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자도 방송할 수 있습니다-21화 (21/233)

21화

협력 룬을 발동하면 현재 접속 중인 플레이어를 협력자로 데려올 수 있다.

다만 협력 룬은 자신이 남긴 곳과 타인에게 보이는 위치가 동일하다. 즉, 배신자의 방 앞에 있는 협력 룬들은 남긴 자나 보는 자나 똑같이 배신자의 방 앞까지 도달했단 소리다.

여기까지 도달할 정도면 고인물 중에 고인물일 터. 그런데도 배신자는 여전히 잡히지 않았다.

그 사실들은 결국 배신자의 강함을 방증하니.

보스전 특유의 숭고한 BGM 속에서 은우는 입술을 삐뚜름하게 올렸다. 아주 만족스럽다.

▣ 021. 무엇을 위해

검은 드레스 자락이 날개처럼 펼쳐졌다. 펄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배신자의 신형이 그의 바로 앞까지 도달했다.

그녀의 팔은 팔짱을 낀 사람처럼 그러모아진 채다. 교차하며 양쪽으로 휘둘러지려는 팔은 칼날을 쥐고 있다.

은우는 즉시 안으로 굴렀다. 그의 몸 아래로 아슬아슬하게 은빛 궤적이 지나갔다.

서걱!

여인을 스쳐 지나가듯 왼쪽 옆으로 구른 그는 그 순간에도 검을 휘둘렀다. 배신자의 옆구리에 긴 사선이 그어지며 피통이 조금 줄어들었다.

배신자는 고통 따위 모른다는 듯 지체 없이 허리를 틀며 왼손을 휘저었다. 곡선의 쌍도는 제법 길어, 휘둘러지기 전 움직이지 않으면 베이기 좋다.

간발의 차로 칼이 그를 지나쳤다. 아니, 맞았다. 은우는 처음으로 HP 창을 불렀다. HP가 좀 깎여 있다.

“아, 한 대 맞았네.”

칼은 완벽히 회피했으나, 검풍의 범위를 예상 못 했다. 앞선 보스들 중에서 검풍을 달고 다니는 녀석이 있었기에 그것을 기준으로 대비했음에도 그랬다.

─방금 머임?

─시작부터 속공하는 클라스...

─근데 그걸 피함ㅋ

─노히트 깨졌네

─저것도 능력치 안 올리고 템 안껴서 저렇지, 보통 여기올 때쯤 하는 스펙이었음 안 까였음

─ㅇㅈ

“보이는 것보다 리치를 반 배 더 길게 잡아야겠네요.”

─와중에 파악한 것 보소ㅋㅋ

─구울왕 오져요;;

─노히트 깨졌누

─킹직히 배신자 상대하면서 노히트 바라는 건 안 되지

은우의 눈동자가 열기에 휘감겼다. 비단 검풍에 한 대 맞아서만은 아니었다.

그의 눈에만 보이는 영역은 현재 배신자의 것과 팽팽한 구도를 일궈 내고 있으니.

숙련된 자들의 싸움은 공간을 얼마나 잘 장악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린다. 능력의 개념은 물론 아니었다. 자신의 무기가 닿을 수 있다거나 어떠한 순간에도 반격을 가할 수 있는 거리에 가깝다.

다만 중요한 것은 그 거리를 상대에게 절대 내주지 않아야 하고 상대에게선 빼앗아야 한다는 거다.

“실수하면 죽을 수도 있겠습니다.”

상대는 영역도 모르는 AI이나, 다만 입력된 값만으로도 싸움의 영역을 만들어 냈다.

이 정도면 캐릭터가 제공하는 신체 스펙을 한계까지 끌어올려야 어찌어찌 상대가 가능할 것이다. 그가 배신자의 모든 행위를 포착하고 예상, 유도할 수 있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상상을 실현하기엔 신체 성능이 좋지 않다. 제작진이 알고 만든 것인지 아니면 우연히 이렇게 된 것인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나, 굉장히 즐거운 일이었다.

─실수하면 죽을 수도 있겠다는 건...

