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합방이라는 거센 태풍이 한차례 몰아치고 갔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사람이 연락처에 추가되고 문자까지 주고받았는데, 그중 대미는 우유에탄산이었다.
저번 G페스티벌 때 의례상 나눴던 인사 밑으로 새로운 문자가 갱신되었다.
『우유에탄산 님> 합방 즐거웠어요. 처참하게 당하긴 했지만, 덕분에 배운 것도 많네요. 보답으론 역시 얼룩 청소가 좋겠죠? 그 부분은 걱정 마요. 그런 지저분한 수법, 나도 별로 안 좋아하거든. 나뿐 아니라 우리 팀원들도요.』
인기 스트리머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
『우유에탄산 님> 아, 레드바 님이 못 믿길래 켄 님 스무 살 맞다고 인증해 줬어요 ^^ 괜찮죠?』
여러 의미로 말이다.
이럴 땐 답장을 어떻게 해야 하지. 감사합니다? 괜찮습니다? 불쾌하진 않으나 사회성 제로의 인간은 한동안 끙끙거렸다.
▣ 039. 기억할 것입니다
합방이 아니더라도 Nebula War는 방송용으로 나쁘지 않은 게임이나, 은우는 망설임 없이 제외했다.
협업 게임은 여전히 불편할뿐더러, 양학하는 구도밖에 안 나와서 재미가 없었다. 나중에 랭킹전이 나오거나 저들과 같이 한다면 모를까, 지금으로썬 그다지 하고 싶지 않다.
그렇다면 균열 사냥꾼을 이어서 해야 할까? 은우는 그것도 과감히 포기했다. 나온 메인 퀘스트 전부를 밀었을뿐더러, 그가 보여 줄 수 있는 대부분은 보여 주었다.
아직 남은 콘텐츠가 있다고는 하나 앞서 했던 방송과 겹치는 부분이 많았다. 기철의 충고가 아니더라도 굳이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는 판단을 은우는 스스로 내렸다.
그런 그가 새롭게 꺼내 든 것은 ‘경호 대상 구하기’ 게임이었다. 다음 게임으로 넘어가기 전 에피타이저 느낌으로 할 요량이다.
“공지에 올려 둔 대로 오늘 게임은 팀장님이 추천해 주신 게임, ‘경호 대상 구하기’입니다. 일단 보디가드가 되어서 암살 위협을 받는 경호 대상을 보호하는 게 주 내용이라네요. 설명은 굉장히 멀쩡해 보입니다.”
─아모른직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악마가 또,,,,,
─또 개병맛인 거 아님??ㅋㅋㅋㅋㅋ
시청자의 말마따나 실상 까 보면 그렇게 정상적인 게임이 아닐 것이다.
빨간 망토의 액션 이래, 박 팀장 추천을 받고 한 게임 중에서 정상적인 건 하나도 없었으니까. 아무래도 하드코어 병맛 게임을 추천하는 데 맛이라도 들인 모양이다.
“다들 구매하셨으니까 제 방송을 보시는 거겠지요?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은우는 게임을 시작했다. 녹음이 우거진 대기실이 곧 어두컴컴한 무대 뒤편으로 바뀌었다. 그의 옷은 경호원 특유의 정장 핏이다. 얼굴에는 다행히 헬멧이 씌워져 있다.
“…합방할 때보다도 심장이 더 떨리네요.”
어떤 게임에서든 만능인 은우이나, 박 팀장이 추천해 준 게임은 항상 그를 엿 먹이곤 했다. 때문에 은우는 떨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생사를 장담할 수 없던 전장보다 지금이 더 두렵다.
시청자들은 그런 그의 고난을 너무 재밌게 즐기고 있지만 말이다.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저격으로부터 경호 대상을 지키세요.
저격 경로는 빨간색 레이저로 표시됩니다.』
“너무 정상적인 메시지 창이라 두려운데.”
─팀장님 신뢰도 마이너스 실화냐ㅋㅋ
─아 근데 킹직히 그럴만함ㅋㅋㅋㅋ
─난이도 대결 우탄팀vs박팀장 추천겜
─닥 2222222222
─22222222
─절대 222222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직 모른다. 그 박 팀장이 준비한 게임이 평범할 리가 없다. 은우는 무대 뒤편을 거닐며 경호 대상을 확인했다. 아리아를 부르고 있는 가수의 명치에 레이저가 선명히 맺혀 있었다.
