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자도 방송할 수 있습니다-20화 (20/233)

20화

“신께서는 어째서 제게 힘을 내려 주시는 걸까요? 혈시들에게서 왜 태양의 냄새가 나는 걸까요? 불경한 말이지만, 저는 어째선지 그들의 신앙이 인간의 것과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다시 만났군. 너는 무엇을 위해 여행하고 있지? 혈시들의 왕을 죽이기 위해? 인류의 구원을 위해? 어느 쪽을 택하든 내 상관은 아니지만, 부득이하게도 협조를 구해야겠다. 마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불타는 협곡이 너무 달라져서 말이야.”

“만일 혈시들의 신이 인간들의 신과 같다면, 신은 대체 무슨 생각이신 걸까요. 어째서 그들을 벌하지 않고 우리를 멸망으로 내모신 걸까요. 인간들이 멸망에 이르는 것이야말로 신의 뜻은 아닌지, 이제는 혼란스럽습니다.”

“잘도 마탑의 함정 사이를 돌아다니는군. 놀라워. 너라면 정말 왕을 죽일 수 있을지도……. 다만… 다만 그래, 왕을 죽이는 게 최선인지는 잘 모르겠다.”

“왕을 죽이는 것이 신께서 바라는 일일까요?”

“배신자는 어째서 인류를 배반했을까?”

▣ 020. 자만이 아니라 자신

일요일 방송으로 은우는 꾸역꾸역 마탑까지 진행을 전부 밀어 놓았다.

그 과정에 여러 이벤트도 겪었지만, 그중 제일 중요한 건 엔딩 분기였다. 벌써 오로스와 로렌스는 각자의 분기를 예고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둘 다 혈시의 왕을 죽이는 루트는 아닌가 보네요. 아, 스포일러는 안 됩니다.”

─스포는 칼벤이지

─켄이 여기까지 옴서 한 번도 안 죽어서 그런가ㅋㅋ 찐 구원기 보는 것 같음ㅋㅋ

─(금지된 채팅입니다)

「‘켄의가운데다리’ 님이 ‘5,000원’ 투척!

형, 당연히 로렌스 택할거지?」

─ㅇㅈㅋㅋㅋㅋㅋ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오로스가 당기네요. 후원 감사합니다.”

─ㅗㅜㅑ....

─남자를 고른다고???

─ㅁㅇㅁㅇ켄오 주식 사면 되는 각?

─1절만 해라 새끼들아

사람들과 엔딩에 대한 잡담을 하며 은우는 물건을 꺼내 들었다. 해적선을 털고 얻었던 성배다.

마법진의 중심에 그것을 내려놓으니 낙서와 같던 선들이 일제히 빛을 내었다. 짤막한 컷신과 함께 그의 몸이 이동되었다.

《얼어붙은 외성》

이제 그가 위치한 곳은 어느 성의 첨탑이다. 바닥과 벽, 천장을 뒤덮은 얼음이 꼭 성보단 동굴을 연상시켰다. 얼음이 얇아서 성 특유의 벽이 비치지 않았다면 그랬을 거다.

“드디어 마지막 지역… 루트네요.”

─여기서 배신자 잡으러 갈 수 있음

─배신자!!

─아, 치킨 시켰다

─노데스 스트리머가 배신자 잡으러간단 소리에 사람들 몰려오는 중ㅋㅋ

─검크리트들 지금 난리 났다ㅋㅋ

─카롬이 VR배신자에겐 히든요소 숨겨놨다 해서 그럼

─또 히든임?? 켄 히든 사냥꾼인가봐

은우는 그보다 더 들뜬 사람들을 짊어진 채 한 발 내디뎠다. 바닥은 그나마 얼음이 덜 깔려 있어 생각보다 미끄럽지 않았다.

바스락. 살얼음 깨지는 소리가 냉랭하다.

병사 두엇을 잡으며 첨탑 아래로 내려갔다. 맥의 지팡이가 그를 반겼다. 그러자 일부 시청자들이 술렁였다.

─이제 '그'가 온다...

─ㅋㅋㅋ보통 여기서 맨탈 깨지는데 켄은 안 깨질듯

─그건 그럼

“누가 나옵니까?”

─켄님도 알걸요?

─오히려 실망할지도 몰라

─ㅋㅋㅋㅋ인정인정

은우는 알쏭달쏭해지는 말에 눈가를 살짝 구겼다가 곧 다시 폈다. 문을 열자마자 보인 광경이 그들의 의뭉을 밝혀냈기 때문이다.

