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어떻게 아신 거임??
─머야, 안개지대를 벌써 통과한다고??
─켄님 고백하세요 이거 해봤죠
“아뇨, 처음 맞습니다.”
─근데 왜이렇게 길 잘 찾아요
─운이 좋은 걸지도
─ㄴㄴ 운이었음 이제 곧 끝이라고 확신 안하지;;
─그건 그럼
사람들의 반응이 거셌다. 이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 이 사람들, 과거 그가 살던 세계의 정글에 입장하면 절대 못 빠져나오겠군.
은우는 뒷걸음질로 다시 안개 구역에 입성했다.
“확신한 건 이동하는 방향 쪽 소리가 바뀌어서 그런 겁니다. 그리고 길 찾는 건… 잘 보시면 여기 바닥에 흔적이 있지요.”
─???
─?
“이렇게… 풀이 옆으로 누워 있잖습니까. 오래된 흔적이라 티가 잘 안 나지만… 간격을 좀 두고 잡으면 길이라 할 만한 게 보입니다.”
은우는 20m 정도 움직여 가며 길 찾는 방법을 강의했다. 그러자 채팅 창이 불난 듯 뜨거워졌다. 썩은물들 중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많았던 탓이다.
─와, ㅅㅂ 저걸 어케 앎????
─제작자들 쌉변태 새끼들...
─이걸 알아낸 켄은 대체 뭐하는 놈임ㅋㅋㅋㅋ
─켄 진짜 특수부대 출신 맞다니까ㅡㅡ
“아니라니까요.”
은우는 코로 숨을 길게 내뱉곤 도로 돌아왔다. 안개가 걷힌 숲은 조금만 더 걸으면 맥의 지팡이를 마주할 수 있다.
─이제 보스전임...
─여기 보스도 지랄 같은데ㅠ
“그래요?”
─다구리 오짐
─임프 우두머리라서 쫄도 불러요ㅠ
조금 기대했던 은우는 김이 팍 식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여럿이서 등장하는 것은 괜찮지만, 그 대상이 임프여서야.
“왠지 본체는 약하고 부하들이랑 떼거리로 덤비는 것이 다일 것 같습니다만…….”
─그거 맞음ㅇㅇ
─뭐야, 해본 거야 형?
“재미없겠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검은기사의 보스를 두고 재미를 논하는 거냐고ㅋㅋㅋㅋ
─우리는 이악물고 겜하는데 켄은 즐겜하네ㅋㅋㅋ
아무리 돈이 걸려 있다지만 즐겁지 않으면 그 일을 할 필요가 있을까. 은우는 어깨를 으쓱이며 거대한 나무 앞에 섰다.
쿵!
나무 위에서 임프를 거대하게 부풀려 놓은 듯한 몬스터가 떨어져 내렸다. 보스전이었다.
▣ 016. 저도 빨리 만나고 싶네요
예상했다시피 임프 우두머리는 부하 소환을 반복하는 패턴이었다. 부하를 소환하고, 부하 뒤에서 원거리 공격을 날리다가 부하들이 전멸하면 소환진을 그린다. 이 세 개의 반복인 것이다.
보통 사람들에겐 그마저도 까다로웠으나, 은우에게는 아니었다. 워낙 순식간에 부하들을 쓸어버리다 보니 우두머리가 계속 소환진만 그린 탓이다.
정말 재미없는 보스전이었다.
“유리기사 때문에 기대했는데… 조금 아쉽네요.”
은우는 시미터를 털어 냈다. 사람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해 주기 위해 쓴 적 없는 무기 중에 고른다는 것이 이 곡도였다. 메이스에 이어서 꼽힌 녀석이기도 하다.
“이 녀석이 최종 보스는 아니겠죠?”
─ㅇㅇ 아직 끝 아님
─새 지역 가는 길 여러 개 있어용~
─1트가 너무 당연해서 누구도 미션을 걸지 않아ㅋㅋ
─나는 이 다음을 기다린다.
