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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자도 방송할 수 있습니다-79화 (79/233)

79화

《Chapter 2. 밑바닥》

챕터 2는 다니엘이 테러 단체에 인질로 들어온 것부터 시작했다.

왜 들어왔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캐릭터 설정값이 트레저 헌터라 쓰고 도굴꾼이라 읽는 녀석이므로 관련 일거리를 위해 들어온 게 아닐까 싶다.

“몇 년이나 흘렀는지 모르겠네요.”

은우는 그를 끌고 가는 테러리스트들이 뭐라 떠들든 길만 따라갔다. 그의 중얼거림에 시청자들이 저마다 답했다. 게임을 플레이해 본 이들의 답도 있지만, 추측성 답도 꽤 된다.

─님 얼굴 나이 먹은 거 보면 대략 10년은 넘은 듯?

─언노운3에서 다니엘이 34인가 35세였음

─근데 3보다 젊어보이지 않냐ㅋㅋ

─그래픽 차이 때문에 그런 거 아님?

“아까랑 얼굴이 다릅니까?”

─ㅇㅇ 아깐 진짜 어렸어용

─정확힌 님 찐 얼굴인데 지금은 거기서 나이 먹음ㅋ

─찐 얼굴 하니까 켄 진짜 얼굴 보고 싶다

은우는 전생 얼굴에서 나이 패치가 됐다는 말에 묘한 표정을 했다. 전생과 완전히 똑같은 얼굴은 아니지만, 그래도 닮은 편인데 거기서 10년이면… 그가 죽었을 때의 얼굴과 비슷할까.

아니다. 그땐 동안이란 소리를 정말 많이 들었으므로 지금은 그때보다 더 늙어 보일지도 모른다. 그가 그때 죽지 않았다면 가졌을지도 모를, 그런 얼굴.

“…나이를 먹었다니 궁금하네요.”

은우는 그 자신을 삼인칭으로 볼 수 없다는 게 처음으로 아쉬워졌다. 하다못해 거울이라도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그러나 자기 자신의 얼굴을 볼 방도는 아직까지 없었다. 그는 아쉬움을 삼키고 상황에 따라 움직였다.

▣ 079. 구도는 엇비슷

놀랍게도 진행에 따라 밝혀진 상황은 이 테러 단체 안에도 그의 조력자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은우는 그 조력자를 통해 테러 단체가 점거하고 있는 유적지로 입장했다. 이제 헤집고 다닐 차례였다.

“꽤 넓네요. 어서 돌아다녀 봅시다.”

맵 자체는 한정돼 있되 그 맵 자체도 넓은 편이어서 돌아다닐 구석은 상당히 많았다. 심지어 이건 지령을 줄지언정 현실성과 자유도를 상당 부분 반영한 게임이었다.

챕터 1에서야 튜토리얼인 걸 감안해 가는 길을 고정해 두었지만, 챕터 2부터는 다르다. 정해 둔 경로는 있으나, VR 한정으로 플레이어가 새로 개척해서 움직이는 것도 가능했다.

요컨대, 하는 사람마다 깨는 법이 다른 게임이 Unknown Raider 4: 최후의 여정(VR 버전)이었다.

─저걸,,,,저렇게 깨네;;

─ㅋㅋㅋㅋ창의력 갑니다ㅋㅋㅋ

─창의력이 아니라 피지컬로 보입니다.

물론 은우는 그중에서 특출난 편이었다.

“갈고리 줄은 자동 회수네요. 근데 이거, 낙뎀도 있습니까?”

─있음;;

─근데 떨어지다가 뭘 잡으면 뎀지 안 받음ㅋ

─시스템 파악 시작했다

“그렇군요.”

오랜만에 호기심 대왕이 되어 이리저리 돌아다닌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편적인 스트리머의 돌파 속도로 챕터를 진행했다.

대부분의 스트리머들이 공중에서 안전 장치 하나 없이 벽 타고 오르는 걸 겁내느라 시간을 헛소비한 반면, 은우는 과감히 움직인 덕이다. 하다못해 특전사 출신 스트리머도 조금씩 움찔거릴 때가 있었는데, 은우는 단 한 순간도 움츠리지 않았다.

─1인칭으로 보는데 무서워 디지겠음ㅠㅠ

─엄마야야ㅑㅑㅑ

─형 살살 부탁해....

