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6화
이틀 뒤, 모리 저택.
림보르기니 2호에서 내린 나는 화려한 모리 저택을 두리번거렸다. 입구부터 빼곡하게 심긴 장미화원이 눈을 사로잡았다.
“근데 모리 부인은 돈이 엄청 많은가 봐요. 입구에만 장미가 대체 몇 송이야. 장식해 놓은 것도 다 금인 것 같고.”
나는 노르스름한 난간을 깡깡 두드리며 계단을 올랐다. 벌어진 입에선 “와~” “이야~” 따위의 환호성이 절로 나왔다.
“모리 가문에서 몇 해 전, 큰 광맥을 발견했거든.”
“광, 광맥이요?”
이어진 에드먼드의 답변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처음 볼 때부터 부내가 나더라니, 석유 부자에 버금가는 광산 부자인 모양이다.
“응. 죽은 모리 백작이 발견했다지 아마? 근데 그 안에 묻힌 광물과 보석이 어마어마하나 봐. 가족도 따로 없으니 남겨진 이가 모든 수혜를 보는 거지.”
“아…… 그랬구나.”
사별 후 홀로 남았을 모리 부인을 생각하자니, 조금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누런 난간을 쓰다듬으며 쓸쓸히 말했다.
“부인께서 많이 외로우시겠네요. 돈이 많아도 가족을 잃는 것만큼 슬픈 일은 없잖아요.”
“글쎄. 저걸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만은 않은데.”
아리송한 말과 함께 에드먼드가 턱짓했다. 남편의 움직임을 따라 나는 조용히 시선을 들어 올렸다. 동시에 다물린 입술이 맥없이 벌어졌다.
뭐야 저게? 코스프렌가?
저 멀리 꽃인지 사람인지 모를 무언가가 조금씩 가까워졌다. 그리곤 덥석! 온몸을 장미로 장식한 모리 부인이 양기를 뿜어내며 다가왔다.
“어머, 동생~ 어서 와요. 내가 자기 온다길래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
“아하하하! 모리 부인~ 잘 지내셨죠?”
나는 놀란 기색을 감추며 친근하게 다가섰다. 내가 지금 사람과 말을 하는 건지, 장미 줄기와 말을 하는 건지 무척 혼란스러웠으나 정신을 집중했다.
“나야 뭐 늘 그렇죠. 근데 자기는 어떻게 한 번 연락을 안 해? 서신 하나 띡 하고 던져놓으면 그만이야? 나 정말 서운해.”
“길드 준비 때문에 정신없이 바빴지 뭐예요. 그건 그렇고 못 본 새에 더 아름다워지신 것 같아요. 마치 한 송이 장미를 보는 것 같달까요?”
“어머~ 하여간 자기는 사람 기분 좋아지게 하는 데 뭐 있다니까? 어쩜 내가 듣고 싶은 말만 그렇게 쏙쏙 골라서 해?”
이게 바로……
사회생활 만렙의 짬바랄까?
나는 하고 싶은 말을 꾹꾹 누르며 활짝 웃었다. 그러곤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 능구렁이처럼 답했다.
“저야 보이는 대로 말하는 것뿐인걸요. 정말 아름다움 그 자체세요. 그건 그렇고 혹시 제가 일전에 부탁드린 건……?”
“아~ 그거?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이야기하려던 참이었는데 잘됐네. 자기가 부탁한 대로 개별 룸을 마련해 두기는 했어. 했는데, 뭐…… 인기가 있을지는 나도 잘 모르겠네?”
자신이 우위에 있음을 과시하듯, 모리 부인은 머리칼을 비비 꼬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이런 식으로 나오시겠다?
영악한 태도에 나는 조용히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비교적 사교계 큰손인 모리 부인과 척지면 득 될 게 없다는 것이 내 결론이다.
고로 참아야 한다.
“그거야 뭐, 제가 할 몫……!”
찰나의 침묵을 깨고 모리 부인을 향해 눈살을 접어대던 그때였다.
“뭘 그리 재미나게 이야기 중이지? 당신 몫은 그저 내 옆에서 귀하게 있어 주는 건데.”
어느새 옆으로 온 에드먼드가 허리를 두르며 기척을 냈다. 그에 따라 당황한 모리 부인의 안색이 시시각각 변했다.
“어, 어머! 랜돌프 공작님, 오랜만이네요. 어서 오세요.”
“오랜만이군요.”
“두 분이 같이 오실 줄은 몰랐는데…… 요즘 자주 뵙는군요.”
에드먼드의 등장에 판도는 완전히 뒤바뀌었다. 우위를 알려 주듯 턱을 빳빳이 든 그가 작게 코웃음 치며 말했다.
“클로엔을 혼자 두면 도통 불안해서 말입니다.”
“아~ 그러셨군요. 부부 사이가 정말 좋아……!”
“내 여자가 워낙 착하고 예쁘고, 귀엽기까지 한지라 우습게 보는 경우가 있더군요.”
