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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자도 방송할 수 있습니다-48화 (48/233)

48화

1 대 5. 승패는 명백했다. 만약 저 1이 켄이었다면 조금 달랐을 수도 있겠으나, 안타깝게도 아니었다.

“하.”

힐러가 끊긴 상태에도 어떻게든 버티던 빌리는 한숨을 거나하게 내쉬었다. 하기야 그의 입장에선 열불이 날 수밖에 없다. 팀원인 반반마니가 힐러를 끊어만 줬어도 그들이 이겼을 테니까.

하다못해 거문고 성좌가 죽었을 때도 켄이 죽었다면 반격의 기회가 있었을지 모른다. 반반마니가 끝까지 켄을 못 죽임으로써 무위로 돌아간 가정이지만.

“정말… 뱀주인 님, 장난 아니시네요.”

회피기, 이동기, 방어기 일절 없음. 자가 회복은 피격당하지 않은 상태에서만 초당 회복하는 패시브 스킬밖에 없음. 옷 디자인상 그냥 움직이는 것도 불편함.

고힐량, 부활기, 각종 버프기를 다 가지고 있음에도 뱀주인이 많이 쓰이지 않는 이유가 저것들이다. 그러나 은우는 피지컬 하나로 뱀주인의 단점을 다 상쇄해 버렸다. 거의 용 성좌급, 아니 그 이상이었다.

빌리는 켄을 놓치지 말았어야 했다는 생각과 그나마 이 경기가 특별 경기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다만 이 모든 사실을 자각해도 반반마니에 대한 분노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팀원들 태반이 소문 안 좋은 편임에도 유독 논란 많은 사람임은 알았다. 그래도 실력이 되니까 받아 준 거고. 심지어 대회 준비 기간 동안 사고 치는 것도 눈감아 줬더니 이걸 이렇게 돌려줘?

빌리는 드러나지 않게 빠득 사리물었다. 아무리 상대가 켄이라지만, 그래도 용납할 수 없다. 인성이 회생 불가면 실력이라도 좋아야지, 까 놓고 보니 우유에탄산이 급하게 데려온 산호나 슬리퍼만도 못했다.

반드시 교체한다. 빌리는 그것으로 반반마니에 대한 처분을 정리했다. 손절할 각오가 섰다면 바로 해야 피해가 준다.

그렇게 짧은 상념을 그치고 나니 다섯 명의 적이 그 앞에 서 있었다. 빌리는 그가 프로게이머 짓을 할 때도 못 느꼈던 막막함을 새삼 얻었다.

“저…….”

그리고 그곳에서 레리가 입을 열었다.

“가능하면 빌리 님이랑 단독으로 붙어 보면 안 될까요? 저, 진짜 민폐인 건 아는데…….”

빌리도, 다른 이들도 눈을 껌뻑였다. 그곳에서 유일하게 당황하지 않는 건 켄이었다.

“저는 찬성이에요. 아무리 빌리 님이라지만, 한 분 상대로 다섯 명이서 패싸움 벌이는 것도 좀 그렇잖아요? 무엇보다 이거, 특별 경기예요. 끝까지 볼거리는 드려야죠.”

우유에탄산이 가장 먼저 나섰다. 저 여잔 대체 무슨 생각이지? 빌리는 저 능구렁이 같은 스트리머의 속내를 짐작하기 위해 노력했다.

속이 시꺼먼 사람은 아닌데 엉큼해서 솔직히 달갑진 않다.

“전 괜찮습니다.”

“저도 괜찮아요.”

“어휴, 쫀심이 있는데 다구리를 어떻게 칩니까?”

뒤이어 켄이, 산호가, 슬리퍼까지 찬성했다. 대체 무슨 생각인지는 몰라도 그에게 나쁜 일은 아니었다.

어떻게든 실력을 입증해야 1등으로서의 면목이 설 것이므로. 이렇게까지 와장창 깨지면 사람들은 외부인력을 데려왔든 뭐든 간에 그들 팀 실력을 의심할 것 아닌가.

특히 그가 구축해 온 이미지가 무너지며 퇴물 소리 듣는 것만큼은 듣기 싫다. 빌리는 태세를 되잡았다.

그사이 네 사람이 거점 바깥으로 슬금슬금 물러났다. 멈춰 있던 덕에 조금씩 차오르던 점령 게이지가 느려졌다.

