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기술의 발달로 채팅 방이 터져 버리는 일은 없어졌다. 수만 명이 채팅을 동시에 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다만 방이 터지진 않아도 약간의 렉이 생기는 것은 막을 수 없다. 그러니 은우가 열어 두었던 채팅 창이 3초의 딜레이를 가져 버린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은우는 3초간 생겼던 여백에 잠시 침묵했다가 목덜미를 슥 쓸었다.
언제 시청자 수가 십만이 됐지. 절반 넘는 지분이 외국인이지만, 참 현실감 없는 수였다.
“아… 여기서부턴 게임 구매 인증하신 분만 시청 가능하도록 설정 잠시 바꾸겠습니다. 미리 요청받은 부분이라서요.”
─악!!!
─난 구매했지롱!
─실황충은 꺼지라 이마리야~~!!
─구매하고 올 테니까 좀 기다려주세요 퓨퓨ㅠㅠ
─게임사는 여윽시 이 미래를 알고 있었는가ㅋㅋㅋㅋ
─솔직히 겜 안 하더라도 켄 방송 볼 수 있으면 남는 장사지~
─그거 ㅇㅈ
“10분 뒤에 진입하겠습니다.”
나중에 유어튜브에도 올라갈 예정이지만─물론 그것도 게임 구매 인증을 해야만 볼 수 있을 것이다─생방으로 보는 것과 재방으로 보는 것은 다르다.
무엇보다 요즘 게임 실황은 게임 살 돈과 시간이 없어서 보는 게 아니라 게임을 못해서 보는 추세였다. 피지컬을 가리는 VR 게임은 더 그렇다.
그러니 안 사고 안 보는 이들보다 사고 보는 이들이 더 많을 것이다. 아니더라도 게임사에 얹어져서 먹고사는 게임 스트리머 특성상 감수해야 할 부분이고.
은우는 구매하겠다는 사람들을 배려해 시간을 두었다. 시청자 수가 꾸물꾸물 줄었다가 늘기를 반복했다.
기다리는 동안 그는 회복 방울을 꺼냈다. 회복 방울이 터지자 바닥에서 놀고 있던 HP가 느긋하게 차올랐다.
이후 부서진 직검 대신 곡도와 단검을 꺼내 들었다. 배신자의 쌍도가 탐나지 않는 건 아니나, 스탯 제한은 그가 제어할 수 없는 분야였다.
“10분 지났네요. 설정 돌리겠습니다.”
─안대!!
─어서 갑시다!!
─지끔 이 숫자가 다 구매한 사람들임??ㅋㅋㅋㅋ
─개쩐다....
─숫자 변동이 거의 없는데?
─아 좀 떨어진다
은우는 방송 설정을 잠시 바꾼 후 지하실을 천천히 내려갔다. 함정이 있을까 하여 주의를 기울였지만, 특별한 것은 없었다.
그렇게 1층 정도의 높이를 내려가니 작은 방이 모습을 드러냈다.
검크리트고 뭐고 옹기종기 모여든 시청자들이 흥분해서 채팅을 올렸다. 워낙 사람들이 많이 모인 탓에 은우조차 쉬이 읽을 수 없다. 유료 구독만 채팅을 올릴 수 있는데도 그렇다.
“여긴… 연구실인가? 연구실 같죠?”
은우는 작은데도 알차게 차 있는 방을 둘러보았다. 연구에 쓰일 법한 기구들과 재료, 책들이 가득하다.
그는 그중에서 일지를 가장 먼저 들어 올렸다. 책상 위에 떡하니 존재하니 건드리지 않고 배길 수 없다.
팔락.
그것은 일지였다. 아마 배신자가 적었을.
“기묘한 것들이 왕국에 출몰하기 시작했다. 왕께서 내게 그것들의 해석을 맡기셨다. 해낼 수 있을까. 아니, 해낼 것이다. 해내야 한다. 이 나라를 위해서……. 원래는 왕의 신임을 받는 신하라고 했었죠. 그 시절인가 봅니다.”
은우는 목을 가다듬고 일지의 내용을 조곤조곤 읽어 내려갔다. 사람들이 그의 목소리에 1차로 녹고 내용에 펄쩍 뛰었다.
