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슬리퍼리퍼: 이게 게임이냐?』
게임이 끝나고 일반 채팅이 하나 올라왔다.
『성하라불러주시오: ㅂㄷㅂㄷ』
『어깨춤추는개불: 나 갑자기 대회 우승할 자신이 없어졌어.....』
『죽은산호: 개불님은 이제 그러신가 보군요. 저는 제가 살해당하는 시점부터 느꼈습니다』
『밀키스한잔: 다들 너무 절망하면 안 됩니다^^』
『밀키스한잔: 우리 아직 한 판밖에 안 했어요^^』
『어깨춤추는개불: 아, 사탄이시여!』
아무래도 보이스 채팅이 안 되는 레드바와 그를 배려해서 일반 채팅을 쓴 모양이다. 시청자들이 깔깔대며 웃었다.
『빨간맛애벌래: 어휴,,,안타깝게 역전승해버렸네요,,,,,역시 정말 강하십니다들 ^^7』
『성하라불러주시오: 다음엔 네 목에 꼭 심판을 내릴 것이야』
『빨간맛애벌래: 나를 죽이려면 우리 행님을 이겨야할 것이다!』
『슬리퍼리퍼: 다음판에는 무조건 탱부터 조지죠?』
『어깨춤추는개불: 찬성』
『빨간맛애벌래: 죄송합니다 제가 잘모했습니다』
『슬리퍼리퍼: 빠른 사과 현-명』
『죽은산호: 이래놓고 켄 님이 탱하면 레전드다』
『빨간맛애벌래: 어...? 그러네?』
『성하라불러주시오: 그만둬』
이게 시청자 채팅을 보는 건지 게임 플레이 하는 사람들 채팅을 보는 건지.
은우는 피식 웃으며 대기하고 있던 팀원들과 합류했다. 일반 채팅이야 그들도 쓸 수 있지만, 스트리머들을 배려해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켄 님, 정말 대박이었어요!”
“와, 진짜 마지막 존멋!”
초반에 사망한 시청자 두 사람이 흥분해서 그를 찬양했다. 다른 한 사람도 반응이 다르진 않았다. 은우로선 부담스러운 칭찬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협업할 자신이 없어 개별 활동을 한 게 그의 입장이었으니까. 만일 그가 이 게임의 본질에 맞게 행동했다면 시청자 두 사람이 죽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거다. 높은 확률로 말이다.
“늦게 합류한 점 죄송합니다. 빨리 움직인다고 움직인 거였는데… 브리핑도 제대로 하겠습니다. 익숙지 않은 초보자라 조금 죄송스럽네요.”
“사과하실 필요 없어요!”
“솔직히 브리핑할 만한 전투는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켄 님이 초보자면 전 뭘까요……?”
시청자들이 역으로 그를 다독였다. 그의 민폐를 너그럽게 봐줄 생각인가 보다.
“졸지에 점령전이 뭔가 대전 모드가 돼 버렸지만, 켄 님 덕에 재미는 있었으니까요. 이기기도 했고.”
“애초에 점령전이 대부분 그런 느낌이잖아요?”
“그건 그렇죠.”
“아, 원래 이런 느낌입니까?”
은우의 반문에 시청자 참가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실력이 비슷비슷하면 점령 게이지를 누가 먼저 쌓느냐에 따라 갈리는데, 실력자 한 사람 껴 있으면 방금처럼 점령이고 뭐고 그냥 다 써는 쪽이 이기죠.”
“솔직히 부활 적용 됐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점령전보단 그냥 팀 대전 같아서.”
“아, 근데 이번은 켄 님이 엄청 캐리한 것도 있죠. 원래는 이렇게 쉽게 죽어 나가진 않아요.”
보통은 거점에서 싸우다가 틈날 때마다 점령 게이지를 쌓는 형식이다. 그러다가 하나가 죽으면 승패가 기우는 것이고.
그렇지만 은우는 여러 의미로 상식을 초월한 이였다. 범인들은 한 대 맞고 두 대 때리는 형식으로 딜교(딜 교환)에서 승리한 후, 힐러의 힐링을 받아 가며 차근차근 죽이는데, 은우는 아예 안 맞고 상대만 죽어라 패지 않는가.
