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자 돌 발판과 조금 커다란 창문 하나가 나타났다. 지하 감옥과 동떨어지도록 만든 감옥인 모양인데, 입구로 보이는 게 없다. 있는 건 오직 창살이 달린 창문뿐이었다.
“흐흐흐흑.”
그 안에서 울음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은우는 창살을 톡 두드렸다. 그늘에 삼켜져 잘 보이지 않던 무언가가 몸을 살짝 흔들었다.
“누구……?”
높고 고운 목소리였다. 어둠에 가려졌던 몸이 빛의 영역 안으로 들어왔다.
“오, 맙소사. 예언이 사실이었다니…….”
그것은 미형의 소년이었다. 어쩌면 소녀인지도 모른다. 까만 로브로 몸을 휘감은 탓에 골격을 확인하기가 어려웠다. 사람들은 그를 대충 탑주라 부르는 모양이었다.
“고귀한 존재이시여, 멸몰의 시대에 깨어나신 것을 환영하나이다.”
고귀한 존재? 멸몰의 시대? 은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사이 탑주가 그의 이름을 물었다. 창이 떠오르며 이름 짓기를 부탁했다.
“켄이시옵니까……. 고귀한 분이시여, 당신께옵서 잠든 이후로 세상은 저주받았으니. 바깥에 돌아다니는 괴물들을 보셨나요? 어느 순간부터 생겨난 그것들은 인류를 밀어내고 세상을 차지했습니다.”
철창에 다가온 탑주가 손을 뻗었다.
“부디 우리를 구원하소서. 인간들을 죽인 삿된 자들에게 죄의 대가를 치르게 만드소서. 혈시들은 왕이 존재해야만 탄생하니, 왕을 죽여 세상을 해방해 주시길 비옵니다.”
그 손에는 낡은 펜던트가 들려 있다. 은우는 그것을 슬쩍 훑어보다가 일단 건네받았다. 앞뒤 돌려 가며 확인해 보니 특별한 건 보이지 않는다.
“언제든 힘에 부치시는 순간이 있으실 것입니다. 그럴 때 제게 괴물들을 죽여 얻은 혈석을 주십시오. 혈석에 깃든 힘을 빼내어 고귀한 존재께 드리겠나이다.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레벨 업을 돌려 표현하는 것 같다. 그럼 매번 레벨 업 할 때마다 이곳에 와야 하나? 은우가 의문을 삼킬 때 탑주가 나머지 대사도 고했다.
“하지만 매번 이곳에 갇힌 저를 만나러 오실 순 없는 일. 방금 건네드린 펜던트를 이용하세요. 그것은 제가 가진 반지와 연결된 기물로, 세계 곳곳에 위치해 있는 맥의 지팡이를 이용하면 저와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소년 몸이 낮아지더니 무언가를 들었다. 철창 사이로 길쭉한 지팡이가 나왔다.
“이것이 맥의 지팡이입니다. 돌 발판에 박아 보시옵소서.”
은우는 그것을 건네받아 돌 발판에 박아 넣었다. 여기 꽂아 달라는 듯 딱 좋은 흠집이 있었다.
콱!
지팡이가 발판에 박혔다.
“이제 활성화하시면 되나이다. 활성화된 맥의 지팡이를 다시 건드리시면 고귀한 분이 걸어오신 자취를 기록하거나 고귀한 분의 상처를 치료해 줄 것입니다.”
그는 맥의 지팡이를 건드렸다. 긴 몸체 위에 박혀 있는 붉은 구슬이 빛을 품었다.
한 번 더 만지니 결계 같은 게 생겨났다. 지팡이를 중심으로 일정 반경을 둘러싼 결계는 그 바깥을 흐리게 만들었다.
동시에 빨간 막대와 파란 막대가 생겨나며 꽉 차올랐다. 빨간 막대는 본래 깎인 게 없었지만, 파란 막대는 아무것도 없다가 완전히 회복됐다. 은우는 그 창도 꺼 버렸다.
“회복이나 저장, 레벨 업이 다 여기서 이뤄지는 거네요.”
─근데 회복하면 몹들 다 리젠됨 ㅅㅂ
─저것때문에 검은기사 할 때마다 맥의 지팡이만 찾아 헤맴....
─ㅇㅈㅋㅋㅋㅋㅋ
─혈석은 글타치고 체력바도 꺼버리네ㅋㅋㅋ
“튜토리얼은 여기까지입니까?”
