거엔 확실히 인간이 악이었겠지만, 수백 년이 지난 지금 인간은 멸종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싸워야 하는 상황이다. 두 집단의 가치관 싸움이 생존 싸움이 되었단 거다.

그리고 은우가 봤을 때, 생존을 두고 싸우는 것엔 어떠한 악도, 어떠한 악도 없었다. 수단에 악과 선이 따를 뿐, 그 싸움 자체엔 생존이란 의미 외에 다른 것이 부여될 수 없다.

“여러분들은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

함에도 은우는 남의 의견을 받기만 할 뿐, 함부로 그의 의견을 드러내지 않았다. 박 팀장에게 당부받은 것도 있거니와, 그의 사견을 표했다가 채팅 창에서 싸움 난 적도 있어서 어쩔 수 없었다.

주목받는 자들은 설사 틀린 말이 아닌 것조차 조심해서 발언해야 했다. 가치관 싸움만큼 피곤하고 또 끝나지 않는 건 없다.

“근데 인디고B가 지면 인류가 멸종할 가능성이 높아질 텐데요.”

다만 그래, 설정을 지적해 주는 건 아무런 문제 없다. 은우의 손에 들린 깃대에는 인류의 마크가 선명하다.

─앗 그러네;;

─그럼 죽어야지

─태도 돌변하는 것 보소ㅋㅋ

─비수란 건 원래 그런거라구

─킹직히 상대가 켄이잖아?

─살아갈 가망 제-로

은우는 셋에게 접근하는 데 성공했다. 셋이 철의 촉수를 은우가 밟은 자리마다 소환해 냈지만, 은우는 역으로 타이밍 맞춰 촉수를 피한 뒤 그 촉수에 깃을 휘감고 뱅글 돌았다.

그 촉수 주변으로 새로운 촉수가 우다가 솟아올랐지만, 그 한 바퀴면 이 패턴을 전부 넘길 수 있다.

은우는 바닥에 착지하자마자 깃대를 고쳐 쥐며 셋에게 덤벼들었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셋이 발을 다리를 들어 올렸다.

깃대가 셋의 발과 맞부딪쳤다. 깃대가 기울어짐에 따라 아래로 셋의 다리가 흘러내리고, 은우는 대지와 수직이 된 깃대를 창처럼 휘둘렀다. 셋의 목에 실금이 그어졌다.

그는 거기서 기를 손에 둘러 잡고 대를 쭉 잡아당겼다. 셋의 목을 그으며 옆으로 기울었던 깃대가 바로 당겨지며 연격을 넣었다. 역시나 목이다.

“인간은 죽어야 한다!”

만약 셋이 그 시대에, 그러니까 기계장치가 인간의 탄압을 받던 시대의 존재였다면 저 말은 타당하다. 인간이 기계장치와 싸우는 이유가 그들을 다시 노예로 부리기 위함이라면 그의 언사는 이해받을 수 있다.

그때부터 줄곧 자아를 유지해 왔다면, 그래서 오래도록 원한을 이어받아 왔다면 납득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원한을 말하는 게 너무 늦은 것 같은데.”

그렇지만 수백 년이 지나 이제 와서 원한을 논한들 와닿는 게 없을 거다. 적어도 은우에겐 와닿는 게 없었다.

─그건 글치

─수백 년간 싸워왔음 인간들도 미안함보단 분노가 더 앞설듯

─이지를 잃고 살육병기가 된 시점에서 기계장치들이 대의를 잃긴 했지

─머임 너희 비수 아니지

─비수가 저런 고급 단어를 쓸 리 없어

일부 냉정한 시청자들도 그 점을 상기했다. 정말 일부만.

“인간은, 다시, 우리를!”

셋이 뭐라 소리를 지르려 했다. 은우는 깃대를 창처럼 쥐고 던짐으로써 그 입을 막았다. 깃이 펄럭거리고 은우의 손에 잡혔다.

그는 깃을 잡아당겨 깃대를 회수한 후 다시 정수로 잡았다. 정수로 휘두르는 과정에서 가볍게 휘둘러진 깃대는 새의 날개처럼 기를 화려하게 펼쳤다. 얇은 재질의 비단은 동살을 그대로 머금어, 마치 빛의 물결을 보는 것 같다.

