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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자도 방송할 수 있습니다-52화 (52/233)

52화

이율드르크는 거대한 악어였다. 그것의 머리통만 해도 인간을 눕힌 것보다 길었고, 날카로운 이빨은 촘촘하니 무려 3줄이나 존재했다. 정수리는 꼭 바위를 매단 것처럼 비늘이 경화돼서 잠수하고 있으면 바위라고 생각할 것이다.

“우린 다 죽을 거야…….”

“비관하지 마! 우린 긍지 높은 카카라족이다! 카라카께서 우리를 가호하신다!”

“그렇지만─!”

카카라족 전사들이 침음을 삼킬 때, 누군가가 앞으로 나섰다.

“먼저 가십시오.”

푹, 하고 바닥에 랜스의 뾰족한 부분이 내려찍혔다. 랜스를 단단히 잡은 손은 가죽 장갑을 착용하고 있고, 훤히 드러난 팔뚝에는 기하학적인 하얀 선이 그려져 있다.

“제가 시간을 끌겠습니다.”

검은 수정 귀에 매달린 붉은색 귀고리가 짤랑 울었다.

▣ 052. 사냥의 끝

“늪지대에 들어가면 이동 속도가 느려진다! 늪을 밟지 않도록 조심해!”

NPC들이 조언을 던지며 우르르 도망치기 시작했다. 전부가 도망치는 건 아닌지, 아니면 그를 조금이라도 돕기 위함인지 후열의 전사들이 석궁을 쏘았다.

별 도움은 안 됐다.

크아아아!

이율드르크가 포효했다. 은우는 랜스를 치켜들었다.

랜스의 가장 큰 특징은 돌진기를 발동할 시 엄청난 속력을 자랑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정확히 맞출 시 대미지가 폭증한다는 것. 이 두 개다.

장점이 뚜렷한 만큼 단점도 명백했다. 지형상 돌진이 어렵고 녀석이 땅 안으로 들어가면 맞출 수도 없다. 랜스Lance라는 게 짧은 것조차 3m를 넘기다 보니 다루기 어려운 것도 문제였다.

“조금 아쉽네요.”

그렇지만 은우에겐 그런 단점들마저 아쉬움으로 그쳤다. 은우는 랜스를 양손으로 단단히 붙잡았다.

“이번에도 미션 거실 분은 없겠죠?”

벌레잡이통풀은 달콤한 냄새와 꿀 같은 액체로 벌레를 유인해 잡아먹는다고 한다. 은우와 시청자들이 딱 그 짝이었다.

「‘강남건물주’ 님이 ‘50,000원’ 투척!

방패 버리고 노히트 1클 30만 원」

「‘개잡주같은데’ 님이 ‘1,000원’ 투척!

석궁 안 쓰고 마취제 안 쓰고 함정 안 깔고 어쨌든 순수하게 랜스만 써서 1트클 20만 원.」

─미션 바로 떨어지네ㄷㄷㄷ

─ㅋㅋㅋ근데 솔직히 켄은 뭘 걸어도 해낼 것 같아서....;;

─그거 ㅇㅈ

끝을 예감하면서도 흔쾌히 거는 이들이 있다. 이렇게 순순히 걸어 줄 줄은 몰랐기에, 은우의 눈썹이 확 들렸다가 입술이 삐뚜름하게 올라갔다.

한 손이 창을 놓고 방패를 들었다. 땡그랑! 방패가 바닥에 내던져졌다.

“요구하신 대로.”

은우의 몸이 순간 바람을 휘감았다.

촤악!

이율드르크가 꼬리로 늪지대의 진흙을 퍼 올려 그대로 던졌다. 은우가 돌진을 응용해 빠르게 회피하지 않았다면 진흙에 얻어맞았을 것이다.

그는 스태미나를 체크하며 돌진을 적당한 자리에서 멈추었다. 꼭 상대를 명중시켜야만 돌진을 멈추는 등의 시스템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은우는 차분히 적과 지형을 살폈다. 그가 쓸 수 있는 도구라곤 랜스밖에 없으니 잘 생각해야 했다.

돌진 시 소모되는 스태미나의 양, 아까 탐색할 때 확인해 보았던 늪지대 속 속도 하락 정도, 적의 약점 등.

먼저 꼬리가 있으니 꼬리 부위 파괴가 가능할 것이다. 꼬리가 있는 괴수는 대부분 꼬리 파괴가 가능하다 들었다.

