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화
“요 며칠 죽을상이더니 오늘은 좀 괜찮아 보인다?”
전자 노트 화면만 뚫어져라 보던 건우는 깜짝 놀랐다. 머리에 차가운 것이 닿음과 동시에 친구가 말을 건 탓이다.
“어, 어.”
그는 건성건성으로 답하며 발을 동동 굴렀다. 방송 시작까지 남은 10분이 너무 길었다.
“활자팡인이 웬일로 인방? 드디어 네가 인방의 참맛을 알았냐?”
“시끄러워.”
“이 몸이 왔다!”
“이 몸 좋아하시네.”
“야, 꺼져, 꺼져. 술맛 떨어져.”
“개자식들.”
술 약속에 참가 의사를 밝혔던 친구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전부 더러운 인턴 시절을 거치거나 거치고 있는 놈들이다.
“헐. 이 새끼, 왜 소설 안 봄? 죽을병 걸렸냐?”
“와, 여러분. 어서 축하해 줘. 활자 중독자가 드디어 영상을 본다.”
저 새끼들이. 건우는 전자 노트를 잡고 있던 손을 살짝 떨었다. 친구란 게 으레 그렇지만, 진짜 얄밉다.
“대체 어떤 놈이기에… 켄이네?”
“아, 켄이면 인정이죠.”
건우는 소란스러운 친구 놈들 속에서 대화를 위한 첫 번째 제물이 되었다. 평소였으면 그중 한 놈을 잡고 헤드록을 걸었겠지만, 아니 오늘도 걸었지만, 그는 희생양이 된 것에 발악하진 않았다.
“너희도 켄 알아?”
“너희도 알아가 아니라 너만 모른 거다.”
“요즘 켄 모르는 애들이 어디 있냐. 인방 중 겜방 좋아하는 사람이면 거의 다 알걸?”
발악하며 다른 주제로 넘어가기엔 동생의 이야기를 놓치기 아쉬웠다. 건우는 쏟아지는 켄(은우)의 칭찬에 입술을 씰룩였다.
그를 제외하면 전부 게임을 좋아하는 녀석들뿐이었기에 켄에 대한 말은 제법 길어졌다. 그중엔 그가 모르는 이야기가 상당량이었다.
“야, 난 사람이 그렇게 게임 잘할 수 있는지 몰랐다.”
“진짜 인간인가 싶다니까?”
“키도 존나 크잖아. 개부러움.”
“그래서 쟤, 지금 방송 기다리고 있는 거냐? 원래 늦게 맛들인 놈이 더 한다더니.”
건우는 입술을 실룩였다. 친구 놈들의 칭찬을 들을 때마다 동생이 대견스럽고 자랑스럽다. 그만큼 미안함도 크지만, 흐뭇함을 감출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자랑은 못 하지만.
그는 비밀이라던 동생의 당부와 취중 고백으로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그는 정말 순수하게 자랑스러워서 그런 거였는데 동생은 그게 매우 싫었던 모양이다.
앞으로 주의하고 자제하자. 더 이상 실수하긴 싫다.
“근데 키 하면 네 동생도 크지 않냐?”
“엉?”
“그, 너랑 안 친한 동생.”
맞는 말이긴 한데 울컥했다. 건우는 손 닦으라고 나온 물수건을 던졌다.
“저 새끼, 팩트 맞았다고 발끈한다.”
빌어먹을 친구 놈들은 좋아라 웃었다.
“와, 아직도 사이 안 좋냐?”
“…화해는 했어.”
했나? 잘 모르겠다. 둘 다 솔직하지 못한 사내놈인지라 어물쩍 넘어간 느낌이 더 크다.
“오올, 드디어?”
“나 같음 솔직히 네 머리 쪼갰을 것 같은데, 잘도 했다. 애가 좀 착하네.”
“머리만 쪼개냐? 난 척추도 접었다.”
건우는 친구들의 팩트 속에서 차마 반발하지 못하고 바들바들 떨었다. 그가 감내해야 하는 말들이나, 그게 원수 녀석들 입을 통하면 괜히 열불 난다.
결국 그는 얼음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슬쩍 내려다본 화면에서는 동생이 방송을 막 시작하고 있다.
“야.”
“엉?”
“2인용 게임, 재밌는 거 있냐?”
▣ 080. 살았다
“얼굴이 매우 더러워 보이는데.”