거점 안에 서 있는 게 빌리와 레리 뿐이라, 1%씩 동시에 올랐다.

레리와 빌리의 시선이 마주친 순간, 두 사람이 자리를 박찼다.

▣ 048. 정말 소심한

한 사람을 상대로 패싸움을 하는 것에는 한 치의 부끄러움도 없다.

만약 골골거리는 노인이나 덜 자란 아이가 상대였다면 조금 회의감을 느꼈겠으나, 상대는 싸움에 능숙한 성인이었다.

전장에서 명예와 자존심만큼 쓸모없는 건 없다. 그렇기에 은우는 빌리를 상대로 다섯이 다 덤빈다 해도 큰 감상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레리가 혼자 대적하는 걸 허한 건 비단 레리의 자존감을 챙겨 주기 위함만은 아니었다.

“크, 근데 지는 건 아니겠죠?”

속닥거리는 슬리퍼의 말에 은우는 짧게 고개를 저었다.

“빌리 님 피는 지금 ⅓밖에 안 됩니다. 레리 님이 이기죠.”

심지어 은우 덕에 레리는 빌리의 약점을 꿰고 있다. 비록 연습 때는 일대일만 했던지라 아까 5 대 5 팀전에선 제대로 못 노린 듯하지만, 지금은 잘할 수 있을 거다.

그렇지만 빌리도 쉽게 죽진 않을 테지. 그의 재능은 실시간으로 약점을 보완해 나갈 것이고, 그 가운데 레리의 피를 상당량 깎을 거다. 비록 이기진 못하겠지만, 그 정도쯤 해내면 자부심 내긴 충분하다.

그럴 경우 제의란 제의는 다 깐 주제에 외부 인력으로 초청받아 적으로 등장한 은우에 대한 불만도 상당 부분 해소될 거다. 어쨌든 빌리는 자존심을 챙겨 갈 수 있게 됐으니까.

결국 이것도 정치였다. 우유에탄산이 무슨 생각으로 빌리가 실리 챙겨 가는 걸 허락했는진 모르겠지만.

아니면 그래, 그녀가 노리는 것은 이미 충족되었나? 만약 우유에탄산이 가리고 싶었던 게 빌리 팀 전체가 아니라면?

그는 지팡이를 매만졌다. 팀원들에게 들었던 정보에 따르면 빌리 팀에서 논란이 있는 건 세 사람. 그중 가장 심각한 건 반반마니다.

그리고 반반마니는 우연찮게도 그에게 농락당하고 산호에게 얻어터졌다.

1인분을 하지 못한 팀원은 팀에 필요가 없으니. 대상이 은우였단 건 불운이나, 그 불운까지 고려해 줄 아량은 없을 테다.

더구나 빌리도 어지간히 눈이 없는 게 아니라면 반반마니보다 산호나 슬리퍼가 낫다는 걸 눈치챘을 거다. 버림받을 가능성이 커진다.

그렇다면 우유에탄산이 바란 건 반반마니의 도태인가? 왜, 굳이?

은우는 하나의 키가 빠져 있음을 깨달았다. 그것의 정체를 알기 전까지 의문 해결은 어려울 성싶다.

그사이 대결은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레리의 칼날이 빌리의 발이 어슷하게 섞이는 걸 지켜보았다. ‘그거 아닌데.’라는 전형적인 훈수충의 대사가 떠오르는 건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리라.

발차기 넣을 수 있는 빈틈이 있는데. 검을 좀 더 들어서 각도를 달리했다면 더 편하게 흘릴 수 있는데. 왜 가르쳐 준 걸 써먹질 못하지. 열심히 가르쳤는데.

은우는 전생의 신입─제자라고 하긴 뭐한─들을 보는 느낌에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애달픔보다는 답답함이 먼저 든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레리가 잘하고 있다는 걸 알아도 마찬가지였다.

동시에 빌리가 추앙받았던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정말 잘 싸웠다.

지금까지 봐 왔던 이들 중 가장 재능 넘쳤던 건 검은기사 때 그놈이었는데, 빌리는 그것보다 더 뛰어나다. 전생이었다면 장군 수준이 아니라 영웅 소리를 들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보다는 약하다. 아주 많이.

은우는 눈을 감았다. 아마 그보다 강한 이를 만나는 건 어렵겠지. 아예 불가능한 일일지도.

