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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자도 방송할 수 있습니다-74화 (74/233)

74화

시간은 금방 갔다. 예상대로 개발진에겐 하루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었지만, 어쨌든 그들은 은우를 다시 불러냈다.

오현도 함께였다. 그는 은우가 보이는 모든 것을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열망 어린 눈을 했다. 전생에선 참 흔했던 눈이다.

“…사람이 많네요?”

“자문을 구할 다른 분들이 필요했거든요.”

은우는 구경꾼이 늘었다는 것을 의식했다. 개중 몇몇과 오현이 친근하게 인사하는 걸 보니 대체로 그쪽 계통 사람인가 보다.

“불편하시면 따로 공간을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괜찮습니다.”

광대가 되는 기분이긴 하지만, 그거 때문에 거부할 거였으면 방송을 시작하지 않았을 거다. 은우는 허락을 내리며 익숙하게 캡슐 앞에 섰다.

이번엔 대체 어떤 녀석이 나오려나.

캡슐이 닫히고 세상이 뒤바뀌었다. 한 번 왔다 갔을 뿐인데 익숙해진 백색 공간이 펼쳐졌다.

그 속에서 색을 가진 존재는 오직 그와 상대뿐이다.

“…나?”

한데 그 앞에 내세워진 것의 형상이 익숙하다. 갈색 피부와 옥색 눈동자.

은우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깜찍한 수네요.”

켄이 그의 앞에 있었다.

▣ 074. 신보다 더 뛰어난 인간

[단기간에 만들려다 보니 형태를 달리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불쾌하셨습니까?]

단순한 게임이었다면 이미지를 덧입히는 걸로도 충분하다. 그러나 이건 극사실적으로 구현한 시범 공간이었다.

이미지를 덧입혔을 경우 신체 간의 괴리감이 발생한다. 하루 이틀 내에 그것까지 조율하긴 어려웠을 터. 은우는 그들을 이해했다.

“괜찮습니다.”

느낌이 굉장히 묘하긴 하지만, 괴수신 때도 이런 식으로 싸웠다. 혼란은 없다. 순간이 겹치는 이상 평가가 더 박해질 수는 있다마는.

설마 저 얼굴로 설정해 두고 쓰레기 같이 만들어 두진 않았겠지. 양심이 있다면 그런 짓 못 한다.

은우는 사칭범들을 떠올렸다가 머릿속에서 흩트렸다. 설마 저들까지 그런 짓을 벌일까.

[10초 후에 가동하겠습니다.]

그는 무기를 착용한 후 켄을 살폈다. 자세히 보면 켄 역시 그와 비슷한 무기들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그에 비해 그 숫자가 현저히 적었다. 은우는 그 원인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전부 그가 사용한, 그것도 데이터를 충분히 수집할 수 있을 만큼 많이 사용한 것들만 집어넣었다.

다양하게 넣어 봤자 따로따로 놀면 한 가지 패턴에 집중한 것만 못하단 걸 저들은 깨달은 모양이다.

은우는 그것을 가만히 살펴보다 켄이 가지고 있는 무기만 남기고 가진 무기를 다 버렸다.

기만이자 얄팍한 배려였고, 이 싸움을 아주 조금이나마 길게 이어 나가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를 아무리 똑같이 베껴 낸다고 해도 다섯 개의 무기를 쓰는 그와 열 개의 무기를 쓰는 그는 또 달랐으니까.

바닥에 떨어진 무기가 1초 뒤에 파스스 사라졌다. 눈치 좋은 직원들이 데이터를 삭제─회수?─한 거다. 카운트다운이 어느새 3초대로 접어들었다.

[2.]

그는 손잡이가 긴 쌍검을 옆으로 늘였다. 켄도 마찬가지였다.

[1.]

이걸 뭐라 하지? 자기 자신과의 싸움? 미러전? 다운그레이드됐으니까 아닌가?

