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화
형은 월차를 냈다. 그러니까 집에 있을 거다.
때문에 은우는 집에 가지 않았다. 일단 기회를 주기로 했는데, 오늘 바로 형을 마주칠 용기는 없던 탓이다.
사실 용기가 없다고 하긴 좀 모호하다. 형을 마주한 뒤 컨디션 조절할 자신이 없었던 쪽에 가까웠으니까.
아무렴 형이 직장인이라면 그는 방송인이었다. 당장 오늘 저녁에도 방송을 해야 했고.
한데 형과 같은 공간에 있다는 거북함 속에서 과연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정확힌, 집에 가면 형과 다시 대화해야 하는 일이 벌어질 텐데 그것을 딛고 방송이 가능할까?
대화를 한 후 방송을 잘할 자신이 없다. 상념이 가득해질 테고 그 상념은 집중을 계속 방해할 테니.
그렇다고 대화를 하지 않는다? 아무리 은우라도 그건 악수임을 알았다. 형은 그가 자신을 정말 싫어하는 거라 오해할 거다. 그러니까, 아마도. 높은 확률로.
그러니까 이건 시간을 두는 거다. 물론 이게 핑계고 그 스스로의 나약함인 건 알았다.
그렇지만 이건 목숨이 걸린 일이 아니었다. 조금은 피해도 괜찮다. 괜찮을 거다.
은우는 사적인 일로 공적인 일─방송─에 ‘폐 끼치기 않고자’라며 자신을 세뇌했다. 나름 합당한 이유는 되어 주었다. 변명인 걸 스스로가 아는 게 함정일 뿐이지.
마음이 복잡하다. 가족이란 건 너무 어려운 문제였다.
심지어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가 갈 곳이 없다는 현실도 난처함에 한몫했다.
물론 잘 곳이야 사실 적당한 호텔이나 모텔을 잡으면 되긴 했다. 하루 이틀 그런 곳 전전한다고 알거지 되는 재력은 아니었으므로.
중요한 건 오늘자 방송이었다. 휴방하기엔 미국 가 있던 동안 방송을 거의 못 했다. 초반 탐방 외엔 근 나흘을 쉰 거다.
어제가 귀국날인 걸 아는 시청자들이니 오늘까지 휴방하면 분명 뿔날 것이다. 그건 좀 싫다. 애초에 집에 안 들어가는 가장 큰 이유도 방송을 제대로 하고 싶다는 것 때문이 아닌가. 전제가 충족되어야 변명도 뜻이 생긴다.
『나> 팀장님.』
한참을 숙고한 끝에 은우는 마지막 동아줄을 잡았으니.
『나> 개인적인 사정으로 집에 못 들어가게 됐는데 방송할 수 있는 곳이 따로 있습니까.』
『박 팀장님> 다이아박스 사옥이 있지요?』
다행히 살길은 있었다.
▣ 077. ^^7
“손 다치셨다 들었는데.”
“아, 네.”
은우는 붕대가 칭칭 감겨 있는 왼손을 까닥였다. 얇게 덧씌워진 투명한 장갑은 통풍이 되되 방수인 재질이다.
참고로 비에 젖은 옷은 버리고 새 옷을 사 입었다. 호텔에서 샤워도 했다. 덕분에 기철은 그에게서 상처 이외의 어떤 이상도 읽어 내지 못했다.
애당초 헬멧을 쓰고 있는 사람에게서 뭘 읽어 내는 것도 이상한 일일 테지만.
은우는 그에게 은근슬쩍 닿아 오는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했다. 계약 전 불려 왔던 때엔 그 누구도 그에게 집중하지 않았는데─덩치 때문에 보는 사람은 있어도─지금은 정체를 알고 힐끔힐끔 본다.
“괜찮으신 겁니까?”
“괜찮습니다.”
기철의 물음에 담담히 대답했다. 실제로 유리 조각에 넝마가 되긴 했지만, 깊게 베인 건 별로 없었다. 흉터도 지지 않을 거라 했고.
은우는 손을 자유자재로 까닥임으로써 신경에 문제없음을 증명했다.
“팀장님, 집은… 바로 계약할 수 있습니까?”
“마음에 드신 곳이 있다면 오늘이라도 계약 가능합니다. 급하십니까?”
