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제가 눈치 없게 너무 빨리 잡았습니까?]
“와,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간지가 나지. 나는 저런 대사 하면 욕먹는데.”
“너니까.”
“시벌.”
“설마 나한테 욕한 건 아니지? 그렇지, 동생아?”
스트리머, 레리의 한 마디에 레드바는 시선을 피했다. 마음 같아서는 맞다고 외치고 싶으나, 그랬다간 자비로운 암 바(Arm bar)를 당할 것이다. 자비를 이야기하며 적의 모가지를 따는 그의 누나라면 분명 가능하다.
“방송 준비나 하자.”
레드바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레리는 남매 합동 방송을 준비했다. 요즘 대회를 준비하느라 합동 방송 자체는 자주 했지만, ‘Nebula War’가 아닌 게임을 하는 건 오랜만이었다.
툴툴거리던 레드바도 컴퓨터를 한 번 매만진 후 바로 캡슐에 들어갔다. 그들의 정신이 금세 가상의 세계로 이동했다.
“목하, 예하. 여러분, 안녕하세요.”
“들왔냐, 얘들아. 오늘은 예고한 대로 ‘균열 사냥꾼’ 할 거다! 일주일 만에 하는 거니까 못해도 넘어가.”
성직자의 편견만을 꼬집어 그려 낸 듯한 여성과 전체적으로 빨간색이 많은 남성이 그들의 시청자를 반겼다.
“오늘 뭐 깨냐고? SS급 퀘 다시 돌 거다. 감 좀 잃었을 것 같아서 트라이 파티로 가려고. 뭐? 그래도 민폐라고? 너, 딱 기다려. 이름 기억했다, 내가.”
“팩트를 들었다고 화내면 되겠니.”
“…아, 팩트 아니라고!”
컨셉에 맞게 자애로운 목소리로 동생을 달래던─토할 것 같았다─레리는 그저 웃었다. 레리의 시청자들이 우스갯소리로 ‘자비(물리) 나온다.’라는 채팅을 띄웠다.
“됐고, 트라이 막공 가자!”
SS급부터는 필요 인원이 기하급수적으로 느는 바람에 파티보단 공격대라 부르는 일이 많다. 그중에서 막공은 고정 멤버 없이 즉석에서 공격대를 짜는 일이었다.
“오늘따라 사람이 엄청 많네. 못 구할 일은 없겠다, 그치?”
“그건 또 모를 일이지. 역할군도 중요하니까.”
그들은 SS급 균열을 노리는 이들이 모이는 광장으로 향했다. 사람이 유달리 득시글거렸다.
─여기 켄이 있다는데?
그때 시청자 하나가 정보를 물어 왔다.
“응? 켄?”
한 명이 말하니 다른 이들도 은근슬쩍 말을 꺼냈다. 어떤 이는 후원으로 클립 영상을 보여 주기도 했다. 켄이 SS급 균열 전용 광장에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다.
“뻥치지 마. 켄 님이 있을 리가 없잖아.”
“그분, A급 아니셨나요?”
─레드 저거저거 또 못 믿네 으휴으휴
─30분 전에 승급하심
─성하 모시러 가져
─갓 승급한 뉴비를 왜 데려옴;;
─이시키 뭘 모르네
─켄을 뉴비취급하는 멍청이가 있다?! 루삥뽕
“너희가 나 엿 먹인 게 한두 번이어야지.”
레드바는 불퉁하게 한마디 내뱉곤 바로 튀어 나갔다. 레드바가 왔다는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인사를 건네며 길을 터 주었다. 레리 역시 그 뒤를 총총 따라갔다.
“와, 미친! 진짜 켄 님이다.”
“느그 은스브트 흐르그릇즌으.”
“내가 좀 당황할 수도 있지. 아, 안녕하세요! 팬입니다! ‘레드바’라고 불러 주세요!”
“후… 안녕하세요. 방송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레리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레드바 님, 레리 님. 켄입니다.”
“와, 진짜 켄 님이다. 대박. 목소리 짱 좋아.”
“칭찬 감사합니다.”
레드바가 호들갑을 떨고, 레리는 그런 동생이 부끄러워진 나머지 그 목덜미를 붙잡았다.
“주님, 오늘도 정의로운 심판자가…….”
“죄송합니다. 닥치고 있겠습니다.”
참고로 시청자들 사이에서 레리의 심판은 모가지를 따는 행위와 동일어였다.
얼떨떨한지 켄은 특유의 뒷목을 쓸어내리는 모습을 보였다.
“스트리머셨군요.”
“아, 네. 저는 레리고 얘는 레드바예요.”
아무리 봐도 채팅을 통해 그들의 정체를 알아챈 눈치다. 레리는 조금 분해졌다.
