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좋아하지도 않는 술로 입맛을 버린 다음 날, 서은우는 여전히 입안에 남아 있는 듯한 알코올 향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다신 술 안 먹는다 다짐하며 가글로 입을 헹궜다. 그제야 하루를 시작할 정신이 들었다.
그러니까, 어제 내가 방송을 했었지. 잘한 건지 못한 건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기철에게 신세 진 것을 갚을 수 있으면 됐다. 후원 들어온 금액을 보니 그 정돈 가능해 보였고.
은우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러고 보니 이제부터 커뮤니티도 확인해야 된다 했던가. 사람들의 반응을 피드백 삼아야 한다고.
은우는 기철이 알려 준 사이트에 접속했다. 큰 반향은 없겠지만, 이야기가 아예 없지도 않으리라. 그런 믿음을 품은 채였다.
그러나 그런 그의 믿음은 예상치 못한 쪽으로 산산조각 났으니.
“어…….”
은우는 방송 언제 하냐고 아우성치는 사람들을 보며 당혹감을 느꼈다. 그가 생각한 것보다 너무 많았다. 너무.
▣ 007. 확인 사살의 중요성
“비하, 유하. 안녕하세요, 여러분. 켄입니다.”
─켄하~
─ㅎㅇㅎㅇ
─켄하!
─안녕!
─드뎌 방송이다퓨퓨ㅠ
─형, 기다렸어ㅠㅠ
─목소리 넘 좋아
“아, 많이 기다리셨습니까.”
은우는 머쓱해져서 뒷목을 가장한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희수가 이런 건 원래 묵어야 제맛이라며 저녁에 켜랬는데, 과연 틀린 말은 아닌 모양이다.
그래도 미리 시간을 예고해 둔 덕분에 시청자 수는 쭉쭉 늘기 시작했다.
오히려 어제보다 빠르게 늘었는데, 은우는 그 점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소위 하꼬라 불리는 무명 시절을 겪지 못한 대가였다.
“확정은 아니지만, 앞으로도 이 시간대에 틀 것 같습니다. 앞으로 참고해 주세요. 변경되면 공지로 따로 띄우겠습니다.”
그는 조곤조곤 이야기하며 게임 목록을 불러들였다. 대기실은 여전히 하얗기만 했다.
─대기실 너무 휑하다;;
─저게 전설의 포멧 흔적인가요ㅋㅋㅋ
─어제 초기화해버리는 것 너무 멋있었습니다.
─오겜무?
─완전 대기업이자너~
「‘모멘토리아’ 님이 ‘1,000원’ 투척!
지금 어둠도전에 이어서 아임휴먼 히든루트 뚫으려고 스트리머들 발악하는 거 암?」
“오늘은 어제 했던 아임휴먼을 이어서 할 예정입니다. 모멘토리아 님, 천 원 감사합니다. 다른 스트리머분들은 방송을 못 챙겨 봐서 잘 모르겠네요. 성공하셨습니까?”
─그러면 우리가 님 방송을 보고 있겠음?
─ㅋㅋㅋㅋ기만하는 건가?
─지금 가장 빠른 기록이 한 시간임ㅋㅋㅋ복귀하다가 문자와서 이동하는 바람에 실패하고 있음ㅋㅋㅋ
─어림도 없지!
「‘오빠목소리최고예요’ 님이 ‘5,000원’ 투척!
목소리 변조 안 하셨다던데ㅠ 너무 좋아요ㅠ」
“오빠목소리최고예요 님, 5천 원이랑 칭찬 감사합니다.”
이 쉬운 걸 해낸 사람이 아직도 없다고? 은우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임휴먼을 실행했다. 대기실은 나중에 짬 내서 바꿀 생각이다.
빠르게 주위 배경이 어제 종료했던 부분으로 뒤바뀌었다. 혁명군 간부, 클레어가 그의 앞에 서 있다.
─썅하~(클썅년 하이란 뜻^^7)
─? 기분탓인가? 클레어가 왜이리 작지?
─켄이 ㅈㄴ 커서 그럼ㅋㅋㅋ
─클레어 웬만한 남자보다 큰 걸로 아는데;;
─키 키웠냐?
─동기화율 때문에 키랑 체형은 변경이 불가능합니다. 켄이 큰 것입니다wwww
─지금 1인칭으로 보고 있는데 거인 된 기분임ㅋㅋㅋ
─키 몇이냨ㅋㅋㅋ
오늘 새로 유입된 이들이 시작부터 당황했다. 어지간한 플레이어들에게 키 굴욕을 선사한 클레어가 켄의 눈높이보다 아래인 탓이다.