“그것들은 기이한 생명이었다. 그것들은 개별로 존재하되 하나로서 존재했다. 우두머리를 사로잡는다면 좀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을 텐데. 그것은 너무 강력하다. 백의 기사와 천의 병사, 오십의 마법사가 그것에게 죽임을 당했다. 그들에게 안식이 깃들기를.”
─카롬이 대놓고 뒷설정을 알려준다고??
─불가능에 가까운 것을 해낸 이들에게 찬사의 의미로 선물을 준비해놨다더니..ㅋㅋㅋ
─목소리 너무 좋다,,,,
─나래이션 듣는 것 같어
“오늘 낮에는 항구가 점령당했다고 한다. 혈시들의 증가가 심상치 않다. 우리는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걸까? 점점 불안해진다. 왕께서 맡긴 임무를 다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이건 버려진 항구 이야길까요? 그것이라고 표시되던 것도 혈시라고 적어 놨네요.”
─그런 듯ㅇㅇ
─저거 내용 채우기도 힘들었겠다ㅋㅋㅋ
─적당한 것만 읽고 넘어가는 켄도 대단함
─다 읽어주면 좋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게걸스럽게 인간들의 영역을 탐한다. 주요 성채와 수도를 제한 모든 영토가 혈시들에게 넘어갔다. 이대로 우리는 멸망하는가? 왕께서는 나를 불러 나의 잘못이 아니라 말씀하셨다. 그 말은 정말인가? 나는 최선을 다했나?”
은우는 다음 장으로 넘겼다. 첫인상은 검다는 단어 하나다. 잉크를 들이부었나, 혹은 만년필로 북북 긁었나.
글을 읽어 낼 수가 없다. 그다음 장도, 다음 장도 마찬가지였다.
“드디어 하나가 나왔네요.”
몇 장을 더 넘긴 끝에 멀쩡한 페이지가 나왔다. 페이지 중심의 단 한 줄이 시청자들과 은우의 시선을 강탈했다.
“혈시는 새로운 지배자였다. 신은 인류를 버렸다.”
─허어....
─혈시가 신 종족이고 인류는 구 종족이란 추측이 맞았네;;
─세대교체가 일어나는 시대였던 거로군요....
─그럼 배신자는 멸망하는 인류를 버리고 살아남는 신종족이 되려 한 건가....?
─그런듯
─자동으로 로렌스 엔딩은 OO엔딩이네;;
─스포 밴이다 조심해라
“무슨 생각을 했든 배신은 배신이죠.”
하물며 저만 살겠다는 이기심에 비롯된 배신임에야.
은우의 눈동자가 서늘해졌다가 이내 잔잔해졌다. 그의 왼손은 버릇처럼 복부를 매만진다.
“일지는 여기서 끝이네요. 더 보고 싶은 게 있습니까? 전부 볼 거니까 흥분하지 말고 차근차근 말해 주세요.”
안 그래도 밀린 후원이 더 밀리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겨우 안정된 속도의 채팅이 또 폭주하는 것을 막기 위해 뒷말을 덧붙였다. 소용은 없었다.
이때가 아니면 절대 볼 수 없다는 희귀성은 검은기사의 팬이 아닌 자들마저 엉덩이를 떼게 했다.
“책장은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으니 기물부터 둘러보겠습니다.”
은우는 그런 사람들을 다독이며 방들을 차례차례 둘러보았다. 그러나 카롬은 언제나처럼 많은 정보를 주지 않았다.
연구 도구는 상호작용이 안 되었고 책장의 책들은 뽑히지 않았다. 재료들도 바싹 말라비틀어져 어디 쓸 곳이 없었다.
그들이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오직 일지 하나뿐이었다.
은우는 마지막으로 어울리지 않는 목각 인형을 매만지다가 숨겨진 방을 나왔다.
▣ 022. 작년에 고3이었던
실망스럽게도, 이후에 나온 보스들은 배신자보다 약했다. 은우는 그것을 안타까워하며 게임의 엔딩을 보았다.