치료받기 위해 빠지는 시간도 없이 몰아치는 것을 배겨 낼 자는 드물다. 은우가 상대하고 있는 이만 주시하며 힐 넣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딜량을 힐량이 따라갈 수도 없다. 압도적인 승리가 나올 수 있는 연유였다.
“자, 그럼 얼른얼른 다음 판으로 넘어가죠! 다음 판은 침략 모드입니다!”
시청자들과 조곤조곤 떠들고 있자니 레드바가 곧 게임이 시작된다는 것을 알렸다. 이제 성좌 선택의 시간이다.
침략일까 수비일까. 이왕이면 침략이 좋을 텐데. 은우는 사람들과 역할을 나누며 약간의 소망을 품었다.
▣ 038. 이미 차였어
은우가 이번에 택한 성좌는 천칭이었다.
정의의 여신에게서 모티브를 따왔는지, 그의 눈이 헝겊으로 가려지고─시야는 멀쩡했다─옷은 키톤(Chiton)으로 변했다. 직사각형의 천을 몸에 두르고 어깨와 허리를 고정하여 만드는 그리스용 천 옷이다. 움직임을 감안했는지 키톤 중에서도 기장이 무릎까지만 오는 콜로보스(Kolobos) 종류다.
중요한 건 고증과 달리 속옷이 입혀졌다는 점이라. 천칭은 그의 뒤에 반투명하게 따라다녀서 불편함이 없었다. 참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오우야…….”
은우가 무기로 주어진 검 한 자루를 한번 휘둘러 보는 사이, 사방에서 감탄사가 토해졌다.
“왜 그러십니까?”
“아니, 와, 와…….”
“눈 둘 데가 없다.”
“형님… 절대 제 곁으로 오지 마세요.”
“이거 정지 먹는 거 아니에요?”
“가능할 듯…….”
은우가 고개를 갸웃거릴 무렵, 채팅 창에서도 비슷한 반응이 나왔다.
─몸 봐 진짜....
─커스텀 아무리 해도 저렇게 안 나오던데;;;
─저거 절대 커스텀 아님
─아까 튜토할 때도 생각했지만 너무 야한 듯
「‘켄의가운데다리’ 님이 ‘10,000원’ 투척!
앞으로 까고 다니는 건 어때?」
─디자이너 개천재 ㅁㅊ
─깜피에 하얀 천옷 이건 된다
─퍄퍄ㅑㅑ;; 조각상이 걸어다닌다,,,,,
그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자신을 돌아보았다. 노출이 심한 옷은 아니지만, 옆구리라든가 팔뚝이 트여서 맨살이 조금 보이긴 한다. 그렇지만 이게 야할 것까진 없지 않나?
“…바꿀까요?”
“저는 안 바꾸길 바랍니다. 가능하면 방송 끝까지.”
“아니, 그건 좀 에바.”
“사심 채우지 마요.”
“시간도 얼마 안 남았으니까 이걸로 계속 가죠, 형님!”
은우는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곧 새로운 맵이 펼쳐졌다.
“침략 역할이네요! 켄 형님, 아시죠!?”
“걱정 마세요.”
천칭 성좌는 돌격군. 튼튼한 몸을 이용해 가장 먼저 난입해서 길을 뚫어야 한다. 은우는 거점에 모여 있는 적들을 향해 검을 치켜들었다.
“승리를 가져다드릴 테니.”
저음이 간드러지게 피어나고─시청자들이 비명을 질렀다─은우가 가장 먼저 돌진했다.
탕!
적진에서 총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가죽 샌들을 신은 발이 대지와 작별을 고했다. 그가 방금 전까지 디디고 있던 대지에 총알이 박혀 들었다.
“와! 켄 님이랑 같이 하니까 질 것 같지가 않아!”
“인정합니다!”
은우는 검을 빼 들고 쏟아지는 공격을 피해 진지로 향했다.
“미인계는 반칙이다!”
헛소리가 잠깐 들려온 기분이다.
