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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자도 방송할 수 있습니다-5화 (5/233)

5화

“됐어, 이거면 됐어!”

박기철은 은우의 방송을 지켜보며 파이팅 자세를 취했다.

다이아박스의 투자 외에도, 사비로 영상 편집자와 채팅 창 매니저까지 주선해 준 보람이 있다. 이 기세라면 값을 못 받아 내는 일은 절대 없을 터.

역시 은우는 되는 코인이었다. 퍼 주다시피 하며 잡길 잘했다.

심지어 지켜본 결과 은우는 말솜씨도 나쁘지 않았다.

보스를 잡는 와중에도 태연하게 대답하는 모습이라니. 차후 방송에 익숙해지면 더 대단해질 거다.

비위치 시스템 중 하나인 유료 구독 숫자가 증가하고 있다는 게 그것을 증명한다.

“요즘 발굴되는 스타가 없어서 전체적으로 정체기 상태였는데, 이거라면 실적은 따 놓은 당상이군.”

그는 오늘부로 은우, 방송 예명 ‘켄’이 게임 스트리머계의 떠오르는 신성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한발 더 나아간다면 게이머 중에서 최고로 쳐질 수도 있다. 아니, 분명 그럴 거다.

기본 난이도조차 PC보다 어렵다고 평 받는 VR 특성상 VR 게이머들은 보통만 해내도 천상계 취급받으니. 그런 VR 게이머 중에서 최고가 될 은우가 게임계를 평정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또한 그런 은우가 날뛰면 날뛸수록 다이아박스는 인재를 미리 알아본 채널로 이름 날릴 테지. 좋은 계약조건은 은우를 다이아박스에 잡아 둘 것이고.

마지막으로 그의 실적은 우뚝 솟을 것이다.

박기철은 히죽히죽 웃었다.

은우 하나면 업계 1위라는 타이틀을 뺏으려 드는 2, 3위 채널들을 따돌릴 수 있다. MCN 사업이 연예 기획사와 비슷해진 이상 채널의 위상은 소속 스트리머들에 의해 결정되니까.

그리고 그 끝에서, 그는 목적하던 것을 이룰 수 있으리라.

기철은 부계정으로 후원을 쏘며 켈켈켈 미소 지었다. 인텔리한 인상이 망가지는 웃음이었다.

▣ 005. 헬멧이 마음에 드네요

“생각보다 이르게 끝났네요.”

은우는 ‘어둠’의 사체를 보며 담담히 말했다. 처음 잡았을 때만 하더라도 박기철이 유일한 시청자였는데, 이젠 수천 명의 사람이 함께하고 있다.

후원은 너무 많이 터져 10분 넘게 밀린 상태다. 일일이 감사 인사 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이렇게 될 줄 모르고 인사를 시작해 버린 과거의 자신이 원망스럽다.

─이게 진짜 되는구나....

─오이오이!! 믿었다구 형씨!!!

─한국인이 또 한국인 했습니다

─막판에 다구리쳐도 잡기 힘든 보스를...ㅋ

─약화 안함, 강화 안함, 노히트, 1트. 그런데 어둠을 잡은 스트리머가 있다? 뿌슝빠슝뿌슝

「‘니아니아’ 님이 1개월 구독했습니다!

지켜보겠습니다ㅎㅎㅎ」

─엄밀히 따지면 1트는 아니지. 이미 해봤잖.

─근데 영상에서도 한 번에 잡았잖ㅋㅋㅋㅋ

「‘eenymeny’ 님이 ‘10,000원’ 투척!

와 진짜 대박....」

─그 전에 연습해봤을 수도

─그게 뭐가 중요함ㅋㅋㅋㅋ성공한 것 자체가 신기할 지경인데ㅋㅋㅋ

30분 일찍 끝났지만, 끄는 게 나을까 아니면 그땐 못 했던 추가 진행을 해 볼까. 감사 인사 하는 동안 멀뚱히 있긴 뭐한데.

“…구독 감사합니다. eenymeny 님, 만 원 후원 감사합니다. ISTIII 님, 7만 2,349원 감사합니다. 이걸해내내 님, 5만 원 후원 감사합니다. 깰각이죠 님…….”

