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화
─안돼!!
─보스 다잡아줬는데 왜 사수를 못하니!
─스칼렛 다치면 당장 제작사 쳐들어간다
─절.대.살.려.줘.
스칼렛을 좋아하는 시청자들이 오열하고, 은우는 침착하게 다음 미션을 확인했다. R들을 구조할 인력들을 파견할 것이니 생각 있는 자들은 자원하란 미션이었다.
물론 주인공이 인디고B인 이상 그는 반드시 참여하게 되리라.
“바로 갈까요.”
은우는 망설이지 않고 미니 맵에 표시된 붉은 점을 따라갔다. 가 보면 격납고에 자원한 이들과 그들을 이끌 Y가 있다.
“이 출전은 위험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기계장치는 처음부터 공장에 남겨질 R들을 노렸으니, 아마 우리가 구하러 갈 것도 예측하고 있겠죠.”
사령관 역할의 Y는 차분히 사태를 설명했다. 한시가 급하다 해도 상황은 명확히 해 두는 게 생존 확률을 높인다는 걸 잘 아는 것 같았다.
─근데 꼭 구해야하나?
─어차피 링크 풀면 되지 않음?
─아바타 제작 재화만 버리면 되는 거 아니냐
─재화가 얼마나 중요한데
시청자들 일부가 의문을 표했다. 그 궁금증은 다행스럽게도 Y가 풀어 주었다. 제작사에서도 플레이어가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는 걸 고려해 둔 모양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들을 구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전달된 연락에서… 링크 해제 불가 및 해킹 조짐이 보인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장내의 사람들이 깜짝 놀라 저마다의 경악을 토해 내는 사이, Y는 차분히 설명했다.
“이건 열두 명의 동포를 잃는 수준의 일이 아닙니다. 만약 그들이 해킹당한다면 화성까지 바이러스가 침투할 수도 있습니다. 기체 자체를 분석당해 특수 기계장치가 더욱 증가할 가능성 또한 높습니다. 마지막으로… 오염당한 동지들은 우리의 적이 되겠죠.”
참고로 본부가 아닌 타지에서의 링크 해제는 자폭과 동일하다. 기계장치에게 그들의 기술력을 넘기지 않기 위한 발악이었다. 자칫했다 링크 기술을 분석당하면 인류는 엄청난 손해를 보았기에 어쩔 수 없는 대처였다.
“갑작스레 기계장치의 지능이 높아진 것은 아직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이며, 승리를 위해서는 우리의 동지들을 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장 높은 지위의 Y가 성호를 그었다.
“미래를 위하여.”
잇따라 모든 사람들이 성호를 그으며 외쳤다.
“미래를 위하여!”
▣ 092. 스포한 놈들 대가리 박아
그들은 고가의 비행 기체에 탑승해 이동했다. 목적지는 마지막으로 R이 다량 감지됐다는 위치였다.
“또 슈팅 게임 나올 것 같은데.”
─슈하(슈팅게임 하이라는 뜻^^7)
─-슈-
─잊을만 하면 장르전환ㅋㅋ
─슈팅게임 가즈아~
“나왔네요.”
그건 예감이라고 말할 것도 없었다. 어김없이 적들이 나타나 그들을 방해한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있다면, 그래. 게임 초반과 전혀 다르게 전개되었다는 점이다. 아군 기체가 파괴되지 않고 적들을 요격하며 잘 저항한 것이다.
물론 가장 많이 파괴한 자는 은우였다.
[기계장치 무리 발견!]
어쨌거나 그런 과정을 거친 끝에 그들은 다시 공장 지대로 돌입했다. 공장의 기계장치들은 처음 잠입했을 때보다 훨씬 늘어난 상태다. 당시 수월했던 침입은 결국 함정이었단 게 증명되었다.
[버킹햄B, 공장 내부 기계장치 수가 예상치 이상임을 확인. 침투조와 돌격조로 나누길 요청한다.]
[골드Y, 허가합니다. 침투 루트를 전송합니다.]