“일단 어떻게 공격이 오는지 볼까요?”
─좋아용
─이거 전체연령간데 어케 나오려나
은우는 잠시 어떤 식으로 공격이 오는지 확인했다. 탕, 하는 발포음과 함께 빨간색 레이저를 따라 노란색 총알이 날아왔다. 총알에 얻어맞자마자 가수의 몸이 뒤로 날아갔다.
“……?”
─?
─??
─날아갔어?
튕겨 나간 몸이 벽에 부딪쳤을 땐, 고운 얼굴의 가수 대신 배가 터진 곰돌이 인형(특대)가 있었다.
『당신의 실패로 유명 가수가 사망했습니다! 관객들은 이 끔찍한 사건을 기억할 것입니다.
재도전하시겠습니까?』
“…곰돌이가 되는 총알?”
─?
─ㅋㅋㅋㅋ?ㅋㄷㅋㄷㅋㅌㅋㅋㅋㅋㅋㅋㅋ
─곰ㅋㅋㅋ돌ㅋㅋㅋㅋ잌ㅋㅋㅋㅋㅋ
─탐난다ㅋㅋㅋㅋㅋ
은우는 떨떠름해졌다. 과연 전체 연령가다운 게임이다. 조금 뜬금없긴 하지만.
“그럼 이제 진심으로 가 보겠습니다.”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재도전을 실시했다. 맨 처음 시작 지점으로 그의 몸이 이동됐다.
은우는 바로 무대로 튀어 나가, 가수의 팔목을 잡고 끌어당겼다. 가수가 그의 뒤편으로 끌어당겨짐과 동시에 총알이 발사되었다. 가수 뒤에 있던 벽면이 산산조각 났다.
『당신은 경호 대상을 지켜 냈습니다!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겠습니까?』
“…총알이 엄청 강력하네요.”
은우는 떨떠름하게 총알의 파괴력을 감상하며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갔다. 다음 스테이지는 우아한 저택의 테라스였다. 아래엔 관중이 있었고, 호위 대상은 테라스에 나와서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다만 사소한 문제점은 은우가 호위 대상이 있는 곳에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뛰어넘어야 하나 봅니다.”
옆쪽 테라스에서 시작하게 됐지만, 두 테라스 사이의 거리는 그렇게 멀지 않았다. 겁먹지 않고 난간 위에 올라 점프하면 넉넉히 닿을 거리라고 해야 하나.
은우는 아까 총알이 날아온 시간을 떠올리며 발코니를 뛰어넘었다.
타앙!
그가 착지했을 때, 경호 대상이 총에 맞아 곰돌이 인형(특대)가 되었다.
『당신의 실패로 영국의 왕녀가 사망했습니다! 관중들은 이 끔찍한 사건을 기억할 것입니다.
재도전하시겠습니까?』
“…발사 시간이 다르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모르면 죽어야지ㅋㅋㅋㅋ
─아 벌써부터 꿀잼 예약ㅋㅋㅋㅋㅋ
그는 이를 악물었다. 과연 박기철은 그를 배신하지(?) 않았다.
“시작하자마자 움직여야겠습니다.”
게임에서 주는 스펙상 그러지 않으면 구할 수 없을 것이다. 은우는 재시작을 누른 후 바로 달렸다. 구두를 신은 발이 하얀 테라스 바닥을 내딛고 난간 위로 올랐다.
탁.
구두가 건너편 난간을 밟고 다시 떠올랐다. 그의 목표는 테라스 중심에 있는 왕녀다.
그는 왕녀를 밀어내듯 안고 바닥에 누웠다. 아슬아슬한 차이로 총알이 뒤쪽 벽을 부수었다.
『당신은 경호 대상을 지켜냈습니다!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겠습니까?』
“…벌써부터 무섭다.”
두 번째부터 이런데 다음은 어떨까.
은우는 이마를 짚으며 다음 스테이지에 돌입했다. 이번에 그는 관중 사이에 서 있고 경호 대상은 저 멀리 단상에 있었다.
그는 심리적 의심을 했다. 경호 대상을 밀치기엔 거리가 너무 멀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생각하면─고작 두 번이지만─그가 가는 도중에 총알이 발사될 것이다.