마지막 지역이 아니면 됐다. 은우는 사람들이 알려 주기도 전에 거대한 나무를 살펴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이리저리 뻗어 있는 뿌리 사이로 구멍 같은 게 있었다.
슬쩍 그 안에 몸을 집어넣으면 상단에 《저주받은 굴》이라는 글자가 떠오른다. 새 지역이었다.
“무슨 무기를 들까요.”
─채찍 딱 대
─정석조합 한 번도 안 가시지 않았음? 방패와 직검 갑시다
「‘강남건물주’ 님이 ‘50,000원’ 투척!
레이피어 해주세요.」
─전 곡도 더 보고 싶어요
「‘살다살다후원을’ 님이 ‘5,000원’ 투척!
적도 사서 적도 가는 건 어때요」
「‘заявление об отставке’ 님이 ‘82,050원’ 투척!
나는 플랑베르주를 바란다」
─ㅋㅋㅋ무슨 무기든 다 자신 있다는 거냐고ㅋㅋㅋ
“먼저 이야기 나온 레이피어로 하겠습니다. 안타깝지만, 적도나 플랑베르주는 다시 사러 가야 하니까요. 후원은 감사합니다. 기회가 되면 다음에 쓰겠습니다.”
거기까지 말한 은우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슬쩍 시간을 확인하니 방송 2시간째에 접어들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오늘은 이 지역까지만 깨고 방종하겠습니다.”
─ㅋㅋㅋ어려울 텐데...
─이번 지역은 진짜 개극혐임
─함정 너무 많습니다. 제작사 머릿속이 궁금합니다. 그들은 변태입니다.
“아, 함정이 많습니까?”
─ㅈㄴ 많음
─사람 야마돌게 만드는 맵임
─다행히 입구엔 함정 없는데ㅋㅋ...그래도 극혐임
─본인 충고하는데 벌레 싫어하는 사람들 눈 닫아라ㅋㅋ
─처음부터 끝까지 약간 총체적 난국,,,,;;
그는 고개를 대충 주억이며 레이피어로 바꿔 든 채 굴 안으로 입장했다. 생각보다 그리 어둡게 느껴지진 않았는데, 파란 형광색으로 빛나는 버섯의 존재 때문이었다.
버섯들을 따라 하나 있는 길을 살금살금 걷다 보면 갑자기 바닥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온다.
푸욱.
한 걸음 물러난 후 힘을 싣고 찌른다. 바닥에서 일어났던 곤충이 레이피어에 꽂혔다.
푸푸푸푹.
그 상태에서 빠르게 빼낸 후 곤충이 추락하기 전에 여러 번 더 찔렀다. 금세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이번 테마는 곤충인가. 은우는 머릿속에 생각을 떠올렸다가 의식적으로 말을 내뱉었다.
“곤충이 나오네요.”
사람들의 절반이 기함했다.
그는 사람들의 벌레 혐오에 뒷목을 쓸었다.
하긴, 그도 한때는 싫어했던 것 같다. 조난당했을 때 살아남겠답시고 벌레들을 잡아먹었던지라 익숙해졌을 뿐이지.
“그래도 애벌레나 몇몇 벌레는 구워 먹으면 맛있지 않습니까? 이곳 곤충은 잘 모르겠지만.”
─구웨에에엑
─아니 벌레를 왜 먹어;;
─ㅋㅋㅋㅋㅋㅋ벌레 먹어본 거냐구ㅋㅋㅋ
─왜? 먹어볼 수 있지 않음? 30년 전에는 나름 대체 식품이라고 이름 높지 않았냐?
─30년 전...? 아재....?
「‘카를로스’ 님이 ‘1,000원’ 투척!