채팅의 말대로 키나 몸무게 같은 체형은 변경이 불가능하다. 결국 사람들은 실력도, 키도 다 가진 남자, 켄이라고 떠들어 댔다.
“보다시피 기지 이전을 준비 중이에요. 켄도 이동할 준비를 하세요. 30분 내에 출발할 거예요.”
그사이 클레어가 말을 마치고 사라졌다. 어제 바로 종료하는 바람에 듣지 못한 대사였다.
은우는 떠나는 그녀를 보다가 일단 걸음부터 옮겼다.
“아무래도 여기에 있을 수 있는 시간은 30분뿐인 것 같습니다.”
커뮤니티의 반응을 의식하여 속으로만 생각하고 넘기려던 것을 의식적으로 언급했다. 채팅창에 바로 반응이 일었다.
─그런 듯
─시청자 수 봐라ㅋㅋㅋ
─30분 내에 단서 찾을 수 있나?
─외국 애들 개많은데
─히든루트를 발견할 수 있을 줄 몰랐습니다
─기술이 발전해도 번역은 왜 이따구냐
은우는 너덜너덜한 몸을 힐끗 보았다. 임시 처방만 했을 뿐이나, 움직이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
이럴 땐 몸보단 정보지. 은우는 약간의 불편을 감수하면 때때로 목숨을 건진다는 걸 기억하며 수리를 포기했다.
목적지로 정해진 곳은 없으나, 마침 수색하고 싶었던 지점도 있었다.
이전하느라 방비가 약해졌다면 들어갈 수 있겠지. 여러 가지를 고려한 그는 걸음을 멈추고 코너에 몸을 딱 붙이다 못해 천장에 붙었다. 곧 코너에서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탐지 센서는 켜지도 않은 채다.
“후… 중요 정보를 먼저 옮겼어야 했는데.”
“아니지. 마지막에 옮겨야 안 들키지.”
NPC들의 대화에 은우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아무리 봐도 정답이다.
탁.
천장에서 떨어져 나온 은우는 방금 떠들던 이들이 나온 곳으로 들어갔다. 기밀이 있다며 클레어가 절대 들여보내 주지 않던 장소였다.
─진짜 히든루트가나?
─개같은 혁명군 탈출 루트각?
─제발, 제발!!
사람들이 기도했고, 은우는 조심스레 방으로 들어섰다. 이전을 위해선지 보안 장치는 전부 해제되어 있다.
거기서 은우는 좀 더 안쪽으로 움직였다. 그러자 미처 밀봉하지 않은 서류들이 보였다.
컷신이 시작되었다.
“이건……? 이 자료들은 대체 뭐지?”
은우의 목소리로 소리를 낸 캐릭터는 다급히 자료들을 살폈다. 끝내 발견한 것은 혁명군의 악행과 진정한 계획을 적어 둔 서류였다.
은우의 시야에만 보이는 채팅 창에서 온갖 국적의 사람들이 환호를 내질렀다. 시청자 수는 벌써 4만을 돌파했다.
이렇게 반응이 거셀 정도로 혁명군 루트가 엉망인가. 은우는 본래 루트가 조금 궁금해졌다. 나중에 다른 사람 방송이라도 찾아봐야겠다.
“믿을 수 없어……. 지배라니? 분명 내게 혁명을 위한다고 말했는데?”
멋대로 움직이는 몸은 주먹을 굳게 쥐었다가 금세 풀었다. 그리곤 멋대로 책상을 짚고 몸을 기대듯 앞으로 기울였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나는 대체…….”
책상을 세게 쥔 캐릭터가 이내 서류를 정리해 품에 넣었다. 그러곤 그 서류가 있던 상자를 다른 상자들처럼 밀봉했다. 약간의 눈속임이었다.
“일단 파트너에게 알려야겠어.”
마지막으로 내뱉은 말이 진행 단서였다. 지배권이 도로 돌아왔다. 은우는 주먹을 꾹꾹 쥐었다 폈다.
“컷신 때마다 기분이 이상하네요.”
심지어 클레어는 배신자라니. 사람들 평도, 직감도 별로여서 영 별로인 NPC였지만, 진짜란 게 밝혀지니 호감도가 바닥으로 치닫는다.
─그거 ㅇㅈ
─멋대로 몸이 움직이는 거 좀 그렇지ㅋㅋ
─진짜 히든루트였누
─와, 정말 혁명군을 탈출한다고??