“유리기사네요.”

검은기사 첫 보스가 그의 앞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보스가 아닌 일반 몬스터로서, 조금 작아진 채로.

─피통이랑 체격만 줄고 나머진 똑같습니다.

─근데 쟤가 이성에 다섯 마리는 있나

─나 저거 보고 멘탈 깨졌자너

─악몽임 진짜...

저것을 처음 목격했을 때 감정을 되살리며 사람들이 도란도란 떠들었다.

“좀 재밌겠네요.”

은우는 그 안에 끼어들되 거리감 느껴지는 발언을 내뱉었다.

“이번엔 그때 실패했던 채찍으로 마무리해 보겠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서비스도 철저한 이 남자...

─구울왕이 나간다!

「‘강남건물주’ 님이 ‘50,000원’ 투척!

굳ㅎㅎ」

“후원 감사합니다.”

짜악!

은우의 채찍이 바닥을 내려쳤다. 동시에 유리기사가 그를 향해 돌진했다.

은우는 허리를 틀고 둥글게 젖혔다. 아슬아슬하게 검이 그의 등을 지나쳐 허공을 찔렀다.

손목에 스냅을 실었다. 채찍이 꽃처럼 피어났다가 뱀처럼 유리기사의 목을 휘감았다. 방패가 미처 가리지 못한 틈을 교묘히 꿰뚫는 가죽끈은 꼭 바다를 유영하는 물고기와 같다.

그는 유리기사의 목을 죄었다. 유리기사가 억눌린 숨으로 검을 휘둘렀다. 찔렀던 자세 그대로 휘둘러지는 검은 자칫하면 은우의 등을 베기 좋다.

등으로 쏘아지는 검을 피해 은우는 몸을 더욱 젖혔다. 검의 높이는 그의 허리가 오목하게 파이는 지점 어림이니. 검이 전진할수록 은우의 몸은 활처럼 팽팽히 당겨졌다.

그리고 그 발이 대지와 떨어졌을 때, 은우는 검을 아슬아슬하게 지나며 백 텀블링을 해냈다. 채찍은 여전히 기사의 목을 옥죄고 있다. 방패로 인해 가려졌지만, 손에서 느껴지는 저항감이 그것을 생생히 알려 주었다.

챙강!

검이 다시 그가 있던 자리를 내려쳤다. 은우는 폴짝 뛰어오른 후, 검 위에 내려앉았다.

한 손으론 채찍의 손잡이를, 다른 손으론 가죽끈을 잡아 더욱 세게 당기는 것이 시청자들의 화면에 생생히 비쳤다.

“이것 참.”

비록 투구에 가려진 채이나, 사람들은 은우가 웃고 있음을 알았다.

일인칭이라서가 아니었다.

“질식사란 게 없어서 유감이네.”

그 목소리를 잔잔히 물결치도록 한 웃음기를 들으면 누구나 알 수밖에 없었다.

유리기사가 방패를 앞세우고 움직였다. 은우를 검에서 떨어트리기 위함이었지만, 은우는 되레 방패를 발판 삼아 뛰어올랐다.

채찍이 한 줄 풀리고, 은우가 유리기사의 뒤편에 착지했다. 꽈악. 거친 힘이 유리기사를 뒤에서 당겼다. 유리기사가 허둥대며 뒷걸음질로 끌려왔다.

“체격이 작아지니 약하네요.”

─?? 제가 지금 무엇을 본 것이죠 판사님?

─잡몹되니까 놀림당하고 있어...

─특) 보스때도 놀림당했다

─난 체력 작아져도 똑같이 세던데;;

“작아져서 그런가, 힘 싸움이 비슷해졌습니다. 예전엔 이렇게 쉽게 안 끌려왔는데.”

쨍그랑.

유리기사가 다급히 방패를 버리고 채찍을 잡으려 했다. 하지만 은우가 더 빨랐다.

“이거 투구, 벗길 수 있을까요?”

그는 대답을 듣지 않고 움직였다. 은우의 커다란 손이 유리기사의 투구를 덥석 잡았다.

유난히 길고 곧은 손가락은 투구의 전면을 덮고도 남았다.

─저게 잡혀?

─??

─손 크기 무엇?

─이 때마다 켄 체격이 실감됨...