“오, 그래. 그렇겠지.”
다니엘은 열받았지만, 능청맞게 굴고 싶은 얼굴로 과장되게 반응했다.
“다니엘.”
“뭐!”
네이선의 부름에 다니엘은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입술이 이에 짓이겨지고 미간은 형편없이 찌푸려져 있다.
“톰이 거기에 간 건 나도 뒤늦게 알았어.”
“2주야! 무려 2주라고! 아무리 톰이 대타로 들어갔다지만, 그걸 몰라?”
“내가 너를 거기에 집어넣느라 작업했던 건 무시하냐? 그리고 톰은 2차 투입원이었어. 늦든 빠르든 투입 결정이었다고. 그 순번이 바뀌는 건 나라도 바로 알아차리기 힘들어.”
컷신 대체 언제 끝나. 은우는 그런 생각을 하며 두 사람의 대화를 들었다.
더럽게 긴 컷신 동안 알아낸 것은 톰의 생각과 달리 다니엘이 톰을 제법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비록 표현하는 방법을 모를 뿐이지.
“…톰이 죽었을 수도 있었어.”
말도 못 하겠다, 시청자들에게 제 모습이 비치지도 않겠다. 은우는 다니엘을 보며 형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톰이 죽었을 수도 있었다고.”
건우 형도 표현하는 방법을 몰랐던 건가? 그렇지만 그가 어떤 식으로 다가왔어도 은우는 낯설고 어색해했을 거다. 아예 직설적으로 다가왔다면 또 모르지만.
아, 그런 점에서 접근 방식이 틀렸다고 말할 순 있겠다.
“뒤에선 그렇게 걱정하고 있으면서 앞에선 왜 그러냐?”
“닥쳐.”
하면 납치 오해 사건은 차라리 좋은 일이었던 걸까. 그런 계기라도 없었다면 그들은 끝내 껄끄러운 사이로 매듭지어졌을 확률이 높은데.
잘 모르겠다. 은우는 상념을 그만두고 보이는 시야에 집중했다.
“난… 난 그냥…….”
그의 시야 속 다니엘이 고개를 수그렸다.
“이제 와서 무슨 자격으로 그 애에게 다가갈 수 있겠어…….”
그건 상당히 묘한 느낌을 주었다.
“삽질은 그만하고 일이나 하나 하자.”
“뭐, 인마?”
“이번 일 때문에 본 손해가 얼마인데. 동생 거기 못 가게 만들겠다고 자청해서 일 맡은 게 누구지?”
“빌어먹을.”
“비록 네 의도는 무산됐지만, 적어도 톰은 살았어. 그걸로 만족하고 어서 다음이나 준비해.”
네이선은 삽질 작작 하고 일이나 하라며 다니엘을 채근했다. 그 과정에서 다니엘이 가운뎃손가락을 다섯 번 정도 올렸지만, 네이선은 익숙하다는 듯 외면했다.
채팅 창에서 법규 소리가 통통 올라왔다. ‘컷신 ㅈㄴ 기네’, ‘켄 어디감’ 따위의 소리는 덤이었다.
《Chapter 3. 시베리아에서》
[이봐, 다니엘. 잘 도착했어?]
“아주 자아아알 도착했다.”
새로운 챕터와 함께 열린 맵은 눈이 휘날리는 지역이었다. 네이선과 다니엘의 대화에서 시베리안 단어가 나왔으므로, 아마 그곳일 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컷신이 끝나고, 은우는 드디어 목소리를 돌려받았다. 감격스러웠다. 몸의 자유 없이 영상을 강제로 시청하는 건 정말 고역이다.
“한동안은 컷신이 안 나올 것 같네요. 계속 진행하겠습니다.”
그는 몸을 떨며 유적지로 들어갔다. 추위가 워낙 강해서 신체가 움츠러들었다. 게임에서 제한하는 역치 중에는 통각뿐 아니라 과한 온각, 냉각도 있다는 걸 고려하면, 실제로 캐릭터가 느꼈을 추위는 더할 것이다.
[더럽게 춥네.]
은우는 바깥에 노출되는 면적을 줄이기 위해 몸을 움츠리고 팔짱을 꼈다.
“진짜 시베리아도 이렇게 추울까요?”
「‘заявление об отставке’ 님이 ‘86,950원’ 투척!
