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자도 방송할 수 있습니다-13화 (13/233)

13화

검은기사가 정말 어렵다고 평가받는 이유는 적의 인공지능이, 특히 보스의 지능이 높아 전투가 매우 사실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게임이 검은기사만 있는 건 아니다. 당장 아임휴먼도 사실적인 전투로 인해 난이도가 높은 축에 속하는 편이었다.

다만 검은기사가 특히 악명 높은 것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는 자동 전투가 없다는 것. 두 번째는 몹 간의 연계가 자연스럽다는 것. 마지막으론 HP라는 일정 수치를 통해 싸움을 오래 지속시킨다는 것이다.

앞선 두 가지는 그렇다 쳐도 세 번째의 경우는 뭐가 문제지 싶을 수 있다. 천천히 깎아 가며 잡으면 되니까 말이다. PC 버전에서 그러듯이.

이 점이 악명으로 얻게 된 진정한 까닭은 몬스터들의 패턴에 있다.

보통 이런 류의 게임은 패턴을 외움으로써 공격을 피하고 피를 깎는 것이 정석적인 공략이다. 한데 VR 버전 검은기사는 패턴이랄 게 없었다. 있어도 거의 무한에 가까워, 외우는 것만으로는 대처가 불가능했다. 하물며 보스의 경우 HP 수치가 낮은 편도 아니었다.

그 와중에 자동 전투는 존재하지도 않고, 보정은 능력치를 올리지 않는 이상 받을 수 없다.

심지어 다른 미션이나 루트로 돌아갈 수 있는 대다수의 게임과 달리, 검은기사는 오롯이 전투로만 진행이 가능했다.

환장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다.

▣ 013. 혹시나 해 봤는데

보스라는 걸 증명하듯 유리기사의 체격은 컸다. 앞선 혈시기사들도 보통 인간보다 거구였는데─단지 은우가 2m-3cm였을 뿐이다─ 유리기사는 그것보다 머리 하나는 더 높았다. 은우와는 거의 40cm 어림의 차이가 있는 듯하다.

“조각상 같네요.”

유리기사가 척척 다가오는 걸 보며 은우는 한 마디를 내뱉었다. 사람들이 동의 표를 던졌다.

척, 척, 척.

갑주 특유의 금속음이 회랑 안에 울려 퍼졌다. 그는 일직선으로 걸어오는 유리기사를 보며 옆으로 움직였다. 손에 들린 채찍이 바닥에 툭 떨어졌다.

「‘강남건물주’ 님이 ‘30,000원’ 투척!

회복약 없이 검 없이 채찍으로만 1트 클리어. 50만 원.」

─큰손 나오셨누ㅋㅋㅋㅋㅋ

─채찍으로만?? 이거 안전주식 아님??

─아, 불안한데....생각해보면 또 안전주식 같고ㅋㅋㅋㅋ

「‘카를로스’ 님이 ‘10,000원’ 투척!

느낌왔다 풀매수 가즈아! 묻고 10만 원 더!」

─ㅋㅋㅋㅋㅋㅋ아, 가? 가?

─아, 고민되는디,,,,,매수각??

「‘заявление об отставке’ 님이 ‘81,200원’ 투척!

저 미션 마음에 든다. 나도 얹고 싶다.」

─외국인들도 투자한닼ㅋㅋㅋㅋ

은우는 갑자기 터져 나온 미션에 눈을 껌뻑거렸다. 쨍그랑. 검이 바닥에 버려졌다.

“더 투자하실 분?”

─갑자기 소름돋는데ㅋㅋㅋㅋ

─킹전주식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개잡주인 거 아니냐ㅋㅋㅋㅋ

채찍이 바닥을 쫙 쳤다. 유리기사가 방패를 앞세우고 돌진했다.

촤악!

은우의 발이 바닥을 박차며 뒤로 채찍을 휘둘렀다. 은우가 있던 자리를 유리기사가 덮치고, 그 갑옷 위에 가죽끈이 내려쳐졌다. 피통이 아주 조금 줄어들었다.

이거 투우하는 기분이네. 은우는 입꼬리를 나른하게 올리며 천천히 걸었다.

그사이 자세를 다잡은 기사가 목을 뚜둑, 뚜둑 꺾더니 몸을 돌려 걸었다. 검을 쥔 손을 올려 손가락을 까닥까닥하기도 했다.