아직 그들의 인기가 이것밖에 안 되다니! 심지어 그녀는 이번에 무려 우유에탄산 님과 같이 대회를 나갈 예정인데! 켄 정도면 모를 수 있긴 하지만!
“죄송합니다. 제가 스트리머 생활이 오래되지 않아서 모르는 분들이 많습니다.”
“아뇨, 모르실 수 있죠.”
켄이 머쓱한지 손을 내밀었다. 방송 볼 때도 생각한 거지만 참 특이한 사람이었다. 요즘 악수하는 사람이 드문데.
레리는 손을 마주 잡았다. 고개를 꺾어야 얼굴(헬멧)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예상했다시피 정말 손이 컸다. 초등학생과 성인의 손 크기 차이다.
─와, 무슨 거인임?
─레드바가 작은 편은 아닌데ㅋㅋ완전 꼬맹이 됐누ㅋㅋㄱ
─성하.....어째서 그리 작아지셨습니까....
─성하가 하얀데 켄은 새까매서 무슨 흑백 그림 보는 기분이네;;
“나 꼬맹이 아니거든? 근데 진짜 손이 크시네요. 사과 다섯 개도 손에 쉽게 올리실 듯.”
“어렵진 않습니다.”
위협 효과가 떨어졌는지 레드바가 다시 까불거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켄은 잘 받아 주었다. 불쾌한지 아닌지는 표정이 안 보여서 알 수 없지만.
그보다 옷들이 정말… 레리는 켄의 차림새에 감탄했다.
아무렴 켄은 시청자들에게 받은 옷들로 몸을 둘둘 감싸고 있었다. 보통이면 적당히 받고 넘기는 편인데, 그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조공품이었다.
다만 그것을 지적하는 이가 아무도 없는 이유는 저 조공품들이 죄다 룩덕질용이라는 걸 알아서였다. 성능은 평범하다 못해 그저 그렇지만, 간지는 넘치는 옷들.
방송을 챙겨 본 남매는 저것들만으로 여기까지 온 켄의 실력에 새삼 놀랄 뿐이었다.
“SS급 균열에 도전하시러 오신 거죠?”
“네… 모집 중이라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 아직 모집 중이시구나… 엉? 오!”
레 남매는 드디어 켄 뒤편에서 손을 흔드는 사람을 발견했다. 이제 관심 주는 거냐고 시청자들이 그들을 타박했다.
“들어오실 거죠?”
“당빠죳!”
“자리 마련 감사합니다.”
“별거 아닙니다.”
“와, 그럼 우리 공팟에 스트리머만 셋이네요.”
“켄 님이랑 레이드 뛴다!”
“아, 나랑 누님도 뛰거든? 왜 켄 님하고만 뛰는 척이지?”
“성하도 같이 하신다!”
“와, 나는? 나랑 뛰는 건 안 기쁘냐? 나랑 뛰는 것도 기뻐해 줘!”
“그건 놉놉.”
“아, 뒷목!”
이런 개판의 막공을 몇 번 운용해 본 적 있는 공대장은 소란스러워지려는 분위기를 쉽게 다독였다. 켄을 비롯해 초행(던전을 처음 가는 것)인 이가 둘 껴 있긴 하지만, 이미 기믹이란 기믹은 다 밝혀지고 공략법도 나온 균열이었다.
리딩이 없어도 기믹만 잘 숙지하고 있으면 실패할 일은 없다. 무엇보다 그들은 템 파밍 파티가 아니라 트라이 파티(연습 파티)였다!
『레이드가 시작됩니다.』
빛 속성인 레리는 뒤편에, 어둠 속성인 레드바는 전열이었다. 딜러인 켄 역시 전열에 섰다.
“켄 님, 잘 부탁드립니다!”
“…예.”
레드바의 그림자를 지그시 응시하던─고개 방향으로 보아, 아마도─켄이 그가 가진 아이템 중 유일하게 성능이 좋은 것을 꺼내 들었다. 방어구 제작을 포기하고 소재 전부를 투입해 만들었다던 흑도다.
저걸 든 켄은 상위 딜러와 비슷한 양의 딜을 낼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은 방어력과 마법 방어력, 체력 챙기느라 바쁜데 켄은 공격력에 그냥 때려 박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저보다 더 어둠 속성 같으시네요.”
“…많이 검긴 하죠?”
머쓱한지 켄이 코트 깃을 매만졌다.
가죽코트에 검정 목 티, 가죽 장갑, 검은색 헬멧까지. 하필 캐릭터 피부도 커피색이라서 유독 검정으로만 이뤄져 있는 느낌이다.
“시청자분들이 무조건 검정을 외치시는지라.”
“크, 간지 납니다.”
레드바는 진심을 담아 칭찬했다. 남자가 들어도 살 떨리는 저음이 가볍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쿵!
그때, 균열 사이로 거대한 발이 튀어나왔다. 이번 레이드의 보스, ‘마르가르타의 고룡’이었다.