은우는 단어를 고르다가 우수 검을 역수로 쥐고 가슴께까지 올렸다. 검은 검면이 켄에게 비치도록 눕힌 상태다.

[가─]

직원이 경고하기도 전에 폭발적으로 도약한 켄이 그와 검을 맞댔다. 설정상 근력은 동등. 때문에 은우는 조금 밀렸다. 다만 검에 썰리는 일이 벌어지거나 하진 않았다. 그의 팔에 받쳐진 검 면은 두 개의 날을 완벽히 방어했다.

좌수 검이 켄의 목을 노렸다. 당연하지만 상대는 이미 두 발 물러나 검의 반경에서 벗어난 채다.

쫓는다. 우수 검을 역수에서 정수로 돌리며 앞발을 내디뎠다. 당연하게도 켄이 검을 휘둘러 왔다.

까앙!

복제는 제대로 되었다. 손아귀가 얼얼해졌다. 서로 칼에 도가 텄다 보니 일반인들끼리 칼을 맞댄 것처럼 우악스런 대면이 된 거다.

그렇지만 한계도 보였다. 정말 그가 선보인 것들만 탑재되었다. 그 이상이 없다.

은우는 괴수신 때를 떠올렸다. 그를 베껴 냄으로써 그의 약점을 속속들이 꿰뚫었던 녀석을, 그를 알고 있음으로써 그가 행하는 모든 것을 파훼했던 그 신을.

그래서 그 신은 누가 죽였지?

깡!

다시 검이 마주쳤다. 부딪칠 땐 그리도 격렬한 쇳소리가 서로의 몸을 타고 흘러내릴 때는 그 흔한 긁는 음조차 나지 않는다.

은우는 손안의 검을 빙글 회전시킨 후 그대로 찔렀다. 켄은 그 찌르기를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쳐 냈다.

이번엔 켄 측에서 공격이 들어왔다. 위에서 아래로 쏟아지는 대각선 베기. 은우는 역수로 쥔 검을 마주 대었다.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검이 상대의 검을 교차하며 훑었다.

누가 뭐라 할 것 없이 동시에 몸이 떨어졌다. 그리고 다시 붙었다.

켄의 무기가 바뀌었다. 쌍검을 조작해 만든 단창. 앞뒤로 칼날이 달린 창─저걸 창이라 말할 수 있다면─이다. ㅁ자로 이뤄져 있던 손잡이를 한쪽 모서리부터 착착 펴 일자로 만든 후 결합해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리치상으론 저것이 먼저다. 은우는 공중으로 튀어 단창을 밟았다. 그때 달칵 하고 창이 분리되었다. 하나의 검은 버리되 하나의 검을 되찾는다.

은우의 좌수 검과 켄의 검이 맞닿았다. 은우에겐 아직 우수 검이 남아있으나, 그걸 알기에 켄은 재빨리 단검을 들고 던졌다.

타깃은 몸을 틀어도 피하기 힘든 상체. 심지어 어깨와 가슴을 잇는 그 부분.

검이 제대로 박히면 근육이 잘린다.

은우는 우수 검으로 그것을 튕겨 냈다. 그리곤 역수로 잡고 그대로 찍었다.

힘겨루기하던 좌수 검과 켄의 검이 켄의 기권으로 무산되며 켄이 뒤로 빠졌다.

찌르기는 켄의 볼을 긁는 데 그쳤다.

그는 그 꼴을 보곤 바로 두 개의 검을 허리춤에 걸었다. 대신 꺼내 든 것은 한 쌍의 도였다.

두 자루가 한 세트인 점은 같으나, 아까 썼던 것은 손잡이가 긴 것에 비해 이것은 손잡이도 짧고 검신도 짧다.

반면 켄은 검을 집어넣지 않고 빈 쪽 손에만 도 한 자루를 들었다.

그들이 다시 격돌했다.

채앵! 챙!

검의 궤적이 더욱 현란해지고 빨라졌다. 상대의 검을 막는 척하며 은근슬쩍 손목 밴드에 도의 폼멜을 걸고 밴드를 잡아 도를 휘두른다든가, 기교 있게 밴드와 도를 분리해 내어 자유자재로 가지고 논다든가.

