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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자도 방송할 수 있습니다-88화 (88/233)

88화

총알이 사출되고 적들의 기체가 터져 나간다.

“적들 탄환이 커서 피하기 쉽네요.”

차라리 전면 화면보다는 삼인칭 화면이 좀 더 요격하기 편할 것 같다. 탄환이나 적의 위치가 잘 안 보이는 것도 있고, 전투 자체가 슈팅 게임에 가까워서 어쩔 수 없었다.

“화면 전환은 안 되나?”

은우가 잠깐 방법을 찾아 헤매자 곧바로 알림 창이 떠올랐다.

『화면 전환은 음성 인식으로 가능합니다.』

“화면 전환.”

긴가민가하며 말하니 시야가 뒤바뀌었다.

─약간 VR로 콘솔 게임하는 기분

─연출 괜찮다

─난 공중기동 좀 더 탐나는데

─진짜 시스템 다 갈어엎었누;;

“저도 가능하면 일인칭 화면이 좋습니다만, 시스템상 삼인칭이 훨씬 편합니다.”

중도에는 뱅글뱅글 돌며 빔을 쏴 대는 기계까지 나왔다. 계속해서 하나둘 터져 나가던 아군 기체가 그것의 공격으로 전부 파괴됐다. 마지막으로 추락한 건 대장 기체인 로얄B였다.

“저 빼고 다 전멸했네요.”

전부 요격당하는 게 스토리인지, 은우가 그들을 도와도 실추하는 건 막을 수 없었다. 뱅글 도는 빔 기체를 파괴하자마자 몸의 통제권이 상실됐다. 컷신이었다.

“여기는 인디고B. 본기 이외 모든 기체가 다운됐다. 지시를 바란다.”

[브라이트Y… 특수 기계 섬멸 작전은 취소합니다. 항행 궤도에서 이탈해 해당 구역 담당자 스칼렛R과 합류하십시오.]

“인디고B, 확인 완료. 이탈을 시작하겠다.”

사막을 향하던 기체가 방향을 틀었다. 순간 멀리서 최초로 인디고B의 아군 기체를 파괴한 광선이 날아왔다.

“크윽!”

인디고B가 다급히 기체를 틀었지만, 안타깝게도 날개 비슷한 부위를 얻어맞았다. 상공에서 폭발한 아군들의 경우와 달리 인디고B의 기체는 그대로 지상에 처박혔다.

손으로 안면부를 뜯어 구르는 기계 사이를 탈출한 인디고B가 몸을 일으켜 세웠다.

[비행 장비 다운. 지형 파악. 통신 장비 가동. 목표 지점 재설정. 인벤토리 가시화. 적 위치 파악.]

기체와 함께 터진 줄 알았던 V2053이 인디고B 옆에 떠오르더니 인벤토리를 가시화했다. 무기가 이것저것 설치되어 있는 인벤토리다.

인디고B가 그중 집어든 건 아까 은우가 처음 골랐던 그 검이니.

“V2053, 본부와의 통신은?”

[시도 중. 근접 지대에 적 반응 다수. 주의.]

“알았어.”

인디고B가 자세를 잡았다. 사방에서 기계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인간이 되다 만 형태의 기계들이다. 빨갛게 빛나는 홍채가 불길하다.

“연락되면 이야기해.”

전투가 시작되었다.

▣ 088. 너무 큰 욕심

제어권을 돌려받은 은우는 그대로 기계들을 베고 썰고 터트렸다. 그걸 가능하게 해 주는 건 그의 실력뿐 아니라 무기의 특성도 있다.

초음파 커터에서 한 발짝 나아갔다는 설정이 붙은 날붙이들은 적을 예리하게 베어 넘겼다. 더구나 안에 플라스마 포가 내장됨으로써 총이나 대포의 역할도 함께 해 주었다. ‘터트리다’란 수식어가 붙은 까닭이다.

닿을 때마다 폭발을 일으켜 상대에게 더 큰 피해를 입힐 때도 있었다. 이 경우는 비록 확률 놀음이었기에 완전히 신뢰하긴 어려웠다.