미리 건물들을 철거해 둔 덕에 휑한 거리는 사뭇 세기말을 보는 기분이 들게 했다.
“날아오르게 하면 안 됩니다!”
공대장의 외침과 동시에 본격적인 레이드가 시작되었다.
▣ 032. 제일 높은 등급이 뭐였냐
은우는 공략법대로 왼쪽 날개에 번개를 쏘아 보냈다. 다른 딜러들 역시 왼쪽 날개만 집요하게 노렸는데, 그러자 구멍이 뽁 하고 뚫렸다. 2페이즈에 돌입하면 회복될 구멍이다.
“탱커!”
전면에 대지 속성 사냥꾼들이 섰다. 그들은 딜러들에게 끌린 주목을 자신들에게 돌리고자 기술을 사용했고, 그것은 성공으로 돌아갔다.
“엄청나네요. 제가 여기에 껴도 되는 건지 몰라.”
은우는 적을 꿰뚫는 것으로 그치는 라이트닝 스피어와 달리, 상대를 관통하는 즉시 흩어지며 주변에 전류를 흘리는 기술을 쓰며 말했다.
─? 웬 엄살?
─님이 그런 말을 하는 건 좀;;
─기만 불편합니다
“레벨이 낮잖습니까.”
참고로 은우의 딜 미터기는 빡세게 템을 챙긴 다른 딜러들을 좀 더 웃도는 정도였다. S급 랭커들도 기본 스킬에서 변형을 일으키긴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관여하는 이는 차원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머리 아픔을 감수해야 한다는 큰 단점이 있지만 말이다.
시청자들이 허탈한 소리를 흘렸다.
─공팟 딜이 처참한 거임? 켄이 쩌는 거임?
─둘 다ㅇㅇ
─공대에선 7천도 뽑는데,,,,,여긴;;
─퓨딜 딜들 실화냐ㅡㅡ
─트라이 팟이니까요 머
─저 딜로 파밍팟만 안 오면 됨ㅅㅂ
그보다 물약 많이 쓰겠네. 은우는 지혜와 회복력에 치중해도 부족한 마나를 보며 물약을 꺼내 들었다. 만약 혼자였다면 오래 걸리더라도 물약 없이 잡을 수 있겠지만, 지금은 다 같이 하는 레이드였다. 1인분을 하려면 물약은 필수적이었다.
“물약 후원해 주신 시청자분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흡족)
─저도 후원해드릴 수 있는데ㅠㅠㅠ
─완전 포상이잖어;;
─조공한게 포상 ㅅㅂㅋㅋㅋㅋㅋ
─나는 균열사냥꾼을 하지 않지만 그래도 주고 싶다.
─저도 드릴 수 있는데!!!
─또 드릴까요??
“더 주시겠다고요? 어림도 없지.”
─아 왜;;
─우리도 포상받고 싶다!!
─조공 바치게 해달라!
─아아, 내가 좀 더 빨리 가죽장갑을 만들어 바쳤어야 했는데!
─왜 안 받으세요ㅠ
“왜 안 받냐고요? 그거야… 웨이브형은 절대 혼자 못 돌겠는데, 레이드형은 혼자 돌 수 있을 것 같아서?”
은우는 웃음기를 머금은 목소리로 나른하게 속삭였다. 오만하다면 오만한 말이었으나, 사람들은 좋아 죽었다. 애초에 은우의 이런 모멘트에 반한 사람들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무슨 자신감이냐 물으셔도…….”
“물러나세요!”
뒤로 피해야만 피할 수 있는 장판 패턴이 나왔다. 은우는 가벼운 발놀림으로 피하며 대답했다.
“쉬워 보이는 걸 어렵다고 말할 순 없잖습니까.”
고룡이니 뭐니, 저런 괴조를 너무 많아 잡아 봐서 감흥도 안 올 지경이다. 피할 수 없는 패턴? 이 고룡은 한 대도 맞지 않고 클리어하는 게 가능하거니와, 다른 것이 대상이어도 회피 불가능 같은 건 없다.
그래, 어떤 순간에도 길은 있다. 없다면 만들어 내서라도 있게 만들 것이다. 신을 거꾸러뜨렸던 그때처럼.
그는 회피 타이밍에 역공을 넣을까 하다가 겨우 참았다.
“공격 넣을 타이밍이 너무 많은데… 넣을 수가 없으니 조금 답답하네요.”
억지로 넣었다가 어그로가 돌아가면 모두에게 민폐다. 일단 참고용으로 본 모든 영상에서 그랬다.
“…이미 조금 간당간당한 것 같긴 합니다만.”
은우는 공대 영상에 비해 처참한 딜량을 확인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망팟 영상도 보고 오길 잘했다.
“솔로로 한 판 더 돌고 싶다.”