─아직 하나 더 줄 거 남았음
─회복약 받아야져
회복약? 은우가 눈썹을 들었을 때, 탑주가 무언갈 더 건네주었다. 손바닥 위에 떠올라 있는 그것은 일종의 문양이었다.
“이것은 회복의 룬입니다. 맥의 지팡이가 없는 상황에서 한계에 몰리시거든 이것을 발동시키십시오. 미량이나마 체력이 회복되실 것입니다.”
그것을 톡 건드렸다. 문양이 하나의 빛줄기로 변하더니 그의 손목에 휘감겼다. 마치 빛으로 이뤄진 식물 줄기 팔찌 같았는데, 열매가 하나뿐이다.
“아직은 힘이 미약하여 한 번밖에 쓸 수 없습니다만, 룬의 조각을 가져오시면 횟수와 회복량을 늘려 드릴 수 있습니다.”
─아아, 그것은 '희망'이란 것이다....
─회복룬까지 받았으니까 이제 본격적인 진행임
이제 정말 튜토리얼 끝이구나. 은우는 고개를 주억이며 납득을 표했다. 한참 중얼거리던 탑주가 마지막 말을 내뱉었다.
“이 성채를 나가시려면 채주, 가한을 죽여야 합니다. 부디 당신의 걸음에 무운이 깃들기를…….”
▣ 012. 거긴 총을 쓰잖아요
은우는 일단 시청자들의 훈수를 보지 않은 채 진행했다. 사람들이 자유도가 높은 만큼 길도 더럽게 어렵다며 겁을 주었지만, 그래 봤자였다.
혈시들의 왕을 죽이는 게 게임 목표지만, 이 성을 나가려면 이 성채의 주인을 죽여야 한다. 밖에 나가질 못하는 상황에서 잡아야 하는 대상을 바깥에 두었을 리는 없을 터. 높은 확률로 성 중심에 있을 것이다.
길은 몰라도 목적지는 확실한 셈이다.
“이 게임, 무기는 검밖에 없습니까?”
은우는 병사가 드롭한 검 한 자루를 쥐고 전진했다. 성의 전 병력이 그를 잡겠다고 몰려올 수도 있기 때문에, 상당히 은밀하고 조심스러운 전진이었다.
운 좋게 얻은 투구가 그의 얼굴 대부분을 가리고 있다. 뒤통수는 맨들맨들하고 눈구멍은 조개가 입을 살금 벌린 것처럼 작은 헬름이다.
─그건 아님
─무기 엄청 많아요
─검이랑 창이랑 별개 다있음.
그럼 다양하게 써 볼 수 있으려나? 그는 약간의 기대를 품고 갑자기 튀어나온 혈시를 찔렀다. 채팅 창은 깜짝 등장에 비명을 지르고 있다.
서걱!
잘리지도 않는 주제에 베이는 감각이나 소리는 훌륭하다. 은우는 찰진 타격감에 만족하며 유려하게 검을 휘둘렀다.
적의 무기를 주워 쓸 순 없어도, 적이 살아 있을 때 잡는 건 가능하기에 창을 잡고 이리저리 휘둘렀다. 대미지는 안 들어갈지언정 움직임을 방해하긴 좋다.
“하나 살려 두고 뺏어 갈까.”
─ㅋㅋㅋㅋㅋ개나빠ㅋㅋㅋㅋ
─형님 도둑질은 안 됩니다
─??: 뭐야 내 무기 돌려줘요
─이분은 패링을 안하고ㅋㅋㅋ그냥 무기 잡아서 농락하네ㅋㅋㅋ
─아니 그보다 진짜 사플 ㅈㄴ 잘하신다;; 사실 아임휴먼에서 탐지센서 필요 없었던 거 아님?
“패링은 또 뭔가요?”
─방패로 상대 공격 튕겨내는 거임
─정확히 튕겨내면 몹이 경직판정 받아서 잠깐 동안 굳어있음
─그때 공격하면 크리티컬
「‘개한한테죽을준비하셈’ 님이 ‘1,000원’ 투척!
에이, 남자는 노패링임ㅋㅋ」
─ㅈㄹㄴ
─노패링 미션각?
─패링 없이 깨면 ㅈㄴ 힘듬,,,,
남자는 노 패링? 은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전장에서 남자, 여자 구분이 어디 있나.
남자라고 노 패링이니 뭐니 까불다간 죽기 십상이다. 쓸 수 있는 건 다 쓰는 게 좋다. 아임휴먼의 탐지 센서처럼.
“패링 그거, 꼭 방패로만 가능합니까?”
─글쎄요?