그것이 신의 뜻이라면 멸망을 받아들여야지 않겠냐며 돌이 된 오로스.
만약 멸망도 죽음도 바라지 않는다면 이것을 마시라며 정체 모를 물약을 건넨 로렌스.
인류의 멸망을 막기 위해 혈시들의 왕을 죽여 달라던 탑주.
엔딩은 세 가지였고 택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였다. 그중 은우가 택한 결말은 세 번째였다.
“전 인간이니까요.”
은우가 구울인 건 아니냐 떠들던 사람들에게 묘한 감상을 주는 한 마디를 남긴 채로.
그렇게 많은 이에게 월요일부터 새벽잠을 선물해 준 방송이 종료되었다. 그렇지만 진정한 비수(비위치 백수)와 시청자들의 시간은 이제부터였다.
실시간 검색어에 켄에 대한 것이 줄지어지고, 커뮤니티에는 클럽이 개설되었다. 디제이의 이름은 켄이었다.
<(스포)검은기사 스토리>
카롬뇌들이 추측해냈던 게 맞았음.
[배신자의 일지 사진 여러 장]
혈시는 새로운 종족이고 인간들은 구 종족. 대륙의 패자가 바뀌는 거에 가깝지 이게?
배신자가 인류를 배신한 건 인간이 멸망할 종족인 걸 알고 새 종족으로 갈아탄 거 같음.
[반은 인간 반은 혈시인 배신자의 얼굴 사진]
PC판 더미데이터에서도 못 뜯었던 얼굴이 나왔다;;
자동적으로 로렌스 엔딩은 혈시로 거듭나는 엔딩인 듯.
어쨌든 중요한 건 오늘 켄 본방 못 본 놈들 인생 절반 손해ㅋ
─머임 어디서 나옴??
└켄이 오늘 생방에서 배신자 잡고 숨겨진 방 찾음
└숨겨진 방이 있다고?
└VR 배신자 잡으면 갈 수 있게 남겨둔 모양
─와......카롬이 어언 일로 설정을 다 밝혔다냐
└이정도면 다 밝힌 거긴 하지ㅋㅋ
└ㅇㅈㅋㅋㅋ
─손해 인정합니다
가장 많은 지분은 역시 새로 밝혀진─비록 추측으로 알려졌던 것이라 해도─검은기사 설정 이야기였다.
이미 예상한 것이라고 해도 뇌피셜과 오피셜은 와닿는 게 다르니. 사람들은 신이 나서 밝혀진 설정을 씹고 뜯고 맛보았다.
<외국 검빠들 난리났다>
VR버전 배신자 세계최초로 잡힌 것 때문에 지금 뒤집어졌음ㅋㅋㅋ
또 한국이 한 건 했냐고 하는디ㅋㅋㅋㅋ
여윽시 게임은 한국이 최강국이라 이말이야~~
─주모~!! 국뽕 한 사발 추가!!
─지금 다섯 번째 돌려보는 중ㅋㅋㅋ잠 다잤다
─빌리랑 어딜 비교하냐고 나대던 놈들 다 사라졌잖어ㅋ
─어둠 잡은 거랑 아임휴먼 히든루트 발견자란 거 추가로 밝혀져서 더 난리남ㅋ
└ㅋㅋㅋㅋㅋ이게 한 사람이 해낸 거라니 믿을 수가 엄습니다,,,,
─프로 데뷔해주면 좋겠다....
└세계 선수들 양학 쌉가능
└이건 도저히 설레발이라고 말 못한다ㅋ
└ㅇㅈㅋㅋㅋㅋㅋ
검은 기사의 인기가 더 높은 외국은 거의 산불 수준이었다. 작은 불씨가 소식 듣지 못하고 가만히 있던 사람들에게까지 손을 뻗으며 세력을 키웠다.
은우의 전적 중 아임휴먼 히든 루트와 어둠 사냥이 있었던지라 화력은 걷잡을 수 없는 수준이었다.