─무조건 돌아
─그 자존심 꺾이는 거 보고 싶네
─켄이? 어림도 없지!
─이미 S급 솔로 레이드도 해냈는데 뭐ㅋㅋㅋ
─킨슨 지금 기분 째질듯ㅋㅋ켄 덕에 외국에도 균사 퍼졌자너~
─광고비 더 받아야할 각ㅋ
─본인 솔플 성공한 켄한테 헌납하는 흑우들 보고 옴
─아, 스포일러 에바
─스포는 맙시다! 거참 상도덕을 모르네!
큭. 은우의 성대가 가느다랗게 울렸다. 시청자 참가 방송을 한 뒤로 한층 대화 나누는 게 편해졌다. 은우는 그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좋은 거겠거니 여길 뿐.
그 와중에도 그의 머리는 상황을 파악해 가며 보통 딜러들이 하지 못하는 괴이한 공격으로 고룡을 괴롭혔다. 시청자들이 키득거리며 구울왕이 먹이 사냥 한다고 놀렸다.
“괴물을 죽이는 건 사냥꾼의 사명 아니겠습니까.”
─과연 누가 괴물일까?
「‘당연히’ 님이 ‘5,000원’ 투척!
형이 괴물이지?」
─저거 맞따
“무슨 소리를. 고룡이죠.”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 하시네
입에 침을 바르면 알기는 해? 아, 일인칭은 알겠구나.
은우는 입술을 느리게 핥았다. 아니나 다를까, 일인칭으로 보고 있던 시청자들이 좋다고 그에 관해 떠들었다.
─근데 레 남매는 머하고 있어요?
─레 남매는 이렇게 잊혀지고-
─타 스트리머 언급 ㄴㄴ
“아, 아까 그분들이요. 잘 싸우고 계십니다.”
어둠 쪽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잘 보지 않지만, 레리 쪽은 정말 힐이 절묘하게 들어온다. 그가 안 받아도 하얀빛이 터지는 걸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살려주세요.’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의 힐이 들어왔다.
“저도 힐 한번 받아 보고 싶네요. 이 방어력으로 맞으면 바로 즉사겠지만.”
─너무 잘해서 못 받아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
슬슬 2페이즈가 시작될 때가 됐다. 회복할 시간을 벌기 위해 방어막을 치고 광역기를 날린다던가. 피가 간당간당할 탱커들과 마나가 간당간당할 힐러들이 숨 돌릴 시간이다.
동시에 딜러진은 미칠 시간이고.
첫 장판을 피하고 장판 사라지자마자 돌진하며 딜을 퍼부어야 한다. 그래야만 회복된 날개가 꺾이는 것은 물론 그로기 상태에 빠진다.
“딜량 간당간당해서 다 퍼부으셔야 합니다!”
공대였다면 모를까, 막공 딜량으로는 간당간당할 수 있다며 최대 화력을 쏟아부어 달라는 공대장의 주문이 들어왔다.
혹시라도 딜이 부족해서 용이 날아오르면 레이드 망한다.
은우는 그 원인이 자신이 되지 않도록 마나를 끌어모았다. 이번 레이드를 위해 배워 온 스킬을 쓸 마나다.
─그게 오나?!?
─ㅁㅇㅁㅇ
연습 모드에서 해당 스킬을 변형해 사용한 것을 봤던 시청자들이 바로 기대심을 품었다. 그럴 만했다. 이번 스킬은 은우가 봐도 제법 장관이었다.
쓰면 바로 마나가 오링 나긴 하지만, 그의 회복력이면 천뢰보를 쓸 마나량은 금방 회복될 거다.
─근데 그거 쓰면 어그로 쏠리는 거 아님? 딜 미터기 터질 각인데
─ㄱㅊ 아까 허락받음
─추락시키면 그로기 상태 돼서 괜찮아요
─먼데 먼데 그거 나만 모름??
─어제자 생방 못본 놈ㅅㄱ
─ㅠ
그때 고룡이 몸을 웅크렸다. 물러나야 한다는 신호다. 은우가 백스텝을 밟았다.
“아! 시발, 실수!”
콰앙!
그의 머리 위로 거대한 화염이 지나쳐 갔다. 왼쪽으로 구르고 오른쪽으로 굴러 봐도 불 속성 최고 위력기였다. 그러니까, 아마도.
“저거, 불 속성 최고 화력기 맞습니까?”
─어.....네....
─눈씻고 봐도 s급 최고 기술 맞음
─저게 왜 여기서 나와
─ㄴㅇㄱ
은우는 그가 실수했나 눈을 가늘게 좁혔고, 시청자들은 당황했다.
“제가 타이밍을 잘못 알고 있는 겁니까?”
─아녀 켄님이 맞음 아직 아님
─지금 저거 쏠 타이밍 아닌데?