에드먼드는 보란 듯이 내 허리를 바짝 조이며 애정을 과시했다. 그러곤 경고하듯 목소리를 한음 더 낮췄다.
“딴에는 상대를 배려한다고 격 없이 다가서는 것뿐인데, 대 랜돌프 가문의 안주인이라는 사실을 더러 잊는달까?”
잇단 경고에 모리 부인의 낯빛이 파리하게 질렸다. 이러다간 물건을 팔기는커녕, 파티가 시작되기도 전에 쫓겨날 판이다.
“하하하! 저희 공작께서 걱정이 참 많으세요. 아직 신혼이라 그런지 애정 표현에 가감이 없다니까요. 당신도 참~ 아무 데서나 그러지 말라니까요.”
“걱정이 많은 게 아니라……!”
동시에 팍! 나는 팔꿈치를 들어 에드먼드의 옆구리를 세게 가격했다. 여기서 한마디만 더했다간 가만두지 않겠다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 * *
“후…… 떨려. 팬 미팅 추첨일보다 떨리는 것 같아.”
커튼 뒤에 선 나는 경직된 손을 쥐었다가 펴기를 반복했다. ‘오레알’의 시작을 알리는 첫 자리인 만큼 답지 않게 긴장이 몰려왔다.
“시크릿 룸이라더니 방음에 엄청 신경 썼나 봐요. 말소리는커녕, 의자 끄는 소리도 안 나요.”
덩달아 긴장한 샤샤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모아든 미간에 힘을 주며 합리적 의심을 펼쳐 나갔다.
“설마…… 이 인간들 샘플만 찍먹하고 다 튄 건 아니겠지?”
“에이, 그럴 리가요! 부인께서 만드신 ‘백옥의 비밀’이 얼마나 좋은데요. 다들…… 조용히 하고 계신 거겠죠.”
망할 리가 없다, 잘되지 않으면 이상한 거다, 큰소리를 땅땅 쳐놨으나 걱정이 드는 건 사실이었다. 모인 인원이 얼마인지도 모를뿐더러, 쌓인 재고가 오두막에 한가득하다.
“부인, 술이라도 한잔 드릴까요? 혹시 몰라서 제가 따로 챙겨 왔는데…….”
샤샤가 작은 호리병을 딸랑이며 물었다. 잠시 고민한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놉. 비즈니스에서 가장 중요한 건 신뢰야. 첫 공석에서부터 술 냄새를 풍길 수는 없지.”
나는 짱센 클로엔 랜돌프다. 이 정도에 무너질 수는 없다. 홀로 최면한 나는 깊은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부인, 그럼 이제 걷을게요.”
샤샤의 신호에 맞춰 나는 작게 고갯짓했다. 어쩐지 마주할 자신이 없어 두 눈을 살포시 감기도 했다.
촤락! 레일 구르는 소리와 함께 화려한 꽃무늬 커튼이 걷혔다. 하지만 주변은 정적.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뭐야, 왜 조용해? 뭔데!
밀려온 불안감에 나는 슬쩍, 감은 눈을 떴다. 그리고 맞은편엔 좌 모리, 우 테리샤를 기준으로 수십 명의 귀부인이 오열 종대로 앉아 있었다.
아놔, 모리 언니. 날 속였네?
나는 필사적으로 표정을 감췄다. 널뛰는 기분을 진정시키고자 의도적으로 슬픈 생각을 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상승하는 입꼬리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부인…… 저희 이번에야말로 돈방석에 앉은 것 같은데요?”
주변을 살피던 샤샤가 넋이 나간 얼굴로 말을 보탰다. 어림잡아도 100명 이상. 나를 향해 반짝이는 수백 개의 시선을 보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존버는…… 반드시 승리한다.”
홀로 중얼거린 나는 새어 나오는 웃음을 삼키며 표정을 갈무리했다. 그러곤 사뿐히 걸음을 내디뎌 중앙 연단에 올라섰다.
“모두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낯익은 얼굴들이 더러 있네요. 그간 잘들 지내셨나요?”
다정한 인사말에 귀부인들의 입꼬리가 호선으로 휘었다.
“내가 오늘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목이 빠지는 줄 알았다니까? 여기 주름 생긴 것 좀 봐.”
“그러니까요. 그 좋은 걸 코딱지만큼 주고 맛만 보게 하는 경우가 어디 있나 몰라요.”
“저는 한 방울도 아까워서 마지막까지 싹싹 긁었다니까요.”
모리 부인을 시작으로 귀부인들의 입에선 그간의 고충이 봇물 터지듯 흘러나왔다. 작은 변화였으나, 랜돌프에 대한 거리감이 완전히 깨졌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기다려 주신 만큼 더 좋은 물건, 좋은 서비스로 보답하겠습니다. 랜돌프 가문의 첫 번째 에스테틱 브랜드. ‘오레알’을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손을 뻗음과 함께 양옆에 붙은 플래카드가 아래로 내려왔다.
[정성으로 모십니다.]
[O’RE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