─실수 안하면 안 죽는다는 거잖앜

─킹존심 on

─배신자를 노렙업으로 잡는다는 소식 듣고 왔습니다.

─VR배신자는 드디어 죽는 것입니까?

─나 오늘 안 가 배신자 죽기 전에 안 가

은우는 쏟아지는 맹공을 피하며 거리를 재었다. 제대로 된 틈을 노리지 않는다면 공격했을 때 반격당할 것이므로, 평소보다 조심성이 배가 된 상태다.

배신자가 땅에 검을 박으면 그 일대의 대지가 폭발에 휘감긴다. 은우는 아슬아슬하게 HP가 깎이지 않는 지점까지 물러났다가 바로 덤벼들었다.

사각!

팔이 살짝 베이고 바로 물러나면 아슬아슬하게 검이 그가 있던 자리를 긋는다. 검풍이 일며 그의 뺨을 간지럽혔다.

한 대 치고 바로 빠지는 소극적인 싸움. 그런데도 사람들은 불만을 토해 내지 않았다. 그마저도 못 하는 이들이 태반인 데다가, 소극적이라고 말하기엔 지금 벌어지는 싸움이 너무 압도적이었다.

“이제 빈틈이 나오겠네요.”

내려치는 강공격 뒤에는 빈틈이 반드시 나타난다. 은우의 검이 배신자의 등허리를 갈랐다. 두 번 이상 타격하지 않는 그의 행위는 배신자에게 그의 영역을 절대 내주지 않는다.

배신자의 검이 은우의 검날을 타고 미끄러져 내리고, 은우의 몸이 드레스 자락을 휘감으며 빙그르르 턴했다.

배신자가 은우만 했기에 그것은 무기를 빼놓고 보면 꼭 춤을 추는 것 같다.

“Shall we dance?”

그것을 그도 알고 가볍게 농을 쳤다. 푸욱. 직검이 배신자의 복부에 박혔다가 바로 뽑히며 주인과 함께 도주했다.

─검 박으면서 쉘위댄스 ㅇㅈㄹㅋㅋㅋㅋㅋ

─쉘...위...댄..스....메모.....

─아 이와중에 목소리 녹는 거 실화냐

─삼인칭으로 보면 진짜 춤추는 것 가틈;;

─??: 야, 넣는다?

─진짜 이게 싸움이냐,,,,쓰읍

채앵챙!

두 자루의 곡도가 직검에 막혀 튕겨 나갔다. 보스랍시고 경직에 걸리진 않았지만, 공격을 막아 낸 점에서 결단코 나쁘지 않다.

은우는 드레스 자락이 나풀거리는 걸 보며 검을 좌로 휘둘렀다. 예측이 현실이 되어 배신자가 그곳에 나타났다.

카앙!

직검에 곡도 하나가 걸렸다. 다른 하나는 옆에서 횡으로 다가온다.

위에서 압박하는 검은 미끄러트리고, 몸은 가로로 다가오는 칼날 위를 지나가며 피한다. 은우의 텀블링이 절묘하게 두 개의 칼날 새를 지나가며 퇴각했다.

─쓰읍...

─하

─공격 올 때마다 숨 멈출 것 같음ㅠ

─와중에 한 대도 안 맞았는데 HP 벌써 반피네

─검풍 때문에 그럼;;

─피할 수 있는 건 칼같이 피하는데, 방금처럼 부딪칠 수밖에 없는 순간들이 있어서ㅠㅠ

─스텟 좀 올리면 안 깎일 텐데,,,,,

─켄 회복물품 있긴 함?

─농락 용으로 사둔 거 있음ㅇㅇ

─깨나?? 깨나??

사람들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피가 많이 깎였단 것쯤은 이미 인지하고 있다. 은우는 혀를 차며 뒤로 물러났다.

사악!

배신자가 허공에 나풀거리는 베일처럼 부드럽게 그리고 매섭게 쌍도를 몰아쳤다. 은우의 직검이 그에 대항해 우직히 맞서 싸웠다. HP가 천천히 줄어들었다.

검풍까지 계산에 넣어 회피해도 공격하기 위해 접근할 때만큼은 어찌할 수 없다.