─아, 판 조졌네
─아직 모른다
사람들이 답을 알려 주는 사이 2페이즈가 드디어 시작했다. 고룡을 중심으로 방어막이 생기고 화염이 쏟아졌다.
“아니, 미친!”
거기서 딜러 두 사람이 죽었다. 한 사람이 스킬을 잘못 날릴 때까지만 해도 반신반의하던 사람들이 탄식했다. 제대로 판 갈렸다.
“곧 끝납니다! 바로 공격 넣을 준비하세요!”
공대장이 발악하듯 고함을 질렀다. 돌발 상황에도 침착한 게 과연 리더감이다. 덕분에 방금 공격에 당황했던 이들이 일단 지시에 집중했다.
불꽃이 곧 꺼졌다.
“음.”
은우는 고룡의 상공에 생성된 구름을 보며 마나를 집중했다. 본래는 번개가 요란하게 여러 개 꽂히는 기술이지만, 그는 그 번개들을 모조리 하나로 합쳤다.
갖가지 쏟아지는 기술 속에서도 그의 굵직한 벼락은 굉장히 눈에 띄었다. 한 번 내려꽂힌 후 다시 솟구치기까지 했기에 더욱 그랬다. 불에 비늘이 녹고 그림자에 속박당하며, 바람에 찢기고 물에 젖은 고룡의 몸을 타고 전류가 흘러내렸다.
“텅 빈 감각은 익숙지 않단 말이죠.”
단 한 번도 이렇게 남용한 적이 없다. 그는 언제나 뒤를 생각하며 싸워야 했고, 전생에는 마나 물약 같은 형편 좋은 물건이 없었으니까.
그런 점에서 은우는 마나가 바닥칠 때의 감각이 불편하면서도 후련했다. 배덕적인 느낌이었다.
그사이 공격 세례가 드디어 끝났다. 한 명도 아니고 무려 세 명이 빠졌는데 용의 날개는 찢겼을까. 모두가 긴장하며 연기 속을 보았다.
키아아아아아아!
희망은 그들을 배신했다. 용이 날아올랐다.
“이거, 망한 겁니까?”
─완전 좆됨....
─저거 못 떨어트리면 거의 못 잡아요.....
정공이었다면 잡았을 수도 있지만─애초에 이런 실수를 저지르지도 않았을 테고─그들은 막공이었다. 아무리 자주 마주치는 인원이라지만, 정식으로 팀워크를 맞추는 이들을 따라갈 순 없다. 심지어 리딩도 없었다, 그들은.
“나온 지 좀 된 레이드라 들었는데, 그래도?”
─한국인이 오진 거랄까 균열이 오진 거랄까
─딸리는 스펙으로도 잡을 수 있게 공략법이 나온 거라서요
─사실 이 뒤로 나오는 모든 레이드들은 다 이렇습니다ㅋ 공략법 안 따라가면 좆됨ㅋ
그렇구나. 은우는 시청자들의 설득에 고개를 주억이며 쏟아지는 용의 숨결을 피했다. 경로가 겹치지 않도록 산개해서 쏟아지는 개인 장판기를 피해야 하는 상황인데, 날아오른 용의 공격까지 쏟아지니 죽는 이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으악! 으아악! 좆 됐다!”
“여윽시 트라이 팟은 쫑 나야지!”
“어쩐 일로 원트 하나 했다!”
은우는 마나 포션을 먹으며 양손에 쥐어진 검을 톡톡 두드렸다.
“만약 저걸 떨어트린다면? 떨어트린다면 잡을 수 있을까요?”
─딜러진 다 뒤져서 가능할지....
─가능성이 있을까 모르겠네
─애초에 떨어트리는 게 가능은 함?
─아까 그렇게 퍼부었는데도 안 찢어졌잖아요
─그건 방어막 깨느라 그런 거임 켄이 마나 때려박으면 가능할 듯?
─켄이 일점집중하면 스급 고화력기 다섯배쯤 되니까;;
─ㅅㅂ 인간임?
─연습장에서 인증했을 때 진짜 지렸었는데ㅋㅋㄱ
못 할 이유는 없다. 다만 그가 혼자 잡는 걸 상정한다면 날개를 찢는 시간에 급소를 공략하는 쪽이 좀 더 효율적이긴 하다. 저들은 그렇지 않겠지만.
은우는 그가 걷는 걸음마다 따라오던 개인 장판기가 끝났을 때, 공대장의 옆으로 훌쩍 뛰어갔다. 그는 탱커로서 사람들을 정비하기 위해 발버둥 치는 중이었다.
“헉, 켄 님?”
“저거, 떨어트리면 가능성 있습니까?”
“네……?”
“떨어트리면 잡을 자신 있으십니까?”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확신을 말해 주세요.”