마지막으로는 최고 난이도에서만 적용되는 현실성이 장식했다. 아임휴먼 때의 현실감은 어디가지 않았는지, 부위 파괴가 가능했던 것이다.

“부품을 떨어트리네요? 거기에 다섯 마리 꼴로 명성이 올라가고.”

은우의 검이 기계의 몸통과 어깨의 틈 사이를 파고들며 그 안의 신경계를 절단했다. 거기에 확률 폭발까지 더해지면 팔 한쪽 날리는 건 아이 입에 사탕 물리는 것만큼 쉽다.

“아무래도 부품이랑 명성으로 뭘 사거나 강화해야 할 것 같은데, 전작 요소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닌 모양입니다.”

─완전 RPG 아니냐

─전투신 난이도 낮췄네;;

─비슷하지 않음?

─ㄴㄴ지능이 좀 하양패치된 듯

그는 대지를 박찼다. 모래가 주된 구성분인지라 약간의 어려움은 있지만, 스펙 자체가 좋아서 불가능하진 않다.

공중으로 뛰어오른 그의 몸이 빙그르르 돌며 기계의 목을 땄다. 동시에 그가 어떤 움직임을 보이든 반의반 박자 늦을 뿐, 악착같이 쫓아오는 인벤토리에서 무기를 바꾸었다.

이번에 쥔 건 메이스다.

“그러니까 이런 걸…….”

퍼엉!

“홈런이라고 하던가요?”

낮은 확률적으로 폭발이 이는 검과 달리 메이스는 높은 확률로 폭발을 동반한다. 덕분에 메이스에 얻어맞은 기계의 머리통은 머얼리 날아갔다.

그것은 심지어 다른 기계의 머리를 치기도 했다. 균형을 잃은 기계가 뒷걸음질을 칠 때, 은우의 메이스가 그것의 대가리를 내려찍었다.

인간형답게 이것들도 머리가 약점인지 그곳만 부수면 작동을 멈춘다.

“제가 틀렸습니까?”

「‘일반적인홈런은’ 님이 ‘10,000원’ 투척!

기계대가리 날리는 걸 뜻하지 않을 텐데」

─ㅋㅋㅋㅋ저건 홈런이 아니라 안타 아니냐

─펜스에 맞았으니까 2루타 아님?

「‘기계장치’ 님이 ‘1,000원’ 투척!

왜 제 머리로 야구해요....」

주변에 있는 모든 개체를 몰살하며 은우는 동의를 구했다.

[중형 기계장치의 접근을 확인.]

초를 친 건 V2053이었다.

콰앙!

조금 떨어진 지점에서 대지가 부서지고 무언가가 솟아올랐다. 그것은 손에 거대한 드릴을 단 기계였다. 어지간한 사람 크기의 드릴에 본체도 엄청 커다랗다.

[미확인 개체. 정보 수집 필요. 신속한 도주를 권장.]

“무적 판정인지 아닌지만 보죠.”

저런 놈을 상대로 검이나 메이스는 효율이 좋지 않다. 몸체가 두꺼워서 타격은 거의 무의미하고 검은 베기의 힘이 약하다.

그러니 어쩔 수 있나. 은우의 손이 인벤토리에 메이스를 반납했다. 그 발은 모래를 박차며 드릴 공격을 피하고 있다.

─무적판정 아니면?

「‘얘들아때가됐다’ 님이 ‘1,000원’ 투척!

보스레이드on」

─보스는 아닐 것 같은데?

─정보) 켄은 대미지가 단다는 이유로 잡으면 안 되는 구간에서 보스몹을 잡은 전적이 있다

“쉿.”

은우는 무기를 쥐기 전, 시청자들을 향해 손가락을 입가에 대었다. 잿빛 햇살은 유독 헬멧에 닿을 때마다 그 색을 더욱 잃어버린다.

“그런 건 비밀로 해 주실 거라 여러분들을 믿고 있습니다.”