“파트너에게로 가 보겠습니다.”
그는 들어왔을 때처럼 은밀하게 움직여 방을 빠져나갔다. 창문을 열고 담벼락을 통해 표홀히 빠져가는 모습에 사람들이 낄낄 웃었다.
40층에서 한 번 고공 점프를 해 보니 3층은 무섭지도 않음. 대체로 그런 내용이었다.
“여, 기지 이전 이야기 들었어?”
“파트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파트너를 만나자마자 다시 컷신이 시작됐다. 은우의 몸이 은근슬쩍 파트너에게 서류 더미를 건넸다. 몸을 가까이 붙인 채 서류를 찔러 주듯 내민 거다.
키 차이로 인해 꼭 겁박하는 것만 같다.
“…이건?”
“차 안에서 읽어.”
“…중요한 문제인가 보네. 알았어.”
“난 짐 챙겨 올게.”
사람들 시선을 피해 서류를 받아 간 파트너는 차 안으로 들어갔다. 보이는 광경이 점멸하며 장면을 바꾸었다.
“짐은 다 챙겼어?”
“어. 네가 말한 것도 가져왔어.”
“좋아…….”
파트너가 운전대에 앉은 채 마른세수를 했다. 은우의 몸은 조수석에 앉은 상태였다. 아무래도 짐을 챙겨 오는 과정을 스킵한 것 같다.
“네 말대로 서류를 다 읽었어.”
“알아. 그렇지 않고서야 네가 네 짐까지 부탁할 리 없지.”
“…이제 어쩌지?”
“모르겠어. 너무 혼란스러워.”
“…일단 기지 이전을 따르는 척 이동하다가 중간에 빠지자.”
“좋아.”
눈앞이 다시 한번 검게 물들고 컷신이 끝났다. 뒤바뀐 환경은 차로 이동하는 상황이었다.
은우는 불편하게 다리를 접었다. 미래의 자동차조차 197cm 키를 배려하진 않았다.
“차로 이동하는 장면에서 시작하네요. 심지어 몸도 다 고쳐진 상태입니다. 습격이라도 있는가 봅니다.”
─아무래도 그럴 듯
─완전 새로운 루트다
─근데 이러면 도망루트랑 비슷하지 않음?
─설마
게임을 많이 해 보지 않았을 뿐, 은우의 눈치는 나쁘지 않았다.
그는 잔뜩 구비된 무기들을 보다가 그중 하나를 집어 들었다. 기관단총이다. 다른 것들도 죄다 총기류였다.
“총이랑은 별로 안 친한데.”
─??
─올 헤드샷 날린 분이요?
─??: 총이랑 안 친한데 (헤드샷)
─기만 에반데
─불-편
사람들이 뭐라 뭐라 떠들었지만, 은우로선 진심이었다. 전생에는 총기류 무기가 존재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석궁 비슷한 것들이 다였다.
표적 겨냥이야 얼마든지 가능해도, 탄속이나 바람에 총알이 휘는 것까진 아직 모른다.
“이 게임에서 다뤄 본 게 다라……. 이럴 줄 알았으면 기지에서 좀 더 연습해 볼 걸 그랬습니다.”
─뻥치지 마세요ㅋㅋㅋ
─유어튜브에 올린 겜들 보면 확실히 총기류 쓰는 겜이 없긴 한데;;
─그러고보니 켄님 지금까지 권총만 쓰지 않았음? 기지 연습때 말고.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사람들이 웃다 말고 섬뜩함을 느끼던 찰나, 파트너가 입을 열었다.
“벌써 6시간째야. 대체 어디로 가야 하는 거지? 우리가 갈 곳이 있긴 한 걸까?”
확실히 낮에서 밤으로 바뀌었다. 시간이 이렇게 많이 지냈다는 건, 혁명군도 슬슬 그들의 배반을 알아차렸을 때가 됐다는 거겠지.
은우는 창문을 열었다. 그의 상체가 구겨지듯 창밖으로 내밀어졌다.
혹시나 싶어 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적이 바로 뒤에 있다. 탐지 센서를 쓰자 총을 들어 올리는 게 보였으므로 분명 적일 것이다.
그는 바로 기관단총을 들어 올렸다. 익숙하지 않아도 총알이 거의 직선으로 나간다는 건 안다.
그는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타타타타탕!
