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게임 캐릭터의 집으로 복귀하자마자 닫힌 현관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무의식적으로 현관에 다가가니 알림 창이 떠올랐다.
『Main Quest를 진행하시겠습니까?』
은우는 눈을 껌뻑였다.
“집 산 지 얼마 안 됐는데, 설마 집 부서집니까?
─아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왜 게임에서 현실적인 고민을ㅋㅋㅋ
독립에 대한 로망과 욕구가 있는 은우는 게임에서 얻은 집마저 소중했다. 돈이 모이는 대로 집을 살 생각이 만만한지라 더 그랬다. 돈은 둘째 치고 사회생활 제로의 스무 살인지라 집 알아보는 것부터가 막막하긴 하지만.
안 부서진다는 시청자들의 확답에 은우는 바로 퀘스트를 진행했다.
노크소리가 또 한 번 이어졌다.
“협회에서 나왔습니다. 사냥꾼 켄 님, 계십니까?”
『Main Quest. 협회의 방문
갑작스럽게 협회에서 사람을 보냈다.
아마 권이금과 이안에 대한 조사를 위한 거겠지.
영혼 맹세서에 맹약한 이상 그들에 대해서 숨겨야 한다.
주의하면서 적절히 응대하자.』
『1. (바로 문을 열어 준다)
2. (문을 열어 주지 않는다)』
은우는 눈을 게슴츠레 뜨다가 시청자들에게 물었다.
“계속 선택지가 주어집니까, 아니면 플레이어가 변론해야 합니까?”
─선택지 중에서 고르는 거예여ㅋ
─뭘 고르든 똑같아요 사실
─왜 만들었는지 모르겠음
전개를 쉽게 하기 위해서 변론은 그냥 선택지로만 하나보다. 은우는 아쉬움과 편리함을 동시에 느끼며 1번을 택했다. 무엇을 택하든 결과값이 같다면 굳이 시간을 끌고 싶지 않다.
“그러게요. 결과가 다른 게 아니라면 굳이 넣지 않아도 괜찮았을 것 같은데.”
─생략하면 생략하는대로 전개가 안 맞아서 그런 거 아님?
─솔직히 너무 대놓고 납치당하긴 했잖어ㅋㅋㅋ
─대충 퀘스트창으로 생략해도 되니까 그르지
─그래도 뭐 이 정도면 갠찮지 않음?
─난 직원 목소리 좋아서 나쁘지 않더라
사람들이 각자 의견을 내놓으며 맞장구쳤다. 은우는 그사이 거침없이 선택지를 선택해 가며 협회에서 파견된 이를 대접했다. 사근사근한 협회 직원의 목소리와 조곤조곤한 저음이 번갈아 가며 대화를 이어 나가자 시청자들 귀만 즐거워졌다.
─켄 한정 이건 빼면 안 된다
─이거 맞따ㅋㅋㅋㅋ
─와, 이 겜 목소리 하난 기똥차게 잘 뽑아서 조았는데 켄은 한 술 더 뜨네
은우는 시청자들의 채팅에 피식 웃었다. 나 참, 현실에선 이렇게 목소리로 주목받아본 적이 없는데. 목소리에 대한 언급이 나올 때마다 머쓱해진다.
아무래도 그는 자신에 대한 칭찬에 익숙해지려면 아직 먼 모양이다.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이에 대한 것은 비밀 엄수 해 주셔야 한다는 점, 유의 부탁드립니다.”
『Main Quest. 협회의 방문2
들키지 않고 그들을 설득했다.
아무래도 내가 기억 삭제를 당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나쁘지 않은 일이다.
앞으로도 들키지 않게 유의하자.』
“다들 비밀 엄수 엄청 좋아하네요.”
─ㅋㅋㅋㅋㅋㅋ
─마! 이럴 땐 뭘 줘야 입을 다무는 거다!
─ㅉㅉ 협회가 뭘 몰라
─시스템이 막았다 이거지!?