게임 속이니 만큼 말을 많이 한다고 해서 갈증이 일진 않지만, 목소리가 절로 낮아졌다. 안 그래도 낮은 편이건만, 그 상태에서 더 낮아지자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변조 프로그램이 쉽사리 내지 못하는 저음. 그런데도 듣기는 좋다. 소위 말하는 ‘꿀성대’에 사람들이 감탄하며 후원을 추가로 쐈다.

“…이러다간 끝이 안 나겠네요. 전 괜찮습니다만, 여러분께서 지루하신 건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목소리만으로 꿀잼인데ㅋㅋ

─겜 진행ㄱ?

─근데 여기서 더 진행해도 되나?

─정보) 지금 개발자 SNS에 공지 올라옴. 무슨 버그가 일어날지 모른다고 진행은 말아달라 함.

─어둠 사냥 도전하는 건 풀어두지만 그 뒤 진행은 막을 예정이라는데ㅇㅇ

─업뎃 전에 또 잡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고 울고 있음ㅋㅋㅋㅋ

─적당히 후원 스킵해도 되지 않음?

─업뎃 전에 또 잡아버렸누ㅋㅋ

채팅 창에 말이 우후죽순 올라왔다. 대부분 이 이상 진행은 안 된다는 정보들이다.

그럼 이대로 게임 종료 하고 대기실에서 후원에 대해 인사할까 아니면 다른 사람들 말처럼 스킵을 할까. 은우가 감을 잡지 못하고 헤맬 즈음, 채팅창이 다른 의견으로 바뀌었다.

─다른 겜ㄱ?

─새 겜 해주셈

─딴 겜 딱 대

다른 게임? 은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상관은 없지만, 괜찮을는지. 이렇게 방송해도 되나? 이런 형식의 방송을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그럴까요.”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는 건 사람들이 그를 바라는 게 보여서다. 너무 잘 싸운다는 이유로 배척당했던 현실과 다르게, 그의 무력이 환영받았던 전생처럼.

딱히 공략 마치고 끄란 얘기도 없었고 여기서 끄기엔 자신도 아쉽다. 건강 상하지만 않게 하라 했으니, 한두 시간 정도는 더 해도 되리라.

은우는 그런 말들로 자기 합리화를 했다. 자기 자신도 변명임을 아는 합리화다.

“다른 게임으로 넘어가겠습니다.”

하지만 뭐 어때? 그는 후원 목록을 이어 나가며 별의 기사를 종료했다. 채팅 창은 이제 자신들이 바라는 게임 이름으로 점령되었다.

그사이 후원이 더 밀렸다. 대기실로 돌아오자마자 다시 생긴 헬멧을 쓰다듬으며 그는 게임을 골랐다.

채팅 창 의견을 반영하자니 너무 제각각인 데다가, 구매 창을 열어 내용을 살펴봤을 때 플레이 타임이 너무 길어 보였다.

그때, 후원 중 하나가 ‘어둠’을 잡은 것에 대한 감탄을 벗어나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강남건물주’ 님이 ‘300,000원’ 투척!

어둠 잡고 나서 게임 끄실 건가요? 혹시 다른 게임 하시나요? 하실 거라면 아임휴먼은 어떠신가요?」

미래를 본 후원이었다. 어둠을 잡기 직전에 보냈을 확률이 농후하긴 하지만.

그러나 30만 원이라는 큰돈과 처음 제시했다는 점이 엮인 게 제법 매력적인 선택지였다. 몇 개나 뒤적여 보았지만, 이거다 싶은 게임이 하나도 없다는 것 역시 주효했다.

“강남건물주 님, 30만 원 감사합니다. 새 게임은 ‘아임휴먼’으로 하겠습니다.”

─미래를 선점한 좌ㅋㅋㅋㅋ

─게임을 정하고 싶으면 미리 후원하란 말이야

─아임휴먼은 유어튜브에 없지 않음?

─아임휴먼도 유어튜브에 있나요?

─나도 후원했습니다. 늦어서 놓쳐버렸습니다.

─없음

─이번이 처음인 듯?