─,,,,퍄퍄;;; 살살,,,,부탁해,,,,

─윗놈 일상생활 가능?

“절대 떨어지지 않을 텐데 뭐가 무섭습니까?”

─'그' 발언

─저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거임ㅋㅋㅋ

─절대,,,,,떨어지지 않는다,,,,,메모,,,,

“일단 캐릭터 신체 능력상 본인이 겁나서 움츠러들지만 않으면 절대 안 떨어집니다. 심지어 이런 클라이밍으로는 상처도 안 입지 않습니까.”

사람이라면 파쿠르나 클라이밍처럼 급격한 운동을 했을 때 금방 지친다. 체력이 강한 사람도 마찬가지다. 점차 힘이 빠지는 게 존재하는 거다. 손에 상처가 나는 것도 문제고.

그렇지만 이 캐릭터는 어떤가. 아무리 최고 난이도라고 해도 게임 진행을 위해 최소한의 보정은 있다. 그리고 그 최소한의 보정이 사람을 금강불괴의 초인으로 만들었다.

“힘이 빠진다는 건 본인의 착각입니다. 이 신체는 게임 캐릭터예요. 그 점을 인지하면 어렵지 않습니다.”

─그게 가능하냐고ㅋㅋㅋ

─근데 저게 정답이긴 한듯....겜잘들은 다 저렇게 말하잖아ㅇㅇ

─그건 그럼

「‘заявление об отставке’ 님이 ‘174,500원’ 투척!

인지를 바꿀 수 있다는 그 점, 너무 대단하다.」

“글쎄요, 제겐 어려운 일이 아니라서……. 후원 감사합니다.”

은우는 어깨를 으쓱이며 사암 절벽의 고성을 올랐다. 고개를 조금만 돌려도 모래로 이뤄진 지평선이 보이고, 아예 밑을 보면 뾰족한 사암들이 아른거린다.

“풍경 예쁘네요.”

그는 그런 말이나 지껄이며 고성의 상층에 도달했다. 그가 아래를 내려다볼 때마다 일인칭 시청자들 간담이 서늘해진다는 건 알 바 아니다.

“퍼즐이… 있네요.”

상층에서 은우는 시멘트를 치덕치덕 바른 듯한 벽을 매만졌다.

“굉장히 오래된 건물 같은데 이때도 시멘트가 있었습니까?”

그의 물음에 지식인들이 정답을 알려 주었다. 그 답들을 가만히 듣던 은우의 시선이 벽돌 바닥에 닿았다. 자세히 보면 무언가 글자들을 새겨 두었다.

“고성에서 찾아야 할 것이 아무래도 이 방에 있는 모양입니다.”

은우는 글자들을 잘 살폈다. 어떻게 적었는지 그가 손을 뻗어도 안 닿는 지점에 써진 글자들이 힌트였다.

“답은 Ω네요.”

은우는 벽에 적힌 글자와 숫자들을 대조해 답을 금방 찾아냈다. 로마자 숫자가 조금 헷갈리긴 했으나, 그건 시청자들의 도움을 받았다.

그의 손이 바닥의 벽돌을 빼냈다. 그때는 컷신이라고 하긴 애매한, 그러나 강제 움직임 보정이 적용되며 벽돌을 빼 주었다.

나온 건 단검이었다. 오래되어 낡고 녹이 슨 검은 실전용이 아니라 장식용으로 보인다.

은우는 그 단검을 이리저리 돌려보다가 검집에서 검을 빼 보았다. 검날에는 무슨 문장이 적혀있다.

“POSUIT OMN……. 이건 무슨 언어죠?”

─산크트리스어 아님?

─산스크리트어다 멍청아 그리고 라틴어임

─ㅋㅋㅋㅋㅋㅋㅋㅋ

은우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가 지식이 부족한 건 사실이지만, 시청자들 태반이 모르는 걸 보면 흔한 언어는 아니다. 즉, 게임사에서 알려 줄 거다.

실제로 주인공이 내레이션을 통해 정체를 밝혀 주었다.

“세상 전부를 그곳에 두고 왔다.”

그것은 세계 최고의 모험가라 불렸던 헤로도토스가 남긴 말이다.

소수의 시청자층─우스갯소리로 할배, 할멈이라 불리는─이 뒤집어졌다. 실존 인물이 아니라 가상의 인물을 따로 만들어 적당히 끼워 넣은 걸로 알지만, 상상 이상으로 웃겼나 보다.