다음으로 이빨. 이빨은 너무 작아서 어려울 것 같다. 그러면 손일까? 몸을 뒤덮은 비늘들도 큼지막한 게 시도하기 괜찮아 보인다. 만약 망치를 가져왔다면 정수리도 제법 시도할 만해 보이고.

은우는 이율드크르를 시선으로 분해하고 조립했다. 이율드크르가 대지에 몸을 파묻은 채 그에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보통 속도는 저 정도. 그렇지만 컷신에선 좀 더 빨랐다. 은우는 일일이 계산하며 이율드크르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이율드르크의 머리가 완전히 늪 속으로 처박혔다.

“3.”

그 시점부터 은우는 친절히 카운트를 세 주었다.

“2.”

조금 빠른 카운트에 추측조차 나오지 못한 채로 숫자가 줄었다.

“1.”

은우의 몸이 앞으로 기울어지며 발을 내밀었다. 괴수의 아가리가 그를 먹어 치우기 위해 늪지대를 벗어나 바윗덩이 위까지 머리를 내민 것도 그때였다.

평상시 고개에서 입만 벌린 게 아니라 가로로 입을 쩍 벌려 그를 사리물려 든다. 예상했다.

바위 위를 내달린 몸이 이율드크르의 만개하는 주둥이를 밟고 위로 튀어 올랐다. 그의 랜스가 돌진의 힘을 담아 바람을 휘감았다.

본래는 몸 전체가 나아가야 돌진이 유지되나, 돌진 자체는 어떤 시점에든 발동이 가능하다.

동시에 발동만 하면 랜스는 앞으로 나아갔다. 다음 발걸음을 내딛지 못하면 취소되지만, 랜스가 전진함으로써 상대를 피격한다면 다음 걸음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꽈앙!

폭탄 터지는 소리와 함께 이율드크르의 눈과 랜스가 부딪쳤다. 정수리의 단단한 비늘을 피해 연한 육질을 정확히 노린 공격이었다.

이율드크르가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을 쳤다. 은우의 몸이 빙글 날았다. 이대론 늪지대에 처박힐 가능성이 농후하다.

은우는 거기서 랜스를 조작해 날을 세웠다. 이율드크르가 몸부림칠 때 절묘하게 위로 올라온 꼬리에 칼날이 틀어박혔다. 이율드크르가 꼬리를 매섭게 휘둘렀다.

그 반동으로 은우와 랜스는 휙 날아가 저편에 도달할 수 있었다. 랜스가 바위 사이에 꽂히며 미끄러움을 줄였다.

“랜스는 부위 파괴 하기가 조금 까다롭네요.”

그는 허리춤의 가방에 손을 가져가 빠르게 손질용 숫돌을 꺼냈다. 싸악, 싸악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랜스의 관리도가 다시 상승했다.

이율드르크가 고개를 확 돌리며 은우를 향해 돌진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악어의 비늘이 달빛에 시퍼런 광을 흘렸다.

─피해!!

─켄 님 앞앞앞!!

─바다다다ㅏㅏ

직접 숫돌을 꺼낸 시점에서 언제든 캔슬이 가능하다지만, 공격을 앞두고 칼을 가는 여유로움에 사람들이 아우성을 쳤다. 방금 전 광경에 숨을 헐떡인 사람이 꽤 돼서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괴수를 네 자릿수 정도 썰어 보고 그들의 신마저 죽여 본 이는 태연하게 굴었다. 숫돌을 다시 인벤토리에 수납한 후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도달해서야 옆으로 회피한 것이다.

이율드크르가 주둥이를 휘저음으로써 그런 회피마저 따라왔다. 날 세워진 랜스가 그 주둥이와 격돌했다.

“물리 엔진이 잘 되어 있어서 다행입니다.”

덕분에 반동을 적절히 이용해 공격하는 척하며 회피하기 편하다. 은우는 이율드크르의 단단한 정수리 위에 섰다. 매끄럽지만은 않은 정수리는 붙잡고 버틸 만한 게 꽤 많다.

은우는 그 상태에서 랜서를 몽둥이처럼 꽝꽝 내려쳤다. 단단한 비늘이 상대적으로 적은 코 부분이었다. 살점이 점점 패며 이율드크르가 머리를 마구 뒤흔들었다. 저항이 제법 거세다.