─에이 해봣겠지

사람들이 설왕설래하는 동안 은우는 상점에서 아임휴먼을 검색했다. 구매조차 안 한 게임인지라 먼저 사야만 플레이가 가능했다.

처음 아니겠냐고 주장하던 사람들에게로 승리가 돌아갔다. 물론 후원에 대한 감사 인사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입으론 고마움을 표하고 손으론 구매 절차를 밟던 은우는 구매가 끝나자마자 게임 설명을 보았다.

“…님, 5천 원 감사합니다. 아임휴먼은 안드로이드 주인공이 자신을 죽이려 한 정부에 맞서 싸우는 게임이네요.”

─이것도 어렵기로 유명하지ㅋㅋㅋ

─아임휴먼은 명작이지만 어렵습니다

─급소 맞추면 적들이 금방 죽는데 문제는 플레이어도 금방 죽음ㅋ

─전투가 너무 현실적이지....

─그래도 자동전투 해두면 좀 해볼만 하지 않나?

─자동전투 키면 뭔 재미임

─그건 ㅇㅈ

“자동 전투란 것도 있었습니까.”

채팅 창이 ‘ㅋㅋㅋ’로 도배되었다. 은우는 몰랐지만, 그가 플레이 영상을 올렸던 게임 중 세 개가 자동 전투 지원이 되는 게임이었다. 별의 기사까지, 총 영상이 6개만 올라왔다는 걸 생각하면 무려 절반이었다.

은우는 뒷목을 쓸었다.

“게임 실행하겠습니다. 진행하면서 계속 후원 감사 이어 갈게요.”

─님, 방제

─방제 바꾸셔야죠

─여기서 신입티가;;

“아.”

방제를 바꾸고 시작을 눌렀다. 하얀 대기실이 부서져 내리기 시작했다.

곧 시야를 물들이는 건 방금 전 대기실과 비슷한, 그러나 다른 방이었다. 하얀 커튼이 햇살을 가르고 바람이 희미하게 불었다.

그 방의 유일한 가구는 커다란 전신 거울이었으니. 거울 안에 비치는 건 은우 자신이었다. 헬멧을 벗고 가벼운 셔츠 차림을 한 자신.

“DeadCoral 님, 24,630원 감사합$#^#@!”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갑작스런 얼공에 화들짝ㅋㅋㅋ

─별기사에서 이미 깠는데 뭘 새삼ㅋㅋㅋㅋ

은우는 깜짝 놀라 팔로 얼굴을 가렸다. 그러나 쓸모없는 일이었다. 그는 뒤늦게 외형 변경해 놨단 것을 기억해 냈다.

“…면역이 없어서 놀랐네요. 기린목빼기 님, 5만 원 감사합니다.”

─본인 얼굴 겁나 싫어하나 봄ㅋㅋㅋㅋ

─진짜 이 정도면 개극혐 수준 아니냐ㅋㅋㅋㅋ

─잘생겻는데 왜 싫어하지

─외형변경 한 거 아님??

─그런 것치고 되게 자연스러운데 커스텀 공들였나

─다리 개길어 미친

─어깨가....ㅗㅜㅑ

사실 이것엔 다른 이유도 살짝 얽혀 있다. 다른 무엇도 아닌 전생의 외형을 따온지라 ‘왜 이 얼굴이지?’ 하고 순간 놀란 것이다.

그는 손을 내린 채 거울을 탐탁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떠오르는 게 없어 전생 얼굴을 가져오긴 했지만, 이것도 사실 좀 별로다. 역시 헬멧이 필요하다.

『프로필 설정을 해 주세요.』

알림 창이 떠오르며 이름 창과 직업군을 띄웠다. 이름은 당연히 방송예명인 켄이다.

그에 반해 직업은 선택지가 수십 종으로 한정되어 있다. 근미래 현실을 배경으로 하는 만큼 은우도 다 아는 직업들이었다.

“헤드오션 님, 10만 원 감사합니다. 뭘 고를까요.”

─무엇을 고르든 스토리에 영향이 없습니다

─대사만 조금 달라지는 정도?

─시작 옷이 달라집니다. 개인적으로 나는 승무원 옷을 추천드립니다.

─거울 보고 옷 제일 예쁜 거 고르셈

“정보 감사합니다.”