어차피 그가 말하고 다녀 봤자 NPC들은 못 알아들을 텐데 말이다.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단말기를 확인했다. 이 레벨로 깰 수 있는 메인 퀘스트는 더 이상 없는 모양인지 일반 퀘들만 잔뜩이다.
“그러고 보니 레이드형은 안 뛰었던가요?”
─헉 레이드 가나?
─오우쉣, 켄이 레이드 돈다고? 무조건 참가
─가즈아!!
─언제든 대기하고 있슴다[email protected]!!
─(금지된 채팅입니다)
“아, 혼자 뛸 겁니다.”
─(대충 시무룩하다는 채팅)
─(대충 너무 아쉽다는 채팅)
─레이드 솔플은 좀 어려울 텐뎅
─검은기사 배신자도 잡은 사람이?ㅋ
─아ㅋ그러네ㅋ
─아ㅠㅠㅠ 켄이랑 레이드 함 같이 뛰고 싶은데ㅠㅠ
은우는 눈을 껌뻑였다. 그랑 같이 뛰고 싶다는 사람이 제법 많다.
“왜 저랑 같이 뛰고 싶으신데요?”
─버스 타고 싶어서요ㅋ
─아따 그런 걸 왜 묻습니꺼
─행님이랑 같이 레이드 돌면 가문의 영광이라구여?
─불러만 주이소
은우는 헬멧 뒤통수를 살살 쓰다듬다가 다음 말을 꺼냈다.
“…그건 나중에 생각해 보고 오늘은 혼자 돌겠습니다. 무기는 뭐 쓸까요.”
화제를 돌리기 위한 모면책은 훌륭히 먹혀들었다. 채팅 창이 바로 난리가 났다.
일반 채팅 외에도 후원이나 구독이 주르르륵 올라오기 시작했다. 1등은 놀랍게도 강남건물주였다.
「‘강남건물주’ 님이 ‘50,000원’ 투척!
오랜만에 로빈 후드 가죠. 국궁으로, 어떠세요.」
은우의 눈매가 곱게 휘었다.
“주인님이 명하신대로.”
농담으로 던진 말에 채팅 창이 잠깐 침묵했다가 앵콜 요청을 쏟아 냈다. 후원금을 동반한 요청은 기어코 속물 고용인의 대사를 탄생시켰다.
클립 영상으로 따여 온갖 곳에 퍼 날라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 030. 외면해 오던 하나
방송을 쉬는 날 저녁, 반반마니는 의자를 걷어찼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풀 수 없을 것 같았다.
“빌어먹을 새끼!”
그가 G페스티벌에서 켄에게 망신당한 걸 알면서 켄에게 섭외 요청을 해? 반반마니는 떠올리자마자 두 배로 치솟는 짜증에 왈칵 분노를 토했다. 의자가 또다시 덜그럭 밀려났다.
“그 새끼가 뭐가 잘났다고……!”
현존하는 스트리머 중 유일하게 어둠을 잡아낸 것? ‘별의 기사와 안개 숲’은 하는 사람이 적은 마니악한 게임이다. 따라 하는 것 같아서 안 할 뿐, 그 정도만 하더라도 잡을 수 있는 놈이다.
아임휴먼의 히든 루트? 마찬가지다! 따라 하는 게 기분 나빠서 안 한 거다. 그도 가능한 일이란 말이다!
검은기사도, 킬러 마피아도 뭣도 전부!
“시발, 뭣도 아닌 새끼가…….”
반반마니는 객관적으로 봤을 때 불가능해서 안 한 거란 걸 알면서도 억지를 부렸다. 그렇게 해서라도 자신의 자존감을 채우려 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자신이 빌리의 팀에 뽑힌 게 켄의 대용품이어서라는 사실을 견딜 수 없었다. 그가 무시당한 후 켄이 섭외 요청 받은 게 아니라, 켄이 섭외를 거절해서 그를 뽑은 거란 걸 인정할 수 없었다.
“개 같은 병신 놈이…….”
아니, 대용품인 사실을 견딜 수 없는 게 아니다. 대체로 선택된 게 자신임을 인정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그가 정말 굴복할 수 없는 건 G페스티벌 당시 켄에게 겁을 먹었다는 현실이었다.