허가가 떨어지자마자 리더 역의 버킹햄B가 조를 나누었다. 당연하게도 은우가 조종하는 인디고B는 침투조였다.
[버킹햄B, 침투조는 돌격조가 전면싸움을 벌이는 즉시 빈틈을 찾아 잠입하도록. 최우선 목표는 사로잡힌 레드 확보이나, 상황이 여의치 않다 판단될 경우 보급받은 폭탄을 이용하라.]
[히아신스B, 확인.]
[빅토리아B, 확인.]
[슬레이트B, 확인.]
“…인디고B, 확인.”
꼭 대답해야 할 것 같아 익숙하면서도 익숙하지 않은 태도로 대답했다. 버킹햄B가 지체 없이 말을 이었다.
[버킹햄B, 그대들의 손에 우리의 미래가 쥐어져 있음을 기억하라. 무운을 빈다.]
그는 거기서 숨을 한 번 들이쉰 후 마지막 문장으로 말을 끝맺었다.
[미래를 위하여.]
[미래를 위하여!]
통신 채널에 한가득 그 문장으로 가득 차고, 맵에 붉은 점이 껌뻑였다. 동시에 대열에서 3개의 기체가 이탈했다. 침투조일 것이다.
“그럼 사람들을 구하러 가 볼까요.”
은우도 기체를 조종해 붉은 점 쪽으로 근접했다. 돌격조가 공장 입구 쪽에 엄청난 진동이 일 정도로 엄청난 포격을 가했다.
“최대한 전투는 피하면서 가겠습니다.”
─에에에엥
─아쉽
─구출작전이니까 피하는 건 맞찌ㅋㅋ
─팩트) 켄이 전투를 피한다 = 학살한다
─너,,,,천재냐?
─이거네ㅋㅋㅋㅋ
돌격조가 시선을 끄는 사이, 은우는 투명화한 비행 기체에서 내렸다. 붉은 점은 그가 침입해야 할 곳을 명확히 표기하고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번 작전은 그다지 달갑지 않네요.”
은우는 환풍구를 박살 내고 그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왜용?
─지금 스칼렛 구하기 싫단 거임??
─절대 해명해
“구하기 싫은 게 아니라 아까도 써먹은 방법이지 않습니까.”
판 자체가 처음부터 함정이었지만, 그래서 더 문제다. 적은 그것을 기회로 침투란 수법을 깨달았을 터. 그런데 지금 또 한 번 행하는 것이 과연 옳은 판단일까?
달리 방법이 없는 것도 사실이지만, 조금 회의적이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아까 저희가 썼던 루트와 동일하네요.”
─앗;; 이건 좀 에반데
─적들 지능은 에바쌈반데
─찐이었음 진짜 무리수였다;;
─근데 상대가 켄이다?
─무리수가 유리수로 변하는 매직
“살아 돌아오는 것 자체가 목표는 아니니 적당히 넘어갑시다.”
설정상 그들은 육체가 터져 죽을 경우 링크가 강제로 끊긴다. 후유증이 어마어마한지라 그다지 권고되는 방식은 아니지만… 지금은 해킹의 위기가 있다. 이런 방식으로라도 접속을 끊어야 했다.
버킹햄B가 여의치 않을 때 폭탄을 쓰라 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구해서 나오는 게 베스트일지언정, 불가능할 확률이 높다는 걸 알기에 자폭으로 전부 날려 버리라고 한 것이다. 그러면 적어도 피해가 R에 한해 그칠 것이므로.
“실패할 것 같지도 않고.”
환풍구에서 나오자마자 은우의 검이 기습 준비를 하던 기계장치를 갈랐다. 연이어 머리를 쪼개 버린 칼날은 멀리서 날아온 파이프를 비스듬히 튕겨 냈다.
퉁.
은우의 발이 추락하는 파이프를 올려 찼다. 그러곤 한 바퀴 돌며 그 원심력을 그대로 손에 실었다. 그의 손바닥이 파이프를 후려쳤다.
콰직!
파이프가 멀리 있던 기계장치의 머리를 꿰뚫었다.