“HP 깎이는 건 좀 짜증 나네요. 가능하면 회복 안 쓰고 싶었는데.”

─ㅇㅈ.....

─실력 부족이 아니라 시스템 문제로 뒤질 듯

─이것 때문에 죽으면 진짜 개빡치겠다;;

─근데 진짜는 2페이즈임ㅋ

─아 거기 진짜ㅠ

은우는 검은기사 플레이 최초로 회복 룬을 사용했다. 이마저도 끝까지 쓰지 않을 줄 알고 강화를 안 한 탓에 하나밖에 없다.

“버려진 것아, 운명에 순응하라.”

“뭐래.”

그러나 그렇다고 포기할 생각은 없다. 은우는 숨을 삼키고 느리게 뱉었다. 어쩔 수 없이 피해를 입어야 한다면 그 안에서 최선의 결과를 내야 한다.

그는 크리티컬 판정을 떠올렸다.

머리와 심장. 머리는 베거나 찌르기 둘 다 크리티컬 판정이나, 심장은 찌르기만 포함한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다만 그가 마음을 다잡는 사이 배신자가 2페이즈에 들어섰다.

여인은 검을 위로 들어 X자로 어긋나게 대었다. 날개 자락 같던 드레스 사이로 무언가가 솟아올랐다. 그것은 손이었고 검이었다. 배신자의 머리카락이 여러 갈래로 뭉쳐 허공을 유영한다.

콱, 콱콱!

은우가 있던 자리에 머리카락들이 박히고, 네 개가 된 손이 현란하게 검을 휘둘렀다. 그 움직임을 전부 보고 있음에도 그가 할 수 있는 건 필사의 도망뿐이었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손이 두 개인 것과 네 개인 것은 또 다르다. 촉수도 문제였다.

이러면 공격 기회조차 받아 갈 수 없다. 그의 몸이 바닥을 굴렀다. 처음으로 얼굴에 낭패감이 서렸다.

“밸런스 조절이 애매하네요.”

─애매? 애매애??

─우리 켄님 때리지 마라ㅠㅠ

─애매가 아니라 개똥망임ㅋㅋ

─이 와중에 이걸 다 피하는 켄....당신은 대체....

“스펙이 조금만 더 좋았어도.”

조금만 더 빨랐다면 지금 찌를 수 있다. 조금만 더 유연했다면 매끄럽게 흘려 낼 수 있다.

신체 조건이 이보다 나았다면 점을 선으로, 선을 면으로 바꾸어 가며 그가 전생에 완성했던 제공권 일부를 가져왔을 거란 말이다.

답답하다. 은우는 게임을 시작함으로써 얻었던 자유가 실상은 반쪽짜리임을 자각했다.

싸울 만한 적이 있는데, 그가 저것을 상대로 펼칠 수 있는 묘리가 몇 개인데, 조금만 받쳐 주면 무엇을 해낼 수 있는데.

단지 시스템 때문에 쓸 수 없다. 제한으로 인해서. 그깟 거 때문에.

「‘안타깝다’ 님이 ‘10,000원’ 투척!

어쩔 수 없네요. 이번 판은 포기하셔야할 듯. 스펙 올리고 다시 오죠.」

그것 덕분에.

은우의 숨이 서늘한 공기를 삼켰다. 뿌드득. 검 자루를 쥔 손은 마치 검을 부러트릴 기세다.

어쩔 수 없다? 언제부터 그가 그런 단어에 타협을 보았지? 다른 무엇도 아닌 전투를 두고?

전생의 그는 초능력자도, 드루이드도, 성직자도, 마법사도 아닌 기인이었다. 인간이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생명을 깎아 사용하는 기인.

그것은 누구나 가능한 일이었지만, 동시에 선천적인 재능을 필요로 했다. 기의 크기는 사람마다 다른 탓이다.

그리고 전생의 그가 가진 기는 다만 어린아이의 것만도 못한 양이었다. 기인이 되어 봤자 싸울 수 없는 수준이라고 보면 되었다. 지금의 신체적 한계처럼.