은우의 담담한 재촉에 공대장이 진각을 밟았다. 흙벽이 세워지며 날아오던 불꽃의 비를 막아섰다.
“적어도 지금처럼 쉽게 당하진 않겠죠.”
은우의 눈이 사르륵 감겼다가 곧바로 떠졌다. 이들이 다 죽어도 그는 혼자 살아남아 잡을 자신이 있다.
그렇지만 혼자 살아남는 영예보단 조금이라도 더 많은 이가 살아남는 게 더 좋은 일일 테지. 그게 가상의 목숨이라고 해도.
그는 픽 웃었다. 지키기 위한 싸움을 그만둔 지는 오래지만, 이런 게 또 파티 사냥의 묘미인 거겠지.
“떨굴 때까지 알아서 버텨 보세요.”
그의 몸이 확 틀어지며 고룡을 향해 달렸다. 그리고 칼을 치켜들었다. 제까짓 게 날개가 잘려도 떨어지지 않는지 보자.
“부위 파괴가 불가능한 게임은 아니니 도전해 봅시다. 어차피 성공하든 못 하든 죽는 것 아닙니까? 졸지에 공대에서 솔플 하는 느낌이 돼 버리긴 했습니다만.”
─그거 맞따
─접근이 가능은 한가?
─틀린 말은 아닌데 그게 될까요?
─켄을 왜 의심함ㅎㅎ 난 이미 치킨시킴
─너...천재냐? 나도 시킨다
─이미 늦음 ㅅㄱ
은우는 정말 번개처럼 질주했다. 허공을 밟을 때 발판을 만들어 허공을 걷는 고위급 컨트롤이 터져 나오는 건 기본이었다.
콰앙!
그의 몸이 허공에서 뒤틀어지며 날아온 화염구를 피했다. 옷자락이 스치나 했지만, 신체에 맞는 것이 아니면 대미지는 없다. 신체에 두른 전기로 인해 금빛 섬광이 허공에 새겨졌다.
“아, 참.”
은우는 마실 나온 사람처럼 목소리를 내었다. 그의 몸은 랜덤으로 생성되는 불기둥을 피해 기어코 고룡의 근처에 다다른 채다.
“이번엔 멀미 배려 못 해 드립니다.”
고룡이 위기감을 느낀 듯─그저 패턴일 뿐이지만─상공에 불꽃의 창들을 소환했다. 바닥에는 색색의 장판이 깔리며 곧 폭격이 몰아칠 것임을 암시한다.
은우의 사고가 가속을 시작했다.
한 대라도 맞으면 죽는다. 농담 아니고 그는 정말 물몸이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한 대도 안 맞으면 된다’다. 목숨이 하나밖에 없는 것처럼, 이다음 기회가 없는 것처럼. 살 이유가 없어 전장을 떠도는 주제에 죽기 싫어 아등바등 발버둥 쳤던 그 시절처럼.
은우의 발이 현란하게 허공을 밟았다. 문득 ‘별의 기사와 안개 숲’ 때가 생각났다. 그때보다 공격 패턴은 다양하지만, 근본은 같다. 예측하고 피한다.
그의 허리가 활대처럼 휘었다. 그 사이로 불꽃의 창들이 지나가고, 그 발은 공중에 발판이라도 있는 양 공중을 노닐었다.
그 눈동자는 쉴 틈 없이 쏟아지는 공격들을 하나하나 꿰뚫어 가며 전투를 설계했다.
은우의 검에서 전기가 파르륵 솟았다.
“설마 눈도 같은 방어력을 받진 않겠죠.”
흑도에서 검기 같은 게 튀어나왔다. 비록 반월형이 아니라 창처럼 길쭉하게 쏘아져 나가는 형식이었으나, 화력은 확실했다.
발판조차 만들지 못할 정도로 마나를 북북 긁어 만든 창은 고룡의 왼눈을 정확히 파열시켰다. 고룡의 고통스러운 울부짖음이 쩌렁쩌렁 울렸다. 이제 어그로는 은우 단독이다.
“됐네요.”
─아니 님아 추락중인데 왤케 태연해ㅐ
─낙사각이냐!??
─으아아ㅏㅏㅏ다ㅏㅏㅏ
─형, 형 이런 사람 아니었잖아! 여기서 죽을 거야!
“저, 안 죽습니다.”
은우는 회복되는 마나를 셈하며 추락 직전에 몸을 빙글 돌렸다. 이제 없는 마나, 있는 마나를 모두 짜내어 발판을 만들고 한 번 점프한 후 바닥에 착지하면 된다. 그러면 죽음은 면할 수 있다.
“마나 원조!”
그가 바란 타이밍이 오기도 전에 마나가 쭈욱 차오르기 시작했다.
“……?”
은우는 반사적으로 천뢰보를 발동해 공중 점프를 했다. 마나가 왜 차올랐지? 그는 그의 몸에 연결된 흰빛을 좇았다.