그렇다고 발사 지점으로 가? 하필이면 그와 경호 대상, 발사 지점은 삼각형 형태로 존재했다. 마찬가지로 먼저 총알이 발사될 것이다.
“이거, 경호 대상을 지키기 위해 어떤 수든 쓰라고 했었죠?”
─넹
─능지on?
─이 겜 진짜 머하는 겜이야ㅋㅋㅋ
─와중에 정장핏,,,,ㅗㅜㅑ,,,,,,,,
은우의 몸이 레이저를 향해 직진했다. 최단 거리, 즉 레이저와 수직이 되도록 달리는 몸은 망설임이 없다.
그리고 은우가 경호 대상을 향하는 레이저 사이에 꼈을 때, 총알이 발사되었다.
팅!
총알이 그의 가슴에 맞고 튕겨져 나갔다. 다행히 그가 곰돌이가 되는 불상사는 벌어지지 않았다.
『당신은 경호 대상을 지켜 냈습니다!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겠습니까?』
“…게임 참…….”
─강철 몸ㅋㅋㅋㅋ
─총알을 튕겨내냐고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벌써부터 몸으로 막아야 하는 스테이지가 나오면, 앞으론 분명 더할 테지. 한숨이 다 나왔다. 죽지 않으니 큰 상관은 없지만, 무언가 많은 걸 포기해야 할 것 같은 직감이 들었다.
“이 경호원, 설마 벽도 뚫는 건 아니겠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설마’
─아, 예언자 가나요?ㅋㅋㅋㅋㅋ
“에이, 설마…….”
라고 했지만 정말 벽 뚫는 스테이지가 나왔다. 심지어 바로 다음 스테이지였다.
경호 대상과 그 사이를 2.5m 되는 담벼락이 막고 있길래 가볍게 위로 넘어가려 했다. 발판 삼아 벽을 밟으려던 순간 벽이 그대로 무너지지만 않았어도 그랬을 거다.
그로 인해 그는 다리 찢는 자세로 벽을 뚫었고, 벽 너머의 경호 대상과 박치기를 했다. 아무리 그라도 창피해지는 모양새였다. 결과적으로 경호 대상을 구했다고 해도 이건 좀 아니다.
“…….”
한 바퀴 나뒹군 은우는 진하게 현자 타임이 와서 바닥에 엎어진 자세 그대로 침묵했다. 채팅 창을 보고 싶지도 않다.
「‘오빠’ 님이 ‘10,000원’ 투척!
죽었어?」
「‘형’ 님이 ‘5,000원’ 투척!
클립 찍었어ㅋ」
「‘오늘도레전드’ 님이 ‘7,000원’ 투척!
팀장님이 추천한 게임할 때마다 이미지 와장창되누」
「‘vistaaa’ 님이 ‘61,305원’ 투척!
힘내세요 lol」
「‘강남건물주’ 님이 ‘50,000원’ 투척!
화이팅!」
시청자들이 제일 나빠. 은우는 한숨과 함께 몸을 비척비척 일으켰다.
“…안 죽었습니다. 후원은 감사합니다.”
만약 이 게임이 얼굴을 드러내는 게임이었다면, 플레이어의 기분에 따라 피부의 핏기를 조절할 수 있는 기능까지 넣었다면. 사람들은 귀가 새빨개진 그를 볼 수 있었으리라.
“박 팀장님께서는 항상 저를 시험하시네요.”
그는 아련하게 중얼거렸다. 바싹 마른 유칼립투스 잎사귀의 향이 목소리에서 물씬 풍겼다.
“…어떤 고난이 저를 기다리든 간에 지켜야겠죠.”
다만 은근히 묻어나는 진심─하기 싫다─은 블랙베리를 으깨면 톡 터져 나오는 오묘한 단내를 닮았다.
그 애절한 목소리에 사람들은 시청자로서 스트리머를 비웃어야 한다는 본분을 잊고 잠깐 동안 그를 위로했다. 물론 게임 그만하란 소리는 절대 나오지 않았다.
“총알보다 빠르게 경호 대상을 지켜 보도록 하죠. 갑시다.”
은우는 마음을 다잡고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갔다. 지금까진 튜토리얼이었다는 듯, 챕터가 넘어가며 본격적인 게임이 시작되었다.
* * *
“신기한 설정이네요. 계단만 이용하면 구른다니. 벽면 타고 뛰면 되니까 별문제는 없습니다만.”