사람들이 당황하는 사이, 은우는 그대로 투구를 잡아당겼다. 마침 채찍은 목 아래에 휘감겨 있으니. 투구를 잡고 가슴팍을 걷어차이면 투구가 쑤욱 벗겨진다.

“#$^#$^*@!!”

드러난 건 역시나 징그러운 외형의 혈시였다. 은우는 뒤로 넘어지려는 기사를 멈춰 세웠다. 받쳐 준 건 절대 아니고, 가죽끈을 강하게 당겨 버린 게 졸지에 넘어지는 걸 막아 준 것이다.

─ㅗㅜㅑ....강제 얼굴 공개

─본인 얼굴 공개는 싫어하면서 남의 얼굴은....

“그렇지만, 궁금하지 않습니까? 무기를 빼앗을 수 있으면 갑옷도 안 될 건 없잖아요.”

─그건 그래

─근데 그걸 누가 도전해보는 건데ㅋㅋㅋ

─다른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도망치는데...ㅋㅋ....

사람들은 은우의 기행에 새삼 놀라지 않았다. 은우가 말하면서 유리기사를 농락하다 가루로 만드는 것 역시 이젠 익숙한 광경이었다.

놀라는 건 오직 새로 유입된 뉴비들뿐이다.

“그럼 새 지역 신고식도 치렀으니… 이제 진짜 목표를 향해 움직일까요.”

─아, 간다

「‘배신자딱대’ 님이 ‘10,000원’ 투척!

??: 빨리 만나고 싶네요」

─배신자 보려고 사흘만에 여기까지 민 사람 처음 봄ㅋㅋㅋ

─그냥 여기까지 사흘만에 민 사람 처음 봄 루삥뽕

“보통은 도움 잘 안 받지만, 배신자는 저도 빨리 보고 싶으니까…….”

─설마...?

─훈수충 on?

─훈수 가나?

─훈수 대기중

“형, 누나들은 동생 하는 것만 딱 지켜보세요. 후원은 감사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낚시였누

「‘훈수충’ 님이 ‘10,000원’ 투척!

훈수 칠 준비하다가 아, 함....」

─아 슬슬 스트리머 적응하는 게 보인다ㅋㅋㅋ

─누나,,,,,? 퍄퍄ㅑ,,,,;;

─스무 살 컨셉 유지하는 것 보소

은우는 키득키득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대지에 낀 살얼음이 그의 발끝에서 부서졌다. 그럼에도 들리는 소리는 아주 작아, 사람들은 의문을 표했다.

서걱!

단검이 혈시들의 목을 베었다. 은우의 다른 쪽 손가락에 걸려 빙빙 돌던 곡도가 내려쳐진 검을 잘게 미끄러트렸다.

고리처럼 휜 칼날에 검날을 걸고 그대로 눕히면 상대의 연속 공격을 막을 수 있다.

은우는 단검을 기사의 가슴에 박아 넣었다. 어디를 공격하든 똑같은 대미지가 들어가는 덕에 구태여 겨드랑이 같은 관절 부위를 노릴 필요가 없다.

악명 높은 《얼어붙은 외성》의 혈시들이 순식간에 쓸려 나갔다.

『미쳐 버린 망령, 《@(&$^#》이 침입했습니다.』

『미쳐 버린 망령, 《#^&&$%》이 침입했습니다.』

20분 정도 이동했을까. 오랜만에 침입 알림이 떠올랐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겪었던 일들로 보아, 이름 칸이 깨져 있는 건 버그가 아니다. 적 플레이어가 침입한 게 아니라 게임 내에서 자체적으로 마련한 침입 이벤트다.

─앗....앗......지옥 2인조다....

─얼어붙은 외성은 마지막 지역이라서 그런가, 전체적으로 ㅈ같음...

─ㅇㅈ,,,,

─스포) 그래도 켄은 다 잡는다

─아 스포 에반대

─스포 불-편

넓은 홀의 중심으로 걸어오는 두 명의 적을 보며 은우는 단검을 쥐고 곡도를 집어넣었다. 후원 알림음이 그의 귀를 간지럽혔다.

「‘복수대행’ 님이 ‘10,000원’ 투척!

켄님 복수좀 저 쟤네들한테 50번 넘게 조져졌어요ㅠ」

은우는 어깨를 으쓱였다.

“분부대로.”

나른하다 못해 권태로운 기색의 목소리는 시청자들의 귀를 짜릿하게 만들어 준다. 시청자들이 자지러지는 사이, 은우의 손이 단검을 역수로 쥐었다.

