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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자도 방송할 수 있습니다-28화 (28/233)

28화

소정의 선물은 기본 무기였다. 딱히 옵션이 붙어 있진 않으나, 없는 것보단 훨씬 나은 무기.

은우는 그중 쌍도를 택했다. 총도 있지만, 그 경우는 총알을 따로 사야 했다. 자금이 전무하다 싶은 걸 고려하면 총은 그다지 좋은 선택지가 아니다.

『Main Quest. 사냥꾼의 첫 걸음

각성자 등록을 완료하고 사냥꾼이 되었다.

신원이 확실하지 않는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인 만큼, 이것밖에 길이 없다.

높은 등급의 균열일수록 돈이 많이 벌린다고 한다. 내 수준에 맞는 균열을 오가며 힘을 쌓아 더 높은 등급으로 향하자.』

“이거 15세 게임인데 돈 얘길 하네요.”

─ㅋㅋㅋㅋㅋㅋ자본주의 겜ㅋㅋㅋㅋ

─이것이 선행교육이다 이마리야~~!

─ㅋㅋ이거 집도 사야함ㅋㅋㅋㅋ

은우는 마지막으로 단말기를 받고 각성 센터를 나왔다. 그러자 보인 건 무수한 인파였다.

“…어.”

“나오셨다!”

“켄 님!”

그는 몰려드는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였다. 커스터마이징을 반영할지언정 신장은 똑같기 때문에 대부분 머리 하나가 작았다.

─ㅋㅋㅋ균크리트들 총출동했누

─오늘 막 등록한 사냥꾼이 대인기!?

─균린이한테 소매넣기 하려고 몰려왔네

─근데 저건 좀;;

─민폐가 될 수 있으니 자제해라.

“잠, 잠깐. 밀립니다, 여러분.”

“아, 밀지 마세요!”

“뒤에서 계속 밀어서, 죄송!”

체격으로는 은우가 압도적이나, 이 게임은 능력치가 있다. 은우는 시청자들로 추측되는 이들에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였다. PVP 모드를 켜 놨다면 이것만으로도 HP가 0이 되어 사망할 수준이었다.

그때 누군가가 무언가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리며 외쳤다.

“켄 님, 소매 넣기 가능합니까악!”

“아니요, 괜찮습니다.”

“오토바이 헬멧인데요!”

“염치없지만 받는 걸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진짜광기ㅋㅋㅋㅋㅋㅋㅋㅋ

─헬멧빌런 어쩔 거임ㅋㅋㅋㅋ

─그보다 헬멧 어디서 구해온 거야ㅋㅋㅋㅋ

─저거 성능 없는 주제에 은근 비싼데ㅋㅋㅋ

은우는 시청자 하나가 불쑥 내민 아이템을 받아 들었다. 게임 내에서 하도 헬멧을 쓰고 다녀서 그런가, 이젠 없으면 아쉽다.

다만 그가 헬멧을 잡았을 때, 순간 파란색 막이 생겨나며 끌어당기는 것에 제동을 걸었다.

『‘누나라고했잖아’ 님이 ‘오토바이 헬멧(검정)’을 선물합니다. 받으시겠습니까? 네 / 아니오』

“네.”

파란색 막이 사라지며 헬멧이 쑤욱 당겨졌다. 은우는 동그랗고 앞판이 전부 막혀 있는 헬멧을 기분 좋게 썼다. 소유자에 따라 자동으로 크기가 맞춰지는지라 안 써질 걱정은 없다.

“헬멧 감사합니다. 끝까지 쓸게요.”

“아싸!”

“아, 아까워! 나도 만들어 올걸!”

“켄 님, 무기 소매 넣기는 안 됩니까!”

“안 됩니다.”

“아깝.”

“코트는 괜찮습니까! 간지 템!”

“그것도 좀…….”

─받쟈

─코트는 받죠

─행님 가오는 살려야죠

─코트는 킹정이지ㅋㅋㅋ

「‘반밀반구’ 님이 ‘50,000원’ 투척!

무.조.건.받.아.」

시청자들의 닦달에 그는 딱 코트까지만 받았다. 기본 검정 셔츠 위로 가죽 코트를 걸치니 그럭저럭 태가 살았다.

그사이 소란이 조금씩 정리되었다.