─아ㅋㅋㅋ믿는다는데 비밀로 해줘야지 그럼ㅋㅋㅋ

─특) 이미 다 아는 비밀이다

─아냐 우리만 입 다물어주면 돼

─그치그치 비수들끼리만의 비밀로 하자

─지금 생방보는 사람이 십만이 넘는데....?

“대미지가 달았으면 좋겠네요.”

알아서 떠드는 시청자들을 두고 은우는 무기를 고쳐 쥐었다. 그것은 창처럼 자루가 길고 날은 사람 얼굴만 한 도끼였다.

그의 발이 다시 대지와 작별을 고했다.

쾅!

그가 있던 자리에 드릴이 박히고 은우는 아래를 향해 대각선으로 도끼를 그었다. 그 반동으로 몸이 한 바퀴 회전하며 그의 다리가 기계 본체에 얹어졌다.

기계의 머리라고 할 수 있는 부분에 동그란 사출구 같은 게 생겼다. 그러곤 어깨에 탄 은우를 향해 무언가를 내뱉었다. 탄환 비슷한 그것은 피하기 좋게 속도가 느릿하다.

은우는 도끼를 횡으로 휘두른 후 자리에서 뜀박질을 했다. 탄환이 가까스로 그를 지나쳤다.

“대미지가 다는 것 같은데.”

난이도가 높아서 체력 바가 표시되진 않았다. 그렇지만 무기를 휘둘렀을 때 찌그러지고 작게나마 베인 흔적이 남는 걸 보니 무적 같진 않았다.

은우는 드릴과 연결된 팔을 밟고 그 부분을 다시 내려찍었다. 퍼엉! 검과 메이스가 확률이라면 도끼는 버튼으로 폭발을 조절할 수 있어 한 번에 엄청난 대미지를 입힐 수 있다.

기계가 다른 드릴 팔로 그를 잡기 위해 제 팔을 내려쳤다. 은우로선 오히려 땡큐였다.

“지능이 높진 않네요.”

─기계 딱 대

─출시 첫 날부터 잡지 말라고 나온 기계가 잡힐 것 같은 이 기분;;

─기계 너...약간 멍청....하달까?

─근데 우리한테는 절대 안 멍청함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는 어깨 쪽으로 뛰며 그를 향해 날아오는 도끼 자루를 빙글 돌렸다. 날아오던 탄환들이 도끼 자루에 얻어맞아 사멸됐다. 자루를 돌리던 두 손이 곧 도끼를 곧게 잡았다.

콰직!

장작을 패도 이렇게 시원하게 패긴 어려우리라. 은우는 정확히 종으로 도끼를 휘둘러 기계의 대가리를 내려찍었다. 퍼엉! 움푹 팬 기계의 정수리는 흠집이 크게 나다 못해 쩍 벌어졌다.

“역시 인간형이 아닌 놈들은 상대하기가 너무 쉽습니다.”

자기가 스스로 팔을 내려친 까닭인지 기계는 쉽사리 움직이지 않았다. 대충 표현하자면 스턴 상태였다.

은우는 그것을 십분 활용해 머리를 두 번 더 내려친 후 어깨에서 뛰어내렸다. 그러곤 뛰어내릴 때 기계의 목덜미 부분에 도끼를 박았다.

그건 꼭 갈고리를 건 것 같기도 하다. 도끼날을 목덜미에 걸고 창대를 밧줄 삼아 뒤에 매달릴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도끼날이 금방이라도 빠질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굴었지만, 은우는 그 전에 새 무기를 쥐었다.

칼. 사람으로 치면 대충 허리쯤에 박힌 그 칼은 은우의 새로운 디딤대가 되어 주었다.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도끼 쪽 폭발버튼을 누르자 도끼가 폭발 반동으로 빠져나왔다. 은우는 그것을 회수하며 칼을 밟고 서 다시 어깨로 올라갔다.

어깨 위에 오르자마자 다가오는 탄환들은 도끼가 창처럼 뱅그르르 돌아가며 제거해 주었다.