그렇지만 그것으로 인해 그가 싸우지 못했던가? 자신의 불행을 탓하며 절망하고 포기했나? 그것으로 인해 곤란은 겪었을지언정 패배한 적은 있나?

내가 그로 인해 괴수들의 왕이자 신인 존재에게 졌나?

없다. 단 한 번도 없다.

그는 언제나 방법을 찾아냈고, 그것을 해냈다. 지금처럼 안 된다고 선을 긋지 않고 악착같이 방법을 찾아냈다, 이거다.

“dhsmfwjsurdmszjqfkaus.”

─?

─방금 뭐라 한 거임?

타고나지 못한 것을 원망하지 않고 가진 것을 이용해라. 은우는 전생에 달고 다니던 말을 중얼거렸다. 그의 눈동자가 청록색으로 발광했다.

“제가 생각을 잘못했습니다.”

시스템상으로 죽일 수 없다고 제한이 걸려 있길 하나 뭘 하나. 검풍을 피하면 그는 피해를 보지 않는다.

그것을 곡해하여 피해를 입지 않고선 죽일 수 없다고 말한 건 그 자신이었다. 감히 스스로에게 한계를 그은 건 저 자신이란 말이다.

“이런 것까지 이겨 내라는 게 제작사의 의도인 거겠죠.”

─그건 아닌듯

─절대 아닌듯

─켄 맛 갔다....

─구울모드냐고

은우의 검이 표홀하게 움직였다. 경, 중, 예, 유, 흡, 탄, 환, 폭, 변, 합……. 그가 오랜 시간 통달한 묘리들이 폭증하는 감각 속에 녹아들었다.

기가 없어서, 근력이 부족해서, 지금껏 안 될 거라는 편협함 속에 갇혀 제대로 써 보지 않은 것들이다.

─ㅓ....?

─머임

─지금, 어?

─?? 왜요?

─본인 1인칭인데 지금 감각이....

세상이 느려진다. 재생 속도를 낮춘 것처럼. 그러면 이제 세상은 그의 것이다. 은우의 눈동자가 사방을 쫙 훑고, 하나의 길을 찾았다.

시간이 도로 돌아왔다.

쩌엉!

은우의 검이 배신자의 검 네 자루를 동시에 쳐 내었다.

부드러우면서도 교활한 검로는 네 자루의 검을 부드럽게 튕겨 내며 검의 방향을 뒤틀었다.

검풍은 휘둘러질 때 검신이 늘어나는 효과처럼 발휘되니. 칼날을 교묘하게 꺾어 버리면 칼바람은 은우의 옷자락만을 얇게 저미고 사라진다.

후속타로 달려들던 머리카락조차 튕겨 나간 네 자루의 곡도에 얻어맞아 방향이 바뀌었다.

최소한의 피해로 최대한의 결과를 내보이겠다는 생각은 버린다. 그는 피해조차 보지 않는다.

─???

─어떻게 했냐 켄놈아

「‘강남건물주’ 님이 ‘100,000원’ 투척!

잡을 수 있는 거죠?」

─방금 피도 안 까였는디??

「‘시켜줘명예구울단’ 님이 ‘10,000원’ 투척!

미쳤다」

─머임 버그임?

은우는 어설프게 자각했던 싸움의 감각들을 온전히 일깨웠다. 이거다. 그가 전생에서 추구했던 것이. 그가 일평생 좇았던 것이.

“아, 이제 좀 사는 것 같네.”

그의 입가가 흰 웃음을 머금었다.

“운명을 받아들여라!”

때마침 배신자가 말을 뱉었다. 설정된 대사일 뿐이겠으나, 은우는 나름 진짜와 검을 섞는 것 같아 흡족해졌다.

채앵!

구부러지고 곧게 뻗은 검날이 또 한 번 검들을 튕겨 내었다. 첫 공격의 실패는 연이어 쏟아질 공격들의 지연이나 소멸을 만들어 내니. 그렇게 빈틈이 만들어졌다.

은우의 검이 배신자의 목을 갈랐다. 배신자가 하나의 손을 이용해 곡도를 내질렀지만, 그는 손으로 그것을 미끄러트렸다. 손등과 곡도의 칼등이 접붙여진 듯 은우의 손짓을 따라 곡도가 제멋대로 움직였다.