─??
─지금 무슨 일이 벌어졌나요?
─뭐가 날라왔는데, 아니었습니다
─순발력 킹졌다;;
시청자들이 새삼스럽게 놀라는 동안 은우는 주변을 쭉 훑었다.
“이미 들킨 것 같으니 차라리 루트 개척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습니다.”
길이 은근히 정해져 있으나, 이 게임은 기본적으로 오픈 월드다. 그리고 현실성을 적용한 게임이기도 하다.
─어떻게 하시게요?
─길 개척이 가능한가?
─어려울 것 같은디
“글쎄요. 그렇지만 두 손과 두 팔만 있으면 어디든지 길이 되지 않겠습니까.”
파쿠르로 가겠단 소리였다.
* * *
은우가 전속력으로 공장 내부를 돌파할 때, 채팅 창이 한차례 출렁였다.
─엔딩 나옴
─최초엔딩 나왔어요
─잉? 벌써?
─어디서요?
─중간에 잠만 안 잤어도ㅠㅠ
“다른 스트리머분이 벌써 엔딩 보셨나 봅니다.”
─네
─아 근데 엔딩 존나ㅋㅋㅋ
─스포밴임;;
─앗, ㄳ 밴 당할 뻔 했누ㅋㅋ
생각보다 게임의 볼륨이 더 짧았던 모양이다. 게임 출시된 후 14시간 만에 최초 엔딩이 나오다니.
은우의 미간이 좁혀졌다. 이건 아무리 그라도 못 따라잡는다. 박 팀장에겐 아쉬운 일이 됐지만, 어쩔 수 없다.
─켄님 최초클 쌉가능이었는디ㅠㅠ
─아쉽긴 아쉽다
─켄은 신경 안쓰는데 왜 구울단이 더 난리냐
─1절만 하자
“처음부터 노린 적 없으니 괜찮습니다. 타 스트리머는 언급은 더 이상 자제 부탁드립니다.”
그의 검이 벽에서 스르륵 흘러나온 기계장치의 가슴을 찌르고 목을 꺾었다.
“그리 해 주실 거죠?”
─자제 안 하면 목 꺾일 듯;;
─ㅗㅜㅑ,,,,,
─아 존나 깜짝 놀랐네 벽에서 갑툭튀 실화냐
「‘다음중무서운걸고르시오’ 님이 ‘1,000원’ 투척!
1. 벽에서 갑툭튀한 기계장치 2. 그걸 안보고 꺾은 켄 3. 목꺾으면서 말한 말」
─닥3333
─1번에서 존나 놀랐다가 2번에서 안도했다가 3번에서 소름끼침ㅋㅋ
─333333
“무서운 말은 아니었는데…….”
은우는 조금 주눅 든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들 하시네요.”
그의 주먹과 발이 코너를 막 돌던 기계장치를 양쪽 방향에서 가격했다. 주먹은 왼쪽으로, 발은 오른쪽으로 걷어차면 기계장치의 머리가 돌아가고 다리 관절이 부러진다.
─님이 더 너무한데요;;
─안이 저게 되냐고
─너무해? 너무해?? 비수들이 무해하긴 하지
─윗놈 노잼형으로 유해판결, 사형 선고합니다
─이건 민주주의의 붕괴다!
어찌 됐든 방송 진행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최초 엔딩이 물 건너가든 말든 달라질 이유가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은우가 목표 지점에 도달했다.
─캬, 최고난이도에서 최저난이도보다 더 빨리 도달한 거 보소
─여윽시 세계최고 피지컬이잖어~
─ㄴㄴ 우최피(우주최고피지컬)임ㅎㅎ
제가 한 일도 아닌데 시청자들이 더 어깨를 높일 무렵, 은우는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무언가가 위에서 툭 떨어져 내렸다.
[안, 녕?]
그것은 인간과 흡사한 기계장치였다. 크기도 2m 30cm가량으로 줄었고, 팔도 두 개다. 날개도 없었다. 심어진 인조 머리카락은 스칼렛 같은 붉은색이었고 피부는 없었지만, 일단 금속으로 어떻게 채워져 있었다.