“제 마나로 저 고룡에게 한 방 더 먹여 주실 수 있죠?”
레리였다. 체력 회복뿐 아니라 자신의 마나를 타인에게 넘겨줄 수 있는 빛 속성 능력자.
“대가리 좀 대신 깨 주시길.”
─아아 성하!!
─성하는 그저 빛......
─그래서 성하가 누군데 씹덕들아
─이것까지 계산한 거냐아아ㅏ!!!
─레리 성하를 모르다니, 척살이다!
─와중에 찰떡같이 바로 회피하는 켄도 오지누ㅋㅋ
─이분은 마나창 안보고도 마나 유무를 아나바;;
─빛리.......
“…나이스 어시스트(Assist).”
은우는 기분이 묘해졌다가 일단 검부터 되잡았다.
고룡은 눈을 잃은 고통에 고개를 막 휘두르고 있다.
폭주라도 하는지 사방으로 디버프를 쏟아 냈지만, 그런 어쭙잖은 것에 당할 실력은 아니다. 은우는 그가 걸린 디버프에 맞는 색으로 바닥에 솟아난 마법진에 잠시 안착해 해당 기믹을 보내었다.
그러곤 다시금 용에게 덤벼들었다. 불꽃이 쏘아졌으나 서커스를 하듯 혹은 무용을 하듯 몸을 튕기고 꺾으며 피하면 그만이었다.
“버프 받으세요!”
그때쯤 되니 저 살아남기 바쁘던 힐러들도 다급하게 버프를 쏟아부었다. 체감상 속도가 한 세 배는 늘어난 것 같다. 회복력도 마찬가지다. 벌써 반 넘게 차올랐다.
갑자기 달라진 신체 능력에 은우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나쁜 건 아닌데 익숙하지 않다. 그의 몸이 잠깐 덜컥거렸다.
“경로를 뚫겠습니다! 바람 집중해 주세요!”
그때, 바람이 그의 몸을 스쳐 지나갔다. 그것이 공격인 줄 알고 몸을 피하려던 그는 가까스로 그 움직임을 멈추었다.
바람이 고룡의 불꽃만을 날렸다.
하아. 은우는 숨을 뱉었다. 불꽃이 사방에서 터지는 와중 홀로 텅 빈 길은 마치 지옥으로 향하는 통로 같기도 하고, 노을 속을 걷는 것 같기도 하다.
“이건 뭐.”
은우는 희게 웃었다. 그래, 원래 다 같이 싸우는 거였지. 이렇게 싸우는 게 함께 싸우는 거였지.
그는 눈을 감았다. 시청자와 어울렸던 때야 그가 원거리 딜러로서 물러나 있어서 몰랐다. 진짜 합공이란 건 이런 것이었다.
그는 날개를 찢기 전에 다른 걸 먼저 하기로 했다. 그의 검이 고룡의 머리보다 더 높은 위치까지 던져졌다.
은우는 연이어 다른 검에 전기를 뭉쳤다. 던진 검이 최고 높이에 도달했을 때, 그는 뭉친 전기를 냅다 쏘아 보냈다.
“…지는 게 더 어렵겠습니다.”
고공의 검에 도달한 전격이 검날 방향에 맞춰 대각선으로 쏘아졌다. 목표는 멀쩡한 고룡의 나머지 눈. 이것으로 저 용은 장님이 되었다.
─어케 했누;;
─돌은 거 아냐;;
─이게 인간이냐??
“저번에 퓨리마 잡을 때 보니까 무기를 몸과 떨어트려도 아이템 창에서 ‘버린다’를 선택한 게 아니라면 여전히 제 소속으로 돼 있더군요. 화살도 그렇고.”
은우는 몸을 허공으로 날리며 떨어지는 검을 잡았다.
“허공으로 날려 버린 마나는 조정하기 힘들지만, 시스템상 제 무기에 깃든 마나를 조종하는 건 너무 쉬운지라.”
눈을 잃은 공격은 이제 위협조차 되지 못하니. 그의 몸이 고룡의 날개에 달라붙었다.
고통에 겨운 날개가 몸부림을 쳤지만, 그는 꼭 자석이라도 된 듯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마나 남는 분들, 저한테 마나 다 때려 부어 주세요.”
“넵!”
“야, 탱커! 알아서 살아남아!”
“우우! 차별 너무하다!”
“그럼 님들이 솔로로 용 눈 따 보든가!”
마나가 차오른다. 이런 충만함을 언제 느껴 봤더라? 은우는 피식 웃으며 마나를 조종했다. 살아 있지 않은, 그저 찌릿거리는 것이 그의 손에서 넘실거렸다.
스킬을 발동할까? 아니, 그건 너무 느리다. 0.1초가 급한 것이 현 상황이니까.