“…날 수도 있어요?”
“폭탄도 날아오네요. 파편 휘날리는 경로는 고정입니까?”
“…왜 하늘에서 거대 샌드위치가 떨어지죠? 설마 저게 암살 무기입니까?”
“옆구리를 걷어차였는데도 멀쩡히 일어나다니 경호 대상, 진짜 튼튼하네요.”
“…갈수록 스테이지가 가관이네요. 이번에는 자유의 여신상 위입니까?”
“…돌겠네, 진짜.”
“이젠 가시 발판이라는 장애물도 생기는군요.”
“함정이 왜 나와…….”
“팔방 위에서 총알이 쏟아지네요. 각도 생각해서 밀쳐야겠습니다.”
“…내가 경호 대상을 구하는 건지, 죽이는 건지.”
방송 1시간 차. 은우는 6챕터의 마지막 스테이지로 진입하면서도 한숨을 내쉬지 않을 수 없었다. 켜켜이 쌓여 온 회의감은 이제 폭발하기 직전이다.
2챕터 후반부부터 경호 대상을 도저히 감싸거나 안아 올리거나 가볍게 밀치는 정도론 깰 수 없어 아주 거친 방식으로 밀어내게 된 것도 괜찮았다. 게임이니까.
3챕터 중반부터 총알뿐 아니라 폭탄, 샌드위치, 펀치 머신, 지뢰, 심지어 미사일 등 다양한 암살 무기가 쓰였을 때도 괜찮았다.
4챕터부터 스테이지가 일반적인 배경이 아니라 우주로 날아가곤 한다는 것 역시 이해했다.
5챕터 시작부터 빨간 망토를 개발한 모 게임사가 떠오르는 함정이 나타났을 때도 웃으며 넘겼다.
그런데 6챕터는 정말 총체적 난국이었다. 현실성을 완전히 엇나가 동화풍 맵에 지옥에서나 나올 법한 구조물이라는 엇박, 엄청난 양의 함정, 판단 잘못하면 길을 막아 버리는 패턴. 모르면 죽어야지를 너무 잘 실천하는 적들까지.
은우는 이를 악물고 다음 스테이지로 가기를 눌렀다. 맵이 바뀌고 나서 처음 느끼는 감상은 ‘하다 하다 지옥에 왔나?’다.
엄청난 넓이 그리고 높이를 가진 동굴은 곳곳에서 용암이 흘러내렸으니. 암적색의 대지는 용암과 어울려 웅장하고 위험한 대자연의 분위기를 흘렸다.
아마 구조물로 동화풍의 몽글몽글한 구름 장식─연분홍색─이 있지만 않았어도 감탄을 흘렸을 것이다.
“우리의 경호 대상은 어쩌다 여기까지 오셨는지.”
─ㅇㅈ,,,,
─이번 경호대상은 누구냐
─천사?
─악마일지도
─아닠 배경 잘 만들어놓고ㅋㅋ발판들 미스매치 뭐임ㅋㅋㅋ
은우는 별 모양 장식이 콕콕 박혀 있는 구름을 밟고 움직였다. 그리고 발판이 떨어졌다. 이미 겪어 본 함정인지라 그는 당황하지 않고 다음 발판으로 넘어갔다.
눈여겨보고 있던 위쪽 구멍에서 용암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세 번 더 건너갔을 때 그의 머리에 쏟아질 구조다.
그는 거기서 구르듯 점프했다. 독특한 게임 시스템상 이러면 더 빠른 속도로 두 개의 발판을 뛰어넘을 수 있다.
그리곤 그는 대각선으로 다시 굴렀다. 그의 몸이 본래 경로에서 이탈해 빙 돌아가야만 마주할 수 있는 커다란 발판에 내려앉았다. 그곳에 장식품처럼 있던 유니콘이 은우를 향해 돌진했다.
은우는 바로 점프했다. 구를 경우 발판을 벗어날 것이므로 지금 한 것은 일반 점프였다. 유니콘이 그를 비껴 나가 용암 아래로 추락했다.
“이쯤 되면 제작진의 사고를 의심해 보고 싶네요.”
─킹리적 갓심 인정합니다
─이 와중에 쓸데없이 배경 잘 만듬;;
그는 다음 발판으로 뛰면서도 발판 바로 아래 지상이 부글거리는 걸 놓치지 않았다. 그가 발판에 얹어지는 순간, 용암이 솟구치며 발판을 위로 올려 보냈다. 그의 몸이 더욱 높은 곳으로 이동했다.