그리고 셋이 고철 덩어리들을 날렸다. 방어 효과도 붙지 않았는데 의외로 깃이 방어에 좋았던지라, 은우는 깃발부터 흔들고 보았다.

비단 위를 고철들이 미끄러지는 동안 그는 앞으로 튀어 나갔다. 그의 궤적을 따라 길고 긴 천이 뒤따랐다.

퍼억!

기어코 깃대가 셋을 두들겨 팼다. 패턴 몇 개를 뛰어넘고서야 간신히 좁힌 거리였다.

어렵진 않으나 귀찮긴 했으므로, 은우는 그 거리를 절대 풀어 주지 않았다.

기계장치의 대리인을 구타하는 인류의 깃발은 절대 찢어지지도, 해어지지도 않는다. 하다못해 그슬리거나 구멍 나는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그건 분명 게임상의 어쩔 수 없는 점이었으나, 사람들은 그 모습에서 묘한 감상을 받았다.

─저런 거 보면 뭔가 가슴이 뭉클함

─ㅈㄴ 뭔가 뭉클해짐....

─방금 전까지 인간이 미안해 하던 놈들 어디갔냐

─미국감 ㅅㄱ

─아 근데 멋있긴 멋있자너

─외국겜에서 국뽕찬다

─넌 이제 찼냐? 난 아까부터 주막 와있음

─군대에서 기수가 왜있는지 알겠다

─진짜 가슴이 두근거림;;

시청자들이 두런두런 떠드는 동안 은우는 깃대로 셋의 움직임을 봉한 후, 깃발로 그 목을 휘감아 조였다. 호흡하는 생물이 아닌지라 좋은 효과는 받지 못했다.

다만 일시적으로 방해하는 데 그치는 깃대와 다르게, 목을 죈 깃발은 지속적으로 움직임을 제한할 수 있었다.

은우의 다리가 쫙 찢어지며 발차기를 시도했다. 오른발을 드는 걸 보고 셋은 반사적으로 머리의 오른쪽 측면을 방어했다.

그러나 셋의 예상을 깨고, 은우의 오른발은 왼쪽에서 짓쳐 들었다. 태권도로 따지면 비틀어 차기, 택견으로 치면 곁 차기에 가까운 기술이었다.

셋의 고개가 꺾이고, 은우는 깃대를 쥔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깃에 묶인 목에서 우드득 소리가 났다.

“나는……!”

“슬슬 죽일 수 있겠네요.”

은우는 깃대를 요령 있게 휘둘러 깃을 풀었다. 셋이 반동으로 뒷걸음질 쳤을 때엔 그 손이 깃대를 곧게 쥐고 있는 채다.

“지지 않아!”

상황이 안 좋다는 걸 직감한 셋이 고철들을 띄웠다. 마지막 발버둥이었다.

“맞고 때리겠습니다.”

하지만 은우는 풀피였다. 체력 바는 없으나 약점만 맞지 않는다면 절대 죽지 않는단 건 명확하다.

은우의 어깨에 고철 덩어리가 박힘과 동시에 깃대가 쏘아졌다.

콰직!

겉에 파손이 좀 있던 셋의 목 정중앙에 깃대가 박혔다.

이걸론 안 돼. 은우는 본능적으로 깃을 양손으로 잡고 옆으로 휘둘렀다. 기어코 깃대가 쇠로 이뤄진 살점들을 부수고 나왔다.

셋의 몸이 옆으로 기우뚱 넘어졌다. 고전 문학 속 목이 달랑달랑한 닉 경처럼 그의 머리는 목에 간신히 붙어 있었다.

은우는 그것을 보며 한 손으로 깃대를 바닥에 박았다. 그의 다른 손은 어깨에 박힌 세모꼴의 철 덩어리를 빼내는 중이다.

우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점액질이 묻은 철이 빠졌다.

“피 대신 이상한 액체가 흐르네요.”

─아니 왜 맞아ㅋㅋㅋㅋ

─이분,,,,살 아래 뭐가 있는지 궁금하시다더니 정말로,,,,

─귀찮아서 맞는 클라스ㄷㄷㄷ

─이 와중에 약점은 피했어ㅋㅋㅋㅋ

그는 철 덩어리를 내던졌다. 바람이 불며 깃대의 깃을 휘날렸다. 예상했으나 예기치 못한 타이밍에 컷신이 시작됐다.