“유저분들에게 폐가 되니까요, 가능하면 따라다니지 말아 주세요. 또한 이 이상의 소매 넣기는 안 받습니다.”

은우는 시청자들에게 자중해 달라 요청했다. 많은 이가 동의 표를 던졌지만, 미적거리는 이들은 아직 많았다. 그는 가지 않을 거면 질서라도 지켜 달라는 당부를 마지막으로 걸음을 옮겼다.

은우가 누군지 모르는 일부 유저들이 그 장면을 의아하게 지켜보았다.

“이거, 단말기로 이동하면 된다고 했죠?”

“네!”

“게임 내 대답 안 됩니다. 쉿.”

“쉿!”

─ㅋㅋㅋㅋㅋ어미오리 따르는 아기오리들이냐고ㅋㅋㅋ

─진짜 키차이 봐ㅋㅋㅋㅋㅋ

─구울단들 ㅈㄴㅋㅋㅋㅋ

은우는 단말기를 통해 막고 싶은 균열을 골랐다. 아직 스토리 진행이 불가능한 듯 아무거나 선택해서 깨면 되는 것 같았다.

『강북구 수유동에서 발생된 균열(F급/웨이브형)을 신청하셨습니다. 이동 시작합니다.』

균열을 선택하니 주인공이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하는 컷신이 나왔다. 그가 앞으로 가장 많이 봐야 할 장면일 것 같다.

“너무 깜짝 놀랐네요. G페스티벌 아직 안 끝났나 싶었습니다.”

─온라인 겜은 어쩔 수 없음

─작작 따라다녀라 좀;;

─완전 민폐임

─좋은 시청자의 태도가 아닌 것 같습니다wwwww

“그보다 컷신이 희한하네요.”

목적지에서 끝나지 않고 오토바이로 가는 도중에 끝난다. 물론 오토바이를 내릴 때까지 몸은 멋대로 움직였다.

끼이익.

균열 방어를 위한 2차 저지선을 지나 1차 저지선에서 오토바이가 멈췄다. 몬스터들이 새어 나갈 것을 대비해 단단히 무장한 경찰들이 대기하고 있다.

“담당 사냥꾼이십니까?! 곧 균열이 생겨납니다! 어서 입장해 주세요!”

은우는 대답 대신 쌍도를 쥐고 앞으로 걸어 나갔다. 코트 자락을 여미지 않은 덕에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코트가 은은히 휘날렸다. 무릎까지 오는 가죽 코트라 포스가 남달랐다.

─ㅗㅜㅑ.....

「‘형실제직업모델이죠’ 님이 ‘1,000원’ 투척!

모델이 아니고서야 저런 핏이 나올리 없는데」

─켄 님 진짜 보면 볼수록 기럭지 오지시는듯

─3인칭으로 봐봐라,,,,간지 폭풍이다,,,,

은우가 저지선 안에 섰을 때, 알림 창이 떠올랐다.

『웨이브가 시작됩니다.』

균열이 시작되었다.

타다다다닥-!

균열이 완전히 열리고 몬스터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아까 튜토리얼에서 잡았던 놀과 처음 보는 몬스터가 껴 있다. 시청자의 말에 따르면 고블린이라는 모양이다.

“쉬운 미션이니까 얼른 끝내겠습니다.”

그의 몸이 앞으로 내달리며 각각 30cm, 45cm짜리 검신을 치켜세웠다.

아직 마나가 적은 관계로 칼날에만 전기를 두른다. 하면 낭비 없이 예리함과 절삭력만 올릴 수 있다.

서걱!

은우의 칼질 한 번에 고블린이나 놀의 목이 달아났다. 전기가 본디 예기 어린 무기와 잘 어울리고 놀과 고블린이 아무리 약한 몬스터라고 해도, 결코 흔한 일이 아니었다.

─전기가 사실 킹갓이었던 것임?

─단번에 절단하려면 상대 방어력의 5배 데미지를 넣어야할 텐데…?

─급소는 3배임

「‘이실직고하면용서’ 님이 ‘10,000원’ 투척!

코트랑 헬멧 준놈 나와라 옵션 뭐 넣었냐」

─저 헬멧 소매넣기 한 사람인데 암 것도 안 넣었어요

「‘여윽시’ 님이 ‘3,000원’ 투척!