─??

─머야

─패링도 아니고 흘리기도 아니고 무어ㅔ

─ㅁㅇㅁㅇ?

─느낌 있다 느낌잇다

─저게 가능한 일이었어???

─진짜 깨는 거임?? 1트 1렙으로??

그가 멋대로 조종한 곡도는 머리카락들을 막는 방패가 돼 주었다. 나머지 세 개의 손은 첫 번째 검로가 무너지고 두 번째 검로가 망가지며 또다시 무의미가 되었다.

푸욱.

배신자의 심장에 칼이 박혔다. 은우는 칼자루에서 손을 놓고 뒤로 물러나 내리꽂히는 검을 피했다. 비게 된 손이 칼자루를 올려 쳐 심장에 박힌 칼을 위로 올렸다.

어깨가 길게 베이며 검신이 튕겨져 나왔다. 은우의 손이 칼자루를 잡고 원을 그렸다.

연이어 쏘아진 머리카락이 튕겨 나가고 곡도가 미끄러졌다.

쌓이고 쌓인 패링의 충격이 배신자의 무릎을 꿇렸다. 패링 한 번에 경직되진 않으나, 여러 번에 거쳐 패링을 계속 성공시키면 나오는 ‘무너트리기’다.

PC에서만 보던 광경에 채팅이 무지막지한 빠르기로 갱신되었다.

─내장뽑기???!

─한 타 가나?!!

─깰 각 보이죠

─방심 ㄴㄴ

─개쫄린다 진짜

─이게 게임이냐아

─가즈아아ㅏㅏㅏ!!

배신자의 심장에 칼을 박아 넣은 은우는 그대로 복부를 걷어찼다. 배신자의 피통이 쭈욱 줄어들었다.

“죽어야 할 것이 발버둥을 치는구나!”

네 개의 검이 빈틈을 주지 않고 폭풍처럼 쏟아졌다. 은우의 몸이 뒤구르기를 두 번 한 뒤, 검 등을 방패 삼아 머리카락들을 막아 내었다. 찌르르르 손이 울렸지만, 머리카락은 추가적인 대미지가 없다.

은우의 발이 불피워진 잔을 발판 삼아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 자리에 검이 떨어졌다.

손이 허공을 유영하던 머리카락을 낚아채 몸을 더욱 끌어올렸다. 그의 몸은 이제 배신자의 뒤편으로 착지한다.

카카카각!

검을 피하고 비껴 내어 빈틈을 억지로 끄집어 낸다. 서릿발 같은 금속이 배신자의 눈을 갈랐다. 그 과정에서 가면이 떨어져 나갔다.

“끼아아아아아아아!”

─당신은 정말로 인간이 아닙니다.

─찐 구울왕임 이거 진짜임

─깨자 깨자ㅏㅏ!!

─세계최초 사냥입니까.

─숨막힌다 진짜

─싸움 ㅈㄴ 화려하네

─최초 유일 1트1렙 클 가자아아!!!!!

─켄 인간이냐고ㅡㅡ

─브금 미쳤누

─제발, 제발 가자ㅏ아ㅏㅏㅏ!!

배신자가 비명을 지르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남은 것들의 공격이 치열해졌다. 그러나 템포가 빨라졌을지언정 수가 줄었다.

은우의 검로가 나부끼는 소년의 셔츠 자락처럼, 소녀가 아무렇게나 그린 낙서처럼, 어른이 불어넣은 담배 연기처럼 무한한 형태를 그렸다. 번개가 내려쳤다가 꽃처럼 피어난다.

서걱!

3페이즈에 돌입할 수 있을 정도로 HP가 떨어졌다. 배신자가 얼굴에서 손을 떼었다.

반쪽은 혈시 그리고 나머지 반쪽은─.

“신은 나의 죄를 사하심이 아니었나?”

고운 인간의 얼굴. 처음으로 드러난 얼굴에 채팅 창이 들썩였다.

“용서가 아니면 신벌인가? 하나 신이시여, 방관으로 나를 이리 내몰았다면 끝까지 방관할지어다.”