그러니 오롯이 이성으로, 감각으로만.
새까만 검신이 노랗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벼락이 그의 손에 잡힌 것 같다. 마나가 차오르는 동시에 빠져나갔다.
“우리, 진짜 살 수 있는 거야?”
“시발, 여기서 뒈질 순 없다! 이건 닥레전드감이라고!”
“어이어이! 믿고 있었다구, 젠좌앙!”
“제우스, 잘한다!”
은우의 검이 고룡의 피막을 꿰뚫고 아래로 쭈욱 그어졌다.
키아아아아아─!
머리가 어지러워질 정도의 고음은 그 파동이 눈에 보일 정도로 강렬했다. 하지만 이걸로 끝나면 정이 없지 않나.
“한 번은 정이 없다니까 한 번 더.”
여태 뇌전을 머금고 있던 검이 폭발할 기세로 전기를 주변에 흩어 냈다. 피막이 새까맣게 구워졌다. 마나가 순식간에 바닥을 쳤다가 타이밍 맞게 들어오는 마나 원조가 그의 공허함을 채워 주었다.
“어그로 돌려!”
“순서대로 착실히 빼앗는 거다! 여기서 더 뒈지면 우리, 개쫑이다!”
대지 속성이나 어둠 속성, 물 속성 사냥꾼들이 번갈아 가며 스킬을 써 댔다. 괜히 S급이 아니라는 듯 그들 또한 능숙한 움직임으로 공격을 피해 낸다.
“그림자 속박이다, 새끼야!”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건 레드바였다. 규칙에 맞게 움직여야 했던 공략법 때와 달리, 엉망이 되니까 그의 진가가 제대로 드러났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그림자 속박이 고룡을 휘감았다.
은우는 그 광경에 미간을 찌푸렸다가 바로 풀었다. 능력은 마음에 들지 않으나, 실력은 인정해야겠다.
그는 고룡의 분노가 잠시 돌려진 틈을 타 피막을 타고 올라섰다. 그러곤 피막을 자르기 시작했던 최초 부분으로 향했다.
키아아아아!
그때, 화가 날 대로 난 고룡이 날개를 거칠게 펄럭이며 공격을 마구잡이로 토해 냈다. 자신이 맞을 수도 있다는 건 아무래도 좋다는 눈치였다.
찰칵.
교합한 두 자루의 검이 빙그르르 돌며 허공으로 솟구치고, 은우는 발에 충격파를 일으켜 몸을 아래로 내렸다. 방금 있던 자리를 폭발이 휘감았다.
곧 피부를 달구던 열기가 사그라들고, 그의 부츠 굽이 다시 용의 몸에 안착했다. 위로 떠올랐던 검이 추락했다.
은우의 손이 손잡이를 잡으며 그대로 검을 박았다. 뒤늦게 흐른 전기가 고룡의 몸속에 짜릿하도록 퍼졌다.
─피지컬 미쳤누
「‘형미안해요’ 님이 ‘10,000원’ 투척!
제가 의심했다니, 아우가 모자랐습니다」
「‘반밀반구’ 님이 ‘7,000원’ 투척!
이쯤 되면 구울도 아니라는게 학계의 정설」
─진짜 솔로 레이드 가능한 거 아님??
「‘이걸?’ 님이 ‘10,000원’ 투척!
이렇게 딜을 넣는다고??」
─켄....당신은 대체......
─정보) 켄은 공중전으로 어둠을 잡은 인간이다
은우는 그 상태에서 마나를 또 한 번 때려 박곤 그대로 그어 내려갔다. 아까 찢었던 것과 각이 지도록, 하여 끝에 다다랐을 때 피막 일부가 삼각형 모양으로 잘려 나가도록.
기어코 날개가 완전히 망가졌다. 발버둥을 치던 용이 기어코 바닥에 내려꽂혔다. 낙하의 충격으로 그 눈이 잠깐 감겼다.
충돌 당시 위로 뛰어올라 충격을 피한 은우가 용의 몸통 위에 섰다. 거뭇거뭇 때가 탔을지언정 하얀 비늘의 용을 짓밟고 있는 그 모습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을 준다.
찰나간 사위가 침묵을 꽃피웠다.
“대가리 대신 깨 달라 부탁드렸더니 모가지 자를 기회를 주시네요. 역시 신은 우리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레리가 곱게 웃으며 광휘를 흩날렸다. 그게 시작이었다.
“반격이다!”
“켄 님, 사랑해요!”
“야! 조져!”
살아남은 이들이 사탕에 모인 개미 떼처럼 덤벼들었다. 그걸 보며 시청자 한 명이 툭 말을 내뱉었다.
─야, 솔로 레이드 제일 높은 등급이 뭐였냐
─켄이 S급 돈 거였지?
─오늘부로 SS급 해도 되겠네
그 말은 절대 틀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