발사된 탄환이 그들을 따라오던 차의 엔진칸을 터트려 버렸다. 뒤늦게 뒤쪽에서도 총을 발포했지만, 파트너의 운전 솜씨는 훌륭했다. 차가 확 옆으로 이동하며 총알들을 피했다.
은우는 차 지붕에 팔을 댄 채 방아쇠를 당겼다. 뒤쫓던 차들의 엔진이 펑펑 터져 나가며 그대로 멈춰 섰다.
“좋았어! 켄, 역시 네 솜씨는 대단해!”
더 온다. 프로그래밍 된 파트너의 말은 흘려들었다. 그는 기관단총을 다시 들어 올렸다.
타타타타탕
탄창 비워지는 소리와 함께 쫓아오던 차들 외벽에 자잘한 폭발이 일었다. 그러나 작고 검은 구름이 사라졌을 때 드러난 외곽은 그저 깨끗했다.
잘 보면 파르스름한 기운이 차체를 둘러싸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탐지 센서로 보면 그냥 흰색이다.
“에너지 막 씌웠네요.”
─혁명군들이 작정한듯 저거 귀할 텐데
─??: 이거 방탄유리야!!
─언제적 유물이야....아 할배냄새
은우는 총을 집어넣었다. 에너지 막은 일반 총으로 상대하기 어렵다. 그가 공격을 포기하자 총알이 역으로 빗발치기 시작했다.
─총이 안 먹히면 어케 깸ㅡㅡ
─총잡이는 맞출 수 잇을 걸요?
─쟤네들 두더지처럼 와리가리하는데?
─난이도 미쳤네ㅋㅋㅋ
─심지어 저것들 방탄복 입고 있습니다. 여러 발 맞춰야합니다.
“이런 젠장!”
시청자들의 심정을 대변하듯 파트너가 욕설을 내뱉었다. 자동 운전을 포기한 채 스스로 신들린 운전 실력을 뽐내는 그는 조금 초조해 보인다.
“어떻게 좀 해 봐!”
간절하게 채근하는 게 한낱 데이터쪼가린 걸 알아도 기분이 묘해진다.
은우는 그걸 가만히 보다가 총을 허리춤에 걸고, 기지에서 따로 구매했던 무기들을 들었다. 채팅 창이 물음표로 뒤덮였다.
“총도 좋지만, 저는 역시 이게 더 편하네요.”
딱히 맞출 자신이 없는 건 아니지만, 총은 손맛이 없다. 오래 걸릴 것 같기도 하고.
그는 그 상태에서 차 문을 연 후 조수석 의자를 뜯었다. 매끄러운 면을 아래로 하고 푹신한 시트를 위로 해서 밖으로 살짝 갖다 대면 준비 완료다.
─설마?
─아니 진짜 이분ㅋㅋㅋ
─총이 재미없다고 보통 그걸 집진 않을 텐데....?
“출발하겠습니다.”
옛날 생각나네. 돌진하는 괴수 무리를 향해 이 짓거리를 한 적도 있었는데.
살짝 웃은 그는 의자 시트에 발을 올렸다. 그리고 그대로 뛰어내렸다.
콱! 콰지지지직 소리가 나며 의자가 대지 위를 미끄러졌다. 그 위에는 보드를 타듯 균형을 잡고 있는 은우가 있다.
피슉.
머리 근처로 총알이 스쳐 지나갔지만, 어차피 헬멧을 쓰고 있다. 다른 총알들도 다들 스치듯 지나서 문제 될 것 없다.
마찰로 인해 대지에 불똥이 아로새겨지고, 삽시간에 뒤 차량과 가까워졌다.
은우는 그 상태에서 왼손에 들고 있던 무기를 던졌다. 작은 단검들이 차례대로 날아갔다.
퍼억!
몸을 창밖으로 내밀어 총쏘던 이들 목덜미에 단검이 하나씩 박혔다. 그 순간 은우는 오른손의 무기를 들었다.
도검이 달빛을 받아 시퍼런 광을 흘렸다.
그는 의자가 뒤집어지기 전에 허공으로 뛰어오른 후, 뒤 차량 지붕을 밟았다. 목표는 대열에서 가장 늦게 달리는 차량이다.
미끄러질 뻔한 것은 칼을 철판에 박아 넣음으로써 막아 냈다. 그의 몸이 차량 뒤편 유리창을 밟고 칼을 잡아 차에 매달렸다.
“나름 도박이었는데, 에너지 막도 칼은 못 막네요.”
─칼까지 막으면 개사기지 그건....