이것보다 더 춥다.」
─추위부심ㅋㅋㅋㅋㅋ
─이건 절대 못 진다 이거야~
─ㅋㅋㅋㅋㅋㅋㅋ
“그렇습니까.”
은우는 키득키득 웃으며 유적지 안으로 들어갔다. 얼어붙은 유적지는 사방이 뚫려 있어 바람이 숭숭 들어온다. 바람이 제법 거세 걷기는 힘들지만, 꾸역꾸역 나아가는 것은 가능했다.
『◈ 얼어붙은 유적지 탐사
→ 유적지 통로를 탐사하라.』
“그보다 어둡네요.”
밤눈이 밝은 듯 사물의 윤곽쯤이야 구별할 수 있지만, 그래도 빛의 유무는 크다.
하물며 지금 하는 일은 유적 탐사가 아닌가. 물건을 가져오는 건 둘째 치고 벽화나 글자는 어찌 읽을지 모르겠다.
[전등을 켜야겠어.]
타이밍 맞게 캐릭터가 한 도구의 존재를 알렸다.
슬쩍 알림 창이 끼어들며 허리춤에 매달려 있는 원기둥 형의 물체가 전등임을 알려 주었다. 흔들면 빛이 나왔다.
“이런 등도 있네요.”
이런 건 볼 일이 없던지라 퍽 신기하다.
은우는 그 기물을 한 번 더 흔들어 보곤 손으로 툭툭 치거나 더듬어 보았다.
“강도는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그 말에 숨은 의미를 찰떡같이 알아챘다.
─무기 아니야
─그거 무기 아닙니다ㅋㅋㅋ
「‘손전등’ 님이 ‘1,000원’ 투척!
나는 적의 뚝배기와 함께 깨질 운명인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안 깨트립니다.”
─적의 머리를? 전등을?
─당연히 전자지ㅋㅋㅋㅋ
─닥전
─닥전2222
그의 입술이 삐뚜름해졌다.
“전등인 게 당연한 건 맞는데, 묘하게 기분 나쁘네요.”
초성이 채팅 창을 점령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사이 은우는 목적에 맞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가까이 다가가면 하얗게 빛나므로 조사는 금방 이루어졌다.
[이건 일종의 표식이군.]
몇 개의 석판과 상호작용 한 결과, 목표가 갱신되었다. 좀 더 조사한 후 앞으로 나아가란 임무가 나타났다.
“보통 유적 탐사가 이렇게 이뤄지진 않겠죠?”
─자세한 건 몰라도 혼자 하진 않을 듯
─다니엘은 유적탐사자가 아니라 도굴꾼 아님?
─아님 파괴자임
─어떤 탐사도 유적을 붕괴시키면서 하진 않습니다.
정보가 후대로 이어지는 건 기꺼울 일이나, 그 과정을 상상해 본 적은 없다.
은우는 턱을 매만지며 안쪽으로 더 들어갔다. 몸을 아리게 만들던 추위가 차차 줄어들며 본격적으로 조사가 시작되었다.
“이건… 장치 같은데.”
은우는 단상에 놓인 다섯 개의 무기와 벽에 도열해 있는 다섯 개의 석상들을 발견했다.
단상에 가까이 다가가면 글이 적힌 석판을 볼 수 있다. 고대어로 적혀 있는 석판은 주인공의 내레이션과 함께 알림 창을 옆에 띄웠다.
[이건 수수께끼네.]
『메이스는 검의 곁에 있다.
검은 양 끝에 서지 않는다.
활은 메이스 곁에 없다.
방패는 메이스 곁에 있다.
창은 활 곁에 있다.』
“그러니까, 이것들을 석상에 쥐어 주면 되는 거군요. 수수께끼로 맞는 위치를 추측해서.”
─그런듯
─ㅇㅇ
─ㅁㅇㅁㅇ...
─퍼즐on
그는 단상을 톡톡 두드렸다.
“검은 양 끝에 서지 않는다니 가운데 3자리 중 하나에 있겠죠.”
그는 석상에 다가가는 대신 단상에서 무기들을 옮겼다. 왔다 갔다 하는 비효율보단 단상에서 전부 맞추고 갈 셈이었다.
“메이스는 검 곁에 있다고 하니까 검의 옆, 둘 중 하나에 있을 테고. 방패도 메이스 곁에 있으니 이 셋은 조르륵 붙어 있네요.”