[그러고 보니 이 단검의 형태는… 기억나. 이건…….]

그사이 주인공의 독백이 이어졌다. 밝혀진 것은 단검의 형태나 무늬가 특정 지역에서 발달됐다는 사실이다. 다음 목적지가 지정됐다.

“도굴도 똑똑해야 할 수 있네요.”

세계사는커녕 한국사도 모르는 그는 곧바로 보물의 위치를 특정해 내는 주인공을 보며 감탄했다. 육체의 지배권이 상실되는 컷신에서 주인공에게 감탄하기는 또 처음이다.

그때, 두두두 하는 헬기 소리가 들렸다. 캐릭터가 내레이션으로 혀를 찼다.

[어서 움직여야겠어.]

말하지 않아도 그건 알 수 있다.

『◈ 점거된 유적지

→ 유적지의 반대편에 도달하라.』

은우는 서둘러 움직였다. 내레이션이 유적지에 대한 정보는 알아서 밝혀 주었다. 주로 스쳐 지나가는 벽화나 전체적인 상황에 대한 평가였다.

중간중간 다가가면 하얗게 빛나는 것들은 상호작용이 가능한 것들이었는데, 상호작용 하기를 택하면 그에 대한 평가가 나왔다. 크게 얻는 건 없었다.

“설정이 엄청 세세하네요. 설마 실제로 존재하는 것들은 아니겠죠.”

역사적 지식이 부족해서 그런가 현대 배경으로 잘 짜인 것들을 보면 진짜인가 싶다.

물론 진짜이든 아니든 그가 특별히 외우거나 하진 않을 것이다. 역사를 모른다고 죽진 않는다. 만약 그의 생존에 직결된다면, 그래. 그땐 위인 한 명이 며칠, 몇 시, 몇 분에 그 말을 했는지조차 외울 수 있겠지만.

스릉-

문득 들려온 소리에 은우는 몸을 재빨리 피했다. 찰나의 차이로 함정이 지나쳐 갔다.

“검은기사 때의 악몽이 떠오르네요.”

그땐 소리 없이 다가오는 함정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은우는 새록새록 떠오르는 추억에 감회가 새로워졌다. 그의 몸은 걸리고 부숴서 통과하라 만들어진 함정들을 처음부터 다 피하는 식으로 통과하는 중이다.

─인간임?

─켄 인간 아닌 거 아직도 모르는 사람 있음?

─구울이잖어ㅋ

─ㄴㄴ 뭔솔ㅋㅋ 인간설 구울설 아직도 도냐?? 켄 신임ㅇㅇ

─ㅇㅈㅇㅈ 아직도 모르는 놈들이 있네

─ㅋㅋㅋㅋㅋㅋㅋㅋ단합 미쳐ㅋㅋㅋ

─뇌절 작작하셈;; 켄 유일신인 거 누가 모른다고

“왜 남의 종족을 멋대로 바꿉니까. 인간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

─^^7

─^^7

─본인도 모르는 본인 종족 ^^7

뭐라는 거야. 은우는 어깨를 으쓱이며 퍼즐을 단박에 풀고 통과했다. 어려운 퍼즐은 아니고 길을 만들어 내는 퍼즐이다.

기둥을 무너트리고 타이밍 맞게 점프하면 어렵지 않게 통과할 수 있다. 물론 운동치는 어려울 것이다.

“길을 다양하게 갈 수 있도록 잘 만들어 놨네요.”

은우는 아주 가는 기둥들을 밟고 통통 뛰어갔다.

“침입자를 잡아!”

그를 찾는 것 같은 음색들이 사방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거 혹시 언제 도착하느냐에 따라 전개가 달라집니까?”

─ㄴㄴ

─플레이어에 맞춰 진행되는 거라 언제 도착하든 똑같

─그건 아녜요

─그건 아님

은우는 갈고리를 던지고 공중을 부웅 날았다. 갈고리를 걸 수 있는 곳은 한정되어 있으나, 그것 하나가 있다는 것만으로 움직임은 더욱 다채롭고 다양해진다.

그는 순식간에 유적을 가로질렀다.

“저쪽이다!”

“……?”