─물리력이 다르니까 박히는 건 납득할 수 있는데...ㅋㅋㅋㅋ 그걸 실행하는 거 자체가ㅋㅋㅋㅋㅋ
─총에 자신 없어서 칼로 학살하려는 켄모 씨.
그는 칼을 지지대 삼아 지붕에 오른 후, 몸을 낮췄다. 앞쪽 차량이 다급히 속도를 늦추며 양옆을 감쌌지만 그가 더 빠르다.
은우는 꽂힌 칼을 뽑고 그대로 검을 휘둘렀다. 우습게도 에너지 막은 외부 공격뿐 아니라 내부에서 발사된 총알마저 통과시키지 않았다. 덕분에 그는 일방적인 공격이 가능했다.
지붕이 직사각형으로 잘리고 그 위에 쓰러지듯 눕자 지붕이 그대로 내려앉았다.
중간에 있는 의자로 인해 시소처럼 경사가 져 버렸지만 상관없다.
그는 지붕에 짓눌려 팔을 움직일 수 없는 뒷좌석의 안드로이드들을 보았다.
검이 한차례 움직이자 세 개의 목이 아래로 떨어졌다. 놀랍도록 잔혹하고 아름다운 검로에 사람들이 감탄을 토해 냈다.
이제 앞 좌석 둘. 은우는 시야를 가리고 있는 지붕을 베고, 지붕이 끼익 소리를 내며 앞으로 넘어가는 것에 맞춰 검을 다시 휘둘렀다. 앞의 두 마리도 목이 잘려 죽었다.
“너무 쉬워서 재미없는데.”
─?? 네?
─총질 하는 게임에서 칼질하면서 하는 소리 무엇?
─ㅋㅋ....ㅋㅋㅋㅋ
“자동 운전이 좋긴 좋네요.”
덕분에 안에 있는 애들을 모조리 죽였음에도 차는 흔들림 없이 나아가고 있다.
은우는 앞 좌석으로 넘어가 자세를 잡고, 시스템을 조작할 준비를 했다. 탐지 센서를 쓰면 건너편 차량이 훤히 보인다.
그러다 문득 떠올린 건 오늘 낮에 본 커뮤니티의 한 게시글이라.
‘켄 방송 보다가 전투에 들어가면 숨넘어갈 뻔한 게 한두 번이 아님. 예고도 없이 개오지는 장면이 튀어나오니까 죽을 것 같음.’
그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곤 속삭였다.
“숨 참으세요.”
좌측 문이 열렸다.
은우는 문이 열리자마자 쏜살같이 튀어 나갔다. 총알이 반 박자 늦게 쏟아졌지만, 그 전에 그는 차량을 박차며 검을 휘둘렀다.
우측 차량의 문이 총을 쏘던 안드로이드와 함께 쪼개졌다. 잘 보면 바닥에 아까 단검에 맞아 죽은 놈의 시체가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 위로 착지한 은우는 다시 한번 검을 휘둘렀다. 앞 좌석의 안드로이드가 의자와 함께 반으로 잘려 나갔다.
탕탕!
뒷좌석의 안드로이드들이 총을 쐈지만, 은우는 몸을 바짝 낮춰서 피했다. 의자가 약간의 방패가 되어 주며 찰나의 시간을 벌어 주었다.
검이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넘어갔다.
은우는 안드로이드들이 몸을 앞으로 내밀기 전에 차량 바깥을 향해서 뒷걸음질 쳤다.
그의 손이 뒷좌석의 열린 창가의 모서리를 잡았다. 그런 후에는 왼발만 남기고 몸을 바깥으로 완전히 빼냈다.
왼발이 아슬아슬하게 차량 내부를 밟고, 오른팔로는 창가를 잡아 몸뚱이를 차량 외벽에 붙인 것이다.
그 상태에서 왼손이 잡고 있던 검을 역수로 고쳐 쥐었다. 그러곤 센서에 의거하여 왼팔을 차량 안쪽으로 깊숙이 넣고 휘두르듯 박았다.
총알 몇 개가 왼팔을 맞췄지만, 은우는 버텨 냈다. 몸을 차 외벽에 바짝 붙이고 왼팔을 움직이면 막 앞좌석으로 넘어오려던 안드로이드의 목을 꿰뚫을 수 있다.
은우는 칼을 뽑아낸 후 왼팔을 바깥으로 꺼내어 차 지붕을 잡았다. 그의 몸이 훌쩍 지붕으로 올라갔다.