탁. 탁. 탁.

쿵. 쿵. 쿵.

톡. 톡. 톡.

홀을 걷던 발소리 세 개가 서서히 겹쳐지더니 이내 캐스터네츠의 합주처럼 회랑을 울렸다.

거대한 낫을 든 남성과 태도를 든 여성 그리고 단검을 든 은우.

“저 낫, 탐나네요. 주면 좋겠다.”

─아니 망령은 안 준다니까요ㅋㅋㅋㅋ

─ㅋㅋㅋㅋ아 근데 저거 쌔긴 쌤....;;

─저 무기 얻는 방법 있습니다. 그렇지만 DLC입니다.

“안 준다는 게 제일 아쉽습니다.”

남성이 낫을 휘둘렀다. 창처럼 긴 자루에 길게 달린 낫은 그의 목을 추수할 것만 같다.

팅!

그러나 은우의 손은 그 낫의 날 위를 미끄러지듯 걷다가, 그대로 쳐 냈다. 촤악! 남성의 몸이 싸악 잘렸다.

“가지고 싶은데.”

서걱!

커다란 완곡을 가진 태도의 검날이 그가 있던 허공을 절삭했다. 은우는 그것을 가벼운 백스텝으로 피한 후, 대낫의 남성만 집요하게 노렸다.

일 대 다수의 싸움에서는 수를 빨리 줄이는 게 중요한 쟁점이기 때문이다. 굳이 남성인 이유는 긴 리치 때문이었고.

팅! 팅!

대낫을 튕겨 낸 후, 절묘하게 짓쳐들어오는 태도의 날을 미끄러트려 방향을 바꾼다. 연속으로 벌어진 맨손 패링에 사람들이 감탄을 토해 냈다.

「‘켄님대체누구세요’ 님이 ‘5,000원’ 투척!

맨손 패링 그거 대체 어떻게 하는 거임」

“후원 감사합니다. 맨손 패링 하는 방법을 물으셨습니까? 글쎄요…….”

싸우는 와중에도 채팅을 읽은 은우는 곰곰이 고민했다.

그의 몸이 낫을 피하고 여성의 태도 위에 손을 얹었다.

태도의 뭉툭한 날 위를 기어가던 손은 성큼 검신을 잡았다. 대미지를 입을 수 있는 칼을 피해 날이 없는 부분을 잡고 꺾는 것은 고도의 기량을 요구한다.

다만 하이 리턴 하이 리스크라고, 위험을 감수한 대가는 달콤했다. 검신의 방향이 다른 쪽으로 튀며 낫을 든 남성을 후려쳤다.

대미지는 안 들어갔으나, 대신 그들의 합공 호흡을 잘라먹은 것이다.

은우는 단검을 손가락 사이에서 놀리며 여성의 목을 자르고 남성의 가슴을 갈랐다.

남성이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미쳐 버린 망령, 《#^&&$%》를 퇴치했습니다.』

“제가 뭐라고 대답할 방법이 없네요. 공격에 닿지 않게 무기를 쳐 내란 말은 너무 기만 같은데.”

─이미 기만임

─이미 기만이라구 구.울.왕.쿤?

─네다씹

─??: 공격에 닿지 않고 무기를 쳐내면 되잖아요?

“그나마 말씀드릴 만한 건… 무기마다 무게중심이란 게 있는데, 거길 노리면 균형을 흩트리기 쉽다는 점?”

혼자가 된 여성은 절대 어려운 상대가 아니었다. 때문에 은우는 적을 연습용 허수아비 삼아 설명을 해 주었다.

“가령 검의 무게중심 파악은 해당 검의 종류, 폼멜, 검자루, 코등이, 검신 길이, 검폭, 완곡, 파지법 등등을 종합해서 해야 합니다.”

그의 손이 여성의 태도를 깃털처럼 쓸어내리며 방향을 이리저리 바꾸었다. 갈수록 현란해지는 그 작태에 사람들은 헛웃음만 내었다.

─그걸 어케 파악해요;;

─그냥 보는 것만으로 그게 보임?

“바로 보이는 건 아닙니다. 무게중심이라는 게 직접 다뤄 보지 않고서는 파악하기 힘들거든요. 단지 많은 종류의 무기를 다루다 보면…….”

그의 맨손이 검을 옆으로 미끄러트리고 여성의 목을 베었다. 여성이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미쳐 버린 망령, 《@(&$^#》을 퇴치했습니다.』

“써 보지 않아도 어느 순간 그것들이 보입니다.”