경기는 예상대로 레리가 빌리를 베어 넘기는 것으로 끝이 났지만, 은우는 어쩐지 우울해졌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우울함이었다.

* * *

<인간계에 나타난 천상계>

[영상]

결승전이 특별경기로 대체된다길래 뭔가 했더니 신이 나왔음

─저거 뱀복치 아니냐??

└맞음ㅇㅇ 생존률 쓰레기 뱀주인

└근데 저건 뭐임?? 왜 다피함??

└고거슨 켄이라서 가능한 일입니다만

─진심 무빙 오졌다;; 까마귀 성좌가 무는데 그걸 다 피하네

└걍 인간계 클래스가 아닌듯

└ㅇㅈㅇㅈ,,,,

<켄 왜 뱀주인 하나 했더니>

[영상]

이 새끼 힐러의 개념을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니냐

─힐러로 딜러를 농락하네ㅋㅋㅋ

─저거 부상판정으로 스킬 딜레이 시키는 거 맞음?

└ㅅㅂ 미쳤노;;;

─뱀주인으로 저런 무빙이 가능해...?

─물려고 댐비는 까마귀 역으로 무는 것 보소

<근데 켄 진짜 왜 나온 거임?>

이럴 거면 걍 팀하지 왜 결승전에서만 나온 거냐

─인터뷰 안 봤냐ㅡㅡ 그거 개불이 개인사정으로 빠져서 대신 나서준 거임 그래서 결승전 자체는 기권처리 돼서 1위가 빌리팀이고 2위가 탄산이잔어

└?? 아 그런 거임?

└잘도 탄산팀에 꼈네

└합방 한 번 해서 친해진 거 아님?

─빌리팀 졌는데 1위......

└솔직히 켄 없었음 빌리팀이 이겼을 듯ㅋ

└우리 개불 아재 무시하냐?

<반반마니 진짜 뭐하는 새끼임>

시발 뎀지 높기로 유명한 까마귀 성좌 픽해놓고 뱀주인 하나 못자르네

─반반마니가 원래 좀.....

─인성반반쉑 실력도 반반됐음

─머갈통에 뭐들어있는지 모르겠어

─켄이 까마귀 했을 땐 ㅈㄴ 멋있었는데 저새끼가 잡으니까 찌질 그 자체됐자나~

└아ㅋㅋ인정ㅋㅋㅋ

─소문 들었음? 반반마니가 켄한테 얻어맞았다던데

└지금 보고 있잖음 게임에서 ㅈㄴ 얻어터지네ㅋ

<뱀주인 자리가 사기긴 사기네>

[움짤]

힐량 진짜 에바임,,,,어떻게 저기서 저기까지 꽉차는 건데

다루는 사람 피지컬만 좋으면 애들이 죽질 않어

심지어 뒈져도 부활이 있네?? 존나 너프각 아니냐

─그래서 회피기, 방어기 없이 살아남을 수 있음?

└ㅅㅂ 팩트ㅋㅋㅋㅋㅋㅋ

─쓰는 사람 때문에 사기캐됐다고 너프먹으면 프로게이머들 주력캐 다 너프 먹어야함

└이거 맞따

└이게 정답이네ㅋㅋㅋ

<빌리 존나 잘했는데ㅠㅠ>

의술의 신이 인간들을 가호해서 졌음

─구울에서 신으로 직위 상승했누ㅋㅋㅋ

─빌리 진짜.....인간계 최강 피지컬 입증했는데....아앗....상대가....

└F를 눌러 조의를 표하시오

└F...

└F

└F

─힐러가 물리는 거 봐달라고도 안 하고 딜러 하나 붙잡아주고 힐이랑 버프까지 둘러주는데 승리 못 가져오는게 머저리임

└아예 떠먹여주는 수준ㅋㅋㅋ

└진짜 이거 못 이기면 쓰레기지;;

<뱀주인 쓰지 말라고ㅡㅡ>

아니 시발 켄이 쓰니까 사기인 거고 니들이 쓰면 개똥캐니까

쓰지 좀 말라고ㅡㅡ

대회 끝나자마자 뱀주인 우르르 쏟아지는 거 실화냐?