“일인칭분들은 좀 어지러우시겠어요.”

─삼인칭도 어지러움;;

─스킬 안 찍지 않았음?? 머이리 잘 버팀??

─정보) 켄은 아직도 스킬은 안 찍었다

─진짜 예술이다,,,,

“스킬 중에 잘 버티게 해 주는 게 있나 보죠?”

─넹

─균형잡기랑 괴수타기 있음다

─그거 찍으면 보정 생겨요ㅋㅋㅋ

스킬 안 찍길 잘했다. 일반인과 달리 스킬이 필요 없는 이가 생각했다.

은우는 더욱 격렬해지는 저항을 보며 슬슬 뛰어내릴 준비를 했다. 스태미나가 한계치에 다다라 더 버티고 싶어도 못 버틴다. 마침 이율드크르도 늪으로 몸을 끌어 내리기 시작한 상태다.

그의 랜스가 이율드크르의 주둥이를 찍으며 앞으로 넘어갔다. 타격은 타격대로 들어가고 몸은 랜스를 장대 삼음으로써 안전하게 대지로 내려섰다.

물러서며 쓱 살펴본 이율드크르의 주둥이는 거의 걸레짝이다.

“아프겠네요.”

신체 능력이 뒷받침해 준다면 목을 쓰윽 그어 한 방에 보내 주었을 텐데. 은우는 쓸데없는 아쉬움을 표현했다. 남들이 보기엔 병 주고 약 주고, 아니 그것도 못 되는 그냥 위선이었다.

“그런데…….”

은우는 진동으로 이율드크르의 위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품은 의문을 꺼냈다.

“만약 입안으로 들어가면 어떻게 됩니까?”

─?

─갑자기 입이요?

─??

─호기심이 또....

“영화 보면 자주 나오지 않습니까. 일부로 먹혀서 연약한 속살을 찢고 나오는 그런 거.”

물론 그는 영화로 보지 않았다. 직접 실행해 보았지.

“아까 보니까 목구멍이 크던데…….”

─방금 아프겠다던 사람 어디감;;

─목구멍 들어갈 생각을 대체 왜하는 거예요ㅋㅋㅋ

─켄은 진짜 다 좋은데 호기심 천국인듯

─아 근데 궁금하긴 하다ㅋㅋㅋ

“타당한 의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은우는 시청자들과 아웅다웅했다. 지금껏 워낙 호기심 대장이었던지라 사람들은 새삼스러워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동조하는 이들이 제법 생겨났다. 아무렴, 궁금한 건 궁금한 거였다.

“제가 먹히는 건 그렇다 쳐도 랜스를 던지면?”

은우는 아쉬워졌다. 미션 받지 말 걸 그랬다. 뭐, 게임인 이상 리젠이 되므로 다음에 시험할 수도 있지만 말이다.

그는 아쉬움에 목덜미를 쓱 쓸며 다시 카운트를 세었다.

“3, 2, 1.”

아까와 같이 이율드크르가 솟구치며 그를 짓씹으려 들었다. 은우는 그것을 보며 ‘아무리 강해 봤자 머리가 멍청하면 무소용.’이라며 팩트를 날렸다.

─광역어그로 에반데

─스플뎀 ㄴㄴ

─아군 공격 자제좀요

똑같은 일이 재현되는 사이 뼈 맞은 사람이 속출했다. 괴수의 지능을 지적했는데 본인이 찔려서 화를 내는 것이다.

“왜 화를 내십니까?”

그들이 장난으로 말한다는 걸 알기에 은우는 짐짓 모르는 체했다.

“이런 거 하나 못 하시는 분들처럼.”

─아ㅋㅋㅋ누가 화냈냐

─뭐?! 이거 하나 못한 사람 있다고?!

─이율드크르 누가 못 잡음 쿠쿠루삥뽕

─ㅋㅋㅋㅋㅋㅋㅋ태세전환보솤

바로 반응이 돌아왔다. 은우는 뻔히 보이는 속내들에 키득키득 웃었다. 그 순간에도 그의 랜스는 집요하게 이율드크르의 머리를 쑤셨다.

덕분에 이율드크르의 갑각 일부가 떨어져 나오고 말았다. 반짝반짝 빛나는 걸 보니 부위 파괴로 인한 자원이라 인정되는 것 같다.

“아, 도망간다.”