학살좌」

은우는 채팅 창이 옥신각신하기 시작하자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후원 감사합니다. 그리고 칼날에만 기를 둘렀을 뿐입니다. 벨 땐 거죽과 닿을 지점에 응집했고요.”

─예?

─어, 그러고보니 칼날에 빛이....

─그게 가능함?

─미친 거 아녀;;;

─저거 가능한 사람 랭커 중에도 별로 없을 텐데?

사람들이 얼탔다. 은우의 검은 그 순간에도 고블린과 놀의 머리를 추수했다.

데굴데굴 구르는 목들이 제법 기괴했다. 성인 설정을 해제해 잘린 단면에 모자이크가 생기는 데도 그랬다. 혹은 그래서 더욱 이상한지도 모르지만.

“마나가 생각보다 이르게 다네요. 앞으론 근력보다 지혜랑 회복력에 치중하겠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

─몸에 마나 둘둘 두르면 어케 되긴 한데,,,,

─근력 너무 안 찍으면 무기 못 끼세영....

─켄 특) 기본 무기로 학살한다

─이게 게임이냐ㅋㅋㅋ

은우는 마나 낭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몬스터들을 잡고 다음 무리로 향할 때엔 전기 발현을 껐다. 켤 때 0.1초 정도 시간이 필요하긴 하지만, 그것을 계산에 넣어 두고 움직이는 것은 일도 아니다.

아무렴 고블린의 거죽을 베어 낼 수 있는 최소한의 마나량을 찾아내기까지 했는데 그것 하나 못할까.

전생의 그는 지금 가진 것보다 작은 양의 기로 정상에 오른 사람이었다. 그때보다 덜 완성된 시스템일지언정 그 안에서 가지고 노는 일 따위 어렵지 않다.

은우의 쌍도가 기어코 균열주의 몸까지 갈랐다.

▣ 028. 음머어어어

균열은 레벨이 올라갈수록 종류가 다양해진다.

몬스터들을 쏟아 내는 웨이브형, 균열 안으로 진입해야 하는 진입형, 웨이브와 진입이 합쳐진 혼합형, 거대한 몬스터 하나만 나오는 레이드형까지.

저레벨 때는 웨이브형만 나오며 혼자서도 클리어할 수 있지만, 위로 갈수록 파티를 짜야 하는 일이 많다.

그런 점에서 은우는 유리했다. 스트리머란 점을 이용하면 인력 수급이 쉬웠으니까.

다만 그 장점을 전부 무위로 돌리는 건 은우의 고집이었다.

─파티퀘를 솔로퀘로 만드는 당신....

─보통이면 답답하다고 할 텐데 켄이라서 못하네ㅋ

─아,,,같이 뛰고 싶다,,,,

은우는 스토리 전용 진입형 균열에 들어가 빛살처럼 움직였다. 레벨이 상승함에 따라 배울 수 있게 된 스킬 중 ‘천뢰보’를 선택해 배운지라 그 속도는 정말 빛을 보는 듯했다.

서걱!

한 줄기의 번개가 허공을 스칠 때마다 몬스터들은 목이 달아났다. 일인칭으로 지켜보던 이들이 속도감을 못 이겨 토하러 갈 정도의 빠르기건만, 은우는 태연했다.

“아직까진 너무 쉽네요. 그래도 게임이 재밌어서 나름 할 만합니다.”

─슬슬 파티 짜는 것도 모자라 본인 렙보다 낮은 곳을 도는 구간인디요?

─당신이 규격 외인거야;;;

「‘형잠깐만’ 님이 ‘1,000원’ 투척!

너무 어지러워욬ㅋㅋㅋ」

“아, 어지럽습니까.”

은우는 걸음을 멈추며 오크를 나무에 처박았다. 순식간에 반피가 깎인 오크 위로 검이 떨어졌다.

“제가 여러분 배려를 못 했네요. 앞으론 살살 다니겠습니다.”

그의 너스레에 시청자들 일부는 고마워하고 일부는 헛웃음을 터트렸으며, 일부는 부들부들 떨었다.

스걱. 오크의 목 하나가 또 떨어졌다. 그것은 줄기에 달린 이파리 하나를 똑 꺾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보다 이게 왜 스토리용 균열인지 모르겠네요. 특별한 건 없어 보이는데.”

