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다니엘이 테러리스트들에게서 훔친 단검은 하나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거기서 훔쳐 온 단검이 여러 개인 게 아니라 헤로도토스가 남긴 단검이 하나가 아니었단 소리다.
“약속대로 단검을 구해 왔다.”
톰을 납치해 간 단체, 코스트라인은 그 단검의 위치를 알았으나 구해 올 능력이 없었다. 때문에 그들은 톰의 목숨을 대가로 다니엘에게 단검 찾기를 지시했다. 그 결과가 지금이었다.
“이제 동생을 풀어 줘!”
“그래, 그래. 최고의 보물 사냥꾼께서 말하시는데 응당 들어드려야지.”
코스트라인의 보스, 파인즈 티치가 손을 까딱였다. 그의 부하가 톰의 손을 결박하던 밧줄을 끊어 주었다. 심지어 그 등을 차 톰을 다니엘 쪽으로 밀어 주기까지 했다.
“눈물겨운 형제애야, 그렇지?”
밀릴 당시 균형을 잃는 바람에 졸지에 다니엘에게 안겨 버린 톰이 얼굴을 구겼다. 그러나 그 속에 불쾌함만 있진 않았다. 좀 더 복잡하고 혼란스러웠다.
물론 다니엘은 알지 못했다.
“자, 그럼 이제 이야기를 다시 해야겠군.”
파인즈가 손을 들었다. 그러자 방 안에 있던 이들이 일제히 무기를 들었다. 다니엘 역시 악당에게 총구를 겨누었다.
“나만 죽진 않아.”
“워워, 진정하라고. 동생까지 죽일 셈이야?”
짓씹듯 끊어 말하는 다니엘에게 파인즈는 빙글빙글 웃어 보였다.
“다니엘, 스위프트. 금세기 최고의 보물 사냥꾼. 불법, 합법을 넘나들며 온갖 유물들을 찾아내는 실력자.”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저 바깥의 멍청한 부하들을 시키느니 너를 고용하는 게 보물찾기가 더 빠를 거란 소리지.”
“이 몸은 비싸.”
“10%. 7억 달러의 10%를 주지.”
7억 달러는 단검 등을 통해 대모험가의 유산을 획득할 경우 얻을 수 있는 돈이었다. 물론 추정치일 뿐이므로 확실하진 않다. 그러나 이 중 그 누구도 대모험가의 유산이 저것보다 적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왜 그래야 하지?”
다니엘이 비죽거렸다. 그건 본래 그가 전부 가졌어야 할 돈이다.
뭐, 지금까지 겪은 불운을 보면 발견해 봤자 싸우다가 침수되거나, 싸우다가 붕괴하거나, 싸우다가 지진 난 것처럼 모조리 무너지겠지만.
“이봐, 잘 생각하라고. 여기서 살아 돌아간다 한들 네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어렵게 가져온 단검 두 개도 잃고 유산도 얻을 수 없단 말이지.”
파인즈의 말에 방아쇠를 쥔 다니엘의 손이 떨렸다. 틀린 말은 아니기 때문이다.
심지어 여기서 총을 쏜들 저 녀석은 살 가능성이 농후하고, 그들은 반드시 죽는다. 저 제안은 절대 나쁜 게 아니었다.
“난 그저 조상님의 유산을 하루라도 빨리 되찾고 싶을 뿐이야. 그 패로 널 고른 거고. 하지만 네가 거절한다? 정말 눈물 나지만, 죽일 수밖에 없지. 자, 선택해. 목숨까지 포함해 몽땅 잃을지, 7억 달러의 10%라도 건질지.”
무엇보다도 다니엘은 절대 동생을 가지고 도박할 수 없었다.
“형!”
그는 총구를 내렸다.
“조건 하나를 더 얹지. 동생은 보내 줘. 그렇지 않다면 응하지 않겠어.”
“아무렴.”
“형!”
“이게 최선이야.”