[네가, 죽였지? 내, 형.]
무엇보다 말을 잘했다. 은우는 건조하게 검을 뽑아 들었다. 아까 죽였던 특수 기계장치보다 더 상위 개체임이 틀림없다.
─저 빨강이는 뭐임
─기계주제에 나보다 잘생겼네
─너보다 못생긴 게 존재하긴 해?
─개새끼야
─공홈에는 카인이라 적혀있음
[네가, 죽였어. 형을 죽였어. 불쌍한 형을, 죽였어. 우리를 죽였어.]
여기서 싸워 죽인 갓난 기계장치를 말하는 것일까. 정확하진 않으나 그럴 확률이 높다.
인간과 닮은 기계장치가, 시청자의 말에 따르자면 카인이란 이름의 그것이 눈을 빛냈다.
[그러니 나도 너를 죽여.]
카인의 손에서 쇳가루 같은 것들이 모여들더니 하나의 형태를 갖추고 그대로 응고되었다. 카인의 팔이 가시 내지 뿔이 되었다.
“드디어 할 만해 보이는 녀석이 나왔네요.”
─정보) 대부분의 스트리머들이 여기서 한두 번 죽었다
─팩트) 켄은 아무 신경 안 쓴다
─켄이면 무조건 1트클이지~
─켄 >>>>> 대부분의 스트리머
─아,,치킨 먹고 싶은데 아빠 눈치보여서 못 시키네;;
남이 고전했다는 건 알 바 아니다. 은우는 적의 무기를 보고 인벤토리를 소환했다. 검이 넣어지고 새롭게 들린 것은 공장 지대를 돌파하다가 기계장치 하나를 죽이고 얻은 무기다.
아무리 봐도 제작사에서 웃으라고 넣은 듯한 무기. 사실 무기보다는 생활용품에 가까운 것.
─여기서? 저걸?
─대체 어디서 구한 거임ㅋㅋㅋ
─보통은 개그욕심 내냐고 말하는데 상대가 켄이라서 못하겠네
─후, 형님 치킨 시킬 시간 좀 기다려주세요
─대낮부터 먹는 치킨 ㅗㅜㅑ
그건 낡고 해진 우산이다.
은우는 우산을 접은 채로 우산 손잡이 부분을 잡고 휘휘 돌렸다. 카인이 퉁, 하는 소리와 함께 공기를 울리며 덤벼들었다.
[죽어!]
카인이 칼날이 형성된 제 손을 뻗었다. 은우는 가볍게 몸을 움직여 피한 후, 우산의 손잡이 끝부분으로 카인의 팔오금을 때리고 다른 팔 주먹으로 카인의 턱을 날렸다.
키 차이가 30cm밖에 안 난 덕에 근접 격투에서도 썩 밀리지 않는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과 달리 팔이 안 닿거나 하진 않았다.
카인이 뒤로 살짝 휘청이더니 그대로 입을 벌렸다. 은우도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우산을 펼쳤다.
카인의 입에서 토해져 나온 광선이 우산의 천을 타고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투사체 한정, 펼치면 흘림 효과. 설명에선 긴가민가했는데 광선도 투사체 판정이네요.”
─괜찮은 정도가 아닌데요...?
─저정도면 개사기템 아님??
─우산ㄴㄴ 킹산-
─똑바로 서라 킹산!!
「‘팩트’ 님이 ‘1,000원’ 투척!
켄이 써서 사기템이지 비수가 들면 그냥 우산이다」
은우는 녹슬고 휘어진 우산살과 부분부분 구멍이 난 우산 천을 보며 어깨에 우산대를 대었다. 비가 왔다면 완벽했을 것이다. 비 대신 광선이 흐를 것 같지만.
카인이 분노한 듯 다시 덤벼들었다. 은우의 발이 반의 반 바퀴 휘어지며 몸을 구십도 돌렸다. 그의 상체 앞에 카인의 팔이 쭉 뻗어졌다. 은우의 우산이 카인의 얼굴 쪽에 드리워졌다.
