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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자도 방송할 수 있습니다-36화 (36/233)

36화

“내가 할 수 있을까.”

은우의 질문에 애인과의 문자 대화에 집중하던 희수가 ‘응, 응? 뭐라고?’라며 대답했다. 말을 말자. 은우는 질문을 포기했다.

“아, 뭔데.”

“밀린 과제가 몇 개인데 딴짓하냐고.”

“시발…….”

화제를 돌린다고 고른 말이 대학생의 인격 스위치를 건드렸나 보다. 희수가 이마를 짚으며 욕설을 지껄였다.

“교수 새끼는 양심도 없나? 자기만 과제 내준다고 생각하는 거야, 뭐야? 양심도 없는 새끼. PPT만 꼴랑 세 개 처 올린 주제에 시키는 건 존나 많아. 하… 진짜 그 새끼, 강의 평가 때 두고 보자. 1천자 꽉꽉 채워 버린다. 좆 같은 새끼.”

“…잘 복수하도록 해.”

은우는 분노라는 감정이 인간으로 화한 듯한 표정을 보며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대학교, 뭔진 모르겠지만 무섭다. 애초에 그가 여기 나온 이유도 오늘 과제 정말 안 하면 조져진다며 감시해 달라고 희수가 부탁해서였지만, 어쨌든 그렇다.

왜 애인 안 시키냐 물으면… 그쪽도 대학생인데 무슨 꼴일 것 같냐는 답이 돌아오겠지.

“아… 연금 복권이랑 로또, 딱 이 두 개만 당첨되면 존나 잘 살 자신 있는데.”

그거 두 개 다 당첨되면 누구나 잘 살지 않을까. 은우는 현명하게 딴죽 걸려는 입을 다물었다. 기말고사를 앞둔 대학생의 샌드백이 되는 건 사양이다.

로또는 몰라도 연금 복권 이상의 돈을 벌게 된 지금은 더욱 입을 다물어야 했다.

그는 대신 오늘도 자본의 맛을 즐기며 의미 없이 펼쳐 둔 노트에 필기를 끄적였다.

합방, 잘할 수 있을까. 다른 무엇도 아닌 Nebula War를, 인간 불신이 생긴다는 협력 게임을 해낼 수 있을까.

균열 사냥꾼의 파티 플레이는 차라리 양반이었다. 그건 대본대로 연기하는 배우처럼 정해진 대로 움직이면 되는 것 아닌가. 그렇지만 이건 정말 신뢰를 바탕으로 해야 하는 게임이었다. 은우는 영 자신이 없었다.

그는 일단 최소한으로 조사한 것을 노트에 적었다.

‘Nebula War’는 다양한 모드를 통해 한 게임으로도 여러 재미를 느낄 수 있게 만들어졌다. 대표적인 모드로는 점령, 침략, 보급, 섬멸, 대전, 성좌 사냥 등이 있으며 각각 다른 룰을 통해 색다른 흥미를 유발했다.

점령 모드는 거점 하나를 두고 엎치락뒤치락하며 점령 게이지를 다 채운 팀이 나오거나 제한 시간이 끝날 때까지 지속되는 것.

침략 모드는 침략하는 쪽과 수비하는 쪽의 싸움.

보급 모드는 보급 물품을 호위하는 쪽과 약탈하거나 부수려는 쪽의 싸움.

대전 모드는 일대일로 다투는 것.

섬멸 모드는 가장 쉽게 설명한다면 이른바 데스 매치.

마지막으로 성좌 사냥 모드는 다른 게임의 레이드였다.

“레이드가 제일 쉽겠구만.”

그렇지만 합방에서 레이드를 할 리 없다. 스트리머 대전에서 사용하는 모드는 점령 모드와 침략 모드, 호위 모드, 이 세 개뿐이니까.

만약 레이드 모드를 한다면 그건 방송 막바지에 장난 삼아 할 확률이 크다.

은우는 혀를 찼다. 균열 사냥꾼에서조차 아군을 경계하는 그가 과연 Nebula War에서도 아니 그럴지.

“야.”

“왜.”

“잘도 합방 결심했다?”