은우의 오른손이 녀석의 옆구리를 가르기 위해 뻗어졌다가, 켄이 팔뚝을 옆구리에 딱 붙임으로써 그 사이에 갇혔다. 켄의 반대쪽 손이 든 검이 은우의 목을 내려치기 위해 내려왔다.

은우는 왼손에 들고 있던 검을 휘둘렀다. 동시에 잡힌 오른손은 폼멜과 밴드를 연결한 고리를 비틀어 빼고 위로 던졌다.

깡!

왼손의 검과 켄의 검이 부딪치며 검로가 틀어지고, 오른손이 던졌던 검이 켄의 어깨를 넘어 은우의 왼손이 있는 지점으로 날아왔다.

좌수 검은 어차피 밴드로 손목과 연결되어 있다. 사정없이 검을 놔 버린 왼손이 날아온 도를 잡고 켄에게 반격을 가했다.

오른팔을 붙잡고 있던 압력이 사라졌다. 켄이 뒤로 물러난 것이다. 그의 목에는 검은 선이 대각선으로 쇄골까지 그어져 있다.

그렇지만 반격은 은우만 한 게 아니다. 만일 은우의 옆구리를 더듬어 보거든 옷이 살짝 잘려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테니. 물러날 때 검으로 쓱 그은 흔적이다.

은우의 입꼬리가 비틀어졌다.

자신과 똑같이 움직이고 똑같이 행하는 존재를 죽이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달라지면 된다. 그것이 베끼지 못한 것을 선보이면 된다. 단순히 조합을 바꾸는 게 아니라 없던 것을 만들면 이길 수 있다.

어렵지만 확실한 필승법이었다.

하물면 이 녀석은 그의 모든 것을 가지고 있지도 못하다. 죽이기 얼마나 쉬운가.

그의 좌우 검이 다채롭게 바닥을 기고 허공을 조각 내다 켄의 양 검을 위로 튕겨 냈다. 훤히 드러난 옆구리를 짚고 다리를 걸면 훌륭하게 넘어트릴 수 있다.

은우의 검이 켄의 목을 노리고 박혀 들었다.

데굴 구른 켄이 무기를 바꿔 쥐려했다. 은우의 손에서 던져진 단검이 그를 따랐다. 한 번 더 구른 켄이 손으로 그것을 쳐 냈다.

맨손인가. 밴드와 완전히 분리된 검이 다시 제자리에 자리 잡았다.

켄이 그것을 재 보기 위해 눈을 게슴츠레 좁힐 때─저런 습관까지 잘도 넣었다─은우는 재지 않고 덤벼들었다.

어차피 상대의 무력은 그에게서 파생된 것. 상대의 전력은 전부 안다. 잴 이유가 없다.

은우의 몸이 켄에게 접근했다. 켄이 검을 휘둘렀지만, 그는 그 아래로 미끄러진 뒤 연속해서 쫓아오는 검을 제자리 뛰기로 피했다.

발 하나가 대지와 닿고 발목이 비틀리듯 회전하면 나머지 몸도 회전한다. 발뒤축이 켄의 손목을 정확히 타격했다. 무기가 핑그르르 튕겨 나간다.

손과 손이 부딪치고 발이 스텝을 밟다가도 서로의 영역을 무너트리기 위해 허수를 섞었다. 은근슬쩍 블러핑을 섞는가 하면 피하는 척 공격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다 말고 순간, 은우의 손이 허벅지에 달려 있던 세 개의 막대기를 집고 그대로 허공으로 날렸다.

손으로 막대기를 하나씩 집고 가운데 막대기가 추락하는 것에 맞춰 양쪽에서 콱 박는다. 그러면 자동으로 결합하며 긴 창이 된다.

켄 역시 그것을 만들어 내 대항할 준비를 갖췄다.