찰칵.
버튼만 누르면 알아서 닫히는 우산은 카인의 얼굴을 잡아먹은 채 닫혔다. 졸지에 우산을 머리에 뒤집어 쓴 카인이 허우적거릴 때 은우의 손이 카인의 몸통을 타격했다.
격렬한 움직임에 우산이 벗겨지고, 은우는 손잡이를 낚아채 그것을 회수했다. 쿡. 우산의 끝부분이 대지와 닿으며 지팡이처럼 땅과 손 사이를 이었다.
[너어!]
─간지작살;;
─걍 호군데?
─ㄴㄴ 저거 연격 허용하면 진짜 공격할 틈을 안 줌 켄이 연격 다 끊어서 저러는 거임
─낡은 우산이 왜 엑스칼리버처럼 보이는가
카인의 붉은 눈이 더욱 불타오르며 손의 형태를 달리했다. 본래대로 돌린 것이다.
쇳가루가 녀석의 근처를 떠다니기 시작했다.
[죽어!]
허공의 쇳가루가 여러 개의 칼날로 변하더니 그대로 그에게 쏟아졌다. 은우는 그런 칼날을 향해 역으로 달려들었다.
우산대가 좌우로 종횡무진 휘둘러지며 칼날을 쳐 내다가, 마지막에 펄럭 펼쳐지며 뒤에서 달려드는 날붙이를 흘려 냈다.
때를 놓치지 않고 카인이 달려들었다. 뒤를 향해 펼쳤던 우산을 앞으로 당겨 오기 위해 휘두르는 사이 천이 접혔다. 우산대가 녀석의 팔을 쳐 냈다.
다만 카인이 다른 쪽 팔을 움직이기 어렵도록 일부러 안쪽으로 쳐 냈을진대, 그것에 대해 카인은 달리 반응했다. 쇳가루가 카인의 다른 쪽 손에 모이며 순간 쏘아지듯 칼날을 뽑아냈다.
은우는 쇳가루가 모이는 걸 보자마자 발로 상대의 명치를 차며 뒤로 점프했다. 그가 뒤로 물러나는 동시에 그 빈자리에 검신으로 변한 카인의 손이 쏘아졌다.
만약 피하지 않았다면 옆구리와 배의 사이, 내장으로 치면 신장이 있을 만한 위치에 칼이 꽂혔을 것이다.
카인이 그 검의 팔을 휘둘렀다. 순간적으로 쇳가루가 길게 확장되었다. 그 반경은 은우가 물러난 자리를 넘어 한 발자국 정도 뒤로 물러났을 때의 거리다.
검은 궤적이 베일처럼 생겨났다가 사라졌다. 은우는 가볍게 옆으로 뛰어 그 궤적을 피했다.
그의 다리가 대지를 내달렸다.
[하!]
다시 공중으로 흩어진 쇳가루가 카인의 기합에 맞춰 거대한 손의 형태를 갖췄다.
방금 전 검이 땅과 수직 되게 세상을 그었다면, 이번 공격은 수평으로 휘둘러졌다.
은우는 백 텀블링으로 그 거대한 손을 뛰어넘고 우산을 펼쳤다. 안타깝게도 이 우산에는 총기가 내장되어 있거나 우산대 안에 검이 있진 않았으므로 원거리 공격은 불가하다.
다만 이런 건 가능했다.
“특수 기술은 어떤지 봅시다.”
그는 우산대 안쪽, 우산살과 이어지는 부분을 잡고 그것을 분리했다. 그러면 대 부분과 펼쳐진 우산살 및 천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그는 꽃처럼 피어난 우산 천의 가장자리를 잡고 원반던지기를 하듯 던졌다.
쇳가루로 강공격을 연이어 두 번 한 까닭에 한 템포 호흡하던 카인이 팽이처럼 빠르게 도는 우산 천에 얻어맞았다.
은우는 그사이에 녀석의 뒤쪽으로 돌아 접근했다.