“많이 기분 나쁘십니까? 악수도 ‘못’ 하실 정도로?”
헬멧의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오던 목소리가 아직도 선명하다.
반반마니는 그 목소리를 상기하자마자 무의식적으로 이를 딱딱 부딪쳤다. 방금 전까지 훈훈하던 방 안의 공기가 그날 그 순간의 날 서린 것으로 바뀐 것 같다. 누군가가 그의 등 위로 몸을 지그시 겹친 것처럼 은근한 무게였고, 답답해지는 압력이었다.
“내, 내가 이렇게 당할 것 같아?!”
그는 벌떡 일어섰다. 열등감과 공포감이 얽히고 얽혀 그 눈동자에 배배 꼬였다.
“인생은 시발, 실력이 다가 아니라고…….”
반반마니의 손가락이 타자를 톡톡 두드리기 시작했다.
* * *
은우는 활시위를 당겼다. 화살을 쥐지 않은 채라는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가 시위를 당기는 동시에 번개 한 줄기가 그곳에 맺혔다.
“반복하는 거목, 끝나지 않는 낙엽의 저주.”
헬멧 사이로 얕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천장이 뚫린 동굴의 중심에 자라난 거목이 가지를 흔들었다. 떨어진 낙엽들이 뭉치며 각자의 형태를 만들기 시작했다.
『레이드가 시작됩니다.』
“활로만 사냥 시작하겠습니다.”
낙엽으로 이뤄진 괴물들이 그를 향해 돌진했다. 은우의 손이 화살을 쏘아 보낸 것도 그때였다.
콰지지직!
나무에 박힌 화살이 보스의 피를 깎았다. 기본 무기임에도 불구하고 공격력에 스탯을 때려 부어서 그런지 깎인 양은 제법 많았다.
─근데 잡몹 잡으셔야할 틴디
─원래는 탱커들이 잡몹 잡고 딜러들이 거목에 딜 넣는 건데....
─이게 솔플이 가능한 몹인가??
그렇지만 이 보스의 경우 낙엽을 계속 떨어트리며 잡몹을 계속 만들어 내는 패턴을 가지고 있다. 잡지 않는다고 해서 안 만드는 부류도 아니었다. 자칫하면 잡몹에게 다굴당할 수도 있단 소리다.
사람들은 그것을 꼬집었고, 은우는 웃음소리만 잘게 흘렸다. 사람들의 의심을 흐트러트리고 매혹해 내는 웃음이었다.
파지직!
새롭게 생겨난 화살이 팽팽하게 당겨진 시위를 통해 앞으로 주욱 뻗어 나갔다. 전격의 화살이 날아가는 광경은 마치 대지와 평행하게 천둥이 내려꽂히는 것 같다.
그는 전격을 한 발 더 발사한 후 바닥에 착지했다. 근처에 있던 낙엽괴물이 팔을 휘둘렀다.
그렇지만 그가 얻어맞는 일은 현혹을 걸지 않는 이상 없을 것이다.
은우의 몸이 바닥을 구르며 허벅지에 장비해 둔 화살을 집어 들었다. 무기와 마찬가지로 가장 싼 기본 화살이지만, 그는 그것에 마나를 덧칠했다.
가장 뾰족하고 가장 예리하며, 그 어떤 것도 관통할 수 있기를.
그는 기원을 담아 마나를 다듬었고, 그 순간마저 화살을 시위에 걸었다. 활대를 잡은 손이 세밀하게 화살의 방향을 조절했다. 뻣뻣한 팔은 부러질지언정 꺾일 것 같지 않다.
흐흡. 은우의 숨이 멎었다. 눈동자는 자신이 원하는 곳만을 직시했다.
그리고 구른 직후 세 발 더 내디딤으로써 그의 자세가 바로 잡혔을 때 화살이 발사되었다. 퉁, 하는 소리가 선명했다.
쐐애애액!