그는 검을 단단히 쥐고 쏘아지는 화살을 쳐 내었다. 총알이 연이어 그를 노렸지만, 총구만 잘 보면 피하는 건 쉽다.
아군 중 둘이 원거리형이라 견제해 주는 덕도 있다. 은우는 아군의 움직임조차 예의 주시하며 움직였다.
그때, 레리 옆에 서 있던 거대한 황소가 크게 울었다. 음머어어어, 하고 우는 소리는 온순한 느낌보다는 흉포하단 느낌이 더욱 강하다.
“켄 님! 격렬한 돌진 옵니다!”
성좌 목동이 기르는 가축 중 황소가 쓰는 기술이다. 은우는 알았노라 짧게 답하면서도 달리는 방향을 바꾸지 않았다.
황소가 거칠게 대지를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황소와 은우 사이의 거리가 근접으로 치달았을 때, 은우는 옆으로 아슬아슬하게 구르며 황소를 피했다. 은우를 스쳐 지나간 황소가 다급히 방향을 바꾸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격렬한 돌진은 갈수록 속도가 빨라지는 대신 방향 전환이 어렵다. 심지어 목동이 지정한 사람만 노린다는 점에서 이렇게 보내 버리면 시간을 끌기 아주 좋다.
은우의 몸이 기어코 적들이 있는 거점까지 다다랐다.
“길 뚫겠습니다.”
스킬, ‘공평한 심판’. 그는 입구에 도달하자마자 기술을 내질렀다. 진각을 강하게 밟으면 그 주변으로 붉은 충격파가 방출된다.
이걸로 적은 몇 초간 약화되고 이동 속도 또한 감소한다.
은우와 레리의 시선이 마주쳤다. 레리는 황소를 불러들이고 양을 불러낸 상태다. 푹신한 털 뭉치가 그녀의 방어력을 올린다.
콱!
은우의 손이 레리의 주먹을 받아치며 다른 손에 쥐고 있던 검을 꽉 잡았다. 서걱! 물이 든 가죽 주머니를 베는 감각과 함께 레리의 겨드랑이가 베여 나갔다.
“레리 님, 왼쪽 어깨 부상. 안으로 진입합니다.”
“윽!”
이걸로 저쪽 어깨는 쓸 수 없다. 은우는 적 탱커진을 단번에 무력화시킨 후 안으로 파고들었다. 들어서자마자 노랫소리가 그를 강타했다.
은우는 괘념치 않고 거점 안쪽을 빠르게 훑었다.
입구에 레리, 위쪽 저격 포인트에 우유에탄산과 슬리퍼, 뒤쪽에 산호. 개불은 어디 있지? 이 소리의 근원지는?
하나의 호흡을 세 번 쪼갠 후 한 번 더 쪼갠 시간 동안 그의 눈이 굴러갔다. 천칭이 나아갈 자리를 찾아냈다.
은우는 손안에 가둬진 칼자루를 빙글 돌려 역수로 쥔 후, 등 쪽으로 가져다 대었다. 성좌 목동의 레리가 방울 종이 달린 지팡이로 그를 때렸다.
캉!
지팡이와 칼이 맞닿았다. 휘둘러진 지팡이가 좀 더 강한 힘을 가지고 있으나, 검은 물러나지 않았다. 역수로 쥘 때 검면을 팔꿈치와 붙인 탓이다. 지지점이 생긴 검은 지팡이의 힘을 이겨 냈다.
은우는 연이어 발을 들어 뒤쪽을 찼다. 레리의 옆구리가 가차 없이 움푹 팼다.
또한 검을 쥔 팔은 검을 정수로 되돌리며 그에게 쏟아진 두 개의 단도를 내리그었다.
“켄 님, 정말 자비 없으시네요……!”
“튕겨 내기 너무 사기네요. 하향 패치가 시급하다.”
“살려 두자니 까다로운 분이시라. 산호 님과 대치합니다.”
은우는 동시에 짓쳐들어오는 이를 확인했다. 진짜 산호와 저 혼자만 흑백 필터를 씌운 듯한 산호다. 분명 쌍둥이 성좌의 ‘하나 또는 둘’. 그림자의 지속 시간이 끝나기 전에 돌진 공격이라도 할 모양인데, 그건 이쪽도 할 수 있다.