박 팀장의 대답에 은우는 뒷목을 쓸었다. 처음부터 짓는 건 물 건너갔지만, 그가 염두해 둔 것과 비슷한 구조의 집은 있었으니.
“오늘은 그렇고, 내일 하겠습니다.”
지지부진했던 독립이 드디어 결정 났다. 비록 벽지나 바닥이나 다시 갈아엎어야 할 걸 생각하면 좀 더 걸리긴 하겠지만. 가구도 사야 하고.
“오늘 방송은 무슨 게임을 하실 겁니까?”
아까의 문자와 방금 전의 대화로 무언가를 알아냈을 것임에도 박기철은 티 내지 않고 물었다. 뺀질거리는 얼굴은 짜증 나지만, 믿음직스럽다.
“아직 생각해 둔 게 없습니다.”
“그럼 제가 추천해 드려도 될까요?”
은우의 몸이 멈칫거렸다. 헬멧 안쪽 검은 눈동자가 치열한 고민에 휩쓸렸다.
과연 박 팀장님의 추천은 멀쩡할 것인가. 멀쩡하지 않다면 또 스트레스를 왕창 받는 하드코어 병맛 게임인가. 하드코어 병맛 게임일 때 그는 버텨 낼 수 있는가.
근데 거기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외려 형과의 문제는 잊혀지는 거 아닐까. 빡쳐서 집중은 더 잘될 것 같기도 하고?
“…이번에도 정상적인 게임입니다.”
“믿어도 되겠습니까?”
“제 신뢰도에 눈물이 나는군요.”
박기철은 가증스럽게 눈물 찍어 내는 척했다. 은우의 눈이 천일염 밭으로 변모했다.
“켄 님, 왠지 시선이 따갑네요. 켄 님의 눈이 보이지도 않는데 왜일까요?”
“그렇습니까.”
눈치 좋게 은우 씨란 호칭을 켄 님으로 바꾼 그는 곧바로 자세를 정정했다. 그리곤 그에게 추천 게임을 보여 주었다.
“이건…….”
“액션 장르는 질리도록 해 보셨으니까요. 광고 찍으실 때 다른 장르도 재밌어하시는 것 같으시길래 지금까지 안 해 보신 장르를 가져왔습니다.”
“Two Hand Clapping?”
노래로 길 만드는 게임이 등장했다.
* * *
“유하, 구하. 오랜만입니다, 여러분.”
─켄하~
─안녕하세요!!
─님 넘 보고싶었어ㅠㅠ
─유어튜브에서 이사왔어요~
─일주일만에 보니까 반갑잖어
─그리웠따ㅠ
“그리우셨습니까? 그건 좀 마음에 드네요.”
─?ㅋㅋㅋㅋ
─우리가 괴로운 게 즐거워,,,,?
─이런 게 취향이군아,,,,,
언제나처럼 소소한 농담과 신변잡기로 대화로 방송의 포문을 열었다. 지난날을 거쳐 상승한 그의 인기는 시작하자마자 수천 명의 사람을 불러들인다. 지금도 실시간으로 상승 중이었다.
─소리 좋아진듯?
─머임? 음향 엄청 좋아졌는디?
─장비 드뎌 바꿈?
─브알 아닌가보네
“네, 오늘은 PC 게임입니다. 근데 장비 많이 티 납니까?”
다이아박스 사옥에 있는 장비들이 워낙 좋아서 그런지 사람들은 곧바로 눈치챘다. 은우는 목덜미를 쓸며 이실직고했다.
“그래도 곧 이사 가니까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오, 드뎌 이사
─크 돈 많이 벌었으니까 좋은데 가겠지?
─미국 어땠음요?
─부럽다ㅠ 난 언제 집 마련하냐ㅠ
“미국이요? 별로 색다르진 않았습니다.”
20분가량 미국에 대한 이야기로 떠들었다. 물론 은우의 말재간은 그렇게 좋지 않았으므로, 그는 이야기를 길게 하는 대신 오늘 할 게임을 틀었다.
“오늘은… 오늘 할 게임은… 하, 이거 그냥 바꾸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바로 후회가 들어찼다.
─먼데
「‘오겜무?’ 님이 ‘5,000원’ 투척!
대체 뭐길래?」
─켄 떠는 거 처음 보는듯?