“무기 자동 회수네요.”

어깨에 올라탄 그를 향해 드릴이 다시 내려쳐지는 걸 보며 은우는 정수리를 밟고 다른 쪽 어깨로 올라갔다. 그사이 슬쩍 본 기계의 등엔 칼이 더 이상 박혀 있지 않다.

은우는 아까 쪼갰던 자리에 정확히 도끼를 박아 넣으며 칼을 쥐었다.

도끼가 회수된 자리의 틈에 칼이 푸욱 박혀 들어갔다.

그게 제법 높은 대미지를 주었는지, 기계장치가 몸을 부르르 떨더니 대지를 파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동안 정수리에 박아 놓고 회수하지 않은 검은 네모난 금빛 노이즈를 흘리는 이펙트와 함께 인벤토리에 다시 생겨났다. 꼭 3초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신체와 떨어진 직후 3초가 흐르면 자동 인벤토리 수납인 것 같습니다.”

은우는 대지에 멀뚱히 서서 적이 다시 튀어나오길 기다렸다. 곧 ‘드드드’ 하는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는 그게 제 발밑이 제일 심하다는 것을 알고 빠르게 몸을 피했다.

쾅!

첫 등장 때처럼 기계가 튀어나왔다. 은우는 그것이 등장하는 것에 맞춰 바로 덤벼들었다. 아까처럼 팔을 때리며 어깨에 올라탄 후, 탄환을 없애며 머리를 때린 것이다.

“초반이라서 그런지 패턴이 쉽네요.”

그것만 반복하면 상처 하나 없이 녀석을 잡아 낼 수 있다. 머리를 이리저리 돌리며 탄환을 쏘아 내고 몸을 들썩거리던 기계가 결국 작동을 멈추었다.

드드드드!

폭발할 조짐이 보이자마자 은우는 빠르게 그 자리에서 뛰어내렸다. 그것으로도 부족한 것 같아 주변으로 물러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퍼어엉!

은우의 눈앞에 있던 기계가 전기를 파직파직 흘리더니 불길에 휩싸였다. 결정타는 멀리서 날아온 미사일이었다.

『도전 과제를 달성함! -도망은 내 사전에 없다』

─아니 도망가는 미션이었냐고ㅋㅋㅋ

─도전과제 있는 거 보니까 도망가도 되고 안 도망가도 되는듯

─ㅋㅋㅋㅋㅋ이분 진짜ㅋㅋㅋㅋ

─오늘도 레전드 찍는다ㅋㅋㅋ

곧 잃어버린 비행 기체를 탑승한 누군가가 인디고B 근처에 내려앉았다. 열린 갑옷 앞면 사이로 드러난 사람은 화려한 미인이었다. 막 헬멧을 벗은 탓에 흐트러진 머리카락은 새빨간 색이다.

“위험한 상황인 줄 알았더니 도움은 필요 없었나 보네.”

─누나아ㅏㅏㅏㅏㅏ

─막타충이누

─스칼렛 언니이이이이ㅣㅣㅣ

─누나 나죽어ㅓㅓㅓ

─언니이이ㅣㅣㅣㅣ

─막타 먹었네ㅋㅋㅋㅋㅋ

스칼렛R로 추정되는 여성의 발언에 시청자들이 ‘누나아아’, ‘언니이이’ 하고 난리를 쳤다. 같은 미인이라도 남자에겐 좀 박하면서 여자에겐 관대한 저들의 심리를 모르겠다. 은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스칼렛R, 인디고B와 합류했다. 다음 지령은?”

[브라이트Y, 안전지대까지 물러난 후 이번 사태에 대한 원인을 조사하십시오.]

“스칼렛R, 확인.”

추정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통신을 종료한 스칼렛R이 그와 시선을 마주했다.

“자, 그럼 들었지? 뒤쪽 좌석에 어서 타도록 해.”

스칼렛R이 거기까지 말한 후, 헬멧을 재착용하고 갑옷을 탑승 상태로 되돌렸다.

[뭐해, 안 타고?]