빠르게 올라가는 채팅 창은 정보의 바다였다. 은우는 그들의 조언을 받아들여 가장 옷이 예쁜 승무원을 골랐다. 거울에 비친 그의 모습이 제복 차림으로 변경되었다.

『난이도 설정을 해 주세요. 입문자 / 경험자 / 숙련자』

은우는 망설임 없이 숙련자를 골랐다. 너무 자신만만한 태도에 채팅 창이 뒤집어지고, 인트로 영상이 시작됐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 후원 목록은 슬슬 끝을 보이고 있다.

〚오래전, 불의의 사건으로 인해 나는 전신 마비가 되었다. 그런 내게 정부는 안드로이드화 시술을 받지 않겠냐고 제의했다. 개발 초기의 기술은 문제점이 많았지만, 나는 받아들였다. 다시 걷고, 달리고, 자유로워지고 싶었으므로.〛

주인공으로 추정되는 이의 독백이 이어졌다.

〚그리고 오늘날, 나는 배반당했다.〛

“감정이 있는 기계라니, 너무 불편하군. 기계는 말을 잘 듣기만 하면 될 것을.”

“인간의 뇌를 기계에 이식한 것부터가 문제였어.”

“그들을 전부 폐기하도록 하지.”

높은 자리에 서서 떠드는 이들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이어 보이는 건 폐기란 이름의 파괴를 당하는 안드로이드들이었다.

안쪽이 기계일 뿐, 인간과 똑같이 생긴 이들이 레이저총에 얻어맞고 폭탄에 터져 나가는 광경은 제법 처참했다. 그들의 잔해를 음울한 하늘 아래 황야에 내다 버린 까닭에 비참함이 더욱 부각되었다.

〚내가 1세대 안드로이드라는 이유로.〛

독백이 끝나고 은우는 몸의 지배권을 되찾았다. 시작은 안드로이드 더미 속이었다.

“GoDesty 님, 천 원 감사합니다. 슬슬 끝이 보이네요.”

혹시 떠오르는 게 있나? 알림 창을 기다려 볼까 싶던 찰나, 채팅 창이 말했다. 숙련자 모드부터는 알림 창 떠오르는 경우가 적다고.

그 순간 그는 더미를 박차고 나갔다. 운 좋게 그의 몸은 자잘한 경상 외엔 상처가 없다.

신체 능력은 기계답게 인간보다 월등했다. 다만 기계임에도 이질감이 들지 않는 건, 결국 게임의 한계일 것이다.

바스락.

그때, 좀 떨어진 곳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인사는 잠시 미루겠습니다.” 은우는 몸을 낮추고 감각을 기울였다. “정말 우울한 곳이야.”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탐지 센서 켜면 적 위치 볼 수 있어요. 그거 참고하세요.

누군가가 그가 모르는 기능을 알려 주었다. 다만 어떻게 켜는지 몰라 당황할 때, 눈이 뻐근해졌다.

세상이 파란색으로 물들고, 주변 사물은 실루엣을 따라 하얀 선 형태로 표기됐다. 저 너머에서 노란색으로 사람의 형체가 보였다.

이게 탐지 센서구나. 은우는 금방 깨달았다. 제법 편리한 기능이었다.

─이 기능이 제일 좋음ㅠ

─이 기능 없었음 진작에 아임휴먼 접었따

─주인공만 가지고 있는 개사기기능ㅋ

“주인공만 가지고 있습니까?”

─넹. 1세대 안드로이드들은 개발초기 때 만들어져서 오류가 많단 설정이에요.

─근데 주인공은 그 오류가 개사기기능으로 나타남ㅋㅋㅋ

사람들이 그가 모르는 설정을 도란도란 떠들었다. 은우는 그 설정을 머리에 집어넣으며 저편에 보이는 노란 인간들을 응시했다.

저것들, 제압할 수 있을까? 일단 무기가 될 만한 것은 없는데.

그러나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고, 널린 게 안드로이드의 시체였다.

그는 날카로운 파편 중 하나를 슬그머니 쥐고 몸을 느릿느릿하게 움직였다. 센서와 오감을 통해 저들이 다가온다는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러게 감정 있는 기계를 왜 만든 거야? 처음부터 감정을 삭제했으면 될 거였잖아.”