꼭 방금 전 돌진은 맛보기였노라 말하는 것 같다.

그렇게 나와야지. 그는 혀로 입술을 살짝 핥곤 채찍으로 바닥을 쳤다. 동시에 그의 몸이 급발진했다. 기사도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쾅!

유리기사의 거대한 검이 바닥을 내려찍었다. 은우의 몸이 튕기듯 위로 뛰어오르며 검을 밟았다.

그대로 검을 타고 뛴 그는 유리기사의 목에 끈을 휘감으며 어깨 너머로 뛰어내렸다. 유리기사가 다급히 검 든 팔을 휘두르며 몸을 틀었다.

그러나 은우는 착지한 이후 몸을 바닥에 바짝 붙인 상태였으니. 유리기사의 검이 은우가 없는 공간을 갈랐다.

은우는 그 상태에서 채찍을 양손으로 붙잡고 끌어당겼다. 목이 얽힌 탓에 유리기사의 허리가 뒤로 꺾이며 발이 주춤, 반 걸음 물러났다. 균형을 얼핏 잃었단 증거다.

휘익.

손목 스냅으로 빠르게 채찍을 풀어낸 은우는 재빨리 일어서서 균형을 잃은 기사를 타격했다. 빠르게 두 방. 그리고 유리기사의 검격을 피해 구르기.

은우의 무기는 뱀처럼 교묘하게 허공을 기었다. 촤악! 고아한 무늬의 방패가 채찍을 막아 냈다. 막아 낸 것이므로 피는 깎이지 않았다.

─이몸 방금 투자실패를 직감함

─와, 저걸 막냐ㅋㅋㅋㅋ

─유리기사는 평소처럼 거지같은데 켄이 너무 오짐;;

은우는 아까 했던 평가를 철회하기로 했다. 죽을 것 같다는 위기감은 여전히 없지만, 지금껏 겪어 본 일대일 중에서는 유리기사가 제일 재밌다.

아임휴먼이 난전과 총 때문에 까다롭게 느껴질 뿐이라면, 검은기사는 전투가 정말 전투다워서 좋은 느낌이었다.

“재밌네.”

유리기사가 방패로 몸의 절반을 가린 채 검을 고쳐 쥐었다. 그쪽도 이제 함부로 움직이지 않을 심산인지, 졸지에 두 사람은 원을 그리며 천천히 걸었다.

이럴 땐 먼저 움직이는 쪽이 조금 더 불리하다.

그렇지만 은우는 방송인. 말을 재치 있게 할 자신이 없다면 근사하고 화려한 장면이라도 연출해 내야 한다는 걸 그는 잘 알았다.

결국 은우가 먼저 움직였다. 채찍으로 바닥을 촥 내려친 그는 일직선을 그리며 돌격했다.

방패가 훅 앞으로 나왔다. 은우는 그 방패를 밟고 올랐다. 절묘한 균형 감각에, 방패의 얇은 윗면 위로 발이 턱 얹어졌다. 은우는 이제 방패를 밟고 선 채 유리기사를 내려다보고 있다.

힘을 힘껏 싣은 채찍이 유리기사의 헬름을 내려치려 들고, 기사는 방패를 위로 들어 올렸다. 은우의 몸이 같이 들렸다.

방패를 기울여 든 탓에 그 역시 균형이 무너졌다.

촤악!

은우가 텀블링을 하며 유리기사의 뒤로 뛰어내렸다. 그 가운데 채찍이 기사의 투구와 등을 동시에 때렸다.

가가가각!

유리기사가 오른팔을 휘두르며 몸을 틀었다. 은우는 구르기로 바닥을 긁듯이 하는 검을 피했다. 촤악! 찰진 채찍이 살짝 열린 가슴팍을 내려쳤다. 절대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

기사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내뱉더니 검을 버렸다. 채팅 창이 난리가 났다.

─검 왜버림??

─머임?? 검 버릴 수도 있음??

─검 버리는 거 한 번도 못 봤는데??

─켄이 버렸다고 유리기사마저 버려버리는 건가;;

반면 은우는 감탄했다. 정말 인공지능을 잘 만든 모양이다. 저런 판단까지 가능하게 만들었을 줄이야.