순간 그를 발견했나 싶었던 부름은 전혀 다른 쪽에서 전개되었다. 갑작스레 진행된 컷신은 테러 집단에게 쫓기고 있는 한 무리를 비추었다.

“이런 건 감사합니다 하고 넘어가야 하지만…….”

도굴꾼 짓을 할 때부터 알아본 사실이지만, 주인공 다니엘은 약간의 도덕심이 결여된 캐릭터이니. 그는 그다운 인성 발언을 했다. 안타까운 사실은 쫓기는 저 무리가 하필 그가 있는 쪽으로 오고 있단 것이다.

“아무래도 무시는 안 될 것 같네.”

컷신이 끝났다.

『◈ 점거된 유적

→ 도망치자』

목표가 갱신되었다.

“저것들, 다 죽이면 되나요?”

은우는 조력자에게 호신용으로 넘겨받은 권총을 들었다. 비록 탄약 수 제한이 있긴 하지만, 다행히 쫓아오는 테러리스트의 수는 아직 적다.

─여윽시 학살좌 어디 안 가죠...

─???: 다 죽이면 되나요?

─구울왕이 인간들 시식하러 간다~~~!!

─이쯤되면 그냥 인정하셈;;

그가 학살좌여서가 아니라 누군들 다 그러지 않나? 그는 입술을 삐뚜름하게 늘이며 권총을 들었다. 다른 무기가 있으면 좋았을 텐데, 안타깝게도 그런 건 없었다.

탕! 탕!

은우는 권총을 들고 쫓아오는 이들 둥 위협적인 이들부터 사살했다. 그리곤 자리를 이동했다. 탄약이 많지 않고 소모품이 아닌 무기가 없는 이상 적절히 도망치면서 해야 했다.

“누가 우릴 돕는 거지?”

“몰라! 달려!”

테러리스트가 마구잡이로 쏘는 총 때문에 안 그래도 거의 삭아 가는 유적지의 기둥이 무너지고 돌벽들이 망가졌다.

은우가 있던 곳은 하필이면 고층이었기에 아래층에서 달리는 이들보다 배는 위험했다. 저들은 위에서 쏟아지는 돌들을 피하는 게 다였지만, 은우는 양옆, 위아래가 전부 위험했다.

“권총에 대해선 슬슬 감이 잡힙니다.”

그는 쫓기는 무리를 쏘려는 자들을 우선적으로 쏴 죽이며 탄창을 갈았다.

─감이....잡힌다고...?

─지금까지 올헤드샷 쏘신 분이 이제 감 잡히셨답니다ㄷㄷ

─ㅗㅜㅑ;;;

“제 말은 권총 종류라면 적당히 알 것 같단 소리였습니다만.”

은우는 마지막 지점에서 도저히 피할 각이 안 나오도록 쏟아지는 천장에, 바로 슬라이딩했다. 아슬아슬하게 그가 지나가고 나서야 천장이 그가 밟았던 층과 닿았다.

“등 안 까지는 게 신기하네요.”

그는 무너지면서 경사가 진 대지 위를 슬라이딩하다가 적당한 타이밍에 뛰었다. 막 기울어지려는 기둥을 밟고 다시 한번 점프하면 낙뎀 없이 유적지 바깥 대지에 착지할 수 있다.

뒤로 거대한 폭음과 함께 무너진 유적지가 먼지바람을 일으켰다. 컷신이 시작되었다.

『도전 과제를 달성함! -모두를 살려 낸』

컷신이 시작되기 전 업적 창이 살짝 떠올랐다 사라졌다.

엑헌에는 업적이 없고, 그 이후엔 광고를 찍거나 카롬사에 가느라 특별한 게임을 못했으니, 오랜만에 보는 업적 창이었다.

-저게 1트로 가능했던 거였어?

시청자들의 반응이 채팅 창에 바로 떠오른다. 그사이에도 컷신은 진행되고 있다.

“콜록, 콜록.”

“크흡, 어서 도망쳐야 해요. 저들은 계속 쫓아올 거야……!”

“그렇지만 우리에겐 차가 없는데…….”

유적이 무너져 테러리스트들의 길을 막음으로써 그들은 시간을 벌었다. 그러나 그것이 유예에 불과함을 모르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다니엘은 그들을 무시하고 움직이려 했다.

[그 녀석이 여기 근처에 차를 숨겨 놨댔는데……. 헬기가 뜨기 전에 어서 도망쳐야 해.]