화살은 그가 원하는 대로 날아갔다. 그 경로에 있던 네 마리의 낙엽괴물이 화살에 꿰뚫렸다. 양이 많은 대신 방어력도, HP도 낮은 덕분이었다.
화살 한 발에 낙엽 괴물이 네 마리나 탈락했다.
“이래도 걱정되십니까?”
될 리가 있나. 사람들이 연이어 그의 이름을 연호하고, 은우는 다음 화살을 꺼냈다. 이번엔 다섯 마리다.
신기에 가까운 경로 설정과 기이할 정도로 관통력 높은 화살에 사람들이 감탄을 토해 냈다.
─켄님 사실 현실국대 가도 되는 거 아님?
─여윽시 활의 민족
─기본 화살 쓰셨을 텐데.....
─핵이겠지
─활은 한국이 채고라 이거야
─어케 관통이 저렇게 되지??
─아 ㅅㅂ 핵 아니라고 머저리 새끼들아
─(금지된 채팅입니다)
“어떻게 관통이 가능하냐고요? 마나를 화살촉에 덮었습니다. 일반 화살로는 관통해도 두 마리 정도가 최선일 것 같아서요.”
「‘Willy’ 님이 ‘121,900원’ 투척!
혹시 더블샷이나 트리블샷도 가능합니까??」
─오 그거 되면 멋있겠다
─안 되지 않나??
“…가능은 합니다만, 아무리 저라도 멀티 샷은 명중률이 형편없습니다. 후원 감사합니다.”
그래도 후원까지 하며 물어봐 주었다. 은우는 화살 두 발을 뽑아 시위에 걸었다.
피잉!
탄착 지점을 확인하는 것도 잠시, 화살이 시위를 떠나갔다. 바람을 거칠게 가른 화살이 각각 낙엽 괴물 한 마리씩을 맞췄다. 한 놈은 아슬아슬하게 다리, 한 놈은 명치다.
─아니 명중률 형편없담서요;;
─아....그 형편없다가 관통해서 여러 마리 맞추지 못한다...였군요
─탈인간...
─(금지된 채팅입니다)
─이쯤되면 킹직히 탈구울도 의심해봐야한다
─ㅇㅈ
“애초에 구울이었던 적도 없습니다.”
은우는 접근하는 낙엽 괴물의 얼굴을 걷어차며 화살을 다시 발사했다. 단 하나의 화살로 정밀 조준을 하면 멀티 샷보다 더 많은 낙엽 괴물을 죽일 수 있다.
순식간에 전장의 잡몹들이 싹 쓸려 나갔다. 아직 나무는 낙엽을 재생하지 못했다. 나뭇잎이 이제 막 돋아난 상태인 것이다.
은우는 마나가 다시 차오른 걸 느끼며 나무를 겨냥했다. 비어 있던 활시위에 번개의 화살이 떠올랐다. 아니다, 그건 창이었다.
“지금은 재미없으니까 빨리 다음 페이즈로 넘어갑시다.”
─솔직히 거목이 재미 없는 보스긴 하지
─근데 그게 솔플에서 나올 말은 아니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금지된 채팅입니다)
─아 저 새끼들 아직도 지랄이네
─관심 ㄴㄴ 병먹금 ㅇㅇ
“뭣보다 슬슬 지겹거든요, 핵 소리 듣는 거. 인증이라도 해야지.”
─아, 설마?
─전설의 그게 오나!?
─ㅁㅇㅁㅇ
─진짜 그건가!!
“포맷 또 한 번 갑시다.”
그 말과 함께 그는 시위를 놓았다. 요란한 뇌성과 찬란한 금빛 선이 허공에 아로새겨졌다.
* * *
다행히 은우는 귀찮게 포맷을 할 필요가 없었다. 포맷을 위해 게임을 종료한 직후 답변이 온 덕이었다.
다시 게임을 켜기도 귀찮고 충분히 오래 했으며, 핵 논란 때문에 조금 지겨웠던 그는 그대로 방송을 종료했다.