“…일단 ‘Two Hand Clapping’을 할 겁니다. 여독이 다 풀리지 않아 가볍게 할 수 있는 게임을 추천받은 건데… 그게 될지 모르겠네요.”
은우는 게임을 틀면서도 이게 정말 옳은 선택일지 다섯 번 정도 고민했다. 노래로 길을… 노래로… 노래…….
“역시 게임, 바꾸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다른 거 하죠.”
이거 하면 정말 가족 일은 잊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대신 다른 걸로 스트레스 받을 것 같다.
─???
─뭐임ㅋㅋㅋ
─음치 테스트 게임이다!!
─Wow
“박 팀장님이 가볍다고 추천해 주신 거라 어떤 게임인진 잘 모릅니다만, 그래도 가볍게 끝날 것 같지가 않습니다.”
─아ㅋㅋㅋ박팀장님 추천이면 떠는 거 킹정이지ㅋㅋㅋ
─이거였네ㅋㅋㅋㅋㅋ
─박 팀장님 믿습니다
─근데 투클은 그닥 병맛 아닌데??
사람들은 박 팀장이 추천했다는 이유만으로 그가 그리 생각한다며 오해했다. 아니었다. 은우는 박 팀장 추천이라서 이러는 게 아니었다.
“다른 게임 하는 게…….”
─이거 진짜 금방 끝나요ㅋㅋㅋ
─하고 하자 형ㅋㅋ
─못해도 20분이면 끝남ㅋ
─켄 노래솜씨 ㅈㄴ 궁금
─귀 녹는 거 아님??
“아니…….”
은우가 드물게 시작부터 발을 빼려 하자 사람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아무렴 그의 노래 실력을 보고 싶은 것도 있을 테고, 그들 입장에선 어려운 게임이 아닐 테니 권할 수 있는 것일 테다. 그가 약한 모습 보이는 게 웃기기도 할 테고.
그렇지만 그들은 몰랐다. 노래라는 단어가 나온 시점에서, 음치 테스트 게임이란 별명이 붙은 시점에서 이 게임은 절대 가볍지 않다. 적어도 은우에겐 그랬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시청자들에게 미리 경고했다.
“친구가 저보고 한 말이, ‘너는 평생 노래방 가지 마라.’였습니다. 전 분명 경고했습니다.”
참고로 저 친구는 희수도 되고, 전생의 배신자들도 된다. 그의 노래 실력은 전생부터 이어지는 유구한 역사가 있었다.
─형 음치구나ㅋㅋㅋ
─노래 못 부르나봐ㅋㅋㅋㅋ
─헉ㅠㅠ대반전 존나 귀여워ㅠㅠ
─충신쉑 쳐내!
거기서 시청자들도 적당히 그가 노래 못 부를 것을 직감했다. 다만 그들이 계산하지 못한 것은 그들이 상상한 음치의 수준이 은우에게 대면 그마저도 고평가될 수 있다는 거였다.
“하…….”
은우는 한숨과 함께 시작 버튼을 눌렀다. 동화풍 배경의 길거리가 나타났다. 주인공은 악기였다.
곧 세계관 설명이 짤막하게 떠올랐다.
“정령들의 세계에 온 걸 환영합니다. 이 세계의 정령들은 1년에 한 번씩 왕들을 위한 연회를 열고 있습니다. 당신은 그중 노래의 정령입니다. 왕을 위한 연회에 참석하기 위한 여행을 떠나세요.”
정말 깔끔한 스토리였다. 은우의 눈이 아련해졌다. 이 정령은 오늘 안에 연회에 참석하지 못할 수도 있다.
『당신이 낼 수 있는 가장 낮은 음을 흥얼거리거나 부르세요.』
게임 시작에 앞서 음 조율을 위한 메시지가 떴다. 은우의 눈이 흔들리다가 마이크 앞에 입─비록 헬멧이 한 겹 씌워져 있지만─을 가져다 대었다.
“아, 아, 아─.”
─귀 녹는다아ㅏㅏㅏ
─아, 이어폰 가지러 간다ㅋ
─분위기 있다
─오빠아ㅏㅏㅏㅏ
「‘반밀반구’ 님이 ‘10,000원’ 투척!
내 귀에 캔디,,,,꿀처럼 달콤했니,,,,,」
─저놈 나이 몇이야ㅋㅋㅋㅋㅋ
─할배요,,,,
낮은음이 후욱 들어오고, 낮은음 설정이 완료되었다.