─다른 무기로도 가능은 함 드물어서 글치
─방패가 제일 판정 좋음ㅇㅇ
은우의 몸이 빠르게 회전하며 뒤에서 달려오던 혈시를 반 갈랐다. 바닥에 처박힐 기세던 검이 급격하게 꺾이며 혈시의 다리를 또 한 번 베었다.
“그렇군요. 정보 감사합니다. 게임이 불친절해서 이런 것도 안 알려 주네.”
─아니 그건 님이 설명적힌 비석을 지나친 거임ㅋㅋㅋ
─본인이 안 봐놓고 게임 탓하네ㅋㅋㅋ
“아, 그런 겁니까.”
휙.
혈시의 창대를 가볍게 피한 그는 마지막 일격을 가했다. 또 하나의 혈시가 가루로 화했다.
무언가가 툭 떨어졌다. 은우의 눈썹이 위로 휙 들렸다.
아이템이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하얀빛을 머금은 그것은 둥글게 똬리를 튼 가죽끈이었다.
그는 그것을 집어 들었다. 손잡이를 잡고 들어 올리면 연결된 끈이 주르륵 떨어졌다.
대략 2.5m 정도 돼 보이는 길이에 무게추용 납덩이까지. 제대로 된 살상용 채찍이다.
“채찍?”
─ㅋㅋㅋㅋㅋ개구린 템 드롭ㅊㅋ
─저거 진짜 다루기 힘든데ㅋㅋㅋㅋㅋ
─데미지는 ㄱㅊ은데 다루기가 힘듦ㅋㅋㅋ
─아아, 하늘은 그에게 재능을 주고 운을 빼앗아갔나....
사람들이 탄식했다. 그러나 은우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건 잘 쓰면 제법 재밌는 무기다.
은우는 검과 채찍을 바꿔 들었다.
“왜 채찍을 싫어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생각보다 나쁜 무기는 아닙니다.”
그는 채찍을 들고 가볍게 휘둘러 보았다. 촤악! 강렬한 파열음이 울려 퍼졌다. 생각보다 더 빠르고 간단하다.
은우의 입꼬리가 나른하게 올라갔다. 패링이란 것도 알았겠다, 채찍도 얻었겠다. 이젠 더 잘할 자신 있다.
“혈시들 다 죽었다.”
학살좌가 강림했다며 채팅 창이 뒤집어졌다.
* * *
촤악!
가죽 채찍이 혈시의 목을 휘감은 뒤 그대로 허공에 띄웠다. 목에서 풀려난 가죽끈이 빠른 속도로 그 몸을 때렸다.
뒤에서 무언가가 빠르게 다가왔다. 은우는 몸을 낮춰 그것을 넘겨 버린 뒤, 채찍으로 강타했다.
촤악! 무기가 워낙 안 좋은지라 그 일격으로 죽지는 않았다. 은우는 대신 왼손에 든 검으로 마지막 공격을 가했다.
쿵.
위로 띄워졌던 혈시는 추락 대미지로 인해 그대로 사망.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혈시 역시 채찍으로 빠르게 3연타를 하자 그대로 가루가 되었다.
채팅 창은 그의 능숙한 채찍 사용에 아슬아슬한 수위의 발언들을 내뱉거나 감탄만 토해 내고 있다.
─형 좀 놀아봤구나?
─물리엔진 무엇??
─실전 채찍무술 사용자입니까??
─ㅋㅋㅋㅋㅋㅋ채찍질 좀 해본 켄임?
「‘저게돼???’ 님이 ‘5,000원’ 투척!
채찍으로 띄우는 게 가능했음??」
─ㅋㅋㅋㅋㅋㅋㅋ진짜 켄 현실직업 뭐냐ㅋㅋㅋ
─채찍남 켄ㅋㅋㅋㅋ
“후원 감사합니다. 띄우는 건… 그러게요. 저도 반신반의했는데 정말 될 줄은 몰랐습니다. 현실 직업은 반백수 겸 스트리머입니다.”
지금껏 싸워 본 경험을 토대로 알아낸 바, 캐릭터가 낼 수 있는 힘과 실제로 적용되는 힘이 달랐다. 이쪽은 1의 힘을 냈고 분명 그것이 최대인데, 정작 외부에 적용되는 힘은 3, 4. 어쩌면 그 이상도 되는 것이다.
“잘하면 더 재밌게 쓸 수 있겠네요.”
검은기사의 시스템에 대해 알아볼 게 많다. 은우는 호기심을 불태우며 본성 안에 입성했다.