<재능이란 이런 거시다>
[클립영상]
참고로 균열사냥꾼 오늘 처음 시작한 거였음
─?? 처음 시작했다고?
└예스~
─부캐 아님?
└놉~
─저거 완전 기본 컨 아님ㅋㅋㅋ
└지랄 ㄴ~
─인간임?
└인간ㄴ 구울왕ㅇ~
은우가 핵 신고 답변을 방송에 내보내는 것을 마지막으로 방송 종료를 택한 직후, 논란의 열기는 커뮤니티로 고스란히 옮겨졌다.
시간이 늦다 보니 다른 방송보다 커뮤니티 뒤적거리길 택한 이들이 많았던 것이다.
<오늘 논란이 됐던 그 장면>
[켄이 전격의 창을 휘두르는 사진 여러장]
[신고가 접수됐다는 사진]
[신고 접수에 대한 답변 사진]
옙. 노 핵 예스 버그 입니다.
버그도 솔직히 일반적인 버그가 아니라 이런 광경이 연출될 줄 몰라서 대비를 못했다네요. 곧 패치될 거랍니다.
ㅋ
켄 때문에 야근하게 된 제작자가 몇인가ㅋ
─썬 스튜디오에 이어 킨슨까지,,,,아 켄 당신은 대체,,,,
─이것때문에 균열 사사게 터졌잔어ㅋㅋㅋ
─대체 뭐했길래 버그 논란이 나온 거임?
└라이트닝 스피어를 안 던지고 계속 휘둘렀다고 보면 됨
└걍 영상을 보는게 빠름
─핵인줄 알았는데 그냥 개잘핵이었누
└고인돌 아래서 드립 파오지좀 마라
└틀니 2주 압수!
└딱딱!
핵 논란에 대한 제작사의 답변을 받았음에도 인정 못 하는 이들이 있는 반면, 시원하게 받아들이고 글을 작성하는 이들도 있었다.
의심이 컸던 만큼 그것이 해결되자 그들의 감탄은 배가 되었다. 빼도 박도 못 하게 핵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그저 실력이었을 뿐이었다는데 어찌 안 놀라고 배기겠는가.
인정 못 하는 이들은 계속 핵 언급 하다가 방송에서 밴을 당한 자들이 대다수였다.
<켄 균열사냥꾼 명언 정리>
1. 한 대도 안 맞으면 힐탱은 필요가 없잖아요?
ㄴ캐릭터 생성 당시 능력치 분배할 때
2. 게임 잘 만들었네
ㄴ랭커 필수컨인 마나분할, 마나분배를 튜토에서 성공해낸 후
.
.
.
9. 저라도 멀티샷은 명중률이 형편 없습니다.
ㄴ이래놓도 각각 괴물 한 발씩 맞춤 ㅅㅂ 쓰앵님 저는 한 발만 쏴도 잘 못 맞춥니다
10. 아직도 핵이라 주장하실 거라면…저 자체를 핵이라고 하십쇼 그냥.
ㄴ답변 보여준 후 시큰둥하게 한 말.
저는 켄이 구울왕이라는 것을 더이상 의심치 않습니다
켄-멘
─방송할 때마다 명언 터지누ㅋㅋㅋ
─휴먼 1번부터 너무 충격적입니다
└왜냐면 휴면이 아니라 구울이기 때문입니다
└ㅋㅋㅋㅋ별명을 벗어서 컨셉이 됐냐고ㅋㅋㅋ
─이게 균사 하루차가 할 말이란 말인가....?
─균사 S급을 딴 지 어언 한달 능욕 당해버렸다ㅡ
└입으로는 누군들 S 못 따겠음ㅋ
└인증해 새끼야??
핵 논란을 처음부터 믿지 않았든, 답변을 보고 수긍했든 신경 안 쓰는 이들은 더 많았다. 그들은 명언 모음, 짤방을 이용한 드립, 클립을 이용한 장난을 치며 게시판에 켄의 지분을 늘렸다.
<멀티샷래피드샷 실화냐>
[클립영상]
[클립영상]
검은기사때도 생각했는데,,,,
야 이쯤 되면 국대 보내야하는 거 아님???