마이크를 통해 전해지는 목소리가 재촉했다.

“뒤에 따로 탈 구석이 있나 봅니다.”

은우는 순순히 그 말을 따랐다. 과연 뒷부분에는 지게처럼 되어 있는 장치가 설치되어 있었다. 은우는 그곳을 밟고 선 후, 손잡이로 보이는 것을 잡았다.

[잘 잡았지? 그럼 출발한다.]

V2053도 그 옆에 장착되며 본격적으로 비행이 시작되었다. 인디고를 제한 B부대를 전부 격추시킨 정체불명의 광선을 의식하는 듯, 그들의 비행은 고도가 매우 낮았다.

은우는 한 팔로 손잡이를 단단히 잡고 몸을 바깥으로 내밀었다. 바람이 스쳐 지나가는 게 퍽 괜찮은 기분이다.

“기체 안에서 타는 것보다 이게 훨씬 마음에 드네요.”

─크, 광경 쥑인다

─무슨 영화인줄

─특) 켄이니까 영화처럼 보인다

─일인칭하다가 식겁했다ㅠㅠ

─비수들이 하면 무서워서 쪼그려 앉을 듯

─이거 맞따ㅋㅋㅋ

바깥에 탄 그를 고려했는지 속도도 조금 느렸기 때문에 그들은 멀어지는 배경들을 천천히 구경할 수 있었다. 세상이 멸망했다는 흔적이 가득해서 그렇지, 참 장관이었다.

“음.”

그때, 은우의 눈에 멀리 있는 무언가가 잡혔다. 그것을 보고자 하는 마음을 먹자마자 눈에 열이 오르는 느낌과 함께 망원경처럼 시야가 확대됐다.

보이는 건 인간과 전갈을 반반 합친 것 같은 기계장치였다.

─저건 머임

─크기 실화냐?

─진격의 전갈이누;;

─스콜피언킹?

[대형 기계장치의 접근을 확인.]

[전 임무 표적 개체. 신속한 도주를 권장.]

V2053과 비슷하지만 다른 목소리가 연달아 울려 퍼졌다. 스칼렛이 골머리 앓는 듯한 소리를 내었다.

[여긴 스칼렛R, 전 목표였던 특수 기계장치의 추적을 확인. 안전지대까지 도주가 불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 지시를!]

[브라이트Y, 보고 확인. 가까운 폐공장 위치, 전송하겠습니다.]

그들이 탄 비행 기체가 방향을 꺾어 사막에 세워진 폐공장으로 흘러들었다. 다행히 특수 기계장치는 광선을 발사하지 않았다.

[이 폐공장은 탐색이 덜 된 곳이야. 나는 외부를 날아다니며 특수 기계장치의 행동을 관찰할 테니, 넌 내부에 있을 수 있는 위험을 찾아 처단해 줘.]

폐공장에 도착하자마자 은우를 내려 준 스칼렛은 제 할 말만 하고 다시 날아올랐다. 은우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이동할까요?”

은우는 폐공장 내부로 입장해 그 안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과연 탐색이 덜 됐다는 말은 사실인지 곳곳에서 소형 기계장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기본형부터 날아다니는 것이나 조금 정예로 보이는 것까지. 은우는 그것을 보며 게임 시작할 때부터 품어 온 의문을 꺼냈다.

“분명 히든 엔딩 기점으로 수백 년이 지났다고 했는데, 왜 다시 싸우고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는 게임의 배경에 대해 추측해 보았다. 배양액에서 깨어난 B부대. 기계장치와 싸우는 이들. 인트로에서 흘러나온 독백.

“처음에 인간에서 기계가 된 안드로이드와 처음부터 기계였던 존재를 가르는 기준에 대해 물었던 것 같은데. 그럼 감정을 가진 기계와 인간들의 싸움일까요?”

─그러지 않을까요?

─아무래도 그런듯

─근데 주인공쪽이 인간 같진 않은디

─적들은 일단 기계인게 확-실

“인디고B가 기계인지 인간인지 알 수 없다는 게 조금 걸리네요. 인간 쪽 같긴 한데… 배양액에서 나온 게 또 수상하고.”