─ㅅㅂㅋㅋㅋㅋㅋㅋ저거뭔데ㅋㅋㅋ
─개그용이냐고ㅋㅋㅋㅋㅋ
─레전드 속 레전드ㅋㅋㅋㅋ
그의 몸이 공중으로 떠오르며 그대로 날아 차기가 작렬했다. 카인의 척추가 곡선을 그리며 앞으로 튕겨져 나갔다.
바닥에 떨어진 우산 홈에 우산대를 박아 넣으면 다시 버튼 하나로 접고 펼 수 있게 된다. 은우는 보지도 않고 홈에 우산대를 콱 박아 넣은 후, 그것을 들어 올렸다.
천이 팔락, 접혔다.
그때 저만치 나가떨어진 카인이 바닥에 손을 받았다. 은우는 발아래에서 이는 진동을 느꼈다. 온다.
은우는 그대로 점프했다. 마치 드릴처럼 바닥에서부터 나선을 그리며 쇠 천이 솟아올랐다. 그리고 순식간에 바닥으로 다시 흡수되었다.
카인이 바닥과 합체되었던 손을 떼었다. 녀석의 손이 쫙 펼쳐진 채로 허공을 긋자 그 경로를 따라 칼날들이 생성되며 다시 쏟아졌다.
아까 그 패턴이었다.
은우는 그것을 쳐 내고 흘려 냈다. 어김없이 카인이 달려들었다. 그것의 손은 아까와 달리 천처럼 길고 흐느적거리게 늘어졌는데, 그 상태에서 냅다 휘둘러졌다.
채찍이 은우를 향해 쏟아졌다.
채찍은 쳐 낼 수 없는 부류의 무기다. 그는 채찍이 다가오는 것에 맞춰 몸을 뛰었다. 태권도의 돌개 차기와 비슷한 느낌이다.
다만 돌개 차기가 축이 되는 발이 있는 반면, 은우는 두 발 다 몸과 함께 돌리며 채찍을 피했다. 등 아래로 채찍이 흘러가고, 돌아간 몸이 정상적으로 착지했다.
그의 몸이 대지를 박차며 앞으로 돌격했다. 접혀진 우산이 검처럼 카인의 눈을 찌르려 들다가 카인이 고개를 트는 것에 맞춰 휘둘러졌다.
우산 끝이 카인의 뺨을 스치고, 벌린 입에서 광선이 쏟아지자마자 천을 펼쳤다. 우산이 그대로 카인 앞에 들이밀어지며 카인을 반강제로 밀어냈다.
채찍이 되었던 카인의 손이 줄어들며 칼날로 변했다. 그것이 쏟아지는 것에 맞춰 우산이 접혀지고 은우가 제자리 점프로 칼날을 밟고 섰다.
칼날을 밟고 쪼그리듯 무릎을 접은 은우의 얼굴과 카인의 얼굴이 거의 엇비슷한 높이에 섰다.
“그러니까…….”
검은 헬멧 위로 카인의 붉은 눈동자가 그대로 비쳐졌다. 그것은 마치 헬멧 속에서 적안이 형형하게 빛나는 것 같기도 하다.
“이걸 안녕이라 하지?”
퍼억!
은우는 그 상태에서 카인의 얼굴을 우산의 끝으로 후려치고, 손에 잡힌 우산의 각도를 달리하여 손잡이 부분으로 연이어 찍었다.
마지막은 손으로 카인의 턱을 잡은 채 몸은 도약하며 회전했다. 턱을 잡힌 카인은 당연하게도 허리가 뒤로 휘며 고개도 강제로 젖혀졌다.
한 손으로 카인의 얼굴을 잡던 손이 양손이 되었다. 은우는 억지로 카인을 잡아당기며 그대로 무릎을 들어 올렸다.
카인의 뒤통수와 은우의 무릎이 콱 소리를 내며 만났다.
─이게 어딜 봐서 안녕이에요;;
「‘반밀반구’ 님이 ‘50,000원’ 투척!
안녕 두번 했다간 저세상 갈 듯」
─켄한테 이제 안녕하면 안 되겠다....