심지어 저거 국궁임ㅋㅋㅋ
─몸 건드린 거 아닐까?
└그런가?
─몸 개조한다고 동체실력이나 저런 조절실력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캔 리얼 스무살이면 개조는 아닐듯
└근데 리얼 스무살일리가 있겠냐고ㅋㅋ
└ㅋ 그렇지?
─아쉽다ㅠㅠㅠ 켄 부모님은 무슨 생각이신지요ㅠㅠ
└땅 치고 후회하실지도 몰라
└근데 지금도 국대만큼 돈 벌 것 같은데
└양궁선수가 얼마 받는지 모르것네;;
─보정 빨이겠지
└이 새끼 뭘 모르네;; 균사 보정빨 받으려면 가만히 서서 1초 있어야함
└ㅇㅈ 그래도 조금 애매하지 않냐
└그래서 활 인기 별로 없음
└균사 보정빨 얘기할 거면 그냥 검은기사 보고 오셈
└아ㅋㅋㅋ이거 맞다ㅋㅋㅋ
└보정 없는 망겜ㅋ
검은기사 때 잠깐 화제가 됐던 활쏘기 역시 다시 한번 화제에 올랐다. 주로 근접 날붙이를 쓰는 은우이기에 아주 드물게 나오는 활쏘기는 나올 때마다 주목을 끌었다.
<??: 주인님이 명하신대로>
[클립영상]
오빠....오빠 기억 나...?
서출이라고 나 구박받으며 사는데 오빠가 저 말하는 거 들으려고 공작 머리 따고 내가 그 자리 올라갔잔아;;
─형, 저 방구석 폐인으로 있다가 형 대사 듣는 순간 중세시대로 왔잖아요;;
─동생아,,,,네가 그 말 하자마자 나 프랑스 고성 갔다왔잖아;;
─이 색히들ㅋㅋㅋㄲㅋㄱㅋㅋㅋㅋ
─기억조작on!
은우가 우스갯소리로 내뱉었던 대사는 주옥같은 명장면에 들어가며 온갖 밈을 양산해 냈다. 주로 기억 조작류가 많았다.
<켄 끝까지 시참 안 하려나>
켄이랑 파티해서 레이드 함 뛰고 싶은디ㅋㅋㅋ
시참 안 하나? 시참 아니더라도 파티 좀 돌았으면,,,,
아 물론 저는 저격러가 아닙니다 (웃음)
그저 균열에 상주하는 사냥꾼 1인일 뿐
시참 안 되면 물약후원이라도,,,,
─아앗....슨생님....잠은 자시는지요.....
└균열 사냥꾼은 24시간 대기중
─ㅇㄱㄹㅇ 시참 해줫음 조켔다 균크리트 이곳에 대기중
└솔찌키 켄이면 지금 레벨로도 B급 파티플 쌉가능일듯
└마나포션 잔뜩 가지고 있으면 솔플도 가능하지 않을까?
└킹능성 있어서 무섭다ㅋㅋㅋ
─진짜 시참 간절.....아군으로 만나보고 싶음.....
└나 진짜 레 남매랑도 해본 사람인데 켄이랑은 가능할지 모르겠어...
그런 와중에도 소수─보단 좀 더 많은─의 사람은 으레 시참이라 줄여 말하곤 하는 시청자 참가를 이야기했다. ‘균열 사냥꾼’이 팀전을 제공하는지라 그들의 갈증은 더욱 심했다.
은우가 꼭 그들을 초대하지 않아도 은우가 파티 플레이만 한다면 같이 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아주 낮은 확률일지언정 운이 따르면 같은 팀으로 배정받을 수라도 있는 것이다.
<켄이랑 레이드 간절>
균사 최신 SS급 균열 아직도 깬 사람 없잖어...
켄 끼고 가면 어떻게 되지 않을까...???
솔직히 저 컨이면 억지로 욱여넣어줄 것 같은데??
C급이라곤 하지만 동레벨 레이드 솔킬 따는 사람이잔아....