은우는 소형 기계장치를 썰어 넘기며 그의─인디고B의─육체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살갗을 가르면 근섬유가 나올까요, 기계가 나올까요.”

─아니 그걸 왜 궁금해해

─호기심on

─부상입으면 어차피 알게 되지 않음?

“그렇지만 상처 입을 일이 없을 것 같아서.”

그는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기가 막혀 할 소리를 흘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아무래 생각해도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성능의 육체가 단박에 2층으로 뛰어올랐다.

살갗 아래 피가 흐르든 기름이 흐르든 평범한 인간이 아닐 것은 확실하다.

그때, V2053이 앞으로 튀어나오며 홀로그램을 띄웠다. 스칼렛의 얼굴이 증명사진 형태로 떠올랐다.

[외부에서 관찰, 예측한 맵 데이터를 전송할게. 세세한 부분은 네가 채우도록 해.]

스칼렛의 홀로그램이 흩어지더니 대신 맵으로 보이는 지도가 떠올랐다. 3D 지도에는 파란색으로 그의 점이 위치해 있다.

“미니 맵이네요.”

3D 미니 맵에 덜 익숙한 자들은 보기 어려워할 것 같다. 은우는 맵 데이터를 확인하며 달렸다. 아직 할 말이 끝나지 않았는지 스칼렛의 목소리가 계속 울려 퍼졌다.

[그보다 블루랑 같이 하는 건 오랜만이네. 알다시피 레드는 단독 임무가 많아서 말이야.]

“B가 블루, R이 레드였군요.”

심지어 색깔별로 하는 일이 다른 모양이다. 뭐, 이런 분류는 흔한 일이었으므로 은우는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기분이다! 내 이름은 시즐링이야. 네 이름은?]

“이름이 따로 존재하는가 본데…켄.”

[켄, 켄이구나. 좋아.]

혹시 처음 시작할 때 입력했던 게 여기에 쓰이나 싶어 질러 보았다. 정답이었다.

[코드네임으로만 불리다 보니까 진짜 이름도 까먹겠다니까. 그러니 이번 임무만이라도 잘 부탁한다, 켄?]

─누나아ㅏㅏ

─나 죽어어어어어

─언니 사랑해요오오오

─누나아아ㅏ아ㅏㅏㅏ

시청자들이 자지러지는 사이 통신이 종료되었다. 은우는 계단을 올라가자마자 나오는 기계장치에 검을 내질렀다.

틈을 파고드는 절묘한 검 솜씨에 기계장치의 목이 따이고 사지가 분리되었다.

“이번에도 엔딩이 여러 개일 것 같습니까?”

─여러 개일듯

─전작 생각해보면 킹티엔딩

─최소 3개는 있을 것 같다.

은우의 발이 기계장치 하나를 걷어차며 그 반동으로 위로 점프해 빙그르르 돌았다. 동시에 길게 튀어나온 검이 뒤에서 접근하던 다른 녀석을 베었다.

세로로 쪼개진 신체 사이를 미끄러진 그가 원을 그리며 사방을 베었다. 주위로 달려오던 기계장치들이 다리를 잃었다. 퍼엉! 재수 없게 폭발이 걸린 놈은 잘린 단면이 어그러져있다.

“이번에도 히든 엔딩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ㅋㅋㅋㅋ너무 욕심인데

─엔딩도 아니고 히든엔딩ㅋㅋㅋ

─최초 엔딩이나 노려보자 형

─아, 근데 켄이면 아직 모른다

“너무 큰 욕심입니까?”

그렇지만 스트리머로서 탐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는 희미하게 웃으며 위에서 떨어져 내리며 기습하는 기계장치를 베었다. 깔끔한 칼질에 목과 몸통이 분리되어 그의 양 옆으로 떨어졌다.

쿵, 깡.

금속 뭉치가 철판 위에 떨어지는 소리가 선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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