은우가 생각하기엔 간당간당하던 셋의 눈빛이 완전히 꺼진 시점인 것 같았다.

“인디고B. 셋 제거 완료─”

[미확인 중형 기계장치의 접근을 확인. 신속한 회피를 권장.]

보고하다 말고 V2053이 경고했다. 물론 그 경고가 있기도 전에 인디고B는 자리를 피했다. 돌가루가 허공으로 비산했다.

콘크리트 바닥을 부수고 튀어나온 것은 철로 이뤄진 상어이니. 처음 보는 디자인이나 호의적이지 않으리란 점은 명확했다. 인디고B는 바로 깃대를 집어 들었다.

“무슨!”

상어는 셋의 시신을 먹어 치운 후, 대지로 다시 파고들려 했다. 인디고B는 그것을 다급히 막으려 들었다. 아직 셋이 빼돌린 데이터를 제거했노라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시도는 불발이 되었다. 상어의 등에서 누군가 뛰어내리며 그를 공격한 탓이다. 미처 보지 못했던 까닭에 대처가 늦어졌다.

몸에 커다란 상처가 난 상태에서 인디고는 어떻게든 눈을 뜨려 했다. 상어 등에서 내렸던 기계장치는 인디고B를 죽이기 위해 무기를 든 상태다.

퍼엉!

그리고 무기가 내려찍히려는 그 순간, 멀리서 날아온 탄환이 기계장치의 팔을 날려 버렸다. 설마 죽나? 정말 죽나? 조마조마해 하던 시청자들이 불안감을 내던지며 바로 떠들어댔다.

─원군 왔다~~!

─5252 믿었다구

─믿었다고 형씨!~!!

「‘팩트전달’ 님이 ‘1,000원’ 투척!

애초에 컷신 아니었다면 켄이 잡았다」

─컷신 트롤행222

[구, 해.]

[상처 심각해.]

[어서 데려가자.]

무언가가 인디고B 주변으로 달려왔다. 그들은 자신들을 휴머노이드라 칭했던 그 무리였다.

“어, 째서…….”

돕지 않는다고 했으면서 왜 그를 구해 주는 걸까. 인디고는 헐떡거리며 중얼거렸다. 기계장치에 더 가까운 얼굴의 휴머노이드가 고개를 불쑥 내밀었다.

[선택하기 위해서.]

“선택……?”

약소한 의문이 들었으나, 그의 몸은 한계였다. 휴머노이드가 그를 들어올림과 동시에 인디고B의 시선이 감겼다.

하단에 자동 저장 마크가 뱅글뱅글 돌았다.

3초 후 다시 눈이 뜨였을 땐 낡았지만 퍽 병원과 비슷한 공간이었다. 흰색의 격자무늬 천장은 세월이 지나 그 백색이 벗겨지고 빛바랜 상태다.

“여러분.”

컷신이 아니었으므로 은우는 침대에 가만히 누운 채로 입을 떼었다. 거기서 시청자들은 불현듯 그들의 처지를 깨달았다.

─야 빨리 부활해!

─해치웠나?

─ㅎㅊㅇㄴ?!

─셋 아직 안 죽었음 아무튼 안 죽었음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아아아아ㅏㄴㄴ대

─아직 안 죽었다구요ㅠㅠ

─상어가 먹어서 부활했음

─안봤지만 부활했음

“죽었잖습니까.”

어림도 없다. 은우는 바로 시스템 창을 켜서 게임 세이브 및 종료를 눌렀다. 어찌나 가차 없는지, 한 시청자가 장문의 후원을 보내는 사이 세계가 무너졌다.

─장문충 쳐내!

─천원으로 우리 모두의 시간을 빼앗은 당신....가성비충 인정합니다

─그러니까 게임 더해주세요

─뭐예요, 더해줘요

─들어오자마자 겜종료됐는데 누구 설명해주실 분

─당신은 이미 늦었습니다....

─뭐, 뭐라고...?!

─(솜사탕 씻은 라쿤맨 짤)

대기실로 돌아오는 과정은 언제나 미묘하다. 은우는 세계가 부서졌다가 다시 퍼즐 맞춰지듯 생겨나는 것을 구경하며 콘크리트 기둥에 몸을 기댔다.