정말이지 싸울 맛 난다. 그가 이기겠지만.

“게임 잘 만들었네요. 적이 잘 싸울 줄 압니다.”

─저게 왜 잘 싸울 줄 아는 거임??

─머임 머임 왜 님만 알고 있어요

─우리도 알려줘요

시청자들의 채근에 은우는 어깨를 으쓱였다.

“제 속도가 10이라고 했을 때, 유리기사가 검과 방패를 들고 낼 수 있는 속도는 4에 불과합니다. 검과 방패 두 개 다 크고 무거우니까 느릴 수밖에 없죠.”

─그렇죠?

─아, 설마 그래서?

“그렇지만 검을 버려 몸을 가볍게 만들면 속도가 8이 됩니다. 4보단 8이 10을 따라잡기 쉽죠. 그래서 저 보스는 검을 버린 겁니다.”

안 되는 것에 용을 쓰기보단 하나를 버려 하나를 얻는다. 그것이 싸움에서 이기는 길이다.

예상대로 기사는 두 손을 이용해 방패를 굳게 잡았다.

사람들이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방패는 예부터 훌륭한 방어 수단이자 대처하기 힘든 공격 도구였다.

“이해하셨으리라 믿겠습니다. 못 하셨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만.”

─아, 누가 이해 못햇냐

─ㅋㅋㅋㅋ켄님 의외로 설명은 잘하는 듯...?

─ㅇㅈ 관점이 일반인이 아닐 뿐....

─제송합니다 이해모탰습니다

누군가를 가르칠 땐 말로 떠드는 것보단 보여 주는 게 더 빠르다. 은우는 버릇처럼 바닥을 내려치며 달렸다.

타이밍 좋게 기사의 방패가 휘둘러졌다. 아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속도였다. 설명을 납득 못 했던 이들이 드디어 이해의 탄성을 내질렀다.

한편, 은우는 아까처럼 뛰지 않았다. 그는 달리던 그대로 미끄러운 바닥에 슬라이딩했다. 방패와 기사의 다리춤 사이를 통과한 그의 팔이 채찍을 휘둘렀다.

쩡!

검을 버린 기사는 방패를 바닥에 콱 박으며 채찍을 튕겨 냈다. 이미 예상했기에 그는 대각선으로 구르며 기사의 다리를 채찍으로 가볍게 쳤다.

대미지는 크지 않지만, 깎였다는 게 중요하다.

─와 시발 미친 거 아니냐

─저거 공격 넣을 수 있는 거임??

─짤짤이 되냐??

사람들이 경악했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저러면 안 그래도 넣기 힘든 공격이 더 넣기 힘들어지는데, 안 놀라곤 배길 수 없을 거다.

“1이라도 깎이긴 깎인다면 잡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은우는 패배를 떠올리지 않았다. 자신을 신뢰하는 자신감이자 절대적인 확신이었다.

그러고 보니 전생에도 저런 녀석이 있지 않았나? 그는 과거를 더듬었다.

그때도 저 기사와 비슷한 야만전사를 상대한 적이 있다. 아마 제국에서 보냈던가?

방패가 아니라 검이란 차이점이 있지만, 그 검이 저 방패만큼 넙데데했었다. 거대한 무기를 이용해 공격 기회를 주지 않고 저만 내지르는 거력 역시 닮았고.

다만 중요한 것은 당시 살아남은 자가 은우란 점이다. 고강한 육체를 가진 야만전사가 아니라, 현생의 육체보다도 왜소했던 그때의 그가 이겼단 말이다.

쫙.

바닥을 채찍으로 친 은우는 눈동자를 형형히 빛냈다. 그때의 야만전사가 무서우면 더 무섭지, 저딴 조각상이 무섭진 않다. 그는 반드시 이긴다.

“믿지 못하시면 투자하셔도 됩니다.”

─아니 그건 좀

─ㅋㅋㅋㅋ아무리봐도 우리 주식 망했음

─그래도 이정도면 날린 값은 하지 않습니까? 전 만족합니다.

─맞말맞말

─아직 모릅니다 저희 다같이 영차해보죠 영

─차

─영차고 나발이고 저희 다 좆된 것 같습니다만....

은우는 피식 웃곤 내달렸다. 그의 몸이 유리기사를 중심축 삼아 원을 그리듯 왼쪽으로 이동했다.