─공대가 무슨 주묵구구식으로 이뤄지는줄 암?? 아무리 켄이라도 그건 안 됨
└켄이면 맞춰주는 게 가능할 것 같아서ㅋ
└아 그건 인정ㅋㅋㅋ
└뭐래 합 맞추는 게 얼마나 힘든 건데 ㅈㄹㄴ
─균열 무시하지 마셈ㅅㅂ 켄이 뛰어나도 그건 좀 아니지
└선넘네 1절만 하자
└기대도 못하냐?
└응 다음 뇌절
─헐, 진짜 되는 거 아님??
└일단 켄이 빨리 S급 되는 거 보고 싶음....
└근데 켄이 S급까지 찍을까?ㅋ
└찍는다고 파티플을 해줄까?ㅋ
└ㅅㅂ 내꿈을 깨지 마
사람들은 켄과 한 팀이 되어 레이드 뛰기를 소원했다. 제법 많은 이가 그랬다.
균열 사냥꾼의 열성 팬 중에서도 그런 이들이 나올 정도였으니 은우에게 거는 기대가 얼마나 큰지는 쉽게 알 수 있을 터였다.
그러니 그 글들을 본 은우가 고민에 잠긴 것은 아마도 필연이었을 것이다.
은우는 커뮤니티 반응을 보며 눈을 내리감았다. 툭 튀어나온 눈썹 뼈로 인해 진 음영은 안 그래도 검은 눈동자를 더욱 검게 만들었다.
핵이냐고 그를 비난했던 사람들이 아프게 고였다가, 그럴 필요가 있냐는 자문자답에 무의미로 흘러내린다. 하면 남는 건 그들을 환호하고 바라는 사람들뿐이니.
함께한다. 아니, 함께 싸운다.
은우는 떠올리기만 해도 애석해지는 문장에 눈을 지그시 감았다.
얼굴 드러내는 것이 이번 삶 때문에 싫어졌다면, 사람과 쉬이 친해지지 못한 건 저번 삶 때문이니.
그는 다리를 움켜쥐었다가 금방 풀었다. 그의 다리는 멀쩡하다. 말할 것도 없이 당연한 일이었다. 이 육체는 단 한 번도 사고를 당한 적이 없으므로.
그렇지만 여전히 그는 다리의 허전함을 기억하고 복부에서 올라오던 핏물의 향을 기억하며, 살이 산 채로 썩어 들어갈 때의 고통을 기억했다. 온몸을 꽁꽁 묶었던 감각이 선명했다.
그런데도 또다시 타인과 등을 맞대도 되는 걸까. 아무리 게임이라지만, 실제 목숨과 연관이 없다지만 그래도 되나.
그는 손등으로 눈을 가리고 다른 손으로는 목을 매만졌다. 헛웃음이 나오는 건 그도 이미 답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스쳐 지나가는 인연. 배신당한다 하여 무엇이 아플 것이며, 무엇이 슬플까.
신뢰를 줄지 말지 정하는 것 또한 스스로의 몫. 배신당한다면 그건 결국 보는 눈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배신이 뼈아픈 것은 배신당했을 때의 상황을 이겨 낼 실력이 없어서다.
비난을 흘려보낼 수 있는 이성은 그 사실 또한 인지하고 있으니. 그럼에도 안 된다 말하는 건 그가 겁쟁이인 탓일까. 사소한 불안 하나만으로 그 가능성을 전부 배제하려들 만큼 겁이 많아서, 그래서.
「아주 배가 불렀지, 불렀어.」
친구의 핀잔이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그에 은우는 흐린 미소를 지우고 사려 물었다.
그는 거슬린단 이유로 세상에 녹아들 방법 하나를 쳐 냈다. 그건 대체 언제부터였지? 그가 기억하는 스스로는 공포를 이유로 도전을 피하는 자가 아니었는데.
“…같이 죽어 준다고 한 건 너였어.”
새벽 1시 12분. 은우는 불현듯 그가 외면해 오던 하나를 응시하기로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