성벽을 통과하기 위해 조금 헤맸으나, 한 번도 죽지 않은 덕에 소요 시간은 다른 사람들보다 짧다. 물론 시청자들이 알려 준 사실이었다.
그는 본성 입구 근처, 작은 샛방에서 맥의 지팡이를 활성화한 후 계속 진행했다. 한 대도 안 맞았으니 회복할 필요는 없다.
레벨 업 역시 아직까진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설마 1트에 1렙클 가는 건가
─아닠ㅋㅋ 노렙업 그거 PC버전에서만 나오고 VR버전에선 성공사례 없잖앜
─설마사카ㅋㅋㅋㅋ
─근데 레벨업 계속 안 하면 무기 못 바꿀 텐데
그는 기사의 목을 채찍으로 휘감은 채 일방적으로 공격하며 가설을 세웠다. 적 몹을 띄울 힘이면 그의 몸도 띄울 수 있지 않을까?
사람들이 까다롭다고 꼽던 기사혈시는 곧 가루가 되었다.
은우는 잠시 고민하다가 채찍으로 성안에 달린 횃대를 휘감았다. 그리고 당겨 보았다. 횃대는 꿈쩍도 안 했다.
“이거 배경, 부술 수 있습니까?”
─가능한 것도 있고 불가능한 것도 있음
─아임휴먼하다가 검은기사하면 찐겜하는 기분 나지 않음?
─근데 난이도는 아니지ㅅㅂ
─현실도는 아임휴먼이 더 높은데 난이도는 검은기사가 더 높은 매직
─몸들 인식 반경이 넓어서 그렇습니다wwww한 번 걸리면 지옥까지 쫓아올 것 같아 무섭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맞어ㅋㅋ진짜 너무 끈질김ㅋㅋㅋ
부술 수 없다라. 은우는 그들을 믿고 횃대를 세게 당겼다. 그의 몸이 역으로 날아가도록.
은우의 몸이 공중으로 띄워지더니 횃대가 걸린 벽을 발로 박찼다.
“이러면 너무 게임이 쉬운데.”
사물이 부서질 걱정도 없다. 실제 적용되는 힘은 그가 쓰는 힘보다 더 크다.
탐지 센서란 편리한 기능이 사라졌지만, 그게 없다고 우는 소리 할 수준이었다면 진즉에 나가 죽었을 것이다.
은우의 미간이 좁아졌다. 이럴 거면 차라리 아임휴먼이 더 어려울 성싶다. 그건 현실성으로 인한 제약이라도 있었으니까.
비록 검은기사는 급소 일격이 존재하지 않아서 짤짤이로 피를 깎아야 하지만, 그건 그저 얼마나 걸리냐의 차이를 일으킬 뿐이었다.
“차라리 아임휴먼이 더 어려울 것 같네요.”
─??
─?
─킹신감 무엇?
─제가 지금 이상한 이야길 들은 것 같은데요?
「‘지나가는혈시’ 님이 ‘1,000원’ 투척!
??: 우리가 안드로이드만도 못하다고?! 얘들아 연장 챙겨라!」
“거긴 총을 쓰잖습니까. 총알은 좀 피하기 힘들어서.”
─‘그’ 말 후회하게 될 것이다
─보스 만나고서도 저런 말 가능하실까
─ㅋㅋㅋㅋ검기는 보스가 찐이지ㅋㅋ
─한 번 다굴 당해보셔야 하는디ㅋㅋㅋㅋ아, 빤스런을 안 하시네ㅋㅋㅋㅋ
─근데 지금까지 노히트라서 뭔가 켄한정 저 말 찐일 것 같음ㅋㅋㅋㅋ
은우는 어깨를 으쓱였다. 일단 더 해 보긴 하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검은기사가 더 쉬울 것 같다.
그는 사람들의 어이가 탈출하든 말든, 계속해서 나아갔다.
불이 켜져 있음에도 어쩐지 어둑어둑한 성안은 꼭 세기말의 순간을 목도하는 것 같다. 실제로 저 혈시들에 의해 인류가 멸망을 맞이하고 있으니 완전하게 틀린 말은 아니리라.
은우는 계단에 진입했다. 상층에서 석궁을 쏘아 댔지만, 그는 검으로 화살을 쳐 냈다.
아래에 있던 괴물들이 그를 덮쳐 왔다. 숫자는 다섯. 그는 숨을 잠시 참고 채찍을 횡으로 휘둘렀다. 가장 오른쪽에 있던 혈시가 옆으로 넘어지며 동료들의 균형을 무너트렸다. 셋이 옆으로 넘어졌다.