은우는 거기서 수식어구를 붙여야 할 필요를 느꼈다. 그건 ‘형’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동생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 081. 눈치 빠른 것들은 싫어
“보면 나쁜 짓 하는 놈들이 제일 유능한 것 같습니다.”
─반박불가 리얼펙트
─무능하면 뒤지니까 그런거 아닐까
─악당이 유능한 게 진짜잔아~
─능지는 딸리는데 능력은 좋음ㅋㅋ
시청자들의 말이 맞다. 유능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양지든 음지든. 목숨이 길가의 돌멩이 취급받는 후자의 경우 특히 더.
어찌 됐건 파인즈는 현재 협력자로 나오는 상태고, 다니엘은 그들의 조력을 받아 헤로도토스의 유산을 찾는 데만 전념하면 됐다.
다니엘을 조작해야 하는 은우 입장에선 더욱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스토리상 때가 되면 알아서 배신할 것 아닌가.
“여기서부턴 적들 사이를 뚫고 가야 한다.”
“빌어먹을 광신도들!”
“왜 있는 거야?”
다니엘을 돕는 겸 감시자로 파견된 코스트라인 직원들이 욕설을 입에 담았다. 그들 앞에 적이 나타난 건 둘째 치고, 그네들이 미친 신앙자들이라서 그랬다.
참고로 챕터 1에서 나왔던 테러리스트들과 동일 세력이다. 그들만의 신앙을 위해 테러를 저지르기 때문에, 여차하면 자폭도 시도하는 등 여간 까다로운 녀석들이었다.
현실 집단에 비유하자면 5년 전 대대적으로 토벌당해 궤멸 상태에 놓인 IS와 비슷하다.
“저 풀숲에 숨어 보초를 제거하는 게 좋겠군. 밤이라서 웬만하면 들키지 않을 거다.”
『◈ 숨겨진 마을
→ 솔라리스의 광신도들을 뚫자.』
부대 대장이 은근하게 루트 하나를 알려 주었다. 은우는 그것을 알아만 두고, 참고하진 않았다. 그렇게 하면 너무 오래 걸렸다. 저들이 걷는 길과 풀숲이 상당히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벼랑을 통해 제압하겠습니다.”
은우는 밧줄을 잡고 갈고리를 휘휘 돌렸다. 곧 최고 난이도답게 보정 하나 받지 않은 갈고리가 절벽 위 나무에 걸렸다.
그의 몸이 절벽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야밤의 클라이밍 시작이었다.
─무서워ㅠㅠㅠ
─ㅗㅜㅑ;;;
─님 겁이 없음...?
“겁이 없는 건 아닙니다.”
모쪼록 사람은 두려움을 알아야 이겨 낼 수 있으니. 은우는 겁이 없다기보단 공포를 이겨 낸 쪽에 가깝다. 하도 오래되어 무뎌진 것도 한몫하지만 말이다.
“사람이 어떻게 겁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절벽 중간쯤에 다다른 그는 절벽에 맨손으로 매달린 후 갈고리를 거뒀다. 장갑 하나와 절벽에 살짝씩 파인 홈만 믿고 매달린 꼴이 아슬아슬하다.
“단지 저를 믿고 가는 거지.”
손을 뻗을 때는 신중해야 한다. 자칫하면 절벽 단면이 무너질 수 있으므로.
그러니 처음 짚었을 때 돌가루가 흘러내리지 않고, 미끄럽지 않고, 힘을 주어도 부서지지 않는 지점을 찾아야 했다.
─오만함 보소
─실력이 받쳐주는데 뭔 오만임ㅡㅡ
─자신감 on
─켄 정도면 오만할 만 하다
─자기확신 꽉 찬 거 부럽다,,,,,
“여러분도 할 수 있을 겁니다.”
은우는 신속하지만 조심스럽게 한 손, 한 발 나아갔다. 그가 잡는 홈이나 돌마다 부서지지 않고 그를 지지했는데, 그건 오랜 경험이 선사한 초월적 직감과 제작사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절벽의 콜라보였다.
─보통 인간은 못합니다,,,,ㅎㅎ
─약 파지 마세요
─어디서 약 팔아재낀다
“약 파는 거 아닙니다만.”