게임 속 광경과 퍽 비슷한지라 잠시 딴짓한 사람들은 무슨 상황이냐며 묻기도 했다.

“충분히 오래 했습니다.”

─ㅠㅠㅠㅠ

─확실히 8시간 빡시게 하셨다...

─저녁 먹고 또 와주세요ㅠㅠ

─히이잉

“슬슬 저녁 드셔야죠.”

아쉬움이 남는 만큼 잡는 이들도 많지만, 대기실로 돌아온 시점에서 포기한 자들이 더 많다.

“내일 뵙겠습니다.”

─켄바ㅠ

─구바

─내일 뵈요!

─켄바

방송이 종료되었다.

▣ 095. 스토커가 있어요!

<우산의 진짜 사용법>

요즘 누가 비올때 우산 쓰냐~

[우산으로 광선막는 사진]

우산은 광선 막을 때나 쓰는 거지

ㅇㅈ?

─아ㅋㅋㅋㅋㅋㅋ

─진짜 이거 레전드ㅋㅋㅋㅋㅋㅋ

─돌은 거 아니냐고ㅋㅋㅋ

커뮤니티는 언제나처럼 저들끼리 가볍게 떠드는 중이었다.

<안녕의 진짜정의>

[클립영상]

저승인사임

<8인 웨이브 솔로로 따는 법>

켄으로 다시 태어나면 됩니다

<1인 디펜스 진짜 미쳤냐고>

[클립영상]

내 통장에 도둑 들었냐? 정신차리니까 텅 비었음;;

그들은 새삼스레 켄의 무력에, 혹은 진행에 감탄하거나 경악하며 글을 작성했다. 그 가벼움만큼이나 글은 짧고 댓글도 농담 따먹기로 가득했다.

<켄 특전 받은 거 아님?>

솔직히 어케 1회차에서 바로 다른 엔딩루트를 감

이건 말이 안 되지;;

게임사에서 3시간 일찍 풀어준 것도 그렇고 걍 밀어주기 아님?

<3시간 일찍한 주제에 뭔 최초클>

나라도 3시간 일찍 주면 최초클 그냥 따먹겠다

그렇지만 박 팀장이 예상했고 일부 시청자가 걱정했듯, 논란거리를 들고 오는 자들도 있었다.

<3시간가지고 ㅈㄹ하는 새끼들>

전작 히든루트 개척해서 발매율 저조해졌던 겜 인기 다시 끌어올린 거 누구?

최초클 달성할 수 있는데도 미련없이 포기하고 쉬고 온 사람 누구?

3시간 일찍한 거야 제작사에서 허락해줬으니까 스트리머로서 당연히 받을 수 있는 점 아님?

글고 12시간 쉬고 온 다음 새루트 발견한 건데, 이게 왜 문제임?

그 12시간동안 못 찾은 다른 스트리머들이 딸리는 거 아니고?

ㅉㅉ실력도 안 되는 새끼들이 언플 ㅈㄴ하고 있네

어휴 루저놈들 키보드에서 손이나 떼라

─캬, 깔끔한 정리에 부랄치고 갑니다

─쓰앵님 덕에 한달 묵은 변이 내려갔읍니다,,,

─이게 ㄹㅇㅍㅌ지ㅋㅋㅋ

─사이다 원샷한 상쾌함 ㅆㅇㅈ

<새로운 루트 관련>

계속 특전 얘기 씨부리는 거 짱나서 가져왔다

실력이 되면 1회차에서도 갈 수 있지만

만들어지기론 2회차 요소라고 제작사에서 공식 발표했다

이제 싸물고 구울왕에게 세금 납부해라

─막줄만 보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2회차 요소 맞았누;;

└사실 2회차까지 가기 애매한 난이도긴 한데 실력 좋은 사람은 1트에 시간 좀 걸려서 잡으니까.... 2트해서 짧은 시간내 잡으면 1회차에서도 쌉가능

└아ㅋㅋㅋㅋ실력 좋은게 오히려 독이 됐누ㅋㅋ

─결국 1트 5분삭 할만큼 실력이 존나존나 좋거나 2,3트 5분삭 할만큼 적당히 좋거나 하란 거잖아ㅋㅋㅋ

└1트 15분삭은 저리가라 이거야~

그렇지만 그런 이들 이상으로 은우를 옹호하고 지지하는 자들이 더 많았다. 거기에 은우의 팬덤인 구울단까지 가세하자 승기는 한쪽으로 기울었다.