은우는 정글과 비슷한 형태의 숲을 둘러보며 칼을 나무에 박았다. 몰래 기어 내려오던 뱀의 머리가 동강 났다.

균열 내에는 일반 짐승이 없으니. 접근하는 건 죄다 몬스터이므로 죽여도 된다.

“기다리면 알게 된다라…….”

보스 몹이 특별한가. 가설을 이것저것 대어 보던 은우의 고개가 한쪽으로 돌아갔다.

“사람의 목소리를 흉내 내는 몬스터도 있습니까?”

─나아아중에 나오긴 하는데 아직은 없음

─아니ㅋㅋㅋㅋ그걸 또 들었다고?

─켄님 그거 암? 지금 님 방송 땜에 균열 게시판 터짐ㅋ

─아직 없어요~

사람의 목소리를 흉내 내는 몬스터가 아직 없다면 지금 들리는 목소리의 정체는 무엇일는지.

“살려 주세요! 누구 없어요?!”

이곳이 스토리 전용인 이유는 역시 이 목소리 때문이겠지.

은우의 몸이 나무 사이를 지났다. 수풀 사이로 숨어 있던 몬스터들이 기습하려 했지만, 은우의 걸음은 민들레 홀씨처럼 유들유들했다.

그들이 공격하기 전에 피하고, 닿기 전에 피해 있다. 남는 건 펄럭이는 코트 자락뿐이다.

“제발… 제발 누가 좀……!”

그는 금방 목소리의 근원지에 도달했다. 마주친 건 아주 자그만 아이였다.

초등학생 저학년쯤 될까? 쫓기고 있었는지 생채기를 비롯한 상처가 제법 많다.

『Main Quest. 균열에서 만난 아이

왠지 모르게 들어가야 할 것만 같았던 신사동의 한 진입형 균열.

그곳에서 나는 위험에 빠진 한 아이와 마주쳤다.

어떻게 들어온 것일까. 어째서 이곳을 헤매는 것일까. 의문은 많지만 상황은 촉박했다.

어서 아이를 구하자.』

─왔다!!

─귀여운 얼굴에 그렇지 않은 능력

─얼굴은 귀여운데......

─특) 손은 안 귀여움

은우는 일단 아이와 고블린의 추격전 사이에 끼어들었다.

“헉, 사람?! 도, 도와주세요!”

“뒤로.”

그는 그를 향해 달려오는 아이의 팔을 잡고 제 뒤로 돌렸다. 아이를 쫓아오던 고블린 무리가 독침을 내세웠다.

피하자니 뒤의 아이가 맞을 것 같다. 은우는 몸에 얇게 기운을 펴 발랐다. 그리고 그대로 방출했다.

구 형태의 기가 화악 확장하며 날아오던 독침들을 튕겨 냈다. 금세 사라졌지만, 그것으로 쓸모를 다했다.

연이어 한 발자국 내디뎠다. 천뢰보로 인해 그의 몸이 쑤욱 앞으로 나아갔다. 어느새 그는 고블린들 앞에 서 있다.

서걱!

첫 고블린의 목이 날려 버린 검은 그대로 두 번째 고블린의 독침 대롱을 잘랐다. 왼손에선 고블린의 머리를 둘로 쪼갠 후 전기를 흩뿌려 뒤에 있던 세 마리를 경직시켰다.

제대로 된 스턴이 아니라 짜릿함으로 인한 순간적인 당황일 뿐이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은우의 두 번째 걸음이 그의 몸을 고블린들의 뒤로 보내었다.

단칼에 세 마리의 목이 달아나고, 마지막 한 마리는 은우가 던진 쌍도를 머리에 박았다. HP는 아직 남아있으나, 저렇게 당하면 100% 스턴이다. 은우는 유유히 다가가 검을 뽑고 심장을 찔렀다.

고블린 다섯 마리가 그렇게 끝이 났다.

“이렇게 강한 사람은 본 적 없어…….”

어느새 바닥에 엎어져 있는 아이가 감탄을 토해 냈다. 청보랏빛 머리카락에 노란 눈동자가 제법 눈에 띈다. 염색이야 많이들 한다지만, 저 나이대 아이가 렌즈 끼긴 어려울 텐데.

심지어 보편적인 인간의 귀 대신 보이는 건 강아지들이 가지는 복슬복슬한 귀였다. 대충 보면 머리카락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자연스럽다.