은우는 무기에 통달하게 되었던 과거를 떠올리며 아련히 조언했다. 단 하루도 무기를 놓은 적이 없었고, 스스로 새로운 무기를 찾아다녔다. 그로 인해 지문은 새로 나기도 전에 닳아 버리고, 손은 손가락이고 손바닥이고 굳은살로 가득했었다.

사람들은 그걸 영웅의 손이라고 불렀다. 이 세계의 사람들은 그걸 모르지만.

“요컨대, 경험의 산물이란 거죠.”

그는 설명해도 통하지 않을 과거를 경험이란 단어로 일축했다. 그렇게 설명하면 전생이 부정당하는 것 같다가도, 그것이 이제 온전히 과거의 산물이 되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다만 그 자리에 남은 건 싸움을 갈구하는 본능이다.

「‘그래서’ 님이 ‘10,000원’ 투척!

어떻게 하란건데 그거....」

─그게 뭔데 재능충아....

─님 이제 스무살 컨셉 버린 거임?

─대체 뭘하고 살아야 무기를 안 잡고 알 수 있습니까?

「‘заявление об отставке’ 님이 ‘82,050원’ 투척!

나는 특수부대를 예상한다.」

─ㄹㅇ학살좌인 거 아니냐ㅋㅋ

「‘치킨먹고싶닭’ 님이 ‘20,000원’ 투척!

게임만 하고 살았누;;」

─진짜 게임폐인인 거 아님??

─이거 맞따

─난 특수부대 한 표

은우는 사람들이 그를 특수부대나 게임 폐인으로 몰아가기 시작하자 절로 눈살을 찌푸렸다.

특수부대는 그렇다 쳐도 게임 폐인은 기분이 좀 나쁘다. 아무리 그의 과거를 모른다지만, 저건 부정을 넘어서 모욕이므로.

“후원은 감사한데… 전 게임 폐인 아닙니다.”

그는 새로운 문을 열며 기사혈시를 썰었다.

“공부하느라 게임도 졸업하고 나서 겨우 시작했는데… 폐인이라니, 말이 너무 심하시네요.”

─?

─요즘 그런 사람이 어딨음

─뻥치지 마요

─공부 열심히 햇누

─아니 님 스무 살이라며ㅋㅋㅋ컨셉할 거면 설정 좀 잘 짜셈ㅋㅋㅋ

은우는 눈을 가늘게 접었다.

인증할 방법이 없다는 게 한탄스럽다. 그렇다고 아득바득 증명하는 것도 스트리머로서 할 짓이 아닌 것 같고.

뭣보다 아니라고 부정하면 그의 경험치를 증명할 방도가 없다. 어느 쪽이든 확정되는 게 좋은 꼴은 아니었다.

결국 그는 불쾌함을 삼키고 말문을 흐렸다.

“…뻥은 절대 아니지만… 받아들이는 건 결국 듣는 사람 몫이니까요. 믿는 건 자유로 둡시다.”

─ㅋㅋㅋㅋㅋㅋ우기는 것 포기

─근데 난 저렇게 말하는 애들이 진짜 같습니다.

─그건 그럼

─머리가 좋아서 사기도 잘 치는 거 아닐까

은우는 이 주제가 그에게 별로 좋지 않다는 걸 알았다. 이럴 땐 화제를 적절히 돌리는 게 좋다.

“그보다, 배신자는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겠네요.”

─ㅋㅋㅋ히든보스니까요ㅋㅋ

─훈수 on?

─켄만큼 훈수 안 받는 스트리머는 처음 봄

─훈수 받기 전에 썰고 다니니까 그렇지;;

─ㅋㅋㅋㅋㅋ맞말추ㅋㅋㅋ

“훈수 on?”

그의 한 마디가 나옴과 동시에 채팅 창이 잠시 멎었다. 5만을 훌쩍 넘긴 시청자 수를 생각하면 그건 상당히 놀라운 침묵이었다.

그리고 1초 후, 봇물 터지듯 훈수들이 쫘르르륵 올라갔다.

“제가 보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올라가네요. 구독과 후원 감사합니다.”

은우는 그 속에서도 정보를 쏙쏙 뽑아냈다.

“훈수 off.”

그가 훈수를 다시 제지했음에도 딜레이 때문에 채팅 창은 조금 더 올라갔다.