애당초 박 팀장이 의도한 대로 은우가 흠집 낼 거리를 내주지 않은 것이 한몫했다. 증거가 없는 비방은 메아리치지 못했다.

독한 악질들이 없는 흠집마저 만들며 덤볐다 해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소수였고, 다이아박스에는 그것마저 대비하고 있었다.

커뮤니티가 점차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구울들아>

켄 얼굴책 만들었던데? 웬일임?

─??? ㄹㅇ?

└ㄹㅇ

─주소 내놔

└니가 검색해

─드디어 켄의 일상을 볼 수 있겠네.....

└여기 스토커가 있어요!

그 와중에 다시 돌을 던진 건 아이러니하게도 은우 자신이었지만 말이다.

* * *

박 팀장이 문자에서 워낙 세세히 알려 준 덕에 은우는 주의 사항을 전부 챙겨 가며 계정을 생성했다. 박 팀장이 이런저런 장단점을 알려 준 덕에 만들기로 각오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별개로 게시 글은 아직 올리지 않았다.

알림을 끄고 프로필 편집을 하고 이것저것 설정을 하니 십 분이 넘게 흘러 있었다. 이 와중에 벌써 친구요청이 들어와 있다. 정말 이것저것 뜨는 것도 많았다.

은우는 인싸들의 앱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희수나 형, 박 팀장, 레드바처럼 아는 이들이 뜨는가 하면, 전혀 모르는 이들도 뜬다. 그리고 하나같이 친구 추가 하라는 버튼이 뜬다.

아싸 중의 아싸, 서은우는 그 시점에서 한 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만들지 말걸.

『레드바 님> 형님, 형님. 얼굴 책에 계정만드셨담서요??? 저 친구 추가 해 주심 안 돼요???』

이 와중에 소식도 빠른 빨간애벌레는 친구 신청을 받아 달라며 찡찡거렸다. 거절할 이유는 없었기에 은우는 느릿한 움직임으로 친구 추가 버튼을 눌렀다. 맞팔로우가 됐다는 알림이 뾰롱 떠올랐다.

동시에 레드바가 올린 게시 글이 그의 타임 라인에도 보였다. 사흘 전 올라온 게시물에는 레드바를 비롯한 타 스트리머의 단체 샷이 올라와 있다.

사진과 같이 있는 글은 레드바 특유의 깨방정이 뿌려져 있다.

은우는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다 일단 그가 아는 이들부터 찬찬히 추가했다. 타임 라인이 금방 가득 찼다. 전부 타인의 일상이다.

전부 인기 많은 스트리머이다 보니 웬만한 게시 글에는 다 엄지 척 마크가 붙어 있다. 거기에 댓글을 다는 사람도 많았다.

그것을 보다 보면 약간의 의문이 들었다.

모르는 사람들이 그의 일상에 열광한다 해서 무엇이 좋을까? 그렇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방송이란 행위 자체도 우스운 게 되지 않나?

그는 묘한 심정으로 일상을 뽐내는 타인을 관찰했다.

당연하게도 생활의 은밀한 부분까지 공개하는 자들은 없었다. 단지 오늘은 무엇을 먹었다는 것, 어딜 갔다는 것 같이 사소하다면 사소하고 중요하다면 중요한 정보들을 톡톡 올릴 뿐이었다.

사람들은 그것만으로도 좋아했다.

은우는 그에 대해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헛웃음을 터트렸다.

이제 와서 고민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다. 이미 그는 그 자신을 팔아 인기를 얻고, 그 인기로 돈을 받는 사람이었으므로.

곧 그의 첫 게시 글이 올라갔다.

남의 게시물을 참고해 적은 ‘잘 부탁한다’는 말과 책상 위 헬멧 사진이었다.

참고로 헬멧 위에 혹시라도 제 얼굴이 비칠까, 다른 헬멧을 쓰고 사진을 찍었다. 그 철저함에 사람들은 다시 한번 ‘헬멧이 본체설’을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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