켄...사실 아재였던 거야...?」
“아직 그 정돈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스무 살이면 그래도 아저씨라 불릴 나이는 아니지 않나. 은우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나이만 따졌을 때, 대여섯 살 애기들이라면 그를 아저씨라고 부를 수 있긴 하겠다. 현실은 무섭다고 얼씬도 안 하지만.
“나름 스무 살인걸요.”
─?
─??
「‘뭐라구요?’ 님이 ‘1,000원’ 투척!
네?? 스무 살??」
─네?
“예, 스무 살.”
두어 마리를 더 처치하니 길이 두 갈래로 갈라졌다. 잘 보면 한쪽은 맥의 지팡이가 있는 공터랑 연결되어 있다.
“…못 믿으시는 분이 많네요.”
「‘заявление об отставке’ 님이 ‘82,050원’ 투척!
거짓말은 좋지 않다.」
─ㅋㅋㅋㅋㅋㅋㅋ스무 살...? 내가 언제 저 나이였었지..?
─저는 믿을 수 없습니다. 켄이 스무 살일 리 없습니다.
─구울왕은 스물일곱 살 아니냐
“딱히 거짓말은 아닌데… 뭐, 믿는 건 본인 자유 아니겠습니까. 후원 감사합니다.”
─저렇게 말하니까 찐 같고....
─ㄴㄴ 저건 고도의 술수임 절대 스무살 아님
─근데 진짜 스무살이면,,,,,급 현타
─아~~ 뭔 소리임?? 우리 구울들 다 고딩 아녔음???
─ㅋㅋㅋㅋㅋㅋㅋㅋ갑분고
─쌉고딩이지ㅋㅋ 스무사알?? 켄 머이리 늙었음??
사람들이 설왕설래할 때, 은우는 거짓말을 하는 시청자를 발견했다.
“제 나이는 둘째 치고, 고딩이면 지금 공부해야 할 텐데.”
─^^7
─ㅋㅋㅋㅋ이 새끼들ㅋㅋㅋ
─^^7
─^^7
─과제하면서 보고 있습니다 충성충성
“그거 압니까? 고등학생은 과제 안 해요.”
─ㅋㅋㅋㅋㅋ아, 이걸 들키네
─잌ㅋㅋㅋㅋ
─대학생이,,,말이야,,,으딜 고딩인 척해~!!
─예고는 과제 있거든요??
─그래서 예고냐?
─아니....
은우는 그들의 만담을 보며 나지막이 웃음을 터트렸다. 맥의 지팡이가 그 손끝에서 활성화를 시작했다.
─야, 형이라고 불러라
─누나 해봐
곧 진정한 시청자들이 놀리듯 말을 꺼냈다. 은우는 그것에 괜한 장난기가 돌았다. 슬슬 방송에 적응하니 때때로 이렇다.
“형, 누나. 제 방송, 재밌어요?”
생겨 먹은 것 때문에 별로 써 본 적 없는 단어지만, 그렇기에 더 말하기 편했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언제 말하겠나.
은우는 나른한 저음으로 사람을 유혹하듯 속삭였다. 끝을 올린 덕에 의문형임은 알 수 있으나, 그 외의 성조는 거의 없다. 약간 서려 있는 웃음기만이 그 저음을 부드럽게 만들 따름이었다.
─오우쉣
─목소리 천재ㅠㅠㅠㅠ
─시발....
─아, 이런 동생 환영이다
─ㅋㅋㅋㅋㅋ아, 난 모르겠다 그냥 켄은 켄인 걸로
─너 천재냐?
─켄은 켄이지ㅇㅇ 나이가 먼 상관임
시청자들이 바로 패배를 인정했다. 그는 그것을 보며 작게 웃곤 길을 나아갔다.
굴은 점점 넓어졌지만, 대신 거미줄 같은 것들이 벽과 바닥, 천장을 뒤덮기 시작했다.
거미가 있나. 은우는 독 때문에 제법 까다로운 곤충을 떠올리며 조심조심 움직였다. 다행히 몇 마리의 벌레 외에는 몬스터가 등장하지 않았다.