이기적인 생각은 덤이었다.

“그래도 움직입시다. 여기서 죽고 싶진 않잖아요.”

그의 걸음을 막은 건 젊은 청년의 목소리였다. 다니엘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그의 눈에 닿은 건 부슬거리는 갈빛 곱슬머리의 청년이다.

“톰?”

“…누군데 제 이름을… 대니?”

나이 든 형제가 최악의 순간에 마주쳤다. 은우는 그것에서 묘한, 아주 묘한 떨떠름을 얻었다.

“대니, 네가 왜…….”

“그건 내가 할 말… 아니, 이럴 때가 아니지. 어서 이리로 와! 살고 싶다면!”

다니엘의 손짓에 얼떨떨해하던 톰이 일단 일행을 끌고 따라왔다. 황당은 해도 목숨이 걸린 상황인 건 잘 인지하고 있는 모양이다.

“대니, 방법이 있어?”

“그래!”

그들은 빠르게 달려 차를 숨겨 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곤 일행들을 태워 전속력으로 액셀을 밟았다.

“너, 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야!”

“내가 할 소릴! 형은 여기서 뭘 하는 거야!”

형제는 쌍으로 그들이 한 짓을 비난─지적?─하며 테러리스트들의 대지를 벗어나기 위해 움직였다.

“헬기가 온다!”

“트렁크에 무기가 있어! 들고 공격해!”

뒷좌석에 탄 사람들이 무기를 들었다. 조수석에 탄 톰도 마찬가지였다.

“일단 이곳을 탈출하고 나서 이야기하자고!”

“동의해!”

그때, 헬기에서 쏘아 보낸 미사일이 그들 차량 앞쪽 대지를 강타했다. 폭발과 함께 먼지구름 속으로 차가 들어갔다.

시야가 가려지는 것에 맞춰 완전히 검은색 일색으로 물든 세계가 게임 제목을 띄웠다. 그가 지금껏 해 온 게임을 통해 판단을 내리면, 지금까지 한 부분은 인트로였던 셈이다.

“시작한 지 한 시간은 된 것 같은데…….”

타이밍 이상하게 나온 영상도 아니라 오히려 감탄만 나왔다. 이번 게임은 대체 얼마나 길어질 생각인지.

“그렇게 플레이 타임이 깁니까?”

─그렇게까진 안 김

─중간중간 쓸데 없는 구간이 많아서 초반은 좀 늘어지긴 하죠

─컷신 엄청 많아요

─이벤씬 ㅈㄴ 많아서 스트리머들이 극혐했음ㅋㅋㅋㅋ

이벤트 신이 긴 건 정말 반갑지 않다. 그러나 볼륨감 있는 게임은 환영이다. 안 그래도 빨리 깨서 게임 찾기 어려운 마당에 오래 끌 수 있는 게임이란 진귀한 것이니까.

그사이 제목을 비롯해 캐릭터 모델링이나 성우 이름이 밝혀지고, 본격적으로 게임이 시작됐다.

곧 펼쳐진 광경은 어두운 방이었다.

다니엘은 소파에 앉아 있고, 톰은 창가에 기대 서 있다. 방 안 공기는 참으로 삭막했다.

“그래서, 왜 거기에 있었던 거야.”

톰은 퍽 까칠한, 혹은 싸늘한 어조로 다니엘을 추궁했다. 술병을 홀짝이던 다니엘이 과장되게 팔을 휘둘렀다.

그게 퍽 망나니 같아 주인공임에도 정이 안 갔다. 심지어 그가 설정한 외형을 하고 있는데도 그랬다. 어쩌면 그래서 안 가는 것일 수도 있지만.

“말했잖아, 그곳에 조사할 게 있었다고. 그러는 너야말로 왜 거기서 쫓기고 있었던 거야?”

“나도 말했을 텐데. 그 유적지에서 찾는 게 있었다고.”

둘의 의견은 팽팽히 맞부딪쳤다. 눈싸움이 잠시간 지속되다가 다니엘이 물러섬으로써 수그러들었다.

“좋아, 좋아. 말할게, 말하면 되잖아.”

“아니, 됐어. 말할 필요 없어.”

그러나 그 물러남은 톰 쪽에서 거절했다.

“뻔하지. 그 잘난 보물 찾기나 하고 있었을 거 아냐?”