은우는 절벽을 능숙히 타며 움직였다. 바나나처럼 굽어 돌아가는 풀숲과 달리, 절벽은 보초의 걸음과 평행해서 움직이기 좋았다.
저들이 흘러내리는 돌가루를 못 느끼기에 더욱 그렇다.
야간 투시경을 쓴 눈이 쥐를 노리는 부엉이처럼 보초들을 주시했다.
“교대가 언제더라.”
“볼일 급하냐?”
은우는 보초병과 절벽이 가까워졌을 때 숨을 삼켰다.
“갑니다.”
짧은 선고와 함께 냅다 적을 향해 뛰어내렸다.
첫 번째 적이 밟히고─공격으로 치부되면 낙하 대미지를 안 받았다─옆에 있던 적이 움직이기도 전에 주먹이 나갔다.
퍽!
두 번째 적이 턱을 맞은 여파로 비틀거렸다.
“이, 뭔……!”
가장 멀리 떨어져 있던 세 번째 적이 총을 들어 올리려 할 때, 은우는 돌려 차기로 총을 날렸다. 그리곤 바로 파고들어 목을 꺾었다.
발각 게이지가 꽉 차지 않으면 암살(일격살)이 가능하기에 벌어진 일이다.
“대체……!”
그는 마지막으로 남은 적에게 덤벼들었다. 상체를 낮춰 주먹을 피하고, 태클을 걸어 눕힌 후에 머리를 연달아 가격했다. 곧 적이 축 늘어졌다.
“솜씨가 좋군.”
어느새 다가온 코스트라인 부대 대장이 칭찬했다. 가까이 있던 주제에 도와주지 않고 지켜보기만 한 셈이다. 혼자 하는 게임이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좀 얄밉다.
“유능하단 말은 취소하죠.”
─선택적 유능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본인이 불편하면 고위등급이건 뭐건 필요 없다 이거야
저들의 도움이 꼭 필요한 건 아니나, 눈꼴셨으므로 유능을 취소했다. 물론 그가 인정하든 취소하든 전개에는 전혀 쓸모가 없었다.
“이제 안으로 진입하겠습니다.”
은우는 사박사박 걸어 풀숲과 마주했다. 대장의 말을 따랐다면 여기서 암살을 했을 것이다.
그는 거기서 조금 궁금해졌다.
“만약 여기서 적을 처치하면 도와줍니까?”
─예아
─대장님 억울
─도와줄 틈도 없이 죽여버렸어ㅋㅋㅋ
유능하단 말 취소할 게 아니라 그냥 그가 혼자 한 거였다.
“제가 잘못한 거였네요.”
사람들이 키득키득 웃었다.
“성벽 위 감시병 둘, 체크.”
은우는 보초를 처치한 협곡을 지나 본격적으로 마을 입구에 다다랐다.
“제거했다가 다른 한 놈이 듣고 경보기를 울릴 수 있으니…….”
그는 눈을 가늘게 떴다가 절벽을 타고 올랐다.
저놈들은 성벽 바로 앞, 풀숲을 베어 낸 자리만 확인하고 있으므로 절벽을 타고 성벽으로 이동하는 건 걸리지 않는다. 저들은 타인의 침입을 용이하게 막기 위해서 절벽과 성벽을 연계해 지었지만, 그것이 저들의 패착이 될 것이다.
은우의 몸이 성벽 위를 걸어 한 놈의 입을 막고 목을 꺾었다. 우득 하는 소리와 함께 적의 몸에서 힘이 빠졌다. 그는 그것을 잡고 천천히 바닥에 눕혀 주었다.
나머지 한 명도 같은 운명을 맞이했다.
“이제 안쪽을 살피죠.”
그는 나른한 저음으로 속삭이며 마을 내부를 내려보았다. 풀숲은 더 이상 없으나 세워진 건물들을 보니 은폐 암살이 가능해 보인다.
문제는 발각되자마자 울려 버릴 경보기였다.