그리고 드디어 저주받은 굴의 진면목이 드러났다. 그건 벌레들의 흔적으로 뒤덮인 유적지였다.
“벌레들이 점령했네요.”
─지옥 on
─트라우마 on
─켄은 여기서 몇 번 죽으려나
「‘이건진짜킹전자산’ 님이 ‘10,000원’ 투척!
이번 맵에서 한 번도 안 죽고 보스전까지 가면 30만 원.」
─아, 이건 진짜 가능할 듯
─스위스 은행까진 아니어도 그냥 은행은 되나?
「‘заявление об отставке’ 님이 ‘16,410원’ 투척!
충격 때문에 한 발 늦었다. 같은 미션으로 5만 루블 건다.」
─5만 루블이면 얼마임.
─80만 원 쯤?
─와
은우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뒷목을 슬슬 쓸었다.
“미션 받겠습니다. 시스템상 죽어 보지 않곤 돌파구를 알 수 없는 함정이 없다면 좋겠네요.”
─그런 것만 없다면 깰 수 있다는 건가ㅋㅋㅋ
─자신감 오져 진짜ㅋㅋㅋㅋㅋㅋ
“못 할 것도 없지요.”
「‘형...아니동생.....’ 님이 ‘10,000원’ 투척!
구울단은 지금의 그 모습 기억할게....진정한 검은기사에 온 걸 환영한다.....」
은우는 사람들의 반응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게까지 말할 노릇인가?
그렇지만 그는 이내 자신감을 되찾았다. 그가 누군가. 손수 함정을 해제하기도 하고, 목숨을 건 채 발동된 덫을 돌파하기도 한 사람이다. 방심하는 일은 없겠지만, 괜히 수그러들 이유도 없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그는 적당한 자신감과 적당한 긴장감을 가지고 한 발 내디뎠다. 곧 이를 악물게 될 미래를 직감하지 못한 채로.
* * *
맹세컨대 은우는 이보다 더한 곳을 겪어 본 적이 많다. 당시엔 진짜 목숨이 걸려 있었으므로 함정은 더더욱 불쾌하고 짜증 나는 존재였다. 그리고 까다롭고.
다만 그래도 그땐 선후 관계가 있었다. 가령 버튼을 밟아야 화살이 날아왔고, 무게가 실어져야지만 천장이 내려왔다. 원인과 결과가 뚜렷했단 것이다.
그러나 검은기사는 달랐다. 이 게임은 상도덕을 몰랐다.
“…이번엔 진짜 위험했네요.”
아슬아슬하게 화살 비를 피한 은우는 한계까지 치솟은 호흡을 회복했다. 특별히 스태미나는 없으나, 대략 1분 정도를 가열하게 움직이면 호흡이 턱턱 막혀 오는 시스템이었다.
─함정>>>>>>보스>몬스터>침입자
─켄 죽을지도 모른단 소리에 지금 시청자들 바글바글 늘고 있음ㅋㅋㅋㅋ
─그래도 벌써 중반분데?
은우는 자신이 너무 과만했음을 인정했다. 이 생을 살며 평화에 너무 찌들어진 게 분명하다.
본래였다면 방금 전 함정을 빠르게 눈치채고 몸을 피했을 터. 그러지 못해서 죽을 뻔했다. 미션의 성공 여부를 떠나서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났다, 이거다.
정신 차리자. 은우는 뒷목을 쓸고 각오를 다졌다. 그러자 진지함과 도전욕만이 남아 불타올랐다. 투구 속 녹색 눈동자가 이글이글 끓어올랐다.
그의 마음에 세워진 검에 쌓여 있던 먼지들은 어느새 날아가 있었다.
“제가 너무 방만했네요.”
신호를 주지 않고 발동되는 함정? 그렇다면 발동되는 것에 맞춰 초 단위로 반응해 내리라. 오래전에 그랬듯이.