“누가 겁쟁이라고 해 준 덕에.”

과제에 코 박고 있던 희수가 고개를 들었다.

“삐졌냐, 설마?”

“삐지겠냐?”

“그래. 사람이 쪼잔하면 인기 없다. 물론 넌 이미 인기 없지만.”

은우의 눈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맞는 말이긴 한데 직접적으로 들으면, 그것도 친구 놈한테 들으면 굉장히 기분이 나쁘다.

“애인 있어서 아주 좋으시겠습니다?”

“어, 짱좋음. 친없찐인 너랑 다르게 너무 즐거움.”

“그래서 과제도 즐겁겠네?”

“시부랄.”

희수는 테이블을 후려쳤다.

“교수 쉬빠 새끼!”

뱃가죽 안쪽부터 끓어오른 찰진 욕설이었다.

“너는 절대 대학교 오지 마라.”

“오냐.”

“아니야. 어쩌면 너 보고 교수가 빡칠 수도. 야, 나중에 대학교 좀 놀러 와라.”

은우는 가끔씩 자기 자신보다 희수가 제 얼굴을 더 잘 쓰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 자식, 정말 쏠쏠하게 써먹는다.

“그리고 이건 그냥 하는 말인데.”

“어.”

“넌 팀플을 해도 혼자 멱살 잡고 갈 새끼니까 걱정하지 마라.”

빨대로 생크림을 떠먹으려던 손이 짐짓 멈추었다.

“…어.”

은우의 입가가 느슨해졌다. 누가 뭐라 해도 결국 그들은 친구였다.

▣ 036. 이왕이면 이겨 버리는 게

합방 당일, 은우는 약속 시간보다 30분 정도 일찍 켰다. 합방인데 아무것도 모르고 갈 순 없기 때문이다. 합방 사실을 숨긴 상태인지라 사람들은 일찍 켠 것에 기뻐만 했다.

“너무 균열 사냥꾼만 한 것 같아서 오늘은 다른 게임을 가져왔습니다. Nebula War입니다.”

─??? ㄹㅇ?

─켄 님이 네뷸라를 한다고??

─성운대전 가자ㅏㅏㅏ

─드디어 켄님이 네뷸라를!!

─이거 진짜 존잼이에요

─아 이제 네뷸라무새들 ㅈㄴ 오겠네;;

사람들의 가지각색 반응 속에서 그는 Nebula War를 다운로드받았다. 옆에 적힌 설명을 읽는 것 역시 잊지 않았다.

“다양한 모드를 통해 여러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잘 모르겠네요. 이런 류의 게임은 처음이라.”

남의 걸 보고 오는 수도 있지만, 그래서야 정말 초심자란 느낌을 시청자들에게 전달할 수 없다.

은우는 자신의 컨셉이 ‘진짜 처음 하는데 정말 잘하는 사람’에 가깝다는 걸 인지하고 무지하게 굴었다. 물론 박 팀장님 덕분에 알고 있는 거였다.

다운로드가 완료된 게임을 실행했다. 대기실이 조각나며 은우를 우주의 한복판으로 떨어트렸다. 과연 Nebula(성운)라는 이름이 괜히 붙은 게 아니다.

“예쁘네요.”

─ㅇㅈ 접속화면 짱 이쁨....

─일부러 접속 안하고 여기서 대기할 때도 있음ㅋ

─와.....갓겜이었네;;

─아름답습니다.

은우는 별빛이 촘촘히 박힌 검은 세계를 잠시 지켜보았다. 그는 그곳에서 발판도 뭣도 없이 그저 떠 있다.

대기실 커스터마이징을 그대로 이전해 주는지 헬멧도 그의 머리에 잘 달라붙어 있다.

『Nebula War 접속』

알림 창이 떠올랐지만, 조금 더 이 광경을 보고 싶었다. 스트리머인 이상 그게 십 초 이상을 넘어가진 못하겠지만.

은우는 접속 버튼을 눌렀다. 15세 이상만 가능하다는 등의 경고 문구가 잠시 떠오르고, 게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성좌의 사도가 되어 업을 쌓아 주세요. 성좌들은 당신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전투 참여

전투 훈련

성좌 도감

.