여인의 검에 불꽃과 얼음이 맺혔다. 날개로만 자리했던 그것은 뻣뻣한 강철을 머금어 새로운 공격 수단으로 거듭났다. 머리카락의 수는 더 늘어난 상태다.

“시대의 종말이 온다.”

배신자의 정체에 관해 토론하며 채팅이 혼란에 잠겼다. 이미 추측은 존재했고, 드러난 배신자의 외형은 근거가 되었을 뿐이므로 크나큰 혼란은 아니었으나, 모르는 이들과 아는 이들의 충돌 탓에 그리 보였다.

와중에 싸움에 집중하는 자, 최초 클리어에 관심 갖는 자들도 속속 등장하니 더욱 번잡할 수밖에 없다.

그 속에서 은우는 침착하게 전투에만 집중했다. 저것이 아무리 강하다 한들 그가 생의 마지막에서 상대했던 신만 못했으며, 그의 심장을 어지럽히던 배덕자들만 못했다.

공격을 막고 흘리고 튕겨 내며 계속 대미지를 쌓아 가면 배신자의 HP를 바닥까지 떨어트릴 수 있다.

“인류는 멸망해야 한다─!”

찢어질 것 같은 고함은 다만 끝을 노래하기에 감미롭다.

은우의 직검이 불똥을 일으키며 마지막 발악을 쳐 냈다.

한정된 몸으로 낼 수 있는 최선의 속도는 두 개의 공격을 막지 못했으나, 그의 HP는 아슬아슬하게 버텨 냈다.

“누구 마음대로.”

한때 북녘의 수호신이었던 자가 웃었다.

푸욱!

그리고 그의 직검이 배신자의 목에 박혔다. 내구도가 다 되었는지 검은 곧바로 가루가 되어 흩날렸지만, 문제는 없다.

배신자의 HP가 0가 되었다.

“이럴 순…….”

말을 다 잇지 못한 채 배신자의 몸이 허물어졌다. 그 순간 채팅이 폭주했다.

─와아ㅏㅏㅏ

─깼다!!!!

─죽였다!!!!

─이 미친 자!!1

─ㅊㅊㅊㅊㅊㅊㅊㅊㅊㅊㅊㅊ

─켄은 신인가? 켄은 신인가? 켄은 신인가? 켄은 신인가? 켄은 신인가? 신은 켄인가?

─ㅅㅅㅅㅅㅅㅅㅅㅅㅅ

─캬아아아아

─해냈다!!

─킹갓제너럴 켄!!!

─오이오이 믿구 있었다고!!! 젠장!!!

─켄지컬!!

─캬아아아아ㅏ아ㅏㅏㅏ

─배신자 욜래 쉽네!!

─ㅏㄹ라미ㅣ

─캬ㅑ

─잡았다ㅏㅏ자ㅏㅏ

─힘들었다ㅏㅠㅠㅠ

─ㅊㅊㅊㅊㅊㅊ

사람들은 저들이 잡은 것처럼 환호하고 울고 기뻐했다. 그렇지만 은우는 어딘가 허탈함을 지울 수 없었다. 복부가 아리고 다리가 저렸다. 승리의 끝은 언제부턴가 망연했다.

“너는…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

목소리가 들림에 따라 그는 다시 배신자에게로 시선을 고정했다.

“이 승리는 그저 일시적인 것에 불과한데…….”

배신자는 그 한 마디만을 남기고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검고 탁한 가루는 묘하게 반짝거린다.

그녀가 있던 자리에는 거대한 혈석과 그녀의 쌍도만이 남아 있다.

『HEIR OF ERA DESTROYED』

보스를 죽이면 출력되는 알림 창이 떠올랐다. 싸우는 동안 틈틈히 추론한 숨겨진 설정들을 고려하면 참 오묘한 메시지였다.

끼이이이이익, 덜컥

그때, 소음과 함께 좀 더 지하로 내려가는 길이 열렸다. PC 버전에는 없던 숨겨진 방의 등장이었다.

안 그래도 후원과 구독, 온갖 채팅으로 가득하던 채팅 창이 빵 터져 버렸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