“정신 차리고 해야겠습니다.”
짓씹듯 토해 내자 사람들이 화들짝 놀랐다.
─ㅗㅜㅑ
─미췬, 진심모드 on
「‘킹갓제너럴켄’ 님이 ‘10,000원’ 투척!
척안의 왕이 깨어난다,,,,」
─구울왕이시여!!
─ㅋㅋㅋㅋ씹덕후 새끼들ㅋㅋㅋㅋㅋㅋ
─와ㅋㅋ근데 진짜 빡쳤나보다ㅋㅋㅋ
“안 빡쳤습니다.”
은우는 갓 발견한 맥의 지팡이에 불을 지피고 레이피어를 고쳐 쥐었다. 빡치지 않았다는 말마따나 그의 목소리는 다시 평온해진 상태였다. 이동용 채찍이 빈손에 소환되었다.
“실력이 부족해서 죽을 뻔한 걸 게임 탓으로 돌리면 안 되는 거잖습니까.”
─살아남은 시점에서 절대 실력부족이 아닐 텐데...?
─아, 켄아, 형아 아프다 팩트로 치지 마라
─켄 갑자기 광역 어그로 던지네;; 신호 좀
─아...함정으로 인한 위기마저도 자신의 실력 부족이라 말하는 당신은 도덕책....
“그래도 여긴 스킵할 수 있겠네요. 아, 삼인칭이신 분들은 바닥 보지 마세요. 밑바닥에 벌레 엄청 많은 것 같습니다.”
─배려심 보소 형 눈물난다
─누나도 고맙다....
─나 저기 떨어져본 적 있어서 아는데, 진짜, 진짜 절대 떨어지지 마라,,,,
─ㅋㅋㅋ구울쉑들 다들 형누나 거리고 있네ㅋㅋ
─ㅋㅋㄱㅋㅋㅋ찐 스무살일지도 모르자너~
그는 자칫하면 벌레가 가득한 밑바닥에 떨어질 수 있음에도 망설임 없이 뛰어다녔다. 그런 그의 시야를 막은 건 다름 아닌 침입자였다.
『미쳐 버린 망령, 《소풍와쪄염》이 침입했습니다.』
“저분도 불쌍하네요. 왜 하필 이 맵에 오셨는지.”
저 멀리 침입자가 보였다. 그는 그 자리에서 펄쩍대며 이마를 붙잡았는데, 아무래도 맵을 보고 짜증 내는 것 같다.
그러다가 함정이 발동되자 화들짝 뒤로 물러난다. 몬스터들은 무시할 수 있어도 함정은 아닌 모양이다.
그는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지금껏 쓰지 않았던 새 무기를 들었다. 명중률이 형편 없어 거의 쓰이지 않는 무기, 활이다.
드드득.
팽팽하던 활줄이 당겨졌다.
“맵이 별로니까 바로 보내 드려야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아, 이것이 '배려심'이란 것이다...
─죽이는 건데 왜 진짜 배려 같냐ㅋㅋㅋㅋ
─활도 쏠 줄 아는거냐고ㅋㅋㅋ
활은 검이나 채찍과 달리 조금이나마 에임 보정을 해 주긴 한다. 다만 정말 최소한에 불과한지라 활에 취미가 있지 않은 이상 잘 쓰지 않는 무기였다.
함에도 은우는 그것을 자신 있게 들었고, 그 자신감은 명중으로 이어졌다.
침입자의 머리에 정확히 화살이 꽂혔다. 그것도 연속으로.
『미쳐 버린 망령, 《소풍와쪄염》을 퇴치했습니다.』
─ㅋㅋㅋ입구컷
─어림도 없지! 접근 전에 보내버리기!
─켄님 못 쓰는 무기가 대체 머임?
─무기란 무기는 다 쓰시는듯
“무기는… 애용하는 종류가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다 쓸 줄 압니다.”