이제 시작이구나. 은우는 헬멧의 안면을 쓸며 캐릭터를 조작했다. 노래의 정령은 성악가를 캐릭터화한 듯한 존재였다.
“길이, 막혀 있네요. 발판을 위로 올려야 하나.”
은우는 바닥에 꺼져 있는 발판 위에서 점프 버튼을 눌러 보았다. 점프가 낮아서 그 건너편으로 넘어갈 수 없었다. 발판이 위로 올라와야 했다.
『높은음을 내면 위로 올라갑니다.』
“아, 아아악!”
첫 칸은 그냥 높은 음만 내면 됐으므로 어떻게 쉽게 올렸다. 문제는 벌써부터 삑사리가 났다는 것이었다.
─ㅋㅋㅋㅋㅋㅋㅋ
─시작부터 대꿀잼의 예감
─반전미 오진다 진짜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이게 뭐야ㅋㅋㅋㅋ
─개웃곀ㅋㅋㅋ
그는 입술을 꾹 다물며 캐릭터를 움직였다. 두 번째 장애물도 발판을 올리는 형식이다. 다만 아까 올려야 한 게 한두 단계 올리는 정도라면 이건 한 다섯 단계는 올려야 할 성싶다.
“이건 엄청 올려야겠네요.”
─어서 볼륨 낮춰!
─사격 시작이다!!
─음 올릴 수 있음?ㅋㅋㅋ
─볼륨 낮춰!!!
“…….”
은우는 숨을 다잡은 뒤 발판 위에 캐릭터를 올렸다. 그리고 소리를 냈다.
“아아아아!”
낮은 목소리가 억지로 올라간 탓에 살짝 갈라지고, 발판이 어중간하게 올라갔다.
“아니, 얼마나 올려야 하는 거야.”
은우는 벌써부터 힘겨워지는 걸 삼키고 다시 소리를 냈다. 아아아! 사람들이 귀를 막을 정도의 고성이 되고 나서야 겨우 발판이 끝까지 올라갔다.
“하…….”
시작한 지 5분도 안 됐는데 지쳤다. 그의 손이 안면을 다시 쓸었다.
“…오늘 방송은 하루 종일 이럴 예정입니다. 볼륨 낮추는 걸 권장드립니다.”
─오늘 방송 레전드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ㅋㅋㅋㅋㅋㅋ
─액션 게임에서도 안 지른 비명을 여기서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ㅅㅂ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벌써부터 개재밌다ㅋㅋㅋㅋㅋㅋㅋㅋ
세계 톱급 실력자란 게 밝혀진 후에도 노래 부르기만 하면 결투 신청을 받을 정도의 실력자가 음치 테스트 게임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 * *
다섯 번째 장애물은 공중에 떠 있는 음표에 맞춰 정확히 음을 내야 하는 것이었다. 정확힌 일정 시간 동안 내는 소리가 음으로 치환되어 그래프처럼 표기가 되는데, 음표 위치에 도달할 때쯤 알맞은 음을 타이밍 맞게 정확히 내야 했다.
참고로 은우는 여기서 5분째 막혔다. 그가 내는 음은 정말이지 기가 막히게 음표들을 피해 갔다. 기본음이 워낙 낮다 보니 조금만 올려도 확 치솟아 버리는 탓이다. 그렇다고 가성을 하면 음정이 워낙 불규칙해서 소용이 없었다.
─모든지 잘하는 사람은 없다더니....
「‘꼬까콜라’ 님이 ‘1,000원’ 투척!
모든 걸 다 가졌지만 노래실력은 못가진 남자 켄」
─진짜 저렇게 못하기도 어려울 듯ㅋㅋㅋㅋㅋ
은우는 책상에 잠시 머리를 박았다.
“제가 다른 게임 하자고 했잖습니까……. 후원은 감사합니다.”
숫제 올 것 같은 목소리였다. ‘켄 우냐?’ 내지 ‘형 울어요?’, ‘오빠 울어?’, ‘동생 우니?’ 따위의 말들이 채팅 창을 점령했다.
“아직 안 웁니다.”
─아직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
─울고 싶다는 거잖아ㅋㅋㅋㅋ
─저 목소리 가지고 저렇게 노래 못하기도 어려울 듯
“심기일전하고 다시.”