.

.』

내레이션과 함께 알림 창이 떠올랐다. 이제 그가 있는 곳은 우주가 아니라 황폐한 어느 대지였다.

물론 지구와 달리 하늘을 쳐다보면 우주가 코앞에 있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만큼 검고 별들이 찬란했다. 달에 맨몸으로 서 있는다면 이런 느낌인지도 모른다.

“튜토리얼은 없나요?”

─전투 훈련 누르심 튜토리얼 할 수 있어염

─전투훈련이요

─전투훈련!

“감사합니다.”

─이제 튜토리얼 한 번 돌고 오면 고인물 되는 거임....ㅋㅋㅋ

─그거 맞따

─튜토리얼만 하며 개고수되는게 켄이잖어~~

은우는 시청자들의 우스갯소리에 피식 웃었다.

“그 정도는 아닙니다.”

─뭐가 아님;;;

─우리 구울들은 구울왕의 행보를 기억하고 있읍니다

─이제 학살좌가 정식 성좌 되는 일만 남았나요??

─다 쓸어버려라.

그냥 쌈박질에 익숙할 뿐인데 왜들 누명을 씌우는지. 은우는 전투 훈련에서 튜토리얼을 택했다. 그러자 뒤쪽에서 소리가 들렸다.

쿠구구궁!

아무것도 없던 대지에 무언가가 솟아올랐다. 그것은 지하로 이어지는 입구다. 굉장히 세련되고 과학적인 디자인이 시선을 끈다.

“그냥 들어가면 되는 건가요?”

─넹

─들가심 댐다

─ㄱㄱ

굉장히 재밌는 시스템이다.

은우는 입구로 발을 들이밀었다. 대략 2층 정도 내려가니 자동문이 나타났다. 문이 열리면 보이는 것은 도저히 2층 지하로 보이지 않는 어느 기지의 풍경이다.

[사도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사도께서는 성좌를 선택해 튜토리얼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어떤 성좌의 힘을 받느냐에 따라 쓸 수 있는 힘이 달라집니다.]

[먼저 원하는 성좌를 선택해 주십시오.]

귓가에 내레이션이 울리고 시야에는 자막이 떠올랐다. 덕분에 설명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성좌 - 목동

성좌 – 뱀주인

성좌 - 화가

.

.

.』

“엄청 많네.”

─뱀주인은 저거 힐러임

─왕관은 와이어를 무기로 다룸니다...

─목동은 개를 부려여

─궁수는 활 쏩니다ㅎㅎ 궁수하싈?

이름만 보면 감이 잡히지 않건만, 사람들의 설명이 덧붙여지자 대략 뭐가 뭔지 알 수 있었다.

은우는 고민하다가 까마귀 성좌를 골랐다. 그의 옷이 전면적으로 바뀌었다. 까마귀 부리가 달린 사냥꾼의 모자와 까마귀 깃을 엮어 만든 망토, 가죽끈을 장식으로 여러 개 매단 옷차림이다.

전체적으로 로코코 시대 유럽의 귀족 복식을 따라 한 사냥복인가 싶다가도, 멋을 내기 위해 디자인을 바꾼 게 보였다. 중세 판타지라고 해야 하나.

“신기하네요.”

─크....간지

─내가 입었을 땐 우중충했는데 왜 켄이 입으니까 간지철철이냐

─까마귀 저거 좀 어렵던데;;

디자인이 현대와 비슷하길래 옷도 그럴 것 같았는데, 뜬금없이 과거풍 복장이 나와서 놀랐다. 은우는 무기로 보이는 것을 들어 올렸다. 까마귀 깃털을 형상화한 단검이다.

[까마귀 성좌를 택하셨습니다. 훈련이 시작됩니다.]

[생명력은 좌측 하단에 표시됩니다. 생명력이 전부 떨어지면 사망하니 조심해 주십시오.]

[까마귀 성좌가 내려 주는 무기는 독이 발린 단도입니다. 대상을 향해 던져 보세요.]

선택을 마치자 튜토리얼이 이어졌다. 크게 알아야 할 것은 없었다.