귀를 짜릿하게 울리는 노랫소리를 뒤로하고, 은우는 ‘정의의 추적’을 연속으로 발동했다. 기본 효과인 적의 위치 파악─이미 산호의 위치는 알고 있으므로 의미는 없었다─과 추가 효과인 돌격이 삽시간에 이뤄졌다.
서걱!
은우의 몸과 두 명의 산호가 교차했다. 은우가 벤 것은 가짜 산호였다.
“반사 신경 좋으시네요.”
“…타격 들어오기 전에 피한다고 했는데.”
쌍둥이 성좌의 경우 쌍둥이와 위치를 바꿀 수 있는 부가 효과가 있다. 산호는 은우와 교차할 당시 그 기능을 사용해 위치를 바꾸었지만, 은우의 공격을 완전히 피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두 분은 마지막에.”
“……?!”
은우의 발이 거점의 벽을 하나 걷어찼다.
“와아악!”
안에 있던 개불이 화들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아니, 이거 레드바가 알려 줬어요?! 네뷸라 처음이시람서!”
“아뇨, 소리가 들려서.”
은우는 태연히 개불을 공격했다. 돌진기 때문에 산호는 레리 쪽으로 물러난 상태. 은우와 그네들 사이의 거리는 5m 정도 되었고, 개불은 HP가 적은 지원형 성좌였다.
“노인 공경!”
“개불 님 발견, 대치 들어갑니다. 레리 님, 압박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행님! 이번에야말로 복수한다! 죽어라, 누나!]
[아니, 켄 님 혼자 거점 안으로 진입을.]
[슬리퍼 님과 탄산 님은 맡기세요!]
팀원의 보이스 채팅을 들으며 은우는 무자비하게 개불은어깨위에를 몰아쳤다.
개불이 있던 공간이 입구에 비해 안쪽은 제법 넉넉한지라 산호가 오기 전에 개불의 뒤로 돌아가는 수법까지 사용했다. 이렇게 되면 개불로 인해 산호는 안쪽으로 진입하기 애매해진다. 넉넉할 뿐이지 넓은 건 아니었으니까.
“아니, 악!”
심지어 ‘공평한 심판’ 쿨타임까지 돌아왔다. 은우는 산호가 반경에 있는 걸 확인하고 곧바로 기술을 사용했다. 사람들을 약화, 둔화시키는 충격파에 산호와 개불이 비명만 질렀다.
“개불 님 컷.”
기어코 지원형 성좌가 죽었다. 은우는 산호가 분신과 함께 춤과 같은 공격을 쓰는 걸 보며 담담히 무기를 고쳐 쥐었다.
헝겊 속 눈동자가 지그시 감겼다. 사고가 빨라지고 세상이 느려졌다. 다시 눈을 뜨면 이제 그의 세계는 타인과 다른 궤도로 돈다.
왼쪽, 오른쪽, 아래, 위. 은우의 손이 검을 두 손으로 잡고 천천히 들어 올렸다.
공격을 전부 튕겨 내는 건 불가능하다. 동시에 사방에서 쏟아지는 걸 전부 튕겨 낼 공간이 그에게 주어지지 않았으므로.
그렇지만 최소한의 피해는 어렵지 않다. 그 최소한이 지극히 0에 가깝도록 하는 것 역시 가능하다.
은우의 검로가 허공에 새겨지기 시작했다.
톡 터지는 꽃망울, 땅을 뚫고 나오는 새싹, 그 위로 쏟아지는 빗방울.
핏방울.
쌍둥이의 검무가 실전에서 탄생된 검에 스러졌다. 산호의 동공이 확장되는 게 은우의 시야에 찰나간 담겼다. 이어 들리는 것은 가죽 주머니를 가르는 소리와 타격감이다.
천칭 성좌의 스킬, 정의의 추적이 터져 나왔다. 대미지가 높기로 유명한 기술은 힐러에게 힐을 받지 못한 공격형 성좌를 단번에 절명시켰다.
“산호 님 컷.”
“레드바 컷!”