휘두르고, 찌르고, 내려치고, 막고. 따다닥 소리가 경쾌하게 울리며 춤을 추었다. 빙글빙글 도는 창들은 뱀처럼 스산하게 움직이다가 갈대처럼 부드럽게 휘고 권력자의 허리처럼 꼿꼿하게 굴었다.

잡는 방식에 따라 거리감이 달라지다 보니 그들의 영역 또한 얽히고설켜 멀어졌다 가까워지길 반복했다.

그러다 갑자기 하나의 창이 한없이 위로 치솟았다. 은우가 벌인 짓이었다.

그의 손이 켄의 창을 붙잡고 박투를 다시 시작했다. 자유로운 건 다리였으므로 그들의 다리가 뒤섞였다. 심지어 창을 잡은 손을 이리저리 바꿔 가며 위쪽의 싸움도 이어 갔다.

한 번도 시도해 본 적 없던 싸움이라 그런가, 켄의 대응이 점차 늦어지고 어지러워졌다.

퉁!

드디어 추락한 은우의 창이 은우의 발에 맞고 튕겨 올라갔다. 한 손으론 켄의 창을 잡고 있던 은우는 나머지 손이 그것을 잡았다.

휘둘러질 채비를 갖춘 창에 켄이 그것을 마주 붙잡으려던 순간, 은우는 창을 고쳐 잡았다. 그의 창이 켄의 가슴팍을 콱 찔렀다.

“……!”

켄이 뒤로 반 걸음 물러났을 때, 은우는 창을 제 골반에 쳐 반동으로 분리해 내고 그대로 던졌다. 켄의 팔이 그것을 쳐 냈다.

은우가 기습적으로 치고 나간 것도 그때였다.

손날이 켄의 목울대를 가격하고 발은 다리를 걸어 넘어트린다. 어느새 검을 쥔 오른손이 그 목에 검을 박고 내리그었다.

피가, 아마도 태양에 녹인 금처럼, 용암처럼 흐르는 것이 시야 위로 튀었다.

[종료되었습니다!]

직원의 목소리가 파도처럼 쳐 왔다.

은우는 그 속에서 호흡을 골랐다. 이건 현실도 아니고 과거도 아니다. 켄의 목은 검에 베였지만, 머리는 동강 나지 않았다. 고로 피도 흐르지 않는다.

그는 목을 매만졌다. 정말이지, 본인 얼굴을 한 머리통을 세 번이나 자르는 것도 못 할 경험이다.

“잘 만드셨네요.”

기이한 감각에 몇 번 손을 주억이던 그는 평가를 내렸다. 마지막과 별개로 이 녀석은 제법 괜찮았다. 비교군을 두지 않고 기대를 접은 채 임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괜찮다의 이상인지도 모른다. 아무렴 그제의 쓰레기 같던 데이터가 모여 오늘의 괜찮은 무언가를 만들어 내지 않았나. 그렇다면 이 괜찮은 데이터들을 모았을 때는 대체 어떤 게 나올까.

짜증 대신 기대가 차올랐다. 기대하면 안 되는데, 인간이란 건 어찌나 학습 능력이 없는지.

그리 조소하면서도 은우는 한 마디를 내뱉었다.

“한 번 더?”

그렇지만, 솔직히 그래. 부족함을 메우기 위해서 아니라 더 나은 것을 위한다는 심정은 제법 쓸 만하다. 기분이 나쁘지 않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좋다.

은우의 눈썹과 입술이 완만한 호선을 그렸다.

* * *

“아주 시원하게 놀고 나왔군.”

캡슐에서 나오자마자 들은 말이었다. 은우는 건네받은 물통으로 입을 적시며 씩 웃었다. 가시지 않은 투기에 뜨끈히 달아오른 눈매가 약간의 폭력성을 담고 휘었다. 적의는 없으나 투기는 남아 있는 눈동자다.

주변 사람들이 흠칫 물러났다.

“글쎄요, 그건 아닙니다만.”