방패-메이스-검인지 검-메이스-방패인지는 아직 모른다. 은우는 나머지 힌트를 살폈다.
“활은 메이스 곁에 없으므로 방패 옆에 있거나 검 옆에 있을 겁니다. 그런데 창과 활이 붙어 있다 했으니까… 검이 가운데 확정이네요.”
활이 방패 옆에 붙으면 검-메이스-방패-활-창 순서(반대도 가능)가 되므로 검이 양 끝에 서게 된다. 그러므로 창-활-검-메이스-방패든가 방패-메이스-검-활-창이 되어야 한다.
은우는 빠르게 위치를 특정해 내고 그것에 맞춰 무기들을 옮겼다. 정답은 왼쪽부터 방패로 시작해 창으로 끝나는 나열이었다.
그그그그그그-!
둔중한 울림과 함께 중간에 있던 석상이 돌아갔다. 길이 생겨났다.
“과거의 기술력, 대단한데.”
─오버테크놀로지ㅋㅋㅋ
─엄청 쉽게 맞추시네
─킹직히 저 시대때 기술력이 저럴 리 없음
─당근 겜이니까 그런 거지ㅋㅋㅋ
그는 적당히 감탄하며 생겨난 길을 통과했다. 안타깝게도 다음 방 역시 나아가는 길이 보이지 않는 밀실이었다. 사방이 무너져 내린 탓이다.
“길이 없으면 만들란 거겠죠. 방금처럼.”
은우는 전등을 들고 이곳저곳을 비추었다. 전등의 푸른빛이 벽을 비출 때마다 어둠 속에 감춰져 있던 비밀들이 한 겹, 한 겹 옷을 벗었다.
[저곳은 부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다 말고 조금 엉성한 벽을 발견했을 때, 다니엘이 내레이션으로 정보를 전달했다.
그 엉성한 벽은 지상으로부터 3m 정도 위에 존재했다. 다행히 그 아래엔 발판이 있어 그것을 디디면 부수기는 쉬울 것 같았다.
“올라가야겠네요.”
잘 보면 발판 위쪽 벽에 갈고리를 걸 수 있을 만한 홈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마 보통의 사람들은 그것을 서서 올라갈 것이다.
그러나 은우는 다른 방법을 택했다.
그는 발판 근처에 있는 기둥으로 달려가 그것을 박차고 위로 뛰어올랐다. 그러곤 발판을 받치고 있는 벽을 밟아 몸을 반대쪽으로 튕긴 후, 다시 반대쪽 기둥을 박차 발판 위까지 올라갔다.
이러면 갈고리를 던져서 가는 것보다 더 빠르게, 더 쉽게 갈 수 있다.
[갈고리로 내려치면 부술 수 있겠어.]
내레이션은 친절했고, 은우는 냅다 들이박았다. 갈고리가 벽을 콱콱 박자 곧 길이 뚫렸다. 곧 보인 것은 정말 넓은 얼음 동굴과 그 속에 세워진 다리였다.
아득한 다리 밑 바닥은 얼음 가시가 빼곡하다. 떨어지는 순간 저것들에게 찔려 죽을 거다.
“밟으면 무너질 것 같은데.”
사소한 문제는 세월을 탄 다리가 듬성듬성 무너져 있다는 점일까. 흡사 징검다리다. 매우 위험한.
은우의 눈이 가늘어지고, 경로를 계산하기 시작했다. 정형화된 길은 없고 갈고리 걸 구석도 없다. 튀어나온 벽돌을 잡고 클라이밍을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그보다 게임 보정이 있다곤 해도 일반인들이 하긴 좀 어려울 것 같은데. 다들 대단하네.
최고 난이도의 경우 맵이 더 어렵게 구성된다는 걸 모르는 사람의 평가였다.
“단번에 가겠습니다.”
길을 다 찾은 은우는 출발선 비슷한 곳에 섰다. 그의 녹색 눈동자가 마지막으로 주변을 훑었다.
“호흡 조절 잘하세요.”
탐험에 용이한 신발이 첫 번째 징검다리에서 뛰어올랐다.
* * *
“톰이 납치? 미쳤어?!”
시베리아에서 개고생─유적 붕괴─하고 돌아온 다니엘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전해졌다.
“뭐? 유산을 노려?”
은우는 30분 유적 탐방 하고 다시 시작된 이벤트 신에 머리를 짚었다. 비록 육체는 없었지만 말이다.