이다음엔 반대쪽에서 등을 치는 거지. 그는 반대쪽 뒷좌석 창가 지붕으로 굴러간 다음, 지붕 모서리를 잡고 몸을 내렸다. 좁은 창가 사이로 그의 몸이 쑥 들어갔다.
서걱!
지붕에 올라간 은우를 따라잡기 위해 그쪽 창가에 있던 안드로이드가 무참히 베였다. 우측 차량도 이렇게 전멸이다.
“이제 숨 쉬어도 됩니다.”
─후아아아ㅏㅏㅏ
─아니 왜 갑자기 멈추라 하나 했더니ㅠㅠㅠ
─아니었으면 숨 넘어갈뻔ㅋㅋ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D!! 섹시한 남자!
─지릴 것 같아요 형
─구독 박아야한다 이건;;
─이 모든게 순식간에 벌어졌다는 점이 날 미치게 해
─1인칭으로 봤는데...진짜 너무 오져.....
─아, 안 되겠다 일인칭으로 보러 갑니다
「‘Hibikase’ 님이 ‘11,387원’ 투척!
한국인은 원래 다 이런 것입니까?」
「‘아임낫휴먼’ 님이 ‘50,000원’ 투척!
아; 아임휴먼 마렵다;;」
「‘강남건물주’ 님이 ‘300,000원’ 투척!
오늘 눈호강 하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아, 혹시 미션도 받으시나요?」
「‘MENAK’ 님이…….」
아직 모든 게 끝나지도 않았건만, 후원 세례가 쏟아졌다.
“후원 감사합니다. 한국인이 다 이러진 않지 않을까요. 미션은… 종류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단 받겠습니다.”
결국 후원 목록을 일일이 부르길 포기한 그는 하나 남은 차량을 정리하기 위해 움직였다. 그쪽은 두 마리가 단검에 맞아 죽었으므로 제일 쉬울 거다.
제대로 안 잘렸는지 은근슬쩍 움직이려는 안드로이드의 머리가 동강 잘렸다. 보지도 않은 채 휘두른 검에 의한 절단이었다.
은우는 거기서 1초 정도 고민하다가 말을 툭 내뱉었다.
“확인 사살의 중요성이네요.”
─아니 여기서 복선회수를ㅋㅋㅋ
─ㅋㅋㅋ이거 맏따
─초반 정찰병들이 켄을 제대로 죽였다면ㅠ
─이거 본방으로 못본 애들 인생손해본 각
그는 다시 가운데 차량으로 점프했다. 강맹한 바람 사이에서 귀를 기울이면 좌측에 있던 차량이 앞으로 치고 나갔다는 걸 알 수 있다.
놔줄 순 없지.
그는 안드로이들의 시신을 뒷좌석으로 밀어내고 창문에 처박으며 액셀을 밟았다.
문득 그가 발견한 것은 적들이 챙겨온 수류탄 무더기다.
그는 액셀을 세게 짓누르며 옆으로 이동했다. 쿵! 차와 차가 부딪쳤다.
그때, 은우는 잘린 부분을 잡고 몸을 지붕 위로 올렸다. 그의 손이 차와 차 사이로 수류탄을 던져 넣었다. 에너지 막으로 인해 내부로 흘러가진 않았으나, 대신 차 사이에 끼었다.
그는 그 상태에서 바로 달렸다. 그의 몸이 부웅 떠올랐다가 그대로 우측 차량으로 넘어갔다.
콰아아앙!
수류탄이 폭발을 일으켰다. 이 정도 화력까진 에너지 막도 못 막는지, 차가 뒤집어지고 불타올랐다.
이 와중에 가운데 있는 차량이 방패막이가 돼 주어 은우에게까지는 폭발이 닿지 않았다.
『도전 과제를 달성함! -따돌리다』
업적 창이 떠올랐다. 음. 은우의 얼굴이 조금 모호해졌다.
“업적 이름이 ‘따돌리다’라는 건… 설마 따돌리는 임무였나?”
─따돌리는 임무를 몰살로 바꿔버린 켄, 당신은 대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마! 이게 바로 한국인이다!
─개웃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당신의 피지컬에 찬사를 보냅니다.
─안드로이드 다 썰어버린 주제에 따돌리는 임무였냐고 당황하는 거 왜이리 커엽누ㅋㅋㅋ
─방송 전부가 클립각인 거 실화냐ㅋㅋㅋ
그는 머리를 벅벅 긁다가 일단 액셀부터 밟았다. 앞서 나가는 파트너의 차량으로 갈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