<이게 방송 시작 일주일도 안된 신입스트리머가 해낸 일 맞냐?>
1.스토리 중반 잡지 말라고 만들어둔 곳에서 어둠을 잡아버림
ㄴ덕분에 개발자들이 그거 막는다고 업데이트함ㅋ
ㄴ업데이트 전에 또 잡아버림
ㄴ업데이트 했는데 문제는 켄 밖에 잡을 수 있는 사람이 없음ㅋㅋ
2.아무도 못 밝혀냈던 아임휴먼 히든루트를 뚫어버림ㅋ
ㄴ그와중에 업적 오지게 달성했죠ㅋㅋ
ㄴ학살좌죠ㅋㅋ
ㄴ한 번도 안죽었죠ㅋ
3.검은기사 출시 이후로 절대 못 잡는다 평받던 VR버전 배신자를 잡고 숨겨진 방 밝혀냄
ㄴ마찬가지로 엔딩까지 한 번도 안 죽었죠ㅋ
ㄴ배신자전 전까지 노히트였죠ㅋ
ㄴ1렙클이었죠 시1발 미쳤음
─사람인가?
└구울왕임
└학살좌임
─그러고 보니 진짜 데뷔한 지 얼마 안 됐네;;
└커뮤니티를 계속 점령해서 한 한 달 된 줄
└ㅆㅇㅈ,,,,
검은기사를 실컷 맛본 그들은 당연하게도 물고 뜯고 씹을 다음 대상으로 은우를 골랐다.
은우의 무력은 유어튜버들에 의해 낱낱이 분석당하고, 그가 해냈던 일들은 또다시 주목을 받으며 조회 수를 올렸다. 은우의 유어튜브 계정은 개설된 지 한 달도 안 됐다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수준이었다.
<아직도 켄 모르는 녀석 있냐?>
[배신자 전투 클립영상]
이제 안 찾아보고 못 배김 ㅅㄱ
─ㅋㅋㅋㅋㅋ이 새끼 영업천재네ㅋㅋㅋㅋ
─아, 진짜 봐도봐도 레전드다....
─저게 되는 거임?? 미친 거 아니ㅑ??
└더 놀라운 거 말해줄까? 1트 1렙임ㅋ
└??????
└이제 킹시보기 하시면 됩니다 쓰앵님
└영업 ㅈㄴ 잘하네 간다
─본인 지금 현타옴....협력자랑 같이 해도 2페이즈에서 조져졌는데.....
└가기라도 한게 쩌는 거 아니냐
사람들은 그가 벌인 전투 영상들을 클립으로 따고 캡처하고 매드 무비로 만드는 등 찬사를 멈추지 않았다.
아무렴 한 번 보면 도저히 팬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정도로 은우의 전투는 압도적이었고 화려했으며,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무언가가 있었다. 마치 영웅을 보는 것처럼.
은우의 비위치 유료 구독이 또 한 번 훌쩍 증가했다.
* * *
“이 아저씨, 좋아 죽으려 그러네.”
“누구? 아, 팀장님?”
“어.”
은우는 미리 정산받은 돈으로 ‘민트 초코 자바칩 프라푸치노’를 주문했다. 단 걸 좋아하지만, 돈 없는 백수란 이유로 아메리카노만 먹던 그에게 이것은 굉장한 사치였다.
심지어 그는 큰마음 먹고 휘핑크림 추가까지 했다. 초코시럽을 끼얹은 휘핑크림은 정말 달콤했다.
이것이 돈의 맛이구나! 은우는 행복해졌다. 선물로 들어온 검은기사 한정 피규어보다 이게 더 좋다.
“거기 얼마나 가져가냐?”
희수의 질문에 은우는 손가락 몇 개를 펼쳐 퍼센티지를 알려 주었다.
“와, 개사기꾼 아니냐?”
희수가 질린 듯 손을 내저었다.
“대신 해 주는 게 많으니까.”
희수와 달리 은우는 별로 불만 없었다. 애초에 이렇게까지 번 것도 기철의 캐스팅 덕분이니, 불만 가질 이유가 없다.
뭣보다 저들이 가져가는 돈의 대부분은 게임사로 간다. 2027년도부터 개정된 저작권 법안 덕분이다.
“그보다 넌 또 왜 날 부르는 건데.”