“길을 대충 알았으니 쭉쭉 나아가겠습니다. 배신자를 존중해서 사용 무기는 직검으로 하겠습니다. 관련 후원은 주지 마세요.”

그는 오랜만에 정석이나 다름없는 직검을 들었다. 개조 무기가 없는 게임 특성상 그가 제일 잘 다룰 수 있는 무기다.

그 상태에서 은우는 최대한 지하로 이동했다. 슬쩍 창가 너머를 살피니 허공에 둥둥 떠 있는 땅들이 있다. 용들이 날아다니는 공중 정원이다.

저게 최종 보스로 향하는 길이겠지. 그는 사람들이 알려 주지 않은 길까지 감을 잡으며 점차 층계를 내려갔다.

왕성이라서 그런지 지하로 내려간다 해서 화려함이 덜해지는 일은 없다.

도중에 만난 유리기사가 둘, 침입자가 셋, 악명 높은 잡몹이 다섯이었지만, 전부 그의 검에 무참히 살해되었다.

“몸풀기도 안 되네요.”

─??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몹들은 몸풀이도 못됐던 것인가

─유리기사 울어욧

은우는 슬슬 분위기가 확 바뀌는 걸 느꼈다. 조금만 더 나아가면 보스전일 것 같다. 그 전에 누군가와 마주쳐야 할 것 같지만 말이다.

“아… 너였나. 여기까지 도착하다니, 굉장하군……. 아주 쓸모없는 걸음이지만 말이야.”

기척으로 미루어 알아냈던 손님은 로렌스였다. 은우는 만일을 대비해 꺼내 두었던 검을 아래로 늘어트렸다. 완전히 방비를 푼 것은 아니나, 적의가 없다는 의사를 표하는 자세다. NPC가 그걸 알까마는.

“이 앞으로 나아갈 생각인가? 그만두는 게 좋아. 배신자가 가로막고 있으니…….”

로렌스는 플레이하는 동안 마주쳤던 그 어떤 때와도 달랐다. 그녀의 얼굴은 절망에 젖어 있었고, 목소리는 암울했다. 자포자기한 것에 가까웠다. 로브 속 슬쩍 비치는 눈은 완전히 죽은 자의 것이다.

“우리는 대체…….”

한 번 더 말을 걸어 보았지만, 그 대사의 반복만이 이어졌다.

이건 보통 삶을 포기하기 직전의 사람들이 많이 보이는 반응인데. 왜 갑자기?

은우는 뒷목을 쓸었다.

“설마 배신자를 잡으면 로렌스 쪽 엔딩입니까?”

─ㄴㄴ 그건 아님

─이건 그냥 이벤트고 원랜 마탑에서 무슨무슨 약을 받아야함

─그거 마시면 로렌스 쪽 엔딩임

“다행이네요. 아직 무슨 엔딩을 볼지 결정을 안 해서.”

─ㅋㅋㅋㅋㅋ배신자 잡는 걸 전제로 하는 것 보소

─근데 저게 자만이 아니라 자신이라서 더웃김

─배신자 딱대

그는 어깨를 으쓱였다. 상대가 누구든 질 자신이 안 드는 걸 뭐, 어쩌란 말인가.

“이제 슬슬 들어갈까요.”

은우는 보스 방으로 추정되는 문 앞에 섰다. 문 앞에 협력자를 부를 수 있는 룬이 가득 박혀 있는 게 추정의 증거다. 침입과는 상당히 다른 시스템이다.

끼이이이익!

그는 문을 열었다. 어둠에 잠겨 있던 홀에 빛이 스며들었다.

훅-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홀의 가장자리부터 불이 차례로 켜졌다. 푸른 불꽃들은 방을 완전히 밝히진 않아도 세계를 구분할 수 있게 해 준다.

“잔재들이 또다시 찾아왔는가…….”

그 속에서 몸을 일으키는 것은 검은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었으니.

얼굴의 반쪽을 가면으로 가리고 해당 방향의 반신 또한 노출 없도록 채웠다. 드러난 나머지 부위는 보통의 혈시처럼 부패하고 피투성이의 살결이다.

“인간의 멸망은 필연이니.”

그것은 일반 혈시와 달리 쉬었을지언정 알아들을 수 있는 소리를 속삭였다. 쌍도가 드레스 자락 사이로 사르륵 올라온다.

“헛된 자들이여, 운명을 받아들여라.”

《눈물 흘리는 배신자》

체력 바가 어둠 속에서도 뚜렷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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