은우는 건물의 위치와 구조, 보초의 움직임을 천천히 살폈다. 최고 난이도라 그런지 적들 위치가 대부분 맞물려 간다. 빈틈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일반인이 찾기 어렵다.
“당장 보이는 숫자만 열넷, 건물 뒤나 내부에도 있을 걸 상정하면 최대 서른 정도 있을까요. 이 정도 마을 크기엔 서른 명 정도가 걸맞기도 하고.”
─그걸 어떻게 아는 거야;;
─난이도 미쳤다 진짜
─이 정도 마을에 삼십 명이 적당한 누가 가르치는 지식임
─역시 켄
“그렇게 어렵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난이도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기실 그렇게 어렵지 않다. 게임에서 제공하는 기능, ‘마킹’ 덕분이다.
시야에 들어온 적의 경우 마킹을 할 수 있는데, 이러면 벽이나 물건 같은 장애물 때문에 적이 가려져도 적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그게 잠입 미션에서 얼마나 쓸모 있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하나하나 죽이면 되니까요.”
은우는 괜스레 장갑을 벗었다가 다시 팽팽하게 꼈다. 그 과정에 장갑 하나를 입에 물었더니 느낌이 묘했다.
“헬멧이 없는 건 좀 아쉽네요.”
총알 방어 못 해도 되니까 그 애매한 갑갑함이 있었으면 좋겠다.
은우는 아쉬움에 혀를 차며 나이프를 들었다. 다른 무기로 총이 있긴 하지만, 총을 쓰면 소음이 일어서 안 된다. 모쪼록 이목이 끌려 버리면 암살 내지 잠입이 아니지 않은가.
갈고리는 베고 빠지기가 어려우니 성대를 빠르게 벨 수 있는 나이프가 좋다.
“혹시… 저 바깥의 떨거지들도 돕습니까?”
─안 돕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도와주는 구간은 아까 그게 끝인 거임?
“안 돕는다니 계산은 편하네요.”
은우는 마지막으로 경로를 계산한 뒤, 담벼락을 타고 조용히 내려갔다. 입구를 통해 마을을 들어왔을 때를 기준으로 우측에 있는 건물을 끼고 돌면 들키지 않고 이동이 가능하다.
“경보기부터 끄는 걸 목표로 하겠습니다.”
그는 건물 외벽에 설치해 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갔다. 그러곤 귀를 기울였다. 혹시 마킹하지 못한 추가 적이 있을까 싶어서였는데, 다행히 없었다.
“하나 온다.”
소리보단 바람에 가까운 음성이 시청자들의 귀를 스쳤다. 은우는 마킹으로 적의 위치를 파악했다. 마침 한 놈이 반대쪽으로 걸어가고, 한 놈은 그가 있는 쪽에 있었다.
그는 사다리 위로 고개를 빼꼼 내밀곤 적이 보는 방향까지 확인했다. 둘 다 그를 등지고 있다.
은우의 몸이 훌쩍 옥상으로 올라가더니 가까운 적의 입을 콱 틀어막고 목을 꺾었다. 그리곤 빠르게 옥상 아래로 떨어트렸다. 은우의 몸도 같이 내려갔다.
털썩.
“뭐야?”
은우는 잽싸게 코너를 돌아 아까 지나왔던 벽 쪽으로 붙었다. 귀는 옥상의 발소리에 집중했는데, 적이 그가 서 있는 지점을 지나갔을 때 벽을 타고 올랐다.
“설마 발 헛디뎠냐?”
소리 없이 3층까지 올라온 암살자, 아니 보물 사냥꾼이 사냥감을 노렸다.
“어이?”
사냥감 이름은 동료가 죽었는지도 모르고 킬킬 웃는 감시병 1이다.
사각.
성대 베이는 소리가 선명했다.
툭.
은우는 적의 몸을 바닥에 눕혔다. 문득 그의 시선이 적의 머리에 씌워져 있는 헬멧에 닿았다. 말이 헬멧이지 정확하게 부르면 그냥 복면이었다.
은우가 그것을 가만히 내려다보자 채팅 창이 바로 반응했다.