은우와 레리의 목소리가 어긋났다. 다음 타깃이 정해졌다.
* * *
<이게 게임이냐>
[클립영상]
그냥 켄 단일 팀 내줘라
─배경은 네뷸라가 맞는데 왜 플레이하는 건 하사신 크리드여;;
└학살 크리드!
─이거 진짜 스쿼드 모드에서 솔로로 돌려도 다 집어먹을 듯
└지금 랭킹 나오면 무조건 랭커권이라고 자신하는 애덜 켄 영상보고 다 지렸자너~
─성하가....저렇게 약하신 분이 아닌데....
└빛은 어둠에게 패배했습니다...크윽
└아아...! 궁극의 빛은 없었다! 궁극의 어둠만이 있었을 뿐....!
─아, 네뷸라 마렵네;
<??: 팀전에는 자신이 없다고 했잖습니까>
[솔킬 따는 사진 여러 장]
그래서 혼자 상대방 목을 다 따버림
─보통 저게 저런 의미가 아닐 텐데
─아, 랭킹 도입 시급하다;; 저런 괴물을 브실골플이랑 같이 풀어두면 어쩌란 거임
└빨리 랭킹전 도입해라~~!!
<켄 왜 대회 안나갔는지 알겠음>
혼자서 다 썰 수 있는데 왜 나가;;
스스로 밸런스 패치한 거다
ㅇㅈ?
─이거다
─이거네ㅋㅋㅋ
─게임사를 배려한 켄의 큰그림
─에이, 그래도 빌리 팀은 못 이기겠지
└그 빌리가 지입으로 박빙일 거라고 말한 우탄 팀을 혼자 썰었는데?
<나 대회 엄청 기대했는데>
갑자기 우승자가 정해진 것 같아서 기대심 박살남
이쯤되면 대회 우승팀한테 켄 도전권을 줘야한다
─지금 빌리 무시함??
└빌리는 안 무시하는데 빌리 팀을 무시함 ㅅㄱ
─켄 진짜 뭐하는 놈일까....
─아무리 봐도 특수부대 출신인게 분명함
<켄 모델 데뷔해줘>
[천칭 성좌 사진]
ㅅㅂ 이 몸을 하고 모델 하지 않는 것은 죄악이다
─만든 거겠지
└키 2m랑 비율도 만들었을까?
└키는 아직도 못 건드리잔어ㅋㅋㅋ
─ㅗㅜㅑ,,,,,이걸 전체연령가 방송으로 내보냈다고?
└ㄴㄴ 겜 자체ㄱ가 15금이라서 15금 걸려있을걸?
└이건 19금 걸어야할 각인데?
└보통이면 일상생활 가능하냐 묻는데 이번만큼은 못 묻겠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합방 별로 안 좋아하는데>
[클립 영상]
이건 아무리 봐도 합방이 아닌 것 같아서 재밌게 봄
─ㅋㅋㅋㅋㅋ레드바 울어욧!!
└아 근데 한 거 없긴 하잖아;;
└나름 성하 마크한 것에 의의를 두자....
─우리 불쌍한,,,,빨간 애벌래,,,,,
└왜이렇게 하찮아 보이냐ㅋㅋㅋ
└실제로 하찮아서ㅋ
└나쁜 새끼얔ㅋㅋㅋㅋㅋ
<초심 잃었다 켄아>
합방이라고 방송 너무 일찍 끈 거 아님?
─라고 하지만 켄은 오늘 4시간 했다
└그것도 짧다고ㅠㅠㅠ
─인정....이제 켄 끼워서 회의한다던데ㅠ그것도 공개해주지ㅠ
└그건 전략 유출 때문에 어려울 듯;;
* * *
커뮤니티에 올라온 대로, 방송을 끈 그들은 우유에탄산 대기실에 모였다. 친구 추가를 하면 게임 시작 전 대기실에 놀러 갈 수 있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우유에탄산 대기실은 은우의 것과 달리 고풍스러운 한옥 형태였다.
“이게 최선입니까?”
그네들 팀에 속하지 않은 레드바와 은우도 얼떨결에 모임에 참여할 수 있었다. 명목상으론 지적과 비판 및 교관 자격이었다.