고작해 봐야 급소를 맞추면 대미지가 더 들어간다는 점, 특정 부위를 노릴 시 ‘부상’을 입힐 수 있다는 점, 캐릭터마다 패시브 스킬과 액티브 스킬이 존재한다는 점, 궁극기가 하나씩 있다는 점 정도? 아, 성좌마다 공격형, 돌격형, 지원형으로 나뉜다는 것도 있었다.

나머진 게임을 하면서 알아가는 게 더 빠를 성싶었다.

* * *

한동안 이것저것 시험해 보며 튜토리얼에서 알짱거리고 있으니 메시지가 하나 도착했다. 프라이버시 설정에 걸려 방송에 비춰지지 않을 그것은 레드바의 메시지였다.

『레드바 님> 벌써 접속하셨나요?!』

“잠시만요, 여러분. 연락이 와서.”

─머임??

─켄....친구가 있었어....?

─연락 온 거 가지고 뭔 친구 타령임

─가족일 수도 있지이

“왜 친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까?”

은우는 채팅 창 반응을 보며 피식 웃었다. 실제로 친구는 아니지만, 방구석 폐인을 가장하는 비위치 백수들에겐 이런 농담이 어울렸다.

『나> 튜토리얼만 잠시 돌아보았습니다.』

『레드바 님> 아하,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방 초대 드릴게요.』

『나> 네.』

은우는 잠시 숨을 크게 들이쉰 후 시청자들에게 고했다.

“사실 오늘 제가 일찍 방송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ㅁㅇㅁㅇ

─설마....은퇴는 아니지 형?!

─ㅁㅊ놈

─앞으로 방송 시간 더 늘리겠다고? 알쥐알쥐

“오늘 혼자서만 방송하는 게 아니거든요.”

─?

─??

─어, 파티플 한다는 얘기?

─그럴리가 있겠냐

─아, 나 알 거 같음

─ㅋㅋㅋㅋㅋ와 진짜??

『‘붉은애벌레’ 님이 ‘켄’ 님을 듀오에 초대합니다.』

“오늘 레드바 님과 합방합니다.”

─으아아아ㅏㅏㅏ

─오이오이! 믿었다고 형씨~~~!!!

─ㅋㅋㅋㅋ뭘 믿어ㅋㅋㅋ

─합방이 뭐라고 난리치는 거임

─얘네들 뭘 모르네 레드바 오늘 방송 내용 뭔지 알고 말하는 거임?

─뭔데 씹덕아

「‘빠른정보꾼’ 님이 ‘5,000원’ 투척!

정보) 레드바 오늘 우유에탄산 팀이랑 연습대결하기로 함」

─?????

─롸?

친절한 후원자 덕에 설명할 필요를 줄였다. 시청자들의 반응이 좋은 것도 다행이다. 반쯤은 그의 개인적 필요성 때문에 한 합방이지만, 방송 자체로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그 말이 맞습니다.”

은우는 살짝 웃음소리를 흘리며 듀오를 받아들였다. 수락하자마자 그의 몸이 빛에 휘감겼다.

『동행자의 별로 이동합니다.』

이동 컷신도 제법 근사하다. 은우는 눈 깜짝할 사이에 새 별에 도착했다. 시작 별과 비슷했는데, 편의 기구가 대지 위에 놓여 있고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게 달랐다.

“켄 형님!”

레드바는 균열 사냥꾼에서 봤던 것처럼 정말 기운이 넘쳤다.

“나머지 멤버들은 시청자분들이 채워 주실 거예요! 괜찮으시죠?”

“안 괜찮을 이유가 없죠. 오히려 제가 민폐일까 걱정됩니다.”

“에이, 켄 행님이 민폐이실 리가 있나요.”

“처음이니까요.”

“그을쎄요. 솔직히 켄 형님 피지컬이면 프로도 쌈 싸 드실 것 같은데. 물론 제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전 프로 행님들 좋아해요! 알쥐, 알쥐? 물론 네뷸라는 나온 지 얼마 안 돼서 프로가 없지만!”