─이건 다 인사하지 말라는 켄의 큰 그림임
“기계장치 한정이니 너무 걱정하실 필욘 없으십니다.”
─기계장치에겐 잔혹하지만 시청자에겐 상냥한 남자....
─킹치만 현실에서 보면 어떨까?
─아앗! 오크인줄 알고 공격해버렸누!
─는 너
─그 모습, 마치 기계장치 깎는 장인이었다...
은우는 비처럼 내려꽂히는 칼날들을 피해 한 바퀴 구른 후 우산을 펼쳤다.
투사체 한정이긴 하나 흘림 판정을 주는 우산은 생각보다 더 쏠쏠하다. 생긴 건 현실의 그가 와도 곱게 휘어 버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정작 어떤 공격을 해도 부러지지 않는단 점 역시 마음에 들었다.
[어째서, 어째서!]
얻어맞느라 슬슬 몸 이곳저곳이 부서지고 금 간 카인이 포효했다.
[너희 따위가!]
카인이 그 자리에서 사자후를 내지르자마자 쇳가루가 전방으로 칼날을 쏘아 보냈다. 은우는 슬라이딩으로 그 칼날을 피하고 우산으로 쳐 냈다. 슈팅 게임이 2페이즈라도 되는 양 엄청난 양의 탄환이 꾸역꾸역 쏟아졌다.
[너희는 자격 없어! 죽어!]
“재미는 다 본 것 같고, 슬슬 귀찮네요.”
이런 패턴은 접근이 까다로운 거지 재밌진 않다.
그는 그 속에서 기어코 카인에게 다가섰다. 인벤토리를 향해 손이 뻗어진다.
방금 전 폭주로 잠시 지쳤는지 숨을 몰아쉬고 있는 카인의 붉은 눈동자가 지잉, 움직였다. 그것이 담고 있는 것은 은우의 모습이다.
은우는 우산을 쓰고 검을 들었다. 카인의 턱 끝에 닿아 있는 검의 첨탑이 유달리 은빛 광채를 화려하게 뿌렸다.
“사방으로 배설하는 타입은 내가 안 좋아해서.”
가죽에 휩싸인 손가락이 칼자루 부분에 설치되어 있는 방아쇠를 당겼다. 검신에 나있는 혈조를 따라 파란 기운이 차오르며 그대로 검 끝에 맺혔다.
퍼엉!
[크아악!]
카인의 머리에 정확히 포격이 가해졌다.
「‘전설의그발언’ 님이 ‘1,000원’ 투척!
해치웠나...?」
─해치웠나!
─ㅎㅊㅇㄴ?!
─아니, 저 금단의 '그' 주문을?!
─여기 스파이가 있습니다!
─ㅎㅊㅇㄴ??
전투에 고픈 시청자들이 전설의 주문마저 외울 때, 은우는 카인이 죽지 않았음을 눈치채고 우산을 그대로 던졌다.
연기 속에서 다시 일어나려던 카인의 머리를 우산이 강타했다. 은우의 검이 신에게 양을 바치는 목자의 칼처럼 내려꽂힌 것도 다음 순간이었다.
콰직!
[너, 너……!]
카인의 미간에 검이 박히고, 빠르게 집어 든 도끼가 하늘을 향해 치켜들어졌다.
“해치웠다.”
살인자를 꿈꿨던 두 번째 아들의 목이 떨어져 내렸다.
『도전 과제를 달성함! -최초의 살인자도 죽을 수 있다』
“라고 하셔야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의문문 킹림도 없지!
─큿소....켄에겐 부활주문도 소용없단 말인가...
─수금 벌써 시작했누;; 후원 떨어지는 거 보소
시청자들이 언제나처럼 우스갯소리를 지껄였다.
─지금 몇 분컷 한 거임?
─5분인가...?
─ㄴㄴ3분 40초 대임
─최고 난이도 1트 뭐냐;;
─딴 스트리머들도 거의 1트로 깨긴 깸 다들 10분 넘어가서 글치
─애초에 지금 선두 주자들이 다 실력파니까...