그사이 손목에 스냅을 주어 날아온 화살을 채찍으로 쳐 낸 은우는 검을 휘둘렀다. 병사혈시 두 마리의 검이 동시에 튕겨 나갔다. 그들의 몸이 찰나 동안 굳었다.
그의 손이 검과 채찍을 동시에 사용했다. 막 일어나려던 혈시 세 마리가 채찍에 다시 얻어맞고, 가까이 있던 두 마리는 검에 베였다.
크리티컬. 둘 다 가루가 되었다.
그는 앞으로 나가기 전, 몸을 잠시 뒤로 뺐다. 화살이 방금 전만 해도 그의 상체가 있던 자리를 지나갔다.
「‘제가생각해보니까요’ 님이 ‘10,000원’ 투척!
원래 아임휴먼은 전투가 어려워서 최대한 전투 피해서 암살하고 정보수집하는 겜인데, 켄님은 그걸 다 전면전으로 깨서 그런 게 아닐까요? 검기사는 닥전투겜이라서 보통사람들이 느끼기에 더 어려운듯」
─저거 일리 있다ㅋㅋㅋㅋㅋ
─한줄 요약해라ㅡㅡ 챗창 전세냇냐
─뭔뜻임 저게
─뭔솔?
─그럴싸한데....?
─이해력 딸리는 애들 넘 많네ㅉㅉ
─잡몹 난이도는 아임 휴먼이랑 검기랑 비슷하긴 하지....
은우는 경직이 풀려 다시 덤비려는 혈시의 목을 쳤다. 나머지 세 마리는 그에게 다가오기도 전에 채찍질로만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그러니까, 둘 다 전투 난이도는 비슷하다. 아임휴먼은 전투를 피할 방도가 있어서 전투가 어려워도 게임 깨는 데 문제가 없고, 검은기사는 주야장천 전투로만 게임을 깨야 해서 상대적으로 어렵게 느껴진다. 이거네요.”
은우는 화살을 피해 계단을 달려 올라갔다. 타다닥 하는 발소리가 작게 울려 퍼졌다.
“문제는 제가 아임휴먼 대부분을 싸움으로 진행해서 검은기사가 쉽게 느껴지는 거고?”
─완벽한 설명 ㄳ
─요약 성공
「‘요약감사합니다’ 님이 ‘1,000원’ 투척!
크, 형 눈높이 강사해도 될 듯」
─그래서 결국, 학살좌가 학살했다-이거네.
─ㅅㅂㅋㅋㅋㅋㅋㅋ
“학살좌 아닙니다.”
은우의 채찍이 석궁을 쏘던 혈시의 목을 휘감고 그대로 당겼다. 칼날이 끌려온 혈시의 몸에 박혔다.
그는 그 상태에서 발로 혈시를 밀어냈다. 검이 뽑히고 혈시가 넘어졌다. 콰직! 칼이 내려꽂혔다.
─??: 학살좌 아닙니다 (검꽂)
─ㅋㅋㅋ말과 행동이 불일치합니다만
─신뢰성 제로
“아니라니까요.”
그는 씨알도 안 먹힐 의견을 주장하며 성 2층 탐색을 시작했다. 1층보다 더 질 좋은 갑옷을 입고 있는 기사들이 경계를 서고 있다.
또한 그런 기사들을 넘어 들어선 넓은 통로에는 유독 화려한 갑옷의 기사가 기다리고 있었으니.
─첫 번째 보스 떴다.
─유하~
─1트 안에 가나요?
─아모른직다
─나 여기서 접었는데ㅋㅋㅋㅋ
─근데 불안해서 미션은 못 걸겠음ㅋㅋㅋ
─ㅇㅈㅋㅋㅋㅋㅋㅋ
─나중에 잡몹되는 놈 아니냐ㅋ
─유리기사 ㅎㅇ~
끼이이익, 쿵!
거대한 문이 닫혔다. 이제 홀에는 그들밖에 없다.
쿵.
유리로 만들어진 것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갑옷의 기사가 방패를 찍었다. 투명해 보일 정도로 흰 금속은 빛을 난반사하여 꼭 보석을 보는 기분이었다.
“저게 보스입니까?”
드디어 싸울 맛 좀 나겠네. 은우는 뒷목을 쓸며 검을 고쳐 쥐었다. 뜬금없지만 더없이 어울리는 BGM이 귀에 울렸다.
《유리기사》. 그 단어와 빨간 체력 바가 홀 위에 벽화처럼 새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