“저는 이게 최선이었습니다.”
가장 먼저 우유에탄산이 이마를 짚으며 자신의 한계를 선 그었다. 참고로 그들 팀은 오늘자 방송에서 전패했다. 전부 켄 때문이었다.
“켄 님, 저 아직도 궁금한 게 있어요. 첫판 때 어떻게 제 뒤 치신 거예요?”
산호의 물음에 은우는 눈을 껌뻑였다. 당연한 걸 왜 묻는지 몰라서였다.
“그림자 샛길로 이동했습니다.”
“그걸 못 봤는데……?”
“혹시 바닥만 보셨습니까?”
그의 질문에 산호는 고개를 저었다. 바닥을 보지 그럼 어디를 보냐는 눈빛은 덤이었다. 우유에탄산 팀뿐만 아니라 레드바의 시선까지 은우에게 닿았다.
“…천장이나 벽은 안 보십니까?”
“그걸 왜 봐요?”
“거기도 그림자 샛길이 생기니까요.”
“네?”
“헐, 진짜요?”
“캬, 고걸 몰랐네.”
몰랐구나. 은우는 이 게임이 나온 지 얼마 안 됐다는 걸 새삼스럽게 상기했다.
하기야 그는 튜토리얼에서 이것저것 시험해 보겠다고 시청자들과 실험 정신을 발휘했지만, 저들은 태평하게 실험만 할 시간은 없었을 테다. 그가 시작한 지 15분도 안 돼서 발견한 건 예외로 치자.
“점프해서 써도 바닥에만 생기던데.”
“어떻게 하면 생깁니까?”
산호랑 슬리퍼가 앞다투어 물었다. 딜러진을 주로 맡는다 하니 관심 갈 수밖에 없으리라.
“대지에서 일정 거리 이상 떨어지면 바닥에 그림자가 생기지 않고 벽이나 천장에 생기더군요. 이때 가장 가까운 벽이나 천장이 우선됩니다.”
“일정 거리는요?”
“대략 3m 정도?”
은우의 대답에 사람들의 얼굴이 요상해졌다.
“3m를 어떻게 뛰어요?”
이번엔 은우의 미간이 좁아졌다.
“왜 못 뜁니까?”
범재와 천재 사이에 잠시간 침묵이 감돌았다.
“아하하하! 형님! 형님 기준으로 말하면 안 되죠!”
레드바가 넉살 좋게 분위기를 풀었다.
“아무리 형님이라도 캐릭터 스펙상 3m는 못 뛰죠, 그쵸?”
“그렇죠.”
“그럼 어떤 방식으로 뛰어올라요?”
“벽을 박차야죠.”
왜 당연한 걸 묻는 건지 이해가 안 간다. 스스로 뛸 수 없다면 지형지물을 발판 삼아야 하는 것 아닌가? 은우는 답답해졌다. 싸울 순 없더라도 싸움의 기본 정도는 알고 있어야지.
“잠깐, 잠깐. 차라리 직접 시범을 보여 주는 게 더 빠르겠어요. 켄 님만 괜찮으시면 맵 불러와도 될까요?”
맵도 불러올 수 있어? 은우는 대기실의 또 다른 기능을 배우며 고개를 주억였다. 헬멧이 그 움직임에 맞춰 까닥까닥 흔들렸다.
“어, 근데 대기실은 현실 능력치 아니에요?”
“…그건 그렇지?”
“괜찮습니다.”
오히려 현실 능력치를 고스란히 가져오기에 시범을 보일 수 있다.
“오오, 현실에서도 운동 잘하시나 봐요.”
“딱 봐도 잘하시게 생기긴 했지.”
“여윽시 행님.”
“…별거 아닙니다.”
그사이 주변 광경이 Nebula War의 전장 중 하나로 바뀌었다. 그들이 첫판 때 뛰었던 전장이다.
은우는 본래 대기실 대신 생겨난 맵을 신기한 눈으로 보았다. 헬멧을 쓰고 있는데도 그런 그의 심정을 눈치챘는지, 우유에탄산이 설명을 덧붙였다.