─본 적 없어 ㅇㅈㄹㅋㅋㅋ

「‘이안아’ 님이 ‘5,000원’ 투척!

아 진짜 귀여유ㅠㅠㅠㅠ」

─귀여미가 인정한 킨의 무력....

─이안아아ㅏㅏㅏㅏ

─제발 그 손도 얼굴만큼 귀여웠음 얼마나 좋았겠냐

“후원 감사합니다.”

『Main Quest. 균열에서 만난 아이2

아이를 구하는 데 성공했다.

아무리 봐도 일반인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여기에 온 걸까?

일단 아이를 데리고 균열을 빠져나가야겠다.

아이를 보호하며 밖으로 나가자.』

아이와 얽혀서 좋은 꼴을 본 적이 없는 은우의 몸이 움찔거렸다. 스토리니까 어쩔 수 없지만, 설마 울진 않겠지. 게임 NPC들이 그의 덩치를 가지고 뭐라 태클 건 적은 없으니까 괜찮을 거다. 아마도.

『1. 괜찮아? 다친 데는 없어?

2. 여긴 어떻게 들어온 거지?

3. 넌 누구지? 』

알림 창에 대화 선택지가 떠올랐다. 눌러도 되고 음성으로 말해도 된다. 참고로 후자의 경우 뉘앙스만 비슷해도 어지간하면 커버해 줬다.

“다친 데는.”

은우는 스트리머의 본분에 맞게 직접 말하는 편이었다. 게임을 잘 만들었다 보니 낯부끄럽다는 느낌은 별로 없다. 사람들이 오그라든다는 평보단 영화 보는 것 같노라고 떠들어 준 덕도 있을 것이다.

“어, 없어요.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일어나.”

그는 손을 뻗어 아이가 일어나는 것을 도왔다. 가까이서 보니 더 작았다. 그의 골반에 겨우 닿을락 말락이다. 몸을 움츠린 채 손만 꼼지락거리니 더욱 작아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하씨ㅠㅠㅠㅠ귀여워ㅠㅠㅠㅠ

─개커여뷰ㅠㅠ

─아ㅜㅠㅠ 이것때문에 미워할 수가 없다ㅠㅠ

─애기야ㅏ아ㅏㅏㅏㅏㅏ

─정보) 실제 나이는 애기가 아니다

─ㄷㅊ

─켄이랑 붙어있으니까 더 귀여워ㅠㅠㅠㅠㅠ

“여긴 어떻게 들어온 거야.”

시청자들이 떠드는 동안 그는 선택지에 맞춰 말을 걸었다. 아이가 그를 졸졸 쫓아다니며 저도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시청자들이 심장을 부여잡았지만, 은우는 그저 곤란할 뿐이었다. 아이란 생물엔 익숙하지 않다. 울지 않는 게 다행일 정도로.

“이름은.”

“이, 이안… 앗, 뒤에 몬스터가!”

팅!

은우를 향해 날아오던 검이 칼날에 튕겨 나갔다.

“히익!”

이안이 그의 옷자락을 꼬옥 끌어 쥐었다. 오크가 수풀 사이에서 몸을 들이밀었다.

─민폐 on!

─본래는 파티로 오니까 보호할 수 있는데...ㅋㅋ

“음.”

이안을 두고 움직이자니 기척이 포위 진형이다. 애가 겁을 집어먹어서 떨어트리는 것도 힘들 것 같고.

은우는 사방에서 쏟아지는 칼들을 전부 튕겨 내다가 그에게 찰싹 달라붙은 이안의 몸을 팔로 휘감았다. 워낙 작아서 엉덩이를 받쳐도 문제가 없을 지경이다.

“꽉 잡아라.”

“왁!”

은우는 한 팔로 이안을 든 채 수풀로 뛰어들었다. 이안이 반사적으로 그의 목을 달싹 끌어안았다. 엉덩이를 받친 손에 꼬리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것을 방해로 삼기엔 이미 이 주변은 그의 감각권이었다.