아무리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해도, 객관적으로 봤을 때 카롬사가 구현하는 녀석들은 질이 떨어진다. 은우는 단호히 오현의 말을 부정했다.

“제가 시원하게 놀려면 신 정돈 데려와야 할 겁니다.”

남들이 듣기엔 오만한 농담, 진실은 아는 자에겐 농담이 아닌 말이 떨어졌다. 짝짝짝. 박수 소리가 들린 건 그 즈음이었다.

오현과 은우의 고개가 돌아갔다. 은근슬쩍 은우에게 다가오려던 사람─오현 같은 무술가들일까─들의 걸음도 자동으로 멎었다.

“동의합니다. 솔직히 신이 아니고서야 켄 님께 대적하는 건 어려울 것 같네요.”

어느 부서 직원인지 모를 사람이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은우는 정체를 추측하기 위해 카롬사에 방문한 이래 기억들을 더듬었다. 다만 그가 이곳에 입장한 후, 스쳐 지나가는 형식으로도 마주친 바가 없다. 모르는 얼굴이다.

그런데도 지금 대화에 끼어들었지. 슬쩍 주변을 살피면 다른 사람들은 저 사람의 눈치를 보고 있다. 전부까진 아니지만 다수의 사람들이.

높은 직급인 걸까? 맞다면 대체 얼마나 높은?

“예부터 인간은 감히 견줄 수 없는 재능을 가진 사람에게 신의 자리를 주곤 했죠. 혹은 신의 이름을 별명으로 붙이든가.”

일단 무슨 말을 하는지 보기로 했다. 은우는 더 말해 보라는 의미로 목덜미를 쓱 쓸며 시선을 마주했다. 상대의 눈동자가 둥글게 휘었다.

“그렇지만 신보다 더 뛰어난 인간이 있다면, 그땐 신이야말로 그 인간의 이름을 받아야 하는 건 아닐까요?”

그녀는 캡슐에 손을 얹더니 그대로 쓸었다. 시선은 캡슐에 그치나, 사랑에 빠진 듯한 심상은 아마 그 너머를 보고 있을 것이다.

“켄 님만 괜찮으시다면 앞으로 탄생할 신에게 켄 님에게서 따온 이름을 붙이고 싶습니다.”

조금 뜬금없는 말이었다. 비록 앞선 문장에서 의도는 읽어 냈다지만, 왜 하필? 은우는 조금 숙고하다가 입술을 떼었다.

“그건 저 데이터로 만들어질 캐릭터가 신만큼 강하단 소리처럼 들립니다만.”

“켄 님께서 이렇게까지 해 주셨는데, 해내야지 않겠습니까.”

“하.”

그는 목덜미를 손끝으로 쓸다가 입을 손바닥으로 가렸다. 더 나은 것을 바랄 뿐, 그가 속 시원하게 싸울 수 있는 미래는 기대하지 않기로 했는데.

“제 이름은 비쌉니다.”

“절대 실망시키지 않을 겁니다.”

이러면 괜히 또 설레지 않나.

“전 당신을 모르는데.”

“아, 소개가 늦었군요.”

무슨 자격으로 그런 장담을 하느냐 돌려 물으니 자기소개가 돌아왔다.

“검은기사의 프로듀서 겸 메인 디렉터, 마야 플로이드입니다. 이제 자격이 되겠습니까?”

생각보다 거물의 등장에 은우는 픽 웃고 말았다. 별로 긴장이 되거나 하진 않는다. 프로듀서 겸 메인 디렉터라는 건 저 장담의 자격을 증명할 뿐이므로.

“만약 붙인다면?”

“케네스Kenneth은 어떻습니까.”

케네스의 약칭으로 쓰이는 것이 켄이다. 그러나 때론 순서가 바뀌어 켄에서 케네스가 파생되는 일도 있지 않을까.

은우는 어깨를 으쓱였다.

“자세한 건 제 채널과 이야기하시죠.”

그는 허가하겠다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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