“멍청아, 1세대 안드로이드들은 불치병 환자들로 만들어진 거잖아. 감정이 있을 수밖에 없지.”

더미에 있는 시체 중 하나로 위장한 채 그는 목소리의 주인들을 살폈다. 그가 기계의 특성을 감안하여 호흡을 멈추자, 채팅 창도 절로 숨을 죽였다.

그는 고개를 빼꼼 내밀어 적일 것이 분명한 두 NPC를 살폈다. 탐지 센서를 끈 채로 보면 그들의 복장이 특수부대원 비슷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런 허술한 무기론 저런 장비를 뚫기 어렵지만… 그래도 급소를 노리면 죽는다 했다. 은우는 죽일 각을 재 보았다.

그러자 채팅 창이 슬그머니 조언을 건넸다.

─그냥 죽은 척하고 쟤네 갈 때까지 기다리면 됨

─ㅇㅇ 원래 그렇게 깨는 거임

은우는 두 조언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원래 그렇게 깬다는 말은 마치 새로운 길을 걷지 못할 거라고 말하는 것 같지 않나. 심지어 다른 누구도 아닌 그에게.

“헬멧이 마음에 드네요.”

─네?

─헬멧빌런이 여기서?

─아 못잡는다니까, 답답하게 굴지 말고 그냥 기다리라고ㅡㅡ

─니나 기다려 새꺄 답답하면 나가든가

─저거 잡은 사람 있긴 잇음 특수부대원이라서 글치ㅋ

─특수부대원도 4트인가 했을 텐데....

그가 자신 있는 건 오직 전투뿐. 그것에서 무시당하는 것만은 참을 수 없다. 하물며 다른 인간이 해냈던 업적이라면 더더욱.

속삭이듯 변화를 고한 그는 새로 적당한 파편을 찾았다. 마침 센서로 살핀 두 명은 더미 언덕을 사이에 두고 있다. 은우와 달리 저들은 그의 위치를 알 수 없단 뜻이다.

그는 시체 더미 사이로 몸을 묻으며 파편을 던졌다. 적절하고 절묘한 속구는 주의를 끌 만한 소음을 만들었다.

“뭐야?”

“저기서 들렸어.”

두 NPC가 소리를 듣고 이쪽으로 다가왔다. 채팅 창에 ‘조졌다’ 내지 ‘리트각’이라는 말들이 떠올랐다. 은우는 그것에 동의하지 않았다.

NPC들이 그가 있는 더미 언덕을 밟았을 때, 그는 다시 한번 파편을 던져 소음을 내었다. 더미에 시야가 가려졌을 것이므로 던져진 파편은 발견 못 했을 것이다.

“아직도 살아 있다니, 징글징글한 기계 놈들.”

“빨리 확인하고 쏴 버려.”

하나는 언덕 뒤편에 남고, 하나는 동산을 오르다 못해 한 걸음 더 내디뎠다. 은우의 본능이 차후 벌어질 일을 계산했다.

“자아… 다시 꿈틀거려 봐라.”

동산을 오른 녀석이 좀 더 아래쪽으로 내려왔다. 은우가 묻혀 있는 지점과 가깝다. 뒤에 있는 녀석도 슬슬 동산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바스락.

숨은 곳 바로 앞에 발이 보였을 때, 그는 그 발을 바로 낚아챘다. 그의 체구를 그대로 반영해 낸 체구는 안드로이드의 힘과 어울려 사람을 쉽게 아래로 당겼다.

“뭐야!”

뒤에 있던 자가 다급히 총구를 겨눴지만, 발포는 하지 못했다. 그의 동료가 있는데 총을 쏠 순 없던 까닭이다.

그것이 그의 패착이 되었다.

은우는 발을 잡아당긴 후, 자신의 몸을 더미 밖으로 내밀었다. 동시에 다른 팔로 적의 몸통을 휘감은 뒤 허리를 뒤틀었다.

이러면 붙잡힌 적도 같이 돌아가니. 은우의 드러난 등이 적의 몸에 가려져 총에 맞을 걱정이 없다.