만일 이대로 엘리베이터 역만 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은우는 이미 이 게임에 질릴 대로 당해 본 상태였다. 그는 위쪽 대지가 보이는 것에 맞춰 점프했다. 아슬아슬하게 발판을 들어 올리던 용암이 발판을 꿰뚫었다.
“이젠 안 당한다!”
은우의 악 받친 외침과 함께 그의 몸이 데굴 굴렀다. 위에서 용암이 차례로 부어졌다. 데굴 구르는 몸은 장애물처럼 서 있던 구름 벽들을 뚫고 나아갔다. 시야가 가려져서 불편했다.
어쨌든 악착같이 경호대상 앞에 다다랐을 때, 그는 일말의 불안감을 느꼈다. 함정이 이것밖에 없다고? 그럴 리가 없는데?
은우는 본능적으로 자신이 왔던 길을 되돌아보았다. 저 멀리, 그가 시작했던 지점이 보였다. 그 뒤편에 새로운 경로가 있었다.
“…낚였네요.”
허탈한 목소리와 함께 그 몸이 경호 대상이라 생각했던 것에 닿았다. 그것은 자객이었다. 은우의 팔꿈치가 자객의 대가리를 후려쳤다. 투웅. 총알 발사되는 소리가 서글프도록 선명했다.
『당신의 실패로 납치된 얼음 정령 여왕이 사망했습니다! 얼음 정령들은 이 끔찍한 사건을 기억할 것입니다.
재도전하시겠습니까?』
그 알림 창이 떠오른 순간, 은우는 괴수 군주 앞에서도 꿇어 본 적 없는 무릎을 꿇었다. 그의 팔이 땅을 받치고 이마는 폭신한 구름에 처박혔다.
“이게 게임이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낚시 꿀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편견에 사로잡히지 말라 이거야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말이지, 끝까지 악랄한 게임이었다.
* * *
멘탈이 탈탈 털리며 사악한 경호 게임이 끝났다. 플레이 타임은 박 팀장이 추천해 준 것 중 가장 짧았는데, 정신이 황폐해지는 건 비슷했다.
“삭제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제 방송 보자고 7,000원 날리신 여러분의 지갑에도 액땜을.”
─삭제식 가즈아ㅏㅏㅏ
─팀장님 게임은 매번 삭제행이여ㅋㅋㅋ
─내 지갑!!
─ㅋㅋㅋㅋㅋㅋㅋ
─이쯤되면 회사에서 켄한테 돈 좀 떼줘야함;;
─켄 아니었으면 구매했겠냐ㅋㅋㅋㅋ
은우는 시청자들의 반응을 보며 목록에서 게임 영구 삭제를 눌렀다. 돈이 아깝고 뭐고 그냥 꺼져 줬으면 좋겠다는 심정이다.
짤막한 경고 메시지가 떴지만, 영원한 이별을 바라는 마음을 막지 못했다. ‘경호 대상 구하기’ 게임이 삭제되었다.
“제 정신의 안녕을 위해서 바로 다음 게임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은우는 심호흡을 하며 게임 구입을 위해 상점으로 들어갔다. 이미 정해 두었기에 게임 검색에는 망설임이 없다.
검색 창에 한 글자, 한 글자가 떠오를 때마다 사람들의 반응이 시시각각 달라지기 시작했다.
“참고로 이번 게임은 청소년 관람 불가입니다.”
그것이 전부 완성되었을 때, 채팅 창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아 미쳤다 미쳤어
─바로 구매하러 간다 중간에 끊기는 거 절대 용납 못함
─이건 진리지ㅋㅋㅋㅋㅋ
─아니 왜ㅠㅠㅠㅠ
─킹갓제너럴켄이 드디어 악마사냥을ㅋㅋㅋ
─그 명대사가 나오는 것인가!
─아ㅠㅠㅠㅠ 안돼ㅠㅠㅠ청소년도 허락해줘!!
─찢어 죽여라!!!
그들이 보는 화면에는 막 다운로드가 시작된 게임이 하나 떠올라 있으니.
『엔젤 돈 크라이: Hell of Doom』
전설의 ‘엔젤 돈 크라이’ 시리즈 신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