─형 그거 아니야
─복면은 좀 아니야
「‘ ’ 님이 ‘1,000원’ 투척!
차라리 삼뚝이를 씁시다」
─애초에 이거 루팅 겜 아니에요ㅠㅠㅠㅠ
─라고 하지만 총은 루팅이 가능하다ㅋ
“전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만.”
「‘거짓말치지마’ 님이 ‘10,000원’ 투척!
우리가 말 안했으면 쓸거였잖아」
그의 눈살이 살짝 좁아졌다.
“…제 패턴을 외우셨군요. 후원은 감사합니다.”
음산하다면 음산하고, 불퉁하다면 불퉁한 음색이었다.
─(이래서 눈치 빠른 것들은 싫어 짤)
─어서 ㄹㅇㅋㅋ만 쳐!!
─ㄹㅇㅋㅋㅋㅋㅋ
─ㄹㅇㅋㅋ
─ㄹㅇㄴㄴ
어쨌거나 시청자들이 저렇게 만류하는데 쓰는 것도 좋지 않다. 은우는 입맛을 다시며 건물 옥상에서 내려왔다. 밤이라고 훤히 트인 곳에서 마음 놓고 있다간 걸리기 십상이다.
마침 조금 떨어진 곳에서 사람 목소리가 들려왔다. 은우는 나이프를 다잡고 벽에 붙은 거미처럼 움직였다.
언노운 4 고유의 긴장되는 BGM이 잔잔히 깔리며 지켜보는 이들의 심장을 뛰도록 만들었다. 은우에겐 그냥 소음이었다.
“활이 있었으면 좀 쉬웠을 것 같네요.”
활은 총에 비하면 소음이 거의 없다시피 하니. 물론 없다고 해서 못 잡을 이유는 하나도 없다.
은우는 벽의 코너에 몸을 밀착한 채 발소리에 집중했다.
사아박사박, 사아박사박, 사아박사박. 발소리 두 개가 반 음 겹쳐 들린다.
“둘, 사이 간극은 네 발짝.”
방해되는 야간 투시경을 위로 올린 그는 적과 그 사이의 거리를 재었다.
다섯 발자국. 네 발자국. 세 발자국. 두 발자국.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내디디며 코너링.
그는 적이 코너를 도는 것에 맞춰 확 끌어당겼다.
“…느……!”
나이프로 찌르는 것보단 목을 꺾는 게 좀 더 조용했으므로 그 방법을 사용했다.
“하아암.”
바로 뒤따라오는 놈이 있다. 은우는 방금 죽인 이가 쓰러지는 소리가 나든 말든 옆으로 강하게 밀어내며 치웠다.
그리고 그것이 쓰러지기 전에 코너 밖으로 몸을 내밀어 깜짝 놀란 적의 팔을 붙잡고 끌어당겼다. 그의 다른 손은 그 머리통을 붙잡고 팔을 휘두르듯 끌고 와 벽에 머리를 처박았다.
콱! 하는 소리와 함께 적의 안면─주로 코─이 뭉개졌다. 벽에 핏자국이 좀 남고, 적은 그대로 무너졌다. 죽었는지 기절했는지는 알 바 아니다.
“이놈들, 제대로 무장을 안 했네요.”
애초에 신앙 집단이라 무장하기 어렵긴 했을 테다. 은우는 역수로 쥐고 있던 칼날을 정수로 바꾸며 다시 길을 나섰다. 방금 두 사람을 죽였다곤 믿기지 않는 가벼운 걸음걸이였다.
「‘미션받아라’ 님이 ‘1,000원’ 투척!
형, 맨손으로 다 머리 꺾어주면 5만 원.」
그때 미션이 도착했다.
“미션받아라 님, 감사합니다.”
손가락 사이에서 빙빙 놀던 나이프가 정수로 바꾼 기쁨도 없게 다시 역수로 돌아갔다. 또한 곧바로 검집에 채워지기까지 했다.
“한번 해 보죠.”
장갑이 질끈 손에 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