은우는 이율드크르가 늪지대를 벗어나 폭포 쪽으로 향하는 걸 보았다. 이러면 오히려 그에게 좋다. 폭포는 늪지대처럼 질척거리는 게 없었으므로.

“사람들을 살리고자 남은 거니까 내쫓은 시점에서 마무리 지어도 될 것 같은데…….”

은우는 힐끗 퀘스트 창을 바라보았다.

『◈│이율드크르 토벌

□ 이율드크르 토벌 0/1』

“퀘스트가 잡으라네요.”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논조로 랜스를 옆구리에 바짝 붙였다. 시청자들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퀘스트 아니었어도 잡으셨을 분이,,,,

─학살좌 양심 어디감

“퀘스트가 잡으라는데 뭐 어쩝니까.”

랜스는 바람을 나선으로 휘감고 강맹한 육신은 그 바람을 단단히 버티며 앞으로 나아갔다. 중간중간 작은 진흙 웅덩이가 그를 가로막았지만, 세심하고 철두철미한 경로 설정은 그것들을 전부 피해 냈다. 속도가 붙은 몸이 점차 빨라졌다.

그리고 스태미나가 거의 아슬아슬해질 때 즈음 은우는 걸음을 멈추었다. 도망친 이율드크르가 폭포와 연결된 강에 몸을 파묻고 있었다. 불쌍한 괴수 몇 마리가 이율드크르의 입에 짓이겨지고 있다.

“회복은 못 봐주지.”

은우는 숫돌을 꺼내 랜스를 간 후 스태미나가 꽉 채워진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다시 랜스를 옆구리에 바짝 붙였다.

돌진이 시작되었다. 말에 타지 않은 채이나, 그의 돌진에는 그 이상의 힘이 실려 있다. 돌격 시 자동으로 시작되는 ‘모으기’가 랜스에 붉은 빛을 어리도록 했다.

정확히 3번. 3번의 모으기와 동시에 랜스가 이율드크르의 옆구리를 정확히 찔렀다. 그냥 옆구리도 아니고 앞다리와 몸통을 연결하는 부위였다. 인간으로 따지면 겨드랑이 어림인 것이다.

크아아아아!

포식을 즐기던 이율드크르가 고기를 내뱉고, 상처를 입고 쩔쩔 매던 괴수가 다급히 도망쳤다. 은우는 공격 후 딜레이 때문에 찰나간 경직된 몸을 빠르게 굴렸다. 랜스가 다시금 방향을 가다듬으며 돌격했다.

그냥 살이 찢기는 것보다 더 아픈 것은 찢긴 데를 한 번 더 찢기는 것이다. 은우는 방금 공격으로 움푹 팬 살점에 랜스를 다시 박았다.

이율드크르가 꼬리로 그를 공격했다. 은우는 랜스를 박아 넣은 채로 팔에 힘을 주고 몸을 위로 올렸다. 랜스가 지지대 역할을 하며 그의 몸을 붕 뜨게 만들어 주었다.

탁!

발이 이율드크르의 꼬리를 밟고 한 손이 꼬리의 비늘을 잡았다. 다른 한 손은 랜스를 굳게 잡고 있다. 꼬리가 본래 자리로 돌아가며 은우의 몸이 이동했다.

본인이 억지로 놓지 않는 이상 무기는 몸에서 떨어지지 않는 게 게임 특성이다. 덕분에 힘을 주지 않아도 랜스는 자연스럽게 뽑혔다.

은우는 꼬리가 이동하는 것에 맞춰 자세를 고쳤다. 다리로 꼬리를 휘감고 한 손으로 비늘을 잡는 자세다.

“꼬리 파괴, 잘하면 가능하겠네요.”

날 세운 렌스가 이율드크르의 꼬리를 마구 내려쳤다. 움직임에 페널티를 주는 진흙이 없으므로 더욱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몸에 묻기만 해도 디버프를 받는 진흙과 달리 물은 안에 잠수하지 않는 이상 부가 디버프가 없다. 심지어 이 주변은 물이 넓게 퍼진 대신 굉장히 얕았다. 무릎까지 오는 수심이면 이동 속도에만 패널티를 입는 정도일 것이다.

콰직! 콰직!

은우는 그 요동치는 현장 속에서도 비늘과 비늘 사이의 틈을 정확히 내려쳤다. 다만 투구 속 에메랄드색 눈동자가 빛나는 형상을 보거든 그것이 힘든 일이 아니라 귀찮은 일임을 알 수 있다.