재미 삼아 다뤄 본 것도 많고, 처음 써 보는 무기도 어지간하면 금세 파악할 수 있다. 총처럼 기술력이 너무 다른 건 어렵다만.
─? 스무 살이라며....? 역시 뻥이지?
─진짜 무술가 집안 그런 거임?
─난 저 때 뭐다룰 줄 알았지....
“무기 외엔 못 다루니 너무 부러워하진 마세요. 악기 하나 연주 못 합니다.”
─ㅋㅋㅋㅋㅋ나는 무기도 악기도 못 다뤄....
─갑자기 자괴감 듬
─오빠....하나라도 잘하는 게 어디야
은우는 활로 이제 건너갈 자리의 벌레를 쏴 죽인 후 계속 이동했다.
어느 순간 발밑이 소리 없이 갈라졌으나, 그건 재빨리 앞으로 굴러 피했다. 연속으로 구르면 아슬아슬하게 함정 지대를 벗어날 수 있다.
“함정 정말 더럽게 나오네요.”
그는 바짝 집중한 정신으로 조그만 소리도 놓치지 않았다. 아주 가느다란 소리가 귀에 걸렸다.
은우는 채찍으로 위 전등을 휘감고 타잔처럼 방을 가로질렀다. 달리기로는 피할 수 없었을 불꽃이 일대에서 터져 나왔다. 덕분에 거미줄이나 배변, 허물 따위가 전부 불에 타 숨겨진 보물 상자가 나타났다.
─이쯤되면 켄을 죽일 수 있는 건 없을 듯
─스스로 실험정신 발휘하다 죽는 거 아니면 진짜ㅋㅋ
은우는 걸음을 돌렸다. 시간을 들여 다시 불꽃이 나오지 않는다는 걸 확인한 후에는 당연히 보물 상자를 열었다.
끼이익.
철컥.
보물 상자를 열다 말고 그는 다시 닫았다. 그리곤 장비한 적이 없는 방패를 처음으로 들었다. 보물 상자를 걷어차며 연 후, 방패를 앞세우면 화살 튕기는 소리가 난다.
─ㄲㅂ
─이걸 사네ㅋㅋㅋ
─아, 첫죽음을 보나 했더니
“제작자의 악의가 여기까지 느껴지네요.”
─ㅋㅋㅋㅋㅋㅇㅈ
─진짜 사람새끼들이 아님ㅋㅋㅋ
은우는 함정이 멎었을 때 방패를 내렸다. 상자 안에는 더 좋은 방패가 들어 있다.
“이거보다 훨씬 좋아 보이는데… 스탯이 안 되네요.”
─ㅋㅋㅋㅋㅋㅋㅋ좋은 템을 얻으면 뭐하냐ㅋㅋㅋ
─그냥 스텟 올리자ㅋㅋㅋㅋ
─ㄴㄴ 왜 올림 1렙클ㄱㄱ
흔히 있었던 일이므로 그는 방패를 인벤토리에 처박았다. 저것의 미래는 이제 대장간 매입행이다.
─나 그거 기대됨 켄이 배신자잡는 거
─배신자는 킹정이지
─배신자 너무 기대됩니다
─그 때를 위해 미션금 준비 중이다.
“…배신자는 또 뭡니까. 별로 좋아 보이진 않는 이름인데.”
보물 상자 방을 빠져나가자 곤충이 불쑥 튀어나왔다. 은우는 그 목에 레이피어를 친히 박아 넣은 후, 연이어 명치를 걷어찼다. 벌레가 통통 튕기더니 낭떠러지 아래로 추락했다.
─PC버전에선 잡혔는디 가상현실 버전에선 한 번도 안 잡힌 보스임
─히든보스 같은 건데 엄청 세요.
사람들의 대답은 빨랐다. 은우는 다음 지대로 넘어가던 발을 멈춰 단두대 날을 피했다. 이어서 나온 함정은 옆에서 쏘아지는 화살 비였다.