─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이 와중에 목소리 꿀이라서 더웃겨ㅋㅋㅋ
─진짜 비명이 듣기 좋은데 시끄러운 것도 재능임
─할 수 있다!!
─이쯤되면 소음 공해 수준
“올라, 가아아아아!”
은우는 시청자들이 알려 준 음 올리는 방법을 따라 외쳤다. 그래프가 겨우 올라갔다가 음표에 닿기 직전 꼬꾸라졌다.
쾅!
은우의 손이 책상을 쳤다.
「‘형안돼요’ 님이 ‘1,000원’ 투척!
거기 다이아박스 사옥이라며;; 부수면 안돼;;」
「‘강남건물주’ 님이 ‘50,000원’ 투척!
화이팅^^7」
─오늘 방송 진짜 미쳤냐고ㅋㅋㅋㅋ
─켄, 아직 많이 남았다.
그는 이를 악물고 마음을 다잡았다.
“…후우, 형안돼요 니임! 강남건물주 니이이임! 후원 감사합니다아아!”
후원자들 닉네임을 부르며 악을 쓰자 아주 겨우, 아주 겨우 그래프가 맞아떨어졌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우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켄이렌 ㅅㅂ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람들이 웃다 흐느끼는 사이 캐릭터가 전진했다. 여섯 번째 장애물은 다섯 번째 것과 동일했다.
“아, 아, 아! 아… 악!”
은우는 아예 낮은 걸 기본으로 갔다가 음표에 다다를 때만 음을 확 올려 보았다. 놀랍게도 단번에 성공했다. 다섯 번이나 갑자기 악, 소리를 내느라 목이 아픈 건 둘째였다.
“…이게 이렇게 깨는 게 아닐 텐데…….”
자괴감이 더 들었다. 심지어 장애물은 열 걸음도 가지 않아 또 나왔다. 은우의 몸이 옆으로 기울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끝나질 않아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곶통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옥타브를ㅋㅋㅋㅋ올리질ㅋㅋㅋ못햌ㅋㅋㅋㅋ
사람들은 흔치 않은 그의 괴로움에 즐거워 미치는 중이다. 어째 어지간한 게임 방송 이상으로 시청자 수가 많다.
“이번 건 또 뭘까요…….”
─목소리 봐ㅋㅋㅋㅋㅋ
─목소리에서 피곤이 묻어나온다ㅋㅋㅋㅋㅋ
─진짜ㅋㅋㅋㅋ이번 방송 전설이다ㅋㅋㅋ
─역대급ㅋㅋㅋㅋ꿀잼ㅋㅋㅋㅋ
─아 진짜 너무 미친 거 아니냐고ㅋㅋㅋㅋㅋㅋㅋㅋ
발판 앞에 서자 건너편에 있던 악기들이 연주를 했다. 도미솔라솔시미. 대충 그런 음이었다. 아닐 수도 있고. 은우는 한숨을 푹 내쉬고 음을 냈다.
“제에바알 끄읕 조옴 보오자아!”
놀랍게도 단 한 음도 맞지 않았다. 은우의 손이 헬멧의 앞면을 다 가렸다.
“…차라리 검은기사 켠왕시켜 주십쇼……. 배신자 목을 따 오겠습니다.”
사람 모가지 따는 데는 재능 있어도 노래에는 처참한 자가 기어코 백기를 흔들었다.
─어림도 없지ㅋㅋㅋㅋㅋ
─그럼 형 이거 깨고 켠왕가자
─절대 안 됨ㅋ
─무조건 엔딩봐ㅋㅋㅋㅋㅋㅋ
물론 시청자들은 그를 절대 놔주지 않았다.
「‘레드바’ 님이 ‘10,000원’ 투척!
행님 계속 가시죠ㅋ 이 아우 응원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시청자들 사이에 숨어 있던 방송인까지.
「‘레리’ 님이 ‘30,000원’ 투척!
사옥 오셨다고 하셔서 뵙고 싶었는데…안 될 것 같네요^^7 오늘 안에 게임 꼭 끝내시길 기원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레남매 방송 안하고 뭐하냐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진짜 개얄밉다
─ㅋㅋㅋㅋㅋㅋㅋ아 오늘 방송 진짜 처음부터 끝까지 버릴게 없다ㅋㅋㅋㅋㅋㅋ
“…….”
은우의 괴로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