네 판 째 뱀주 나왔음 시바

겜 하는데 존나 빡치네

─그래도 아직 랭겜 없는게 어디임,,,

└앗 시1발 그랬음 조졌다

└진짜 개무섭다ㄷㄷㄷ

<국제 대전 열릴 각인데>

스트리머 대전이 한국에서만 열린 것도 아니고 16개국에서 열린 걸로 아는데, 솔직히 국제 대전 각 아님?

열리면 각 대전 1등팀들끼리 올라갈 것 같은데....

반반마니 퇴출하고 켄 영입 각 섰다

─ㅗㅜㅑ;; 빌리랑 켄 조합 오지는데

─우탄팀이 우승하지 않았음?

└ㄴㄴ 개불이 빠져서 기권하는 바람에 2등임 우탄이 이긴 건 관람객들을 위해 긴급하게 구성한 특별경기

└ㅇㅎ

─크, 켄 힐러도 ㅈㄴ 잘하지만 딜러하면 애들 다조질듯;;

└실제로 우탄팀 혼자서 싹싹 발라먹었잔어ㅋㅋ

─반반마니 그새끼는 진짜 빼야함;;

└ㅇㅈㅇㅈ....

<솔직히 나머지들도 잘했지 않음??>

난 특히 탄산팀의 슬리퍼랑 산호 저렇게 잘하는 줄 처음 알았음

켄이 힐러 맞춰준 탓도 있겠지만 딜러 1인분은 넘치게 한 듯?

성하도 마지막에 빌리랑 뜨는 거 멋있었는데.

─슬리퍼랑 산호 원래 잘했는데 대회 때 진짜 일취월장한 거 맞지ㅋㅋ

└슬리퍼 속사 개오졌어;; 스킬인줄

└산호도 쌍둥이 성좌 조오온나 잘 쓰지 않았냐

─레리 멋있는 거 ㅇㅈ

└그래봤자 같은 피였음 빌리가 이겼어

└누가 뭐랬냐?

* * *

대회 끝나자마자 커뮤니티 글들이 갱신되었다. 그것을 하나하나 읽어 내리던 은우는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그의 앞에는 오늘 대회 때 적으로 나왔던 빌리가 서 있다. 인터뷰가 끝난 모양이다. 참고로 그는 외부인사 자격을 이용해 가장 간단한 것만 하고 끝냈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오는 길에 음료수라도 뽑아 왔는지 빌리가 캔 음료 하나를 건넸다. 은우는 망설이다가 일단 받아 들었다. 마침 목이 마르던 참이었다.

“우유에탄산 팀은 오늘 회식이라고 들었는데, 참가 안 하시나 보네요.”

“예, 뭐.”

우유에탄산은 그의 얼굴을 봤다지만, 나머지는 아니지 않나. 나름 마음에 든 사람들인데 그의 얼굴 때문에 거리감이 생기는 건 바라지 않는다. 은우는 그런 이유로 회식을 거절했다.

“빌리 님이야말로 1위 하셨는데 회식은 안 하십니까?”

“하하, 다들 자유분방해서요. 회식보단 각자의 시간을 더 좋아합니다.”

대인 관계에 약한 은우라지만, 저게 변명이란 건 쉽게 알 수 있었다. 아무리 안 친해도 승리를 같이한 전우들은 이렇게 마무리를 짓지 않는다.

“예전에 팀 영입 제의를 드렸었는데, 기억하십니까?”

“당연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은 주제에 우유에탄산과 함께한 것을 탓하려나? 그는 아마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빌리는 탄산만큼이나 사리에 밝아 보였으니까. 이런 사소한 것으로 그에게 뭐라 하진 않을 것이다.

“아직도 생각 없으신가요?”

은우는 차가운 캔을 손가락으로 더듬었다. 일반인에게 꼭 맞는 캔은 그에게 너무도 작지만, 시원함은 별개였다.

그의 머릿속에 아까 커뮤니티 제목으로 마주했던 국제 대회가 떠올랐다. 그가 지금껏 놓치고 있던 마지막 열쇠다.

“대회는 끝나지 않았습니까?”

모르는 척 은근히 던지니 눈가를 가늘게 휘며 대답한다.

“국제 대회는 남아 있죠.”

은우는 빌리가 논란이 있는 스트리머를 팀으로 받아들여 가며 실력자로만 구성한 이유를 어렴풋이 깨달았다. 또한 우유에탄산이 어째서 1등을 고집하려 했는지도.