“유료로 구입할 수 있어요. 전 대회 때문에 모든 맵을 구입한 상태고요.”
그거 놀라운 일이다. 은우는 벽을 톡톡 건드렸다. 게임에 맨 육체로 들어온 기분이었다.
“자, 그럼 아까 그 위치로 고고씽!”
레드바를 필두로 사람들이 우르르 이동했다. 물론 중간에 은우가 선봉에 서야 했다.
“여기서부터 시작입니다. 던질 거 하나만… 감사합니다.”
은우는 거점에서 조금 떨어진 지점에 섰다. 네 개의 기둥으로 천장을 떠받치되 벽이 없고 조금 떨어진 곳에 담벼락이 있는 거점 특성상, 발각되기 어려운 위치였다.
거점 천장이 지상으로부터 4m쯤 되고, 담벼락은 그보다 더 높은 5m였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의 몸이 담벼락을 단숨에 밟고 위로 올랐다. 그리곤 거점으로 점프하며 절묘하게 들고 있던 캔을 던졌다. 캔이 거점 안으로 들어가되, 천장에 달라붙다시피 하며 빙글빙글 날아갔다.
은우의 몸은 거점의 벽에 달라붙더니 발을 거점 안쪽 천장에 밀어 넣었다. 묘기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이런 식으로… 하면 됩니다.”
은우는 한 손으로 거점 벽의 우툴두툴한 부분을 잡고 뒤쪽으로 몸을 틀었다. 거점과 담벼락 사이 공터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팀원들이 입을 벌렸다.
“…켄 님, 사람이세요?”
오늘 하루만 열 번 넘게 들은 소리였다.
“탄산 님, 저희 팀원 바꿔야 할 각인데.”
“탄산아, 차라리 내가 빠지고 켄 님 넣자.”
“조용히 해. 우리 이미 차였어.”
“아…….”
“그래도 차인 정도로 그쳐서 다행이지 않아요?”
“차였는데 뭐가 다행이야.”
“적으로 만나는 일도 없잖아.”
“아, 그건 인정…….”
슬리퍼의 말에 아련히 답하는 산호를 보며 레드바가 깔깔 웃었다.
“어휴. 우리 형님, 적으로 만나면 무섭죠. 오늘 첫! 판! 해서 2주간 연습하신 분들 박!살! 내실 정돈데. 아군으로 만나면 이렇게 든든하지만.”
첫판이란 단어와 박살이란 단어를 강조하는 게 어지간히 얄미운 수준이 아니었다.
“역시 어그로의 제왕.”
산호가 나지막이 은우가 모르는 레드바의 별명을 담았다.
“레드바는 입을 다무시오.”
“누나네는 이런 형님 없지?”
“저게 진짜.”
레드바의 깝죽거림에 레리가 분개했다. 다만 그런 레드바랑 텐션이 맞는 사람이 저쪽에도 있었으니. 개불이 웃으며 드립을 받아 주었다.
“어휴, 우린 괜찮다? 너나 켄 님 잘 모시렴.”
“오, 모야모야. 개불 형님, 아까 완전 지셨는데, 혹시 허세?”
“아니, 우리는 켄 님 없어도 그럭저럭 할 수 있는데 넌 아니잖냐.”
“크흫흐흐흫흐흫. 맞아요. 으흐흫.”
레리가 빵 터지고, 레드바는 한 방 맞았다. 은우도 피식 웃었다. 연륜이란 게 역시 무시할 게 못 된다. 저렇게 유려한 되받아치기라니.
“켄 행님! 거기서 웃으심 안 되죠!”
“아니… 뭐…….”
은우는 웃다 말고 정색했다. 애초에 헬멧 때문에 보이진 않겠지만, 그냥 기분이었다. 이러면 시치미를 뚝 떼기 더 편하다.
“안 웃었습니다.”
“뻥치지 마세요! 웃음소리가 들렸는데!”
물론 통하지 않았다. 모두가 빵 터져서 한껏 웃었다. 은우는 조금 무안해져서 목덜미만 살살 긁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여전히 협업은 어색하지만, 그냥. 그냥 나쁘지 않다. 그런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