─애기 놀랐져요ㅠㅠㅠ

─아 귀여워ㅠㅠㅠ

─진짜 이안 아기수인으로 설정해둔 거 신의 한수다

─균사 마스코트ㅠㅠㅠ

─흉흉한 분위기의 거인이 뽀작깜찍 소인 안은 거 너무 지리지 않냐고ㅠㅠ

─최고의 투샷 인정합니다

초반에 찍어 둔 근력이 여기서 도움이 될 줄이야. 은우는 혹시라도 이안을 놓치지 않도록 마나로 팔을 강화했다. 다른 손으론 오크들의 멱을 따고 있다.

“그보다 참, 균열주가 엄청 안 나오네요.”

전기를 주변으로 퍼트려 가며 생물체를 탐색하고 있는데도 안 나온다. 은우는 마지막 오크의 심장에 검을 박고 명치를 발로 찼다.

검신에 묻은 푸른색 점액들이 아래로 뚝뚝 떨어졌다.

“엑?!”

어차피 계속 벌어질 전투. 그때마다 들어 올리기도 뭐 했으므로 은우는 그냥 이안을 안은 채 돌아다녔다. 덕분에 움직임에 장애도 생기고 공격도 한 손으로만 해야 했지만,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다.

“아, 찾았다.”

드디어 나왔다. 은우는 방금 찾아낸 거대한 기척을 찾아 움직였다. 울창한 수림 사이로 봉긋하게 솟아오른 언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가운데 앉아 있는 것은 재규어와 비슷하게 생긴 몬스터라. ‘퓨리마’가 이름이란다.

“여긴 정말 몬스터를 근본 없이 배치하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ㅇㅈ

─ㅋㅋㅋㅋㅋ그냥 줏대없이 나옴

─우려먹기도 심해요ㅋㅋㅋ

잡몹은 없으니 내려놔도 되겠지. 은우는 이안을 바닥에 내려놓으려 했다.

「‘음머어어어’ 님이 ‘10,000원’ 투척!

하고 울 미래가 보이지만 그래도 미션 겁니다. 이안 들고 1트에 깨기. 소모템 사용 불가. 20만 원.」

─흑우 등장하셨누

─들고다녀질 이안 뭔 죄임?

─내 무기 뽀갠 죄

─인정합니다 (땅땅

─아 근데 넘 귀여어....

은우의 손길이 멎었다. 헬멧 속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여기서 이 쌍도까지 버리면?”

─? 네?

─ㅋㅋㅋㅋㅋㅋ이건 넘 무리수 아닌가?

「‘강남건물주’ 님이 ‘30,000원’ 투척!

묻고 쌍도까지 버리면 30만 추가.」

큰손이 나섰다. 은우의 손이 검을 놓았다. 퓨리마는 몸을 살살 일으키며 천천히 다가오고 있다.

“왜, 왜 버리세요?!”

풀숲에 검이 풀썩 얹어지고, 이안이 귀를 쫑긋 세웠다. 파들파들 떠는 몸이 조금 가련하면서도 사랑스럽다. 채팅 창이 ‘ㅋ’로 도배되었다.

─어디서 냄새 안 나요? 데자뷰 냄새요!

─아니 그래도 검을 버리면 잡기힘들지 않나? 마나가 무한한 것도 아니고;;

─켄을 의심하다니, 구울인 척하는 인간 놈을 잡아라!

─잡아라!!

─이안 귀 쫑긋한 거 봐ㅠㅠㅠ

“저런 짐승을 잡을 때는 사실 검보단 다른 게 좋습니다.”

은우는 이안을 고쳐 안으며 손에 마나를 응집했다. 뱃가죽 안에 들어차 있던 마나 일부가 실이 되어 그의 팔, 손목을 통과한 후 손바닥 한 가운데서 솟아올랐다. 수십 개의 실타래였다.

─?

─잠

─머하는시는

그는 그 실타래를 배배 꼬았다. 소용돌이를 그리듯 뱅글뱅글 돌던 힘이 그의 바람에 따라 올곧게 뻗었다. 그리고 적당한 길이가 되었을 때, 폭풍의 눈처럼 빈 안 공간을 이용해 도로 돌아왔다.

다시 손바닥과 맞닿은 실타래들이 은우의 몸속을 파고들며 본래 마나 집으로 돌아갔다. 마치 창처럼 길게 내뻗은 나선의 모임은 여전히 연결된 채로.

그것은 마치 하나의 순환과 같다.

“바로 창이죠.”

은우의 손에 번개를 품은 창이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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