“히든 보스면 숨겨져 있겠군요.”
─해석) 찾기만 하면 죽일 수 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은우는 부정하지 않았다. 정신까지 바짝 차린 이상 그는 절대 죽지 않는다. 특히 어떤 내막이 있는지는 몰라도 배신자란 이름이 붙어 있는 녀석에겐 더.
“그거 아주……! 궁금하네요.”
다음 방에 들어서고 ⅓ 지점을 지났을 즈음, 위에서 벌레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채팅 창이 비명을 지르고 은우는 바로 내달렸다. 벌레들이 그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이대론 잡히겠네. 은우는 몸을 확 튼 후 벌레들을 향해 역으로 달려들었다. 그의 채찍이 천장에 단단히 박혀 있는 벌레 시체를 휘감았다.
공중에 부웅 떠오른 몸은 곤충 떼의 저편에 다다르고 나서야 착지했다. 은우의 몸이 지나온 통로를 넘어갔다.
─으아아아아
─벌레떼 극혐!!
그는 의도적으로 속도를 낮춰 가며 벌레 떼와의 거리를 조절했다. 그러곤 화살 비 함정에 다다랐을 때, 벽을 차고 뛰어올라 천장의 거미줄을 움켜쥐었다. 그의 몸이 천장에 찰싹 달라붙었다.
피피피피핑!
벌레들이 가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함정에 도달했을 때, 어김없이 화살 비가 날아왔다.
추측이 맞아서 다행이네. 은우는 바닥으로 내려선 후 바로 그 영역을 벗어났다. 한둘 남아 있는 벌레야 껌만도 못하다.
그러고 보니 이것도 설명해야 하나? 은우는 잠깐 말을 고른 뒤 해설했다.
“아까 침입자가 왔을 때, 이미 지나온 자리에서 함정이 발동되길래 이것도 되나 했는데, 다행히 성공했네요.”
─ㅁㅊ 그걸 순간적으로 판단하고 되돌아온 거임?
─여긴 폭탄밖에 답이 없다고 생각했는디
─막판에 호흡 다되서 느려진 건가 했는데 속도조절이었누;;
“그보다 아까 그 배신자 얘기, 마저 해 주세요. 언제 나옵니까?”
─ㅋㅋㅋ미친 짓을 저질러놓고 너무 담담하게 화제전환ㅋㅋ
─우리 켄 넘 귀엽스
─배신자가 언제 나오더라?
─아직 한참 남았습니다.
은우는 본래 궤도로 돌아와 다시 걸음을 옮겼다. 중도에 딱정벌레 형태의 곤충이 기습했지만, 떼거리가 아니고서야 문제없다.
그는 벌레의 머리를 손으로 억세게 쥐었다. 그리곤 벽에 던졌다. 다른 손에 쥐어져 있던 레이피어가 바람을 휘감은 채 벌레의 몸통을 꿰었다.
“빨리 만나고 싶네요.”
─그럼 구울이들이랑 같이 켠왕각?
─새벽팟ㄱ?
─켠왕 가나?
“켠왕이요? 그럴까요?”
─켠왕??
─진짜 켠왕??
“…는 무슨. 어림도 없습니다.”
그는 뒤에서 기어 오는 벌레의 대가리를 짓밟고 레이피어를 쑤셔 넣었다.
─아, 켠왕하자아
─형 과제 때문에 밤 새야하는데 켠왕 해주라
─켠왕ㄱㄱ
─일찍 자봤자 키밖에 안 커
“그래서 여러분도 키 크셨습니까?”
─ㅅㅂ 팩트로 조지지 말라고
─아ㅋㅋㅋㅋㅋ킹받네
─나쁜 새끼야ㅠㅠ
─그래 너 키크다 염병ㅠㅠ
시청자들이 우는 소리를 내는 사이, 은우의 레이피어가 빛살처럼 곤충들을 쑤시고 갈랐다. 곧 지역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