─뭐냐, 교전 5분 넘으면 본부에서 연락오지 않냐
─ㅇㅇ 다 뒤졌다고 어떻게든 뚫어야한다며 도움줌
─그치만 어림도 없지!
─도움 오기도 전에 죽여버리기!
다른 스트리머의 행적을 꺼내 들며 비교하는 건 거의 연례 행사 수준이었다. 특별히 누군가의 이름을 언급한 것은 아니었으므로 은우는 적당히 넘어가기로 했다.
그의 발이 R들이 갇혀 있는 방의 문을 걷어찼다. 이벤트 신이 시작됐다.
“스칼렛!”
인디고B는 다급히 방 안으로 돌입─은우는 거기서 매복 경계 안 하냐며 혀를 찼다─했다. 그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전선들에 연결되어 있는 R들이었다.
인디고가 비록 전투 특화인 B라곤 하나, 그에겐 V2053이 있었다. V2053이 휘잉 날아 기계 한쪽에 다가갔다. 구 형태의 겉면이 갈라지며 내부에서 촉수와 비슷한 전선 다발을 기계에 부착했다.
[침식 시작. 대규모 재밍 파훼. 통신망 복구. 해킹 시작.]
V2053이 무언가를 시작하자마자 먹통이 됐던 통신이 복구되었다. 돌격조와의 채널은 물론 본부와의 통신망도 연결이 된 것이다.
“여긴 인디고B. R 구출을 시도하고 있다.”
[골드Y, 확인했습니다. 부디…….]
컷신이 계속 이어지고, 은우는 그가 움직일 수 없는 동안 채팅 창을 간간히 들여다보았다. 우는 이들이 많다.
─ㅜㅠㅠㅠ
─ㅜㅠㅠㅠㅠㅠ
─제발 누나 살려라~~!!
─ㅠㅠㅠㅠㅠㅠㅠㅠ
─재수없게 우는 놈들 왜이리 많음;;
─너 켄방송으로 처음 보는 거지?
─ㅇㅇ 결말 안 좋음?
─ㅠㅠㅠㅠㅠㅠㅠㅠ
─아 뭔데
스포일러라는 건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이뤄질 수 있다. 은우는 그들의 눈물에서 쉽게 다음을 읽어 냈다. 아무래도 구출이 늦어진 모양이다.
─이제 터진다....
─히히히히!! 폭발은 예술이다!
─아, 결국 자폭임?
─스포 좀 작작 해라;;
은우는 시선을 돌려 컷신에 집중했다. 그리고 V2053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이러스 제거 완료. 스칼렛R, 구조.]
─?
─??
─와!!!
─어...?
[로즈R, 구조. 체리R, 구조. 루비R, 구조…….]
구조가 잇따라 이어지고 R들의 눈이 차례차례 떠졌다.
“끄으으응.”
“시즐링!”
인디고B는 당연하게도 스칼렛에게 먼저 다가갔다. 인디고의 부축을 받아 일어난 스칼렛이 눈을 끔뻑였다.
“나, 살아 있어?”
“…깼으면 어서 구출이나 도와줘.”
“어, 어!”
깨어난 레드들이 가세하며 남은 이들을 일으켰다. 그동안 채팅 창의 반응은 두 개로 나뉘었다.
─와 구했다!
─머임, 쫄았는데 해피엔딩이자너ㅎㅎ
─폭발한다고 가짜스포한 놈들 대가리 박아
─누나ㅏㅏㅏㅏㅏㅏㅏㅏ
순수하게 기뻐하는 사람들과,
─????
─???
─전개가 다른데요??
─에??
─여기 원래 폭탄으로 날리지 않음?
─어....?
다른 방송으로 이미 전개를 보고 왔다가 혼란에 빠진 사람들로.
거기서 누군가가 모두를 평정하는 말을 내뱉었다.
「‘오늘하루비수’ 님이 ‘5,000원’ 투척!
이거 새로운 루트 각인데」
채팅 창이 폭발적으로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