마치 정육점 기계가 고기를 도축하는 것처럼 무기질적이고 반복적이다. 어쩌면 그 눈빛만 봤을 때 목가적인 상황이라 오해받을지도 몰랐다. 그 정도로 그의 눈동자는 일상을 받아들이는 촌부처럼 지루하게 평화로웠다.

그러나 그 좋은 구도도 스태미나의 한계로 인해 포기해야 했다. 은우는 비늘이 거의 떨어져 나가 붉은 살점을 내보이는 꼬리 연결 부위를 보았다. 앞으로 예닐곱 번만 더 내려치면 떨어질 듯하다.

“죽이고는 부위 파괴가 안 된다고 했습니까?”

─네

─살았을 때 부위파괴해야 함

─근데 부위파괴 하면 뭐가 더 좋아요?

─부위파괴 해야 희귀 소재가 나와요ㅇㅇ

─ㅇㅎ

“그럼 꼬리부터 잘라야겠네.”

그 전에 무기 관리도도 체크해야 할 성싶다. 은우는 금세 바닥을 치는 랜스의 관리도를 보며 혀를 찼다. 본래 검처럼 쓰이는 무기가 아니라서 그런가, 관리도가 쭉쭉 떨어진다.

은우는 적당한 때에 꼬리를 박찼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는지 이율드크르가 빠른 속도로 대지를 가르며 그에게 돌진했다.

그에 은우가 택한 것은 정면 점프였다. 도움은 장대 역의 랜스다.

랜스를 바닥에 찍고 몸을 공중에 띄운다. 그 후 쩍 벌어진 입을 넘어가 경사진 주둥이를 미끄러졌다. 툭, 걸린 것은 이율드크르의 경화된 정수리였다.

은우는 양쪽에 움푹 팬 눈과 마주하지 못함을 아쉬워하며 정수리를 밟고 뛰었다. 정수리에서 척추로, 척추에서 꼬리로.

그러면 이율드크르의 돌진 패턴을 뛰어넘을 수 있다.

찰박!

무릎도 적시지 못한 강물이 파문을 일으켰다. 은우는 빠르게 주변 바위를 밟고 섰다. 고작해 봐야 종아리까지 오는 수심일지언정 거대한 악어를 두고 이동 속도 페널티를 받아 가며 도망치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다.

무엇보다 물속에서는 숫돌로 랜스를 갈 수가 없었다.

─이분이 또;;

─이와중에 숫돌질 ㅈㄴ 잘해,,,,

─현실에서도 무기 갈아본 거 아니냐 이쯤되면

─특수부대 맞다니까;;

앞으로 직진하던 이율드크르가 멀찍이 유턴해서 다시 그를 향해 달려왔다. 은우는 숫돌을 집어넣었다. 관리도는 다시 최상이다.

그즈음 스태미나가 다시 회복되었다. 은우는 랜스를 들고 모으기를 실천했다. 세 번의 빛. 가까워진 이율드크르.

은우는 그 아가리가 코앞까지 들이닥치길 기다렸다가 때에 맞춰 옆으로 몸을 던졌다. 동시에 그 허리가 뒤틀어졌다.

바위에서 발이 떨어지는 즉시 날카로운 이가 그 자리를 깨물었다. 거미의 다리에 난 털처럼 부숭부숭하여 징그러운 눈이 그를 스쳐 지나갔다. 세로로 쫙 찢어진 동공은 카카라의 것보다 야비해 보였다.

은우의 발이 물속 대지를 디뎠다. 동시에 랜스가 바람을 휘감았다.

“하나.”

코앞에서 이율드크르의 몸체가 지나가고, 랜스가 뻗어졌다. 그것이 찌른 것은 이율드크르의 머리도, 앞다리도, 옆구리도 아닌, 꼬리였다.

푸욱! 하는 파육음과 함께 기어코 그 꼬리가 떨어져 나갔다.

크아아아아아!

이율드크르가 비명을 지르며 고통에 겨워했다. 은우는 그 장면을 보며 저것이 다시 한번 도망칠 것을 예감했다. 큰일은 아니었다. 떨어져 나온 꼬리를 갈무리하고 다시 쫓아가도 늦지 않을 것이다.

“사냥의 끝이 보이네요.”

전현직 헌터가 비스듬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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