둘 다 국내 대회가 아니라 국제 대회를 보고 있던 거였다.

“제가 들어갈 자리는 없을 텐데요.”

넌지시 한 번 더 미끼를 던졌다.

“이제 곧 생길 겁니다.”

빌리가 단호히 대답했다.

“반반마니 님과는 더 이상 함께할 수 없을 것 같거든요.”

누군가에게 끝을 고하는 것치곤 굉장히 담담한 태도였다.

“반반마니 님과 말입니까?”

“예.”

반반마니가 빌리의 팀에 들어감으로써 기를 세우고 다녔노라 알고 있는데. 이렇게 되면 그는 어떻게 될까. 은우는 입술을 삐뚜름하게 내렸다. 어느 쪽으로든 몰락이라면 더는 신경 쓸 필요 없다.

“거기에 나머지 분들도 영… 심상치 않아서요. 어쩌면 탄산 님 팀 쪽에서 몇 분 오실지도 모릅니다. 아, 참고로 탄산 님과 이야기된 부분입니다.”

아까 대회가 끝나고 탄산이 빌리에게 향하더니, 그때 무슨 이야기를 나눴나 보다.

은우는 그것에 대한 의문을 껐다. 굳이 알고 싶지 않다. 탄산이 인성 논란이 있는 팀원들의 교체를 노린 것이든, 실질적 유명세는 이쪽이 가져오는 걸 노렸든 이제 관계없는 일이니까.

“죄송하지만, 안 될 것 같습니다.”

“시간은 아직 많습니다. 그러니 천천히 결정하셔도 됩니다.”

“아뇨.”

은우는 그의 손에 잡혀 있느라 조금 미지근해진 캔을 땄다. 딱과 췩. 두꺼운 손가락은 잘도 캔 뚜껑을 뒤집어 깠다.

그의 한 손이 헬멧 전면 부분을 움켜쥔 채 머리에서 벗겨 내었다.

“네뷸라가 별로 제 취향이 아니라서.”

은우는 달지 않고 탄산도 아닌 음료를 단번에 삼켰다. 순식간에 비워진 깡통이 그의 손에 잡혀 우그러들었다. 빌리의 몸이 살짝 움츠러들었다.

“앞으로도 안 할 것 같네요.”

빌리의 반응이 달갑기도 하고 침울하기도 하다. 이번 건 딱히 협박하려고 얼굴을 깐 게 아니기 때문이다.

얼굴을 드러내면 덜 달라붙지 않을까 하는 점을 노린 건 맞지만, 사실 목이 마른 쪽이 더 컸다. 빌리쯤 되면 탄산과 마찬가지로 입 다물어 줄 것이도 하고. 아니, 어쩌면 탄산처럼 태연한 반응을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빌리 님이 싫어서 그런 건 정말 아닙니다. 다만…….”

은우는 조금 소심하게 뇌까렸다.

“약한 분들 상대하는 건 재미가 없는지라.”

정말 소심한 발언이었다.

“아, 그러시군요…….”

빌리도 덩달아 의기소침해졌다.

나름 설득하려고 진심을 꺼냈을 뿐인데, 저러면 괜히 미안해지지 않나. 아닌가? 발언이 센 거였나? 하긴, 이렇게 되면 빌리도 약하단 소리가 된다. 말을 잘못 골랐다.

은우는 혀를 차며 헬멧을 썼다. 곧 저쪽 복도에서 누군가가 걸어왔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다.

“그래도 산호 님과 슬리퍼 님, 레리 님 정도면 괜찮은 분들입니다.”

“압니다. 직접 상대해 보니 생각보다 더 강하시더라고요.”

“빌리 님 정도면 국제 대회에서도 충분히 활약하실 테고요.”

“하하, 그렇습니까? 켄 님께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쑥스럽네요.”

“진심입니다.”

빌리가 좀 더 웃더니 무언가를 꺼내 그에게 건네주었다.

“생각 없으시단 건 알겠습니다. 그래도 전화번호는 받아 주시죠.”

“…감사히 받겠습니다.”

은우는 명함을 받아 전자 노트에 바로 기입했다. 문자를 바로 보내니 빌리의 전자 노트가 띵똥 울었다. 써먹을 일은 있을까 싶은 인맥이 이렇게 하나 더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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