“지수랑 싸웠어.”
이미 알고 있다. 그쪽에서 먼저 희수랑 싸웠노라 연락해 왔으니까.
남지수, 그 사람은 참… 그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과 별개로 은근 상담을 자주 해 오는 편이었다. 대충 희수 술 마셨을 때 좀 데려가라고 번호 교환한 게 후회될 만큼.
전생현생 모태솔로는 생각했다. 민폐까진 아닌데 솔직히 눈꼴시다.
“또 왜.”
그렇다고 상담을 안 받아 줄 수도 없으니. 얻어먹은 게 너무 많다. 은우는 앞으론 작작 얻어먹기로 다짐했다.
“G페스티벌이 데이트 장소로 그렇게 별로야?”
“…G페스티벌이 뭔데.”
“뭐야, 그것도 몰라? 부산에서 열리는 우리나라 최대 게임 축제거든?”
희수는 짤막하게 G페스티벌에 대해 설명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거대한 게임 축제이며, 신작 게임들이 대거 발표되는 자리라는 것. 이미 나온 게임들도 홍보를 위해 부스를 차린다는 것. 일반인들도 많고 스트리머는 더 많은 자리라는 것까지.
“이것도 모르고… 너, 스트리머 맞냐?”
“스트리머 된 지 얼마나 됐다고……. 이 경우는 알고 있는 게 신기한 거 아니냐.”
참고로 말하지만, 그들은 작년까지만 해도 고삐리였다. 게임과는 일절 관련이 없던.
“그보다 게임 축제면… 게임을 싫어한다면 별로이지 않을까.”
“지수도 게임 좋아한단 말이야!”
아니, 그건 그냥 네가 좋아하니까 맞춰 주는 게 아닐까 싶은데. 은우는 희수의 말을 받아 주며 목덜미를 쓸었다.
“그래서, 갑자기 웬 G페스티벌인데? 곧 열리나 보지?”
“게임 스트리머 한다는 놈이 이런 것도 모르고…….”
희수는 콧김을 훅 내뱉곤 말했다.
“3주 뒤에 부산에서 개최된단 말이야.”
그건 세상 소식에 느린 은우에게 꽤 놀랍고 별로 쓸모없는 정보였다.
“그러냐.”
“그러냐가 아니잖아, 멍청아!”
이쯤 되니 답답해진 건 희수였다.
“게임 스트리머라면 다 노리는 축제라니까? 심사에 통과한 스트리머들만 방송이 가능하다는 점 빼면 정말 콘텐츠로 최고라고.”
“근데 야방이잖아.”
그렇지만 그 답답함이 은우에게까지 와닿지는 않았다. 그는 생크림을 흠뻑 떠 입에 밀어 넣었다.
“아직까진 야방 생각 없어.”
“언제까지?”
“글쎄.”
합방만큼이나 야방도 내키지 않는다. 은우는 입술에 묻은 크림을 핥았다. 그의 머릿속을 채우는 건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이다.
집을 나오다가 초등학교 4, 5학년쯤 되는 꼬맹이랑 부딪혔던가. 뭔가 싶어서 내려다봤을 뿐인데 꼬맹이가 눈을 마주치자마자 와앙 울음을 터트렸다. 뒤늦게 달려온 보호자는 무슨 일이라도 있는 줄 알고 오해해서 경찰을 부르네, 마네 했고.
결과적으로 좋게 좋게 끝났지만, 아직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아마 이에 대해 말하면 몇 주간 실컷 놀림 받을 거다.
“…사람들이 겁먹고 피할 텐데 뭔 야방.”
“오토바이 헬멧도 있잖아.”
“그건 꼭 해야만 할 때를 대비한 거고.”
“지금이 그때야, 멍청아.”
희수는 그런 은우의 심정도 모른 채 설교를 주옥같이 늘어놓았다. 이렇게 참견이 심한 녀석이 아닌데. 은우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래서 뭐야.”
“뭐.”
“뭘 노리는 건데.”
정곡을 찔린 듯, 희수가 입을 꾹 다물었다.
“내가 널 모르냐?”