─ㅋㅋㅋㅋㅋㅋㅋ

─레드바 진짜 깝죽거리는 것 봐ㅋㅋㅋ

─그치만 프로 쌈싸먹을 것 같다는 건 ㄹㅇ이지ㅋㅋ

─공허쌈ㅋ

─공허쌈 미친놈ㅋㅋㅋㅋㅋㅋㅋ

“참고로 켄 님 방청자 분들이 모르실까 말씀드리지만, 저희 상대편은! 무려무려~!”

「‘형따라읽어요’ 님이 ‘10,000원’ 투척!

우유에탄산 님 팀이죠.」

“우유에탄산 님 팀이죠.”

“아니, 행님! 그걸 그렇게 말해 버리면 어떡해요!”

“후원이 들어와서…….”

“앗, 그건 인정.”

─ㅋㅋㅋ돈미새 레드바

─돈에 미친 새끼가 아니라 돈에 미친 애벌레임ㅋㅋ

사람들은 벌써부터 레드바의 텐션에 즐거워했다. 은우가 방송에 익숙해짐에 따라 말을 종종 잘하곤 했지만, 레드바 수준으로 텐션 높아지는 일은 없다 보니 벌어진 일이었다.

은우는 그도 이렇게 변해야 하나 애먼 목덜미만 쓸었다.

“역시 모르시는 분을 위해 상대 팀 전력을 말씀드리자면!”

“우유에탄산, 레리, 개불은어깨위에, 산호, 슬리퍼 님이라네요.”

“아아, 형님!”

“이번 건 후원 아니었습니다.”

“앗 그건 인저… 네?”

레드바가 배신감 가득한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실수했나? 은우가 괜히 시도했나 싶어질 무렵, 레드바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형님, 은근 방송 잘하시네요. 역시 제 형님.”

레드바의 표정이 확 변하며 양손을 총 모양으로 만들었다. 심지어 한쪽 눈으론 윙크를 했다.

직격으로 다 큰 성인의 애교를 얻어맞은 은우의 미간이 구겨졌다. 참고로 그가 형님이라고 불리고 있다지만, 신체적 나이는 레드바가 일단 더 많다.

“…아, 감사합니다.”

“아니, 왜 이렇게 떨떠름해하세요!”

“아닙니다.”

“옐로들아, 나 상처받아도 되는 거지?! 그런 거지?!”

─이 둘 케미 은근 좋은데?

─ㅋㅋㅋㅋㅋ레드바 시끄러워ㅋㅋㅋ

─ㅁㅇㅁㅇ

─ㅋㅋㅋㅋ켄 ㅈㄴ 싫어하는데ㅋㅋㅋㅋ

“싫은 건 아닙니다. 안 좋아할 뿐이지.”

─그게 그거잖아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뭐가요? 설마 저요?”

“아뇨.”

은우는 시치미를 뚝 떼었다. 따지자면 애교를 싫어하는 거니까 마냥 틀린 말도 아니었다.

“아, 그럼 슬슬 시청자님 초대하겠습니다. 자! 오세요! 두구두구두구둥!”

우주로부터 별 여러 개가 쏘아졌다. 그가 이쪽으로 올 때도 저런 모습이었을까. 은우는 그 광경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운석이 그들 앞에 도달하며 반으로 쩍 쪼개졌다.

“안녕하세요!”

“와, 안녕하세요!”

“켄 님, 반갑습니다!”

“레드바 님, 팬이에요!”

쪼개진 운석의 테두리는 사라지고 그 안에 있던 사람들만이 남았다. 은우는 그들에게 가볍게 묵례했다. 좋든 싫든 이제 정말 물러날 수 없다.

“안녕하세요.”

“와, 진짜 키 엄청 크시다…….”

“켄 님, 방송 정말 잘 보고 있습니다.”

은우는 다가온 이들에게 일단 악수를 해 주었다. 스스럼없이 다가와 손을 내미는데 안 해 줄 수가 없었다.

“오, 저쪽도 마침 다 접속하셨대요. 그럼 바로 갈까요?”

“예. 근데 제가 튜토리얼만 딱 끝낸 상태라……. 하면서 배워도 괜찮겠습니까?”

─하면서 배워도X 하면서 양학해도O

─스포ㄴㄴ

─진짜 기대된다ㅋㅋ

─상대팀 다 썰리는 거 아님?