유리기사가 그를 따라 방패로 몸을 가린 채 천천히 돌았다.

유리기사의 주된 손은 오른쪽. 검을 들었을 땐 왼손에 방패를 들어 오른쪽이 비었지만, 지금은 무게중심이 바뀌어 왼쪽이 좀 더 빈다.

은우는 두 바퀴 정도 빠르게 돈 후, 다급히 방향을 틀었다. 유리기사가 흠칫하며 방패를 당겼지만, 살짝 늦었다.

허공에 S자를 그리며 굽이치던 채찍이 유리기사에게 다다랐을 때, U자를 그리며 쫙 옆구리를 쳤다. 방패가 연이어 채찍을 밀어냈지만, 이미 회수하던 타이밍이었다.

은우의 몸이 회랑 바닥에 미끄러졌다. 그 손은 아까 유리기사가 그랬듯 손가락을 까닥이고 있다.

도발에 응하듯 유리기사가 진각을 밟으며 방패를 내려쳤다. 바닥이 울릴 정도로 거대한 힘이었지만, 은우는 그것에 맞춰서 뛰어올랐다. 그의 채찍이 허공을 쐐액 갈랐다.

촥!

방패를 쥐었던 손 하나가 풀려나며 은우의 채찍을 잡아챘다. 반작용으로 채찍이 그 팔에 휘감겼다.

다음을 예감한 은우의 팔에 힘이 한가득 실렸다.

기사는 은우를 몸째로 휘둘렀다. 자칫하면 채찍을 놓칠 만한 힘이었으나, 이를 악물고 버텼다. 순간적으로 채찍을 잡지 않던 손을 채찍에 꼰 덕도 있었다.

가죽끈을 팔 위에 걸치고 원을 그리듯 손을 돌리며 끈 아래에 걸치길 두 번 반복하면 제법 단단한 연결을 가질 수 있다.

보통이라면 팔이 부러지지만, 이 게임은 골절 같은 부상 걱정이 없으니. 은우의 몸이 풍차처럼 허공을 돌다가 바닥에 내려섰다. 우악스러운 착지였다.

하지만 이 또한 기회라. 은우는 내려치듯 바닥에 꽂히려던 걸 착지와 동시에 달리는 것으로 충격을 흘려 냈다. 그리고 냅다 기사 주변을 돌았다.

기사가 채찍을 놓으려 했지만, 휘감긴 가죽끈은 쉽게 풀리지 않는다. 더구나 기사는 방패를 아직 회수하지 못한 채였다.

방패를 포기하면 채찍을 풀어낼 수 있지만, 이후 떨어질 공격을 막지 못한다. 그렇다고 방패를 고집하면.

“──!”

팔이 꺾인다. 부상 걱정이 없다 할 뿐, 움직이기 불편한 각도로 뒤틀리는 것이다.

기사가 짐승의 하울링처럼 그르렁대며 팔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기사의 뒤로 돌아가던 은우의 몸이 멈췄다. 힘겨루기의 시작이었다.

“팔이 부러질 걱정 없으니까 너무 좋네요.”

─아 미친 저걸 저렇게...

─저거 고인물 테크닉인데ㅋㅋㅋㅋ

─고인물도 아님ㅋㅋㅋ썩은물들이 간간히 쓰는 거임ㅋㅋㅋ

본래라면 은우가 형편없이 끌려가야겠지만, 이 게임은 혈시 사건으로 알았다시피 힘이 이상하게 적용된다. 그가 낼 수 있는 최대 힘보다 더한 힘이 외부로 나오는 것이다.

덕분에 은우는 조금씩 끌려갈지언정 팽팽히 버텼다. 와중에 이것도 일종의 지속 대미지로 적용되는지, 유리기사의 피통이 차츰차츰 깎였다.

그리고.

쾅!

은우가 좀 가까워졌을 즈음, 유리기사가 나머지 한 손으로 방패를 들어 내려쳤다. 은우는 아슬아슬한 지점에서 힘겨루기를 멈추었다.

갑자기 무너진 힘의 균형에 은우가 앞으로 튀어 나가고, 방패가 빈자리를 타격했다.

은우는 다시 유리기사의 뒤로 간 채다.