─켄 또 침묵걸림?
─켄 욕해서 먹금당함
─가짜뉴스 퍼트리는 거 보소ㅋㅋㅋ
─그러고 보니 켄 욕한 적이 있나?
이쯤 되니 시청자들도 퍽 답답한 눈치였다. 스트리머 전용으로 컷신 도중에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해 주는 버전을 바라는 이도 많다. 게임 내용에 집중할 수 있는 건 좋지만, 스트리밍이란 건 본래 스트리머와 대화할 수 있는 재미로 보지 않던가.
은우는 그 의견에 절실히 동의했다. 그래픽이 이렇게 좋아지도록 왜 그런 기능 하나 안 넣었는지 모르겠다.
그동안 대충 유물을 노리는 단체에 의해 젊지만 능력 좋은 고고학자인 톰이 납치됐고, 그를 구하러 가야겠다는 다니엘의 각오 등으로 이벤트 신이 마무리됐다.
“다음부턴…….”
은우는 컷신이 풀리자마자 입을 열었다.
“컷신이 너무 긴 게임은 PC를 고려해 보겠습니다. 콘솔이나. 액션은 VR이 확실히 좋지만, 이런 게 너무 자주 나오는 것도 힘드네요.”
모르포맨 때도 경험한 바지만, 앞으론 콘솔도 확실하게 염두해 둬야겠다. 모르포맨은 특유의 과장된 연극 같은 점이 별로였다면 언노운은 퍼즐이나 탐색이 있어도 구역이 한정된 탓에 심심한 맛이 크다. 대부분 상호작용을 통해 풀어 나가다 보니 그런 경향이 더 심했다.
그나마 이벤트 신마다 나오는 다니엘의 모습이 형을 연상시켜서 덜 답답하긴 한데… 오히려 생각할 여지가 많기도 하고.
그렇지만 방송에는 역시 적합하지 않다. 은우는 목덜미를 쓸었다.
무엇보다 이 게임, 아직도 헬멧 비슷한 게 안 나왔다. 은우의 가장 큰 불만이었다.
“아직까진 퍼즐도 너무 쉽고… 뒤로 가면 어려워집니까?”
차라리 지금이라도 콘솔 버전으로 전향할까. 언노운 콘솔 및 PC 버전이 있는 걸로 아는데.
다만 문제는 시청자들이 그것을 반길지, 싫어할지 모르겠다는 거다. 콘솔로는 최고 난이도 클리어가 어려울 것 같기도 하고.
은우가 고민할 때 즈음 Unknown Raider 4를 해 본 사람들이 하나둘 이야기를 시작했다.
─초반에 스토리 푸느라 컷신이 좀 집중된 것도 있긴 함
─중반 넘어가면 본격적으로 유적 부숩니다 쓰앵님...^^
─초반이라서 퍼즐 쉬운 거에요ㅋㅋㅋ
─동생 구하기까지만 버텨보죠
「‘가즈아’ 님이 ‘50,000원’ 투척!
행님 저희는 행님 고유의 액션을 보기 위해서라면 버틸 수 있습니다」
─PC버전은 컷신 더 많습니다
─이번 잠입부턴 그래도 할 만할 걸요?
다들 긴 이벤트 신에 지친 은우를 달래며 VR로 계속 가자는 의견을 밝혔다. 콘솔로 갈아타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사람이 없진 않으나, 소수에 불과했다.
“여러분들이 괜찮다 하시니 그럼 계속 가겠습니다.”
보는 이들이 괜찮으면 됐다. 은우는 한숨을 닮은 호흡을 내뱉으며 이번 챕터 목표를 확인했다.
『◈ 메이블 기지
→ 동생을 찾아 기지에 잠입하자.』
다행히 조사나 탐색이 아니라 잠입 미션이 걸렸다.
“아, 무기도 줬네요.”
심지어 허리춤엔 권총 한 정과 화약, 나이프가 걸려 있었다. 은우의 입술이 삐뚜름해졌다.
“기뻐하세요. 전등은 멀쩡할 겁니다.”
─대신 적의 머리가 멀쩡하지 않겠지
─ㅋㅋㅋㅋㅋㅋ돌은자
「‘손전등’ 님이 ‘10,000원’ 투척!
살았다,,,,,」
─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도망쳐! 학살좌가 온다!!
그는 반박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