─에이, 성하랑 개불이 버티는 데 그러겠음?

─아모른직다

채팅이 킬킬거리고, 레드바가 함박웃음을 머금었다.

“그럼요! 원래 게임이 다 그런 거죠!”

“솔직히 켄 님이면 몇 판 하자마자 저보다 더 잘하실 듯.”

“인정합니다.”

보통 협력 게임에서 초보가 들어오는 걸 싫어할 텐데, 세 시청자나 레드바는 넉살 좋게 다독여 주었다. 아마 그의 실력이 그런 여유를 만들어 줬으리라. 대회 같은 공식적인 자리가 아니란 점 역시.

“그럼 각자 성좌 선택하죠! 첫판은 연습의 연습 느낌이 강하니까, 각자 원하는 거 픽합시다! 어차피 실력도 봐야 하니까요. 참고로 이번 맵은 점령전이에요!”

“예압!”

사람들이 각자 창을 조작했다. 그들의 외형이 휙휙 바뀌었다.

은우는 그걸 가만히 지켜보다가 맨 처음 연습했던 성좌-까마귀를 골랐다. 차림새가 후욱 바뀌었다.

“앗, 까마귀 성좌 고르셨네요.”

레드바는 사자 가죽을 머리에 쓰고 철 갑옷을 두른 모습이었다. 사자 가죽을 투구 대신 착용한 로마 시대 검투사를 떠올리면 비슷할 것이다.

저 복장이 아마 헤라클레스 성좌였던가. 돌격형 성좌로 기억한다.

“켄 님은 검정색 엄청 좋아하시는 듯.”

“…그러게요?”

어쩌다 보니 이번에도 검정색이 됐다. 은우는 머쓱해져서 뒷덜미를 쓸었다.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시청자들도 속속들이 자신의 성좌를 픽한 상태다.

각자 원하는 걸 픽했음에도 딜러 3, 탱커 1, 힐러 1의 구성을 완벽히 채웠다.

“자, 그럼 즐기면서 겜 합시다! 이왕이면 이겨 버리는 게 더 좋겠지만!”

“아, 근데 레드바 님은 왜 대회 참가 안 하세요? 마당발이시잖아요.”

“후… 제 인기가 인기인지라……. 많은 분이 저를 두고 다투시는 바람에…….”

“네, 게임 시작하죠.”

“내 말 끝까지 들어 줘!”

─완전 윾퀘하다ㅋㅋㅋㅋ

─켄 지금 저 텐션에 적응 못했어ㅋㅋㅋㅋ

은우는 금방 친해진 시청자들과 레드바를 보며 조금의 피로감과 약간의 부러움을 느꼈다.

그도 저렇게 넉살 좋았던 때가 있었던 것 같은데… 이 얼굴로 20년 정도 사니까 딱딱하게 구는 게 버릇 들어 버렸다. 이젠 사람에게 다가가는 법도 모르겠다.

“적응 못 한 건 아니…진 않겠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싸 켄ㅋㅋㅋㅋㅋ

─형 솔직히 말해봐 친구없지?

“친구 있습니다. 없는 건 여러분이겠죠.”

─오우쉣 팩트 에반데

─광역 어그로 에반데

─그런 건 다 비밀로 해주는 거야!!

─뭔솔 우리 비수들한테 친구가 얼마나 많은데 그치 얘들아

─그치

그는 어깨를 으쓱였다. 하여튼 비수들이란.

“자… 그럼 진짜로 시작합니다! 출전!”

“출전!”

“다 발라 버려!”

그새 은우만 빼고 모두가 출전 버튼을 눌렀다. 저쪽도 다 되었다니 이제 그만 누르면 게임이 시작되리라. 그러니까, 별들의 대전이 말이다.

“켄 형님?”

누르지 않는 모습에 레드바가 조심히 말을 걸었을 때, 은우는 알림 창의 출전 버튼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될 수 있으면.”

사냥꾼의 모자와 얼굴을 가린 두건 사이로 보이는 눈매가 둥글게 휘었다.

“다 박살 내 볼까요.”

대전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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