그는 손목에 스냅을 주어 기사의 손목에 감긴 채찍을 회수하고, 훤히 드러난 등을 때렸다.

기어코 유리기사의 피가 반이 깎여 나갔다.

유리기사가 몸을 떨었다. 막 들어 올린 방패에 흰빛이 어렸다.

─와......

─아아....이게 싸움인 것입니까....

─2페이즈 on!

─개그지라고 생각했던 채찍으로 이런 전투가 가능했다니....

─아, 검기사 마렵다;;

─ㅗㅜㅑ.....

─당신을 진정한 채찍남으로 인정합니다...

─채찍남 미쳤냐ㅋㅋㅋㅋㅋ

은우는 시청자들이 와글와글 떠드는 걸 보며 뒷목을 쓸었다.

“그러고 보니 제가 싸울 때 뭐라도 말하는 편이 좋습니까? 말을 영 안 하는 것 같아서 걸리네요.”

─엄....오디오가 텅텅 비는 건 사실인데ㅋㅋㅋ전투가 워낙 화려해서 말해도 잘 못들을 듯ㅋㅋㅋ

─ㅆㅇㅈㅋㅋㅋ

─말해주면 좋고...?

─아 근데 너무 비는 건 사실임;;

─?? 근데 말하면 집중 잘 안 되지 않나?

─잘됐다 형 아무말이라도 좋으니까 목소리 들려줘ㅋㅋ

─전 말 안 하는 것도 좋습니다. 정말 영화 보는 것 같아서wwww

“집중은 괜찮습니다. 아직까진 쉬워서.”

─그냥 편한대로 하세요.

─인간이냐ㅋㅋㅋ저게 쉽다곸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아직까지 노히트잖앜ㅋㅋㅋㅋㅋ

─HP 아직도 빵빵할 듯ㅋㅋㅋ

「‘켄의가운데다리’ 님이 ‘5,000원’ 투척!

솔직히 고백해봐 사람 아니지?」

“안타깝게도 사람 맞습니다. 말은… 가능한 한 해 보겠습니다.”

그는 조금 더 빨라진 유리기사의 공격을 피하며 채찍을 휘둘렀다. 유리기사가 재빨리 가죽끈을 튕겨 냈다.

“음.”

근데 뭘 말하지. 은우는 바닥을 내려치며 뛸 것 같은 스탠스를 취했다. 곧장 달려올 것 같은 모양새에 유리기사가 방패를 휘둘렀다.

촤악!

반 박자 늦게 날아간 채찍이 빈 유리기사의 어깨와 팔을 차례로 때렸다.

“혹시나 해서 해 봤는데 낚였네요.”

─또 뭘한 거야 대체ㅋㅋㅋ

─갑자기 유리기사가 바보가 된 것 같네...

“별거 아닙니다. 아까부터 제가 일부러 뛰기 전에 바닥을 쳤거든요.”

학습도 하나 싶어서 도전해 본 건데, 어김없이 걸려들었다. 은우는 채찍으로 바닥을 쳤다. 유리기사가 움찔거리고, 그의 몸이 팍 튀어 나갔다.

“이렇게요.”

─파블로프의 개냐ㅋㅋㅋㅋ

─그게 머임

─어휴 무식한 새끼...

─조건반사 멍청아

유리기사가 1초 이하 단위로 늦게 공격하고, 은우는 그 틈을 날카롭게 잡아챘다. 채찍이 유리기사의 본체를 타격했다.

파삭.

“……?”

유리기사를 때린 채찍이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은우는 눈을 껌뻑였다.

왜 채찍이 가루화가 된 거지? 아직 유리기사의 HP가 절반 가까이 남아 있는데? 미션도 있는데? 내가 뭐 실수했나? 적이 무기를 사멸시킬 수 있는 그런 게 있나?

수십 가지 의문이 세워졌다가 와르르 쏟아졌다. 남은 건 어이가 가출한 빈자리였다.

“방금 제가 무슨 실수 했습니까?”

그는 혹시 몰라 물었다. 갈고리가 가득한 채팅 창이 말을 얼버무리다가 툭 답을 내놓았다.

「‘내생각엔’ 님이 ‘5,000원’ 투척!

이거....내구도 다 돼서 부서진 듯....?」

은우의 얼굴에 황망함이 어렸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