“아니, 보물 찾기라니! 난 그저 세계에 숨겨진 비밀을 탐구─!”

“그래서, 틀려?”

톰의 건조한 말에 다니엘이 움찔 시선을 돌렸다.

“그래, 맞아.”

패배자의 시인이었다.

“그러는 너는 어떻고? 너도 보물 찾기 하려고 간 거 아니야?”

그렇지만 동생에게 지고 싶지 않은 듯 다니엘은 능글맞게 반격했다.

“맞아.”

톰은 생각 외로 쉽게 긍정했다.

“형과 달리 합법적으로.”

“합법적으로 수색하는 게 그 모양이냐? 그리고 또, 이 바닥에 합법, 불법이 뭔 소용이라고.”

다니엘은 제멋대로 지껄였고 톰의 눈동자는 한층 더 차가워졌다. 창백한 인상 아래 다크서클 진 눈매가 가늘어지되 예리함을 품었다.

저건 경멸이군. 은우는 그 감정을 쉬이 읽어 냈다. 다니엘 시점이 아니라 제3자의 시점으로 보고 있어서 객관적인 관찰이 가능한 덕이다.

시청자들도 이 형제 싸움을 흥미진진하게 구경 중이다.

“그곳은 우리가 먼저 발굴했고 조사 중이었어. 그 도중에 테러리스트들이 점거한 거고.”

톰은 그들 팀이 고립되어 있었음을 그리고 간신히 탈출을 시작한 것을 담담히 고했다.

“그럴 리가 없─”

“뭐가 그럴 리 없는데? 내가 지금 거짓말이라도 한다는 거야?”

다니엘의 입이 막혔다. 그는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보였지만, 끝내 말을 열지 않았다.

[그럴 리가 없어. 네이선이 톰은 다른 유적에 들어갈 거라고 말했다고.]

물론 생각은 달랐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주제에 돈은 안 되는 이 일을 받은 이유가 뭔데!]

은우는 뜬금없는 다니엘의 사고를 따라갈 수 없어 눈만 껌뻑였다. 남남처럼 살아온 게 아니었나?

“그래 봤자 형은 우리를 형네 같은 범법자라고 생각하겠지. 형이 아는 건 그런 사람들뿐일 테니까.”

“잠깐, 그런 거 아니거든? 네가 나에 대해 뭘 안다고─”

“그럼, 대니 너는 뭘 안다고 우리 팀을 모욕했어?”

곱슬거리는 갈색 머리카락이 굳은살 박힌 손에 의해 쓸어 올려졌다. 까칠하고 신경질적인 인상은 제 형을 보고 있음에도 서리가 내린 것처럼 차갑다.

적어도 톰은 다니엘을 남처럼 보는 게 분명하다. 혹은 남보다 못하게.

“그, 미안…….”

“필요 없어, 형의 사과 따위. 애초에 미안하지도 않잖아?”

“아니, 진짜 미안하거든?”

“하!”

날카로운 조소가 내리깔렸다.

“정말로 미안했다면 지금이 아니라 15년 전에, 아무리 늦어도 10년 전에 사과했어야지.”

다니엘의 눈동자가 커졌다. 지켜보던 은우는 묘해졌다. 그의 진짜 형이 했던 ‘미안해’가 잠깐 떠올라서다.

“형은 항상 그렇지. 어물쩍 나타나서 내가 바라지도 않던 것만 쥐어 준 채 멋대로 사라지고. 내가 잊을까 하면 다시 나타나서 알짱거리고. 그런 주제에 나에 대해 아는 척, 날 위하는 척 굴어.”

톰의 눈동자가 혐오와 분노로 번들거렸다. 꽉 쥔 주먹은 핏기가 싹 가신 채다.

“하지만, 대니. 넌 아무것도 몰라. 15년 전에도, 10년 전에도, 지금도! 네가 최선이라 말하는 것들은 절대 최선이 아니었단 걸!”

톰은 성큼성큼 걸어 방의 바깥문 앞에 섰다.

“목숨을 구해 준 건 고마워. 그렇지만 딱 거기까지야. 더는 아는 척도 하지 마. 내 안의 형은 이미 죽었으니까.”

거기까지 봤을 때 은우는 묘한, 아주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동질감은 못 되나 기이할 정도로 마음을 찌르는 기시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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