그는 적의 몸을 기둥 삼아 빠르게 짚고 일어선 뒤, 쥐고 있던 날카로운 파편을 고쳐 쥐었다. 노릴 지점은 하나밖에 없다.

파편이 적의 목을 그었다. 그 어떤 무장도 관절부는 방비가 얇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모든 게 눈 깜짝할 새 벌어졌다. 훈련된 인간조차 쉽게 반응할 수 없는, 시청자들이 숨 쉬는 걸 까먹어도 컥컥댈 일 없는 시간 안에 말이다.

에메랄드 색으로 설정된 은우의 눈동자가 영롱하게 반짝였다.

“커억!”

비명을 어렴풋이 흘리며 은우의 팔이 교묘하게 움직였다. 몸통에서부터 뱀처럼 팔을 타고 올라간 손이 적의 손을 덮었다. 당연하지만, 목표는 적이 쥐고 있는 총이다.

타앙!

은우의 손짓에 의해 강제로 당겨진 방아쇠는 탄환을 발사했다. 그때까지도 적절한 대처를 떠올리지 못한 적의 몸이 총알에 꿰뚫렸다.

탕탕탕!

확인 사살은 중요하다. 은우는 더 방아쇠를 당긴 후 적의 목을 다시 그었다. 발전된 기술이 옷에 지혈 기능을 넣어 놨을지 누가 아나.

털썩.

다행히 지혈 기능은 이 시대에도 없었다.

『숨겨진 도전 과제를 달성함! -확인 사살의 중요성』

은우는 죽어 버린 NPC들을 보다가 그 헬멧을 벗겨 내었다. 다행히 안쪽에선 냄새가 나지 않았다. 탐지 센서가 풀리며 세상이 제 색을 되찾았다.

“쉽네요.”

그가 헬멧을 쓰며 한 마디 내뱉은 순간, 채팅 창이 간헐천처럼 뿜어져 나왔다.

─켄 그는 신인가? 그는 신인가? 그는 신인가? 신은 그인가?

─미친;;; 영화 한 편 봤다

─정부 정찰병을 잡다니, 당신은 미친 것 같습니다

─정보) 한국 스트리머 중 튜토 정찰병 잡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이거 최초 아님??

─세계 최초는 아닌데 한국 최초는 맞음

─1트 성공도 최초일걸??

─빌리도 이거 못했는데;;

─ㅗㅜㅑ 레전드다

─클립 땀. 개간지

─구독 씨게 박습니다

─아까 못 잡는다고 입 털던 훈수충들 어디감?ㅋㅋㅋ

은우로선 좀 과한 감이 있는 감탄들이었다. 겨우 끝나 가던 후원 목록이 또다시 쌓이기 시작했다. 비위치 유료 구독도 삽시간에 늘었다.

저걸 다 언제 말한담. 그는 뒷목을 쓸다가 무기나 빼앗았다.

혹시 몰라 총을 빼앗은 후 사격 시도를 해보았다. 그러나 총탄은 발사되지 않았다. 슬쩍 확인해 보니 아무래도 신체와 연동되는 그런 게 있는 것 같다.

반면 칼은 어떨까.

칼집에서 칼을 꺼내는 데에는 지문이 필요했으나, 그건 죽은 이의 손을 가져다 대는 걸로 적당히 마쳤다. 장갑 자체에 지문이 내장된 모양이다. 총에는 안 먹혔지만.

은우는 단검을 손에 쥐었다가 그대로 빙빙 돌렸다. 검이 살아서 춤을 추는 듯한 묘기에 시청자들이 또 탄성을 질렀다.

“두어 시간만 더 플레이하고 방송 종료할 예정이니 빨리 진행하겠습니다.”

그는 빈틈없이 채웠던 셔츠 단추를 풀고 소매를 걷었다. 얼굴 형태와 피부색이 변했을 뿐, 신체 자체는 현실의 그와 같은지라 근육으로 들어찬 팔뚝이 드러났다.

“감사 인사는 지금부터 이어서 할게요.”

역수로 쥔 단검이 검게 빛났다. 마주치는 족족 적들을 죽여 버리겠다는 걸 예고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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