은우는 거기에 가시를 하나 더 박았다. 희수의 말문이 트였다.
“심사 통과해서 방송 허가 나면 나 대신해서 갔다 와라. 티켓은 내가 줄게.”
“데이트한다며.”
“지수가 싫어하는데 갈 수 있겠냐?”
아, 빌어먹을 커플. 은우의 얼굴이 구겨졌다. 찢어진 눈매와 찌푸려진 미간은 막 카페에 들어오던 사람마저 내쫓을 만한 위력을 가졌으나, 소꿉친구는 콧바람으로 튕겨 냈다.
“생방으로 지켜볼 거니까 싹 훑어.”
“너 못 간다고 지금…….”
“아, 왜. 이거 너한테도 이득이거든? VIP 티켓이 얼마나 비싼 건데! 거기에 방송 콘텐츠로 쓸 수 있잖아. 심사 삐끗해서 생방으로 못 내보내도 후일담 정도는 소재로 쓸 수 있다고!”
희수는 책상을 탕 쳤다. 적반하장이라면 적반하장인데, 그럴 듯한 적반하장이었다.
“또, 너 콘텐츠 소모 속도 엄청 빠르지? G페스티벌 참가로 하루 휴방하고 후일담 하고 그러면 이틀은 벌 수 있을걸.”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은 몇 주에 걸쳐 끝내는 게임을 그는 며칠 안에 작살을 내니. 콘텐츠 소모가 빠른 건 필연적인 일이었다.
구구절절 맞는 희수의 말에 은우의 손은 뒷덜미만 살살 쓸었다. 방송 초기라서 그렇지 조금만 지나면 금세 소재 고갈로 허덕일 자신의 미래가 보이는 기분이다.
“어때.”
그런 점에서 최소 하루를 벌 수 있는 G페스티벌은 나쁜 선택지가 아니다. 작정하면 일주일까지도 끌어 먹을 수 있으니 정말 좋다.
야방이란 점만 제외하면 최고의 선택지인 셈이었다.
“심사는 또 뭐야.”
은우는 결국 솔깃해졌다. 헬멧이라는 보험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심사 그거, 별거 아냐. 예전에 사고 친 놈, 이번에 민폐 끼칠 것 같은 놈, 그런 악질들 걸러 내는 거야. G페스티벌에 참가하는 게 스트리머만은 아니니까.”
일반인도 있고 코스프레하는 이들도 있다. 특히 후자의 경우 몰래 찍어 간 스트리머들이 멋대로 품평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곤 했다. 심사는 그래서 생긴 규제였다.
“괜찮네. 근데 내가 통과할 수 있을까?”
“넌 경력이 좀 걸리긴 한데… 뭐, 상관없잖아? 불합한다고 페널티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거까진 내가 뭐라 안 해. 원해서 불합한 것도 아닌데. 대신 그땐 사진이나 왕창 찍어 와.”
그런 그렇지. 불합하면 그냥 즐기고 오는 거고, 허가받으면 방송 소재 생기는 거고.
은우는 프라푸치노를 한 모금 마시고 후, 숨을 뱉었다.
“…될진 모르겠지만, 해 본다.”
“좋아.”
은밀한 거래를 협의 본 끝에 은우는 G페스티벌 예약 표를 받았다. 일주일 동안 진행되는 일정 중 하루를 골라 예약할 수 있는 VIP 자유 티켓이다.
“아씨, 이번에 국내 게임사들이 대거 참가한다던데.”
희수는 그에게 표를 넘겨 놓고도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아무렴, 2030년에 밑바닥을 치고 2040년을 넘기면서 완전히 부활한 게 국내 게임 시장이다. PC 및 콘솔 게임은 물론이고 가상현실 게임의 질도 높아진 요즘 G페스티벌은 끝내주게 퀄리티가 좋다─고 아까 설명에서 들었다.
여기서 다시 언급하지만, 그들은 작년에 고3이었다. 직접 가 본 적은 절대 없다.
“나도 G페스티벌 가고 싶단 말이야!”
그러게 왜 애인을 만들어서. 은우는 프라푸치노만 쪽 빨았다. 애인 있으니까 불쌍하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