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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 남편과의 이혼을 거부합니다 (104)화 (104/107)

제104화

“랜돌프 부인?”

들려온 목소리에 나는 고른 숨을 내쉬며 고개를 들었다. 사막 속 오아시스를 찾는다면 아마도 이런 기분일 거다.

“티베로?! 티베로가 여기까지는 무슨 일이에요?”

티베로를 발견한 나는 쥐고 있던 냄비 손잡이를 자연스레 내팽개쳤다. 그에 따라 허둥거리는 티베로의 손이 몸채만 한 거대 솥을 붙들었다.

“주방에 잠시 들를 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근데 이 무거운 걸 혼자 옮기고 계셨던 겁니까? 사용인들은 어쩌시고요?”

“아~ 다들 바쁘길래 혼자 해 보려고 했죠.”

나는 가녀린 손목을 한차례 주물럭대며 나긋하게 말했다. 그리곤 하나, 둘, 셋. 속으로 숫자를 셌다.

“어디로 옮기실 건가요? 마침 기사단 훈련도 끝났으니,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부인께서 옮기시기엔 너무 무겁습니다.”

“어머~ 정말 괜찮은데. 그럼 요 앞 달팽이 농장까지만 부탁해도 될까요? 물건이 그쪽으로 올 거라서.”

나는 부러 어색하게 웃으며 손가락을 가리켰다.

“물론입니다.”

짧게 대답한 티베로가 번쩍, 솥단지를 들었다. 그러곤 앞장서 농장으로 향했다. 삽시간에 벌어진 격차를 줄이려 나는 짧은 다리를 부단히 놀렸다.

“티베로오!! 같이 가요!”

“아…… 죄송합니다. 부인. 제가 여성분들과 함께 걸을 일이 없다 보니 미처 신경을 못 썼네요.”

헉헉대는 나를 향해 티베로가 뒤통수를 긁적이며 머쓱하게 말했다. 그러더니 속도를 줄여 발걸음을 맞췄다. 한결 편해진 보폭에 나는 벅찬 숨을 가다듬었다.

“휴, 이제 좀 살 것 같네.”

“죄송합니다. 그러려고 그런 건 아니었는데.”

“에이. 됐어요, 됐어. 다리 짧은 내가 죄지. 그러고 보니 우리 진짜 오랜만이네요? 지난번 경합에서 정말 멋졌다고 말해 줬어야 했는데 내가 이래요.”

“아닙니다. 제가 부인께 감사 인사를 드렸어야 했는데 찾아뵙지 못해 죄송할 따름입니다.”

볼수록 올곧단 말이지.

내가 남편만 없었으면 호로록했을 텐데. 아쉽다, 아쉬워…….

나는 애꿎은 입맛만 다시며 사람 좋게 웃었다. 그 순간 번뜩!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머릿속을 스쳤다.

황진이도 울고 갈 미남계.

이거 좀…… 승산 있을지도?

오레알의 구조 특성상, 플래티넘 이상부터는 개별 방문 서비스가 들어간다. 고로 상대적으로 힘 좋은 남자 직원들이 필요하다. 그런데 얼굴까지 좋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

남몰래 미소 지은 나는 티베로를 향해 두 눈을 반짝였다. 그대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혹시 올해 나이가 몇이죠?”

“네. 네? 저 말씀입니까?”

“응, 여기 티베로 말고 누가 또 있어요.”

“저…… 스물하나입니다.”

“혹시 또래 중에 실업자라든가, 실업이 될 예정인 사람은?”

이어진 질문에 티베로가 쓰게 웃었다. 그러곤 기운 없는 목소리로 답을 내놨다.

“대다수가 그렇죠.”

“응? 대다수가 그렇다고요?”

“잇단 전쟁 위기 덕분에 일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으니까요. 귀족들이야 대대손손 잘 먹고 잘살지만, 저희 같은 하층민들은 대부분 그렇지 못합니다.”

“아…….”

“그나마 저처럼 무예를 익힌 친구들은 기사단에 들어가 근근이 지내지만, 그렇지 못한 친구들은 하루 벌어 하루 살기도 어렵습니다. 실력이 있다 하더라도 자리가 차 들어갈 수 없는 경우도 많고요. 슬픈 일이죠.”

한순간 가라앉은 분위기에 나는 말하기를 멈췄다. 여기나 저기나 피해당하는 사람들은 빈민층이다. 그렇게 한참은 대화 없이 목적지를 향하던 그때였다.

“미유우웅~.”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 달팽이 울음소리와 함께 허름한 오두막이 보였다.

“도착했습니다, 부인. 가져온 솥은 여기에 둘까요?”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입구에 냄비를 놓은 티베로가 꾸벅 고개를 조아렸다.

“아까는…… 제가 괜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혹 기분 상하셨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

“그럼 전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뒤따른 침묵에 티베로가 한결 어두워진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티베로가 처진 어깨를 늘어뜨리며 돌아서던 그때.

“잠깐.”

조용히 타임을 외친 나는 티베로를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예상치 못한 부름에 티베로의 얼굴 위로 긴장이 흘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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